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240
약먹는 천재마법사 1240화(1240/1243)
약먹는 천재마법사 1240화
견뢰 토벌전(31)
피를 흘리며 쓰러진 시체들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뜨거운 혈향이 바람에 섞여 흩날리며 미지근한 죽음의 냄새로 변했다.
휘오오오오오!!!!
창백하리만치 새하얀 헤일로를 두르고, 전신을 검푸른 벼락으로 번뜩이며.
자신이 죽인 시체들에게 자애로이 양손을 내민 채 걸음을 옮기는 존엄한 자태.
“신…….”
기괴하고 흉측하며, 어딘가 망가진 것처럼 공허하고도 거룩한 신성(神性).
모든 이들이 그 모습을 보며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데이머스가 손을 부들부들 떨며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데이머스의 목숨을 대가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고민조차 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상대는 8레벨의 군단장조차도 장난감처럼 망가뜨리는 괴물이었다.
그의 발 아래 으스러진 블레이버 마탑의 염주도. 등 뒤에 얼굴째로 녹아내린 이능개화전단의 9석도.
마지막까지 그를 숭배하다 머리가 터져나간 교단 사제들과, 힘을 측정하지 못하고 고장 난 개조병사.
데이머스에 비견되는, 혹은 그보다 뛰어난 전투능력을 지닌 초인들이 벌레처럼 짓밟히며 뭉개지고 있다.
토벌전이 진행되는 내내 단 한 번도 견뢰에게서 상정하지 않았던 무극(武極).
감히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무위를 자신의 벼락에 섞어 휘두르는 파멸.
아무리 머릿속으로 되새겨도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를 납득할 수가 없다.
어째서 견뢰가 마지막 순간에야 이러한 권능을 드러낸 것인지도 짐작할 수 없다.
끝없는 미혹 속에서 데이머스의 심상이 뒤엉키며 스스로의 정신을 갉아먹던 그 순간.
파삭.
견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휘오오오오!!!
창백한 헤일로를 두르고 벼락처럼 번뜩이며, 자신이 죽인 이들을 향해 돌아서는 모습.
느릿하게 걸음을 돌려세우는 것만으로 주변에 널브러진 시체들이 증발해 소멸한다.
육신을 남기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한 줌의 잿더미가 되어버리는 모습.
잿바람 속에서 창백한 광채가 범람하고, 견뢰가 그를 보며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린 그 순간.
으직.
견뢰가 들어올린 손으로 자신의 목을 꿰뚫었다.
“……아?”
으직. 으직.
손가락을 들어, 느릿하게 자신의 목을 긁어낸다.
손가락을 세워 쇄골을 파고들어 어깨를 조금씩 뜯어낸다.
그때마다 견뢰의 몸에서 검푸른 뇌광이 흩날리며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이들이 숨도 쉬지 못하고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뭘, 하는 거냐.”
“대체, 무슨…….”
으드득. 으드드득.
시체들의 사이에 멍하니 서 팔을 쥐고 천천히 살점을 찢어발긴다.
한 손으로 목을 뚫고 그 안쪽의 내용물을 느릿하게 한 점씩 뜯어낸다.
섬뜩할 정도로 기괴한 파열음과 함께, 그때마다 검푸른 벼락을 피처럼 뚝뚝 흘러나왔다.
마치 인위적으로 자신을 뜯어내고, 강제로 손상을 입히는 듯한 기괴한 모습.
한발 늦게, 데이머스가 그 행위의 의미를 짐작하고 목소리를 덜덜 떨었다.
“자해……하고 있어……?”
콰드드득. 콰드드드드드득-
무예를 휘두르고, 학살을 저지르고.
자신이 만들어낸 시체의 한복판에 앉아 끊임없이 자해를 반복한다.
수천수만 번 해온 루틴을 반복하듯 기계적인 동작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스스로를 망가뜨려 왔다는 것처럼.
“이건, 뭔…….”
그것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머나먼 과거에 존재했던 ‘첫 번째’의 잔흔이라는 사실을, 데이머스는 알지 못했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망가진 채, 습관을 넘어 강박으로 굳어버린 광증의 잔재.
