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269
약먹는 천재마법사 1269화(1269/1283)
약먹는 천재마법사 1269화
네 번째 논문(2)
쿠웅!!
의회 본관으로 향하는 거대한 석문이 양옆으로 열리며 레녹이 걸음을 옮겼다.
지팡이를 짚고 로비 홀을 올려다보는 레녹의 뒤로 수십 명의 초월자들이 좌우로 도열해 뒤를 따랐다.
위계를 초월한 8레벨의 초인들이 한 사람의 마법사를 따라 중앙의회 본관을 가로질러 걷고 있는 진귀한 광경.
뿌우우우-
본관 청사 하늘 위에 떠오른 공중요새와 비행선이 일제히 회전하며 레녹을 따라 움직였다.
로비 홀 양옆에 나란히 도열해 있던 석상들이 느릿하게 움직이며 들고 있던 무기를 놓고, 길을 열었다.
웅장한 나팔 소리가 합주처럼 울려 퍼지며, 사방에서 가문과 의회의 문장이 그려진 휘장이 부드럽게 흩날렸다.
[발칸 전역에서 중앙의회가 관리하는 모든 시설의 출입과 조작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한.]키이이잉!!
올리닉이 청사 한쪽 길목을 막고 있던 석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무릎을 꿇고 손을 내민 석상과 손을 맞닿듯이 접촉한 순간, 작은 빛이 그의 손 안에 내려앉아 형태를 빚었다.
[본래는 금제율령에 묶여 있던 양지의 초월자들만에게 허락되었던 특권 중 하나지.]빛의 구슬처럼 응축된 의념을 쥔 올리닉이 그것을 레녹에게 내밀었다.
[자네의 것일세.]“…….”
[시의회가 내전 당시부터 관리하던 중앙병기고 출입권한. 최상급의 아티팩트와 무구들이 보관되어 있는 유물고 열람권한. 이것도 자네의 것이지.]“…….”
[대륙 전역에서 발칸의 이름으로 부여받는 외교관 면책특권. 치외법권 선포권한. 이것도 이제 자네의 것이로군.]철컥!
쿠르릉!!!
본관 청사 벽면이 곳곳에서 열렸다 닫히면서 눈부신 빛을 발하는 유물과 아티팩트, 마도서와 석관을 번갈아 드러냈다.
올리닉을 필두로 한 양지의 초월자들이 형태 없는 권한을 물질화시켜 레녹에게 인계하고 넘겨주는 과정.
금제율령을 받아들이며 그들이 쥐고 있던 특권을 고스란히 레녹에게 넘겨주는 승계식.
말 그대로 레녹을 이 도시의 주인으로 대우하는 광경을 찍기 위해 사방에서 엄청난 양의 플래시가 쏟아졌다.
파바바바바밧!!!
찰칵, 찰칵!!
“중앙의회 협력 언론사 마크톤입니다. 이쪽으로 한 번만 고개를 돌려주세요!!”
“공영방송국 테라마이크에서 나왔습니다. 3분 정도만 인터뷰할 시간을 주시면 저희가…….”
“혹시 잠깐이라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술식을 해제해 주실 수 있나요?!!”
사방에서 들려오는 기자와 언론사들의 거센 고함소리.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레녹과 주변 인사들을 찍기 위해 몸을 들이미는 사람들.
“미, 밀지 마!!”
“우와아아악!!”
우당탕탕!!!
경비병의 만류를 뿌리치고 카메라를 내밀던 기자들이 뒤섞여 저지선 너머로 우르르 넘어진다.
수십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본관 안쪽까지 주르륵 밀려 들어오며 레녹이 걷던 길 앞을 막아서고.
레녹의 옆에서 걷고 있던 올리닉이 곤란한 듯한 전성을 내뱉었다.
금속구체를 제 자리에서 드르륵 회전시킨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경비병. 여기부터 저기 끝까지.]미디어 라인에 서 있는 기자와 방송국 관계자들을 가리킨 올리닉이 말했다.
[저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밖으로 쫓아내게. 쓸데없이 방해만 되는군.]“구, 궁주님. 하지만…….”
경비병이 머뭇거리다 말했다.
