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03
약먹는 천재마법사 1303화(1303/1315)
약먹는 천재마법사 1303화
대장군의 영묘(1)
콰아아아아!!!
인과율의 절단면을 잡아 벌리는 것과 동시에 시공간에 금이 가며 폭발한다.
어둠에 휩싸인 영묘 지하시설 전역이 그 균열을 따라 양옆으로 갈라지고, 현실로 돌아온 레녹이 발판조차 없는 통로 아래로 떨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공허 저편에서 불어닥치는 바람. 시체가 썩어 부패하는 악취.
“영묘 내부는 이미 완전히 잠식당했어요……!!!”
쾅!!
떨어지며 통로 벽면에 충돌한 아일렌이, 벽면에 빼곡하게 새겨진 인간의 얼굴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조각상이나 문양이 아니라, 진짜 인간의 얼굴가죽을 벗겨내 통로 벽면에 빼곡하게 이어붙인 혐오스러운 광경.
벽면에 달라붙은 수천 수만 명의 얼굴들이 동시에 이쪽을 바라보며 소리 없는 절규를 토해내는 끔찍한 모습.
기억하는 황성 국립묘지의 풍경과는 너무나도 달라진, 타락한 금술의 정경에 아일렌의 의념이 흔들린 찰나.
옆에서 추락하던 레녹이 그 자리에서 고개를 푹 숙였다.
“……!!!”
마치 추락하는 도중 혼절하기라도 한 것 같은 힘없는 모습.
화들짝 놀란 아일렌이 레녹의 손을 잡고 끌어당기며 어깨를 흔들었다.
“마르티네스!! 정신 차려요!!”
“……잠깐.”
콰아아아아!!!!
힘겹게 두 눈을 뜬 레녹의 시야 안에서, 황금빛의 유선이 흘러넘친다.
타락한 황금률이 한계를 모르고 작동하며 사방의 모든 인과율을 거꾸로 읽어 들이는 광경.
오직 의지만으로 존재하며 발동하는 기적이기에, 레녹 역시 새로운 감각기관을 막 얻은 것처럼 통제할 수가 없다.
“조금, 시간이…….”
콰아아앙!!!
직후 아일렌의 머리 위에서 아더와 마이야의 신형이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며 연달아 맞붙었다.
영묘 입구가 열리며 진입을 시도한 일행이 추락하는 와중에도 교전을 멈추지 않는 두 초월자의 모습.
샷건이 불을 뿜고 유탄이 흩날린다. 그 사이로 검광을 난무하며 야차까지 피해 추격하는 마이야의 신형.
영묘 입구가 열린 뒤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쪽을 따라온 것인가.
마이야 렌슬릿을 여기서 죽이지 않는다면 사실상 뿌리칠 수 없을 터.
“집행자……!!”
쐐애애액!!!
아일렌이 레녹의 멱살을 잡고 뒤로 숨기며, 뱀처럼 휘어져 떨어지는 소검을 받아치려던 그 순간.
레녹이 눈 앞에서 흩날리는 황금빛의 유선을 아무렇게나 잡아채며 손을 휘둘렀다.
채애애애앵!!!!
“-!!!!”
아무런 술식이나 마법도 들어 있지 않은 무신경한 손짓.
하지만 그것만으로 레녹의 손등이 마이야의 소검을 정확하게 타격해 튕겨내고.
날카롭게 휘어지며 가속하던 소검의 칼날이 그 자리에서 유리처럼 조각나 부서져 버렸다.
시체꽃에 잠식당한 집행자조차 흠칫할 만큼, 섬뜩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일격.
“와, X발!!”
“……뭐지?”
아더가 입을 쩍 벌리고, 야차가 흠칫하며, 아일렌이 멍하니 돌아본 그 순간.
레녹이 고개를 푹 숙인채 떨어지는 그대로 황금빛 선율을 어루만졌다.
“……회전.”
영창도, 마력조작도 없이 오직 의지만으로 인과율을 건드린다.
그것만으로 레녹의 내면에서 순식간에 최고위 파괴마법이 조합되며 현실에 강림했다.
[작염구(炸炎球)] [팔중화(八衆化)-핵융합(核融合)]쿠구구구……!!!!!
여덟 개의 화염구가 레녹의 손짓을 따라 허공에서 융합하며 새파란 빛으로 화했다.
한계를 초월한 열기가 플라즈마 형태로 현현하며 응축되어, 푸른 발광체로 현현한 순간.
