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02
약먹는 천재마법사 1302화(1302/1315)
약먹는 천재마법사 1302화
타락의 약속(6)
우우우우웅……!!!
유리색 눈동자가 회전할 때마다 황금빛의 파문이 시공간을 건드리며 느릿하게 퍼져 나온다.
황금빛의 파문이 행성의 고리처럼 아름답게 공전하며 눈동자를 감싸 안고 부유하는 신비로운 형상.
그에 맞춰 아름다운 음률이 의식공간 전역을 울리면서 합창하듯 레녹의 영성을 뒤흔들었다.
마경견문록에 새겨진 좌표에 따라 이끌려 찾아온 거대한 의식공간.
그 안에서 마주한 제단의 정체를 깨달은 레녹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의사권능…….”
인간의 의지에 기반하여 존재하고 작동하며, 그 자체로서 현실을 개변하는 능력.
제국 황족의 특권을 권능의 형태로 가공하여 인과율에 직접 간섭하는 힘.
레녹이 사천사화마경을 찾아온 가장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영묘 안에 진입하는 것과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이 순간.
[아르스노바 제국 황성 제 5번 열쇠병기.] [의사권능(意思權能) : 타락한 황금률(黃金律)]“……다비.”
[행성절대좌표 바깥에 위치해 있는 허수차원 너머. 의식공간의 일종이에요, 마스터.]레녹의 의식과 함께하고 있던 다비가 즉시 대답했다.
[다중차원함수를 사용한 암호화를 통해 숨겨진 좌표라서, 평범한 방법으로는 진입이 불가능한 장소네요.]“견문록에 적혀 있는 좌표를 통해서만 진입이 가능한 공간이라는 뜻인가.”
생각에 잠겨 있던 레녹이, 이곳에 들어오기 직전의 상황을 기억해 내고 중얼거렸다.
영묘 입구에 펼쳐진 왜곡역장을 걷어내고 안으로 진입하기 위해 아일렌과 함께 의식공간을 경유하던 상황.
하지만 그 시점에 마경견문록의 탐사기록이 복구되면서 해당 좌표로 레녹의 의식만이 전이되었던 것.
“아일렌이 의식공간을 경유하려 시도하면서 강제로 이쪽 좌표에 접촉하게 됐군. 본의 아니게 도움을 받았나…….”
의식공간이란 본래 인간의 의식만이 드나들 수 있는 일종의 개념영역.
현실에 존재하는 실재하는 시공간이 아니라, 허수차원에 존재하는 허상의 좌표에 가깝다.
하지만 만약 실체하는 육신으로 허수차원에 머무를 수 있다면 현실의 물리법칙이나 공격에서 순간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바.
레녹이 항하사미궁에서 손에 넣은 반지, ‘파이겐바움의 눈동자’ 역시 그러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던가.
아일렌은 그러한 방법을 통해 영묘 안팎으로 뒤엉킨 방벽과 장애물을 뚫고 내부로 진입하려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레녹의 의식이 견문록의 새롭게 갱신된 좌표와 동조하며 이곳으로 진입하게 되었던 것.
“…….”
예상치 못한 결과였지만, 레녹은 한편으로는 눈앞에 펼쳐진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둠의 서고에서 손에 넣은 마경견문록이 사천사화마경에 들어온 뒤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던 이유.
그럼에도 영묘에 두 번째로 들어온 순간 반응하여 탐사기록을 모조리 복구해 낸 이유.
그 모든 정황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인과로 연결되어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으니까.
[단순히 해당 좌표를 알고 있다고 진입이 가능한 건 아닐 거예요. 마스터와 동행한 진혈종이 도와주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다비가 살짝 머뭇거렸다.
[탐색일지를 작성한 유기체가 이곳을 직접 방문한 적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테니까요.]“……에단 바쥬르가 이 의식공간을 직접 방문한 적이 있다는 건가.”
품 안에서 견문록을 꺼내든 레녹이 수첩을 응시했다.
견문록의 마지막 페이지에 존재하고 있던 ‘부활의 서’.
