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221
약먹는 천재마법사 1221화(1221/1243)
약먹는 천재마법사 1221화
견뢰 토벌전(12)
황금빛의 구체를 타고 검푸른 벼락이 폭발하듯 솟구쳐 회전한다.
아무런 매개체조차 없이 완성된 뇌광이 지상에 눈길을 던진 순간,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지축이 박살나 무너졌다.
콰과과과과광!!!!
벼락의 기둥이 내리 찍힐 때마다 눈부신 번개의 파문이 지면을 둥글게 휩쓸고 엄청난 속도로 퍼져 나간다.
그때마다 지상에서 버티고 있던 전차와 자주포들이 녹아내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증발해 소멸했다.
[편뢰(翩雷)]본래는 근거리에서 관통을 위해 사용하는 벼락 파편을, 미친 것처럼 아무렇게나 연달아 영창한다.
전격마법의 목적이나 설계를 정면에서 위반하는,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는듯한 우악스러운 영창.
하지만 그것만으로 지상에는 무한한 벼락이 범람하며 군단을 학살하고 지옥도가 펼쳐졌다.
[#^$@@-!!!!!!] [■퇴!!!! ■■■■ 제발!!! 끄아■■■-!!] [아- 아- 아아-악!!!!!!] [……망쳐라!!! 최대한 뒤-!!!!!]해일처럼 범람하는 벼락의 파도 속에서는 통신조차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드문드문 끊겨 울리는 비명과 절규만이 발칸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증명할 뿐.
지평선 끝까지 내려앉은 검푸른 죽음의 장막 아래서, 모든 것이 뇌광에 불타 저물어간다.
하늘의 황혼을 대신해 펼쳐진 벼락의 잔향만이 종말을 암시하듯 세계를 비스듬히 비추었다.
군단 지휘부가 사용하는 통신망은 패닉에 빠져 있었다.
[이게,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이건 소모전이 아니야!!! 이런 학살 따위는 상정한 적이 없-!!!] [엔지니움 포트리스의 기능 60% 저하. 재정비, 필요…….] [염위신전의 출력이 절반 가까이 추락했네. 7군단장, 이대로는…….] [신을 믿지 못하고 죽음에 도달한 불신자들에게 기도하겠습니다.]“이럴 수가…….”
창백한 안색으로 사태를 지켜보던 데이머스가, 떨리는 손으로 눈가를 짚었다.
“이건, 안 돼…… 단기전에서 이 정도 소모는 감당할 수가…….”
토벌전을 설계할 당시부터 견뢰라는 마법사를 얕보거나 쉽게 여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니, 오히려 견뢰라는 마법사를 극히 위험하게 평가했기에 토벌전을 계획한 것이었으니.
그가 무수한 초월자들을 직접 죽인 살해자라는 것도, 그 과정에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승리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전쟁이 쉽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많은 전력과 세력을 끌어모아 발칸에 돌아온 것이 아니었나.
[데이머스 중장!!! 듣고 있는가, 지금 당장 전선을 뒤로 물려야 하네!!] [군단장님. 살아남은 주력부대의 군인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토벌전에 참가한 세력의 지휘관들이 다른 생각을 품기 전에 움직여야 합니다.]“…….”
치직, 치지직……!!!!
견뢰에게 소모전을 유도하는 시점에서 그에 대항하는 아군의 전력 역시 소모되는 것은 필연.
당연히 각 세력의 초인들 역시 어느 정도 손해를 각오하고 토벌전에 참전했음은 당연한 일이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시작부터 군단 주력부대의 절반이 학살당하는 것을 예상했던 이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필연적이라고 여겼던 아군 전력의 소모. 속도와 규모가 생각보다 너무나 빠르고 비대했기에 동요하고 있던 것.
“……전 군단 예하부대. 지금부터 전선을 개편하고 부대를 재편성한다.”
철컥!!
거기까지 판단을 마친 데이머스가 곧바로 통신망을 켜고 입을 열었다.
