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00
약먹는 천재마법사 1300화(1300/1301)
약먹는 천재마법사 1300화
타락의 약속(4)
사화가 뒤덮인 꽃밭 상공에 떠올라 타오르며 그 형태를 바꿔 가는 태양선의 거체.
붉게 타오르는 양 날개를 전장 수백 미터 크기로 펼쳐 엄청난 속도로 뻗어나간다.
콰르르르르륵!!!!!
“태양선이 네 의지와 동조하며 형태를 바꾸기 시작한 거다.”
레녹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변화하기 시작한 태양선을 바라보는 사이 야차가 말했다.
“본래 살아 있는 생명체였기에 변화의 가능성을 인지한 순간부터 배의 주인과 동조하여 끊임없이 공명하지.”
“시동어의 존재를 인식한 것만으로 태양선이 반응할 줄은 몰랐군.”
레녹이 양 날개를 활짝 편 태양선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새로운 기함의 형태라기보다는 생명체에 가까워 보이는데…… 특정한 키워드를 통해 배의 기능을 강제로 끌어낼 수 있는 건가.”
“메기도는 9레벨의 외수를 개조하여 만들어낸 불사의 방주. 그 기함은 살아 움직이며 의지를 품은 거대한 생명체 그 자체지.”
콰아아아아!!!
하늘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태양선을 바라보며 야차가 말했다.
“그렇기에 기함 어딘가에는 생명체로서의 본능과 의지가 내장되어 있고, 그것을 강제로 각성시켜 끌어내는 편법이 존재한다. 외해를 오랫동안 항해해 온 우리 동족들이 알고 있는 일종의…… 요령에 가깝겠군.”
“…….”
“어려운 말은 아니야. 그 의미조차 본능에 닿아야 하기에 지극히 직관적이지. 하나 이 순간에는 무엇보다 효과적일 거다.”
야차가 웃었다.
“넌 단지 이렇게 말하기만 하면 된다…… ■■■■■■.”
순간, 레녹은 야차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외계의 존재로서 오랫동안 바다를 항해해 온 그가 사용하는 외차원의 언어.
이제는 완전히 멸망하여 인과가 끊겨버린 어떤 세계에서 사용하던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레녹은 무슨 말을 시동어로 삼아야 하는지 직감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본래 거대한 생명체였던 메기도의 의지를 부르는 말.
배의 형태가 아니라, 그 기원이 되는 외수의 본능을 끌어내는 단 한마디.
태양선의 주인인 레녹의 의지에 호응할 뿐이라면, 굳이 외계의 언어로 부르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메기도.”
레녹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깨어나라.”
쿠오오오오오오오!!!!!!
그 말과 동시에 화염의 날개를 펼친 태양선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붕(大鵬)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수백 미터를 넘어 하늘 전체를 메울 정도로 거대해진 화염의 새가 날개를 펼치고 타오르는 눈길로 지상을 굽어본다.
이제는 그 너비와 길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진 화염날개를 구부리며 사화의 꽃밭 전체를 감싸 안고.
이윽고 하늘을 불태우며 저 멀리 비치는 대장군의 영묘까지 닿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아!!!!!!
영묘 주변의 상공을 둥글게 휘감은 화염날개가, 장엄한 불꽃의 장막처럼 하늘을 뒤덮고 내려앉는다.
그때마다 사방에서 고개를 움찔거리던 검은 꽃들이 마비된 것처럼 굳어버리고, 완벽하게 조용해졌다.
“태양선에 내장된 외수의 본능을 각성시켜, 주변의 시공간을 강제로 자신의 ‘둥지’ 안에 끌어들이는 거다.”
야차가 그 모습을 올려다보며 나직하게 말했다.
“태양의 역할을 대신하는 수준을 넘어, 기함의 좌표를 고정하고 일대를 항성계에 가까운 환경으로 재구성하지. 인근 좌표 전체를 태양선의 일부로 삼기에, 시공간왜곡을 무시하고 이 광활한 꽃밭 전체를 사정거리에 둘 수 있다.”
