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242
약먹는 천재마법사 1242화(1242/1243)
약먹는 천재마법사 1242화
견뢰 토벌전(33)
미궁과 권역조차 해체되어 어두운 하늘을 드러낸 49구역의 폐허.
추락해 부서진 황금빛의 날개 파편에 기대 앉아 잠든 화신체의 존재.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데이머스의 옆을 지나쳐, 창백한 안색으로 그 앞에 쓰러진 송하를 지나.
화신체를 향해 주력을 끌어올리는 바라간의 바로 뒤에서 멈춰 선 마법사의 존재.
“……너는.”
무표정한 레녹의 얼굴을 보는 순간 바라간의 사고가 얼어붙었다.
무거운 흑색의 코트. 냉정하고 이지적인 인상을 지닌 흑발의 청년.
마른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섬뜩할 정도로 차분하고 서늘한 기척.
직접 얼굴을 보는 것은 처음임에도 직감할 수 있었다.
이 토벌전에서 몇 번이고 마주해 온 초월자의 영성을 모를 수는 없었다.
군단 측의 초인들이 지금껏 목숨을 걸고 깎아내고자 노력했던 대적자.
이길 수는 없더라도, 함께 소모시켜 끝을 노리고자 하였던 그 모든 순간들을 무색하게 만드는.
그들의 발악과 저항, 발버둥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고 이 순간 말을 걸어온.
단 한 순간도, 바라간의 뒤에서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말도, 안…….”
바라간이 순간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조차 잊고 중얼거렸다.
“네가, 왜 여기에-”
“두 번 말하지 않으면 못 알아듣나?”
으직-
마법사는 대답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레녹이 시선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바라간의 몸이 어느새 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컥……!!!”
보이지 않는 무형의 마력에 온몸이 짓눌려 으스러진다.
부서진 뼛조각이 폐와 심혈관을 찌르고 바라간의 얼굴을 보랏빛으로 물들였다.
에단의 피를 이용해 재생한 바라간의 강인한 육체를 순식간에 다시 죽음에 가깝게 몰아넣는 압도적인 힘.
벼락의 편린조차 보이지 않음에도 온몸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감히 그 원리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불가해의 마법.
토벌전이 이어지는 내내, 군단이 마지막 순간까지 경계했던 초월적인 마성.
이 세계의 법칙을 직접 비틀어 휘두르는 듯한 기괴하기 그지없는 천재성.
이 남자는, 틀림없는-
“견뢰……!!!!”
레녹의 발아래 처박힌 바라간을 본 뒤에야, 데이머스가 멈춰 있던 시간 속에서 깨어났다.
숨도 쉬지 못하고 창백한 안색으로 옥좌 너머를 올려다보던 그가 패닉에 빠져 헐떡였다.
“말도 안……!!! 대체, 어떻게……!!!!”
“어라.”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린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거 뭐 환술 같은 거…… 아니죠?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
철쇄용왕이 말없이 고개를 들어 올리고, 에제키엘이 소매 끝에서 손을 뗐다.
한마디 대답조차 없이, 전장에 나타난 마법사에게 결코 시선을 떼지 않는.
두 초월자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보내는 암묵적인 동의.
“아아, 설마…….”
화신체와의 사투 끝에 죽어가던 초인들이 그제야 상황을 깨닫고 힘없이 입을 벌렸다.
어떻게 견뢰가 이 전장에 두 명이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떻게 견뢰가 그러한 일을 가능케 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바라간을 눈짓 한 번으로 찍어누르는 초월자가 건재하다는 사실.
그들이 목숨을 바쳐 쓰러뜨린 견뢰는 진짜 본인조차 아니었다는 사실.
그 믿기 어려우면서도 잔혹한 현실만이 모두의 눈에 선명하게 새겨지고 있었을 뿐.