“견뢰 본인이 직접 나선 시점에서 전선을 넓게 유지할 이유가 없어진 상황. 지금부터는 전력을 압축하여 최대한 포화망을 촘촘하게 구성하겠다.”
[명령을 받듭니다!]오퍼레이션 시스테의 지휘체계를 이용해, 살아남은 전력을 파악하고 실시간으로 부대를 재배치.
외곽구역 저편에서 날뛰는 견뢰에게 최대한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전선을 움직이며 명령을 수정한다.
“방금 같은 마법이 한 번 더 떨어진다면 아무리 산개해도 견뢰의 술식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어…….”
시스템 화면을 바라보는 데이머스의 표정이 침중하게 변했다.
“그럴 바에는 전장의 밀도를 높여 아군의 화력을 집중시키고 조금이라도 피해를 낮춰보겠다.”
실제로 방금 벌어진 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대부분 각 세력의 전쟁병기 인근에 집결해 있던 이들이었다.
수백 미터 크기의 전략급 출력을 지닌 전쟁병기들이 상당 부분 성능과 기능 손실을 감수하는 대가로 산하 전력을 일부 보존할 수 있었던 것.
그럼에도 위계가 높지 않은 초인들의 경우 즉사하거나, 이미 숨이 끊어질 정도의 중상을 입고 사방에서 고통과 함께 죽어나가고 있었다.
[데이머스 중장님. 현시점에서 아군 측에게 승산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아직 통신을 유지하고 있던 지휘부의 참모들이 침착하게 분석에 나섰다.
방금 지평선 끝까지 퍼져나간 벼락의 광채를 마주하고도, 어떻게든 그 원리와 한계를 파악하려 노력하는 시도.
[방금 견뢰가 사용한 편뢰(翩雷)는, 전격계열 마법체계 내에서도 비교적 저위계에 해당하는 영거리 포격마법.] [대규모 전투 개시를 앞둔 이 시점에 영창하기엔 목적과 용도가 부적절한 술식‘이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고위계 마법이 사용하지 않고, 굳이 저위계의 마법을 인위적으로 부풀리고 폭주시켜 쏘아냈다…….”
하늘 위에서 우아하게 회전하는 황금의 구체를 바라보며 데이머스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굳이 그렇게 하여 대규모 전략급 술식을 발동한 견뢰의 행동에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술식출력을 과도할 정도로 부풀린 대신, 고위계의 복잡한 의념이나 술식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참모들이 답했다.
[이는 견뢰 본인이 자신의 권역을 사용해, 토벌전을 앞두고 무리하게 승천자가 되려 한 결과물이 아닐지…….] [그렇다면 이 시점에 견뢰가 어째서 저런 식으로 망가져 날뛰고 있는지 역시 설명할 수 있습니다.]“처음 시작은 즉사기…… 두 번째는 광역기…… 같은 패턴을 두 번 사용하지 않는다……?”
[아직 나서지 않은 군단의 고위 장성들을 움직여, 이 부분을 공략한다면-]“아니. 그런 보장은 이 전장에서 어디에도 없다.”
퍼뜩 정신을 차린 데이머스가 참모의 말을 끊고 통신망을 연결했다.
“전 군단. 지금 즉시 전선을 뒤로 물리고 후퇴!! 반복한다. 지금 당장 전 병력을 뒤로 물리-”
[편뢰(翩雷)][편뢰(翩雷)][편뢰(翩雷)] [편뢰(翩雷)][편뢰(翩雷)][편뢰(翩雷)] [편뢰(翩雷)][편뢰(翩雷)][편뢰(翩雷)]번쩍!! 번쩍!!
두두두두두두!!!!
폭주하는 뇌전을 뭉쳐, 검푸른 벼락의 구체를 허공에 띄워 올린다.
회전하는 황금빛의 마탑을 중심으로 삼아, 마치 위성처럼 탑의 주변을 공전하는 벼락의 압축체들.
