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01
약먹는 천재마법사 1301화(1301/1301)
약먹는 천재마법사 1301화
타락의 약속(5)
“영묘 진입 과정에서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사안을 정리하지.”
교단과 연맹의 협정이 맺어지고 영묘를 향해 출발하기 직전.
집결지 상공에 떠오른 수십 체의 공중전함을 올려다본 야차가 양측 수뇌부 앞에서 입을 열었다.
“말했듯이 영묘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시체꽃을 회수해 역장을 걷어내야 해. 허나 그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시체꽃이 자라난 괴물 중에 뛰어난 실력자가 섞여 있을 경우에 대한 문제겠군요.”
원탁에 앉아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던 추기경이 대답했다.
“본 교단이 탐사를 시작하기 전에도 마경에서 실종된 초인들이 많았습니다. 일부라도 영묘를 지키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요.”
“맞다. 이능개화전단의 소멸번대. 머셔너리의 전쟁용병. 파라곤의 대행자…… 대륙 전역에서 모여들었다 빠져나오지 못한 정예들이 그곳에 섞여 있지.”
야차가 힐끗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주의해야 할 건 최고의 집행자라 불리는 마이야 렌슬릿의 존재다. 다들 이름 정도는 들어보았겠지?”
“…….”
연리술주가 무심한 표정으로 곰방대를 뻐끔거리고, 7사도가 귀신처럼 웃으며 고개를 기괴하게 꺾었다.
주문연맹과 귀도교단 같은 초대형 세력조차 그녀의 이름과 명성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는 없었기 때문.
“영묘 탐사 도중 천번이 그녀를 조우했고, 용병은 직접 싸워보기까지 했지. 나 역시 그녀가 시체꽃에 잠식당한 것을 보았으니 적으로 만나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
야차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문제는 집행자의 능력이 특히나 이런 전장에서 위험하다는 점에 있다.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스페셜리스트. 명성을 감안하면 그녀는 영묘 진입 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높겠지.”
“사화에 잠식당한 집행자의 전투능력이 얼마나 상승했는지, 혹은 반대로 얼마나 하락했는지의 여부가 문제가 되겠군.”
연리술주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머셔너리. 네가 상대했던 집행자의 컨디션은 어땠었지.”
“존나게 어려웠지.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냐?”
아더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힘이나 기술은 전혀 죽지 않았는데 기력과 체력은 끝이 보이지 않아. 싸우는 도중에도 호흡이 흐트러지거나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애초에 숨을 쉬고 있는지조차 모르겠군.”
“…….”
“그나마 싸우면서 느꼈던 건 소우주를 사용하지 않는 것 정도인데, 이것도 확실한 정보는 아니다. 의념을 사용할 수 없는건지, 사용하지 않은 건지에 따라 난이도가 천차만별로 변하겠지.”
“시체꽃에 잠식당한 집행자가 동물보다 식물에 가까워졌다면 의념을 사용할 수 없어진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네요.”
아일렌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식물에 가까워진 집행자가 폐를 통해 호흡하지 않는다면, 아예 호흡기관 자체가 변이되었을 가능성도 있겠고요.”
“영묘에 펼쳐진 역장 때문에 공성전이나 화력전은 불가능해. 초인전력을 투입하는 이상, 집행자가 날뛸 수 있는 난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집행자는 그 판데모니엄에서도 중히 다루던 칼날 중 하나였다. 까다로운 일이 되겠군…….”
“…….”
연맹과 교단 모두 마이야 렌슬릿만이 아니라 판데모니엄을 꺼려 하는 느낌이 강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아더와 아일렌조차 그 사실에 어떠한 의문조차 갖지 않는다는 것.
그만큼 중앙전선 내에서도 판데모니엄의 이름이 갖는 위상이 특수하다는 것일까.
“저기이~ 아무런 의미 없는 이야기 언제까지 할 거예요?”
끼긱-
새빨간 손톱으로 테이블을 긁어내린 7사도가 히죽 웃었다.
붉은 피를 마스카라처럼 찍어바른 형형한 눈빛으로 주변을 돌아본 흡혈귀가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영묘 안에 집행자 같은 게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는데, 대처방안을 논의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데. 쓸데없이 시간만 끌리는 거 아니야?”
“…….”
“어차피 직접 박아보지 않고선 모른다고. 그쪽이든 우리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영묘 근처에서 본 강력한 초월자가 마이야 렌슬릿이었을 뿐. 동급의 괴물이 더 있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오랜 시간동안 중앙전선 각지에서 실종된 강력한 초인들의 숫자는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많다.
