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299
약먹는 천재마법사 1299화(1299/1301)
약먹는 천재마법사 1299화
타락의 약속(3)
“대장군의 육체를 강신체로 삼아 교주를 부활시키려 한다고……?”
어처구니없는 말이지만, 레녹은 그 말을 듣자마자 추기경에게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교단이 사천사화마경에서 무언가를 아주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는 사실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신녀가 준비하는 의식이 설마 교주 본인을 직접 현세에 불러내는 것일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
만신을 섬기는 귀도 교단의 단 하나뿐인 주인. 저 바다의 모든 외신들에게 사랑받는 교리의 인도자.
망가진 사도들조차 예외없이 절대적으로 복종을 맹세하는 실패한 구세주가, 이 사천사화마경에 다시 한번 강림하려 한다는 말인가.
황당할 정도로 허무맹랑하며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하나 그렇기에 무엇보다 교단의 방식임을 직감하게 하는 섬뜩한 전언.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더와 아일렌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늙은이, 말도 안 되는 개소리 하지 마.”
철컥!
샷건을 장전하고 총구를 들어 올린 아더가 비웃었다.
“아르스노바가 멸망한 지 얼마나 지났는데 대장군의 시체로 교주를 부활시킬 거라고? 헛소리도 정도가 있지, X발.”
“…….”
“그쪽 교주, 성전이 끝나기도 전에 행방불명 돼서 누구도 위치를 아는 사람이 없잖아. 그것 때문에 전쟁에서 패배해놓고 이제 와서 무슨…… 진짜 미쳐 버린 거냐?”
아더 메이슨이 알고 있는 것이 이 대륙에 대체적으로 알려져 있는 교주에 대한 정황의 전부겠지.
머셔너리 소속으로 중앙전선에서 일하는 인랑조차 1세계의 승천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교단 측에서 교주의 정보를 극히 비밀리에 취급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주 스스로도 오랫동안 우연 속에 자신을 가두어두었다는 증거.
레녹이 알고 있는 그 어떤 대답자들 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신비롭고 기괴하면서도 속내를 읽을 수 없는 존재다.
또 다른 자신을 이제 와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자신의 인간성에 대해 일말의 감상을 남겨두었는지.
다시 만나는 그날 레녹을 아군으로 여길지, 적으로 생각할지조차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애초에 그러한 기준이 남아 있기는 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것이 교주라는 자였으니.
“신뢰가 가지는 않는 말이네요. 이 영묘에 안치된 대장군이 어떤 초월자인지 알고 있는 저로서는 더더욱.”
아일렌 역시 싸늘한 표정으로 추기경을 노려보았다.
“당신은 삼대공과 황제가 어떤 존재였는지 전혀 몰라요. 그들이 제국의 초월자를 그런 식으로 이용할 수 있게 허락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사천사화마경은 황성의 국립묘지를 중추삼아 타락한 지옥이기에, 이곳에선 죽음이 곧 힘이자 원천으로 작동하지.”
추기경이 느릿하게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영묘 안에 보관된 [의사권능]이 말 그대로 인과율을 읽어내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권능이 타락하여 반전되고, 인과율을 거꾸로 읽어들이기에 마경의 법칙이 바깥 세상과는 거꾸로 뒤집혀 존재하는 것이지.”
“…….”
“신녀는 그 권능을 이용해 그분께서 내려주신 인과율을 거꾸로 읽어서 풀어헤치고, 그분과 같은 형태로 구성하여 대장군의 육신에 덧씌울 생각이다.”
그건 레녹 역시 몇 번이고 전해 듣거나 보았던 방법의 하나였다.
자신의 기원을 근본부터 풀어헤치고, 통째로 재구성해서 새롭게 쌓아 올리는.
편람과 은성을 비롯한 9레벨의 승천자들이 자격을 얻기 위해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재창조하지 않았던가.
신녀는 사천사화마경에 존재하는 의사권능을 사용해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그보다 더한 결과를 얻어낼 생각이었던 것.