그때마다 지상에 검푸른 낙뢰가 떨어지며, 외곽구역의 시가지를 짓밟고 하늘을 휩쓸어 비행체들을 모조리 떨어뜨렸다.
쾅! 콰콰쾅!!!
중심을 잃고 추락한 전투기가 마탑 표면에 충돌하지도 못하고 폭발해 사라진다.
콕핏에 타고 있던 파일럿이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그 육신이 증발해 공기 속에 흩어졌다.
“흠.”
쉴 새 없이 흔들리는 7군단의 기동요새 선체 갑판.
팔짱을 낀 채 사방에서 벌어지는 학살을 지켜보던 에르몽이 웃는 얼굴로 걸음을 돌렸다.
“자~ 저는 그럼 이만.”
미꾸라지처럼 자연스럽게 갑판 아래로 빠져나가려던 에르몽의 목덜미를, 사린이 덥석 움켜쥐었다.
에르몽보다 훨씬 큰 키로 그를 내려다본 흡혈귀가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흑마법사 님. 어딜 가려는 거예요?”
“그걸 정말 몰라서 묻습니까, 모기님?”
에르몽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여기 있으면 다 죽는다구요. 난 그리고 저 미친 괴물에게 죽고 싶지는 않단 말입니다.”
“어머, 어머. 말대꾸하는 것 좀 봐.”
“끼에에엑!! 다 저리 꺼져!! 저번처럼 목숨 구걸도 안 통할 것 같은데,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조금이라도 더 살 거 아닙니까!”
사린의 손에 목덜미가 잡힌 뒤에야 본색을 드러내며 발버둥 치는 에르몽의 모습.
장신의 흡혈귀가 마치 말 안 듣는 애완동물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에르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에르몽. 호들갑은 적당히 하지.”
하지만 박사는 그런 에르몽의 괴성을 들으면서도 느긋하게 말했다.
“이번 토벌전에 모인 멤버들은 모두 자기 목숨 하나쯤은 챙길 수 있는 능력자들이지. 자네와 체비엔, 하이레아도 진짜 ‘본체’로 여기 온 것은 아니잖나?”
“박사. 뭔 헛소리를 하는 겁니까? 아까 그 타운센드인지 샌드위치인지 뭔가가 번개 한방에 뒤져 버리는 거 못 봤어요?”
에르몽이 사린에게 목덜미가 잡힌채로 버둥거렸다.
“의식전이 술식을 사용해도 죽을 수 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랍니까. 기껏 손에 넣은 새로운 인생, 난 구질구질하게 끝까지 즐기다 갈 거라구요!!”
“…….”
의식전이 술식을 사용해 육체를 빼앗는 에르몽. 본체 대신 인형을 내세운 체비엔. 인간의 그릇을 골라 수육한 박사와, 양면성의 재능을 지닌 하이레아.
기존의 멤버 네명 모두 육체와 의식을 분리해 두었거나, 혹은 그러한 재능이나 소질을 타고난 멤버들이다.
하이레아가 현장에 있을 때부터 위화감을 느끼긴 했지만, 토벌전에 앞서 죽음을 대비하기 위한 보험을 마련해둔 것일까.
박사가 어깨를 으쓱이며 시선을 돌렸다.
“그런 점에서 다른 사람들은 지금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지?”
에르몽의 목덜미를 놓은 사린이 어깨를 으쓱이고, 철쇄용왕은 무시했다.
에제키엘이 천으로 가린 얼굴을 들어, 하늘 위에서 번져나가는 검푸른 뇌광을 올려다보았을 뿐.
박사의 말을 듣고도 한참이나 견뢰의 벼락을 바라보던 에제키엘이 중얼거렸다.
“아름답군.”
“…….”
역시, 이쪽도 여러모로 보아 제정신은 아니었다.
하지만 에제키엘은 자신을 황당한 듯 바라보는 멤버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몸을 돌렸다.
