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223
약먹는 천재마법사 1223화(1223/1243)
약먹는 천재마법사 1223화
견뢰 토벌전(14)
에르몽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기동요새 갑판에서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이 움직였다.
철컥!!
촤자자자작!!!
사방에서 장전을 마치고 일행을 향해 총구를 돌리는 7군단 군인들의 모습.
스코프를 타고 번뜩인 레드도트가 순식간에 갑판 위에 서 있던 멤버들을 향해 쏟아졌다.
7군단 예하 장교들이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험악한 표정으로 에르몽을 향해 다가왔다.
“흑마법사. 아직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 모양이군.”
쿵!!
중령 계급을 단 거한이 거세게 발을 내리찍는 것과 동시에 갑판이 흔들렸다.
끓어오르는 마력을 두르고 에르몽의 앞에 선 중령이 그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현재 판데모니엄은 정식으로 군단 지휘체계에 편입된 특수작전분대 소속이다. 지금 전시명령을 거역하겠다는 말이냐?”
“저는 군단 지휘부의 명령을 따르겠다고는 딱히 약속한 적이 없는데용?”
관자놀이에 겨눠진 총구의 감촉을 느끼면서도 에르몽이 히죽 웃었다.
자운 오디스의 육체를 차지한 뱀 같은 얼굴이 사이한 분위기를 풍겼다.
“애초에, 당신들이 우릴 필요로 한 이유도 그거 아닙니까. 사태가 급박해지면 지금처럼 위험한 곳에 던져두고 변수를 만들기를 바랐겠죠.”
“……네놈!!”
“물론 저도 그걸 모르고 토벌전에 참가한 건 아니고, 딱히 그런 발상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만.”
에르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군단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줄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네놈들은 데이머스 중장의 배려로 이곳에 있는 거다!!! 토벌전에 참가한 다른 세력들처럼 전장에 나서지 않는다면-”
“아, 그러니까.”
후욱!!
에르몽의 모습이 중령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거한의 어깨 위에 올라탄 에르몽이 양손으로 거한의 목을 쭉 잡아당기며 말했다.
“이 전장에서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필요해 우리를 부른 것 아닙니까.”
“끄으윽……!!!”
뚜두둑……!!
에르몽의 손안에 흑마력이 휘감기면서 거한의 목이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순식간에 목을 잡힌 중령이 어떻게든 저항하려 했지만, 물리법칙을 무시한 흑마법이 그 자리에서 발동.
거한의 목이 팽그르르 돌아 회전하며 그 자리에서 뽑혀 나왔다.
촤아악!!!!
머리를 잃어버린 목에서 피분수가 솟구치면서 갑판을 흠뻑 적신다.
얼굴에 묻은 피를 날름거리면서 히죽 웃은 에르몽이 말했다.
“그래서 군단도 예측하지 못하는 쪽으로 움직여드리겠다는데, 뭐 잘못됐나요?”
“쏴라!!!”
7군단의 군인들은 눈앞의 사태를 보고도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참모장교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총구를 겨누고 있던 군인들이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두두두두두두!!!!
갑판 위에 서 있던 복마전의 멤버들을 향해 초음속의 속도로 쏟아지는 수백 발의 탄환.
피를 흠뻑 뒤집어 쓴 채 히죽대는 에르몽의 얼굴에 총알이 틀어박히기 직전 레녹이 손을 들어 올렸다.
피이잉……!!
눈에 보이지 않을정도로 얇은 마력사가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가로질러 탄환을 꿰뚫었다.
사방에서 쏘아진 수백 발의 총알을 모조리 마력사로 관통해 잡은 뒤, 채찍처럼 튕겨내 궤도를 변경.
산산이 부서진 탄환 조각이 그대로 하늘 위로 산개하듯 흩뿌려졌다.
타타타탕!!!!
“미, 미친……!!!”
“이게 무슨 술식이냐!!”
방아쇠를 당겼음에도 단 한발의 총알조차 목표물에 적중하지 못한 기묘한 상황.
촤라락!!
레녹의 마력사가 수십 개에 달하는 총구를 동시에 잡아채 방향을 돌려세웠다.