“…….”
레녹이 육라귀황마경에서 보았단 9레벨의 외수, 메기도의 모습과는 판이한 불사조의 형상.
메기도라는 생체전함 자체가 본래 여러 가지 짐승의 형상과 본능을 내장하고 있는 것일까.
알 수 없다. 야차의 말대로 본래 이 신물은 이 시간선에 레녹에게 주어질 수 없는 힘이었으니까.
육라귀황마경을 홀로 정복한 단장이 메기도의 코어만을 적출하여 레녹에게 일부 넘겨준 결과.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도, 어째서 필연이 레녹에게 이것을 넘기고 조언을 건넸는지 알아야 했다.
레녹이 이것을 하나의 수단으로 삼기를 바랬는지. 마경을 공략하는 데 태양선이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왜 단장이 레녹이 아르스노바로 향하는 일을 간접적으로나마 도와주었는지.
“가자.”
야차의 말을 무시한 레녹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영묘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은 연맹과 교단의 협정에 섞여 다시 한번 영묘 앞에 선 이 순간.
이 정도 규모의 대군세를 동시에 영묘 안에 투입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준비가 필요했다.
적어도 레녹이 마경 안에 머무는 동안 두 번 다시 이만한 전력을 등에 업고 공략을 시도할 수는 없을 터.
타인의 힘을 빌려 만든 자리라 해도 단 한 번뿐인 기회. 이 자리에서 모두 끝내야 했다.
“세 번째는 없어. 이번에야말로 영묘 안에 진입한다.”
슈우우우우!!!!
불타는 하늘 아래로 전함과 비행선이 속도를 높여 사화의 꽃밭을 가로질렀다.
징그러울 정도로 빽빽하게 자라난 꽃들이 꿈틀거렸지만, 내리쬐는 태양빛에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과 지상 양쪽에서 연맹과 교단의 대군세가 화원을 짓밟고 멀리 보이는 영묘를 향해 가속하는 모습.
두두두두두두!!!!!
검게 물들어 타락한 거대한 사원과, 그 주변을 둘러싼 외곽 성채의 형상.
화염날개가 감싸 안은 하늘 아래로 그 모습을 확인한 초인들 사이에서 강렬한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저것이 바로 그 광성대장군의 영묘인가……!”
“문헌으로 봤던 그대로군. 기반시설을 모두 매설한 극도로 정교한 건축기술의 집약체다.”
“타락한 채로도 저렇게 아름다운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나?”
술사나 사제들 중에는 제국 역사에 대해 아는 이들도 상당한 만큼, 감회가 남다른 이들이 있었던 것.
꼬박 몇 달을 넘게 탐사와 공략에 투자했음에도 그림자조차 보지 못했던 영묘가 눈앞에 있다.
“전원 강하 준비.”
철컥!!
연리술주의 차가운 명령과 동시에 술사들이 술식병장을 붙잡고, 전함 곳곳에서 준비를 마쳤다.
교단의 선교함 역시 거의 동시에 교정기사와 사제들을 앞세워 순식간에 사방을 살피고.
“키힛.”
7사도가 키득거리면서 대검을 고쳐잡고 손짓했다.
“뛰어요. 죽기 싫으면.”
“가자!!!”
“후우……!!”
“오오오오!!!!”
수십 대의 비행선이 영묘 중심부 영공에 진입하는 것과 동시에 수십 명의 초인들이 동시에 강하.
직후 영묘를 둘러싼 왜곡역장에 처박힌 비행선이 하늘 위에서 일제히 폭발해 터져 나갔다.
콰아아아-
퍼버버버버벙!!!!
꽃안개가 자욱한 상공에서 폭발하며 비산한 화염이 불꽃놀이처럼 허공을 수놓았다.
붉은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로 사화를 먹은 초인과 먹지 않은 초인 수백 명이 영묘 안으로 동시에 진입.
외곽 성채와 장원 곳곳에서 시체꽃이 피어난 괴물들이 튀어나와 침입자를 맞이했다.
크르르륵!!