“오늘 오래전의 인연을 만나러 온 것은 올바른 결정이었다.”
에제키엘이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움직여라.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견뢰를 만나러 가자.”
“그의 말에는 어느 정도 동감이 가는군.”
에제키엘과는 반대편 갑판에 팔짱을 끼고 앉아 있던 철쇄용왕이 말했다.
“너희 인간종이 견뢰를 상대하기 위해 움직인다면 본룡 역시 협조하려 한다.”
“군단 주력부대의 절반이 학살당한 시점에서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게 됐지.”
하이레아가 창백한 안색으로 말했다.
“일단 견뢰의 힘에 대해서는 오늘 이후로 완전히 평가를 달리 할 수밖에 없겠어. 설마 인간의 몸으로 이 정도 경지에 도달했다니…….”
“…….”
“강대한 초월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건…… 어떻게 전격마법을 익힌 마법사가 혼자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거지?”
전격마법은 순수술식계 속성마법 중에서도 순간출력으로는 최상위에 속한 화력마법.
속도와 위력 양쪽으로 사실상 한계가 없으나, 그렇기에 마력소모가 극심하고 연비가 나쁜 편이다.
순간적으로 위력을 끌어올려 터트리는 부분에서는 모든 술식을 통틀어 최상급에 속하지만, 그렇기에 반대로 지속화력 측면에선 특출나지 못했으니.
그리고 지금처럼 대규모 군단이 충돌하는 전쟁에서는 순간화력보다 지속화력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임은 자명했다.
물론 견뢰 본인이 초월적인 대마법사인 만큼 그런 문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거라 상정하긴 했지만, 설마 혼자서 군단의 절반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수준이었을 줄은.
하이레아는 애초에 견뢰의 전력을 파악하고 상정한다는 부분에서 전제부터 틀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이 전쟁을 통해 괴물 같은 초월자가 인세에 탄생했음은 부정할 수 없겠군…….”
체비엔의 인형이 턱을 덜그럭거렸다.
“박사,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이대로 토벌전을 강행해 군단이 원하는 변수가 되어줄 테냐……?”
“그 전에 일단 견뢰가 어떠한 존재가 되었는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군.”
손목시계를 내려다본 박사가 말했다.
“시간이 많지 않지만, 필요한 설명이니 속행하겠다. 지금 견뢰가 터트리는 마법이 잘 보이나?”
“뭐냐니…… 지금 미친놈처럼 난사하고 있는 벼락을 말하는 겁니까?”
에르몽이 황당한 표정으로 거세게 회전하는 황금의 구체를 바라보며 물었다.
검푸른 성운을 압축해 터트리며 날개처럼 회전시켜, 외곽구역의 전장 위를 날아다니며 생존자들을 학살하는 마탑의 형상.
바라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장엄하고 우아하며, 또 섬뜩하게 느껴지는 죽음의 천사와 같다.
“하늘을 봐요. 지금 번개를 터트려서 부스터처럼 사용해 날아다니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박사가 말했다.
“하지만 지금 견뢰가 사용하는 벼락은, 처음 휘둘러 군단의 절반을 학살한 편뢰와 같은 마법이다.”
“예?”
“만약 군단 절반을 학살했던 출력의 편뢰를 저리 난사했다면, 지금쯤 우리 모두 진작 불귀의 객이 되었겠지.”
박사가 느긋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견뢰는 처음에 비해 비교적 출력이 약한 편뢰를 난사해 전장을 박살 내고 있다. 어째서일까?”
“사용하는 술식 출력에 기복이 있는 거군요.”
사린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저 정도면 고점과 저점의 편차가 굉장히 큰 수준인데…… 원래 견뢰가 사용하는 마법이 저랬나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예전에 만난 견뢰는 완전히 기계 같았다구요.”
에르몽이 칼같이 고개를 저었다.