그 중 일부라도 저 영묘 주변에 시체꽃에 먹혀 배회하고 있다면 틀림없이 까다로운 상대가 되겠지.
라리아타의 말대로, 영묘 주변의 전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이상 무의미한 논의일지도 모르지만-
“단순히 마이야 렌슬릿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라리아타 트리바이어. 영묘 공략 도중 난적을 만났을 경우 매뉴얼을 정해두어야 한다는 의미였지.”
야차가 7사도와 시선을 마주했다.
“누가 집행자를 상대할지 미리 정해두지 않는다면, 기껏 투입한 연맹과 교단의 정예들이 무엇 하나 해보지도 못하고 학살당할 테니까.”
“…….”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적어도 누가 먼저 나서야하는지 정도는 말을 맞춰두고 가는 편이 좋겠지.”
무표정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본 야차가 말했다.
“상황에 따라 가까이 있는 초월자가 상대를 맡는 것이 효율적이겠지만, 협정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사이에도 순서가 필요할 테니. 그 부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할 것 같군.”
“후후…… 거기 귀신님.”
라리아타가 턱을 괸 채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한번만 더 날 그딴 이름으로 부르면 입을 귀까지 찢어버릴 줄 알아요.”
“각자의 세력에서 미리 집행자를 상대할 담당을 정해두고 상황에 따라 순서를 조율하겠다.”
7사도의 서슬 퍼런 협박에도 야차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해 연맹과 교단, 천번 측에서 담당자를 한 명씩 뽑고 싶은데…… 마르티네스. 할 말 있나?”
“……아니.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군.”
순간, 주변의 시선이 대번에 레녹을 향해 쏠렸다.
사실상 이번 작전의 열쇠이자 핵심이 저 마법사에게 달려 있음을 모두가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
연리술주와 라리아타의 표정이 제각기 다른 감정을 띄고 변했지만, 레녹은 그 둘을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사화에 잠식되어 있는 집행자가…… 진짜 마이야 렌슬릿 본인이 맞는 건지 생각하고 있다.”
“뭐?”
“전투능력과 기술은 틀림없는 본인의 것이지만, 그렇기에 소우주를 사용하지 못한 것이 이해가 안 되는군.”
레녹이 시선을 들어올렸다.
“그 정도 경지에 이른 테크니션은 의념과 심상조차 기술의 영역으로 끌어내려 다룬다. 정신이 망가진 상태로도 다른 기술을 문제없이 사용한다면, 소우주 역시 사용할 수 있어야 하지.”
“…….”
순간적으로 침묵이 흘렀다.
설마 영묘 탐사를 직접 진행하고 온 마법사 본인이 마이야의 존재를 의심하고 나설 줄은 생각지 못했기 때문.
“만약 저기에 존재하는 것이 마이야 렌슬릿이 아니라면, 어쩌면 집행자 본인이 시체꽃에 잠식당한 것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겠지.”
“……그게 무슨 뜻이지?”
마이야 렌슬릿 본인이 시체꽃에 먹힌게 아니라면, 오히려 공략파에겐 좋은 소식이 아닌가.
어째서 그것을 더 위험하다고 단언하는지 순간적으로 판단에 공백이 생긴 찰나.
“결국 그 부분에 대해서는 7사도의 말이 맞군.”
레녹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느 쪽이든 직접 확인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문제가 될 거다.”
* * *
영묘에서 조우한 집행자의 무력을 경계하고 있었음에도 결코 예상할 수 없었던 변수.
시체꽃에 잠식당한 마이야 렌슬릿이 대장군의 무구를 직접 휘두르고 있다는 초유의 이변.
콰아아아아아아!!!!!
위성분쇄자의 거대한 도끼날이 왜곡역장을 찢어발기고 거대한 사원 중심부에 내리꽂힌다.
그 충격으로 사원 건물 전체가 박살나 무너지며 찢어진 역장과 뒤섞이고 강렬한 충격파를 터트렸다.
야차를 방해하기 위해 도끼를 휘둘러, 역장과 사원을 동시에 박살 내버린 집행자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한발 늦게 의미를 깨달은 주교가 흠칫 시선을 돌렸다.
“이런, 설마……!!!”
쿠구구구구!!!!
사원 중심부에 내리꽂힌 집채만한 도끼를 중심으로 찢어진 역장이 휘감기며 일그러진다.