생명체가 아니라, 견문록에 소실되어 있던 기록 자체를 ‘부활’시켜 떠오른 일련의 좌표.
이 의식공간의 좌표를 기록해둔 존재가 에단 바쥬르라는 사실은 틀림없다. 그가 사천사화마경을 여행하며 의사권능을 손에 넣기 직전까지 도달했다는 것도.
“에단은 자신이 견문록에 남긴 기록이 소실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견문록에 부활의 서를 남겨둔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겠지.”
레녹이 견문록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영묘에 두 번째로 진입하는 것을 트리거로 삼아 견문록의 탐사기록을 복구하려 했다면…… 언젠가 영묘에 다시 방문해 의사권능을 가지러 올 생각이었던 건가.”
견문록에 부활의 서를 준비해두었다는 것 자체가, 견문록에 적은 탐사기록이 언젠가 소실되리란 사실을 에단이 알고 있었다는 증거.
부활의 서가 발동하는 트리거를 영묘에 두 번째로 진입하는 순간으로 하려 했다면, 에단이 영묘를 다시 방문하려 했음은 틀림없겠지.
어째서 레녹이 이 공간을 찾아내게 되었는지, 돌아가는 정황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째서 에단은 처음 이 의식공간을 찾았을 때 의사권능을 바로 회수하지 않았을까.”
레녹이 천천히 제단을 향해 걸으면서 말했다.
“에단이 언젠가 다시 이곳을 방문하려 준비를 해두었다는 건 분명해. 그럼에도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권능을 가져가지 않았다면…….”
찰박.
발아래 밟히는 물결의 소리를 들으며 멈춰선 레녹이 스스로 답을 도출해냈다.
“그건 역시, 카이세 바쥬르에게 의사권능을 넘기고 싶지 않아서였기 때문이겠지.”
[……마스터.]“에단이 견문록을 작성한 건 그가 마지막으로 대륙을 여행하던 시기. 카이세에게 육체를 완전히 넘기기 전의 일이다.”
레녹이 제단 앞에 서서 말했다.
“만약 의사권능을 손에 넣거나 좌표를 기억한 채로 카이세에게 육체를 넘겼다면, 카이세가 대신 권능을 손에 넣을 가능성이 있을 테니까.”
[…….]“만약 에단이 카이세에게 권능을 넘기는 것을 염려해 일부러 기억을 지우고, 그 기록만을 견문록에 남겨 소실시켜 두었다면. 그 이유는 역시…….”
따스한 어둠이 내려앉은 의식공간을 둘러본 레녹의 시선이 깊게 가라앉았다.
“에단이 카이세에게 육체를 넘긴 뒤에도 자신을 포기하기 않았기 때문일 거다.”
[…….]“만약, 에단 바쥬르가…….”
단장이 언급하고, 태양선이 가리키며, 견문록이 증언한다.
에단이 카이세에게 육체를 넘긴 뒤에도 스스로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부활자의 운명은 이미 블랙컨슈머 프로젝트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마음 같아서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싶지만, 지금은 오래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의식공간 중심부에 존재하는 제단과, 무수한 촛불 사이에 떠오른 유리색 눈동자의 형상.
[타락한 황금률]이 레녹과 시선을 맞추려는 듯 흐릿하게 발광하고 있었으니까.“…….”
우우우우우웅……!!
레녹이 가까이 다가서는 것과 동시에 더욱 강렬하게 공명하는 유리색의 눈동자.
그 존재만으로 시공간에 황금빛의 파문을 흩뿌리며 아름답게 울리는 방울과도 같은 형상.
[하늘의 이치를 보고, 인과의 원리를 듣고, 운명의 음률을 해석하여 이곳에 이른다.] [천칭의 기울임을 여기에 새겨 네 번째의 약속으로 남긴다.] [아르스노바 제국 황성 제 5번 열쇠병기.] [의사권능(意思權能) : 타락한 황금률(黃金律)]“열쇠병기. 타락한 황금률이라…….”
사천사화마경에 존재하는 의사권능은 다름 아닌 인과율을 직접 읽어내는 권능.
그렇다면 황금률(黃金律)이란 인과율을 직접 읽어내는 능력을 말하는 것일까.