“술식출력에 기복이라는 게 없는 데다 조작도 완벽했죠. 무엇보다 수싸움과 심리전에 통달해서 대응이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
“아나테마의 신전에서 상대했을 때는 그 마이야도 고전했을 정도였는데 왜 저렇게 됐는지…… 어디서 뭐 이상한 열매라도 잘못 주워 먹은 거 아닐까요?”
“이쯤 되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다들 이해했을 거다.”
자기도 모르게 정답을 짚은 에르몽의 말을 모두가 무시하는 사이 박사가 말했다.
“지금 견뢰는 특유의 완벽한 술식조작조차 해내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 있다. 그 때문에 같은 마법을 사용해도 저렇게 기복을 보이고 있는 거지.”
“…….”
“그건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견뢰의 정신상태가 불안정하다 못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 말은…….”
“여기서부터는 추측에 가까우니 적당히 흘려듣도록.”
할 말을 잃은 멤버들을 두고 박사가 시선을 들어 올렸다.
“나는 견뢰가 자신의 마탑과 융합하는 것을 대가로 술식출력을 끌어올린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존재를 본인의 권역과 한없이 가깝게 융화시킨 것이겠지.”
“…….”
“견뢰 본인이 지성체로 존재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걸 기아스로 삼아 권역과 융합했다면 이 상황을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견뢰가 마탑에서 직접 나오지 않고 저만한 출력의 술식을 휘두르는 것도, 견뢰의 동료라는 이들이 지금껏 나서지 않은 것도 그러하지.”
“확실히…… 설득력 있는 추측이로군.”
“혼자 날뛰어야 해서 필연적으로 동료들을 배제할 수밖에 없다는 말인 건가요.”
“인간의 본질이라는 건 언제나 말이 아니라 행동에 기반하기 마련이니.”
그렇게 말한 박사가, 그대로 시선을 돌려 레녹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빅터?”
“……글쎄.”
흑요석 가면을 고쳐 쓰며 시선을 들어 올린 레녹이 차갑게 웃었다.
“하지만 기분 나쁠 정도로 날카로운 추측이로군.”
에단의 피를 마시고 진와의 열매를 복용한 채, 9레벨의 벼락을 쥐고 폭주하는 화신체.
그런 화신체의 힘을 있는 철저하게 광역포화 형태로 휘둘러 사출하는 황금의 마탑.
박사는 토벌전의 상황을 놀라울 정도로 예리한 안목으로 관찰하고, 한없이 진실에 가까운 추측을 내놓았다.
레녹이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른 것은 물론이고, 예상했던 것보다도 날카롭고 예리하기 그지없는 결론.
승천문 계획의 설계자다운 지성과 판단. 근거에 의존하지 않고도 본질을 짚어내는 과감한 직관까지.
역시, 이런 자리에서 같이 동행하기에는 지나치게 위험한 상대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번 토벌전에서 함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빅터, 그러고 보니 당신의 건틀렛은 견뢰를 상대로 훔친 물건이잖아요.”
에르몽이 무언가 생각난 것처럼 박수를 치며 시선을 돌렸다.
“사실상 여기서 견뢰와 붙어보고도 패배하지 않은 유일한 술사인 셈인데, 뭔가 괜찮은 방법 없습니까?”
“…….”
그 말을 듣자마자 다른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레녹을 향했다.
토벌전이 시작한 이래 지금껏 어떠한 의견도 내지 않은 조작술사가, 생각 이상으로 강대한 초월자임을 새로운 멤버들도 인지했기 때문이겠지.
특히 견뢰를 직접 알고 있는 철쇄용왕은 처음으로 레녹을 향해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상한 착각을 하고 있군. 나는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이번 토벌전에 합류한거다.”
레녹이 냉소했다.
“내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이미 진작 설명했던 것 같은데.”
9레벨에 올라선 벼락을 손에 넣기 위해선, 그 힘을 완전히 한번 소모시켜 깎아내야 하는 상황.
하지만 레녹은 그 작업을 자신이 직접 하는 대신, 토벌전에 참여한 군단과 여러 세력의 힘을 빌려 처리할 생각이었다.
