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281
약먹는 천재마법사 1281화(1281/1283)
약먹는 천재마법사 1281화
인외마경(4)
인신공양은 살아 있는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제물로 삼아 행해지는 금단의 술식.
인간을 공양하여 힘을 얻는 배덕의 극치이기에, 그 과정은 통상술식의 효율을 아득하게 뛰어넘는다.
노신사가 살덩이 괴물로 변이하기 직전까지 전조를 확신하지 못했을 만큼 악의적이고 정교한 금술.
철퍽!!
레녹이 무겁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변이체를 내려다보는 사이 여성이 움직였다.
“…….”
“차장이랑 연락해 지금 당장 연료 보급을 끊고 열차를 출발시켜야 해요.”
팔에 묻은 점액을 한 손으로 닦아낸 여성이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이 근방은 해저 터널 밖에 없어서 도망칠 곳도 없는데다, 바깥은 모두 바다예요. 탈출하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영감님을 변이시킨 무언가와 싸워야겠죠.”
해상 열차가 정차한 곳은 이해의 바다 아래 위치한 초대형 해저 여객터미널.
거대한 유리 구조물에 가까운 터미널 본관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광대한 해저 터널이 나 있는 구조다.
터널을 지탱하는 터미널 본관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이 자리에서 산채로 이해의 바다 아래 수장당하겠지.
느닷없는 기습에도 상처 하나 입지 않은 강력한 내성. 이런 종류의 변이체에 전혀 거부감이 없어 보이는 태도.
순식간에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최선의 대책을 제시하는 냉정한 판단까지.
특유의 고아한 인상과는 별개로, 틀림없이 현장에서 직접 뛰는 베테랑이 분명하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이미 늦었군.”
하지만 레녹은 여성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시선을 돌렸다.
“이 해상열차는 연료보급을 이유로 터미널에 정차했다. 절차를 밟기 위해 누군가는 터미널 관계자와 접촉했겠지.”
“…….”
“심지어 그는 나와 대화를 하다 다른 승객들에 비해 비교적 늦게 내렸었다. 그런데도 이런 상태가 되었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미…….”
쿠구구구……!!!
터미널 게이트가 희미하게 진동하는 것과 동시에, 그와 연결되어 있던 열차 선체가 같이 덜덜 떨린다.
투명한 게이트 통로 유리벽 너머, 분홍색 빛을 띈 무언가가 엄청난 속도로 열차를 향해 들이닥쳤다.
꾸이이익!!
뀌이이익!!
부풀어오른 살점 속에 파묻힌 기괴한 비명소리. 살점 속에서 아직 형체를 잃지 않은 일그러진 인간의 얼굴.
방금 전까지 같은 열차에 타 있던 승객들이, 온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해저 터널을 타고 달려온다.
두두두두!!!
“하, 진짜……!!!”
살덩어리들이 달려드는 속도가 말도 안 되게 빠르다.
모습을 드러낸 시점에서 수십 미터 길이 터널을 주파하기까지 3초 남짓.
몸을 홱 돌린 여성이 열차 문 쪽으로 달리며 승무원을 향해 소리쳤다.
“문 닫아요. 뭐해!!”
“네, 네? 하지만-”
말이 두마디 이어지기도 전에 게이트를 타고 달려든 살덩어리가 승무원을 덮쳤다.
콰직!!
우드드드득!!!
눈 깜짝할 사이에 열차 통로와 표면을 뒤덮고, 비명을 지르는 승무원의 목과 얼굴을 미친 듯이 물어뜯었다.
“아악!! 아아악-!!”
“아, 진짜……!!!”
비명을 지르는 승무원의 뒤에서 여성이 문을 폐쇄하는 사이, 기관실 앞에 도착한 레녹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쾅!!
손짓 한 번으로 보호결계를 뚫고 잠금장치를 박살 내 기관실의 문을 연다.