제자리에서 총구만을 휙 돌려 서로를 겨누고, 홀린 듯이 방아쇠를 당기는 군인들의 모습.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깨닫기도 전에 사출된 탄환이 동료의 머리를 터트리고 피를 흩뿌렸다.
타타타타타탕!!!!!
“끄아아악!!”
“사,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오인사격이 난무하는 갑판 위에서 군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황급히 총을 놓고 물러서는 군인들 속에서 일어난 인형이 덜그럭거리며 군인을 끌어안았다.
인형 내부에서 무수한 창날이 튀어나오면서 오장육부를 관통하고 숨통을 끊었다.
촤자자작!!
“꺽……!!”
“푸하하핫!!!”
인형과 함께 나뒹구는 시체 위로 에르몽이 웃음을 터트리며 질주했다.
갑판 위에 쓰러진 군인들의 시신을 밟고 달리며 흑마력을 끌어올리고, 살아남은 군인들을 향해 휘두른다.
퍼버버버벙!!
검은 안개처럼 자욱하게 흩날리는 흑마법 속에서, 피처럼 붉은 섬광이 갑판을 가로질렀다.
살아남은 군인들의 목 위로 붉은 선이 그어지는 것과 동시에, 머리와 몸이 분리되어 떨어졌다.
촤악!!
“흠.”
피범벅이 된 손등을 바라보던 사린이 혀를 내밀어 그것을 슬쩍 핥았다.
내키지 않는 듯 손을 털어낸 그녀가 천천히 몸을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별로, 맛없네. 괜히 손댔어…….”
두두두두두!!!!
이 순간에도 갑판 위에서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군인들.
아군에게 오인사격을 개시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고통과 비명이 가득했다.
7군단의 기동요새. 그 갑판 위에 대기하고 있던 수십 수백의 초인과 군인들이 단 한 사람의 술식에 압도당하는 기괴한 광경.
탄환이 난무하는 갑판의 중심에서 팔짱을 낀 채 그 모든 상황을 조작하는 술사의 모습.
흑요석 가면 너머 번뜩이는 붉은 안광을 지켜보던 사린이 웃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이건 이것대로 괜찮을지도.”
“끄윽……!!”
쿠웅!!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고위 장교들마저 피범벅이 되어 쓰러진다.
총성이 가라앉은 갑판 위에 피냄새가 자욱하게 퍼져 나갔다.
“지, 지휘부에서 너희들을 가만두지 않을 거다.”
처음 에르몽에게 말을 걸었던 참모장교가 피투성이가 된 채 더듬거렸다.
“데이머스 중장과의 거래를 깨고 군단을 배신한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으직!!
참모장교의 머리를 걷어차 목을 부러뜨린 에르몽이 개운하게 기지개를 켰다.
“아~ 이제야 좀 몸이 풀리네요.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는데.”
“…….”
“어때요. 급조한 작전 치고는 나쁘지 않았죠?”
팔짱을 낀 채 멈춰선 레녹을 향해 다가선 에르몽이 친근한 몸짓으로 어깨를 두들겼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우리 생각보다 손발이 잘 맞지 않-”
촤악!
발아래서 튕겨 나온 마력사가 에르몽의 발목에 묶였다.
레녹이 손을 까닥이자, 에르몽이 그대로 넘어져 엄청난 속도로 갑판에 머리를 처박았다.
꽈앙!!
“끄엑……!!”
“흑마법사. 너와 합의 따위를 한 기억은 없군.”
눈을 까뒤집고 경련하는 에르몽을 내려다보며 레녹이 차갑게 말했다.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 어울려준 것뿐이다. 착각하지 말도록.”
“쿨럭, 쿨럭……!! 흐흐흐…… 하지만 빅터. 당신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피웅덩이에 얼굴을 처박은 채 기침하던 에르몽이 웃으며 시선을 들어올렸다.
“견뢰의 힘이 생각보다 너무너무너무 강해요. 소모전을 상정하고 있었다 해도, 이미 군단 지휘부가 상정했던 수준을 아득하게 뛰어넘었을 겁니다.”