빅터의 신분으로 여기 참석한 시점에서, 레녹 역시 폭주하는 화신체를 공략하는 입장으로 여기 서 있는 것은 마찬가지.
레녹이 그동안 쌓아올린 견뢰의 힘을, 레녹 자신이 공략하기 위해 움직이는 셈이다.
그렇기에-
박사가 목을 주물렀다.
“결론이 나왔다면 방향성을 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마 군단 지휘부 역시 같은 생각이겠지.”
“같은 생각이라고?”
“나는 견뢰가 이번 토벌전을 기점으로 완벽하게 미쳐버린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역시-”
[미쳐 버린 견뢰를 그의 권역과 분리시켜 상대할 수 밖에 없겠지.]파앗!!
박사의 옆에서 통신망이 열리며, 데이머스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면 너머 사망 로그가 올라가는 시스템을 띄워올린 채, 견뢰의 마탑을 올려다보는 창백한 얼굴.
[박사의 말이 맞다. 이번 토벌전은 견뢰의 공략이 곧 승리로 이어지는 전쟁. 반드시 견뢰의 위상을 재기 불가능한 수준으로 꺾어두어야만 하지.]“……견뢰를 권역과 분리시켜 상대한다구요.”
에르몽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벼락의 폭풍을 뚫고 말입니까?”
번쩍!
쿠구구구구……!!!!!
아음속의 속도로 사출된 미사일이 폭발조차 허락받지 못하고 뇌광에 휩쓸려 증발했다.
구름이 낀 하늘을 뚫고 내리치는 벼락이, 시공간에 무수한 성질변화를 강제하며 현상을 개변하고.
군단의 본대가 영창해 둔 전략마법과 술식을 망가뜨리면서 기괴한 파열음을 터트렸다.
쩌저적!!
끼기기기기!!!
하늘에 펼쳐진 수천미터 크기의 술법진과 축복이, 황금빛 구체를 중심으로 왜곡되어 붕괴한다.
마치 구체의 중력에 강제로 이끌려 공간이 일그러지고 휘어지는 것처럼, 주변의 풍경이 기괴하게 왜곡되며 부서져 내렸다.
쏟아지는 술식과 포화를 휘둘러 지워버리면서, 반대로 외곽구역에 진입하는 군단의 전력을 학살하는 압도적인 경관.
일방적이다 못해 잔인하게마저 느껴지는 낙뢰의 비 속에서 황금빛의 태양이 우아하게 회전한다.
자신이 영창해 쏘아내는 우악스러운 편뢰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고고하게 그 자태를 뽐내는 형상.
저 마탑이 얼마나 위험한 힘이자 존재인지는 이제 모두가 이해하고 있었다.
[이 토벌전에서 판데모니엄의 힘을 필요로 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하지만 데이머스는 에르몽의 반문에도 차분하게 답했다.
[복마전이 이같은 특수한 상황에 특화되어 있는 특기전력이기 때문이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 않나?]“데이머스.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전 저런 식으로 자살해 본 적이 한번도 없는데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빅터 너라면 알고 있겠지.]통신망 너머에서 데이머스가 시선을 돌렸다.
[편람의 우물에서 제정신이 아닌 승천자를 상대했던 당시 상황이, 지금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제서야 데이머스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한 멤버들이 시선을 돌렸다.
[계획대로 견뢰에게 소모전을 강제하는 것은 실패했으나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견뢰가 저리 미쳐 있을지는 몰랐으나, 군단 지휘부에서 상정해 둔 몇가지 대안이 있어.]“…….”
[아직 대장들이 나서지 않았고, 견뢰의 포격에서 살아남은 고위 장성들도 남아 있다. 각 세력의 전쟁병기 역시 성능이 크게 저하되었으나 완전히 기능을 잃은 것은 아니지.]데이머스의 차분한 말과 동시에, 시스템 화면에 몇가지 작전 보고서와 교전 기록이 떠올랐다.