[자전(自轉) : 청(靑)]콰아아아아아아!!!!!
푸른 빛의 열기가 지하통로를 활활 불태우며,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으로 가득 차 있던 정경을 밝힌다.
벽면에 붙어 있던 얼굴가죽들이 전부 불타 소멸하고, 그 안쪽에 새카맣게 눌어붙은 영묘 내벽을 드러냈다.
어둠을 밝히고 장애물을 치우는 수준이 아니라, 같이 떨어진 초인들마저 소멸시키고 남을 법한 압도적인 열량.
플라즈마 폭발을 보자마자 마이야가 이해를 넘어선 본능으로 움직였다.
철컥!!
찍어누르던 칼날을 회수하는 것과 동시에 역수로 팔을 교차해 상반신을 보호.
코앞에서 폭발한 플라즈마 구체를 검면으로 받아내며 엄청난 속도로 튕겨 날아가고.
지하통로 전체가 폭발하며 레녹과 아일렌의 신형이 반대 방향으로 밀려나 처박혔다.
콰아아아아아앙!!!!
쿠구구구구구!!!
“아, 으윽……!!!”
폭발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통로 잔해물 사이에서, 방향과 위치조차 짐작하기 어렵다.
뒤로 굴러 떨어지면서도 눈앞에 떨어지는 잔해물을 블레이드로 쳐내기에 급급할 뿐.
한참 동안 어둠 속으로 밀려나 아슬아슬하게 발에 힘을 줘 멈춰선 찰나.
촤악!!!!
수십 미터를 넘게 미끄러진 뒤에야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착지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여기는…….”
방향을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넓고 거대한 지하실의 끄트머리.
천장과 벽면 전체가 석유를 덧바른 것처럼 검게 물들어 있고, 오랫동안 부식된 것처럼 우둘투둘하다.
아일렌이 기억하고 있는 풍경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한없이 오염되고 더럽혀진 고결했던 성소의 형상.
“영묘 시설 안쪽에…… 도착했군.”
아일렌의 옆에 주저앉은 레녹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겨우, 이제야…… 사천사화마경의 끝에 도달한 것 같다.”
“…….”
고오오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과, 검게 물든 복도를 비추는 등불은 검은빛을 띄고 있었다.
꽃잎을 태워 얻을 수 있는 사화(死火)를 한낱 등불로 사용하는 기묘한 광경.
아주 거대한 제단이나 사원 안에 산채로 매장당한다면 이러한 느낌일까.
아일렌이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레녹을 돌아보았다.
“마르티네스! 괜찮아요?”
“……아까보다는.”
레녹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조용히 대답했다.
그 심상치 않은 반응에 아일렌의 표정이 대번에 심각해졌다.
“시각에 문제가 생겼군요. 설마, 영묘의 환경 때문에 뭔가 안구에-”
“아니, 그런 게 아니다. 몸은 멀쩡해. 문제가 생긴 건 컨디션이 아니라…….”
파아아아아앗!!!
지금 이 순간에도 레녹의 눈앞을 가득 메운 황금빛의 유선이 시야를 가리고, 귓가에선 음률이 흘러넘친다.
타락한 황금률을 손에 넣는 것과 동시에, 인과율을 읽어 들이는 감각이 미친 듯이 범람하며 다른 오감을 덮어씌우고 있는 것.
감각의 과잉이 너무나 심해 인식조차 마비되어 버릴 정도였지만, 레녹은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직감하고 있었다.
‘새로운 감각기관을 얻은 대가군. 자극의 역치가 너무 낮아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느끼고 있는 건가……?’
지금 레녹의 상태는 평생 동안 미각이 없던 사람이 혀를 얻은 것과 다름없다.
생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인과율을 읽는 감각을 얻으며, 모든 것을 새롭게 되새기고 있는 상황.
몸이나 정신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장 해결책은 자극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
‘어렵군. 의지만으로 감각을 조절해야 해서 변동성이 너무 심해. 작정하고 쏟아내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의사권능은 말 그대로 사용자 본인의 의지와 의사에 기반하여 존재하고 작동하는 힘.
마력이나 의념, 정신력과는 별개로 순수한 의지로 작동하기에, 레녹도 타락한 황금률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얼마나 감각을 억눌러야 다른 오감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있는지, 애초에 그런 요령을 체득할 수는 있는 것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
가장 좋은 방법은 의사권능을 한계까지 사용해 보면서 고점과 저점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겠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그것도 마땅치 않다.