“…….”
“군단의 피해가 비정상적으로 커진 시점에서 지휘부는 무조건 우리를 기존에 약속한 것보다 위험한 일에 던져놓으려 할 테죠. 멋대로 이용당하느니 우리끼리 움직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네놈을 이런 상황에서 그 정도로 신뢰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만.”
딱히 에르몽을 아군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토벌전의 시작과 동시에 군단 주력부대의 절반이 학살당한 이 시점.
질량술식을 사용해 형태를 변환한 마탑이 3사령부를 추락시킨 상황에서 남아 있는 군단의 전력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고위계 초인들을 중심으로 마탑 공략에 나선다면 판데모니엄이 위험한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은 필연.
에르몽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쪽에서 상황을 주도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레녹에게 제안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이, 빅터. 같이 신나게 군단 놈들을 죽일 때는 언제고 그렇게 말하는 건 반칙 아닙니까.”
마력사에 발목이 잡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에르몽이 히죽댔다.
“지금 상황에 협조했다는 건, 당신도 이쪽의 플랜이 더 마음에 들었던 거잖아요. 진심을 말해!!”
“목을 뽑아버리기 전에 입 닥쳐.”
“끼에에엑!!! 취소, 취소!!”
검은 마력사가 목에 감기는 것과 동시에 꽥꽥 비명을 질러대는 에르몽을 뒤로하고 레녹이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데이머스가 약속했던 당시와는 상황이 달라진 시점에서 굳이 군단의 명령을 따를 이유는 없다.
그렇기에 레녹 역시 이쪽을 멋대로 움직이려 드는 데드라이즈 측의 군인들을 모두 정리해 버렸던 것.
화신체의 힘을 깎아내는 데 있어 군단의 힘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군단의 명령에 복종할 이유도 없다.
그걸 감안하면 이 시점에서 군단과 판단을 달리하는 것도 감수할만한 일이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런 낌새가 드러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거라고 봤는데, 군단 지휘부가 생각보다 더 동요한 모양이군.”
피 묻은 셔츠를 털어내며 다가온 박사가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군 전력의 소모가 예상보다 클 수는 있다고 생각했을지언정, 이 시점에서 3사령부가 무력화되는 건 계획에 없었겠지.”
“…….”
“하지만 견뢰의 마탑이 저렇게까지 비현실적인 물건일 거라고는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설마 그 술식을 자신의 마탑에 적용시켰을 줄은…….”
쿠구구구구!!!!
검푸른 광채를 흩뿌리며, 수십만 개에 달하는 부품들을 분해했다 조립해나가는 거대한 구조물.
황금빛의 거대한 전투기가 허공에서 수직으로 유려하게 회전하며 동체를 돌려세우고, 강력한 충격파를 흩뿌렸다.
몰아치는 풍압만으로 지상에서 활보하던 전차들이 짓눌려 찌그러지고, 사방으로 피와 살점이 튀기는 처참한 풍경.
“사령부를 추락시킨 뒤에도 계속해서 형태를 조금씩 바꾸고 있어.”
하이레아가 창백해진 안색으로 중얼거렸다.
“군단을 마저 학살하기 위해 새로운 형상으로 변환하려 하는 건가?”
“아니, 연달아 새로운 형상으로 변할 수 있을 만큼 코스트가 충분하지는 않을 거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박사가 나직하게 대답했다.
“방금 견뢰가 사용한 능력은 전쟁대리인이라 불리던 위대한 승천자의 술식. 말 그대로 질량 자체를 직접 조작하고 변환하는 권능이지.”
“…….”
“내가 기계도시에 있었을 당시 고려되었던 몇 가지 ‘대안’ 중 하나이자…… 두 번째 세계에 존재했던 가장 정교하고 난해한 술식 중 하나다. 견뢰가 아무리 괴물 같은 초월자라 해도, 그만한 술식을 아무런 전조조차 없이 사용할 수는 없을 터.”
수십 미터에 이르는 황금빛의 날개를 회전시키며 격동하는 탑을 박사가 날카롭게 올려다보았다.
