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238
약먹는 천재마법사 1238화(1238/1243)
약먹는 천재마법사 1238화
견뢰 토벌전(29)
파아아아앗!!!!
승천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의식을 멈추고, 다시 학살을 개시한 견뢰의 반응.
바라간과 에스테반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빅터가 자성영역을 전개하는 이 순간.
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자성영역을 전개해도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거다.’
‘견뢰에게서 시선을 끌기 위한 영역인가……!’
바라간이 전개했던 자성영역, 편백사사궁조차 이 미궁 안에서는 고작 수십 미터 크기를 유지하는 것이 고작.
빅터가 아무리 뛰어난 술사라 해도, 보유마력이 바라간의 주력보다 많을 리는 없으니 영역을 오래 유지할 수는 없을 터.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자성영역을 전개한 건 직접 견뢰의 시선을 끌어 아군을 돕겠다는 의도임이 분명하다.
토벌전에서 빅터가 보여준 조작술식의 막대한 포텐셜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상황.
‘빅터가 자성영역을 펼쳐 견뢰의 시선을 끈 직후 움직인다.’
찰나의 순간 같은 판단을 내린 이들이 동시에 마력을 끌어올리고, 타이밍을 맞추려던 그 순간.
자성영역 전개
조작위계 심상구현
[무점사약결(無蛅嗣約結)]찰칵.
“……어?”
검게 물든 파문이 번지는 것과 동시에 전장에 서 있던 이들의 위치가 통째로 뒤바뀌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홱 변하며 거리감이 이상해지고, 사방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벼락을 내뿜으며 회전하는 견뢰와 멀지 않은 거리에, 아군 초월자들이 ‘옮겨져’ 있었다.
“잠깐, 설마……!!!!”
뇌전에 한꺼번에 휩쓸리지 않을만큼 절묘한 거리.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협력은 가능할 정도로 가까우며, 견뢰를 향해 접근하기도 용이한.
마치 미궁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위치를 강제로 옮겨 버린 듯한 기묘한 풍경.
그제서야 빅터의 자성영역이 지닌 능력을 직감한 초인들이 경악했다.
“이럴 수가. 시공간좌표의 강제 조정……!!!”
“영역 내부에 존재하는 대상의 위치를 바꾸는 힘인가!!”
“아무리 특질계 술사라고 해도 어떻게 이런 능력을-!!!”
의식이 중단되며 다시 폭주하기 시작한 견뢰의 존재.
정면에서 맞으면 버틸 수 없는 벼락을 상대로, 아군의 위치를 조정하는 능력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닐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어쩌면 지금까지 논의했던 계획이나 구도를 통째로 바꿔버릴지도 모르는 막강한 유틸성을 지닌 힘.
이변이 생겼다는 사실을 인지한 이벨린이 움직였다.
“내버려둘 것 같아?”
팟!!
사린의 검극을 어깨로 받아 흘려내고, 시체와 기계부품이 널브러진 전장 위를 뛰었다.
흐릿하게 일그러진 이벨린의 신형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전장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질척-
발아래로 끈적한 흑마력이 밟히는 것과 동시에, 이벨린이 튕기듯이 옆으로 돌아섰다.
동시에 이벨린의 목을 노리고 쏘아진 흑마법을 피해내며 사선으로 무릎을 꿇었다.
피이잉!!!
“아.”
등 뒤에서 몰래 손을 뻗고 있던 에르몽의 표정이 머쓱하게 변했다.
“빌어먹을, 회심의 일격이었는데 그렇게 쉽게 피해버리면 제가 뭐가 됩니까?”
“쉽지는 않았어. 흑마법은 언제나 경계하고 있거든.”
이벨린이 차갑게 대꾸했다.
“모든 마법체계 중 음의(陰意)를 가장 자유롭게 다루는 마법…… 술식의 법칙을 따르지 않으니 조금만 방심해도 당하기 쉽지. 놓칠리가 없잖아?”