그 무심한 동작에서 완전히 부서진 인간성을 느낀 데이머스가 처음으로 두려움에 빠진 순간.
견뢰의 등 뒤에 황금빛의 헤일로가 폭발하듯 터져 나와 거세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부아아아아앙!!!!
“……!!!!!”
창백한 헤일로와 황금빛의 헤일로가 견뢰의 등 뒤에서 교차하며 거세게 충돌했다.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창백한 빛과, 스스로를 수복하는 황금빛이 충돌하며 회전하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며 녹아내리듯이 맞붙어 무한대의 형상을 그린 순간.
견뢰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듯이 폭발한 마력이 권역 안에 가득 차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
헤일로의 충돌로 터져 나온 충격파가 시공간을 밀어내고 권역이 무너져 내린다.
토벌전이 시작된 이래 끊임없이 쏟아진 포화와 난전. 승천의식의 실패로 인한 반동.
마치 내구성의 한계를 실험하듯 연달아 이어졌던 충격 속에서 부서진 미궁.
그 끝에서 견뢰 본인이 터트린 힘의 역류를 이기지 못하고 권역이 붕괴한다.
콰과과과과!!!!
검푸른 성운이 갈라지며, 먹구름 낀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이 미궁에 들어오기 직전까지 존재하고 있었던 49구역 바깥의 현실.
“하늘이 다시…… 열리는군.”
“권역이 무너진다…….”
그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마주한 초인들이 흠칫 시선을 들어 올린 찰나, 뒤에서 잔뜩 쉰 바라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데이머스…….”
치이익……!!
전신의 피부가 불타 화상으로 일그러지고, 한쪽 눈이 녹아내린 주술사.
왼쪽 팔목과 오른쪽 무릎이 떨어지고, 손톱과 체모마저 녹아내려 체액과 같이 흐르는 처참한 형상.
승천의식을 저지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 견뢰의 벼락에 직격당한 폐해.
하지만 바라간의 한쪽 눈은 아직 초점을 잃지 않고, 권역을 열어젖히는 견뢰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안 끝났다…….”
“……바라간 님.”
“여기까지 온 이상…… 어차피…….”
치이이익……!!
살점과 근육이 녹아내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세운다.
전신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죽어가는 와중에도 주력을 끌어올렸다.
촤악!!
검은 피를 뚝뚝 흘리면서, 왼쪽 손목과 오른쪽 무릎에 나무 토템을 박아넣었다.
손과 발을 대신해 토템을 부목처럼 절단면에 박아넣은 바라간이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가자. 내가, 앞장선다…….”
“……알겠습니다.”
바라간과 데이머스 모두 이미 진작 한계에 도달한 상황.
남아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이 전장에서의 결말 역시 진작에 정해져 있다.
더 이상 정론과 반박이 의미가 없어지는 순간까지 왔다면, 해야 할 일은-
“현재 견뢰는 전격마법과는 완전히 다른 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불가해의 무예…… 혹은 초월에 도달한 권술의 일종이겠지요.”
데이머스가 조용히 말했다.
“지금까지의 전황으로 짐작건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힘은 아닐 겁니다. 여기까지 와서 저 모습을 드러낸 것도 분명 제약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제약…… 이라면?”
“생각나는 가능성은 저것 자체가 일종의 프로토콜…… 견뢰 본인의 의지가 소실되었을 경우 나타나는 대체인격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저것은 승천의식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이 아닐지…….”
“……보험이라.”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던 에스테반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그렇다면, 역시 지금이 유일한 기회겠군…….”
“…….”
복잡한 설명도, 짜임새를 갖춘 계획이나 논의도 필요 없었다.
견뢰가 학살과 자해를 반복하며 비합리적인 판단으로 자신을 훼손시키는 이변.
등 뒤에서 두 개의 헤일로가 충돌하며 그 여파로 이 권역이 무너져 내리는 지금.
그 모든 과정에서 견뢰의 벼락이 빠른 속도로 소모되어가는 오직 이 순간.
그저, 저항다운 저항을 해볼 수 있는 것이 지금뿐이라면-
파앗!!!
