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228
약먹는 천재마법사 1228화(1228/1243)
약먹는 천재마법사 1228화
견뢰 토벌전(19)
화아악!!
눈이 아릴 정도로 화려하게 빛나는 황금빛의 미궁 앞에 서 있었다.
직접 보고 있음에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하고 장엄한 성역.
“……!!”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데이머스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맥박을 짚었다.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의 부상을 입거나 육체의 소실도 없이, 의식과 기억도 멀쩡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지금 데이머스의 호흡을 어지럽히고, 전신의 기력과 의지가 깎여나가는 듯한 이 무기력함은 무엇 때문일까.
눈앞에 펼쳐진 황금빛의 미궁과는 정반대로 데이머스라는 존재를 근원에서부터 짓누르는 듯한 무력감.
데이머스가 힘겹게 비틀거리며 일어나, 천천히 자신의 몸을 더듬거리며 원인을 찾아 나서려던 그 순간.
옆에서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더듬거리지 않아도 멀쩡히 살아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빅터.”
그림자로브를 뒤집어쓴 조작술사가, 데이머스의 옆에서 팔짱을 낀 채 기대 서 있었다.
얼굴을 가리는 흑요석 가면과 섬뜩한 붉은 안광. 전신을 타고 흐르는 흉험하며 사나운 마력까지.
이 자리에 없는 것처럼 유령 같은 기척. 마력이 조금 비어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상처하나 없다.
놀란 표정으로 호흡을 고른 데이머스가 빅터를 돌아보며 더듬거렸다.
“괜찮은…… 건가?”
“네놈보다야 멀쩡하겠지. 문제라도 있나?”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사소한 위화감을 제외하면, 토벌전에서 처음 만났을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
하지만 그렇기에 데이머스는 눈앞의 조작술사가 얼마나 괴물같은 존재인지 절절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군단이 마구잡이로 학살당하는 혼전 속에서 기동요새를 탈취해 외곽구역을 주파하는 것은 물론이고.
데이머스를 끌고 폭심지를 돌파해 견뢰와 직접 힘을 맞대어 사령부 엔진실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상처하나 입지 않은.
그 모든 일을 완벽하게 수행해내고 박사의 계획을 성공시킨 이 술사가 얼마나 특별한 재능을 지녔는지.
“실패만이 가득했던 토벌전이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큼은 잘 해냈군.”
쓴웃음을 지은 데이머스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네게 참전을 권유한 건 내가 이번 작전에서 가장 잘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딴 낯간지러운 말을 듣고 싶어서 널 살려둔게 아니다.”
빅터가 가면을 고쳐쓰며 비웃었다.
“알고 있겠지? 넌 이 전쟁에서 죽는다.”
“…….”
“일이 어떻게 끝나든 책임을 지는 걸 피할 수 없겠지. 대장들이 움직인 시점에서 목숨걸고 일선에 나선 것도 그 때문일 테고.”
데이머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을 뿐.
그 역시 빅터가 하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만약 이 토벌전이 견뢰의 승리로 끝난다면 굳이 결과를 미루어 짐작할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만에 하나 군단의 승리로 토벌전이 끝난다고 해도, 데이머스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현시점에서 토벌전에 참가한 군단 주력부대의 태반이 궤멸한 상황.
직후 판데모니엄을 중심으로 시작된 혼전을 생각하면 이미 군단 전력 대부분이 희생되었을지도 모른다.
주력부대의 지휘를 맡은 것은 물론이고, 판데모니엄을 토벌전에 끌어들인 데이머스가 그 책임을 피해가는 건 불가능한 일.
아무리 운이 좋아도 사형. 최악의 경우 데이머스를 필두로 한 7군단 전체가 처단당할 수도 있었다.
침묵하는 데이머스를 보며 빅터가 냉소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그 알량한 목숨을 걸고 전공을 세워 7군단 전체가 처형당하는 건 막아보려는 거겠지.”
“…….”
“같잖은 실수를 주워 담으려는 발악은 동정조차 가지 않지만…… 네 판단력 자체는 그럭저럭 쓸모가 있더군.”
“……그건.”
“견뢰의 대상지정저항을 역으로 이용하려던 시도는 나쁘지 않았다.”
판데모니엄에서도 유독 타인에게 관심이 없던 조작술사에게 들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
주력부대가 당한 시점에서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하려던 시도를 높게 평가하기라도 한 걸까.