케에에에에!!
“신께서 보고계신다!!”
“성전을 시작하라!!”
가장 먼저 장원에 진입한 교단의 교정기사들이 순백의 갑주를 입고 앞으로 질주한다.
축복으로 무장하고 가호를 검에 두른 기사들이 시체꽃을 매단 괴물들과 사방에서 맞붙었다.
콰아아앙!!!
“에드먼, 설마 했는데……!!”
“시체를 찾지 못한 동료들이 모두 여기 있었군…….”
영창을 마친 술사들이 외곽 성채 벽면을 무너뜨리고 시체꽃을 매단 초인들을 자극해 일으켜 세운다.
안면이 있는 시체나 유해를 알아본 술사들이 경악 섞인 목소리를 토해내면서도 빠르게 움직였다.
살아 있는 인간과 죽어 있는 인간이 엄청난 속도로 충돌해 육편을 흩뿌리며 갈려 나가는 처참한 광경.
안개에 잠긴 장원의 풀밭이 순식간에 시뻘겋게 물들어나갔다.
콰과과과광!!!!
“시작했군. 이쪽도 바로 움직이지.”
광대한 영묘 전역에서 순식간에 시작된 난전을 발아래 두고 야차가 시선을 돌렸다.
“목표는 두 가지. 영묘 주변의 시체꽃을 모두 회수해 역장을 걷어내고, 사방위에 위치한 4개의 장군묘를 조작해 영묘 입구를 연다.”
“…….”
“대술주가 남쪽. 7사도가 북쪽. 천번이 동쪽을 맡고 추기경이 서쪽에서 장군묘를 조작하겠다. 내가 왜곡역장을 걷어내 영묘 입구를 열지.”
철컥!!
철령술식을 조작해 금속파편을 팔에 장착한 야차가 말했다.
“계획대로 영묘 주변의 시체꽃을 모두 회수하는 것이 먼저다. 그전까지는 역장을 걷어낼 방법이 없으니 독단적인 행동은 자제하도록.”
“미안하지만, 그쪽이 말하기도 전에 다른 초월자들은 먼저 시작했거든요?”
후욱……!!
쏴아아아아!!!
남쪽에서 자욱한 구름이 몰려들어 사선으로 내리찍히고, 북쪽에서 거대한 피의 구슬이 떠올라 파멸의 비를 내렸다.
구름 속에서 타락자의 시체꽃을 뽑아내는 대술주와, 광소하며 핏물을 흩뿌리는 7사도가 엄청난 속도로 질주.
광대한 영묘 양쪽에서 순식간에 수십 구가 넘는 시체들을 갈아버리며 앞장서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
드르르르륵!!!
시체꽃에 잠식당한 괴물들을 말 그대로 짓밟아 분쇄하는 경이로운 무위. 연맹과 교단의 그 어떤 초인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속도.
저들이야말로 분명 이 자리에서 가장 유의미한 조력자이자, 반대로 가장 이 자리에서 믿을 수 없고 위험한 전력 그 자체겠지.
“극편의 금련. 천련금모 10식.”
아일렌의 반박을 무시한 야차가 철령술식을 사용하는 것과 동시에 금속전함이 폭발.
수천 개의 금속 조각으로 흩어졌다, 다시 거대한 금속의 창으로 조립되어 지상에 떨어졌다.
“형상변환 개시.”
콰아아아앙!!!
영묘 중앙에 떨어져 사방에서 깨어나는 시체꽃을 짓밟고 뽑아내기 시작하는 야차의 신형.
연맹과 교단의 초인들이 뒤섞여 싸우기 시작하는 난전 속으로 레녹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영묘 동쪽에 존재하는 시체꽃을 회수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겠군.”
[화염인(火炎印): 접익(接翼)]화르륵!!
불꽃의 날개를 터트린 레녹이 몸을 회전시켜 엄청난 속도로 장원 위에 떨어져 내렸다.
지축이 흔들리는 충격과 동시에 사방에서 깨어나 비틀거리는 시체꽃의 안면을 움켜쥔다.
