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04
약먹는 천재마법사 1304화(1304/1315)
약먹는 천재마법사 1304화
대장군의 영묘(2)
휘오오오오!!!
하얗게 얼어붙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레녹과 마이야가 대치한다.
흑색의 짧은 단발. 얼굴에 검은 꽃이 피어난 채 부러진 소검을 쥔 집행자의 모습.
멍하니 입술을 다문 공허한 표정만이 그녀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잠식당했다는 사실을 증거할 뿐이다.
차가운 냉기 속에서 날카롭게 달아오른 공기. 발아래 쓰러진 채 영묘 바닥에 절어진 시체들.
새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레녹이 느릿하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거리가 너무 멀어지면 인과율을 읽기가 힘들어진다. 사용하려면 접근전에서 끝내야 해.’
타락한 황금률은 인과율을 거꾸로 읽어 인과의 절단면을 인식하는 능력.
그간 알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감각이기에, 레녹의 오감을 덮어씌워 형상화하는 식으로 인지되고 있다.
레녹의 내면에서 존재하는 능력이기에, 흑신마공처럼 다른 신분으로도 티를 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지만.
권능을 다루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지금은 거리가 멀어지면 인과의 절단면을 정확하게 읽기 힘들어지는 바.
앞서 마이야의 선공을 박살 냈던 것처럼, 근거리에서 접촉하지 않는다면 권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겠지.
하지만 레녹은 마이야의 얼굴을 보며 한편으로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집행자 본인이 틀림없다. 하지만…….’
마이야 렌슬릿은 레녹이 세 가지 신분으로 모두 만나본 몇 안 되는 초인 중 한 명이다.
항하사미궁에서 천번으로. 판데모니엄에서 빅터의 신분으로, 마키나와 아나테마의 신전에서 견뢰로.
그렇기에 레녹 역시 그녀의 외견과 기척, 마력패턴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여타 초인들을 완벽하게 압도하는 뛰어난 기예. 이지를 잃고도 흐려지지 않는 판단. 관통의 소우주를 비롯한 마력패턴과 생명반응.
그 모든 것이 눈앞에 서 있는 시체가 집행자 본인이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마이야 렌슬릿…… 정말, 이런 곳에서 실패해 멈춰 서버린 건가?’
죽어서라도 승천문의 실패를 되돌리겠다는 마이야의 집착과 원념이 얼마나 강한 것이었는지.
집행자의 명예와 지위, 신념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판데모니엄에 고개숙인 그녀의 숙원이 얼마나 간절한 것이었는지 알고 있기에.
마이야의 소망이 레녹이 아는 초인 중에서도 유독 지독한 것이었음을 기억하기에, 그 원념의 결말이 고작 저런 식이라는 사실을 납득할 수가 없다.
레녹의 머리와는 별개로 그의 직감이 다른 결론을 가리키고 있는 보기 드문 상황.
“─”
마이야 역시 검은 꽃이 피어난 얼굴을 돌려 레녹을 빤히 바라보았다.
천번의 신분으로 항하사미궁에서 만난 적이 있는 만큼, 마이야의 기억에도 이 얼굴이 남아 있겠지.
하지만 마이야는 레녹을 마주하고도 어떤 반응도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레녹의 반격 한번으로 부러진 소검을 바닥에 팽개치고 걸음을 옮겼을 뿐.
“집행자라면 무기 없이 싸우기는 어려울 텐데.”
레녹이 고개를 기울였다.
“시체꽃에 먹혔다고 생전의 습관이 변한 건가. 그게 아니라면-”
콰직!
마이야의 팔이 복도 벽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사체의 뱃가죽을 꿰뚫었다.
끈적이는 내장 사이를 헤집어 빼낸 그녀의 손 안에, 새카맣게 빛나는 도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왼손으로 검을 잡고 단번에 뽑아 드는 것과 동시에 날카롭게 다듬어지기 시작한 마이야의 기척.
한 자루 검과 같이 변해 가는 집행자의 기세를 마주한 레녹이 쓰게 웃었다.
“한 가지 무기만 다룰 줄 아는 게 아니었군.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우우우우웅…….!!!