실제로 방금 에르몽이 쏘아낸 흑마법은 이벨린조차 방심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저만한 속도의 주문을 쏘아내기 위해선 영창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
에르몽의 위계가 7레벨로 추정되는 것과는 별개로,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이벨린이 싸늘한 표정으로 에르몽을 노려보았다.
“그 간사한 얼굴…… 항하사미궁에서 본 적이 있었지. 이번에는 네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거야.”
“윽…… 오해가 있는데, 거기서도 제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린 적은 한 번도 없다구요.”
에르몽이 그렇게 말하며 흑마력을 끌어올려 양손에 덥석 움켜쥐었다.
“애초에, 그랬다면 제가 여기서 이렇게 억울하게 고생하고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콰아아아앙!!!!
뭉개뭉개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주변을 자욱하게 뒤덮었다.
항시 기감을 날카롭게 유지하는 이벨린조차 멈칫할 만큼 음습한 흑연.
파바바밧!!!
검은 안개 너머로 무언가 재빠르게 움직이며 이벨린의 주위를 맴돌았다.
하지만 이벨린은 안개 속에서 움직이는 무언가를 무시하고 왼손을 홱 들어 올렸다.
턱!!
“……어라?”
쥐고 있던 비틀린 단검을 손목째로 붙잡힌 에르몽이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을 끌려고 잔재주를 부린 건 알고 있지만, 흑마법사는 그만큼 까다로우니까.”
이벨린이 서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서 확실하게 처리해야겠어.”
쐐액!!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벨린의 손이 에르몽의 이마를 가볍게 짚고 스쳐 지나갔다.
동시에 에르몽의 미간에 검은 화살이 틀어박혀, 순식간에 뒤통수를 뚫고 튀어나왔다.
촤아아악!!
“으겍.”
기괴한 비명소리와 함께, 혀를 빼물고 고꾸라지는 흑마법사의 모습.
숨을 헐떡이며 달리던 데이머스가 그 모습을 보며 얼굴을 굳혔다.
“에르몽!!!”
타인의 육체를 빼앗아 연명하는 고대의 흑마법사.
타고난 인성이 간사한 데다 구태여 그걸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 악한이나, 자기보신능력만큼은 굉장한 노괴다.
시종일관 불평불만을 토해내면서도 여기까지 살아남았을 만큼 사리분별은 뛰어난 부분이 있는 바.
그런 에르몽이 저항조차 하지 못할만큼, 이벨린의 손속은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웠고-
한 번으로 멈추지도 않았다.
패액!!
눈치채기도 전에 멱살을 잡힌 데이머스의 신형이 바닥에 처박혔다.
“커헉……!!!”
“지휘관이지? 아까부터 계속 혼자 이 전장의 흐름을 읽고 있던데.”
헛숨을 토해내는 데이머스의 목을 밟은 이벨린이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아터마이어가 없는 지금 군단의 머리는 네 쪽이겠지. 여기서 죽여둬야겠어.”
‘판단이, 무슨……!!’
수백에 달하는 고위계 초인들을 상대하면서도, 각자의 역할과 특기를 읽어내고 있던 것인가.
대장이나 십좌처럼 강한 상대가 아니라, 눈에 거슬리는 능력자들을 먼저 노려오는 손속까지.
전사보다는 사냥꾼에 가까우나, 오히려 그렇기에 이런 혼전에서는 더욱 위험한 상대다.
그렇기에-
“데이머스!!!”
“바라간, 님……”
쿨럭 피를 토해내면서도, 데이머스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
“제가, 시간을…….”
데이머스의 품 안에서 최상급 보석이 와르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일제히 빛을 발했다.
[창령석(唱玲石) : 술식공명 다중전개] [십면옥(十面玉) : 촉매변환] [천하석(天河石) : 공간연동 박리개화]파아아아아앗!!!
각자 다른 색채를 지닌 수백 종의 보석이 서로 공명하고, 순식간에 데이머스와 이벨린을 휘감았다.
