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191
약먹는 천재마법사 1191화(1191/1192)
약먹는 천재마법사 1191화
열병식(5)
끝도 없이 펼쳐진 거대한 강철의 통로를 레녹은 계속해서 걷고 있었다.
데드라이즈 군단 제2사령부.
극동전선을 담당하는 군단의 주축이자, 군단의 지상전력 전쟁병기들을 생산하는 군수공장.
현재 동대륙 내에서 가용 가능한 군단 전원이 모일 수 있는 유일한 장소.
5군단의 부지휘관, 리야드 에넬의 안내를 받아 공장 통로 사이를 걷던 레녹이 힐끗 시선을 돌렸다.
쿠구구구구!!!
수십 미터를 뛰어넘는 강철외벽 위로 천둥 같은 굉음이 울려 퍼진다.
외벽 사이로 촘촘하게 늘어선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위로 수백 대의 전차들이 줄지어 이동했다.
사방에서 실시간으로 조립되어 생산을 마치고 운반되는 수십 톤에 달하는 군사병기들의 모습.
“일개 공장시설로 치부하고 넘길만한 규모가 아니군.”
레녹이 중얼거렸다.
“자체적으로 군사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인프라가 이곳에 모두 밀집되어 있는 건가.”
전차뿐만이 아니라, 장갑차와 자주포, 운반차량과 여러 중장비들이 공장 곳곳에서 생산되고 있다.
군수공장의 규모가 어찌나 큰지, 당장 공장 내부에 들어온 레녹의 마력감지로도 크기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
이곳에 위치한 생산시설 전체가 본래 5군단의 작전구역이자, 군단장의 소유물이나 다름없다는 말인가.
5군단장의 자리가 생각보다 군단 내부에서 요직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알겠지만, 정작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이만한 군수공장 생산시설과 라인을 5군단이 직접 소유하고 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단명종들이 구축한 생산시스템의 효율성은 언제 보아도 훌륭한 수준이로군요.”
유프리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이곳에서 전쟁병기를 생산하는 것과 동시에 곧바로 중앙전선에 투입하는 겁니까.”
“사령본부가 위치한 동대륙 중심부 산맥에 거대한 철광맥이 흐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에넬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이곳에 함유된 철분은 대륙 전역에서 손꼽힐 만큼 높아, 토양에서 철분을 직접 추출하는 일이 가능할 정도입니다.”
“그렇습니까.”
“대신 농작물을 재배할 수 없을 만큼 토질이 나쁘고, 지반이 약해서 그 위에 구조물을 올리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만. 이곳에서 생산되는 강철은 그러한 단점을 모두 무시하기에 충분하죠.”
우우우웅!!
공장 통로 양옆으로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와 그 위로 운반되는 신형 장갑차를 바라보며 에넬이 말했다.
“참모부에서는 이곳의 환경이 동대륙을 관통하는 자기폭풍의 원인 중 하나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군단 지휘부가 중앙진출과 동시에 이곳에 2사령본부를 세운 것이기도 합니다.”
“규모나 중요성을 비교하면 군단 내부에서도 최중요 시설 중 하나겠군.”
“맞습니다. 그래서 2사령부는 언제나 중장급 이상의 고위 장성이 최소 한 명 이상 주둔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죠.”
“가장 최근까지 2사령부를 지키고 있던 건 누구였지?”
“송하 대장께서 수고를 해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송하. 레녹 역시 요르타에서 만난 적이 있던 검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8레벨의 검사이자 강력한 분신계통의 초능력을 지닌 선천이능력자.
대륙 전역에 분신을 나눠서 움직이면서도 능력 운용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만큼 강대한 초인이나, 분신을 나눌 때마다 지능도 함께 낮아지는 황당한 기인이었다.
그러한 능력을 지녔다면 대장이 사령본부에 주둔하면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지.
2사령본부가 대장이 직접 주둔해야 할 만큼 주요시설이란 건 의미 있는 정보였지만, 레녹이 묻고 싶은 건 그것이 아니었다.
“길레온 마일로즈를 비롯한 다른 대장들은 아직 일선에 나서지 않는건가?”
현재 대륙에서 공식적으로 공인된 극소수의 ‘개인전력’ 중 하나.
그 존재만으로 원수가 부재중인 군단을 군단으로서 성립하게 만드는 주체.