견문록의 뒤에는 에단 바쥬르가 남겨둔 것으로 추정되는 짤막한 추신이 덧붙여져 있었다.
[사천사화마경을 여행하던 도중 우연히 의사권능을 찾아 적혀있던 글귀와 함께 좌표를 남긴다.] [황족의 특권을 가공해 권능의 형태로 정제한 힘. 삼태극의 묘리를 차용한 현실개변 능력의 일종.] [세계 10법을 찾는 과정에서 손에 넣었으나, 원하는 기적이 아니기에 계승은 시도하지 않았다.] [천(天)과 지(地)를 기록해두었으나 인(人)의 좌표는 적을 수 없어 현실에 남겨두었다.]“예전부터 느끼지만, 에단 바쥬르는 자신이 했던 일을 이상하게 표현하는 버릇이 있군.”
쓴웃음을 지은 레녹이 중얼거렸다.
“의사권능을 우연히 찾았다니, 이걸 뒤늦게 본 사람이 그 사실을 믿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마스터. 제 데이터베이스에서 삼태극(三太極)의 개념에 대해 찾았어요.]다비가 레녹과 함께 견문록을 읽으며 말했다.
[우주를 천지인의 세 가지 개념으로 나눠 정의하는 고대 세계관의 일종이라고 하네요. 아르스노바가 세워지기 이전의 시대에서 사용되던 단어라는데요?]“천지인의 세 가지 개념 중에서 인 하나만은 현실에 남겨두었다…….”
레녹이 고민에 잠겼다.
“의사권능의 요체를 찾아 위치를 기록해 두긴 했지만, 그 일부는 아직 현실에 남아 있는 건가.”
의사권능이 에단의 본래 목표가 아니었다면, 그것을 원형 그대로 회수하지 않은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당장 회수가 가능한 부분만 손을 대고, 그 이상으로 손이 갈 즈음에 놓아버렸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 시점에 의사권능의 요체를 레녹이 마주하게 된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
[피자 조각처럼 세 부분을 모두 모아야만 이 의사권능이라는 걸 사용할 수 있는 걸까요?]“아니. 의식공간에 이 정도로 실체화된 시점에서 이게 권능의 요체라는 건 확실해. 이걸 얻는다면 능력을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다.”
가까이서 그 모습을 빤히 들여다본 레녹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지만 견문록에서 말하는 ‘황금률’이 정확하게 어떤 개념인지 모르겠군. 단순한 격언이 아니라는 건 틀림없겠지만…….”
황금률이 인과율을 해석하는 능력을 칭하는 말이라면, 말 그대로 황금의 율법을 보는 눈 그 자체겠지.
하지만 세간에서 통용되는 황금률은 자신이 바라는 대로 타인에게 베풀라는 격언의 의미로 통한다.
타락한 황금률이 어느 쪽 의미인지 알 수 없어서 구체적인 능력을 쉽사리 짐작하기가 쉽지 않은 바.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예의 권능을 처음으로 접한 만큼 레녹은 신중하게 접근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의식공간 내의 시간이 현실에서는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지만-
“주변에 퍼지는 황금빛 파문은 완벽한 원형이나, 실체가 없는 잔흔이다. 권능이 시공을 건드리며 발생하는 파생효과의 일종인 것 같군.”
다비와 함께 제단 주변에서 의사권능을 관찰하던 레녹이 고민에 잠겼다.
“눈동자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진짜 안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단순히 의안(義眼)일 뿐인 건가?”
[스캐닝을 해보면 내부 구조는 안구와 동일하긴 한데, 의식공간의 모습이라 진짜 이런 느낌인지는 모르겠네요.]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의사권능을 사용하기 위해선 한쪽 안구를 적출해야 하는 걸까요? 그럼 에단이란 유기체가 포기한 것도 이해가 갈지도?]“……그건 애초에 의안의 존재 목적과는 전혀 다를 텐데.”
의안이란 안구를 적출한 환자가 얼굴 구조가 무너져내리지 않기 위해 착용하는 인공장기.