“새로운 형상으로 변환하는데 막대한 동력을 필요로 하는 건 물론이고, 그게 아니라도 반드시 형상변환을 시도하기 전 전조가 있을 거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겠지.”
“박사. 당신이 술식을 보고 이렇게까지 감탄하는 건 오랜만에 보는군……”
체비엔의 인형이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질량술식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대단한 권능인 건가……?”
“형태가 있는 물질에 직접 손을 댈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헤르메스의 유지를 잇기를 원했지만, 누구도 술식의 원리조차 이해하지 못했었다.”
박사가 경탄한 듯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
“그 술식을 저렇게 미쳐버린 채로 마탑에 적용시켜 휘두를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군…… 순수한 술식적성으로는 정말 역사에 남을 재능이 틀림없어.”
“…….”
판데모니엄의 박사, 아터마이어는 기계도시 마키나에서 승천문을 설계했던 연구자.
두 번째 세계의 흔적과 연결되며 실패해버린 승천문을 직접 설계했던 당사자인 만큼, 헤르메스의 질량술식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질량술식이 얼마나 난해하고 어려우며 큰 가능성을 지녔는지, 그를 마탑 전체에 적용시켜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방법인지도 이해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견뢰라 해도 저만한 규모의 질량을 연달아 조작할 수 없다는 사실 역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히 수만 톤에 달하는 질량을 통째로 조작하여 형상을 변환하고 기능을 창조하는 신기.
그 과정에서 소모하는 막대한 동력을 어떻게 보충할 수 있다 해도, 술식 사용 전에 전조가 발생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박사는 그를 통해서 당장은 견뢰가 새로운 형상으로 변화할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자, 그럼 어떻게 할까…… 바라간이 움직였다 해도 견뢰를 정면에서 상대할 수는 없겠지. 기껏해야 잠시나마 발을 붙잡아 놓는 것이 최선일 게다.”
하늘에서 우아하게 회전하는 황금빛의 비행체를 올려다보며 박사가 턱을 매만졌다.
“당장 질량술식을 사용할 기미가 없다 해도, 특유의 막강한 벼락은 여전하니 접근하는 것도 쉽지 않아. 군단 절반을 학살한 폭주가 또 언제 시작될지도 알 수 없지.”
고민에 잠긴 박사가 중얼거리다, 레녹을 힐끗 돌아보며 웃었다.
“역시, 이제부터는 빅터 자네의 능력을 빌릴 수밖에 없겠는데. 괜찮겠지?”
“상관없다.”
팔짱을 낀 채 하늘을 바라보던 레녹이 대꾸했다.
“군단 지휘부가 이쪽을 이용하려 한 이상, 이쪽에서 군단을 이용하는 일을 마다할 필요는 없을 테니.”
“호오. 빅터. 자네도 생각해 둔 방법이 있었나?”
“군단과 협력해 견뢰를 상대하는 게 아니라, 군단의 전력을 방패로 삼는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흑요석 가면 너머로 시선을 들어 올린 레녹이 말했다.
하늘에서 격렬하게 회전하는 마탑의 형상을 보며 레녹이 냉소했다.
“정돈된 구도, 정면 화력대결에서 압도당했다면 이 전장을 혼전으로 끌고가야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내 생각과 정확하게 일치하는군.”
박사가 웃었다.
“사령부가 붕괴한 시점에서 정면대결로는 승산이 없다. 차라리 난전을 유도해 견뢰의 신경을 다방면으로 분산시켜야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겠지.”
“군단과 힘을 합치는게 아니라, 군단의 전력을 이용해 전장을 개판으로 만드는 겁니까.”
에르몽이 낄낄 웃었다.
“여기 모여 있는 친구들을 엿 먹인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마음에 드는데요. 그래서 이제부터 뭘 하면 됩니까?”
“글쎄. 이만한 규모의 전장에 혼란을 유발하기 위한 방법이란 무궁무진하지만…….”
박사가 손을 들어 자신들이 탑승해 있는 기동요새를 가리키며 웃었다.
“일단 이 기동요새를 손에 넣은 다음에 생각해 볼까?”