데드라이즈의 정점에 군림하는 대장들이 지닌 힘이, 다른 군단장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강대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당연히 이번 열병식에서 최우선적으로 경계해야 할 대상은 바로 그들일 터.
심지어 레녹은 길레온과 송하를 제외한 다른 한 사람의 대장에 대해서는 아직 들어본 적도 없었다.
“다른 두 대장께서는 열병식 참석이 아직 확정되지 않으셨습니다.”
에넬이 쓴웃음을 지었다.
“마일로즈 님께선 현재 공식석상에 나설 수 있는 상태가 아니신 데다…… 바라간 님께선 아직 정식으로 대장직을 승계받은 상황도 아니라.”
“정식으로 대장직을 승계받지 않았다고? 5군단과 비슷한 경우인 건가?”
“아닙니다. 물론 바라간 님이 대장직에 내정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기는 합니다만……”
레녹의 질문에 대답하는 에넬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주술사답게 워낙 떠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시고, 군단의 질서와는 어울리지 않는 분이라. 아직까지 대장직을 승계받을 기회가 없을 뿐입니다.”
“…….”
주술사. 방황하는 것을 좋아하는 기인. 군단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성정.
그럼에도 이미 대장으로 내정되어 있을 정도라니, 바라간이라는 자의 실력이 어느 정도길래 그만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일까.
확실히, 이런 부분에서는 파워랭킹에 기록되지 않은 초인에 대한 정보들이 아쉽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
“바라간이라는 자가 새로운 대장의 내정자라면, 기존의 대장은 누구였지?”
“아르무트 님이셨습니다. 데드라이즈 전 군단의 지상작전을 홀로 주관하시던 사령관이셨죠.”
“지금은 전역하고 자리를 비워준 건가?”
“명왕의 가비행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전사하셨습니다.”
“…….”
예상치 못한 에넬의 대답에 레녹이 순간적으로 침묵했다.
명왕의 가비행. 그가 대륙을 할퀴고 남긴 상처와 증거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실감했기 때문.
“승천자 진와에게 패배한 예의 흑마법사를 말하는 겁니까.”
유프리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워랭킹에서 그의 이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 순위에 적혀 있다가 자취를 감추었더군요.”
“…….”
“단명종의 몸으로 운명에 도전할 자격을 갖추었던 듯한데,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죄송하지만, 일개 준장에 불과한 저로서는 당시 있던 사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유프리아의 질문에 애써 화제를 피한 에넬이 자연스럽게 걸음을 돌렸다.
“그보다도 도착이 머지않았으니, 이쪽으로 오시지요. 열병식에 앞서 귀빈들이 머무는 숙소로 직접 안내를 해드리겠-”
“아, 에넬 준장. 거기 있었군.”
그 순간, 등 뒤에서 에넬을 부르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복을 입은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장년 남성이, 미묘하게 웃는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8군단에서 5군단의 포화부대를 차출해 쓰는 일로 연락하려 했는데, 그쪽이 연락을 너무 오랫동안 안 받지 뭔가.”
“……마티스 준장.”
에넬의 표정이 굳었다.
“8군단의 부사령관께서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난 또 열병식을 앞두고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걱정했는데,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렇지?”
천천히 에넬의 앞으로 다가온 마티스가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명령이 내려왔네. 지금 당장 5군단 본대를 움직여 8군단의 주둔지에 합류하도록. 열병식을 앞두고 8군단의 규모가 가장 커보일 수 있도록 말이야.”
“…….”
“자네도 알겠지만,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하지 않나. 8군단의 면을 세우기 위해 5군단에서 협조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네. 괜찮겠지?”
대답하지 않는 에넬을 향해 마티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다른 군단에서 움직이기 전에 서두르는 것이 좋을 거야. 4군단이나 7군단 쪽에 붙는다면 굉장히 재미없어질걸세.”
5군단의 지휘권을 갖고 있는 에넬의 앞에서 대놓고 그 전력을 차출해 쓰겠다는 8군단의 요구.
하지만 에넬은 그 비정상적인 지시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켰다.
레녹과 유프리아를 상대하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던 모습과는 판이한 태도.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유프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굉장히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권력싸움이군요. 단명종은 이만한 규모의 군세를 이룬 뒤에도 암쟁과 정치를 즐기는 겁니까.”
“나도 직접 겪어보지는 않아서 모르겠군.”