여느 때와 같이 폐부를 찌르는 냉소 끝에 섞인 희미한 칭찬.
데이머스가 그 의미를 깨닫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이쯤이면 내가 널 살려둔 이유가 뭔지 알았겠지.”
빅터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뒤를 향해 고개를 까닥였다.
“이 전장에서 죽음을 각오했다면, 죽기 전에 조금이나마 견뢰의 힘을 깎아내는 데 그 자그마한 목숨이라도 보태봐라.”
“…….”
그제서야, 데이머스는 자신이 도착한 49구역의 정경을 비로소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광대하고 장엄한 황금빛의 복도.
사방에서 번뜩이는 광채가 지나치게 눈이 부셔서 아프게 느껴질 정도로 화려한 궁전의 형상.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복도가 너무나 광대하여, 데이머스의 기감으로도 제대로 방향이 잡히지가 않는다.
“미로…… 아니, 미궁인가?”
순식간에 그 정체를 깨달은 데이머스가 중얼거렸다.
“방향이나 너비가 잡히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공간왜곡…… 이곳이 바로…….”
49구역에 존재하는 견뢰의 권역 내부인가.
그 순간, 데이머스는 박사가 전해주었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견뢰의 마탑은 군단을 학살하던 황금 구체만이 아니라, 49구역 전체에 범람하던 검푸른 성운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검푸른 성운 안에 이렇게 광대하고 장엄한 시설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단순히 텅 비어 있는 시설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넓게 구축하여 방향감각을 상실케 하는-
“……이 시설 전체가 침입자를 끌어들여 길을 잃게 만들기 위한 미궁 그 자체였나.”
힘겹게 벽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난 데이머스가 말했다.
“박사의 말이 맞았다. 견뢰가 49구역 내부에 실재하는 시공간을 만들어두었군. 하지만, 그건 반대로 말하자면…….”
“우리가 이쪽으로 접근하는 상황을 견뢰가 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기도 하죠.”
털썩!!
그 순간, 복도 반대편에서 피투성이가 된 군인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강습함 중 하나에 타고 있던 특수부대원으로 추정되는 시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죽어 있는 시체 뒤에서 뱀 같은 얼굴을 지닌 청년이 손을 털며 걸어 나왔다.
그 얼굴을 알아본 데이머스가 표정을 굳혔다.
“……에르몽.”
“어라? 데이머스.”
데이머스의 얼굴을 본 에르몽이 히죽 웃었다.
“아직도 살아 있었습니까? 난 또 시체라도 보는 줄 알았잖아요.”
“…….”
보자마자 본질을 찌르는 에르몽의 말에 데이머스가 입을 다물었다.
저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흑마법사조차, 이 전쟁에서 데이머스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알고 있었던 것.
빅터가 데이머스의 뒤에서 에르몽을 보며 한심한 기색으로 말했다.
“또 뒤에 숨어서 잔챙이나 죽이고 다녔군.”
“아, 오해하지 마세요. 이 시체는 제가 죽인 거 아닙니다.”
에르몽이 군인의 시체를 발로 걷어차 굴리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발견했을 때는 혼자 다쳐서 죽어가고 있었다구요. 저를 길동무로 삼으려 하길래 숨통을 끊어주긴 했습니다만.”
“멍청해서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슨 뜻인지 잊어버렸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49구역에 들어오자마자 통수를 치려는 건 너무하잖아요.”
빅터의 싸늘한 비웃음에 에르몽이 아랑곳하지 않고 투덜거렸다.
“물론 저희가 7군단의 기함을 탈취해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긴 했지만, 다 대의를 위해 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나오면 섭섭하죠~”
“…….”
데이머스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숙이고 쓰러진 대원의 시체를 살폈다.
“아주 날카로운 날붙이에 경동맥을 베였군.”
목 근처에 나 있는 검흔을 살짝 잡아 벌린 데이머스가 말했다.
“근육의 경직이 크지 않아. 반응하기도 전에 급소를 베어 치명상을 낸 거다. 고통도 크지 않았겠지. 굉장히 뛰어난 살인기술이다.”
“흠흠, 사실 제가 죽기 전에 조금 두들겨 패긴 해서 고통 정도는 있었을 텐데…….”
“가만히 입 닥치고 있으면 입에 가시라도 돋는 건가?”
빅터와 에르몽의 말을 뒤로한 데이머스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당장 생각나는 능력자는 군단이나 복마전에도 몇 명 있지만…… 아군이 한 일일 가능성은 낮겠지.”