왜곡역장과 영묘 사원 건물이 붕괴된 채 뒤섞이며, 장원 한복판에 거대한 흑점처럼 변했다.
“이쪽에서 들어가지 못하게 사원의 입구 자체를 막아버린 건가!!!”
영묘를 보호하는 왜곡역장은 대장군의 의념 그 자체.
그렇기에 역장은 대장군의 무구에 휘감기며 부서진 사원 전체를 왜곡시키고 블랙홀처럼 일그러뜨린다.
처음부터 집행자는 역장과 사원을 망가뜨려, 누구도 영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던 것.
채앵!!
다른 이들이 패닉에 빠진 순간, 마이야가 허리춤에서 두자루의 소검을 뽑아 돌아섰다.
곧바로 정신을 차린 연맹의 술사들이 순식간에 술식을 영창해 달려들었다.
“조언자 님을 지켜라!!”
“썩은 시체가 감히……!!”
콰과과과광!!!!
연맹의 고위 술사들은 군대를 뛰어넘는 화력을 갖춘 걸어 다니는 폭격기 그 자체다.
그들이 단시간에 투사하는 화력 자체는 중앙의 어떤 세력도 쉽사리 따라올 수 없을 정도.
하지만 마이야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폭발을 피하지도 않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카각!!
양손에 역수로 든 소검을 회전시키며 사방으로 팔을 튕기듯이 흩뿌린다.
허공을 날카롭게 꿰뚫은 충격파가 드릴처럼 회전하며 초음속의 속도로 사출.
술식을 쏘아낸 술사들의 머리를 한방에 터트리며 사체의 파편을 튕겨냈다.
“꺽……!!”
퍼버버벙!!
철퍽!!
피와 육편을 맞으며 순백의 갑주를 두르고 달려드는 교정기사를 투구째로 꿰뚫는다.
머리부터 터져 나간 시체를 걷어차는 것과 동시에, 넘어지는 사체 너머로 마이야의 신형이 가속.
야차 주변에서 왜곡점 조절에 집중하고 있던 술사와 사제들을 엄청난 속도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우득!!
촤자자자작!!!
“막아!! 움직이지 못하게 동선을 좁혀라!!”
“안 돼, 정면에서 오래 버틸 수가……!!!”
살점이 찢기고 팔다리가 잘려나가 떠오르며, 비명과 단말마가 교차한다.
수십에 달하는 연맹과 교단의 정예 사이를 거침없이 휘저으며 수십 명의 머리를 연달아 터트린다.
중앙전선에서 살아남은 베테랑이 마이야의 손짓 한번에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절명하는 기괴한 광경.
“빌어먹을, 어쩐지 일이 잘 풀리더라니까!!!”
철컥!
위성분쇄자의 충격파에 휩쓸려 멀리 날아간 아더가 쌍욕을 내뱉으며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대로 가면 영묘의 문을 열기도 전에 연맹과 교단 측의 병력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가게 된다.
“꼴초랑 흡혈귀는 어디야? 왜 코빼기도 안 보여?!!”
“영묘 북부와 남부 쪽에서 동시에 교전중에 있군.”
레녹이 눈을 감은 채 말했다.
빠르게 기감을 돌려 사방에서 움직이는 기척들을 파악한 레녹이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상정했던 최악의 상황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모양이다.”
“집행자와 비슷한 실력의 괴물들이 영묘 주변을 지키고 있었군요.”
촤악!!
소멸번대의 시체를 한구 베어내 시체꽃을 뽑아낸 아일렌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술주와 7사도의 발을 잡아둘 정도라면, 서쪽을 맡은 추기경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봐도 될 테고요.”
“……하, 일단 저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니들은 가봐.”
아더가 침을 탁 뱉으며 샷건을 들고 걸어나왔다.
“난 어차피 의뢰만 끝내면 장땡이라고. 시체만 회수해서 빠질 테니 남은 일은 알아서 잘해봐라.”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 거다. 저번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군.”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기감을 끌어올려 마이야를 살폈다.
“대장군의 무구를 사용했기 때문인가. 무언가 결정적으로 변한 부분이 있어.”
“아니, 뭐 바뀌어봤자 얼마나 달라졌다고-”
순간, 멀리서 몸을 웅크리는 마이야의 움직임을 본 아더의 말이 뚝 멈췄다.
소검을 역수로 쥔 채 낮게 눕힌 그녀의 자세에서 강력한 ‘의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기 때문.