본래 데이머스의 위계로는 허락되지 않는, 수명을 대가로 바쳐 영창하는 8레벨 구속주문.
[선고 : 대격리(大隔離)]“수작을……!!”
이벨린이 섬뜩한 표정으로 손을 뻗은 순간 완성된 보석감옥이 공간째로 그녀를 붙잡았다.
쩌어어어엉!!!!
데이머스가 목숨을 걸고 이벨린을 억제하는 찰나, 바라간이 케찰코아틀을 이끌고 움직였다.
“초능력자. 당장 시작해!!”
“영좌께서 주신 선물을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시간이 없군.”
데이머스의 수명을 대가로 삼아봤자 이벨린을 오랫동안 잡아둘 수 있을 가능성은 낮다.
그러니 데이머스가 노린 것은 이벨린의 발을 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귀를 막는 것.
“와라.”
에스테반이 눈을 감은 채 속삭였다.
“능화(能華)여……!!”
에스테반의 ‘속삭임’을 들은 무언가가 현실에서 집체정신망을 타고 넘어온다.
현실에서 정신망을 넘어 다시 현실로. 물질계와 의식계의 경계를 넘어선 기적이 날카로운 은빛의 광채를 흩뿌리고.
에스테반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거대한 비공정의 형태가 되어 권역의 중심부에 강림했다.
쩌어어어엉!!!!
“달려!!!”
“우오오오오!!!”
“마지막이다!!!”
넝마가 된 케찰코아틀과, 은빛 비공정이 방패가 되어 떨어지는 벼락을 받아내며 전진한다.
머리 위에 떠오른 암흑의 왜곡점이 회전할 때마다 무점사약결의 능력이 발동.
아군의 시공간좌표를 실시간으로 뒤바꾸며 폭주하는 벼락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그럼에도 검푸른 번개가 스칠 때마다 뱀과 비공정이 폭발해, 회생 불가능할 수준으로 으스러졌다.
콰아앙!!
드드드드득!!!
[끼오오오오……!!!] […….]처절하게 울부짖는 케찰코아틀과, 덜덜 경련하는 능화의 정신망.
하지만 바라간과 에스테반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지금껏 필사적으로 정면승부를 회피하며 여력을 아껴두었던 것은 모두 이 순간을 위해.
빅터가 자성영역을 유지하며, 저 사기적인 위치 변환 능력을 써줄 수 있는 지금 승부를 봐야 했다.
“초능력자. 하나로는 안돼……!!!!”
바라간이 이를 악물고 품 안에서 묵색의 비늘을 움켜쥐었다.
“동시에 하는 거다!!”
“알고 있다……!!”
뱀과 비공정을 방패 삼아, 무점사약결의 보조를 받아 벼락을 받아내고 피해낸다.
정신없이 뒤바뀌어가는 시야 속에서 초월자들이 견뢰를 향해 접근하며 능력을 꺼내 드는 순간.
콰아아앙!!!
보석감옥이 박살나며, 축 늘어진 데이머스를 걷어차고 이벨린이 튀어나왔다.
흑발을 흩날리는 그녀의 안광이 형형한 녹색의 광채로 번뜩였다.
“어딜. 아직 안 늦었어……!!”
철컥!!
무너지는 아치와 함께 떨어진 대궁을 잡아챈 이벨린이, 머리카락을 뽑아 시위에 메겼다.
흑록색의 마력이 회전하며 화살로 변하고, 뱀과 비공정의 뒤에서 달리는 초인들을 겨눈 찰나.
이벨린의 눈앞에서 솟구친 은백색의 검광이 화살을 받아내며 뒤로 튕겨나갔다.
채애애앵!!!
“그건 안 되겠어, 저격수.”
“……!!!”
피투성이가 된 백발의 검사가 미궁 저편에 서 있었다.
대번에 상대의 정체를 알아본 이벨린이 표정을 굳혔다.