평상시에는 혹시 모를 테러의 위험을 대비하여 굳게 닫혀 있는 문 너머.
피범벅이 된 셔츠를 입은 차장이, 잔뜩 부풀어오른 머리로 기관사의 내장을 파먹고 있었다.
와작, 와작.
“쿠에에…….”
“……끕!”
창자를 파먹을 때마다 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괴물과, 그때마다 힘겨운 비명을 토해내는 기관사의 모습.
뻐어엉!!!
레녹이 손가락을 튕겨 차장을 옆으로 날려버리는 것과 동시에 기관사를 살폈다.
복부 내장 반절 가까이가 차장에게 파먹혀 뜯겨 나간 처참하기 그지없는 모습.
가망이 없는 수준이다.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 손으로 기관사의 상처 부위를 지혈하며 물었다.
“말할 수 있겠나? 무슨 일이 있었지?”
“몰……라…….”
기관사가 숨을 헐떡이며 토악질을 했다.
“차장이…… 점심을 먹다…… 갑, 자기…….”
“…….”
열차 밖으로 나가지 않은 인원들까지도 변이되고 있는 건가. 침묵하던 레녹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열차는 해저 터미널에 정차해 연료보급 중에 있다. 출발하려면 보급을 완전히 멈춰야 하나?”
당장 차장이나 기관사가 움직일 수 없다 해도, 레녹에게 다비가 있는 이상 열차 조작은 불가능하지 않다.
레녹이 물어야 하는 것은 열차를 조종하는 방법이 아니라, 현재 연료 보급 중인 열차를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방법.
기관사 역시 레녹의 말뜻을 이해했는지, 핏물을 들이키며 힘겹게 대답했다.
“엔진…… 각 칸마다…… 연료탱크…… 모두 닫아야…… 아.”
“……그렇군.”
하나의 연료탱크로 열차 전체를 운행하는 것이 아니라, 열차의 각 칸마다 연료탱크가 존재하는 건가.
이해의 바다 위를 달리기 위해 각 열차 칸마다 마력을 회전시켜 금속체를 부유시켜야 하기 때문이겠지.
각 열차 칸마다 연료탱크가 따로 존재하고, 그 모든 주유구를 일일이 닫아 보급을 멈춰야 한다면.
이 시점에서 정상적인 탈출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숨이 끊어진 기관사의 눈을 감겨주고 일어나는 사이, 특등석 칸의 문을 막고 있던 여성이 소리쳤다.
“이봐요! 제가 문을 막고 있을 테니까 그쪽은 일단 도망……!!”
콰아아앙!!!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열차 벽면에 난 유리창이 부서지며 살덩이들이 우르르 들이닥친다.
해상열차 표면에 달라붙은 괴물들이 두꺼운 유리창을 박살내고 밀려들었다.
기관실과 문 앞을 막고 있던 레녹과 여성이 움직이기도 전에 차내를 휩쓰는 살덩이의 파도.
순식간에 차체를 뒤덮은 살덩이들이 순식간에 문 앞을 막고 있던 여성을 덮쳤다.
콰앙!
“큭……!!!”
수백 명의 체중에 달하는 부하가 단번에 집중되자, 여성이 순간적으로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뒤로 쭉 밀려났다.
여기서 억지로 마력을 끌어올려 버텨봤자 뒤에서 밀려 들어오는 변이체의 숫자가 늘어나기만 할 뿐.
순식간에 판단을 마친 그녀가 레녹을 휙 돌아보며, 자신이 앉아 있던 좌석에 놓인 태블릿을 눈짓했다.
“태블릿, 챙겨줄 수 있-!!!”
팟!
말이 끝나기도 전에 레녹이 대천사의 연민을 사용해 태블릿을 잡아 여성에게 던져주었다.
아슬아슬하게 태블릿을 잡는 동시에 그녀의 신형이 살덩어리에 뒤덮여 통로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콰아아아아!!!