레녹이 무심한 눈길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만 저건 데드라이즈가 만들어진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거다. 적군이나 적장을 포섭해 만들어진 군벌이니, 군율보다 힘의 논리를 우선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겠지.”
“흠…….”
“팔대용왕과 원로성의 권력싸움도 저기 뒤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뭘 그렇게 처음 보는 것처럼 구는 거지?”
“……당신. 필요 이상으로 쿤다라의 사정에 대해 잘 아는 이유를 언젠가 한번 들어야 할 것 같군요.”
유프리아가 무표정한 눈으로 빤히 레녹을 바라보는 사이, 에넬이 대답했다.
“마티스 준장. 죄송하지만 그 요청은 들어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뭐라고?”
마티스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에넬의 어깨를 쥐고 있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득!
순식간에 험악해진 분위기에, 공장 곳곳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사람들의 시선이 대거 이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전차를 조립하던 엔지니어와 시트를 보면서 수량을 헤아리던 관리자. 사방에서 부품을 운반하던 군인들까지.
공장 사방에서 수백 명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서 마티스가 험악한 얼굴로 에넬을 향해 말했다.
“이봐, 에넬 준장. 이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지. 열병식에서 주목받지 못할 5군단을 위해 본 8군단이 제안하는 배려를 무시할 셈인가?”
“…….”
“이 호의를 무시하는 건 앞날을 생각했을 때 현명한 결정이 아닐 텐데. 5군단장이 부재중인 지금 앞으로도 많은 작전을 다른 군단과 함께해야 하지 않겠는가.”
“열병식을 앞두고 현재 5군단의 본대 역시 주둔지를 배정받은 상황입니다.”
에넬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차가운 얼굴로 대답했다.
“이 상황에서 5군단이 주둔지를 옮기게 되면 원수께서 복귀하신 뒤 편제를 구분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허어, 이 친구야. 그러니까 그건 자네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니까.”
마티스의 입가에 지울 수 없는 조소가 어렸다.
“자네는 5군단의 사령관이 아니잖나. 그냥 임시로 지휘권한을 가지고 있는 일개 장교일 뿐이지.”
“…….”
“자네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을 8군단에서 도와주겠다는데, 감히 배려를 거부해? 그러고도 열병식이 끝난 뒤에 5군단이 무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가?”
“저희 5군단은 이번 열병식에 앞서 새로운 사령관을 모시기로 결정했습니다.”
에넬이 그렇게 말하며 칼같이 마티스의 제안을 끊어냈다.
어깨를 짚은 마티스의 손을 쳐낸 에넬이 싸늘하게 말했다.
“더 이상 다른 군단의 명령이나 전력 차출에 협조할 여유는 없을 것 같군요. 유감입니다.”
“뭐?”
예상치 못한 말에 퍼뜩 시선을 돌어 올린 마티스가, 레녹을 발견하고 퍼뜩 움직임을 멈췄다.
마치 이제서야 레녹과 유프리아의 존재를 뒤늦게 발견한 듯한 모습.
“……잠깐.”
미간을 찌푸리고 레녹의 얼굴을 바라보던 마티스의 표정이 서서히 변했다.
군단의 장교이자 8군단의 지휘관으로서, 그 역시 천번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
그리고 레녹이 왜 이 시점에 여기 와 있는지 역시도.
“천번, 천번 에반 마르티네스?”
레녹을 향해 삿대질을 한 마티스가 더듬거리면서 물었다.
“그, 염열마법사가 열병식에 정말로 참석한 거냐? 정말로?”
“기껏 열병식까지 찾아온 손님에게 말이 짧군.”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바라보며 레녹이 말했다.
“에단 바쥬르를 만나러 왔다. 그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도록.”
“……네가 5군단의 새로운 군단장이라고. 웃기지 마라.”
눈을 가늘게 뜬 마티스가, 에넬을 휙 지나쳐 레녹에게 다가왔다.
“그럴 리가 없어. 아직 원수께서 돌아오시지도 않았는데, 네 보직이 정해졌을 리가 없단 말이다.”
“…….”
“주시자 출신의 마법사가 절차를 건너뛰고 군단장에 오른다고? 하! 아무리 군단이 무질서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지. 로베라이드 중장을 그렇게 만든 범인이 군단장에 오른다고!!”
레녹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큰 키의 마티스가, 고개를 숙인 채 감정을 숨기지 않고 이죽거렸다.