“여기 모인 기자들은 모두 중앙의회 출입기자들입니다. 의회의 인가 없이 이들을 쫓아냈다가는-”
[금제율령이 만들어지고 세상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올리닉이 느긋하게 말했다.
[수십 년 전에는 자네가 내 말에 이렇게 대꾸할 수조차 없었을 텐데 말이야.]“…….”
경비병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올리닉이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오늘은 쓸데없이 피를 보기엔 워낙 좋은 날이지. 그러니 한 번만 더 말해주겠네.]“그…….”
“쿠두스 경비대장.”
얼어붙은 경비병의 뒤에서, 착 가라앉은 노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십 명에 달하는 수행원을 끌고 본관 로비 홀 앞에 마중을 나온 메이어의 모습.
구부정한 백발의 상원의원이 뒷짐을 진 채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궁주의 전언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군. 지금 당장 기자들을 바깥으로 끌어내게.”
“메, 메이어 의원님……!!”
“어떤 방송국의 사주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뻗댈 자리를 보고 버텨야지. 자네는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 겐가?”
메이어가 다소 한심한 듯이 말했다.
“내가 본관 청사에서 자네의 머리가 뽑혀나가는 걸 보고 싶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걸세.”
“아, 알겠습니다!!! 다들 움직여!!”
그제서야 경비원이 황급히 휘하 대원들과 함께 넘어진 기자들을 끌고 밖으로 향했다.
아우성치며 저항하는 기자들을 순식간에 본관 밖으로 끌고 사라지는 경비병들의 모습.
“초월자들이 금제율령에 묶이고 난 뒤로 이런 폐해가 가끔 발생한단 말이지.”
그제서야 조용해진 본관 로비 홀 앞에서 메이어가 올리닉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궁주, 그대의 말대로 좋은 자리에서 피를 보고 싶지 않아 나섰으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하게.”
[상관없소. 메이어 의원. 겁박을 주긴 했지만, 실행을 정하는 것은 본인이 할 일이 아니었으니.]올리닉이 느긋하게 웃으며 레녹을 바라보았다.
[금제율령을 푼 장본인이 그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다면, 이쪽도 문제 삼을 이유는 없겠지.]“그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군.”
올리닉을 따라 고개를 끄덕인 메이어가 레녹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반. 다시 보게 되어 무척이나 반갑네. 승전 축하가 늦어서 미안하게 되었군.”
“메이어 의원.”
“알고 있겠지만 오늘 이 자리는 자네가 거둔 승리를 축하하고 기념하는 개선식이 될 걸세.”
메이어가 선명한 눈빛으로 레녹을 올려다보았다.
“현재 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상원의 권한을 내가 대리하고 있지. 그렇기에 이번 개선식에 한해 많은 부분에서 자네의 편의를 봐줄 수 있어.”
“…….”
“자네가 원한다면 지금 당장 의회 본관과 별관에 자리한 방송국과 기자단을 모조리 물리도록 하지. 어떻게 하겠나?”
“올리닉에게도 말해두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레녹이 무표정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일정을 감안하면 지켜보는 사람이 있어야 할 테니까요. 귀찮게 하지 않는다면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이해했네.”
순간, 뒤에서 지켜보는 초월자들의 반응이 희미하게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레녹이 메이어를 향해 보여주는 태도가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느낀 것이겠지.
하지만 메이어는 그 사실에 대해 어떠한 내색도 하지 않고 수행원들에게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그 대답을 오늘 시의회의 방침으로 삼아 중심구역 전역에 전달하도록 하지. 그럼…….”
방금 전까지 함께하던 초월자들을 향해 묵례하고, 레녹과 함께 로비 저편으로 멀어지는 메이어의 모습.
레녹에게 중앙의회에 귀속돤 권한을 인계하기 위해 함께했던 초월자들이 조용히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토벌전에서 저지른 학살을 생각하면 기이하게 느껴질 만큼 정상적인 답변이군…….”
키리야가 검 손잡이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항상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 있던 그녀의 표정은 드물게도 희미한 흥미를 드러내고 있었다.
“마법을 사용할 때를 제외하면 광증의 편린조차 드러내지 않는 건가. 다른 극위능력자와 비교해도 굉장히 점잖은 편이겠어.”