“크으으으……!!”
“흐헥…….”
순식간에 레녹 홀로 남아버린, 변이체로 가득 찬 지옥도가 되어버린 열차 선내.
하지만 레녹은 자신을 향해 침을 줄줄 흘리는 괴물들을 무시하고 곧바로 돌아섰다.
현재 해상 열차 내외의 승객과 승무원들은 대부분 죽거나 살덩어리로 변이가 끝난 상황.
레녹이 타고 있던 특등석 칸이 이 정도라면, 다른 열차 칸은 물론이고 터미널 본관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겠지.
그렇기에 탈출이 불가능해진 시점에서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열차를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사람들을 살덩어리로 변이시켜 인간을 잡아먹게 만드는, 그 무엇보다 악의적인 금술의 주체.
인간의 기척과 생명을 유지한 채,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로 변이시키는 인신공양의 정점에 이른-
“교단.”
덥석!!
등 뒤에서 달려드는 살덩이의 얼굴을 잡아채 벽면에 처박는다.
양팔을 활짝 벌린 변이체의 습격을 상반신을 낮춰 피해내며 몸을 회전시켰다.
열차 특등석에 꾸역꾸역 들어찬 변이체들을 가로질러 굳게 닫힌 문을 향해 가속.
콰아아앙!!!
마력을 끌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레녹이 몸을 돌리고, 닫혀 있던 열차의 철문이 박살 나 튕겨 나갔다.
표면에 들러붙은 살덩이들이 튕겨 나가는 것과 동시에, 차체 위로 올라탄 레녹이 시선을 돌렸다.
‘어디에 있지?’
주변은 수천 미터 길이의 해저 터널이 팔방으로 뻗어나간 광활한 통로.
차를 타고 전속력으로 주행해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넓고 광대한 터널만이 가득하다.
이곳에서 서로의 기감에 잡히지 않은 채로 전장을 이탈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
레녹도, 상대도 분명 아직 이곳에 있다.
그렇다면, 역시-
파아아앙!!!
정륜결계를 두르는 것과 동시에 가속.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살덩이들을 뚫고 질주한다.
해저 터널을 스치듯이 낮게 주파하며 괴물들로 가득 찬 열차 칸을 넘어, 터미널 본관 건물을 향해 돌파.
레녹의 신형이 투명한 유리벽을 산산이 깨부수며 게이트 입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와장창창!!
흩날리는 유리파편과 함께 바닥에 내려선 순간 느껴지는 물컹한 감촉.
드넓은 터미널 본관 건물 천장과 벽면이 끈적한 살덩어리로 뒤덮여 있다.
내부 시설 전체가 인간을 주물러 만들어낸 살덩이의 벽으로 뒤덮여 꿈틀대는 기괴한 광경.
접합술주의 생명권역에 잠입했던 당시 이후로, 이만큼 그로데스크한 지옥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차아앙!!!
새파란 검광이 유리벽을 베어내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 레녹의 옆에 내려섰다.
“하, 진짜 기분 나쁘게…….”
푸른빛의 롤 머리를 짜증스레 쓸어넘긴 여성이 터미널 로비를 향해 걸어들어왔다.
정교한 형상의 건블레이드를 한 손에 든 여성이 날 선 시선으로 주변을 노려보았다.
“교단은 왜 하나같이 이런 역겨운 짓거리만 벌이는 건지 모르겠네요. 자기들 주인을 닮아서 그런가?”
“……태블릿을 건네 달라던 이유가 그 무구 때문이었나?”
“맞아요. 출국 수속을 밟으면서 들키지 않으려고 수하물에 처박아놨거든요.”
수하물에서 가져온 새로운 선글라스를 꺼내 쓴 여성이 대꾸했다.
“탐색을 피해야 해서 봉인을 걸어뒀는데, 그걸 풀려면 태블릿으로 랜덤 암호키를 갱신해야 해서.”