대원의 눈을 감겨주고 일어난 데이머스가 몸을 돌려세웠다.
“움직이지. 일단 이 미궁을 돌아보면서 내부 구조를 조사해 봐야겠다.”
“아무런 목표도 없이 움직여봤자 길을 잃기만 할 텐데요. 뭔가 방향성은 있습니까?”
“방향성? 좋아. 움직이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쪽이 해야 할 일을 정리하지.”
데이머스의 눈동자가 강한 의지로 번뜩였다.
“견뢰는 지금 토벌전을 자신의 승천의식으로 삼아 미답의 괴물이 되려 한다. 승천의식이 성공하면 피에 미쳐 타락한 승천자가 완성되겠지.”
“…….”
“의식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승천자가 된 견뢰가 토벌전에 참가한 이들을 모조리 죽이는 것은 사실상 확정사항…… 박사의 말대로 이걸 피할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보려고 49구역에 대가리를 들이밀긴 했지만 말입니다.”
“승천의식을 완료하기 위해 견뢰는 마지막에는 반드시 자신의 권역인 49구역으로 돌아오겠지.”
에르몽의 볼멘소리를 무시한 데이머스가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견뢰보다 먼저 49구역의 중심부에 도달해 그의 승천의식을 저지하는 것. 현시점에서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그건 이제 방법이 아니라 희망사항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만…….”
“일단 미궁 최심부로 가는 길을 찾으면서 박사를 만나는 것을 우선하겠다.”
품 안에서 단말기를 꺼내 통신이 끊겨있는 것을 확인한 데이머스가 말했다.
“박사가 직접 계획을 세운 만큼, 그도 이미 우리와 함께 49구역에 들어와 있겠지. 운이 좋다면 길을 찾는 사이 만날 수도 있어.”
“그 젠체하는 늙은이가 왜 필요해요? 49구역에 들어왔으니까 그냥 우리끼리 으쌰으쌰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박사는 견뢰가 49구역의 존재를 숨기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동시에 견뢰가 어떤 술식으로 마탑을 조작하는지도 알고 있었지.”
에르몽의 투덜거림에 데이머스가 걸음을 옮기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견뢰가 이 토벌전을 어디까지 설계한 것인지…… 그조차도 가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
“이 미궁은 침입자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도로 복잡한 공간왜곡시설. 하지만 이런 시설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졌을 리가 없어.”
끝없는 복도를 걸으며 데이머스가 창백한 안색으로 중얼거렸다.
“최악의 경우, 우리가 지금껏 했던 모든 일이-”
“아, 저기 시체 하나 더 발견!”
데이머스의 말을 끊은 에르몽이, 쪼르르 달려 복도 저편에 쓰러진 시체를 뒤집었다.
머리가 으깨져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시체의 옷깃 안에 손을 집어넣고 주물거리던 에르몽이 입맛을 다셨다.
“아, 이것도 안 되겠네. 군단의 군인들은 왜 이렇게 다들 흑마력 적성이 없는 겁니까? 이래선 몸을 갈아타긴커녕 촉매로도 써먹을 수가 없잖아요.”
“흑마법 적성은 모든 술사들 중에서도 지극히 희귀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군인 중에서 그런 소질이 흔하지 않은 것도 당연하지…….”
데이머스가 그렇게 말하며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게다가 이건 애초에 군단의 군인이 아니다. 입고 있는 군복부터 군단의 것이 아니군.”
“기계화병단인가.”
“마일로즈 대장의 권능을 빌려 남아 있는 모든 전력을 49구역에 집결시켰으니, 다른 세력들도 이 미궁에 들어와 있겠지.”
빅터의 말에 데이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견뢰가 이 상황을 의도한 것이 아닌지 아직 알 수 없다는 점에 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군.”
“아하.”
에르몽이 그제서야 위화감을 깨닫고 맞장구를 쳤다.
“이 사람. 아까 시체와는 다르게 머리가 깨져 죽어 있네요.”
“그래. 둔탁한 무언가로 몇번이나 내리쳐 죽였어. 엄청난 괴력을 지닌데다 손속도 굉장히 난폭하지.”
데이머스가 그렇게 말하며 뭉개진 두개골을 살폈다.
“무기를 쓴 것도 아니야. 마치 짐승의 앞발로 머리를 후려쳐 죽인 듯한…… 그런 야수성이 느껴지는군.”
“…….”