새하얗게 응어리진 의념이 검을 타고 진동하며 덜덜 떨린다.
마력과 의념이 칼날을 타고 흐르며 발광하는 그 모습은 검기성강(劍氣成罡)를 두른 것처럼 선명했다.
얼어붙은 복도 너머로 걸어오는 마이야의 인영을 보며 레녹이 천천히 목을 꺾었다.
‘저번에 비해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워졌을지 모르겠군.’
마이야 렌슬릿과 마지막으로 싸워본 것은 아나테마의 신전에서 견뢰의 신분으로 건틀렛을 회수할 당시.
그때도 마이야의 기술은 경이로운 수준에 도달해 있었지만, 그럼에도 레녹이 전혀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달리 상대는 생전의 기술을 고스란히 보유한 채, 체력과 기력의 제한이 없어진 상황.
어지간한 부상은 모조리 재생하고, 심상기를 난사하며 상시 전력으로 움직이는 생체병기 그 자체다.
우둑, 우두둑!!!
피부 위로 정륜결계와 출성결계를 동시에 두르며, 근골을 보호하고 관절을 휘감았다.
흑신마공의 원념이 혈관을 타고 흐르며 폭발적으로 기력을 보충하고 마력과 결합한다.
마력으로 연달아 육체강화를 걸 때마다, 레녹의 몸 안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회복되고.
천천히 자세를 낮춘 레녹이 눈도 깜박이지 않고 검을 늘어뜨린 마이야를 주시했다.
“…….”
“─”
교전에 끼어드는 대신, 갈림길의 다른 방향으로 먼저 움직이는 아일렌의 기척을 기감에서 지운다.
영묘 사방에서 실시간으로 폭발하는 교단과 연맹 초인들의 기척. 흘러나오는 시체의 사기조차 잊었다.
의념이 뚝뚝 흐르는 마이야의 검이 느릿하게 떨어지는 순간을, 초당 수십 번씩 의식을 분할해 관측하며 타이밍을 가늠했다.
수십 미터 저편에서 동작을 나누고 끊을 때마다 마이야의 신형이 공간을 넘어 가속하고.
세 갈래 섬광이 레녹의 심장 앞에서 맞닿으며 초월적인 관통력으로 명치를 꿰뚫었다.
[팔허(捌虛)] [일리관천(一理貫穿)]파아아아앙!!!
반응할 새도 없이 대번에 밑에서부터 사선으로 가슴을 관통당한 레녹의 신형.
힘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밀려난 레녹이 벽에 처박혀 강렬한 충격파를 내뿜었다.
의념으로 뒤덮인 칼날에 꿰뚫리는 순간, 사방의 얼음이 모조리 부서지며 벽 너머의 공간을 훤히 드러냈다.
쿠구궁!!!
떨어지는 얼음 파편을 맞으며 고개 숙인 레녹과, 검은 꽃을 꿈틀거리며 칼날을 비트는 마이야의 움직임.
하지만 레녹은 심장을 칼날에 꿰뚫린 채 손을 들어 마이야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그 정도로 관통력이 강한 소우주를 정면에서 막아내는 건 여러모로 피곤한 일이지.”
“─”
“하지만 아무리 빠른 공격이라 해도…… 시작점을 놓치지 않는다면 타이밍을 잡을 수 있다.”
쩌적……!!
천천히 시선을 들어올린 레녹의 얼굴이 차갑게 얼어붙은 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직접 받아보니까 확실하게 알겠군.”
차가운 숨결을 흘린 레녹이 웃었다.
“그런 식으로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해.”
파삭!!
얼음덩어리가 된 레녹의 신형이 산산이 부서져, 얼어붙은 벽의 파편과 함께 마이야를 덮쳤다.
얼음 파편이 이어 붙으며 순식간에 집행자를 가두는 감옥이 되고, 황금빛의 선율을 움켜쥔 레녹이 타오르는 불꽃을 휘감아 때려 박았다.
[축화(築火)]화염을 압축해 영거리에서 얼음 감옥째로 터트리는 염열마법.