레녹에게 태블릿을 받아 수하물 안에서 장비를 회수하느라 시간이 걸린 것인가.
살덩어리에 휩쓸린 와중 멀쩡히 탈출해 장비까지 챙겨나온 것을 보면 보통 실력자는 아니겠지.
하지만 레녹은 그 와중에도 여성이 든 건블레이드를 유심히 뜯어보고 있었다.
‘격발장치는 있는데 카트리지가 없다…… 탄환을 장전하지 않고 사용하는 건가?’
건블레이드는 검신 안에 총구가 내장되어, 손잡이 부근에서 탄환을 장전해 격발하는 장비.
총과 검 양쪽으로 사용하며 근원거리 전투 모두 대응 가능하나, 그만큼 섬세하고 다루기 어려워 사용자를 보는 것은 레녹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여성이 쥔 건블레이드는 굉장히 정교한 형태임에도 탄환을 장전하는 카트리지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탄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총알이 아닌 다른 물질을 탄환으로 사용하는 것인지.
다만, 비슷한 감상을 받은 것은 레녹만이 아닌 듯했다.
“실력자일 거라 생각하긴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쪽이었네요.”
철컥!!
손잡이 부근에 장착된 격발장치를 한 손으로 밀어 능숙하게 작동시킨 여성이 대꾸했다.
“그 난리 속에서 변이체를 모조리 뚫고 먼저 터미널에 도착하다니…… 육체능력자, 맞죠? 대충 봐도 몸놀림이 보통이 아니던데. ”
“…….”
레녹이 열차칸에서 변이체들을 상대했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지켜봤던 건가.
여성이 그런 레녹의 반응을 아랑곳하지 않고 블레이드를 쥔 채 돌아섰다.
“기관의 아일렌이라고 해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레인저 출신이죠.”
“…….”
“천번을 찾는 일은 도와달라고 하지 않을테니, 교단을 상대할 때까지만 협조 부탁해요. 해저 터미널에 깔려 수장당하고 싶진 않잖아요?”
“마경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2사령부 근처를 뒤져가며 천번을 찾고 있는 거지?”
“최근 사천사화마경 내부 환경에 큰 변화가 일어나면서 상황이 변했어요.”
쿠구구구……!!
자신을 아일렌이라 소개한 여성이 흔들리는 해저 터미널을 돌아보면서 답했다.
“기존의 환경과 지형이 통째로 뒤바뀌는 대격변이 있었는데, 이상을 눈치챈 주문연맹이 개입하기 시작했죠.”
“…….”
“외부인에겐 자세히 답하기 어렵지만 중앙의 판도가 크게 흔들리고 있어요. 초대형 세력들이 움직이면서 전란이 가까워졌죠.”
그렇게 말하는 아일렌의 얼굴에는 희미한 불안감이 감돌고 있었다.
“천번이 합류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그와 접촉해 의사를 미리 확인해야 해요. 특히나 교단과 연맹은 그 이름을 굉장히 신경 쓰고 있을 테니까.”
“…….”
교단과 전단이 움직이고, 연맹이 마경에 개입한다.
중앙전선을 지배하는 초대형 세력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이 순간.
하필 레녹이 사천사화마경으로 향하고 있는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과연 우연일까.
어쩌면 마경에 일어난 대격변의 원인이, 레녹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에 잠긴 사이 아일렌이 먼저 걸음을 옮겼다.
“움직이죠, 본인이 부재중인 이상 무의미한 이야기니까. 이 정도 규모의 인신공양이라면 제 경험상 추기경급의 강자가 개입한 결과예요. 일단 흩어져서 터미널 본관과 별관을 탐색하는 것부터-”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네?”
힐끗 시선을 돌린 아일렌을 무시하고 레녹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대는 특별한 술식이나 권능을 사용하지도 않고 수백 명이 넘는 인간을 변이시켰어. 그건 애초에 이 터미널 시설 전체가 교단의 영토가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
“…….”