고오오오……!!!
일전에 영묘에서 싸웠을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마이야 렌슬릿의 의념.
그것이 지금 저편에서 손에 잡힐듯이 느껴진다는 것은, 즉-
“피하으아악?!!”
내면세계 소우주
심상기 발동
[팔허(捌虛)] [일리관천(一理貫穿)]쐐애애애액!!!
세 갈래로 나뉘어 하나의 극점에서 합쳐진 검광이 공간을 관통하고 영묘를 가로로 꿰뚫었다.
“씨발, 소우주를 쓰잖아!!”
전조를 읽자마자 샷건을 터트려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아더가 드러누운 채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번에는 분명 못 쓰는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냐?”
“죽고 싶지 않다면 일어나는 게 좋을 거다.”
아더의 옆에 내려앉은 레녹이 말했다.
“사화에 잠식당하면서 기력과 체력의 소모가 없어졌다고 했었지. 그럼 의념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빌어먹을, 설마?”
“저번에는 왜 쓰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쓸 수 있다면 경우가 다르지는 않겠지.”
아더의 멱살을 잡아챈 레녹이 마력을 끌어 올린 순간.
마이야가 다시 한번 소우주를 발동해 영묘 사방에 미친듯이 참격을 흩뿌리기 시작했다.
[팔허(捌虛)] [일리관천(一理貫穿)] [일리관천(一理貫穿)] [일리관천(一理貫穿)] [일리관천(一理貫穿)]터터터터터터터텅!!!!!
소검을 휘둘러 쏘아내는 참격이 검압에 짓눌려 폭발하며 섬뜩한 칼날의 폭풍이 된다.
흩뿌리는 검기 속에서 술사의 육신이 갈려나가 핏물로 화한다. 기도하는 사제의 축복을 베고 정수리부터 쪼개 내장을 드러냈다.
마이야의 번뜩이는 손짓을 따라 체온보다도 뜨거운 핏물이 춤을 추며 영묘의 탁한 공기 속에 쏟아져 내린 그 순간.
중형 도끼를 짊어진 야차가 옆에서 나타나 마이야의 옆구리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콰아아앙!!!
“귀신 놈, 살아 있었냐!!”
“이 육신은 죽은 지 한참 지나서, 살아 있고 말고를 논할 단계는 아니었지.”
온몸에 금속파편을 덧대 이어붙인 야차가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마이야의 참격에 휩쓸린 여파로 상반신이 뭉개지고 하반신이 절단된 육신을, 금속 파편으로 겨우 이어붙인 처참한 모습.
하지만 전신이 넝마가 된 야차의 얼굴에는 어떤 고통이나 두려움의 감정조차 보이지 않았다.
“까다롭게 됐군. 의념을 무제한으로 사용하며 심상기를 난사하는 괴물이라…….”
터어엉!!
잠깐의 충돌로 망가진 도끼를 버리고, 새로운 금속 파편을 뽑아 조작해 휘감는다.
야차가 마이야를 향해 돌아서는 것과 동시에 아더가 샷건을 들고 뛰쳐나갔다.
콰아아아앙!!!
“야차가 버틴 건 의외지만 당장 철령술식을 사용하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군.”
흩날리는 굉음 속에서 레녹이 아일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만큼 몸이 망가졌다면 다시 역장을 걷어내기는 어려울 거다. 이쪽에서 방법을 찾아야겠어.”
“제가 할게요.”
영묘 입구 쪽으로 다가간 아일렌이 지면에 손을 짚은 채 눈을 감았다.
“집행자가 대장군의 무구로 역장을 찢어버리면서 균열이 생겼어요. 역장을 조금만 더 걷어낼 수 있다면 저 어둠을 통해 영묘로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의식공간을 경유해 저 어둠의 환경 자체를 무시하고 뛰어넘겠다는 말이군. 아까 말했던 위치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괜찮겠나?”
“사원 건물 전체가 저런 모습이 됐는데 위치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
쿠오오오오!!!!
부서진 사원 건물과 대장군의 도끼가 역장과 함께 뒤섞여 일그러지며 블랙홀처럼 회전하는 모습.
이미 입구나 복도의 원형 따위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고, 끝없는 어둠만이 엿보일 뿐이다.
저 어둠 안에 직접 몸을 밀어 넣지 않고서는 영묘 지하로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겠지.