“만에 하나 의식이 성공해 대장군의 육체에 그분께서 강림을 허락하신다면, 신녀는 자신이 오랫동안 바래었던 권한을 비로소 다시 나눠 받을 수 있겠지.”
“…….”
추기경이 씹어뱉듯이 말했다.
“저 바다의 신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며 의식을 주관할 수 있는 제사장의 권한을, 10대 신녀의 죽음과 함께 소실되어 버린 바로 그 능력을 말이다.”
“제정신이 아니군.”
레녹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 말 한마디로 우레카 나이드리가 얼마나 망가지고 미쳐 있는지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
“잃어버린 제사장의 권한을 되찾기 위해 교주 본인을 직접 현세에 불러내겠다 이 말인가.”
“신녀는 자신의 부족함과 열등감에 집착하다 미쳐버렸어. 그것을 채우기 위해 교단의 질서마저 거스르려 하고 있다.”
추기경이 무섭도록 굳은 얼굴로, 아까 전에 했던 말을 정확하게 반복해서 말했다.
“본 교단에서 그분의 위상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 허나 신녀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감히 그분의 거취를 직접 정하려 하지.”
“…….”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이 어떤 분의 은혜를 받아 그 자리에 있는지 망각한 이단에게는 신벌만이 주어져야 해……!!”
오랫동안 교단에 헌신해온 추기경이 감정이 치밀어올라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
파르르 떨리고 있는 추기경의 손만이 그가 얼마나 격앙되어 있는지를 짐작게 했다.
하지만 레녹은 어째서 그가 그리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교주가 어떤 성향인지 아는 것을 보면 교단 내에서는 연배가 굉장히 높은 추기경이겠군.’
교주는 인과를 흘러가는 대로 무한히 관조하는 초월자. 자신의 존재조차 우연 속에 숨긴 광인이다.
우연히 존재한다면 어떤 인과든 수용하려 하기에, 그 교주라면 신녀의 계획조차 선뜻 받아들일지도 모른다고 추기경은 생각한 것이겠지.
교주 본인의 의지나 계획이 아니라, 신녀의 욕망에 의해 타의로 현세에 강림하는 상황을 교단의 신도로서 용납할 수 없던 것일까.
그렇게까지 교주를 숭배하는 교단의 광신이,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적어도 추기경이 어째서 레녹을 찾아왔는지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해했으리라 믿지.”
힘겹게 숨을 고른 추기경이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걸음을 돌렸다.
“본 교단이 사천사화마경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이쯤이면 알아차렸을 거다. 본 신도가 그대를 찾아온 이유 역시 알고 있겠지.”
“교단이란 정말 재미있는 곳이로군.”
레녹이 냉소했다.
“교주를 위해서라면 같은 신을 모시는 신도조차 나 같은 배교자에게 바칠 수 있는 건가.”
“모든 것은 그분께서 이끄는 구세를 위한 과정일 뿐…… 그러니 그대는 배교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하도록.”
레녹을 내려다본 추기경이 엄한 눈길을 보냈다.
“그 무도한 살인이야말로, 이번에는 위대한 교단의 질서를 지키는 헌신이 될 테니.”
펄럭!
거칠게 예복을 정돈한 추기경이 힘겹게 숨을 색색거리며 걸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내막을 모르는 이들이 보기엔 영락없이 레녹과 추기경이 대판 시비가 붙은 것처럼 보이겠지.
그리고 연맹이든 교단이든 그것을 전혀 이상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 역시 충분했다.
“느닷없이 혼자 이쪽을 찾아올 때부터 느꼈지만 단단히 맛이 간 노친네였군…….”
아더가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하게 말했다.
“바깥의 손을 빌려서 안쪽의 문젯거리를 처리하겠다는 거냐? 그걸 대놓고 밝히는 것도 그렇고, 우리가 협조할거라 믿는 것도 싹 다 마음에 안 들어.”
“그것보다는…… 교주에 대한 문제라면 이쪽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겠지.”
레녹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는 그런 존재니까.”
“…….”