“이 광대한 해저 터미널 전역을 교단의 영토로 선포할 수 있는 지맥의 중심부. 시설의 가장 핵심이 위치한 장소는 아마…….”
“터미널 본관 지하.”
아일렌이 즉시 대답했다.
“이 거대한 터미널 전역에 동력을 보급하는 엔진실 쪽이겠군요.”
띠링!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상가 쪽으로 내려간다.
해저 터미널 인근의 특산품과 약재를 판매하고 있던 온갖 가게들이 존재했던 넓은 구역.
그 중심부에 거대한 살덩이의 알이 피어오른 채 느릿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쿨럭, 푸우우우우-
불룩, 불룩, 불룩…….
“으어, 어어어…….”
“후아아아아…….”
알이 느릿하게 움직일 때마다, 살덩이 알의 표면에 들러붙은 수백 명에 달하는 인간들이 다 함께 신음을 질렀다.
인간을 재료 삼아 응축된 종기가 그들의 목숨을 빨아먹고 있는 듯한 추악한 광경. 금술의 융합체를 보자마자 아일렌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건블레이드에 얇은 마력광이 어리는 것과 동시에 아일렌의 신형이 날카롭게 가속. 일렁이는 살덩이 알을 엄청난 속도로 베어냈다.
카가가가각!!!
“어어어…….”
“크에겍……!!”
기괴한 비명을 지르는 알껍질들을 뒤로하고, 아일렌이 차가운 얼굴로 파고들었다.
입을 쩍 벌린 살덩어리가 달려들었지만, 유려한 몸짓으로 모조리 피해내며 연달아 블레이드를 꽂아 넣는다.
촤악!!
블레이드가 꽂히는 것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우뚝 움직임을 멈추는 살덩이 알의 형상.
아일렌이 그 모습을 보지도 않고 망설임 없이 마력을 끌어올려 격발장치를 작동시켰다.
키이이잉-
철컥!!
블레이드에 내장된 총신을 타고 아일렌의 마력이 탄환을 대신하여 가속한다.
날카롭게 회전하는 압축체가 검신을 타고 초음속을 넘어 살덩이 알 속으로 뛰쳐나온 순간.
거대한 살덩어리 알이 안에서부터 폭발하듯 터져나가며 사방으로 산산이 비산했다.
뻐어어어어엉!!!
투명한 유리로 이루어진 건물 전체를 순간적으로 크게 뒤흔들 만큼 강렬한 충격파.
피와 체액이 뒤섞여 비처럼 쏟아지며, 지하 공동 전역에서 맹렬하게 진동했다. 변이체의 비명과 의념이 폭풍처럼 몰아치며 사방을 안개처럼 자욱하게 가렸다.
하지만 아일렌은 살덩어리 알을 터트린 뒤에도 긴장을 풀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폭심지를 응시했다.
목표물을 제거한 뒤에도 이상할 정도로 후폭풍이 한자리에 오래 머무는 듯한 모습.
이건, 죽은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감각을 현혹하기 위한-
콰아아아앙!!!
본능적으로 블레이드를 들어 올리는 것과 동시에, 여성의 신형이 뒤로 튕겨 날아갔다.
두꺼운 벽면을 몇 겹이나 뚫고 뒤로 처박혀 미끄러지는 아일렌의 모습.
흙먼지 속에서 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감이 좋네?]후욱-!
자욱한 안개를 가르고 알 속에서 걸어 나온 것은, 두꺼운 근육질의 체구를 지닌 남성.
그 머리는 인간이 아니라, 뜯겨 나간 날개처럼 둔탁한 금속체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느긋하게 손을 턴 상대가 인간의 육성이 아닌 울림을 터트리며 말을 걸었다.
