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193
약먹는 천재마법사 1193화(1193/1203)
약먹는 천재마법사 1193화
열병식(7)
쿠오오오!!!!
활짝 열린 하늘길 위로 부유하며 일렁이는 검은 피라미드.
그 아래 단상에 서서 표정없는 얼굴로 지상을 응시하는 에단 바쥬르의 모습.
카이세 바쥬르와 닮아 있으면서도, 오히려 그렇기에 그가 아니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하는.
눈을 마주한 순간 감상을 표하는 것조차 망설이게 하는 그 특유의 모습에 사람들이 침묵한 찰나.
에단이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눈으로 보이는데도 그 자리에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 조용한 몸짓.
철컥!!
하지만 단상 앞에 좌우로 도열해 있던 군단장들은 즉시 반응했다.
“4군단장 미르바 네오소토. 원수를 뵙습니다.”
“6군단장 아티야 엘릭슨. 복귀를 축하드리며…….”
“7군단장 데이머스 레이언…….”
“8군단장 타운센드…….”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정중한 자세로 가슴에 손을 얹고 경례하는 장성들의 모습.
그런 군단장들을 따라, 사령본부 바깥에 주둔하고 있던 군단들도 동시에 움직였다.
쿵! 쿵! 쿵!!
수천 수만에 달하는 군인들이 사방에서 동시에 걸음을 돌리고 가슴에 손을 얹는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령본부를 향해 돌아서는 무수한 전차들과 중장비들의 대열.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군세가 단 한 사람을 향해 충성을 맹세하며 고개를 조아리는 압도적인 경관.
하지만 에단은 자신을 향해 경례하는 군단을 앞에 두고도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오랫동안 부재중이었던 원수의 복귀를 환대하기 위해 찾아온 이들에게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레녹 역시 희미하게 표정을 굳힌 채 그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
카이세 바쥬르와 지독하게 닮았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닮지 않았다.
특유의 공허한 분위기는 비슷하면서도, 카이세보다 훨씬 더 감정이 옅어 보이기도 한다.
카이세와 너무나도 닮아 있기에 오히려 사소한 부분에서 그와는 다른 점이 명확하게 보이는.
그 이질감과 위화감이 에단 바쥬르라는 존재를 무엇보다 강하게 정의하며, 선명하게 드리운다.
“이럴 수가…….”
“정말 부친과 쏙 빼닮았군. 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건가.”
“……그가 살아 돌아온 줄 알았어. 그렇게 느낄 만큼 닮아 있구나.”
열병식에 초청받은 이들 중에서도 레녹과 같은 감상을 품은 이들이 있었던 것일까.
흔들리고 동요하며, 경계하거나 혹은 그리워한다.
카이세 바쥬르를 알고 있지만, 그의 아들이었던 에단 바쥬르와는 교류가 없던 이들.
어째서 데드라이즈의 군단이 카이세를 떠난 뒤에도 에단에게 목숨을 바쳐 충성하는지.
에단을 알지 못했던 이들조차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속 한편으로 납득한다.
하지만 레녹은 인파 속에 섞여 에단을 올려다보면서도, 한편으론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마력이나 기척이…… 굉장히 희미하군. 그 부분에서는 카이세와 유사성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에단 바쥬르는 한번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 태어난 이 세계의 유일무이한 [부활자].
그것이 가능한 것은 에단이 카이세의 아들로서 역천의 재능을 비교적 약한 형태로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애매했던 역천의 재능이 한번 죽은 뒤 더욱 강해져, 에단을 죽음에서 역천시킬 정도로 강력해졌던 것.
군단을 일컫는 데드라이즈라는 이름조차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에단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었던가.
그렇기에 레녹은 에단이 카이세에 필적할 정도로 강대한 역천의 마력을 흩뿌리는 초월자일 거라 생각했지만-
정작 열병식에 도착한 에단의 기척은 극도로 희미하기 그지없었다.
전신의 혈관을 거꾸로 타고 역행하는 저주받은 천성도. 시간을 역행하여 노화를 거스르는 반동도.
카이세 바쥬르를 평생 동안 괴롭혔던 체질의 기척이나 편린이 에단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단순하게 역천의 재능을 억눌러 숨기고 있을 뿐인지, 아니면 반대로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것인지.