흑신마공의 구결을 사용해 손아귀에 힘을 준 채로 얼굴을 잡은 채 어깨를 회전.
바로 옆에서 검을 뽑아 들고 달려드는 두 시체들을 후려쳐 상반신째로 터트렸다.
[천붕(闡崩)]뻐어어어엉!!!!
세 구의 시체가 폭발해 흩어지는 충격 속에서 흩날리는 시체꽃 세 송이를 잡아챈다.
손안에서 발작하며 꿈틀거리는 꽃송이를 강하게 움켜쥐며 다른 손으로 수인을 맺고, 마법을 발동.
눈부신 화염이 부채꼴의 형태로 퍼져 나와 성채 바깥에서 튀어나오는 시체들을 전부 불태웠다.
[작염구(炸炎球)] [삼중화(三衆化) – 반발(反撥)] [혈화선(血化線)]콰아아아아아아!!!
폭발하는 화염의 해일 속에서 홀로 엄청난 속도로 시체들을 소각하고 짓밟는다.
부패하고 문드러진 채 움직이는 시체들이, 몰아치는 화염파도에 휩쓸려 나아가지 못하고 밀려난다.
살과 근육이 불타 증발하고, 뼈 안쪽에 달라붙은 시체꽃이 발작하듯 비명을 내질렀다.
뚜두둑!!
키에에엑!!
하늘 위에서 불타는 날개를 펼친 메기도의 장엄한 자태. 지상 아래서 몰아치는 화염의 파도.
영묘 주변이 새빨갛게 물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화력을 뽑아내는 레녹의 신형.
연맹과 교단의 초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미묘하게 굳은 표정으로 혀를 찼다.
“괴물 같은 놈. 벌써 저 정도로 예열을 끝냈다고?”
“태양선의 소환을 유지한 채로도 그만한 출력을 뽑아내는 건가.”
“영묘 안에 들어간 뒤에는 역시 거슬리겠어…….”
당장은 영묘에 진입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고 있지만, 언제 갈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관계.
그때 저 마법사야말로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위험한 경쟁자가 되리란 사실은 틀림없다.
영묘의 시체들을 불사르는 화염의 막강한 출력이 든든한 만큼, 저 불꽃이 재차 자신들을 향할 것이 경계되는 것도 사실.
하지만 레녹은 영묘 사방에서 쏟아지는 날카로운 의념을 무시하고 품 안에서 견문록을 매만졌다.
‘견문록이 반응하고 있다. 저번보다 더 심해졌군.’
촤라라락!!!
영묘에 가까워지는 것과 동시에 견문록의 페이지가 휙휙 넘어가며, 그 안에 온갖 괴상한 글자가 떠올랐다.
[탐사■■ ■■■■갱신 실패. 오류■■■■.] [■■ ■■■■ ■■■. 기록 소실 판정.] [■■■■■■■■■■■■■■■■■-]마치 일지 안에 쓰인 기록을 강제로 지워버린 것처럼, 뭉개진 글자들이 떠올랐다 사라지는 모습.
저번처럼 견문록 자체가 사념으로 오염되어 폭주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무언가 다르다.
어쩌면 이 사실이 영묘를 공략하는 데 유의미한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마르티네스. 이쪽으로.”
레녹이 생각에 잠긴 사이, 동쪽 근처의 시체들을 빠르게 정리한 아일렌이 손짓했다.
“이 근처에 의식공간을 경유해 영묘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만들어둘게요.”
휘오오오!!!
장원 곳곳에 세워진 묘비가 폭발하고 파헤쳐진 폐허 사이.
흙더미에 파묻힌 어느 제단 사이로, 작은 문 같은 것이 드러나 있었다.
“황성 국립묘지는 본관을 크게 짓고 통로를 막은 다음, 인부들이 드나들기 위한 샛길을 남겨두었거든요.”
아일렌이 블레이드를 내려놓고 흙더미를 파내면서 자신이 처리한 인부의 시체들을 가리켰다.