하지만 감옥 안에서 검을 들고 있던 마이야는 그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검면을 옆으로 비틀어 축화의 불꽃을 받아내고 완벽하게 위력을 죽여 흘려내는 기예를 선보였음에도.
레녹의 불꽃이 마이야가 시도한 모든 방어와 기술을 강제로 뚫고 그녀의 육신 깊숙이 틀어박혔을 뿐.
뻐어어어어어엉!!!!!
“─!!!!”
힘의 조절과 기술, 공방의 타이밍과 간극을 모조리 무색하게 만드는 비현실적인 방어불능의 일격.
집행자가 쥐고 있던 도검이 박살 나며 그녀의 상반신이 축화의 불길에 터져나가 무참하게 으스러진다.
쾅!! 터터터텅!!!!
축화의 충격이 얼어붙은 영묘 벽면과 바닥을 연달아 박살 내고 터트렸다.
지하복도 벽면을 연달아 뚫고 밀려나가는 것과 동시에 펼쳐지는 탁 트인 공동의 풍경.
음울한 조각이 새겨진 거대 관문을 중심으로 수천 개의 묘실이 펼쳐져 그림자를 드리웠다.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비좁은 방을 넓은 공동 안에 수천 개씩 빼곡하게 욱여넣은 모습.
그 사이에서 미친듯이 쏟아지며 날뛰는 시체들을 밟고 교단의 사제들이 싸우고 있었다.
“에반 마르티네스!!!”
“살아 있었나, 사도살해자……!!!”
콰앙!!
굉음과 동시에 두 사람을 인지한 사제들을 무시하고 레녹과 마이야가 관문 위로 미끄러졌다.
단 한 번의 충돌로 무기를 잃어버린 집행자가 육체를 재생하며 몸을 돌리고, 지하에서 싸우고 있는 교정기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쐐액!!
“컥!!”
“빌어먹을-!!”
사방에서 밀려드는 시체와 싸우던 기사들의 목을 손짓 한 번으로 따고 무기를 뺏어든다.
숨이 끊어진 교정기사의 검을 빼앗아 들고 엄청난 속도로 레녹과 재차 격돌하는 마이야의 신형.
쾅!!! 드르르륵!!!
레녹의 술식이 폭발할 때마다 마이야가 쥔 무기가 박살 나고 육체가 으스러진다.
그때마다 다른 사제나 기사를 죽이고 무기를 뺏어 들며, 실시간으로 공방을 이어나가는 집행자의 무위.
관문 위로 폭발하는 충격파. 그 중심부에서 레녹과 마이야가 엄청난 속도로 튕겨 나가며 맞붙었다.
[백자염화(百字炎火)] [빙련영결(氷聯英結)]화르르륵!!
쩌저저정!!!
타오르는 화염의 대문자가 마이야의 몸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벽을 타고 뻗어나간 냉기가 박살 나며 사방으로 파편을 흩뿌린 직후 다시 불꽃으로 전환.
내리찍히는 화염기둥이 차갑게 얼어붙으며 레녹과 마이야의 얼굴을 거울처럼 비춘다.
발아래서 솟구치는 얼음의 뿔을 검극으로 절단하는 것과 동시에 불꽃으로 변해 폭발.
얼음과 불꽃이 미친듯이 춤을 추며 집행자의 육신을 짓밟고 거세게 찍어눌렀다.
콰아아아앙!!!!
쩌적, 쩌저적……!!!!
타오르는 불덩이가 차가운 얼음으로 변해 마이야의 검신째로 어깨를 짓누른다.
얼어붙은 냉기가 어깨를 파고들기도 전에, 체내를 불사르는 열기가 되어 육체를 소각했다.
시체꽃이 손상된 육체를 재생하기도 전에 다시 열기를 냉기로 바꿔 뼛속까지 저리며, 재차 불꽃으로 화해 내장을 불태웠다.
찰나의 순간 얼음과 불꽃을 수십 번씩 바꿔가며, 한가지 속성에 대응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미친 듯이 집행자를 몰아쳤다.
쿠화아아악!!!
관문 위에서 터져나오는 붉고 푸른 광채가 레녹을 중심으로 양 날개처럼 펼쳐지며 회전했다.