“아까 우리 측 대원의 목을 벤 상대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이 자를 죽인 거다.”
“……흐음.”
그제서야 에르몽의 표정이 살짝 날카롭게 변했다.
“이 미궁에서 우리를 죽이려는 상대가…… 한둘이 아니라는 겁니까?”
“그건…… 저 방향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알겠지.”
머리가 뭉개진 시체가 흘린 피가, 복도 바닥에 쭉 늘어져 있다.
마치 어디선가 힘겹게 기어와서 여기까지 멈춰 죽은 듯한 혈흔.
피의 흔적을 거꾸로 따라가면 이 자를 죽인 당사자가 나타나겠지.
빅터와 가볍게 시선을 교환한 데이머스가, 앞장서서 복도를 걷기 시작하려던 찰나.
“우앗?!”
쾅!!!
균형을 잃고 미끄러진 에르몽이 머리부터 처박혀 데이머스의 앞으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꼴이 보기 좋군.”
“주, 죽을 뻔했어…… 방금 진짜로 목이 부러질 뻔했다구요…….”
빅터의 비웃음을 듣고도 에르몽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답지 않게 파리해진 안색은 에르몽이 순간 정말로 기겁했다는 증거.
“아니, 뭐가 이렇게 미끄러운 겁니까. 바닥에 기름이라도 발라둔 게 아니고서야……!!!”
“기름이라…….”
조심스럽게 바닥을 쓸어본 데이머스가, 묘하게 감촉이 다른 것을 느끼고 마력을 가라앉혔다.
순식간에 한쪽 발 밑이 얼음 바닥을 스치듯 미끄러지는 것을 본 데이머스가 얼굴을 굳혔다.
의식을 차린 뒤로 마력을 바짝 끌어올리고 있던 데이머스는 눈치채지 못했던 위화감.
“마찰계수…… 설마, 사용하는 마력에 따라 공간의 성질 자체를 다르게 받아들이도록 설계되어 있는 건가?”
“움직이지.”
우두커니 멈춰 선 데이머스를 두고 빅터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스쳐 지나갔다.
“다른 놈들이 죽기 전에 만나려면 서둘러야 할 거다.”
“…….”
유령처럼 걷는 빅터의 뒷모습을 보며, 데이머스와 에르몽이 조용히 서로를 마주보았다.
“……우리, 설마 여기서 빅터 빼고 사이좋게 다 죽는 건 아니겠죠?”
“일단 견뢰보다 먼저 49구역에 들어오는 것 자체는 성공했다. 벌써부터 실패를 상정할 이유는 없군.”
데이머스가 천천히 시선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견뢰를 적으로 상대하는 것이 이렇게나 막막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
“…….”
“최악을 상정하고 준비했는데도, 매번 그 이상이 있었어…… 앞으로 이런 시련이 얼마나 더 남아 있을지…….”
휘오오오오!!!
화려한 샹들리에와 알 수 없는 술법진이 빼곡하게 새겨진 장엄하고 위압적인 권역.
어디가 끝이고 갈림길인지 인지할 수 없을 만큼 형이상학적으로 일그러지는 황금빛의 미궁.
돌아보면 지나온 길의 방향이 바뀌어 있고, 시선을 돌리면 분명 있었던 갈림길이 사라져 있다.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사방에 난 문의 갯수가 바뀌고, 천장과 벽면에 새겨진 법진이 눈동자처럼 이쪽을 내려다보는.
그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섬뜩한 기시감과 공포 속에서-
데이머스는 어느새 공포를 넘어선 경외를 느끼고 있었다.
“이것이 진정…… 우리와 같이 이 세계에서 태어난 인간이었단 말인가……?”
자신을 죽이려는 전쟁을 승천의식으로 삼아 도전에 임하는 미쳐 버린 초월자.
견뢰의 권역에 진입한 뒤에도 모든 것이 데이머스의 예상을 한참 벗어나 있는 이 순간.
견뢰 본인이 아니라, 그가 관장하는 권역조차 이리 불가해한 마경의 정취를 띄고 있단 말인가.
그를 죽이고 토벌하려 시도하는 매 순간마다, 반대로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하고 경도된다.
“하아, 하아…….”
호흡이 빠르게 가빠지면서 기도가 턱 막히는 듯하다.
고도가 높은 산에서 산소를 찾는 것처럼, 혈관과 심폐기능이 짓눌려 망가지는 듯한 막막함.
