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06
약먹는 천재마법사 1306화(1306/1315)
약먹는 천재마법사 1306화
대장군의 영묘(4)
“빌어 처먹을, 놓쳤-!!!!”
콰아아앙!!!!!
7사도와 연리술주가 눈앞에서 승강기를 놓치는 것과 동시에 자벨린과 리히토가 능력을 발동.
자벨린의 복제품이 양손에 낀 장갑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리히토가 새로운 정령을 소환했다.
쩌적-
라리아타의 양날대검을 자벨린이 맨손으로 붙잡는 것과 동시에 7사도의 표정이 섬뜩해지고.
새롭게 소환된 다섯개의 머리가 달린 거대한 늑대가 안개를 헤치고 연리술주에게 달려들었다.
쿠우우우우웅!!!!!!
[끄에에엑……!!]충격파가 폭발하는 것과 동시에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혀를 빼물고 헥헥대는 늑대.
혀끝에서 떨어지는 침이 강렬한 산성을 품고 순식간에 영묘 잔해물을 녹여 버렸다.
치이이익!!!
“……크힛.”
부러진 대검을 움켜쥔 라리아타가 녹아내리는 잔해물 사이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영묘 안에서 얼마나 시체를 썰어댄 건지, 부러진 대검의 날 사이로 살점과 핏물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
수백 명의 시체를 썰어내고도 멀쩡하던 대검이 자벨린의 손짓 한 방에 고철덩어리가 되어버린 상황.
“재미있네, 마르티네스. 인간종 주제에 감히 나를 엿 먹여? 성전이 끝난 뒤로 이런 경험을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부러진 대검을 바닥에 쿵 떨어드린 7사도가 귀신같은 홍소를 지었다.
“찢어죽이고 싶은 인간들과 같은 편을 먹는 건 저같은 인내심 많은 흡혈귀도 쉽지 않네요. 거슬려서 온 몸에 닭살이 돋는 것 같아.”
“네놈들보다 죽은 시체들이 나아 보이는 건 본주 역시 마찬가지군.”
연리술주가 무표정한 얼굴로 곰방대를 뻐끔거리며 녹아내린 잔해물 위에 내려앉았다.
“지금이라도 저쪽을 거들어 교단을 참살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라, 잘됐네요. 지금이라도 영묘의 일부가 될 수 있게 냉큼 죽여드릴까?”
쿠오오오!!!
드넓은 공동 안에서 대술주와 7사도의 살기가 순식간에 서로를 향한다.
단순한 압박에서 그치지 않고 의지만으로 피부를 할퀴고 날개 피막을 찢어버리는 살벌한 신경전.
영묘 공략을 위해 잠깐 협력하고 있을 뿐, 원래라면 같은 목표물을 앞두고 싸우던 경쟁자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서로가 싸우다 죽어버린다면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아르무슈 님. 조심…… 하십…….”
라리아타의 발 아래 밟힌 채 죽어가는 사제들 중 누군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상대…… 자벨린…… 맨손으로…… 이능을…….”
“하아? 고작 맨손으로만 이능 발동을 제한할 수 있다면 역시 진짜 본인은 아니겠네요.”
라리아타가 자신에게 조언하는 사제의 머리를 밟아 으깨며 히죽 웃었다.
“집체정신망을 통해서만 능력의 컨트롤이 가능한 그 여자가, 시체꽃에 먹혔다고 갑자기 이능 조절이 될 리가 없잖아.”
“마경 안에서는 정신망의 보조를 받기 힘든 만큼, 원래라면 이능의 출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날뛰어야 정상이겠지.”
연리술주가 곰방대를 거꾸로 잡고 걸어나오며 대꾸했다.
“자벨린 본인이 아니라면 소멸의 여파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바로 천번을 따라잡는다.”
에레디스 자벨린은 중앙전선 전역에서 이름을 떨치는 어마어마한 거물.
하지만 어째서 자벨린 급의 강자가 영묘 공략에 실패했는지, 대술주와 7사도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자벨린의 이능이 지나치게 강대하여 집체정신망을 사용해 억눌러야 할 정도기에, 영묘 안에선 외려 그 보조를 받기 어려웠겠지.