“송하……!!”
“아…… 어떻게 시간에 맞춰 여기까지 왔군…….”
새하얀 태도를 어깨에 짊어진 송하가 휘청이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의 발아래로는 끈적이는 피가 뚝뚝 떨어지며 지면을 적시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무리해본 건…… 오랜만이야. 박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힘들었을지도.”
“…….”
“약속시간에 조금 늦어서 그런데,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이 이거 맞지?”
느릿하게 태도를 들어올린 송하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저 조작술사. 되게 특이한 능력을 사용하더라. 너만 잡아두면 어떻게든 될 것 같더라고.”
“확실히, 접근전에서 그쪽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겠지…….”
하지만 이벨린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힘겹게 웃었다.
“그렇지만, 아직 이 미궁에 나만 남아 있는 건 아니거든?”
“……뭐?”
화르르르륵!!!!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방에 나 있는 복도를 통해 뜨거운 화염이 쏟아져 내렸다.
파도처럼 몰아친 불길이 떨어져 넘실대며, 화염의 해일이 되어 솟아올랐다.
그 해일 뒤에 선 배기구의 형태를 한 술식병장을 장착한 타이아나의 모습.
촤아아아악!!!
붉은 피의 장막이 솟구치며 흑발의 소녀가 나타났다.
커튼처럼 드리운 장막이 거세게 회전하면서 피의 비를 사방에 떨어뜨렸다.
“흐아악!! 뜨거워, 뜨겁……!!!”
“아아아악!! 피, 피가……!!!”
“머리가, 머리가 아파!! 으으으-”
뻐어어엉!!!
피의 비를 들이마신 초인들의 혈액이 역류하며 폭발. 뜨거운 화염의 파도가 덮어 누르며 영육을 불태운다.
견뢰의 마탑 내에서도 광역전투에 특화된 두 술사가 마지막까지 남아 전장을 개편하고, 화염 파도와 피의 비에 초인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사방에서 급격하게 늘어나는 피해에 송하가 시선을 빼앗긴 찰나 이벨린이 가속.
그녀의 신형이 엄청난 속도로 화염의 파도 위를 질주했다.
쿠과과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피의 비. 지상에 넘실대는 불바다.
인세의 지옥 위를 달리며 이벨린이 바라간을 향해 대궁을 겨눈 순간.
양손에 건틀렛을 장착한 근육질의 여성이 엄청난 속도로 이벨린의 옆에 끼어들었다.
“……!!!”
콰아아아앙!!!!
마력방출을 이용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가속해 떨어지는 일격.
즉시 대궁을 접어 방패처럼 들어 올린 이벨린이 그 공격을 받아내며 불길 위를 미끄러졌다.
6군단장, 아티야가 이벨린을 보며 웃었다.
“어라? 받았네?”
“……당신.”
“반응속도 봐라. 집행관 출신이지?”
아티야가 코를 후비적대며 이벨린을 가리켰다.
“그쪽 커리큘럼을 수료한 녀석들은 뭔가 분위기가 비슷하단 말이지. 특유의 기계적인 느낌도 그렇고.”
“권성(拳星) 아티야 엘릭슨. 정보대로 굉장히 수양이 깊은 무인이군.”
이벨린이 싸늘한 시선으로 아티야를 돌아보았다.
“딜런이 후퇴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텐데, 벌써 미궁 중심부에 도착한거야?”
“뭐야, 그 자식이 나랑 싸우다 도망친 걸 알고 있었어?”
아티야가 피식 웃었다.
“그럼 애초에 그 상황조차 너희가 유도했다는 뜻이겠군. 하지만 뭐, 상관없지.”
“…….”
“슬슬 지금쯤이면 다른 녀석들도 도착했을 테니까.”
쿠우웅!!!
미궁 벽면이 무너지며, 두꺼운 갑주를 장착한 로베라이드가 3군단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을 개조한 지네처럼 생긴, 기계화병단의 4병기가 벽면을 타고 기괴하게 몸을 꿈틀거린다.