죽어가는 초인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경련하며 몸서리쳤다.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어떻게……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아닌 일에 미친 듯이 몰두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다면 이러한 느낌일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에 수만 명의 목숨을 갈아 넣었다는 걸 누군가 알려준다면 이런 기분일까.
숭고한 희생이라 믿었던, 더 큰 대의를 위한 사명이라 믿었던 전쟁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면.
끝이라고 믿었던 토벌전을 정작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거라면.
“감사의 인사를 먼저 전하고 싶군.”
레녹은 바닥에 처박힌 바라간을 두고 돌아섰다.
“너희는 충분히 잘 해주었다. 내가 상정했던 것 이상으로 놀랍도록 잘 싸웠지.”
“…….”
“솔직히 말해 나는 이 전쟁이 여기까지 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군단 측이 전멸할 경우를 대비하고 있었는데…….”
천천히 걸음을 옮긴 레녹이 송하를 내려다보았다.
창백한 안색으로 쓰러진 백발의 검사. 피범벅이 된 그 육신에서는 이제 호흡이 느껴지지 않았다.
끝을 향해 달려가는 송하의 시간을 두 눈에 담으며 레녹이 느릿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내 생각보다 대장들의 재능과 힘이 강대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겠군. 너희가 아니었다면 계획을 몇 번 더 수정해야 했겠지.”
“……네, 놈.”
“훌륭한 활약이었다. 주술사.”
핏발선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바라간을 보며, 레녹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네 토템주술도 큰 도움이 됐지. 케찰코아틀이 아니었다면 군단 측 전력이 그렇게 많이 살아남아 내 권역에 들어올 수 없었을 거다.”
“……지랄……!!!”
“자신이 제작한 토템을 소모해 발동하는 대가성의 주술. 사용한 시간을 정직하게 힘으로 바꾼다 해도, 전략급의 규모에 도달하면 이렇게까지 위협적인 술식이 되는군.”
레녹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덕분에 새로운 마탑의 퍼포먼스를 마지막까지 남김없이 실험해 볼 수 있었다. 테스트베드의 역할로는 차고도 넘쳤지.”
“닥쳐……!! 이, 개……!!!”
바라간이 피를 토하며 이를 악물고 일어나려 발작했다.
군단이 목숨을 바쳐가며 싸웠던 사투를 외려 칭찬하고 격려하는 레녹의 대답.
수만 명의 초인들을 갈아 넣은 이 전쟁은 처음부터 군단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레녹이 이 모든 과정을 시행착오로 삼고자 하였음을 바라간 역시 이해하고, 그만큼 또 격노했던 것이다.
“큭……!! 아악……!!”
쿵!!
바라간이 팔을 움직일 때마다, 부러진 뼈가 내장을 짓누르며 피를 후두둑 쏟아냈다.
주력을 끌어올려 육체를 보강하고 힘을 더했음에도, 끝내 일어서지 못하고 고개를 처박았다.
쾅! 쾅!
아무런 속성이나 의념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마력.
하나 거기 찍어 눌린 채 단 한순간도 일어날 수가 없다.
바라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숨을 헐떡였다.
“빌어먹을!! 단순한 마력 따위에, 왜……!!!”
“네가 주력을 발동하는 방식은 진작에 해석이 끝났으니까.”
레녹이 무심한 눈길로 바라간을 내려다보았다.
“하단전에서 시작해 비장과 간장을 거쳐, 목 뒤에서 회전시켜 주력을 뽑아내지. 주술에서 영성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우둑!
바라간의 목 뒤를 한 발로 밟은 레녹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건 반대로 말하자면 주력의 발동 전조를 읽고, 유의미한 힘이 되기 전에 끊어버릴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뭐, 라고……?”
“내 권역 안에서 주력을 바닥까지 긁어내 싸워놓고, 내가 그걸 해석하지 못할 줄 알았나?”
레녹이 웃었다.
“편람과는 인연이 있어서 네 주술을 어느 정도 경계하고 있었지. 만에 하나 그녀가 개입한다면 계획을 조금 수정해야 했을 테니까.”