[견뢰 본인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주변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던 듯하더군. 정작 그 절제심은 이번 전쟁을 통해 다른 의미로 조명을 받아왔지만 말일세.]“그러지 않았다면 이렇게 많은 이들이 저 마법사 한 명을 보기 위해 이리 구름처럼 몰려들었을 리가 있겠느냐.”
하백이 조용히 답했다.
시력을 잃고 흐려진 그의 눈동자가 멍하니 레녹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고강한 의념이로구나. 지난 회담에서 보았을때만 해도 결코 이 정도는 아니었거늘…….”
“…….”
고요한 침묵 속에서 하백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에단과 송하를 모두 꺾었다는 말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건만…… 정녕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 수밖에 없겠구나.”
시해검종의 문주인 하백은 오래 전 에단과 송하를 동시에 제자로 들였던 관계자.
그 두 사람이 어떤 천재였는지 알고 있는만큼 토벌전의 결과를 쉽사리 믿기 어려웠던 것.
하지만 그런 하백조차 레녹의 기척을 마주하는 순간 어렴풋이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분명 같은 위계에 위치해 있음에도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듯한 섬뜩한 기척.
눈앞의 마법사가 토벌전을 통해 불가해의 초월성을 손에 넣었음을,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느끼고 있다.
오늘 이 자리를 빌어 발칸 전역의 초월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부터 우연이 아니라-
“시간이 됐군. 움직이지.”
무표정한 얼굴로 시간을 체크하고 있던 흑발의 남성, 슬레인이 말했다.
“승급 작업을 시작하려면 이쪽도 준비해야 할 거다.”
* * *
메이어의 안내를 받아 중앙의회 최심부를 향해 직접 걸어들어가는 레녹의 모습.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아오른 거대한 돌기둥 사이를 지나 의회 본관 로비를 가로지른다.
벽에 걸려 있는 휘장과 깃발을 등지고 사방에서 예를 갖추는 의장대와 군인들의 모습.
그 옆에서는 수백 명의 수행원과 의원들이 움직이며, 레녹을 청사 내부로 안내하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었다.
의회에 소속되지 않은 외부인의 출입을 허락하기 위해 미리 풀어두어야 하는 제약과 규제, 결계와 권한, 온갖 행정절차들.
“자네가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로 중앙의회 역시 전후처리에 전념해 왔지.”
그 소란의 중심에서 메이어가 레녹의 옆을 걸으며 말했다.
“그 과정에서 전쟁을 명분삼아 외회 내외로 산적해 있던 여러 문제들을 처리할 수 있었네.”
“…….”
“행정절차를 마무리 짓는 것과 동시에 내부 정리도 막바지에 다다랐지. 이제야 자네에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정돈이 된 셈이야.”
쿵!
로비 끝에 위치한 대리석 문을 열어젖힌 순간, 의회 바깥의 거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단상이 비춰졌다.
수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일제히 의회 본관 청사를 올려다보는 드높은 단상의 형태.
그 위에 선 의회 대변인이 시민들을 향해 차분한 어조로 기조연설을 진행하고 있었다.
[시민 여러분. 근래 발칸에서 벌어진 전쟁은 단순히 괴뢰군벌이 일으킨 국지전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발칸의 안보를 무시하는 중앙의 무단간섭이자, 나아가 도시의 존속을 위협했던 파괴공작의 일환이었으며…….] [이번 전쟁의 승리는 도시를 지켜내는 것과 동시에, 발칸의 정책과 방향성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검토하고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 [그 과정에서 마탑주의 공적이 중대하였음을 인지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이번 전쟁으로 고통받은 시민들에게는 시정부의 이름으로 피해보상을 약속드리며, 구역 간에 나뉘어 있던 복지 공약을 일괄적으로 개편하여 세금 감면 혜택을 부여…….]와아아아아!!!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연설과 함께 시민들에게 약속하는 다양한 혜택이 언급될 때마다, 청사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호응하며 함성을 질렀다.
레녹이 말없이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 사이 메이어가 말했다.
“이번 기조연설을 통해 사람들은 의회가 누구의 편인지 알게 될 걸세. 그를 위해 어떤 명분과 혜택을 걸고 나섰는지 역시 확실하게 알게 되겠지.”