촤악!
피범벅이 된 기동요새의 갑판 위를 여덟 명의 초인들이 나란히 걷는다.
요새 안쪽 복도를 막고 있는 바리케이드를 박살 내자마자 그 안에서 쏟아지는 총알 세례.
타타타타탕!!!!
“다가오지 마라!!”
“제어실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 길목을 지켜!!”
“흐아아악!!”
기동요새 내부에 남아 있던 군인들이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잠깐조차 버티지 못했다.
순식간에 남아 있던 군인들을 제압하고 제어실에 진입한 멤버들이 시선을 돌렸다.
드넓은 제어실 벽과 천장에 빼곡하게 자리한 계기판과 레버, 버튼과 조종간의 모습.
계기판 위에 깨알같이 새겨진 글씨를 바라보던 에르몽이 표정을 팍 찌푸렸다.
“빌어먹을, 뭐라고 쓰여 있는 건지 하나도 알아볼 수가 없잖아요. 공용어로 쓰인 게 맞습니까?”
“에르몽. 군단에서 당신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시스템을 차용하고 있을 리가 없잖아.”
“하이레아. 지금 시비거는 겁니까?”
“어떤 식으로 조작해야하는지는 대강 알 것 같군.”
하이레아의 차분한 대답에 에르몽이 발끈한 사이 박사가 앞으로 나섰다.
“체비엔. 당장 쓰지 않는 인형 몇기만 빌려주겠나?”
“내 인형은 술식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 부릴 수 없는 물건이다…… 박사 당신에겐 쓸모가 없을 텐데…….”
“내가 직접 쓰려는 건 아니다. 제어실 내부에 오퍼레이터가 착석해 있어야 하는 자리가 있군. 그곳에 인형을 앉혀놓기만 하면 돼.”
체비엔의 도움을 받아 제어실 곳곳에 인형을 착석시킨 박사가 손을 들어 올렸다.
“오퍼레이션 시스템 분석을 통해 이 기동요새의 제원과 작동원리는 습득을 끝냈다.”
철컥!!
망설임없이 레버를 쥐고 끝까지 밀어올린 박사가 말했다.
“조작감 자체를 익힌 건 아니지만, 방향을 제어하고 속도를 조절하는데는 문제가 없겠지. 바로 가볼까?”
부우우우웅!!!!
그 순간, 기동요새의 선체가 크게 진동하며 서서히 앞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바퀴가 달려 있지 않은 기동요새가 허공으로 붕 떠오르는 감각과 동시에 부유한 순간.
7군단의 기동요새가 엄청난 속도로 제 자리에서 튕겨나가듯이 앞으로 전진했다.
콰아아앙!!!!
거대한 선체가 앞으로 튀어나가는 것과 동시에, 근처에 주둔하고 있던 전차와 장갑차들이 짓눌려 박살 났다.
emp에 휩쓸려 폭주하던 기계화병단의 기계병사들이 선체에 충돌해 튕겨나가며 사방으로 부품을 흩뿌렸다.
콰과과과과광!!!
육중한 금속덩어리가 지상 위를 미끄러지며 가속할 때마다, 충격파와 지진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전선 한쪽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단신으로 군단의 주력부대 사이를 돌파하는 기동요새의 모습.
기계화병단과 군단이 집결해 있던 전선 일각이 붕괴하며, 통신망에 고함과 비명 소리가 난무했다.
[7군단의 기동요새가 대열을 이탈했다!!] [전선을 유지해라!! 법진 안에 머물러라!!] [데이머스.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크아아아악!!!]사방에서 순식간에 혼란에 빠져 난리가 난 군단을 돌아보며 에르몽이 씩 웃었다.
“푸하하핫!!! 확실히 이게 훨씬 더 재밌네요.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잖습니까!”
[이 미친 자식들이 지금 뭘 하는 거냐!!!]키이이잉!!!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군단 측의 자주포들이 일제히 포신을 돌려세웠다.
혼란에 빠진 전선을 짓뭉개며, 멀리서 발광하는 견뢰의 마탑을 향해 질주하는 기동요새를 겨누고 발포.