[한방에 대가리를 터트리려고 했는데 반응이 빠르잖냐. 아니, 그러면 경험이 많다고 해야 하냐?]“……특별한 재주는 아니에요. 교단 주교나 추기경이 개입했다면 이렇게 쉬울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뿐이라.”
블레이드를 짚고 일어선 여성이 싸늘한 시선으로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설마 사도가 이런 곳에서 날뛰고 있을 줄은 몰랐지만.”
터미널의 사태가 교단의 짓임은 알았지만, 인간을 변이체로 만드는 술식 특성상 고위 사제나 추기경의 소행이라 생각했던 바.
하지만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기척은 광신에 빠진 인간의 것도, 신앙을 받아들인 종교인의 것도 아니었다.
이 세계의 그 어떤 마수나 괴물과도 기원을 달리하는 종말의 화신체.
사도가 해저 터미널의 중심부에 눌러앉아 그 기운을 빨아먹고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사도군…… 왜 이런 괴물이 여기에 있는거지?’
손목에 각인된 성흔이 사도를 보자마자 강렬하게 쑤시며 희미한 기억이 흘러들어온다.
레녹에게 성흔을 전해준 교단의 신녀, 세이나 나이드리가 일전에 저 괴물을 만난 적이 있다는 증거.
일렁이는 기억 속에서 온갖 숫자들이 왔다갔다 흔들리다 명확하게 자리를 잡는다.
지금은 영락하여 계위가 추락한 종말의 화신체. 귀도 교단 전(前) 9사도.
성흔을 통해 사도의 기원을 깨달은 레녹이 시선을 들어올린 찰나.
[크크큭,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군. 재수 없는 여자.]허리춤에 손을 얹은 근육질의 사도가 낮게 웃음을 터트렸다.
[군단의 떨거지가 발악하는 줄 알았더니 귀족 한마리가 판을 어지럽히고 있었나. 터미널 전체를 내 제단으로 삼으려 했는데 공교롭게 됐어.]우웅!!
사도가 걸음을 떼는 것과 동시에 엔진이 돌아가는 듯한 회전음이 울려퍼졌다.
가슴 안쪽에서 거세게 발광하는 엔진을 회전시키며 사도가 으르렁거렸다.
[덕분에 만신전에 바쳐야 하는 의식이 지체되어버렸잖아. 이걸 어떻게 보상할 거냐?]‘힘이…….’
직전까지 공양의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지, 느껴지는 힘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아일렌이 선공을 읽고 반응했음에도 밀려난 건 그만큼 사도가 휘두르는 출력이 막강했기 때문.
그건 분명, 지금 이 순간에도 사도의 가슴에 박힌 채 회전하는 초소형의 엔진 때문이겠지.
사도 역시 아일렌의 시선을 느낀 듯 자신의 가슴에 박힌 엔진을 두들겼다.
[죽이지? 이 해저 터미널 시설 전체의 동력을 보급하는 초소형 원자로다.]“…….”
[군단이 육라귀황마경을 탐사하다 발굴한 제국의 유물인데, 이 해저 터미널의 동력원으로 위장해 숨겨두고 있더군.]낄낄대며 웃은 사도가 말했다.
[원래라면 아무도 찾지 못했을 보물인데, 천번이 열병식에서 2사령부를 뒤집어놓으면서 이쪽 정보들이 대거 풀렸지뭐냐. 놈에게 감사해야겠어.]“그래서, 그걸 찾자마자 뽑아내 본인의 심장에 박아넣은 건가요?”
[그렇다. 연맹 놈들과의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많은 사도들이 준비를 서두르고 있으니까. 3사도께서 동부전선에 강림하신 것도 그 일환이었지.]가슴에 박힌 엔진을 회전시키며 느긋하게 걸음을 뗀 사도가 대꾸했다.
[신녀님께서 일러주신 대로였다. 토벌전에서 군단 장성들이 대거 죽어나가면서 이쪽 관할지가 텅 비었고, 기껏 대장직을 수여받은 천번은 멍청하게 도망치면서 권한의 공백이 발생했거든.]“…….”