어느 쪽이든 에단의 ‘희미함’은 레녹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위험하게 느껴진다.
레녹이 답을 알 수 없는 고민 속에서 폐쇄구역의 기억을 곱씹고 있던 찰나.
에단이 입을 열었다.
“오래전에 시작해 끝내지 못한 일이 하나 남아 있었지.”
“…….”
그가 입을 열자마자 목소리를 듣기 위해 순식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성격이나 기질을 짐작할 수 없는, 아무런 감정조차 담기지 않은 음색.
하지만 에단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는 아무런 확성장치도 없이, 군단 전역에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구태여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자신의 의지를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초월성.
화려한 단상의 난간을 짚고 느릿하게 걸어 내려오며 에단이 중얼거렸다.
“할 수 있는 일은 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눈에 밟히는 미련이 있다.”
휘오오오!!!
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해 스크린을 주시하고 있었다.
에단은 쏟아지는 시선을 뒤로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지평선 끝까지 도열한 군단을 내려다보았다.
“끝내지 못한 과업에 마침표를 찍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뤄서는 안 되겠지.”
조용히 시선을 들어 올린 에단이 눈을 감았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내가 다시 군단을 지휘하겠다.”
와아아아아아아!!!!!
에단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폭발적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포신을 추켜올린 전차들이 포탄을 쏘아 올리고, 하늘에서 전투기들이 비행하며 소닉붐을 터트렸다.
2사령본부 위에 떠오른 요새, 프리모 얼럿이 느릿하게 회전하면서 짙은 그림자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상기된 얼굴로 소리 지르는 군인들. 부대의 선두에 서 있던 지휘관들조차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데드라이즈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만든 장본인.
발칸의 민간군사기업을 대륙 전역을 호령하는 군벌로 키워낸 원수의 복귀.
중앙전선에 찾아올 변화와 격동, 군단이 얻을 영예를 모두가 직감하고 있었다.
차르르륵!!
에단이 걸음을 옮기는 것과 동시에 좌우로 도열해 있던 군단장들이 일제히 뒤를 따른다.
낡은 군복을 입은 에단의 뒤에 선 7군단장, 데이머스가 들고 있던 코트를 원수의 어깨에 둘렀다.
“원수님. 복귀를 축하드립니다.”
옆에 서 있던 4군단장, 미르바가 에단의 옆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언제나 그녀의 입에 물려 있던 연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열병식과 함께 간단한 회의가 예정되어 있습니다만, 원수께서 예정보다 빨리 도착하시어 조금 여유가 있습니다.”
“네오소토 중장.”
“회의가 시작되기에 앞서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자신을 부르는 원수의 말에 미르바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사령본부에 초빙된 손님들에게는 저희들이 양해를 구하도록 하겠습니다.”
“…….”
에단이 그 말에 힐끗 시선을 돌려, 표정 없는 얼굴로 미르바를 바라보았다.
물끄러미 그녀의 흉터 진 얼굴을 바라보던 에단이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귀관이 4군단을 이끌고 요르타에서 한 일에 대해 들었다.”
표정이 없는 얼굴처럼, 그 음색마저도 속삭이는 것처럼 조용하고 희미하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은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도 여전히 선명하게 잘 들렸다.
“뛰어난 지휘관의 조언이라면 들을 가치가 있겠지.”
“……감사합니다.”
사람들의 앞에서 대놓고 미르바의 전공을 치하하는 원수의 말에, 다른 군단장들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에단은 그대로 소리 없이 그녀를 지나쳐 걸음을 돌렸다.
몸을 돌리는 것과 동시에 단상 근처에 모여 있던 인파가 갈라지며 길을 터주었다.
연맹과 교단, 도시국가를 비롯한 다양한 조직과 세력에서 찾아온 사절들.
하지만 에단은 그들에게 한번 시선을 주지도 않고 그대로 지나쳐 모습을 감추었다.
열병식에 찾아온 이들의 면면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는 초연한 태도.
하지만 이 자리에 모여 있는 그 누구도 그런 에단의 반응에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각자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에단의 모습을 관찰하고 주시하기 바빴을 뿐.
에단은 그런 시선이 익숙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그들을 지나쳐 사라졌다.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군단을 열광케 했던 원수가 떠난 뒤에야, 모여 있던 사람들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에단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으니, 지금 당장 큰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는 것이겠지.