“머리 없는 5군단의 개들을 꼬드겨 내정자 자리를 꿰찬 모양인데, 곧 어림도 없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열병식에는 네놈을 손쉽게 벌할 수 있는 대장들께서-”
“아, 그렇군.”
마티스의 말을 끊은 레녹이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뭘 믿고 이런 식으로 나불대나 했는데, 본인이 아니라 그 뒷배를 믿고 있는 거였나.”
“뭐?”
“그럼 널 상대하다 보면 윗선의 상급자들이 알아서 튀어나오겠군.”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레녹의 말을 마티스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마티스가 한번 눈을 깜박인 그 순간, 그의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채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으직.
“……아?”
십수 미터 저편에서 팔짱을 낀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마법사의 모습.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쩍 벌린 군인과 엔지니어들의 고함 소리. 얼굴을 타고 떨어지는 비릿한 혈향.
그제서야 마티스는 자신의 몸이 컨베이어 벨트에 거꾸로 처박혀 있음을 깨닫고 낮은 비명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아……!!!”
상황을 이해한 뒤에야 전신의 신경을 타고 솟구치는 불타는 듯한 격통.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마티스의 표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분노로 물들었다.
콰앙!!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몸을 튕기듯이 일어선 마티스가, 악귀 같은 얼굴로 허리춤을 더듬었다.
날카로운 징이 박힌 삼단봉을 펼쳐 마력으로 경화시킨 그가 새된 소리를 내질렀다.
“이 근본 없는 주시자 새끼가 감히 군단에 거역해!!!!! 등대지기의 개 따위가 감히!!!””
“말조심하지.”
“8군단 전군 전투준비!! 놈의 가죽을 벗겨서 등대지기에게 직접 선물로 보내겠-”
뻐어어어엉!!!!
그 순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마티스의 말이 뚝 멈췄다.
뜨거운 화염이 폭발하는 것과 동시에, 마티스의 얼굴 반쪽이 그대로 사라져 있었다.
“청의 눈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라고 했을 텐데.”
레녹이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뻗은 채 고개를 기울였다.
“난 두 번 말하는 걸 싫어한다.”
“이, 이…….”
반쪽밖에 남지 않은 얼굴로 입을 뻥긋거리던 마티스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레녹을 바라보았다.
불탄 입술을 달싹이며 무언가 말하려고 애쓰던 그가, 이내 바람 새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쓰러졌다.
뻣뻣한 나무조각처럼 앞으로 넘어진 몸이 기괴하게 땅을 두들기다 고개를 처박고 멈춰 섰다.
“마, 마티스 준장님이 죽었다……!!!”
“에반 마르티네스가 8군단의 간부를 죽였어!!!”
“우와아아아아!!!”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엔지니어들이 패닉에 빠진 표정으로 소리치며 장비를 내던지고 도망쳤다.
관리자와 행정직무원들조차도 두려움에 빠진 듯이 벌벌 떨면서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남아 있던 군인들만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굳은 표정으로 허리춤의 권총을 움켜쥐었을 뿐.
“미친 자식. 이런 일이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열병식이 시작하기도 전에 살인을 저지르다니!!”
“사, 사령관 님……!!”
“단명종의 사고방식은 아직 잘 이해할 수가 없군요.”
에넬이 창백한 안색으로 레녹을 바라보고, 유프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의 대화 어디에서 그 인간종을 죽일만한 사유가 있던 겁니까.”
“일일이 참고 넘어갈 거라면 난 열병식에 참석하지도 않았을 거다.”
레녹이 느릿하게 손을 주무르면서 대꾸했다.
“말했듯이, 난 군단장의 자리를 받으러 온 게 아니야. 그보다 훨씬 더 중대한 일을 논의하러 왔지.”
“…….”
“진행이 갑갑해서 속이 터질 지경이었는데, 이제야 좀 일이 빠르게 흘러갈 듯하군.”
“에반 마르티네스……!!!”
그 태연한 말에 분을 참지 못한 8군단의 군인들이 권총을 뽑아 들고 주변을 포위했다.
방금 막 군수공장에서 생산된 전차들이 붉은 경고등과 함께 일제히 포신을 돌려세웠다.
장교들이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선두에 서고, 무장을 마친 군인들이 총구를 겨누었다.
그를 보자마자 레녹의 뒤에 서 있던 5군단의 군인들이 즉시 총을 마주 잡고 앞으로 튀어나왔다.