결국 무엇보다 경계되는 것은 교주가 신녀의 의지를 받아들여 대장군의 육체에 강림을 허락하고 마경에 도래하는 상황 그 자체.
교주가 너무나 초월적이면서도 망가진 대답자이기에, 레녹 역시 만에 하나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이 경계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차라리 이 시점에서 교단의 목적과 분열의 전조를 알게 된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만…….
“교단 총본산에 소속된 최고위 대주교들은 대부분 저런 느낌이긴 하죠.”
아일렌이 건블레이드의 부품을 해체해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히려 사도살해자의 손을 빌릴 생각까지 하는 걸 보면 개중에는 그나마 사고방식이 유연한 축에 속하는 추기경일 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마경까지 나와 일하고 있는 거겠지만.”
“핫, 총본산의 파워게임에 밀려나 쫓겨난 게 아니라?”
아더가 코웃음을 쳤다.
“만신전에서 벌어지는 정치싸움이 어지간한 대도시의 의회는 끼어들지도 못할 만큼 추잡하다는 소문이 자자하지. 거기서 살아남은 늙은이는 다들 너구리라는 거 몰라?”
“미안하지만 너구리라는 게 뭔 비유인지도 모르겠거든요? 뭐 표현을 하고 싶으면 똑바로 하던가.”
아일렌이 고개를 저었다.
“교단 측 사정에 대해서는 저도 알만큼은 알고 있어요. 기관 멤버들 중에는 교단 출신도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처음에는 마경 탐사 과정에서 기관의 다른 멤버들과 공조할거라는 언급이 있었지.”
레녹이 힐끗 시선을 돌렸다.
“이쪽이 예상보다 빠르게 영묘까지 도착하면서 그쪽과는 동선이 꼬여 버린 건가?”
“멤버들은 현재 다른 마경 곳곳에 흩어져 있어요. 사천사화마경에 대격변이 일어난 뒤로 기존 탐사자료 중 절반 가까이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거든요.”
아일렌이 대답했다.
“영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지금은 다른 마경을 우선적으로 탐사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내려졌었죠. 그쪽을 만나기 전까지는.”
“…….”
“제가 당신과 접촉하는 것과 동시에 메시지를 보내두기는 했는데, 소식을 받은 멤버들이 도착하려면 빨라도 일주일은 걸리지 않을까…….”
“그래서 마경 초입부 탐사 일정을 일주일 정도로 잡고 움직이려 했던 거였군.”
아일렌이 멋쩍은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레녹이 생각에 잠겼다.
기관의 다른 멤버들에게 크게 관심이 있던 건 아니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녀의 대답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었기 때문.
“다른 마경 곳곳에 흩어져 있다는 건…… 역시 사천사화마경을 먼저 공략하지 않아도 중앙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건가?”
“현재 아르스노바로 가는 길목을 막고 있는 마경은 제국 황성의 각 중추기관이 타락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니까요.”
아일렌이 설명했다.
“예를 들면 육라귀황마경은 제국 황성 격납고를 중추 삼아 타락한 지옥인데, 그곳에선 악마화된 제국의 전술병기들이 배회하며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학살하고 있죠.”
“…….”
“황성 중추기관을 베이스로 만들어졌기에 마경 간의 거리나 영역이 불규칙하고, 경계선이 겹쳐 있거나 힘이 충돌하는 부분도 있어요. 그래서…….”
“사천사화마경을 끝까지 공략하지 않아도, 마경 내부에서 다른 마경으로 빠지는 길목이나 루트가 존재한다는 뜻이군.”
아일렌의 말을 끊고 설명을 요약한 레녹이 눈을 빛냈다.
“그 길목이나 진입방법은 색적기관 같은 공략파 조직이 알고 있을 테고.”
“……마경의 탐사와 공략이 소수정예로 이뤄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죠.”
살짝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아일렌이 시선을 돌렸다.
“저희는 그걸 ‘샛길’이라 부르는데, 패스파인더가 없으면 길을 잃기 너무 쉬워서 자주 시도하지는 않아요. 지금 같은 경우는 육라귀황마경의 상황이 지나치게 특수한 상황이라서-”
뿌우우우-
그 순간, 멀리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나팔소리에 아일렌의 말이 뚝 끊겼다.