애초에 한쪽 안구에 문제가 생겨 적출해야 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사용하는 물건이다.
의안을 착용하기 위해 멀쩡한 안구를 빼내야 한다면 그것만큼 아이러니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모르겠군.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권능을 다룰 수 있다고 한다면 또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레녹의 육안은 마력과 의념을 보는 데 극도로 특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두 가지 이상의 마안을 개안한 이능의 정수이기도 했다.
의사권능을 얻겠다고 눈 한쪽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권능을 얻을 수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닌 바.
마경에서 찾고 있던 능력을 눈앞에 두었음에도, 레녹이 곧바로 그것을 취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이유.
그건 이 의사권능 자체가 평범한 능력이나 선천이능이 아니라 ‘타락한’ 힘이기 때문이었다.
교주의 부활을 경고하던 추기경이, 타락한 의사권능을 어떻게 불렀는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
“타락한 황금률. 이건 말하자면 영묘가 타락하는 것과 동시에 의사권능 역시 타락했다는 뜻이겠지.”
레녹이 생각에 잠겼다.
“추기경은 타락한 권능이 인과율을 거꾸로 읽어내는 능력으로 반전되었을 거라 말했다. 그래서 이걸 당장 손에 넣는 것이 이득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인과율을 읽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조차 모르는데, 인과율을 ‘거꾸로’ 읽는 권능을 손에 넣는다면 어떻게 될까.
당장 이 영묘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무엇보다 레녹은 사천사화마경에 의사권능을 회수하기 위해서만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레녹에게 가장 중요한 목적은 마경을 뚫고 아르스노바로 향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적어도 이 영묘를 공략한 뒤에야 가능한 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지금 의사권능을 얻는 것은 외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다.
만약 의사권능이 사용하는 것만으로 정신력을 대폭 깎아먹는 힘이라면, 아직 대장군을 만나지도 못한 현 시점에서는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상황.
권능의 힘과 대가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만큼 리스크를 확실하게 판단하기가 어렵다.
[마스터가 걱정된다면 일단 제가 대신 맡아둘까요?]“안돼. 정령은 이런 종류의 힘에 훨씬 더 민감해서, 잘못하면 네 영성까지 오염되어 버릴 수도 있어.”
[제가 직접 삼키지는 않고, 꼬리 형태로 만들어서 매달아 놓을게요.]다비가 자신의 등 뒤에 펼쳐진 여러 개의 꼬리를 흔들었다.
[혹시라도 위험해지면 마스터가 도와줄 거잖아요? 저는 마스터랑 항상 함께이니까, 그 정도는 같이 감수할 수 있다구요.]“같이 감수한다니. 일이 그렇게 되면 리스크는 내가 아니라 너 혼자서 짊어지는-”
그 순간, 레녹의 말이 그 자리에서 뚝 끊겼다.
[마스터?]“……아니. 다비 네 말이 맞아.”
제단을 바라보는 레녹의 표정이 순간, 무서울 정도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이 정도 리스크도 감수하지 못해서야 아르스노바 공략을 꿈꿀 수 있을까. 시답잖은 고민이었군.”
[…….]“손에 넣으려 했던 힘이 눈앞에 있는데 쓸데없이 망설이고 있었어. 이걸 내가 직접 하지 않고 네게 떠넘기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사천사화마경에 들어오면서부터 통상적인 것과는 다른 리스크나 위기가 있으리란 사실은 각오했다.
이제부터의 여정이 그간 레녹이 지나온 것보다도 훨씬 더 위험하면서 궤가 다른 난관으로 가득하다면.
그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레녹 역시 그만한 각오와 대가를 갖춰야 하는 바.
처음부터 알고 있지 않았던가. 처음부터 전부 이해하면서도 이곳에 왔다.
후환이나 뒷감당이 두려워서 발을 빼거나 망설일 시기는 지났다.
이제는 그조차도 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최악의 경우라도 미치지 않으리란 자신은 있다. 그렇다면 상관없겠지.”
순식간에 생각을 덜어낸 레녹이 결연한 눈빛으로 손을 뻗었다.
“이 자리에서 권능을 가져가겠다.”