무기질적인 눈빛을 빛내며 초능력을 끌어올리는, 에스테반 아이센 직속 고위 초능력자 부대.
전단 십좌. 9석 에스카르도 실반과, 철갑날개를 두른 길레온 마일로즈 예하 1사령부 유령편대.
무표정한 얼굴로 전장을 내려다보는 철쇄용왕과. 복도 저편에서 걸음을 옮기는 에제키엘.
견뢰를 보며 쉼없이 기도하던 추기경과 군종사제들마저 움직이기 시작하는.
흩어져 있던 토벌전 참가 전력 전원이 하나의 전장에 집결하는 이 순간.
“오오오오오오!!!!”
“위대한 영좌의 이름으로……!!!”
“이 자리에서 견뢰를 토벌한다!!!”
견뢰의 벼락이 날뛰면서 떨어지는 미궁의 중심부.
타티아나와 포혈공이 불과 피를 더해 생명을 불태우고 녹여 버리는 지옥도.
중심부에 집결한 토벌전의 양측 전력이 마지막을 불태우듯이 동시에 움직였다.
남아 있는 거리는 200미터.
콰아아아아앙!!!!!
바라간의 케찰코아틀과, 전단의 비공정이 쏟아지는 벼락에 휩쓸려 완전히 소멸한다.
무점사약결의 왜곡점이 회전할 때마다 살아남은 초인들이 자리를 바꿔가며 죽어나간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장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며 마력을 끌어올리고 전진했다.
모두가 마지막을 직감하는 이 순간. 지금이라면 고통과 두려움조차 잠시 잊을 수 있다.
살고 싶다. 편해지고 싶다.
상반되면서도 같은 의미가 된 두 가지 소망이 삐걱대는 몸을 움직이고, 벼락과 화염, 피에 스러져 소멸해 간다.
남아 있는 거리는 100미터.
“견뢰!!!”
쾅!!!!
케찰코아틀을 잃은 바라간의 몸이 흑청색 벼락에 노출되며, 사지가 폭발해 터져 나간다.
왼손이 으깨져 사라지고, 오른쪽 무릎 아래가 불타 떨어져 나갔다.
머리카락이 불타고, 얼굴이 화상으로 익으며 오른쪽 눈이 녹아 흘러내렸다.
찢어진 뱃가죽 사이로 창자가 녹아내리며 오물처럼 흘러내리는 처참한 형상.
하지만 바라간은 망설이지 않고 주력을 끌어올렸다.
남아 있는 거리는 50미터.
“날 봐라!!!!!”
편람의 밀종주술을 이어받은 주술사가, 묵린을 불태워 전력으로 발하는 주술.
익숙한 승천자의 편린을 느낀 견뢰가 바라간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운 찰나, 바라간의 모습이 사라졌다.
무점사약결의 왜곡점이 발동해 위치를 재구성하는 것과 동시에 견뢰가 멈칫하고, 에스테반이 움직였다.
그 역시 어깨가 터지고 등가죽이 찢어져, 척추뼈가 훤히 드러난 처참한 몰골.
팔뚝의 살갗이 다 떨어져, 뼈를 보이는 손을 들어 올린 에스테반이 말했다.
남아 있는 거리는 20미터.
“조작술사.”
후욱!!!
대답은 없었다.
암흑의 왜곡점이 회전하는 것과 동시에 무점사약결의 [재구성]이 그의 위치를 조정한 찰나.
흑청색의 뇌전을 휘감은 견뢰가, 머리 위에 떠오른 암흑의 왜곡점을 노리고 전력으로 마법을 사출.
폭주하는 벼락과 공간 왜곡점이 충돌하며 어마어마한 충격파를 흩뿌렸다.
쩌어어어어어엉!!!!
“큭……!!!!”