그나마 이것조차도 의사권능을 손에 넣으며 상정했던 최악의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조금 쉬고 나면 괜찮아질 테니…… 걱정하지 마라. 영묘 공략에는 지장이 없도록 하지.”
“…….”
“그나저나…… 정말 기괴하기 그지없는 시설이군. 이곳이 한때는 황성의 국립묘지였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레녹이 아일렌의 뒤로 펼쳐진 검은 영묘 내부를 쭉 둘러보았다.
“천장과 벽면을 이루는 벽돌 하나조차 사기와 원념에 절여져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엄청난 양의 방사선이 쏟아지고 있을 거다.”
“……그건.”
“애매한 초인이라면 영묘에 들어오는 즉시 온몸의 세포가 망가져 죽었을 거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영묘 안의 모습은…….”
지하실 옆에 전시되어 있는 거대한 관을 열어본 레녹이 중얼거렸다.
“이미 인간의 감성이나 도덕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군.”
“이럴 수가…….”
거대한 관 안에 여러 명이 넘는 시체가 녹아내린 채 뒤섞여 있다.
그릇 안에 인간을 넣고 휘저은 것처럼, 내장과 신체기관들이 불규칙하게 섞여 있는 모습.
살덩어리 표면에 눈알과 혈관, 심장과 폐를 비롯한 흔적들이 튀어나온 채 단단하게 굳어 있다.
“아우, 으으으…….”
촛대 위에 꽂힌 인간의 머리가 느릿하게 회전하며 불분명한 울음소리를 토해낸다.
이미 죽어 있음에도 성대를 움직여 강제로 그 목소리를 자아내는 독특한 기계장치.
희미하게 경련하던 인간의 머리가, 녹음기처럼 어떤 말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전능하신황제폐하를경배하라”
“위대하신삼대공을숭배하라”
“가장오래된다섯가문을따르라”
쩌저저저적……!!!
양 팔을 활짝 벌린 채 죽어 있는 시체가 거꾸로 매달려 저울처럼 느릿하게 흔들렸다.
웃는 얼굴, 우는 얼굴, 화내는 얼굴을 잘라 모자이크 방식으로 이어붙여 만든 벽화.
복도 끝까지 진열된 팔다리를 활짝 벌리고 배를 절개한 수백 명의 주검.
“……아.”
마경에서 실종된 연맹과 교단의 초인들이, 영묘 지하에 붙잡힌 채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태반이 되어 있었다.
무언가가 생명을 얻고 태어나 기어나온 것처럼, 배가 갈라져 터져나간 시체들 모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손목을 잘라 생화처럼 만들어낸 인육의 꽃. 목부터 척추까지 뽑아낸 장식품.
눈에 보이는 모든 곳마다 인간의 시체가 손질된 채 곳곳에 진열되어 있다.
마치 인간을 재료삼아 오랫동안 실험하고 버려진 듯한 그로데스크한 풍경.
교단이나 연맹의 방식과는 궤를 달리하는, 같은 인간의 방식조차 아닌 듯한 이물감.
아주 먼 우주 저편에서 찾아온 외계의 존재가 인간을 손질한다면 이러한 모습일까.
이 세계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 외차원에 존재했던 지옥이란 이런 풍경이었을까.
“……상황을 정리할 필요가 있겠군.”
외계의 지옥을 현세에 불러낸 듯한 영묘의 정경을 바라보던 레녹이 말했다.
“계획대로 대장군을 깨우지 않고 타락한 영묘 안에 들어오는 데는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영묘 입구가 확장되며 다른 초인들을 강제로 끌어당긴 것 같군.”
“…….”
“집행자의 개입으로 상황이 어수선해지긴 했지만…… 일단 영묘 안에 들어온 이상 목표는 간단해.”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레녹이 시선을 들어올렸다.
“대장군의 시체를 찾아 그가 지키고 있는 제국의 유산을 회수한다. 그 뒤에 아르스노바로 향하는 길을 찾아야겠군.”
“…….”
“이 영묘가 어째서 이런 곳이 되어버렸는지…… 그 답이 대장군의 시체 너머에 있을 거다.”
타락한 황금률은 삼태극의 묘리를 사용해 만들어진 현실개변 능력의 일종.
천지인의 세가지 개념으로 이루어진 권능 중에서, 레녹이 아직 얻지 못한 인(人)의 개념이 어디에 있을지는 자명하다.