“…….”
“너……이 전쟁을…… 거기까지, 보고…… 있었다고…….”
데이머스가 침묵하고, 바라간이 숨을 헐떡이며 이를 악물었다.
카이세의 친위대로 시작했던 조직이 대륙 최대의 군벌이 되기까지.
몇 번이고 사선을 넘으며, 죽을 것이 분명한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아 왔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싸울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견뢰는 애초에 그들과 제대로 싸울 생각조차 없었던 것이다.
“왜…… 왜……!! 네놈에게만, 그런 일이…… 가능한, 거냐……!! 이건……!!!”
“신이 아닌 이상 모든 것을 계산하여 계획을 짤 수는 없는 법이지.”
레녹이 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난 신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다. 그게 결국 실패나 다름없다는 걸 우연에게 배웠거든.”
“…….”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 최고가 아니라 최악을 상정하고 계획을 짜는 것…… 이 토벌전 역시 그러했지.”
황금빛의 날개가 내려앉은 잔해 사이를 홀로 느릿하게 걷는다.
전장의 모든 이들이 오직 레녹 한 사람을 올려다보는 이 순간.
레녹의 목소리만이 침묵이 가라앉은 전장에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가능성을 남겨둔다. 최악의 분기점을 가정하고 판을 유도한다. 그것만을 목표로 삼아 여기까지 왔기에…….”
탁!!
부서진 옥좌 앞에 멈춰선 레녹이 시선을 내렸다.
황금빛 잔해들이 쌓여 높게 솟아오른 폐허의 중심부.
검푸른 벼락으로 일렁이며 고개를 숙이고 잠든 화신체를 보며 레녹이 말했다.
“이 승천의식은 여기서 반드시 한번 실패해야 했던 거다.”
“그게, 무슨-”
화신체는 레녹이 아니라 1세계의 권사를 모델로 삼아 만들어진 존재.
레녹의 재능이 복제 불가능한 절대성을 띠고 있기에 불가피한 일이었으나.
그렇기에 화신체의 기원이 레녹보다 교주에 가까운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다.
승천의식이 성공한다면 그 도달점 역시 레녹보다 교주와 유사해지리란 자명한 일.
실제로 의식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화신체는 교주에 가까운 기괴한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그렇기에 레녹은 특정한 시점에는 반드시 한번 의식을 실패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토벌전 도중 시작되었던 승천의식이 결정적인 순간 실패한다는 최악의 결말.
군단이 바라마지 않았을, 그리고 견뢰에게는 더없이 최악으로 보이는 단 한 가지 분기점.
그 순간을 상정하고 판을 유도하였기에 모든 변수와 상황이 이 종점을 향해 도달할 수 있었던 것.
하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 레녹의 대답이 어떻게 비추어질지 역시 자명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로베라이드가 흘러나온 내장을 붙든 채 힘없이 눈을 감았다.
“이 모든 희생과 전쟁이…… 초월자의 유희에 불과했던 겐가…….”
“하핫…… 하악…… 어이가 없, 네…….”
왼쪽 상반신이 나가떨어진 아티야가 흐릿한 시선으로 웃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빨리, 항복할, 걸…….”
“신들이시여…….”
죽어가는 사제가 힘없이 기도하며 고개를 숙였다.
분노와 부정, 전의와 각오, 사명감은 더 이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조차도 모두 이미 화신체를 상대하기 위해 불태운 뒤였으니까.
그저 모든 것이 끝난 뒤에도,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는 절망감이 있었을 뿐.
사방에서 흘러나오는 탄식과 좌절. 동시에 빠르게 사그라드는 생명의 기척.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며 데이머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는, 대체.”
자신의 실패를 원하고 의식을 시작했다는 레녹의 대답.
그를 통해 최종에는 승리에 도달했다는 이해할 수 없는 답변.