“블랙홀에 걸린 역장은 현재 중심부에 내리찍힌 대장군의 무기에 휘감겨 있어요.”
아일렌이 손목을 그어 피를 손끝에 찍어 바르며 말했다.
“아주 잠깐만 저 도끼를 옆으로 치울 수 있다면 역장이 함께 끌려나가면서 어둠으로 들어갈 틈이 나올 거에요. 부탁해도 될까요?”
“힘으로 찍어누르는 거라면 어렵지 않지.”
레녹이 양손을 모은 채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맡겨둬라.”
“-!”
아일렌의 진혈을 보자마자 무언가를 느낀 것일까. 아더와 싸우고 있던 마이야가 고개를 휙 돌렸다.
발을 뒤로 빼며 자세를 낮추는 것과 동시에 아더의 샷건을 회피.
옆구리를 후려갈긴 야차의 도끼날을 소검으로 받아내며, 그 힘을 반동으로 삼아 튕겨 나갔다.
파아앙!!!
으스스한 묘비 사이를 엄청난 속도로 날아 스치듯이 초고속으로 가속하는 마이야의 신형.
소검을 휘두를 때마다 사방에서 술사와 사제들의 목에서 피가 솟구치며 우수수 쓰러진다.
순식간에 상황을 이해한 야차와 아더가 동시에 마이야를 붙잡고 늘어졌다.
“막아야겠군.”
“X발, 식물이 됐으면 가만히 좀 있어라!!”
쾅!!
수백 킬로그램이 넘는 도끼를 짊어진 야차가 강렬한 충격파와 함께 중장비처럼 질주한다.
샷건의 반동을 밟고 날아오른 아더가 묘비 사이로 미끄러지듯이 가속해 마이야를 뒤쫓았다.
엄청난 속도로 마이야의 머리 위로 날아온 아더가 몸을 반바퀴 뒤집으며 샷건을 거꾸로 잡고 격발.
마이야의 등에 수백 발에 달하는 산탄을 초음속의 속도로 흩뿌렸다.
콰아아아앙!!!!
충격으로 지면이 짓눌리며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길 정도로 막강한 영거리 포격.
하지만 샷건이 명중한 자리에는 반쯤 박살 난 소검 한 자루만이 남아 있었다.
멀리 앞서나가는 마이야의 신형을 바라본 아더가 퍼뜩 시선을 돌렸다.
“빌어먹을, 소검을 발판으로 삼아……!!!”
쐐애애액!!!
한 자루 소검을 역수로 쥐고, 양 팔을 교차해 끌어안은 채 속도를 높이는 마이야의 모습.
한줄기의 섬광이 되어 대기를 뚫고 초음속으로 회전해, 가속하는 의식 속에서 소검을 휘두른다.
새하얗게 발광하는 칼날이 인지의 속도보다 빠르게 레녹의 목젖을 뚫고, 아일렌의 정수리에 내리꽂히려던 그 순간.
“올 줄 알고 있었지.”
레녹이 마이야를 돌아보지도 않고 속삭였다.
“떨어져라.”
영묘 상공에서 추락한 태양선이 블랙홀에 처박히며 어마어마한 폭발을 터트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앙!!!!!!
“-!!!”
마이야가 역장을 찢어버리면서 상공에 떠 있던 기함이 영묘 안쪽으로 진입이 가능해진 상황.
레녹이 그것을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태양선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분명 한 번쯤 이런 기회가 올 거라 생각했기 때문.
콰아아아아아아!!!!
대답은 없었다.
마이야가 충격파에 휩쓸려 튕겨 나가는 것과 동시에, 태양선과 충돌한 대장군의 도끼가 블랙홀 밖으로 밀려나고.
도끼를 중심으로 휘감긴 역장이 일제히 끌려나가면서 아일렌의 눈앞에 검게 물든 블랙홀이 모습을 드러낸 그 순간.
발아래 펼쳐진 어둠이 입을 쩍 벌리고 영묘 주변에 서 있는 모든 이들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화악!
순식간이 지면이 사라지면서 풍경이 뒤집히고, 공기가 싸늘하게 변하는 듯한 섬뜩한 감각.
끝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하는 아일렌이 레녹의 손을 붙잡은 채, 정신을 집중해 걸음을 옮긴다.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공허 안쪽에서, 자신과 레녹을 의식공간에 위치시켜 유체 상태로 영묘 안으로 진입하는 순간.
이대로 아일렌에게 맡겨두면 어떤 식으로든 기존의 목적대로 영묘 안쪽까지 무사히 도달할 수 있겠지.