그렇게 고삐가 풀린 소멸의 이능이 제멋대로 날뛰어 영묘 전역에 감겨 있는 대장군의 의념을 일부 지워 버리기라도 했다면?
실제로 그러한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벨린이 마경 공략을 시작한 뒤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음은 확실하다.
그렇기에 휘하 소멸번대 일부를 잃는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후퇴를 선택했던 것이겠지.
“술주, 나한테 명령하지 말아요.”
철컥!!
무기가 없어진 양 손을 허리춤에 얹은 라리아타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너무 짜증 나게 굴면 나도 모르게 싱싱한 피를 먼저 빨아먹을지도 모르니까. 아하하핫!!!”
“썩어 문드러진 흡혈귀 따위가 주제를 모르는군.”
날개를 떨친 라리아타의 신형이 튕기듯이 가속해 자벨린과 격돌.
연무를 매개로 삼은 술주가 공간을 넘어 리히토의 뒤에 나타났다.
뻐어어어엉!!!!
자벨린의 맨손에 접촉한 라리아타의 박쥐날개가 폭발하듯이 소멸해 터져 나간다.
날갯죽지 사이로 새빨간 선혈을 흩뿌리며 미친듯이 광소하는 흡혈귀의 모습.
자벨린의 손이 7사도의 전신을 스칠 때마다, 흡혈귀의 육체가 소멸하며 내장과 장기가 으스러졌다.
“아하하하하학!!!”
퍼버버버벙!!!
온몸에 머리통만 한 구멍이 난 채, 끊어진 창자와 내장을 뚝뚝 흘리는 7사도의 처참한 신형.
그대로 남은 심장과 머리를 잡아 터트리려던 자벨린이, 흘러나온 7사도의 내장을 보고 멈칫거렸다.
반쯤 찢어진 라리아타의 위장 안쪽에서 얼핏 모습을 드러낸 황금빛의 길쭉한 도끼자루의 형상.
그것이 영묘 안에 보관되어 있던 대장군의 무구, 위성분쇄자라는 사실을 자벨린이 깨달은 직후.
“어머나, 들켜 버렸네?”
라리아타가 피칠갑을 한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그럼 죽어야겠죠?”
발아래 떨어진 핏물이 시간을 역행하듯 자벨린의 육신에 들러붙으며 순식간에 재생을 마치고.
왼팔로 자벨린의 손목을 움켜쥔 라리아타가 으깨진 위장 안에서 집채만 한 도낏날을 꺼내 들었다.
쩌저저접……!!!
7사도의 키를 감안해도 절대 위장에 들어갈리 없는 초대형 도끼를 내장 안에서 으저접 꺼내드는 기괴한 모습.
자벨린이 그 모습을 보고 손을 뻗는 것과 동시에, 분쇄자의 날이 엄청난 속도로 손목을 찍고 그 육체를 관통했다.
콰아아앙!!!
“……!”
“영묘 안에서 시체들을 썰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보관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먹어버렸거든요.”
전신이 꿰뚫린 자벨린의 복제가 행동을 멈추는 것과 동시에 라리아타가 이죽였다.
“혈마법을 통해 위장에 처박아둔 건데, 그쪽 때문에 피가 부족해서 술식이 풀려 버렸잖아. 책임져야겠어요.”
“─”
“흐음, 사도는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위계나 영성이 오염된다는데, 이미 미쳐 버린 시점에서 그딴 거 알게 뭐람? 그러니까-”
덥석!
재생해 낸 왼팔로 자벨린의 머리를 움켜쥔 라리아타가 입을 쩍 벌렸다.
“그쪽도 잘먹겠습니다아.”
우적!!
라리아타의 입이 귀신처럼 쭉 찢어지며, 자벨린의 목덜미를 우득 깨물었다.
시체를 타고 흐르는 피를 흡혈하는 것과 동시에 흡혈귀의 목과 식도가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목덜미를 물린 자벨린이 그 와중에도 맨손으로 7사도의 폐부와 내장을 헤집으며 능력을 발동했지만.
라리아타는 체내에서 폭발하는 격통도 무시하고 광소하면서 쉴 새 없이 피를 들이켰다.