“사령관님.”
레녹의 옆에 조심스럽게 서 있던 5군단의 부지휘관, 에넬이 고개를 숙였다.
“열병식 시작과 함께 군단장들이 집결하는 사령본부 회의장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
“지휘부에서 미리 사령관님의 자리를 마련해두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부디 이쪽으로…….”
6군단장 아티야 중장이 말했던 군단장들의 집결지가 그곳이었던 건가.
에단의 복귀와 함께 사령부가 소란스러워진 지금, 군단 관계자가 옆에서 도와주는 건 나쁘지 않은 일.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레녹이 곧바로 에넬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돌렸다.
걸음을 옮기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시선이 날아와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천번…… 정말 열병식에 와 있었군.”
“사도살해자가 군단에 새롭게 합류하는 건가?”
“저만한 대마법사가 군단장의 자리를 받아들이다니. 무슨 거래가 있었기에…….”
술주와 추기경, 혹은 드루이드나 기사단을 비롯해 중앙에서 이름을 날리는 강대한 초인들.
내색하지 않았을 뿐, 그들 역시 진작부터 레녹을 알아보고 있었던 것이겠지.
“열병식에 도착하자마자 8군단의 준장을 불태워 죽여버렸다고 하던데. 여전히 과격하기 그지없군.”
“등대지기를 욕하다가 머리가 날아갔다고 합니다. 현장에서 즉사했다고 하더군요.”
“청의 눈을 탈퇴한 뒤에도 사명을 지키고 있는 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야…….”
“술사답지 않은 성품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그 때문에 중앙에서 더 높은 예우를 받고 있는 인재이기도 하니까요.”
연맹의 술주를 쓰러뜨린 마법사. 교단의 사도를 토벌한 살해자. 견뢰에게 패배하고도 살아남은 주시자.
데드라이즈의 새로운 군단장 내정자 자격으로 열병식에 참석한 초월자.
누군가는 살의 어린 시선을, 누군가는 호기심을, 누군가는 관찰하고 분석하며 비교하는.
레녹이 그 헤아릴 수 없는 의념과 감정의 편린들을 흘려보내고 걸음을 옮긴 순간.
무수한 인파 저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에반.”
“…….”
목소리를 들은 레녹이 무심코 자리에 멈춰 섰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큰 키의 여성이 무표정한 얼굴로 레녹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허름한 로브. 뺨에 새긴 문신과 입에 물고 있는 곰방대.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방대한 주력.
예나 지금이나 그녀의 모습은 레녹이 기억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건 그녀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긴 시간 동안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해 왔기 때문이겠지.
수백 년을 살아오며 천견의 유지를 이어받은 청의 눈 주시자. 등대지기의 최측근 주술사.
그리샤의 얼굴을 본 레녹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따르던 유프리아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레녹과 그리샤가 서로를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레녹을 주시하던 시선이 더욱 강해졌다.
“…….”
“…….”
청의 눈을 탈퇴한 레녹과, 등대지기를 가장 가까이서 보필하는 주술사의 재회.
중앙전선 각지에서 막대한 전공을 세운 두 술사가 서로를 향해 무슨 감정을 드러낼지, 이 자리의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었다.
천번이 청의 눈을 탈퇴한 것 자체가 예상치 못한 이변이었던 만큼,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간에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것도 사실.
그 와중에 레녹이 열병식에 새로운 군단장 후보자격으로 참석했으니, 청의 눈 측에서 격한 반응을 드러낸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닐 터.
하지만 그리샤는 레녹을 마주하고도 특별한 감상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다만 레녹을 보며 기억을 회상하듯 희미하게 고개를 기울였을 뿐.
자연스럽게 그리샤의 뒤에 서 있는 주시자들과 레녹의 시선이 교차했다.
“……에반 님.”
“오랜만이다, 야.”
그리샤의 뒤에 서 있던 선명과 쌍둥이 주시자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레녹과 청의 눈의 관계. 주변의 시선과 열병식이라는 이질적인 환경.
작게나마 인사를 건네는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인 레녹이 그리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등대지기를 대신해 이곳에 와 있었나.”
“라피스는 [바깥]을 보고 있어.”