쏟아지는 시체들과 싸우던 사제들조차 순간적으로 시선을 빼앗길 만큼 아름다운 광경.
“무슨, 한낱 마법 따위가-”
“불신자 주제에 어찌 저런 술식을……!!”
“─”
[팔허(捌虛)] [일리관천(一理貫穿)]버티지 못한 마이야가 다시 한번 의념을 휘감아 소우주를 발동.
체내를 불태우고 얼려붙이는 폭격을 한방에 관통하고, 그 너머에 있던 레녹까지 꿰뚫었다.
쩌어어어엉!!!!
하지만 소우주를 사용해 관통한 레녹의 모습은 아까 전과 같이 얼음덩어리가 되어 부서지고.
흩어지는 얼음 파편의 뒤에서, 새파랗게 일렁이는 화염대궁(火炎大弓)을 움켜쥔 레녹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옥불 환상궁(煥狀穹) 개시.”
“─!!!”
위력이 큰 기술을 난사하며 아주 잠깐 이어지는 소강상태.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음차원의 불꽃이 집행자의 방어를 무시하고 그녀의 심장을 관통하며.
직후 터져 나온 지옥불이 마이야의 내면에 존재하는 소우주를 강제로 폭주시키기 시작했다.
쾅!!! 터터터텅!!!
마이야의 오른팔이 폭발하듯 터져나가며, 근육을 대체하고 있던 섬유질이 흩날린다.
어깨와 무릎 사이로 마력과 의념이 새어나가며 피부를 대체하고 있던 꽃잎이 찢어지고, 시체꽃의 뿌리를 드러낸다.
마이야의 소우주 [팔허(捌虛)]는 관통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공간 자체를 뚫어내고 깨트리는 힘.
극도로 정교한 기술을 통해서만 구현 가능한 소우주가 폭주하며 마이야의 육신을 잡아먹는다.
쾅! 쾅!!
온 몸이 칼에 베이고 찔린 것처럼 구멍이 나 붕괴하는 집행자의 처참한 신형.
춤을 추듯 위태롭게 휘청이는 그 모습을 보며 레녹이 황금빛의 선율을 어루만졌다.
“생각보다 권능의 효율이 지나치게 좋군. 공방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만으로 이만한 위력이 나오는 건가?”
치열해 보였던 교전의 대부분은 레녹이 일방적으로 마이야의 방어를 박살 내고 치명타를 꽃아넣는 과정이었을 뿐.
마이야 역시 쉴 새 없이 무기를 바꿔가며 어떻게든 맞서왔지만, 정면에서 공방을 나눌 수 없어진 시점에서 선택지가 줄어드는 것은 필연이다.
상대의 방어를 무시하고 정면에서 박살 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싸움이 성립하지 않고 수싸움에서 질 수가 없게 되는 상황.
차라리 마이야의 판단력이나 이성이 살아 있다면 다른 방식으로 대처하려 했겠지만-
“시체꽃에 뇌가 먹힌 시점에서 그 정도로 다양한 판단이 될 리는 없겠지.”
황금빛의 선율을 움켜쥔 레녹이 손을 뻗었다.
“거의 다 끝났군.”
“-아!!”
영문 모를 말을 내뱉으며 마이야가 시선을 들어 올리고, 시체꽃의 잎이 흔들리며 으깨진 동공이 드러난다.
시선과 초점조차 제대로 맞지 않는 두 눈으로 레녹을 바라보며 남아 있는 마력을 그러모아 앞으로 전진.
극한까지 가속하는 의식의 끝에서 이번에야말로 레녹의 목을 향해 칼날을 쑤셔 넣고.
[팔허(捌虛)─]턱!!
황금빛의 선율을 움켜쥔 레녹이, 마이야의 소우주를 정면에서 박살 내며 그녀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쩌어어어엉!!!!
인과의 절단면을 짚어내는 순간, 집행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결과’가 이 자리에 도래한다.
마이야의 공방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고 박살낸 레녹의 손이, 너무나도 쉽게 그녀의 옆구리를 짚고.