“아핫!! 아하하하하핫!!!”
뚜둑! 뚜두둑!!!
미친 듯이 웃으며 살점과 내장을 철철 흘리고, 자벨린의 몸에 흐르는 피를 흡혈해 끊임없이 재생한다.
그때마다 라리아타의 마력이 엄청난 속도로 부풀어오르며, 그녀의 기척이 한없이 기괴하게 변해간다.
“아야.”
오염된 피를 마신 7사도의 비강 안에서 뿌리 내린 시체꽃이 눈알 위로 피어오른다.
하지만 라리아타는 얼굴에 피어난 시체꽃을 웃으며 한 손으로 잡아 뜯어 빼내 버렸다.
뚜둑!!
시체꽃의 뿌리를 타고 그녀의 머리 안에서 무언가 흘러나왔지만, 그조차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생해 내는 괴물 같은 모습.
“후하, 오랜만에 잘 먹었다. 유통기한이 많이 지났긴 했는데 먹을 만한걸요?”
“…….”
얼어붙은 관문 잔해물 너머.
리히토의 시체를 밟은 연리술주가 곰방대를 태우며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스으읍…….
입을 쩍 벌린 노인에게서 흘러나오는 푸르스름한 연기를, 곰방대에 담아 흡입하는 술주의 모습.
그때마다 술주의 기척이 라리아타와는 반대로 한없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침잠한다.
혼연(魂煙). 영혼을 불태워 연기로 화해 흡입하는, 오직 연리술주 자신에게만 허락되는 동력.
“뭘 그렇게 쳐다봐. 구경났어요?”
촤악!!
온몸의 피가 빨려 나간 자벨린의 복제품을 내팽개친 라리아타가 입가를 닦으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 어느 때보다 선홍빛으로 물든 눈동자를 품은 흡혈귀의 시선이 기름진 것처럼 번들거렸다.
“남이 식사하는 거 오래 쳐다보면 실례라고, 그쪽 맹주가 안 가르쳐줬나 보네.”
“딱히.”
연리술주가 남아 있는 연기를 모조리 거두고 일어섰다.
서늘한 시선으로 라리아타를 내려다보던 술주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너같은 잡종을 오래 살려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자벨린의 이능을 맨몸으로 받아내며 그 피를 흡혈해 삼켜버리는 우악스러운 포식능력.
그 와중에 소실된 육체를 재생시키며 시체꽃의 잠식마저도 억지로 버텨낼 정도로 터프한 내구성.
삼파전 당시 여력을 남겨두었음은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까지 막장스러운 저력을 갖추고 있을 줄은.
저 영락한 진조가 영묘 안에서 타고난 육체능력이 가장 강한 생명체라는 사실은 분명하겠지.
“크크큭…… 대술주 님.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지만, 주변의 꼬라지를 보고도 뭔가 떠오르는 게 없어요?”
쾅!!
분쇄자의 도낏날을 내리찍은 흡혈귀가 승강기가 떨어진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 마법사. 일대를 얼음으로 뒤덮은 것 외엔 별다른 주문조차 쓰지 않고 이 시체들을 가지고 놀았어. 이게 무슨 뜻이게?”
“…….”
“아까부터 생각했지만 그 마법사, 뭔가 굉장히 이상한 능력을 숨기고 있어요.”
승강기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는 라리아타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그럼 지금이라도 쫓아가서 한번 확인해 봐야지. 수상하잖아?”
* * *
“7사도와 술주가 안쪽의 시체들을 모두 처리했군.”
쿠우웅!!!!
승강기가 멈춰서는 것과 동시에, 눈을 감고 있던 레녹이 입을 열었다.
“곧 있으면 살아남은 전력을 수습해 이쪽을 따라올 거다.”
“……우리, 지금 승강기를 타고 내려온 시간만 따져도 5분이 넘는데요.”
레녹의 옆에서 승강기를 조작하던 아일렌이 황당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감을 확장해도 닿을 거리가 아닐 텐데, 위쪽에 따로 눈이라도 남겨두고 온 거예요? 그랬다면 술주나 사도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을 텐데…….”
“집행자의 사체에 감시마법을 걸어두었다. 술주와 사도가 숨기고 있는 패를 미리 확인해 둘 필요가 있었으니까.”