어떻게든 버티고 있던 초인들조차 순간적으로 눈이 멀어버릴 만큼 강렬한 광량.
그 빛 속에서 빅터의 신형이 흐릿해지다, 이내 그대로 소멸해 사라지기 시작했다.
“빅터!!!!”
영역을 펼쳐 견뢰의 시선을 끌고, 아군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찰나의 순간.
마지막으로 무점사약결의 능력을 부여받은 에스테반이 떨어지는 벼락을 피해 미궁 중심부로 빨려 들어갔다.
정신을 차린 순간, 에스테반은 찬란한 황금빛으로 번뜩이는, 아홉 장의 날개 앞에 서 있었다.
만신창이가 된 바라간. 피투성이가 된 송하. 한 팔이 떨어져 나간 추기경.
살아남은 초월자들이 에스테반의 옆에 서서 멍하니 그 자태를 올려다보았다.
“…….”
“도착, 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에 홀릴 것처럼, 완벽함에 가까운 아름다운 조형.
곡선의 조형과 깃털의 조각. 날개의 형상마저 천사의 그것을 닮은 듯이 존엄하고 고결한 자태.
순간적으로 상황을 잊고 그를 바라보던 에스테반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남아 있는 거리는 1미터.
해야 하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견뢰…… 한 사람의 구도자로서 네 도전에는 경의를 표한다.”
촤악!!
부서진 능화의 파편이 녹아내려 수은으로 변했다.
에스테반이 손을 뻗어 방대한 양의 수은을 움켜쥐며 말했다.
“하지만 네 도전은 전단에서 용납할 수 있는 결과가 아니며…… 영좌께서 바라시는 방향도 아니지.”
이능개화전단의 5석. 수은조작 능력을 지닌 그가 토벌전에 참가한 이유.
그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견뢰의 앞에 선 한가지 이유.
“전능하신 영좌의 이름으로…… 떨어져 줘야겠다.”
수은(水銀)은 상온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금속. 동시에 영적인 의미로 가장 반응성이 높은 촉매다.
에스테반이 다루는 수은은 고대부터 불로불사의 수단으로 숭상받으며 영성을 담는 그릇으로 치부되었고.
그렇기에 그의 수은에는 에스테반 본인이 아닌 ‘타인’의 영성이 잠깐이나마 대신 담길 수 있었다.
콰직!!!!
손에 잡은 수은을, 일말의 망설임조차 두지 않고 날개 안에 꽂아넣는다.
그 안에 미리 담겨있던 ‘아펠리아’의 영성이 수은을 타고 견뢰의 내면을 파고들었다.
편람의 묵린을 불태운 바라간과, 태도를 쥔 송하가 반대방향에서 의념을 밀어넣었다.
쩌적……!!!!
박사가 열어젖힌 승천문과 충돌하며 강제로 중단된 승천의식의 막바지.
폭주하는 벼락을 쏟아내는 와중 영좌와 편람의 의념이 동시에 의식에 개입해 과정을 비튼다.
쩌적, 쩌저적……!!!!
수만에 달하는 초인들의 목숨을 제물로 바쳐, 전쟁병기들을 방패삼아 내던지며.
빅터의 자성영역을 휘감고, 승천에 준하는 상위 존자들의 힘과 의념을 불순물로 삼아.
발칸 외곽에서 시작된 전쟁을 49구역의 최심부까지 끌고와, 무수한 희생 끝에 마침내 이곳에서.
비로소 화신체의 승천의식을 완벽하게 망가뜨리며 헤집고 폭주시킨 그 순간.
아홉 장의 날개가 폭발하며, 검푸른 뇌광이 미궁 중심부를 뒤덮고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아!!!!!!
“큭……!!!”
“아악……!!!!”
질량술식을 부여받은 황금빛의 부품과 잔해들이 사방에서 폭풍처럼 흩날린다.
타티아나가 영창한 화염의 파도도, 포혈공이 휘두르던 피의 장막도 온데간데없이.