하지만 레녹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일렌이 아니라 다른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 이 순간에도 품 안에서 눈부시게 빛을 발하는 [마경견문록]을.
촤라라라라라락!!!!!
영묘 안쪽으로 진입하는 것과 동시에 견문록의 페이지가 미친 듯이 흩날리면서 빛을 발한다.
처음 마경에 들어온 이후로 지금껏 단 한 번도 특별한 반응을 보인 적이 없던 견문록의 광채.
빠른 속도로 넘어가는 종이 위쪽에서 일련의 문구들이 엄청난 속도로 스쳐 지나갔다.
부활의 서.
요르타에서 유령견문록을 습득했을 당시 함께 동봉되어 있던 주문서의 존재.
에단 바쥬르의 재능을 일회성에 한해 담아두었던 그것이, 마경견문록에도 존재하고 있던 것인가.
영묘에 두 번째 방문하는 것을 조건으로 삼아 견문록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부활의 서를 발동.
그를 통해 부활시키는 것은, 특정한 생명체나 영수가 아니라-
[소실된 탐사기록 복구 완료. 영묘 탐사기록 개방.] [마지막으로 방문한 공간좌표 재갱신.] [열람하시겠습니까?]‘이건-’
영묘 입구 아래로 떨어지는 와중, 레녹의 의식이 어딘가로 강력하게 끌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대상지정저항을 사용하면 거부할 수 있는, 그러나 이 순간 무엇보다 강하게 레녹을 부르는 영혼의 인력.
마경견문록의 저자인 에단 바쥬르가 사천사화마경에서 마지막으로 다녀간 공간좌표.
그것을 느낀 레녹이 잠깐의 망설임 끝에 견문록을 강하게 움켜쥔 그 순간.
레녹은 자신의 의식이 아주 거대한 성소 저편으로 끌려가는 것을 느끼고 눈을 감았다.
파아아아아앗!!!!!!
“큭……!!”
터터텅!!
의식공간 너머에서 인력을 이기지 못한 레녹이 어두운 공동 안을 그대로 굴러 미끄러진다.
현실이 아니라 의식공간에서 의지만을 움직이고 있음에도,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강력한 현실감.
몇 번을 넘게 바닥을 구른 레녹이, 이윽고 무릎 아래까지 잠기는 얕은 호수에 빠지는 것과 동시에 멈춰 섰다.
풍덩!!
“……물?”
의식공간에 존재하는 호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감각.
술식이나 결계술을 사용해 재현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물의 감촉.
온몸이 흠뻑 젖은 레녹이 호수의 풍경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호수의 중심부에 위치한 거대한 제단을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숨을 멈추었다.
오오오오!!!
어두운 호수 위로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촛불에 둘러싸여 있는 신비한 제단.
아름다운 옥좌를 수천 개씩 겹쳐 쌓아 만들어낸 듯한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형상.
“…….”
찰박……!!
홀린 듯이 자리에서 일어난 레녹이 물길을 헤치고 제단을 향해 걸었다.
동시에 황금빛의 아름다운 음률이 제단을 중심으로 휘감기며 울려 퍼졌다.
아주 오래된 제국의 황좌 위에 향을 피우고 흘러가는 시간을 기린다면 저러한 모습일까.
이제는 모든 것이 아스라이 희미해진, 위대한 영광과 권능마저 빛이 바래고 회한만이 남아 일그러진.
그 제단 위에 황금빛의 고리를 휘감은 유리색 눈동자가 떠올라 홀로 회전하고 있었다.
“……이건.”
마주하는 순간 레녹 역시 알 수 있었다.
이 거대하고도 신비로운 의식공간을 유지하는 핵심.
마경견문록이 부활의 서를 사용해가면서까지 탐사일지의 기록을 ‘부활’시킨 이유.
에단 바쥬르가 사천사화마경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공간좌표의 진정한 의미.
레녹이 그 사실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제단 위에 놓여있는 힘의 정체를 직감한 순간.
마경견문록의 마지막 페이지에 비로소 새로운 글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늘의 이치를 보고, 인과의 원리를 듣고, 운명의 음률을 해석하여 이곳에 이른다.] [천칭의 기울임을 여기에 새겨 네 번째의 약속으로 남긴다.] [아르스노바 제국 황성 제 5번 열쇠병기.] [의사권능(意思權能) : 타락한 황금률(黃金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