“그래서 영묘 사원 밖에서는 이쪽의 벽이 가장 얇아요. 역장이 걷히기만 하면 의식공간을 통로 삼아 이 벽 정도는 넘어갈 수 있을 거예요.”
“…….”
의식공간을 경유해 유체(流體) 상태가 되어, 영묘의 보안을 무시하고 진입하는 방법.
아일렌이 일전에 설명했던 기관이 사용하던 의식공간을 경유하는 편법 루트인가.
화려한 인상을 지닌 아일렌이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땅을 파고 있는 기묘한 모습.
“그러니까 이 위치 기억해둬요.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면 이쪽으로 진입할 테니까.”
“연맹이랑 교단이 영묘에 들어가기도 전에 뒤통수를 칠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야차는 모든 일이 끝난 뒤에 결론을 내자고 했지만, 진짜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아일렌이 땅을 파며 말했다.
“최소한의 목적을 위해 손을 잡았으니, 양쪽 모두 언제든 약속을 어길 준비가 되어 있을 거예요. 영묘 안으로 진입이 가능해진 시점에서 협정이 깨져도 이상하지 않잖아요?”
“교단이나 연맹 측이 영묘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아버리거나, 방해할지도 모른다?”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그쪽이 가장 높으니까요.”
아일렌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당장 태양선에 의존해 영묘까지 접근했지만, 영묘 안에서 원하는 유물이나 권능을 챙겨 나온 다음에도 그럴까요?”
“…….”
“영묘에서 얻은 힘으로 강해져서 태양선을 빼앗으려 할지도 모르죠. 휘하 전력들이 모두 죽는다고 해도 영묘 내 수확만 챙겨서 빠져나가려 할 수도 있어요.”
연맹과 교단에게 아무런 기대조차 하지 않는듯한 아일렌의 단호한 가정.
그건 아일렌 역시 오랫동안 중앙전선을 공략하며 그들이 어떤 조직인지 뼈저리게 느껴왔기 때문이겠지.
그렇기에 레녹 역시 아일렌이 지금부터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알겠지만,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이렇게 이른 시기에 계획이 틀어지지는 않을 거다.”
자리에서 일어난 레녹이 대답했다.
“교단과 연맹은 서로를 견제하는 만큼 나를 신경 쓰고 있어. 정확하게는 둘이 싸우는 도중 한쪽이 이득을 취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걸 경계하고 있지.”
“…….”
“나와 직접 싸워본 대술주와 7사도라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거다.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을 억지로 죽이겠다고 힘을 쓰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었지.”
레녹이 걸음을 돌렸다.
“일단 한번 그 뇌리에 위험함을 심어주고 나면, 그들의 행동마저도 어느 정도는 간섭할 수 있거든.”
“……마르티네스.”
“영묘 주변이 조용해지고 있다. 대술주와 7사도가 벌써 인근을 정리한 모양이군.”
시선을 들어 올린 레녹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리고 야차 역시 그 두 사람만큼이나…… 유능한 존재라는 건 분명해 보인다.”
쿠웅……!!!!
레녹의 눈앞에 보이는 사원이 일그러지며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한다.
영묘 주변에 펼쳐진 역장이 실시간으로 뒤틀리면서 시야가 왜곡되는 모습.
거리감을 알 수 없을 만큼 멀어졌다 가까워지고, 기감이 닿을 듯 말듯 확장과 수축을 거듭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커튼을 느릿하게 흔들어 아주 자그마한 샛길을 열어내는 듯한 섬세한 솜씨.
레녹이 회수한 시체꽃을 전해주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야차 혼자 역장을 조금씩 걷어내고 있다.
바다를 방황하던 외계의 악령답게 공간이해도가 초월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일까.
“생각보다 훨씬 야차의 솜씨가 좋군.”
영묘 동쪽에 위치한 거대한 묘비 앞에 선 레녹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쪽도 영묘 입구를 열기 위한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쿠우웅!!!
팔을 걷어붙이고 거무튀튀한 묘비 안에 마력을 불어넣는다.