그 이상의 논의는 없었다.
나무 토템을 무릎 아래 박아넣은 바라간과, 수은으로 내장을 대체한 에스테반이 동시에 뛰었다.
“견뢰. 이쪽이다……!!”
에스테반이 창백한 표정으로 초능력을 끌어올리며 손을 뻗었다.
그의 의지에 따라 조작된 수은이 일어나, 한참 자해에 몰두하는 견뢰를 향해 내리꽂혔다.
치이익!!
자해하는 견뢰의 육체를 뚫기는커녕, 뇌광에 맞닿는 순간 증발해 사라지는 수은 칼날.
하지만 견뢰는 에스테반의 수은을 보자마자 자해를 뚝 멈추고, 천천히 몸을 돌려세웠다.
마지막 순간 승천의식을 실패시키는 데 크게 일조했던 아펠리아의 영성.
그것이 에스테반의 수은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견뢰 역시 인식하고 있었던 것.
에스테반 역시 그것을 눈치채고 즉시 몸을 돌려 전력으로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창백한 안색으로 숨을 헐떡이던 에스테반이 시선을 돌렸다.
“주술사……!!”
“그래. 알고…… 있어……!!!”
에스테반의 존재를 인지한 이상, 견뢰는 이제부터 계속해서 그를 경계하기 시작할 터.
지성을 잃어버린 지금, 어쩌면 다른 이들을 제쳐두고 그를 죽이는 일에 몰두할지도 모른다.
에스테반이 오래 버틸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한순간이나마 아군에게는 시간이 생긴 셈.
아군의 승리를 점칠 수 없게 된 절망적인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은 하나.
여기 모인 전원이 목숨을 쏟아부어 저 괴물을 깎아내는 것뿐이었다.
파아아아앗!!!!
양손을 맞잡은 바라간의 발아래서 무채색의 파문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쿨럭……!”
견뢰의 미궁 안에서 한번 사용해 아작난 뒤로, 연달아서 사용하는 자성영역 전개.
반동을 버티지 못한 바라간의 코와 입을 타고 검은 피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바라간은 자신의 수명이 깎여나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이를 악물고 영창을 시전했다.
“자성영역…… 전개.”
자성영역 전개
연원위계 심상구현
[편백사사궁(編魄私蛇宮)]콰과과과과과과과!!!!!!
수백 마리 거대한 뱀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뒤엉키며 거대한 뱀의 둥지를 구축했다.
미궁의 잔해 사이로 뱀의 둥지가 솟아오르면서 전장을 개변하고, 순식간에 아군을 품은 순간.
뱀의 둥지 전체가 살아 있는 토템이 되어, 내장된 주술들을 아군에게 마구잡이로 흩뿌리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바밧!!!!!
바라간의 자성영역, 편백사사궁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자성영역이자 토템 자체.
영역을 유지하는 동안에 한해, 바라간은 토템에 의존하지 않고 밀종주술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
토템을 사용해야만 모든 계통 주술을 다룰 수 있는 바라간에게 허락되는 한계를 넘어서는 힘.
[손상수복] [의념증강] [정신보강] [내구강화] [괴사면역] [마력환원]콰아아아아아!!!!!
신체능력과 정신력을 끌어올리는 증강주술. 고통을 마비시키고 감각을 지우는 마취주술.
생명력을 불태워 죽어가는 초인조차 잠시나마 싸우게 만드는 희생주술. 죽은 영혼을 불어넣어 육신에 잡아두는 인신주술.
견뢰와 충돌해 으스러지거나 육편이 된 초인들조차 잠깐이나마 억지로 전투에 참가시키는 강제력.
바라간의 자성영역이 사라지면 물거품처럼 사라질 기적이라 해도, 아직 더 싸울 수 있다.
그것을 자각한 초인들이 사방에서 부서진 몸을 이끌고 천천히 일어섰다.
“끄, 윽…….”
“아, 아아아……!”
피칠갑을 한 아티야가 반으로 부러지고 으스러진 팔뚝을 들어, 벌벌 떨며 마력을 회전시켰다.