미궁 중심부를 굳게 지키던 이벨린의 모습조차 뇌광에 휩쓸려 사라진 그 순간.
“…….”
휘오오오오오!!!!!
전신이 검푸른 벼락으로 뒤덮인 누군가, 부서진 황금빛의 날개 안에 홀로 앉아 있었다.
황금빛 날개가 부러져 떨어지고, 사방으로 복잡한 부품이 널브러져 녹아내리는 폐허.
그 중심부에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기대 앉은, 흑청색 뇌광으로 일렁이는 신형.
토벌전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목도하는 ‘인간’의 형상.
그럼에도, 이 전장의 모두가 저 존재가 누구인지 직감하고 있었다.
“서, 성공했다…….”
만신창이가 된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
곧바로 숨이 끊어진 동료를 대신해 누군가 중얼거렸다.
“승천의식을, 저지했어…….”
“견뢰를…… 끌어냈…….”
“저 자가, 바로…….”
파직, 파직!!!
수만 명을 학살하고, 무수한 초인들의 생명을 빼앗은 흑청색 벼락이 넘실거린다.
인간의 그릇에 벼락을 가득 채워넣고, 다른 모든 물질을 태워 버린다면 저러한 모습일까.
형태만을 유지한 채 그 내면을 모조리 벼락으로 채워넣은 듯한 뇌신(雷身)의 형상.
부서진 옥좌 아래 잠들듯이 기대 앉은 그 모습을 보며, 바라간이 숨을 헐떡였다.
“견뢰…… 저놈이…….”
“온몸이 벼락으로 이루어져 있군…….”
에스테반이 힘겹게 시선을 들어 올렸다.
견뢰는 승천의식을 통해 육체를 분해하여 다시 구축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의식이 완전히 실패한 지금 견뢰가 저러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은-
“육체 구성에 실패하고도…… 아직, 살아 있는 건가…….”
“하핫, 이미 인간조차 아니잖아…….”
빅터가 영역을 펼쳐 견뢰를 상대하고 희생했음에도, 겨우 의식을 실패시키는 것에 그쳤을 뿐.
그 사실을 깨달은 살아남은 초인들이 헛구역질을 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럼에도…… 저런 모습이라는 것 자체가, 한계겠지.”
“마지막이다…… 저게, 마지막…….”
“이 전쟁의 끝이다……. 다들 움직여.”
상대는 의식에 실패하여 자신의 육체를 제대로 구성조차 하지 못한 상태.
그저 자신의 힘을 그러모아 육체의 형태로서 겨우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승천의식을 실패시킨 시점에서 필연적으로 찾아온 토벌전의 마지막 결전.
견뢰 본인을 직접 상대하여,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영멸시킨다.
철컥!!
송하가 태도를 들고 움직이며, 바라간이 주력을 끌어올렸다.
살아남은 군단장들이 각자의 부대를 이끌고 움직이며 자리를 잡았다.
추기경이 기도를 올리고, 에스테반이 정신망을 조작해 이능을 증폭시켰다.
무거운 긴장감. 한없이 날카롭게 일어선 공기.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초월자들이 남아있는 여력을 바닥까지 긁어내려던 그 순간.
옥좌 위에 앉아있던 뇌신이 눈을 떴다.
키이이잉!
희미한 바람이 뺨을 스치며, 주변의 모든 것이 느려진다.
극한까지 확장된 의식 속에서 체감시간이 가속하는 기적.
하지만 옥좌에 앉아 있던 견뢰는 그들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았다 뜬 찰나 옥좌에서 일어나 시선을 들어 올렸을 뿐.
‘-!!!!’
극한까지 느려진 의식 속에서 육성은커녕, 전음을 전할 시간도 없었다.
고개를 돌려 지상을 관조한 뇌신이, 시선을 거두는 것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다음 순간 송하의 심장을 한 팔로 꿰뚫으며 현실에 강림했다.
콰직!!!
“……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