[우물 작전에 참가했던 교단 측과 거래하여 당시 교전기록을 받아왔다. 해당 자료를 기준으로 견뢰를 공략할 작전을 새롭게 구성하고 전선의 움직임을 대폭 수정한다.] [살아남은 주력부대가 화력을 보충하고, 고위계 초인들을 움직여 마탑을 공략한다. 군단의 전쟁병기들이 앞장서 시선을 끌고 견뢰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거리를 좁힐 것이다.]쿠우웅!!!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림자에 휘감긴 거대한 공중요새가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토벌전이 시작된 이래 자리를 지키고 있던 군단 3사령부, 프리모 얼럿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자리잡고 있던 본대가 전진.
발칸 바깥을 에워싸고 있던 전선 전체가 다 함께 앞으로 움직이면서 전장을 좁히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토벌전의 주축을 이루는 본대가 움직이면서 본격적으로 전선을 압축하고, 화력을 집중하기 위한 조치겠지.
실제로 하늘에 떠오른 거대한 공중요새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비대하게 부풀어오르며 전장을 통째로 휘감기 시작했다.
군단 3사령부이자, 구세계의 공중전함인 프리모 얼럿이 본격적으로 엔진을 회전시키며 스스로의 능력을 발휘하려 하는 전조.
하지만, 레녹은 데이머스의 브리핑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군. 하지만…….’
견뢰의 포격에서 살아남은 주력부대는 대부분이 각 세력의 전쟁병기 근처에 주둔해있던 부대들.
그렇기에 전쟁병기를 앞세워 견뢰의 시선을 끌고, 고위계 초인들 위주로 방향성을 바꾸려는 데이머스의 대응은 나쁘지 않다.
우물에서 편람을 상대한 관계자도 아니면서, 당시 교전기록을 참고해 판데모니엄을 변수로써 사용하려 한 발상은 레녹도 인상 깊게 느껴졌을 정도.
하지만, 현재 레녹의 마탑과 융합한 화신체가 이러한 전조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까.
완벽하게 지성을 잃고 미쳐있다고 해도, 엄연히 레녹의 전격마법을 투영하는 화신체.
마법사로서의 직감이나 전투센스의 부분에서는 레녹과 버금갈 정도로 뛰어난 초월자다.
그렇다면-
“……잠깐만.”
순간, 하늘을 올려다본 에르몽의 표정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저거, 모습이 조금 변한 것 같지 않습니까……?”
“뭐?”
키이이이이잉!!!!!
검푸른 성운에 휘감긴 채 번뜩이던 황금빛 구체의 형태가, 이전에 비해 조금 일그러져 있다.
마치 제 자리에서 흐릿하게 공명하며, 구체를 이루는 황금빛의 광채를 흩뿌리는 듯한 기묘한 형상.
다른 멤버들이 그 모습을 보고 표정을 살짝 찌푸렸다.
“뭐지……? 갑자기 스스로 분해되는데.”
“무게를 덜어내려는 건가? 처음 공격을 위해 억지로 중량을 유지하고 있던 거라면…….”
“그게 아니다. 처음부터 마탑을 구성하던 부품 전체가 모조리…….”
그 순간, 말을 뚝 멈춘 박사의 두 눈이 처음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뜨여졌다.
“이럴수가. 저 술식은……!!”
그것은 레녹이 아주 오래전 기계도시 마키나에서 손에 넣은 가능성 중 하나였다.
두 번째 세계를 구하기 위한 위대한 여정. 그 끝에서 마주했던 실패와 좌절.
자신이 아니라 신살자의 답이 옳다고 믿어버린 승천자의 미련이 이곳에 있다.
전쟁대리인이라 불리며 창조와 파괴를 반복하며 답을 찾아왔던 초월자의 유지.
세 번째 세계에 자신의 대답만을 승천시킨 위대한 실패자의 가능성.
마지막까지 구원을 믿으며, 레녹에게 그 의지만을 남기고 떠난.