그리샤가 대답했다. 마치 레녹이 무엇을 궁금해할지 알고 있는 것처럼.
“계승을 마친 뒤론 천견의 사명을 이어받는 일에 집중하고 있지. 지금쯤이면 등대에 있을 거야.”
“…….”
외해를 관측하여 멸망을 유예하는 등대지기의 사명.
천견의 공능을 완전히 물려받은 뒤, 라피스 역시 본격적으로 사명을 수행하기 시작한 것인가.
하지만 레녹은 그에 대한 감상을 표하지 않고 반문했다.
“열병식에는 원수를 만나러 왔나?”
“라이자가 아티야 중장과 같은 무문(武門) 소속이거든.”
그리샤가 어깨 뒤를 가리켰다.
뒤에 서 있던 근육질의 여성 권사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에서 편의를 봐준 덕분에 잠깐 시간을 내서 들렀지. 네가 와 있을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
“…….”
라이자와 아티야 두 사람의 인상이 묘하게 비슷하다 싶었더니, 애초에 같은 무문 출신이었나.
그 뒤에는 레녹이 모르는 다른 주시자들도 여럿 있었지만, 그리샤는 그들을 일일이 소개할 생각은 없어보였다.
낡은 로브에 손을 꽂아넣은 채, 평탄한 목소리로 레녹에게 재차 말을 걸었을 뿐.
“오랜만이다. 발칸에서 본 뒤로는 사실상 처음이지?”
“…….”
“그때 네가 견뢰랑 한판 붙으면서 동대륙이 얼마나 떠들썩했는지. 그때는 정말 자치령과 발칸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는 줄 알았다.”
견뢰와 천번이 발칸 외곽구역에서 격돌했던 결전.
당시의 일을 스스럼없이 꺼내드는 그리샤의 말에, 순식간에 사방의 목소리가 조용해진다.
조용히 대화를 엿듣던 이들조차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 만큼, 그리샤가 꺼낸 화제에 그들 역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저번에 만났을때는 상황이 너무 바빠 인사를 전하지 못했었지.”
그리샤는 레녹의 말에도 신경쓰지 않고 곰방대를 문 채 평탄하게 말했다.
“그때 라피스를 구해줘서 고맙다. 그 상황에서 그녀를 도와줄 수 있던 건 너뿐이었을 거야.”
“……할 말은 그게 전부인가?”
“생각해 보면 너는 처음 만났을때부터 항상 그랬었지.”
레녹의 반문을 흘려보낸 그리샤가 시선을 들어올렸다.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것 뿐이라고 말했지만, 넌 언제나 네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하고 있었어.”
“…….”
“그러니 난 네가 어째서 청의 눈을 떠났는지 물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네가 결정하고 라피스가 받아들였다면,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그리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네가 라피스에게 언제나 그대로와 같은 사람이었다면, 그 아이의 곁을 떠난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녀의 뒤를 따라 뒤에 도열해 있던 주시자들이 함께 인파 사이를 가로질러 움직였다.
미련없이 레녹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고개를 기울인 그리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청의 눈 역시 마땅히 네게 그렇게 해야겠지.”
* * *
군단의 휘장이 벽면에 줄지어 걸려있는 거대한 회의실.
모니터와 스크린에서는 중앙전선에서 움직이고 있는 세력판도가 표시되고, 부대편성과 전력분석 자료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스피커와 무전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들려오는 군단 지휘관들의 상황보고.
휘하 전력을 통솔해 이동과 주둔을 반복하는 군단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자리.
회의실의 가장 상석에 위치한 의자에 에단 바쥬르가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쿠구구구!!!!
원수가 앉은 회의실의 정 중앙에 위치한 상석을 중심으로 좌우에 나란히 앉은 군단장들.
군단장들의 뒤에는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는 부관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시간을 기다린다.
레녹을 안내한 에넬 역시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두 사람을 자리로 안내했다.
군단장들이 줄지어 앉아있는 테이블의 비어 있는 자리.
레녹과 유프리아가 배정받은 자리에 앉는 것과 동시에 데이머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7군단 중장 데이머스 레이언.”
한 손에는 지휘봉을 든 채 회의실의 프로젝터 스크린 앞에 선 그가 시선을 돌렸다.
“지금부터 발칸 복귀를 위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견뢰 토벌전에 대해 브리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