이 광대한 마경 전체를 느릿하게 울리는 듯한, 출진을 알리는 듯한 개전의 울림.
그것이 멀지 않은 곳에서 흘러나온 일종의 신호라는 것을 깨달은 아일렌이 퍼뜩 시선을 들어 올렸다.
“……설마, 벌써?”
“출발할 시간이 된 것 같군.”
사화의 불꽃에서 손을 뗀 레녹이 천천히 주먹을 말아쥐며 일어섰다.
모닥불에서 일어난 레녹의 손끝에 잿빛 불꽃이 희미하게 남아 빛나고 있었다.
“이번에는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 * *
“대술주님.”
후욱……!!
자욱한 구름 속에 기거하는 주문연맹의 공중전함.
마경의 정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종실 앞에서 단천술주가 고개를 숙였다.
“천번이 마경 탐사를 끝내고 집결지로 복귀하고 있습니다. 색적기관의 레인저가 동행하고 있군요.”
“…….”
“교단의 추기경과 접촉한 것으로 보입니다. 손을 쓰시겠습니까.”
“내버려 둬라.”
자욱한 연무 속에서, 목에 삽입관을 꽂아 넣은 연리술주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목에 구멍을 뚫고 여러 개의 관을 혈관과 식도에 삽입한 채 연기를 흘려보내는 기괴한 모습.
하지만 구름 안에서 번뜩이는 대술주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빛을 품고 번뜩였다.
고개숙인 단천술주를 향해 대술주가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오랜 경험상 그 광신도들이 악착같이 달라붙을 때는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지.”
“…….”
“영묘에 보관된 의사권능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는 대장군의 시체를 노리고 있을 거다. 그 기분 나쁜 음습함이야말로 교단의 본질이니.”
서로의 목적을 일절 말한 적이 없음에도 연리술주는 이미 교단의 방향성을 어렴풋이나마 짚어내고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애초에 이 협정이 성립할 수 있던 이유를 대술주 본인의 직관으로 꿰뚫어 보고 있었기 때문.
마경 안에서 죽고 죽이는 동안, 교단과 연맹 모두 은연중에 서로의 목적이 미묘하게 겹치지 않는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다.
서로의 사상과 신념이 달라 오랫동안 전쟁을 벌여온 만큼, 같은 지옥을 앞에 두고도 바라보는 것이 다르니.
신경 써야 할 것은 결국 이 협정을 유지하게 하는 변수 그 자체에 있었다.
“천번의 상태는 어떻지.”
“본신마력을 이미 거의 다 회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겨우 반나절 만에 컨디션을 맞춰내다니, 야차의 조언대로 괴물이 틀림없군요.”
단천술주가 조용히 말했다.
“7사도를 상회하는 최대마력량을 지녔음에도 경이로운 회복속도를 지녔습니다. 평범한 소모전으로는 깎아내는 것조차도 버거울 겁니다.”
“채프먼을 상대로 승리한 마법사다. 특질계를 죽이고 그 술식마저 빼앗았으니 놈이 대술주조차 뛰어넘는 소질을 지녔음은 당연한 일.”
치이익-
삽입관 안에 피어오른 연기를 들이마시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연리술주가 중얼거렸다.
“허나 일의 성패란 결국 하늘이 내린 소질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지.”
“……대술주 님.”
“혼연(魂煙)과 무향(無響)의 준비가 끝났다. 물론 그 흡혈귀도 지금쯤이면 준비를 끝냈겠지만…….”
조종실을 가로질러 걸어 나온 술주가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전함 아래쪽에 집결한 연맹과 교단의 막대한 군세를 바라보는 술주의 눈동자가 차갑게 번뜩였다.
“출발하지. 어느 쪽이든 저번과는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될 거다.”
* * *
슈우우우웅……!!!
꽃안개가 자욱하게 낀 마경의 하늘을 뚫고, 수십 체의 비행선이 동시에 지상을 주파한다.