그 말에서 끝을 알 수 없는 광기를 느낀 이들이 차게 식어가는 몸을 떨었다.
“이 모든 일들이…… 당신에게는 아무런, 의미조차…… 없는 거였나…….”
데이머스가 파리한 안색으로 힘겹게 중얼거렸다.
“이미 미쳐 있는…… 초월자에겐…… 어떠한 의미도-”
“아니. 의미는 있었지.”
레녹이 마력을 끌어올리며 답했다.
“처음부터 오직 의미뿐이었다.”
“……뭐?”
“내가 이 전쟁을 받아들인 것도. 49구역과 권역을 날려가며 너희들을 맞이한 것도. 승천의식의 실패를 원했던 이유도.”
천천히 손을 뻗은 레녹이 중얼거렸다.
“그 모든 것이 이 순간을 위한 과정에 불과했으니까.”
파앗!!!
그 순간, 텅 비어 있던 레녹의 손끝에 희미한 파문이 맺혔다.
어떠한 성질과 속성도 품지 않은 레녹의 마력이 물결처럼 퍼져 나가며 허공을 붙잡는다.
시공간을 뒤덮은 레녹의 의지와 심상이 부서진 옥좌 아래 잠든 화신체를 휘감은 그 순간.
검푸른 뇌광을 띄고 일렁이던 화신체가 강렬한 빛에 휩싸여 흩어지며, 발칸의 하늘 위로 솟구쳤다.
콰아아아아아앙!!!!
황금빛의 옥좌 중앙에서, 흑청색의 벼락 줄기가 폭발해 어두운 하늘을 꿰뚫고 뻗어나갔다.
검푸른 뇌광은 멀리, 끝을 모르고 하늘과 지상을 꿰뚫고 이어붙이며 개념과 한계를 초월하고.
끝내는 별을 넘어 저 멀리 펼쳐진 암흑의 바다 저편까지 향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
검푸른 벼락의 기둥이 하늘과 땅을 이어붙이고 회전하며, 지축을 미친 듯이 뒤흔들었다.
수천미터 크기에 달하는 장엄한 벼락의 기둥이 회전할 때마다 세계가 흔들렸다.
전장에 서 있던 초인들의 오감과 정신을 짓누르고, 그 영혼마저 뒤흔들었다.
“아악……!!”
“이건, 이건……!!!”
“처음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어.”
회전하는 검푸른 벼락의 기둥을 올려다보며 레녹이 중얼거렸다.
“벼락의 인과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9레벨에 도달한 의식과 영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 자신은 아직 거기까지 갈 수 없었지.”
“…….”
“깎아내고 소모시켜야만 비로소 손에 들어오는 것이 있기에…… 이 전쟁을 이용해 그 수단을 찾고자 했던 거다.”
쿠구구구구구!!!!!
격전 속에서 부서진 황금빛 마탑의 잔해가, 한계를 초월한 힘과 열기 속에서 갈려 나가 소멸한다.
부서진 날개 파편들이 벼락의 광채 속에서 회전하며 별과 우주를 꿰뚫은 검푸른 벼락에 집속됐다.
피에 젖은 전장의 대지를 산산이 갈아버리듯이. 죽음이 내려앉은 하늘을 뚫고 열어젖히는 것처럼.
흘러넘치는 초월의 의념은 개념과 법칙을 넘어 이윽고 별과 우주 저편까지 닿는다.
“내가 화신체에게 원했던 것은 방법…… 9레벨의 승천자가 어떤 식으로 벼락을 다루는지. 그 순간을 지켜보고 습득하기 위한 시간이었지.”
격렬하게 회전하는 흑청색의 뇌광이 얼굴을 비추는 것과 동시에 레녹이 속삭였다.
“이 전쟁은 처음부터 그것을 위한 과정이었어.”
콰과과과과과과과!!!!!!