퍼버버버벙!!!
수십 발에 달하는 포탄이 아음속의 속도로 선체에 틀어박히기 직전, 갑판에 올라탄 레녹이 움직였다.
“아직은 안되지.”
쐐애액!!
마력사를 뽑아 포탄의 회전속도에 맞춰 휘감는 것과 동시에, 팽이를 돌리듯이 회전을 더 먹여 궤도를 변경.
아슬아슬하게 기동요새 선체에 직격하지 않도록 궤적을 바꿔 튕겨냈다.
기동요새 뒤로 궤적을 바꾼 인간의 머리통만 한 포탄이 갑판에 서 있던 에제키엘과 철쇄용왕을 스쳐 지나가고.
직후 수백 미터 떨어진 벌판 뒤쪽에서 폭발해 눈부신 불기둥을 피워올렸다.
콰과과과광!!!
치직, 치지직……!!!
[여기는 데이머스.]그 순간, 노이즈가 버벅이는 통신망을 뚫고 데이머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판데모니엄. 지금 이게 무슨 일이지?]쐐액!
갑판 위에 버려진 무전기를 마력사로 잡아챈 레녹이 말했다.
“데이머스. 늦었군.”
[……프리모 얼럿의 피해를 수습하고 지휘체계를 개편하는 중이다. 살아남은 참모장교들에게 지휘권한을 이양하고 있었지.]데이머스가 조금 늦게 대답했다.
[견뢰의 마탑에 응전하기 위해 주전부대를 움직이고 있는데 후위에서 난리가 났군. 기동요새를 탈취한 건 너희들이 한 일인가?]“네놈이 자리를 비운 사이 지휘부에서 이쪽에게 마탑 직접 공략을 요구하고 나섰다.”
레녹이 대꾸했다.
“사령부가 궤멸한 시점에서 그쪽의 명령을 따를 필요는 없겠지. 자의적인 판단으로 움직이는 것이 낫다는 전제하에 기동요새를 빌렸다.”
[너희들이 움직이며 군단 주력부대 후열의 전선이 붕괴했다. 블레이버 마탑과 이능개화전단이 이변을 눈치채고 위치를 바꾸고 있지.]데이머스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
[이대로라면 전선이 무너지며 견뢰와 아군의 전력이 완전히 뒤섞이게 될 거다. 이제와서 군단을 적으로 돌리려는 이유가 뭐지?]“착각하고 있군. 기존에 논의한 토벌전의 대전제를 어길 생각은 없다.”
레녹이 웃었다.
“다만 마탑을 공략하려면 우리만으로는 안될 것 같아서. 일단 다른 세력들도 탑에 들이박게 만든 다음에 움직이려 할 뿐이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걱정하지 마라.”
콰르르릉!!!!
육중한 기동요새의 선체가, 군단 전력이 모여 있는 대열을 향해 돌진했다.
아군을 짓밟으며 전선을 헤집는 기동요새를 피해 흩어진 마탑과 군단의 전력이, 자연스럽게 견뢰의 마탑과 가까워지고.
검푸른 뇌광을 휘감은 황금빛의 비행체가 날개를 거세게 진동시키며 거리를 좁힌 군단의 주력부대를 향해 돌아섰다.
[판데모니엄. 감히……!!!] [안 돼, 늦었어. 어떻게든 피해라!!!!] [데이머스 중장이 틀렸다. 이놈들은 통제할 수가……!!!!] [견뢰의 마탑이 접근해옵니다!!! 술식출력 측정 불가!!] [전선이 뒤엉킨다……!!!!! 아아아아악!!!]퍼버버버버벙!!!!!
견뢰의 마탑과 강제로 거리가 좁혀진 군단 주력부대와, 블레이버 마탑의 염위신전이 전투를 시작한다.
검푸른 번갯불과 함께 사방에서 휩쓸려 나가는 전차와 마법사들의 신형. 울부짖으며 소멸하는 화염거인들.
통신망 곳곳에서 거칠게 울려 퍼지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레녹이 웃었다.
“악역은 많이 해봤으니까. 약속대로 이 전장에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되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