바스라진 시체꽃이 발작하듯 레녹을 향해 뿌리를 휘두르는 그 순간, 레녹이 영창을 마쳤다.
빙결계열 고유마법
성질변화 폭주현현
빙정공능(氷停功能)
외법(外法)
[백해(白海)]쩌어어어어어어어엉!!!!!
관문 전체를 얼려붙이는 어마어마한 얼음의 해일이 영묘 내부에 떨어지며 모든 것을 쓸어 지워 버렸다.
영묘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고층 빌딩만한 크기의 관문 전체를 통째로 뒤덮고 얼려 버리는 규모.
검게 물든 복도와 천장, 벽면을 뒤덮고 퍼져 나간 얼음이 순식간에 광대한 전장을 새하얗게 물들였다.
콰과과과과과!!!!!
“피해-!!!”
“사도살해자의 술식에 휩쓸리지 마라!!”
레녹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교단 사제들이 황급히 고지대로 몸을 피하거나, 기도술식을 사용해 허공에 떠올랐다.
영묘 일각을 새하얀 얼음 덩어리로 박살 내고, 무너진 지지대를 얼음계곡로 대체해나가는 압도적인 풍경.
얼음계곡의 중심부에서 전신이 새하얗게 얼어붙은 집행자가, 온몸이 으스러진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
온몸의 신체기관과 근육이 얼어 박살 난 뒤에도 일어서려는 고장난 기계 같은 몸짓.
그런 마이야의 앞에 내려선 레녹이 무표정한 얼굴로 쓰러진 집행자를 응시했다.
“……마르티네스.”
한발 늦게 싸움의 결과를 확인한 고위 사제들이 경직된 표정으로 레녹을 바라보았다.
사제들 개개인이 주교급의 강자이며, 대륙 어디서든 고위 성직자로서 신앙을 받는 이들.
하지만 광신에 빠진 사제들조차 작금의 싸움을 지켜보며 쉽사리 적의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
영묘 안에 진입한 사제들을 이끌고 있던 주교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네놈이, 기어이…… 마키나의 집행자를 죽인 거냐.”
“아니.”
레녹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한 손으로 손목을 주무르며 손가락을 쥐었다 편 레녹이 말했다.
“내가 영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죽어 있었지. 그 시체를 이제서야 처리한 것뿐이다.”
“…….”
“마이야 렌슬릿. 사천사화마경을 탐사하다 죽어 그 시체만이 남아 있는 줄 알았지만…….”
천천히 걸음을 뗀 레녹이 중얼거렸다.
“결국 이건, 마이야 본인이면서도 본인이 아니었군.”
“뭐라고?”
주교가 흠칫거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이 집행자가 가짜이기라도 하다는 건가? 이 살인귀의 학살을 모두가 지켜보았거늘.”
마이야 렌슬릿의 모습을 하고, 집행자의 기술을 다루며, 그 고유 심상마저 사용하는.
그런 비현실적인 강함을 품은 존재가 어떻게 마이야 본인이 아닐 수가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영묘가 이계의 법칙에 지배당하는 지옥이라 해도, 마이야 정도 초월자를 ‘복제’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
마이야 렌슬릿의 능력을 고작 시체꽃 한 송이로 복제해 사용할 수 있다면, 그들은 애초에 이 영묘 안에 발도 들이지 못하고 전멸했어야 했다.
그렇기에, 연맹과 교단의 초월자들 역시 집행자를 상대하여 무력화시키는 일에 그토록 공을 들였던 것인데-
“이지를 잃었지만 육체에 새겨진 기술과 경험은 남아 있지.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의심하지 않았다.”
레녹이 마이야를 향해 다가서며 말했다.
“하지만 몇 번 싸우는 것을 지켜보니, 특정 상황에 대한 대응능력이 내가 아는 집행자의 그것에 비해 확연히 좋더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더 나빠진 것도 아니고, 더 좋았다고……?”
우둑!!
레녹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축 늘어진 마이야의 왼팔을 발로 밟고 강하게 짓눌렀다.
얼어붙은 왼팔 위로 어떠한 자상이나 균열도 없음을 확인한 레녹의 시선이 가라앉았다.