손을 뻗는 것과 동시에, 하늘과 지상을 꿰뚫은 벼락의 기둥이 더욱 거세게 회전한다.
전장을 집어삼킨 검푸른 낙뢰가 서서히 압축되며 그 크기를 줄이기 시작했다.
마치 레녹의 의지에 따라, 스스로 그 힘을 집속하며 이끌리고 인도하는 것처럼.
하늘과 지상을 꿰뚫고 거세게 회전하던 장엄한 벼락의 기둥이 압축되어, 레녹의 손에 잡힌 그 순간.
수천 미터에 이르는 방대한 흑청색의 파문이 퍼져 나와 별의 표면을 휩쓸었다.
파앗!!
아홉 번째 위계에 도달한 뇌광이 별을 꿰뚫고 번뜩이며 세계에 자신의 존재를 새겨 나간다.
그 자리에 오롯이 태어나 존재하는 것만으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게 필멸을 선고하는 초월성.
동시에 레녹을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같은 것을 깨달았다.
“아……”
지금 이 순간 저 마법사의 손에 결코 쥐어져서는 안 되었던 전인미답의 분기점.
자신들이 토벌전을 통해 그러한 기적을 저 마법사에게 쥐여주고 말았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결코 성공해서는 안 되었던 초월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직감한 그 순간.
강렬한 뇌광이 터져 나와 전장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저 멀리, 바깥으로 밀어냈다.
쩌어어어어어어엉!!!!!!
“큭……!!!”
“아, 아아악……!!!!”
별의 표면을 휩쓸고 날려 버리는 탄생의 파문에 모두가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의지와 심상, 정신과 영혼을 비롯한 존재 자체가 짓눌려 망가지고 으스러지는 듯한 충격.
부서진 옥좌의 중심부. 가까이서 지켜보던 데이머스조차 그 충격파에 휩쓸려 의식을 잃어버린 순간.
살아 있는 듯 번뜩이는 번개를 움켜쥔 레녹이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마침내.”
파직, 파직……!!!!
이 순간. 세계의 시공간에 영원토록 지워지지 않는 증거가 새겨진다.
한번 태어나 존재하기 시작한 뒤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초월성의 증거.
한 사람의 전격마법사가 평생 동안 쌓아 올린 위계와 구도를 넘어서는 대답.
천천히 눈을 뜬 레녹이 속삭였다.
“이루었군.”
반궁의 타락을 마주한 뒤로 레녹보다 먼저 9레벨에 오른 전격마법.
레녹 자신의 위계와 맞지 않고 폭주하며 출력을 높여가던 벼락의 분기점.
레녹은 끝내, 승천자에 오르지 않고 9레벨의 벼락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오오오오오오!!!!!
흉험하게 일렁이는 검푸른 벼락을 한 손으로 쥔 레녹이 돌아서는 것과 동시에, 세계가 같이 회전한다.
시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빛과 에너지가 함께 기울어지면서 인지능력을 왜곡시키는 듯한 환상 속.
전장에서 밀려난 모든 이들이, 세계가 기울어지는 듯한 충격 속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허우적대는 찰나.
아득한 초월의 번개를 쥔 레녹이 느릿하게 시선을 들어 올렸다.
“그럼, 이제 이 전쟁을 끝내도록 할까.”
미궁과 권역이 무너지고 시체들이 쌓여나간 49구역의 폐허.
대적자들이 끝없이 갈려 나가며 소모되고 나가떨어진 전장의 종착지.
이 모든 일에 마무리를 짓기 위한 불청객이 도착해 있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공의 저편에 서서 아무런 말 없이 레녹을 지켜보고 있는 한 남자.
창백할 정도로 새하얀 피부. 그림처럼 눈에 익은 곱슬머리. 한껏 닳아버린 검은 군복.
이 토벌전의 ‘결과’가 지어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이 모든 이야기의 종결자.
“에단 바쥬르.”
레녹이 차가운 미소와 함께 걸음을 내디뎠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