“…….”
“시민들은 거부하지 않을걸세. 이미 이 도시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 테니까.”
메이어가 나직하게 말했다.
“이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명확하게 하고, 변치 않도록 공고히 다지기 위한 과정인 셈이야.”
“……메이어. 저는 이 도시를 갖는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대변인의 연설을 듣고 있던 레녹이 대답했다.
“그로 인한 이득과는 별개로, 그 책임은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죠.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네에게만 허락되는 자리이자 위상이기도 한 게야.”
메이어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자네가 권력이나 위상에 집착하는 초월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반대로 많은 이들이 자네가 위에 서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네.”
“…….”
“이 도시는 넓어. 힘으로 지배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하고, 규율로 다스리기에는 너무나도 멀지. 무력이나 법으로는 성립하지 않는 합의점이 그 절묘한 경계선 어딘가에 있네.”
침묵하는 레녹을 두고 메이어가 시선을 돌렸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발칸 전역의 의견을 자신의 기준 아래 둘 수 존재는 오직 자네밖에 없네. 다른 이들도 그것을 아는 게야.”
“…….”
“자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시의회는 이미 자네를 받아들였네. 금제율령에 묶이지 않은 초월자를 의회와 대등한 존재로서 대우할 것을 약속했지.”
그렇게 말한 메이어가 천천히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 증거를 오늘 발칸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보여줄 생각이네.”
[그럼 마지막으로, 오늘 이 자리에서 고통스러운 전쟁이 완전히 끝났다는 증거를 시민 여려분들께 보여드리겠습니다!!!]촤아악!!!
연설자가 소리친 순간, 단상 뒤로 드리운 두꺼운 커튼이 젖혀지며 갇혀 있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손발이 묶인 채로 무릎을 꿇은 채, 눈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수십 명의 사람들.
하지만 그 얼굴 대부분은 발칸 시민들이 익히 알고 있던 권력자들의 것이었다.
[시민 여러분. 이 자들은 시의회 내부에서 군단과 내통하고 있던 변절자들입니다.]구속당한 시의원들의 앞을 걸으며 대변인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다가올 전쟁을 앞두고 발칸의 내부정보를 공유하며, 군단이 발칸 밖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도록 협력했던 의원들이죠.]와아아아!!!
울려 퍼지는 함성을 듣고 있던 레녹이 시선을 돌렸다.
“의회 내외의 골치 아픈 문제를 처리했다던 의미가 이쪽이었군요. 전쟁을 명분으로 삼아 시의회 내부의 군단 측 파벌을 정리해 버린 겁니까?”
“이만한 명분을 등에 업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면 정치가로서 실격이라 해야겠지.”
레녹의 말에 메이어가 차갑게 웃었다.
“파워게임에서 패배한 권력자의 말로이니 동정할 것 없네. 그들 역시 자신이 선택한 운명이니 겸허히 받아들이겠지.”
“저 모습을 보면 딱히 그렇지는 않아보입니다만…….”
[당장 이거 안 풀어?!!] [메이어 의원!! 내가 잘못했네. 지금이라도, 제발……!!!]재판장으로 끌려들어가며 거칠게 발버둥치는 의원들의 모습.
소리를 지르며 애원하거나, 반대로 핏대를 세우는 모습을 보면 이런 결말을 각오하고 있던 것은 아닌 듯하다.
끌려나가는 시의원들의 뒤로 울려퍼지는 함성을 뒤로 하고, 메이어는 레녹을 왔던 길로 다시 안내했다.
“여기까지 봤다면 알겠지만 시의회는 이번 개선식을 통해 전쟁의 결과와 전후처리 과정을 세간에 공개할 생각이네. 이 뒤로도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외부 행사가 준비되어 있지.”
“…….”
“물론 자네가 직접 참석해서 그 자리를 빛내준다면 좋겠지만, 개선식이 끝나기 전에라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레녹의 생각을 짐작하기라도 한 듯 웃음을 흘린 메이어가, 지팡이를 짚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시의회 내부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부터 먼저 처리하도록 하지. 이쪽일세.”
본관 청사 최상층에 위치한 광활한 의사당.