[대장이 없는 이상 군단의 시스템을 무시하고 재물을 빼앗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지. 모가지가 뻣뻣한 주제에 이상할 정도로 쌓아놓는 보물은 많으니 관리도 부실하고.]우우우웅……!!
그 사실은 사도의 가슴에 박힌 채 회전하는 엔진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해저 터미널에 눌러앉아 원자로를 집어 삼킨 이 괴물이 막강한 힘을 손에 넣었음을.
어쩌면 사도의 능력이 예의 원자로와 더할나위 없이 잘 호환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조차.
[이 원자로를 내 육신과 융합하기 위해 터미널 시설 전체와 동조하고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불신자들의 목숨이 무려 수천 개나 넘게 필요해서…….]정면에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 끌어내어 깎아내야 한다.
순식간에 판단을 마친 아일렌이 레녹을 향해 대응책을 공유하기 위해 시선을 돌린 찰나.
제 자리에서 몸을 홱 뒤튼 사도가 레녹을 향해 폭발하듯 가속해 달려들었다.
콰아아앙!!!
[이 버러지까지 제물로 삼아야 의식이 제대로 완성이 될 것 같은데. 푸하하하하핫!!!!]“……!!”
설명이 장황하다 싶었더니, 순간적으로 정보의 공백이 발생하는 의식의 틈을 노리고 있었나.
레인저 출신인 아일렌의 반응속도로도 순간 움직임을 놓쳤을만큼 폭발적인 가속.
아일렌의 개입으로 도중에 방해받은 의식을 레녹의 목숨으로 채워 완성하려 한다면-
“피해요!!”
쿠과과과과!!!!
엄청난 속도로 공기를 짓뭉개며 레녹을 향해 탄환처럼 달려드는 사도의 형체.
아무런 보호막이나 결계조차 없이 맨 손으로 사도를 올려다보는 레녹의 모습.
‘타이밍이……!’
사도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아일렌이 아슬아슬하게 늦는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블레이드를 손목에 가져다 대며 의념을 끌어올린 순간.
눈앞에서 붉은 빛이 번뜩이며 무언가 아일렌의 뒤로 튕겨나가 거세게 나뒹굴었다.
쾅!! 콰과과광!!!
바닥과 천장을 번갈아 두들기며 들썩이다, 에스컬레이터에 처박혀 매캐한 연기를 내뿜는 모습.
전신이 새카맣게 그슬린 채 연기를 풀풀 내뿜는 그 형상은 레녹의 것이 아니었다.
[그, 아……?]오른쪽 상반신이 반쯤 짓뭉개진 사도가 고꾸라진 채,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멍하니 신음을 내뱉었다.
여성이 그 사실을 깨닫고 퍼뜩 시선을 돌린 그 순간.
그녀를 지나쳐 걸어나온 레녹이 말했다.
“교단과 연맹의 마지막 결전이라…… 흥미로운 이야기군.”
철컥!!
굵직한 배기구가 열기를 펄펄 토해내며 거칠게 진동했다.
붉은 화염이 팔뚝에 장착된 흡입장치를 타고 회전하며 뜨거운 빛을 내뿜었다.
쿵!! 치이이익!!!
배기구 입구에 시가를 갖다대 불을 붙인 레녹이 그것을 입에 물며 사도를 내려다보았다.
“그걸 들으려고 이렇게 나섰으니, 확실하게 대답해 줘야 할 거다.”
흩날리는 불길에 휩싸인 채 화신처럼 일렁이는 마법사의 모습.
술식이나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의념만으로 불길을 조작하는 초월자의 징표.
무엇보다, 거의 예열을 거치지도 않고 상대를 체급으로 찍어누르는 특유의-
아일렌이 쓰고 있던 선글라스가 열기에 녹아내려 툭 떨어졌다.
“……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