갑주 파편이 어깨와 허리를 꿰뚫고 튀어나온 로베라이드가 내장을 쏟아내며 의념을 끌어올렸다.
생사의 경계선에서 바라간의 주술로 의식을 차린 초월자들이 경련하며 소우주를 발동.
남아 있는 목숨을 불태우며 심상을 끌어올렸다.
“소우주…… 발동.”
“……천둔.”
내면세계 소우주 : 마력분사
심의 만개
[팔천(捌穿)]내면세계 소우주 : 천둔
심의 증량
[일만이천삼백발천근(一萬二千三百撥千斤)]콰아아아앙!!!!
목숨을 불태워 발현시킨 소우주가 현현하며, 아티야와 로베라이드가 동시에 앞으로 튀어나갔다.
오른쪽 상반신을 잃어버린 채 죽어가던 추기경이, 피투성이가 된 기도문을 쥐고 중얼거렸다.
“저자는, 그분이 아니구나…….”
성역선포
[대와신열(貸蛙神熱).]푸화아아아악!!!
추기경의 발아래서 거대한 두꺼비의 혀가 솟구쳐 지상을 핥아내듯 휩쓸었다.
혓바닥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마다 괴이할 정도로 창백한 불꽃이 피어나 타올랐다.
퍼버버버벙!!!
미궁 바깥에 남아 있던 블레이버 마탑의 염위신전이 하늘 위에 떠올라 폭격을 쏟아냈다.
완전히 망가진 케찰코아틀과 능화의 파편이 쏟아지는 불길 속에 장작이 되어 타올랐다.
“오오오오오!!!!”
흩날리는 교단과 마탑의 화우(火雨) 속에서 소우주를 끌어올린 장교들이 질주했다.
에스테반을 따라 돌아선 견뢰의 등 뒤에서, 목숨을 불태운 의념을 휘둘러 그 몸에 때려 박았다.
파직-!!!
쿠화아아악!!!
흑청색의 번개가 검푸른 날개처럼 일렁이며, 뒤에서 달려드는 초인들을 쓸어버렸다.
살아남은 군종사제들의 육신을 녹이고, 하늘 위에서 비행하는 염위신전을 저격해 떨어뜨렸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뱀의 둥지 위로 떨어진 염위신전이, 교단의 창백한 불꽃에 휩싸여 활활 타오른다.
그 중심부에 서 있는 견뢰를 향해 다른 초인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제히 달려들었다.
“견뢰!!!!!!!”
“함께 가자. 마지막은……!!!”
“이길 수 없다면, 적어도……!!!”
전쟁의 승패도, 생사의 여부도. 모두 눈앞의 괴물을 어떻게든 깎아내는 일에 달려 있다.
서로 속한 조직의 이해관계도, 각자의 믿음과 신념도 이 순간에는 모두 잊는다.
완전히 미쳐 자신과 타인을 가리지 않고 망가뜨리는 이 괴신(怪神)을 여기서 막는다.
파직!!
에스테반의 뒤를 쫓던 견뢰가 검푸른 안광을 번뜩이며 고개를 돌렸다.
뇌광이 번뜩였다 느낀 순간, 초인 넷의 심장을 꿰뚫고 목을 날려 버렸다.
검푸른 날개가 펼쳐지며 술식포화를 쳐내 밀어내고, 창백한 헤일로가 회전하며 주먹에 휘감긴 찰나.
사방에서 달려드는 군인과 사제, 능력자들을 남김없이 갈아버리며 회생 불가능한 시체로 만들었다.
콰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신의 이름으로……!!!”
“아이센 님. 먼저 가겠습니다……!!”
성질변화를 극한으로 익힌 6레벨의 베테랑. 위계를 완성한 7레벨의 도달자.
각자의 조직에서 최정예 전력으로 대우받는 초인들이 미친 듯이 갈려 나가며 죽어간다.
본신무예와 술식의 비의. 목숨을 바쳐 꺼내든 비장의 수를 검푸른 뇌신의 앞에 내던지며.
그 걸음 한번조차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육편이 되어 으깨지며, 온몸이 불타 뭉개졌다.