“전원 전투준비!!”
“사령관 님을 보호하라!”
“뒤로 물러서지 않는다면 발포하겠다!”
철컥!!
마티스의 시체를 사이에 두고 5군단과 8군단의 군인들이 서로를 향해 총을 들어 올린다.
에넬을 비롯한 양 군단의 고위 장교들이 육체강화를 마친 채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8군단의 장성. 그것도 군단 부지휘관이 사령본부 앞에서 사망한 초유의 사태.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달아오른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레녹이 힐끗 시선을 들어 올린 순간.
밀폐된 군수공장의 천장이 일그러지며, 무언가 엄청난 속도로 두 군단 사이에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강렬한 충격파를 흩뿌리며 컨베이어 벨트를 박살 낸다.
충격파가 양옆으로 퍼져나가며 전차들을 들썩이고, 총을 겨누고 있던 군인들이 중심을 잃고 나뒹굴었다.
“우와아악!!!”
“자리를 지켜라!! 대열을 유지해!!”
“맙소사. 이건……!!!”
경악하며 뒤로 물러서는 장교들을 무시하고, 레녹이 자신의 눈앞에 떨어진 인영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이거 참.”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선이 굵은 단단한 인상의 여성.
“잠깐 눈을 뗀 사이에 아주 개판이 났잖아. 이게 뭐 하는 짓이냐?”
그녀가 허리를 펴고 몸을 일으켜 세우자 레녹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컸다.
무장을 한 것이 아님에도 전신에서 들끓듯이 피어오르는 기세. 근육질의 길쭉하고 단단한 두 팔.
순식간에 여성의 기척과 의념을 읽어낸 레녹의 눈에 희미한 이채가 어렸다.
‘무투가. 그것도 엄청나게 깊은 수양을 쌓은 무인이군. 느껴지는 기척이 거의 무생물에 가깝다…….’
의념과 기척이 극한까지 단단하게 응축되어 바위처럼 단단하게 느껴진다.
확고하게 중심을 잡혀 있는 수준을 넘어, 홀로 경지를 쌓고 일가를 이룬 권사라는 증거.
아니나 다를까, 머리를 긁으며 걸어 나온 여성을 본 군인들이 사방에서 당황한 표정으로 경례를 올렸다.
“아, 아티야 중장님!!!”
“6군단장께서 어째서 여기에……!!”
“남부의 권성이 벌써 사령부에 복귀했다면, 설마!!”
사방의 군인들을 무시한 아티야가 아무렇지도 않게 걸음을 옮겨 레녹의 앞에 섰다.
그 모습을 본 8군단의 군인들이 화색이 되어 목소리를 높였다.
“중장님. 그자가 마티스 준장을 살해한 범인입니다!!”
“열병식이 시작되기 전에 압송하여 확실하게 엄벌을……!!!”
“아, 씨발 진짜 시끄럽게.”
아티야가 험악한 표정으로 8군단의 군인들을 노려보았다.
“입 안 닥쳐? 다 뒤지고 싶냐?”
“…….”
살기 어린 험악한 선고에, 8군단의 군인들이 창백한 안색으로 입을 다물었다.
순식간에 기묘한 정적에 잠긴 반파된 군수공장의 생산라인의 중심부.
심드렁한 표정으로 난장판이 된 군수공장을 둘러본 아티야가 레녹을 향해 턱짓했다.
“이봐. 여기는 사령본부가 아니라 생산시설 근처야. 그쪽 같은 초대받은 VIP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그래서?”
“그래서라니. 넌 지금 군단에 편입되기도 전에 장성을 하나 죽인 거다. 원래라면 당연히 이 시점에서 군사재판에 넘겨야겠지만…….”
레녹을 바라보던 아티야가 씩 웃었다.
“뭐, 그래도 나쁘지 않은 솜씨였다. 새로운 군단장이 될 놈이면 그 정도 깡은 있어야지. 안 그러냐?”
“아티야 중장님!!”
“그게 대체 무슨……!!”
“정식으로 임명받은 건 아니지만, 너 같은 내정자라면 복잡한 절차 정도는 제쳐도 돼.”
뒤에서 당황해 소리치는 군인들을 무시한 아티야가 곧바로 걸음을 돌려세웠다.
“따라와라. 내가 군단장들이 집결해야 할 곳으로 안내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