당장 권능의 문제만이 아니라, 아르스노바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 이 영묘를 끝까지 뚫어내야 함은 정해져 있었으니.
영묘 안에 들어온 이상 해야 할 일은 결국 하나.
대장군의 사체를 찾아 그곳에 남겨져 있을 비밀을 얻는 것뿐이었다.
“이 영묘가 외해의 힘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건 분명해요. 제국 황성에서 그러한 타락을 유도했다는 것도…….”
아일렌이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조용히 말했다.
“이곳에 남아 있는 건 분명 황제의 실패 그 자체겠죠. 그 실패작이 대격변을 통해 더 뒤틀렸다면, 이 안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
“영묘 안에 잠들어 있는 광성대장군이…… 과연 제가 기억하고 있는 그 사람이기는 한 걸까요?”
“지나치게 앞서나갈 필요는 없어. 당장은 영묘 안에 들어왔음에도 대장군이 깨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면 충분하다.”
레녹이 힘겹게 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분명 연맹과 교단 역시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겠지.”
“……그건.”
두두두두두두
키에에에에에!!!!
벽면에 귀를 대고 감각을 기울이면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소리.
기감을 확장하며 감각을 넓힐 때마다,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시체들이 날뛰는 것이 느껴진다.
끈적이는 사기에 절여진 시체들이, 영묘 안에서 시체의 바다를 이루고 넘실거리는 섬뜩한 감각.
지금 이 순간 영묘 어딘가에서 연맹과 교단의 초인들이 영묘의 시체들과 싸우고 있다.
“이 영묘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연맹과 교단의 전력과 충돌해 분산되고 있군.”
벽에 손을 짚은 레녹이 말했다.
“그것만으로 우리가 영묘 앞에서 맺은 협정에는 의미가 있는 셈이다.”
“…….”
“이 관계를 언제까지 지속해야 할지는 더 나아간 뒤에 생각해 봐도 늦지 않겠지.”
“……그러기 위해선 역시, 우리가 조금이라도 먼저 앞서나가는 것이 중요하겠죠.”
지하실 사방으로 빼곡하게 나 있는 복도들 중 한 방향을 주시하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으로 가죠. 영묘 중심부로 들어가는 길이 아마 저 방향일 거예요.”
“길을 알고 있나?”
“제국 황성의 영묘는 침입자를 경계해서 가짜 통로나 입구를 여럿 만들어 두는 건축방식을 사용해요.”
아일렌이 차분하게 말했다.
“시공간 자체를 비틀어 혼동시키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구분할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방법이 있어요.”
뚝, 뚝……!!
어느새 아일렌의 손바닥 사이로 푸른 빛의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시커멓게 변색된 영묘 바닥을 파고드는 진혈(眞血)을 내려다본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진혈을 사용한 피의 공명인가. 그걸로 대장군이 있는 방향을 찾아낼 생각이군.”
“가능하면 이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지만…… 서두르죠.”
아일렌이 그렇게 말하며 한쪽 복도를 골라 앞장섰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7사도라면 이 영묘 안에서 피냄새를 맡을 수도 있어요. 그 미친 흡혈귀가 달라붙기 시작하면 일이 귀찮아지겠죠.”
“아니…… 당분간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다.”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아일렌이 가리킨 갈림길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 영묘 안에서는 이미 피냄새가 진동하고 있거든.”
“……아.”
철퍽, 철퍽……!!
목이 반쯤 잘려나간 연맹 술사의 시체가 어둠 속에서 굴러나왔다.
정수리부터 세로로 쪼개진 교단 사제의 주검이 피 웅덩이 위로 나뒹굴었다.
지하통로 갈림길을 빼곡하게 뒤덮은 수십 명이 넘는 연맹과 교단의 사체.
그 시체의 산 위에 검은 꽃이 피어난 집행자가 서 있었다.
우둑!!
버둥거리는 교정기사의 목뼈를 손의 악력만으로 으깨고 천천히 돌아선다.
한마디 말조차 없이 이쪽을 내려다보는 마이야를 보며 아일렌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하필……!!”
“집행자의 감각을 생각하면…… 그 혼란 속에서 흔적을 놓치지 않은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레녹이 아일렌의 앞으로 걸어 나오며 느릿하게 말했다.
“코앞에서 터트린 마법도 받아치려 할 정도로 반사신경이 살아 있었어…… 금방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곤 있었다.”