시야가 조금씩 흐릿해지며 공기가 차갑게 변하고, 오감이 따끔거리며 둔하게 늘어진다.
“흐우우우…….”
데이머스의 옆에서는 에르몽이 풀린 눈으로 기괴한 소리를 내뱉고 있는 상황.
“진짜, 살아 나가기만 하면…… 딥웹 다 뒤졌…… 우웨엑…….”
“이건…….”
복도 안쪽으로 이동할수록 눈에 보일 정도로 컨디션이 악화되며 망가지고 있다.
마치 생명체로서의 기초적인 신진대사와 신체기능을 빼앗기고, 잃어버리는 듯한 공허한 상실감.
만약 고위 장생종이 여기 있었다면, 이것이 쿤다라의 구겁에 존재하는 환경과 굉장히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겠지.
하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데이머스는 자신의 몸에 닥친 문제가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음을 인지하자마자 갈등에 빠졌다.
“…….”
나아가야 하나, 물러서야 하나?
복도의 혈흔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거슬러 걷는 도중, 멀리서 희미하게 발광하는 금빛의 아지랑이.
저기까지 간다면 아마 이 미궁의 다른 면모를 확인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지금 일행을 짓누르는 알 수 없는 고통은 지금보다 더 심해질 터.
리스크를 감수하고 모험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는지.
결론은 정해져 있었다.
“가자.”
이 전장에서 이미 죽음을 각오한 몸.
최악의 경우에도 군단의 동료들에게 이 미궁의 정보를 남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화악!!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지랑이가 걷히면서 복도 사방에 널브러진 시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묵직한 둔기로, 혹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혹은 머리가 깨물려 죽은 듯한 초인들의 모습.
군단의 특수부대. 블레이버 마탑의 마법사. 기계화병단의 개조병사. 전단의 초능력자까지.
소속과 연원이 다른 무수한 초인들이 데이머스보다 먼저 이 복도 사방에 나뒹굴고 있다.
“…….”
싸늘하리만치 고요한 정적의 저편.
아지랑이 끝에서 눈부시게 일렁이는 거대한 황금빛의 관문이 보였다.
지금까지 지나온 복도보다 훨씬 더 거대한 공동 중심부에서 부유하는 ‘연결고리’.
공동 중심부에서 흔들리는 황금빛의 관문과, 그 너머 펼쳐진 또 다른 미궁의 풍경.
그 관문 앞에, 육중한 망치를 든 새머리 거인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네.”
피가 흠뻑 묻은 망치를 든 채 전신에서 붉은 마력을 풀풀 흘리는 거체.
관문 근처에 수십에 달하는 시체들을 쌓아두고 일행을 내려다보는 모습.
뒤에서 그 모습을 마주한 에르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저 친구는…….”
“펠릭스 마가트. 견뢰의 마탑에 소속된 전쟁용병이군.”
대번에 상대를 알아본 데이머스가 에르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자를 알고 있나?”
“아나테마의 신전에서 붙어본 적이 있습니다. 꽤 실력이 뛰어나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관문 앞을 지키듯이 선 펠릭스의 모습을 바라보던 에르몽이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49구역의 길목을 지키는 역할을 맡은 모양이군요.”
“…….”
“뭐, 이번에는 제가 하겠습니다. 저번에 만났을 때 아예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에르몽이 씩 웃으면서 팔을 걷어붙였다.
“일단 할 만할 때 생색을 좀 내고, 진짜 위험한 곳에선 살짝 발을 빼는 느낌으로-”
우우우우웅!!!
그 순간, 펠릭스가 돌아서는 것과 동시에 황금빛의 헤일로가 떠오르며 에르몽의 말이 뚝 멈췄다.
새머리 거인의 등 뒤에서 우아하게 회전하는 금색의 고리. 그를 타고 펠릭스의 의념이 폭발적으로 증폭된 직후.
펠릭스가 쥐고 있던 해머가 검푸른 벼락에 휩싸이며 순식간에 집채만 한 크기로 변해 번뜩였다.
콰아아아아앙!!!!
빠직, 빠지직……!!!
검푸른 마력이 깃든 채 거대화한 뇌신의 망치.
그것을 짊어진 채로 붉은 안광을 흩날리며, 황금빛의 헤일로를 등지고 이쪽을 돌아보는 펠릭스의 모습.
멍청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던 에르몽이 얌전히 팔을 내리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저, 지금이라도 방금 했던 말 모두 취소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