‘반궁의 건틀렛을 사용하면서 남아 있어야 할 왼팔의 부상이 없다.’
아나테마의 신전에서 금기병장을 회수하기 위해 마이야는 억지로 건틀렛을 사용하며, 그 반동으로 왼팔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던 상황.
하지만 정작 마경에서 다시 만난 마이야는 왼팔의 부상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이 움직이며 싸우고 있었다.
반궁의 혈족을 재료 삼은 금기병장을 사용하다 입은 부작용인 만큼 쉽사리 회복될 부상은 아니었을 터.
처음 영묘에서 봤을 때 의심하고, 두 번째로 상대했을 때 깨달았으며, 직접 싸워보며 확신했다.
적어도, 레녹이 알고 있는 마이야라면 굳이 부상당한 왼팔로 검을 잡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터.
“네 말이 맞다, 주교. 집행자 본인이 아니라면 이렇게 뛰어난 기술을 지닌 것도, 소우주를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하겠지.”
“…….”
“하지만 이 괴물이 집행자가 아니라, 그녀 자신과 한없이 비슷한 존재에 시체꽃을 박아 만들어졌다면 어떨까?”
“비슷한 존재라니, 누구를 말하는 거지?”
“집행자의 육체정보를 재현할 수 있을 만큼 비슷한 유전자를 지닌 사체.”
한쪽 무릎을 꿇고 마이야의 옷깃에 손을 가져다댄 레녹이 중얼거렸다.
“그건 역시 마이야 렌슬릿과 같은 피를 나눈…… 그녀의 혈족밖에 없겠지.”
찰칵.
옷깃 사이에 가려져 있던 명패가 모습을 드러내며, 검게 물든 이름을 내보였다.
그 명패에 적혀 있는 이름을 확인한 레녹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
오래전, 기계도시 마키나에서 들었던 적 있는 제작계열 고위계 장인의 이름.
당시에도 이미 고인이었던 마이야 렌슬릿의 혈육이, 사천사화마경에 시체가 되어 버려져 있다.
파삭……!!
그 순간, 클라크의 시체에 뿌리 내린 시체꽃이 시들며 그 육신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마이야의 외형을 구성하던 육신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고, 색이 바랜 백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뼈만 남아버린 황량한 유해 옆에, 유일하게 형태를 잃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왼팔의 모습.
분명 이 멀쩡한 왼팔만이 진짜 마이야 렌슬릿이 사천사화마경에 남긴 육체정보 일부였겠지.
마이야의 왼팔에 존재하는 유전정보를 클라크 렌슬릿의 사체에 덮어씌워, 이 영묘를 지키는 괴물로서 만들어냈다면.
그건 역시 이 마경이 우연히 만들어진 지옥이 아니라, 누군가의 악의적인 의도가 있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만약 마이야 렌슬릿이 사천사화마경으로 향한 이유 역시 클라크 렌슬릿의 시체와도 관련이 있다면-
“결국, 영묘 안으로 직접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모르겠군.”
레녹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대장군을 만나러 가야겠다. 다른 놈들은 어디에 있지?”
“……후우.”
생각에 잠긴 레녹을 보며 씨근대던 주교가 천천히 옷깃을 추슬렀다.
“몇 번의 조사 끝에 이 공간이 영묘 최하층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저 관문 너머 어딘가에 대장군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겠지.”
“…….”
“대장군이 가까이 있음을 느끼고 있으나 아직 확실한 방향을 잡지 못했다. 사도살해자. 네가 협정을 유지할 생각이 있다면-”
쿠구구구구……!!!!
그 순간, 영묘 사방이 거칠게 흔들리며 공기가 한없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아주 거대한 기척이 이 근방에 강림하며 주변을 짓누르는 듯한 강렬한 압박감.
숨조차도 제대로 쉬기 힘든 그 섬뜩한 감각에 교단 사제들의 안색이 순식간에 파리해졌다.
“잠깐, 이건……!!!”
“아르무슈 님이나 연맹의 기척이 아니야. 누구냐!!”
“이 괴물이 마이야 렌슬릿이 아닌 시점에서 생각해야 했던 최악의 사태가 터졌군.”