콰드드드득!!!
“쿨럭……!! 우웨에에엑!!!”
포탄처럼 나가떨어지는 시체를 한 팔로 받아내며, 아티야가 절뚝이며 전진했다.
마력방출을 극한까지 터트리며 쏟아지는 뇌광을 돌파해 뒤로 회전.
뼈가 부러지고 튀어나와 뭉개진 팔을 휘둘러 견뢰의 옆구리에 때려 박았다.
콰아아앙!!
견뢰의 육신을 타고 새파란 충격파가 일어나, 아티야의 왼팔을 거꾸로 휘감았다.
흑청색의 뇌전이 짐승의 아가리처럼 아티야의 상반신을 물고 폭발하듯이 가속.
그녀의 왼팔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며 뒤로 터트려 날려버렸다.
“칵……!!!!”
왼쪽 팔과 어깨, 쇄골과 목 근육이 통째로 날아가 없어지는 치명상.
하지만 아티야는 피를 철철 흘리고 숨을 헐떡이면서도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핫, 나…… 여기서…… 죽는……!!!!”
으지지지직!!!
로베라이드의 하복부에 구멍이 뚫리면서, 갑주를 뚫고 내용물이 줄줄 새어 나왔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채 앞으로 고꾸라지는 노장의 신형.
하지만 흐릿해진 로베라이드의 눈동자는 견뢰의 주변에서 폭발하는 마력을 향해 있었다.
쿵!!!
“마력, 소모…….”
견뢰 역시 그들과 싸우기 위해 마력을 사용하고 있다.
그를 현실에 존재하게 하는 동력을, 그들을 죽이기 위해 계속해서 ‘소모’하고 있다.
“할 수 있어……!!!!”
데이머스가 숨을 허덕이며 보석에 마력을 불어넣고 포격술식을 영창했다.
저 항거할 수 없는 뇌신을 상대로 승리하지 않아도 좋다.
더 이상 그런 의미 있는 결과나 수확 따위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른 이들과 같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저 괴물의 힘을 조금이나마 깎아낼 수 있기를.
승천에 실패한 저 초월자가 세계에 존재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낼 수 있다면.
[…….]터터터터텅!!!!
격해지는 사투 끝에서 견뢰 역시 더 이상 힘을 절제하지 않았다.
검푸른 뇌광을 날개처럼 펼친 견뢰가 사방에서 달려드는 군인들을 모조리 죽였다.
발아래 쓰러진 로베라이드의 등허리를 밟아, 척추와 목을 부러뜨리고 터트렸다.
쾅!! 으드드득!!!
왼쪽 상반신이 날아간 아티야를 걷어차 날려버린 직후, 뇌신이 시선을 들어 데이머스를 응시한 찰나.
아광속에 도달한 견뢰의 신형이 뱀의 둥지를 사선으로 주파해 지상에 내리찍히고.
데이머스의 앞에 내려선 에제키엘과 어마어마한 속도로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두 사람의 신형이 지상에서 충돌하며, 수십 미터 크기의 충격파가 양쪽으로 폭발했다.
그 충격에 이번에야말로 에제키엘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천이 걷히며, 그 얼굴을 드러냈다.
“……!!!”
놀라울 정도로 수려한 미형. 인간이 아니라 예술품과 같은 인위적인 위화감이 느껴진다.
발아래 쓰러져 있던 데이머스가 무심코 에제키엘의 얼굴을 보고 멈칫한 찰나.
“판데모니엄.”
에제키엘이 데이머스를 내려다보았다.
“뒤로 걷는 자에게 은혜를 입었으니 한번만 말하지.”
치이익!!!!
에제키엘이 펼친 보호막을 뚫고 짓쳐든 견뢰의 손이, 황족의 손과 맞물려 타오른다.
송하의 참격은 물론이고, 마탑의 전격마법조차 막아내던 에제키엘의 방벽을 뚫어내는 위력.
콰드드득!!!
“이 초월체는 황성이 건재하던 시절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초유의 개념이다.”