연맹과 교단의 주력 함대가 좌우로 나뉘어 사천사화마경 최심부를 향해 전진하는 장엄한 광경.
레녹은 야차가 술식병장으로 만들어낸 금속 전함의 끝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샤아아아악!!
쉬시시시싯!!!
수십미터에 이르는 전함과 비행선의 엔진소리가 무겁게 울려 퍼지며 마경의 생명체들을 자극하고 일깨웠다.
이빨 달린 식인 꽃이 하늘을 보며 사납게 울고, 시체를 매단 나무들이 분노해 이파리를 떨었다.
마경 안쪽의 환경 전체가 살아 있는 것처럼 깨어나 입을 벌리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듯한 기시감.
그 모든 인간을 잡아먹는 지옥의 동식물들을, 초인들의 군세가 짓밟아 지워 버린다.
콰아아앙!!! 뚜두두둑!! 쩌저적!!
수천에 달하는 교단의 사제와 교정기사들이 진군하고, 연맹의 술사들이 반대편에서 술식을 펼친다.
총본산의 주교와 연맹의 술주들이 마력을 끌어올리며 달려드는 마수를 죽이고 식물들을 찢어발겼다.
연맹과 교단의 전함 위에서 떨어지는 폭격이 지상을 주파하는 군세의 앞에 떨어지며 밀림을 박살 냈다.
쿠과과과과!!!!!
자연이 타락해 만들어진 혼돈의 지옥을 오직 인간의 힘만으로 갈아버리는 기괴한 광경.
사천사화마경 전역에 퍼져 있던 연맹과 교단의 전력이 일시에 마경의 환경을 짓밟아 길을 트는 이 순간.
“직접 보고 있자니 정말 엄청난 규모의 전력이긴 하군…….”
전함 아래쪽에서 펼쳐지는 학살을 바라보던 아더가 질린 듯이 중얼거렸다.
영묘 공략에서 연맹과 교단의 전력에 업혀가는 것을 상정하긴 했지만, 설마 아예 손도 쓰지 않고 구경만 할 수 있을 줄은.
“농담이 아니라 우리가 나설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이 정도면 이쪽의 조력이 없어도 영묘 공략이 가능한 것 아니냐?”
“중앙전선을 에워싼 여러 마경 중에서 하늘길을 쉽게 열어주는 지옥은 단 한 곳도 없지.”
금속전함의 선두에 서 있던 야차가 말했다.
“이곳 사천사화마경 역시 마찬가지다. 연맹의 기도비닉 술식이나, 교단의 가호를 떡칠한 부유체를 단기로 운용해 왔을 뿐, 이런 식으로 접근을 시도한 세력은 모두 전멸해 왔어.”
“…….”
“그리고 그 대표적인 원인이 저편에 보이기 시작하는 죽음의 화원(花園) 덕분이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지.”
아아아아아아아!!!!!
지평선 끝에서부터 빼곡하게 피어난 검은 꽃들이 일제히 흔들린다.
직경 수십 미터 크기의 사화(死花)가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피어난 광활한 평야.
한송이 한송이가 연맹과 교단의 전함에 비견되는 거대한 꽃잎이, 지평선 끝까지 수천 다발은 넘게 피어났다.
고개 돌린 검은 꽃잎이 징그러울 정도로 밀도 높게 겹쳐지며, 천지를 뒤덮은 칠흑색의 물결처럼 일렁였다.
“우욱…….”
“쿨럭, 쿨럭!!”
인간의 상리를 벗어난 기괴하고도 아름다운 꽃잎의 움직임.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오염되고 의식이 혼탁해진 초인들이 사방에서 속출한다.
주저앉아 구역질을 하거나, 아무것도 먹지 않은 위장에서 무언가를 잡아 꺼내려 하는 사람들.
뺨을 한 손으로 긁다가 살점과 근육을 파내고 치아가 보일 정도로 자해한다.
“빌어먹을, 무슨 놈의 꽃가루가 이렇게…….”
“가려워, 가려워…….”
벅, 벅……!