묘비 안에 마력을 주입하는 것과 동시에 안쪽에 새겨진 복잡한 술법회로가 느껴졌다.
고등 결계술의 지식을 지닌 초인만이 올바른 형태로 작동시킬 수 있는 술법진의 형태.
동쪽 장군묘에 새겨진 술법진을 작동시키는 것과 동시에 강렬한 빛이 하늘 위로 솟구치고.
거의 동시에 사방에서 같은 광채가 솟구치며 네 방향에서 회전해 만(卍)자의 형태로 회전했다.
파아아아앗!!!
남쪽의 대술주. 북쪽의 7사도. 서쪽의 추기경 셋이 거의 동시에 구역의 정리를 끝내고 영묘 시설을 작동시키기 시작한 순간.
광대한 영묘 사원 전체가 거세게 흔들리며 지진이 난 것처럼 지축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두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흔들리며, 사원 전체가 격동하고 기둥과 벽면의 위치가 바뀌는 모습.
영묘 중앙에서 시체꽃 수십 송이를 쥔 야차가 양손으로 허공을 주무르듯이 지휘하며 조심스럽게 역장을 걷어내고.
새카맣게 오염된 대리석 기둥 사이, 끝없는 공허로 가득 찬 영묘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
탁.
시체꽃이 피어난 마이야 렌슬릿의 신형이 야차의 옆에 사뿐히 내려섰다.
“……!!!!”
영묘 사방에서 시체꽃을 회수하던 초인들의 기감을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넘는 집행자의 신형.
역장을 걷어내던 야차가 마이야를 돌아보기도 전에 주변의 초인들이 먼저 움직였다.
“아더!!”
“알고 있어!!”
콰아아앙!!!
오직 집행자를 일대일로 마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용병이 엄청난 속도로 장원 한복판을 가로질렀다.
샷건이 불을 뿜는 것과 동시에 아더의 신형이 폭발적으로 가속. 아음속을 넘어 마이야를 향해 달려들고.
양손에 움켜쥔 샷건을 옆구리에 낀 채, 미끄러지듯이 마이야의 옆으로 돌아선 그 순간.
“……어?”
마이야의 반대편 손에 들려 있는 ‘도끼’를 확인한 아더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멍하게 변했다.
그녀의 마른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굵직하고 거대하기 그지없는 황금빛의 찬란한 초대형 도끼.
거대한 신전의 기둥을 뽑아 만든듯한, 그 존재만으로 압도적으로 주변을 찍어누르는 듯한 유물의 존재.
첫 번째 교전 당시 마이야가 사용하던 두 자루의 소검이 아닌, 완전히 다른-
“위, 위성분쇄자……!!!!”
가속하는 시간 속에서, 술사들 중 한 명이 눈알이 튀어나올 듯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사원의 건축기술을 보고 감탄하던, 제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식견이 높은 술사.
이변이 일어났음을 깨달은 다른 이들이 즉시 마이야를 향해 달리며 시선을 돌렸다.
“피해!!! 야차를 데리고 물러나라!!”
“술주, 저게 뭐냐. 빨리 말해!!”
“제, 제국의 학살병기 중 하나다. 사천사화마경에 있을 거라 추정되는 부장품 중 하나인데, 문헌에 따르면 분명……!!!”
믿을 수 없다는 듯 더듬거린 술사가 창백한 표정으로 말했다.
“영묘에 묻혀있는 대장군의 고유무기였-”
파앗!!!
마이야가 황금빛의 초대형 도끼를 들어올리는 것과 동시에, 그녀를 중심으로 은백색의 날개가 펼쳐지며 영묘 전역을 휘감았다.
도끼를 중심으로 주변의 마력과 의념이 빨려 들어가듯 모이며 시야가 왜곡되는 듯한 기현상이 일어났다.
이 자리의 모든 이들이 그 거대한 환상 속에서 돌이킬 수 없는 섬뜩함을 느끼고 반응하기도 전에.
위성분쇄자를 휘두른 마이야가 야차와 함께 왜곡역장과 영묘 사원을 사선으로 찢어발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