상하원의 의원들이 모여 발칸의 정책을 입안하고 도시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자리.
본래라면 의원들이 앉아 있어야 할 좌석에는 양지의 초월자들이 미리 도착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슬레인과 올리닉, 키리야와 미스트라. 그 밖에 개선식에 참가한 레녹이 알지 못하는 초월자들이 양 옆으로 펼쳐진 계단식 좌석 사방에 앉아 레녹을 바라보는 모습.
하지만 레녹은 그들에게 시선을 주는 대신,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솟아오른 홀의 천장 위에 떠오른 거대한 물체를 올려다보았다.
레녹이 본관 청사에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그 존재를 인지하고 계속해서 ‘올려다보고’ 있었던 무언가.
우우우우웅!!!!
직경 십수 미터 달하는 거대한 푸른 빛의 눈동자가 의사당의 천장에서 느릿하게 소용돌이친다.
발칸 전역에 존재하는 무수한 의식과 의념을 끌어모아 흡수하면서 눈꺼풀을 깜박이듯, 천천히 초점을 움직여 레녹과 시선을 맞추고.
그 거대한 눈동자가 흐릿하게 깜박이며 눈물 한 방울을 흘려 지상을 향해 떨어뜨린 그 순간.
파아아앗!!!
푸른 빛의 눈물이 길쭉하게 늘어지며, 이내 레녹의 앞에 멈춰 서 느릿하게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그 형상이 마치 레녹이 짚고 있는 지팡이와 유사한 형태를 띄고 있음을 인지한 순간.
“[약속의 눈동자]를 작동시키면서 어떤 형태의 선물이 좋을지 잠깐 생각을 해봤는데.”
옆에서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역시 그쪽이 아직까지 사용할 만한 물건은, 그런 지팡이의 형태가 아닐까 싶어서.”
“…….”
“오랜만이네요, 견뢰.”
의사당 옆에서 걸어나온 발칸 시장, 아르지스 오르메온이 레녹을 보며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메이어의 안내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온 걸 보니 끝까지 보고 온 건 아니군요?”
“내가 시의원들의 재판을 끝까지 지켜보기를 바랬나 보군.”
“그렇죠. 이건 어디까지나 반 당신이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일이니까요.”
소년이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도시의 운명을 가르는 결전에서 승리한 초월자를 위해 반대파를 척결하는 일. 이것만큼 균형이 기울었다는 걸 보여줄 방법이 어디 있겠어요?”
“…….”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던 의원들은 아니라 감흥은 없나보네요. 그 사람들이 당신을 방해하기 위해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알면 좀 더 재밌는 반응이 나왔을텐데, 미리 설명을 좀 더 해줄 걸 그랬나?”
팔짱을 낀 시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느긋한 목소리와 함께 몸을 돌렸다.
“뭐 어쨌든, 제가 복귀했으니까 그 부분에 대한 처우는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당신이 금제를 풀어준 대가는 확실하게 지불할 테니까.”
“대가를 지불한다고?”
“메이어 의원의 안내를 받아서 보고 왔겠지만, 오늘 재판이 끝난 시의원들의 자산과 땅을 모두 그쪽에게 넘길 예정이에요.”
레녹의 반문에 소년이 메이어를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상원의원이 지닌 부지 중에서는 발칸 중심구역의 알짜배기 땅이 많으니까, 마탑의 사업을 확장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겠죠?”
“…….”
시장이 작은 팔을 머리 위로 들어 붕붕 흔들면서 신난 기색으로 말했다.
“그쪽 마탑에 한해 건축물 고도제한을 풀어줄 테니까, 초대형 아티팩트 경매장을 만들어보면 어때요? 중심구역 유동인구를 활성화시키는 것과 동시에 무지막지하게 돈이 될 텐데.”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는 내 파트너와 하는게 좋겠군.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중앙의회까지 찾아온 것이 아니다.”
레녹이 고개를 저었다.
“나와 내 마탑에 대한 시의회의 처우. 전쟁이 끝난 뒤 시장을 되찾은 발칸의 방향성.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온 것일 텐데?”
“…….”