그리고 이제서야 비로소 다룰 수 있게 된, 헤르메스 오로크니어의-
질량위계 고유술식
창조개변 물질조형
촤라라라라라라락!!!
황금빛으로 번뜩이는 수십만개의 부품들이 분해되어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 실시간으로 재결합된다.
전장 수백 미터에 달하는 구체의 형상을 변형시켜, 탑의 부품을 허공에서 다시 조립해나가는 장엄한 모습.
거대한 구체 중심부에서 나선형의 드릴이 솟구치며, 가늘고 길쭉한 투사체의 형상으로 화한다.
구체 양쪽으로 수십미터에 달하는 황금빛의 날개가 펼쳐지면서, 그 아래로 검푸른 뇌광이 번뜩였다.
[창조 : 찬 드라카의 용기병단] [형성 : 제 1비행체 성련화(星聯花)]철컥, 철컥!!!
쿠과과과과과!!!!
구체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마탑 전체가 격동하며 전개된 극도로 정교하고 우아한 형상변환.
오직 하늘을 달리기 위한 최적의 형상으로 화한 그 모습이, 군단의 전투기와 비슷하다는 사실을 데이머스가 깨달은 찰나.
장장 수백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황금빛의 비행체가 제 자리에서 사납게 맥동하며 섬뜩한 엔진음을 흩뿌렸다.
그제서야 견뢰의 마탑이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깨달은 각 세력 사이에서 경악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탑의 형상을 변형하여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개조했다……!!!”
“견뢰의 마탑이 지닌 능력은 술식의 증폭만이 아니었던건가?”
“말도 안 돼. 저만한 크기의 질량덩어리를 저렇게 쉽게……!!!!”
“물리법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정말 신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견뢰의 마탑은 군단 3사령부 프리모 얼럿과도 비견되는 수백 미터에 가까운 금속체.
현재 이 전장에서 가장 거대한 크기 중 하나이자, 그 중량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수만 톤에 달한다.
그만한 질량병기를 허공에 띄운 채 수십만 개의 부품을 실시간으로 재조립하여 형태를 변환할 수 있다니.
아무리 마력이 많고 방대한 의념을 지녔다고 해도 그러한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
말 그대로 질량 자체를 직접 조작하여 변형시키는 수준의, 초월술식이 아니고서야-
콰우우우우우웅!!!!!
수십 미터에 이르는 양 편익이 덜덜 떨리면서 전투기의 동체를 그 자리에서 뒤집는다.
아무런 추진제 없이 허공에 떠오른 황금빛의 비행체가 제 자리에서 회전하며 검푸른 뇌광을 터트린 순간.
편뢰(翩雷)의 영창을 중첩해 부스터로 삼은 황금빛 전투기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후욱!!
“……!!!!”
죽음의 장막이 내려앉은 미개발지구의 지평선을 가로질러 사라지는 흑청색의 뇌광.
황금빛으로 물든 섬광이 외곽구역과 위성도시 사이의 평야를 엄청난 속도로 주파하여 가속한다.
군단 본대가 지키고 있는 영공을 아무렇지도 않게 돌파하여, 시공간을 뛰어넘어 3사령부의 앞에 도달.
황금빛의 초대형 전투기가 엄청난 속도로 군단 3사령부를 정면에서 관통했다.
쩌어어어어어엉!!!!!
“안 돼……!!!”
거대한 흑색의 피라미드가, 눈부신 황금빛의 기체에 관통당해 꿰뚫린 모습.
두 눈에 비치는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을 직접 보고 누구 하나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전쟁병기를 앞세워 견뢰를 공략하려던 군단 지휘부의 계획을 시작하기도 전에 깨부수는 광경.
창백하게 경직된 표정으로,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단말마를 토해내며 비명을 터트리기도 전에.
이번 토벌전의 머리를 맡은 3사령부, 프리모 얼럿이 처참하게 무너져 추락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