하지만 에제키엘은 실시간으로 벼락에 짓이겨지는 손을 두고도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위대한 실패자들과 비등한 타락을 품었으니 인세의 법으로 맞서는 것이 우행.”
“…….”
“하나 스스로 끝을 바라마지 않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이다.”
“그게, 무슨…….”
“망가진 신성. 공허에 잠긴 피학성이라.”
에제키엘이 눈을 감았다.
“그가 원하는 결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군.”
“…….”
육체를 잃고 뇌신이 된 견뢰가, 스스로 파멸을 원하고 있단 말인가.
어쩌면 학살과 자해를 반복하던 망가진 행동조차 그 증거였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런 공허함이나 허무주의는 데이머스가 알고 있는 견뢰의 것이 아니었다.
눈앞의 뇌신이 견뢰와는 다른 존재이기에 그러한 감정이나 의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데이머스의 머릿속에 상념이 스쳐지나갔지만, 그것을 조합해 정답으로 만들 시간은 없었다.
뇌신과 황족이 뱀의 둥지 가장 깊은 심처에서 충돌해 멈춰선 찰나.
에제키엘이 자신의 손을 희생하여 시간을 벌어준 잠깐의 여유.
황족이 물러서는 것과 동시에, 살아남은 초월자들이 목숨을 불태우며 마지막을 향해 내달렸다.
“오오오오!!!!”
바라간이 오공에서 검은 피를 흩뿌리며, 자신의 내장을 촉매로 삼아 극위주술을 전개.
흘러내리는 창자를 끊어내 술법진을 그리고, 육체를 제물로 삼아 위력을 끌어올린다.
[밀법 종문 사락 태하 말제] [윤회포 : 종경]법문을 기원으로 삼는 밀종주술에 존재하는 최상위 주술포격.
그중에서도 최후반부 구절에 해당하는 오의가 바라간의 양손을 타고 끈적하게 흘러넘쳤다.
쿠과과과과!!!!!
“의식병기…… 현현.”
[은위성전(銀衛聖殿)]에스테반이 부상을 막고 있던 수은까지 모조리 끌어다 초능력을 터트렸다.
흘러나오는 내장과 창자를 무시하고, 능화에 사용된 수은까지 긁어내 전신을 휘감았다.
쿠오오오오!!!!
[염열나선(炎熱螺旋) : 자화도래(自禍到來)] [시정명령 : 엔지니움 포트리스 자폭 시퀀스 돌입]염위신전과 엔지니움 포트리스가 폭발하며 뱀의 둥지를 활활 불태웠다.
전장에서 살아남은 모든 생명을 남김없이 불살라 지워버리는 폭격.
그 중심에서 검푸른 뇌광이 미친 듯이 번뜩이면서 끊임없이 소모되어 나간다.
쿠과과과과과과과!!!!!!
파직, 파직……!!!!!
바라간의 윤회포를 지워없애고, 그의 자성영역마저 휩쓸어 소멸시킨다.
교단의 성역과 기계화병단의 엔진, 마탑의 신전을 차례대로 불태우고 떨어뜨려 짓뭉갰다.
술식과 소우주를 휘두르는 초인들을 터트리고 찍어눌러 튕겨내며, 그 생명을 거둔다.
콰아아앙!!!!!
솟구치는 벼락와 화염 속에서, 전신을 수은의 갑주로 두른 에스테반이 손을 뻗었다.
섬전처럼 돌아선 견뢰가, 의식병기로 무장한 초능력자의 육신을 단번에 관통해 터트렸다.
쩌어어엉!!!!
에스테반의 몸이 꿰뚫려 휘청이며, 그를 휘감고 있던 수은이 폭발해 증발한다.
하지만 에스테반은 상반신 전체를 꿰뚫린 뒤에도 아무런 반응조차 내보이지 않았다.
단지 손을 뻗은 모습 그대로, 자신이 두른 수은의 갑주에 휩싸여 그대로 멈춰 있었을 뿐.
그제서야 에스테반이 이미 선채로 숨이 끊어졌다는 사실을 견뢰가 깨달은 순간.
등 뒤에서 나타난 바라간이 견뢰의 등 뒤에 떠오른 창백한 헤일로를 움켜쥐었다.