사화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 양측 세력의 초인들이 연달아 착란을 일으키는 모습.
중앙전선에서 살아남을만큼 뛰어난 실력과 정신력을 지닌 이들조차 오래 버티지 못한다.
왜 그들이 지금까지 마경 최심부에 바로 접근하지 못하고 천천히 탐사 범위를 넓혀 왔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는 풍경.
“아무래도 어느 쪽이든 오래 버티기는 어려울 것 같군.”
사방에서 망가져 가는 술사들을 지켜보던 야차가 시선을 돌렸다.
“계획보다 조금 이르지만 시작하려 하는데, 괜찮겠지?”
“그래.”
레녹이 양손을 맞잡고 시선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쪽은 준비됐다.”
쿠오오오오오!!!!
꽃안개가 자욱하게 끼인 혼탁한 하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일렁이는 전장 수백 미터에 달하는 압도적인 크기.
이 자리의 어떤 전함이나 비행체와도 궤를 달리하는 태양선(太陽船)이 다시 한번 현실에 강림하고.
마경의 꽃가루를 싸그리 불태우며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처럼 지상을 환하게 비추었다.
[개척상륙강습전함(開拓商陸强襲戰艦) 형태 개방]콰아아아아아아!!!!!
교단과 연맹 양측의 초월자들조차 순간적으로 시선을 피할 만큼 강렬한 열기와 광량.
그 자리에 소환되는 것만으로 태양의 역할을 대체하고 일대의 열 흐름을 제어하는 신물.
사아아아아아……!!!!
태양빛을 머금은 메기도의 광채가 아득한 사화의 꽃밭에 내리쬐이며, 일대의 모든 동식물을 단번에 마비시킨다.
마경 안에 존재하지 않는 ‘낮’을 강제로 맞이한 순간, 하늘을 향해 일제히 사기를 사출하던 검은 꽃들이 그대로 멈춰 서고.
지상에서 쉴 새 없이 일렁이던 검은 물결이 얌전해진 직후, 곳곳에서 술사와 사제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 아악……!!”
“빌어먹을, 대체 무슨 짓을…….”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용기를-”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비명과,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들의 탄식.
하지만 다른 모든 초인들의 시선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전함에 올라탄 레녹을 향하고 있었다.
마경 초입부에서 거침없이 날뛰며 자신들을 죽이고 불태웠던 태양선의 압도적인 위용.
이렇게 잠시나마 같은 편에서 마주하는 것만으로, 저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기물인지 절절하게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
“그쪽의 계획대로 일단 소환하기는 했지만, 저번처럼 폭격을 쏟아내며 날뛰지는 않을 거다.”
휘오오오오!!!
저 멀리서 빠르게 가까워지는 영묘의 풍경을 확인한 레녹이 말했다.
“이번에는 최대한 태양선의 소환을 오래 유지하며 마경의 활동을 억제하는 것이 목적이니까. 알고 있겠지?”
“오히려 태양선을 사용해 날뛰겠다고 말했으면 곤란했을 거다.”
고개를 끄덕인 야차가 웃으며 가볍게 손짓했다.
“가까이 와라. 지금부터 네게 반드시 알아야 할 몇 가지 조작법을 알려주지.”
“조작법이라고?”
“일전에 태양선의 항해사였던 존재로서 너를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
쿠오오오오!!!
하늘 위에서 불타오르는 거대한 배의 형상을 야차가 조용히 올려다보았다.
복잡한 회한이 담긴 시선으로 불타는 개척함을 바라보던 야차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저 배는 더 이상 우리 동족의 것이 아니기에, 나는 기함을 직접 조종하지 못해. 네가 해야 한다.”
“…….”
“태양선의 방향키를 잡은 존재에게는 배의 기능을 극한까지 끌어낼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야차가 말했다.
“지금부터 네게 태양선의 선장으로서 반드시 알고 있어야 형상변환 시동어를 알려주마.”
화르르르륵!!!
그 순간, 상공에 떠오른 태양선의 양옆으로 거대한 화염의 날개가 펼쳐지며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