오늘 레녹이 중앙의회의 초청을 받아들인 것은, 네번째 논문의 발표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군단의 편에 의원들이 재판받는 광경을 유희삼아 즐기는 것도, 이후 받게 될 여러가지 특혜와 혜택을 논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19구역에서 조우했던 발칸 시장. 그가 오늘 이 자리에 있으리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레녹 역시 이곳을 찾았을 뿐.
그 외에는 결국 레녹에게 있어 모두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했으니까.
“좋아요. 하긴 그게 아니더라도 오늘 중요한 일정이 여럿 있으니까.”
시장 역시 레녹의 대답을 모르지는 않았는지, 이내 웃는 얼굴로 자세를 정돈했다.
“승급 작업부터 마무리하도록 하죠. 당신이 손에 넣은 지팡이에 대한 이야기예요.”
“뭐지?”
“중앙의회 상하원의 만장일치로 견뢰의 마탑을 발칸 최고위 집행기관으로 승격시키는 것이 확정됐어요.”
양손을 짚은 소년이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는 사상 처음으로 창설되는 발칸 최고위 마법 관리기구이자,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술식의 지적 재산권과 소유권, 사업권한을 부여받은 기관이죠.”
“…….”
“그 지팡이는 중앙의회와 금제율령에 묶인 초월자들 양측의 합의를 거쳐 ‘권한’을 넘겨주었다는 증거…… 당신의 마탑이 중앙의회와 대등한 위상을 보유한 관리기구가 되었다는 징표죠.”
시장이 웃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봤는데, 시의회를 넘겨주는 것보다는 마탑에 힘을 실어주는 쪽을 훨씬 좋아할 것 같아서.”
“마탑이라…….”
마법과 술식에 대한 모든 관리권한을 부여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발칸 내에서 입법, 사법, 행정에 준하는 대우.
본래 의회의 인가를 받아 설립되었던 레녹의 마탑을, 의회와 대등한 격을 갖춘 집행기관으로써 승급한다는 뜻인가.
그를 위해 시의회 상하원은 물론이고, 금제율령에 묶인 초월자들을 불러모아 [약속의 눈동자]를 통해 권한을 조정했던 것.
레녹을 도시의 주인과 같은 위상으로 대우하기 위해 불렀다는 말은 처음부터 허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 그럼 이제부터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마탑에 시의회와 대등한 권한을 넘겨준 시점에서야 할 수 있는 말이 있거든요.”
소년이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튕기자, 약속의 눈동자가 번뜩이며 광활한 산맥과 평야의 모습을 비추었다.
마치 홀로그램의 형상처럼 의사당 공동 위로 떠오른 이미지를 보며 시장이 입을 열었다.
“데드라이즈 군단 2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던 동대륙 중심부의 금지 관련 소유권 문제예요.”
“…….”
“토벌전이 시작되기 직전 원수의 복귀와 함께 열병식이 진행되었던 장소인데, 군단 주력부대가 전멸하며 이곳이 텅 비었어요.”
열병식을 주도했던 2사령부가 토벌전의 패배 이후 텅 비어서 주인을 잃었다는 이야기. 딥웹에서 관련 화제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소년이 웃는 얼굴로 물었다.
“당신만 괜찮다면, 2사령부가 위치해 있던 금지에 마탑의 새로운 지부를 만들지 않겠어요?”
“마탑의 지부라고?”
“사방이 험지로 둘러싸인데다 대지에 독성이 강하긴 하지만, 군단에서 2사령부를 이곳에 두고 있던 이유가 있어요.”
시장이 손가락을 튕기자 홀로그램 지도가 확장되며 동대륙의 지형을 넓게 비추었다.
“철분이 강해서 금속 생산이 쉬운 데다, 독성 때문에 이곳에서만 자라는 약초와 촉매가 여럿 있죠. 이곳에 마탑의 지부를 두면 다양한 아이템이나 영약을 취급하기 쉬워질 거예요.”
“…….”
“게다가 이곳은 동대륙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서, 중앙전선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목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죠. 군단에서 2사령부를 둘만큼 전략적 요충지인 셈이에요.”
“내 마탑의 번영을 위해서만 이런 제안을 던지는 것이 아니었군.”
레녹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분명 그쪽이 네 진짜 목적이겠지?”
“네.”
시장이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발칸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중앙전선 진출을 시도할 생각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