콰직!!
“잡았, 다…….”
두 눈이 완전히 녹아내린 바라간이 피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섬뜩하게 웃었다.
“견뢰. 닿……았…….”
[…….]견뢰는 헤일로를 붙잡은 바라간을 보고도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치 그의 상태를 알고 있는 듯, 태연하게 그를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을 뿐.
풀썩!!
견뢰를 잡아세우지도 못하고, 그 걸음에 끌려나간 바라간이 힘없이 고꾸라졌다.
기껏 잡은 헤일로를 부러뜨리지도 못하고 견뢰의 뒤에 쓰러진 바라간의 모습.
이미 그 눈빛은 초점을 잃고, 심장마저 멈춰 완전히 숨이 끊어져 있었다.
“…….”
두 눈을 감지도 못하고 고꾸라져 숨이 끊어진 바라간의 시체.
수은의 갑주에 휩싸인 채 선채로 죽어버린 에스테반의 주검.
토벌전의 최전선에서 양 축을 맡았던 두 초월자가 동시에 견뢰의 눈앞에서 사망한 순간.
“……아.”
데이머스는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견뢰를 보고 마지막을 직감했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납득할 수 없는 결말조차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것을 쏟아붓고도 한참이나 모자라 끝을 가늠할 수 없었을 뿐.
토벌전에 참가한 동료들과 같은 결말을 맞이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저 지금까지 살아 있던 것 자체가, 오히려 그에게는 천운에 가까웠겠지.
저벅.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어온다.
눈을 감았다 뜨는 순간, 아득하게 먼 저편에서 이미 앞에 도달해 있었다.
창백한 헤일로와 황금빛의 헤일로가 충돌해 부서지는 압도적인 경관.
그것을 머리 위에 띄워 올린 채, 검푸른 뇌광으로 물들인 손을 천천히 뻗는 모습.
데이머스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그 손길을 보며 눈을 감으려던 순간.
후욱-
견뢰가 아무렇지도 않게 데이머스를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아?”
파직, 파직……!!!!
승천의식이 실패한 직후 시작된 학살.
살아남은 초인들을 하나씩 죽여가면서 진행된 연전.
첫 번째를 따라 하며 반복된 자해 속에서 조금씩 망가져 가던 존재력.
두 개의 헤일로가 충돌하며 권역을 무너뜨릴 정도로 과하게 사용된 동력.
세 번의 결전 끝에 자신의 죽음을 바쳐가며 그의 소모를 노리던 초월자들의 저항.
조금씩, 아주 미약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누적된 소모가 쌓이면서 선명해지고.
마침내, 지금 이 순간-
[…….]사방에 산처럼 쌓인 시체를 두고 견뢰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고요하다 못해, 일견 거룩하게 느껴지는 침묵 속에서 뇌광이 흐릿하게 번뜩였다.
쿠구구구구!!!!
데이머스의 뒤에 놓인 부서진 옥좌를 향해 느릿하게 걷는다.
완전히 무너져내린 미궁의 잔해. 황금빛 잔해물이 쌓여 솟아오른 모습은 부서진 옥좌처럼 보였다.
잔해물 사이로 걸어오른 견뢰가 그 중심부에 자리를 잡고 천천히 기대앉았다.
[…….]휘오오오오오!!!!!
메마른 바람이 불어오는 텅 빈 폐허.
권역도, 미궁도, 바라간의 자성영역과 전쟁병기들도 뭉개져 널브러진 전장.
부서진 옥좌에 앉아,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던 견뢰가 팔을 괸 채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수만 명을 학살한 초월체가 기나긴 의무를 마치고, 이윽고 완전한 안식에 든 순간.
빠직!!!
견뢰의 머리 위에 떠오른 창백한 헤일로가, 유리처럼 금이 가 부서져 내린다.
동시에 그의 몸에 차오르던 뇌광이 거짓말처럼 희미해지고.
화신체가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어째, 서.”
데이머스가 창백하게 굳은 표정으로, 자애롭게 고개를 기울인 채 잠든 신을 올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