“도망쳐요, 마르티네스. 제가 시간을 벌어볼게요.”
블레이드를 들어올린 아일렌이 곧바로 판단을 내렸다.
“여기서 싸웠다가는 불리해요. 오히려 아까보다도 더 위험할 수도……!!”
복도가 미로처럼 복잡하게 나 있는 영묘 시설 내부. 마법을 투사하거나 화력을 터트려 밀어내기에는 좋지 못한 환경이다.
반대로 대인전에 특화된 집행자에게 있어서는 더할나위없이 적합한 전장. 어떻게 보면 영묘 바깥에서보다 더 위험한 상대다.
당장 레녹의 컨디션이 그리 좋지 못해 보이는 지금 이런 무대에서 집행자와 싸웠다가는 정말 크게 일이 잘못될지도 모르는 일.
아일렌은 즉시 그것을 파악하고 무리해서라도 시간을 벌려던 찰나, 레녹이 고개를 저으며 걸어 나왔다.
“아니…… 여기서 잡고 간다.”
“네?!”
“이대로 도망쳐봤자 영묘 안에서는 집요하게 이쪽을 쫓아올거다. 집행자의 실력을 감안하면 뒤통수가 간질거리는 정도로 끝나지도 않겠지…….”
촤악!
소매를 걷어붙인 레녹이 손목을 돌리면서 천천히 몸을 풀었다.
“행여나 일이 복잡해진 틈을 찔러오면 목숨이 위험해. 그럴바엔 여기서 확실하게 여지를 없애두는 편이 나을거다.”
“그건…….”
“무엇보다…… 한가지 실험해 보고 싶은 것이 있어.”
쩌저저적……!!!!
레녹이 검게 물든 벽에 손을 갖다대는 것과 동시에, 차가운 한기가 벽을 타고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새하얀 얼음이 레녹과 마이야가 서 있는 복도를 뒤덮고 냉기를 흩뿌린 순간, 집행자가 움직였다.
파앗!!
오른손의 소검을 거꾸로 잡고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가속해 폭발적으로 몸을 회전시킨다.
소검의 궤적을 찰나의 순간 아홉번 넘게 비틀어, 반응할 새도 없이 레녹의 목에 꽂아넣은 그 순간.
마이야의 오른쪽 상반신이 폭발하듯 뜯어져 나가며 그녀의 신형이 벽면에 처박혔다.
콰아아아아앙!!!!
“─!”
집행자의 선공을 정면에서 찍어누르는 것은 물론이고 시체꽃의 재생조차 순간적으로 끊어버리는 일격.
하지만 시체꽃에 잠식당한 집행자를 경련하게 만든 것은 그 날카로운 카운터 때문이 아니었다.
레녹이 불꽃을 터트리는 순간 반응해 쳐냈음에도, 검을 휘두른 팔이 통째로 터져나가는 일격.
집행자의 소검을 손짓 한 번으로 박살 낸 아까와 같이, 공격을 전혀 ‘받아낼’ 수가 없다.
이지를 잃어버린 집행자가 그것을 느끼기도 전에 레녹이 천천히 눈을 떴다.
“인과를 거꾸로 읽고 파멸의 변곡점을 강제로 인식하는 힘이라.”
파아아아앗……!!!!
마이야를 바라보는 레녹의 시야 너머로, 황금빛의 유선이 흘러넘쳤다.
“지독하게 다루기 어렵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건 확실하군.”
타락한 황금률은 사천사화마경의 타락과 함께 거꾸로 반전되어버린 의사권능.
원인과 결과가 이어지는 곳을 읽는 것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가 ‘끊어지는’ 곳을 읽어내기에.
레녹이 의사권능을 사용하는 동안 시전하는 모든 술식과 마법은 매 순간 인과의 절단면을 짚어내며.
말 그대로 ‘방어 불능’의 성질을 손에 넣는다.
“대인전의 스페셜리스트를 상대로 먹힌다면, 앞으로 만나는 모든 초인들을 상대로 통한다는 뜻일 테니까.”
공방의 교환 자체가 성립하지 못하도록 과정을 망가뜨리는 불합리한 힘.
하지만 그렇기에 이 타락한 인과에 절여진 영묘를 돌파할 무엇보다 강력한 열쇠가 되어주겠지.
타락한 황금률을 얻고 감각에 조금 익숙해진 상태로 임하는 첫 번째 실전.
“새롭게 얻은 힘을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온 레녹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내 손으로 결착을 지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