레녹이 지니고 있는 대상지정저항은 황족의 특권보다도 상위에 위치한 재능.
타락한 황금률이 어떠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해도, 최소한 의식이나 영성을 빼앗기지 않을 자신은 있다.
당장 의사권능을 미리 손에 넣는 것만으로 영묘 안에서 가져갈 수 있는 선택지가 엄청나게 많아지는 상황.
최악의 경우 설령 눈 하나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망설이지 않겠다.
레녹이 그렇게 생각하며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제단 위에 놓인 유리색 눈동자를 움켜쥔 순간.
콰직!!!!
손안에서 유리색 눈동자가 부서지며, 한 줌의 가루조차 남지 않고 말끔하게 소멸했다.
의안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을 뿐, 진짜 안구의 역할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었나.
하지만 그 예상치 못한 결과를 오래 고민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유리색 안구가 부서지는 것과 동시에, 그 안에 담겨 있던 ‘무언가’ 벼락처럼 레녹의 내면에 내리꽂혔다.
파직-!
“……!!”
[마스터!]의념과 심상, 정신과 영혼의 네 갈래 영역을 단 한 번에 관통하는 황금빛의 성광(聖光).
육체가 아니라 의식의 영역에서 레녹의 인지능력을 영구히 개변하는 무언가 뇌리에 강림했다.
마치 레녹의 내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감각기관을 만들어내는 듯한 강렬하고 섬뜩한 이물감.
“큭……!!”
파아아아앗!!!!!
휘청이며 뒤로 물러서자, 흔들리는 손끝을 타고 황금빛의 파문이 연달아 퍼져 나온다.
허공을 피아노처럼 두들겨 연주하듯 유선(流線)이 폭발적으로 흘러넘치며 레녹을 감싸 안고.
동시에 엄청난 정보량을 품은 채 다시 레녹을 향해 휘감기듯 쏟아져 들어갔다.
콰아아아아아!!!!
새빨갛게 물든 시야 저편에서 황금빛의 유선이 미쳐 날뛴다.
레녹의 눈앞에서 터져 나와 회전하며, 각자 어마어마한 정보를 품고 강제로 ‘읽혀 들어온다.’
‘이건-’
원인과 결과를 하나로 이어붙이는 거대한 흐름.
그 모든 시간선마다 접선을 그어 속도와 방향을 포기하는 가상의 곡선.
그 순간 레녹은 자신이 손에 넣은 권능의 진짜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인과율이란 곧, 무한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매 순간마다 존재하는 인과의 변동성을 가리키는 개념.
그것을 거꾸로 읽어내어 반전시키는 타락한 황금률의 능력이란 곧-
“인과의 절단면을 읽어내고 강제로 지정할 수 있는 파멸의 해석기.”
번쩍!!
레녹이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손을 뻗어 의식공간의 한 군데를 짚었다.
“특정한 시간선에 존재하는 ‘최악의 인과’를 강제로 끌어내는 힘이었나?”
쩌적!!
아무런 마력이나 의념을 사용하지 않고 허공을 매만지는 레녹의 손짓.
하지만 그것만으로 광대한 의식공간 전체에 균열이 일며, 금이 간 채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마치 레녹이 짚어낸 시공간 좌표 자체가 ‘언젠가’ 의식공간이 무너질 시작점이었던 것처럼.
의식공간 전체가 금이 간 채 무너져내리며 폭발해, 엄청난 속도로 레녹을 현실로 돌려보냈다.
콰아아아앙!!!!
“마르티네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영묘의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이 순간.
창백한 안색으로 레녹의 옆에서 함께 추락하고 있는 아일렌의 모습.
영묘 안으로 진입하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기척.
“…….”
의식공간에서 보낸 시간은 현실에서 찰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 순간.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레녹 역시 아일렌에게 무의미한 질문을 던지지도 않았다.
흘러넘치는 황금빛의 선율을 아무렇게나 잡아 휘두른 순간, 의식공간과 똑같이 현실이 부서져 내리고.
어둠으로 가득 찬 영묘 지하 시설 전체가 폭발하듯 양옆으로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