클라크의 시체를 내려놓고 일어난 레녹이 돌아서며 말했다.
“시체꽃을 박아 조종하는 것이 반드시 본인의 시체가 아니어도 된다면, 그 케이스가 집행자에 한정될 리는 없겠지.”
“뭐?”
“과거 이 마경 공략에 실패한 강력한 초월자들…… 심지어는 생존자들조차도 조건이 맞는다면 써먹을 수 있다는 뜻일 테니.”
두두두두두!!!!
양쪽에서 엄청난 속도로 접근해오는 소름 끼치는 기척을 느끼며 레녹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온다.”
콰아아아아앙!!!!
거무튀튀한 영묘 벽이 양쪽에서 폭발하듯 박살 나며 수천 구에 달하는 시체들이 떨어져 내렸다.
얼굴에는 시체꽃을 매달고 이빨을 바득바득 갈며, 이리저리 뒤엉켜 떨어져 내리는 살덩이의 파도.
[아아아아아아아!!!!!!]영묘 안쪽에 순장되어 있던 시체들이 일제히 내지르는 창백한 괴성에 공동 전체가 쩌렁쩌렁 울린다.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공동을 메우기 시작한 시체의 바다 속에서, 세 사람이 얼어붙은 관문 위에 내려앉았다.
탁!!
데드라이즈의 장성 군복을 입은 허리가 굽은 노인.
뿔 달린 용의 머리를 하고 있는 거구의 장생종.
탁한 금발을 가지런히 묶어 정돈한 여성.
세 사람 모두 얼굴 위에 검은 시체꽃이 피어난 채 눈이 보이지 않는다.
“…….”
군단의 전직 장성. 쿤다라의 용종. 보기만 해도 그 출신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마경 공략에 실패하고 사망했거나, 마이야 렌슬릿과 같이 신체 일부를 빼앗겨 능력을 이용당하는 존재들.
하지만 레녹의 시선은 앞선 두 초월자가 아니라, 가장 마지막으로 나타난 여성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설마.”
“그 여자다……!!!”
“말도 안 돼. 틀림없이 살아 있다고 들었는데……!!”
교단 사제들조차 마지막으로 나타난 여성을 보자마자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 손을 떨었다.
“전원 관문에서 최대한 멀리 뒤로 물러서라!!”
“조금이라도 접촉하면 소멸당한다. 기도를 마치고 가호를 둘러라!!”
레녹을 경계하고 증오하는 것보다도, 당장 관문 위에 내려선 저 여자를 두려워하는 듯한 모습.
그만큼 중앙전선에서 저 여자의 모습과 능력이 비할 데 없을 만큼 널리 알려졌다는 뜻이겠지.
그리고 레녹 역시 그녀의 모습을 보자마자 어렵지 않게 그 정체를 기억해낼 수 있었다.
첫 번째 관문에서 접합술주의 일이 끝난 뒤에 만났던 이능개화전단의 십좌 중 한 명.
사천사화마경 공략에 실패한 뒤, 휘하 번대를 잃고 생환했다던 초월적인 초능력자.
이능개화전단 2석. 에레디스 자벨린.
전단 최강의 창이라 불리는 초월자가, 마이야와 같은 방식으로 시체꽃에 먹힌 채 영묘 안에 서 있었다.
“영묘 안에서 일이 쉽게 풀릴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지.”
하지만 사방에서 경악하며 물러서는 교단의 사제들과는 달리 레녹은 어깨를 주무르며 고개를 돌렸다.
대장군의 영묘를 앞에 둔 순간, 지금껏 상대한 것 이상 가는 괴물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전력의 소모를 피하기 위해 연맹과 교단의 손을 잡았으나, 목적지를 앞에 둔 이상 전투를 피할 수는 없는 바.
복잡한 작전이나 기책에 의지해 난관을 돌파할 시기는 지났다.
타락한 황금률을 손에 넣고, 마이야를 상대하며 의사권능을 다루는 감각을 조절해 낸 이 순간.
해야 한다면 바로 지금이 가장 적합한 시기겠지.
“이제부터는 힘으로 뚫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