만약 자벨린이나 리히토의 시체에 마법을 걸어두었다면 술주나 사도가 어떤 식으로든 눈치챌 가능성이 높았겠지.
하지만 시체꽃을 뽑아낸 클라크 렌슬릿의 사체에 술식을 걸고 시야를 공유했기에 마지막까지 현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7사도의 경이로운 흡혈능력과 위성분쇄자의 존재. 연리술주가 사용하는 영혼을 태워 마시는 연기.
“적어도 그만한 수고를 들인 소득은 있었던 것 같다. 지금부터는 바로 이동하는 게 좋겠군.”
천천히 눈을 뜬 레녹이 말했다.
“승강기를 타고 먼저 내려온 이점을 살리기 위해선 미리 주변을 둘러봐야 할 테니까.”
“……제가 앞장서죠. 따라와요.”
승강기가 멈춰선 통로 너머로 펼쳐진 음습한 어둠 속.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통로를 향해 아일렌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사악……!!!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가며, 산소가 희박해지고 중력이 사라진다.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디면 지옥불처럼 뜨거워졌다, 대기가 끓어오르고 중력의 방향이 바뀌어 뒤집힌다.
영묘 내부의 환경과 물리법칙이 쉴 새 없이 뒤바뀌며, 살아 있는 생명을 억압하고 짓누르는 극한의 환경.
“하…….”
아일렌이 가쁜 숨을 내쉬며 머리칼을 쓸어올리고, 레녹이 결계를 보강하며 두 사람을 보호했다.
키릭, 키릭……!!
안쪽 통로에는 새카맣게 물든 덩굴과 뿌리가 사방에 뒤엉킨 채 메말라 붙어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말라비틀어진 꽃잎이 밟히고, 이내 발에 채일 만큼 수북해진 순간.
앞장서서 걷던 아일렌이 손을 들어 올렸다.
“저건…….”
광활한 통로 한복판에 시들어 죽은 사화가 무더기로 쓰러져 있었다.
검게 물들어 빛이 바랜 채, 축 늘어져 겹겹이 쌓인 그 모습은 징그러울 정도.
“이곳에 버려진 채 쌓인 사화가 썩으며 영묘 전역을 오염시키고 있군.”
레녹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영묘의 시공간을 타락시키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만이 아니에요.”
하지만 아일렌의 시선은 길목을 가로막은 사화가 아니라, 그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꽃이든, 인간이든…… 둘 다 이 너머에 잔뜩 있어요. 꽃잎을 쌓아놓아 흔적을 감춰뒀을 뿐이지.”
“…….”
“이 영묘를 존속시키는 핵심적인 기작…… 이 시공간의 동력을 공급하는 비처.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군요.”
건블레이드를 고쳐잡은 아일렌이 입술을 깨물었다.
“바로 확인해 볼게요.”
콰직!!!
건블레이드를 사화 더미 속에 꽂아 넣은 아일렌이 그대로 강하게 손목을 비틀었다.
칼날이 꽃잎에 쑥 꽂히는 것과 동시에 안쪽 깊이 들어가고 긁어내듯이 잡아당긴 순간.
점액질에 휩싸인 알몸의 인간들이 꽃잎의 벽 반대편에서 와르르 떨어져 내렸다.
“아……!!!”
“…….”
지켜보던 레녹조차 표정을 굳힐 만큼 갑작스러운 형상.
하지만 벽 안쪽에서 끌려 나온 인간들은 발작하거나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엎드린 채 멍하니 숨을 내쉬며, 혼탁한 눈동자로 바닥을 내려다보기만 했을 뿐.
전혀 인간 같지 않은 그 기묘한 반응에, 레녹이 쓰러진 인간의 맥을 짚고 체내를 투사했다.
“……아직 살아 있는 인간이다. 다만 반응신경계가 완전히 망가져 동작하지 않는군.”
“…….”
“대뇌 피질이 일부 부패해 있어. 뇌사에 가까운…… 식물인간보다 못한 존재에 가깝다.”
육체는 살아 있지만 뇌가 완전히 죽어 있는 상태. 이미 대뇌가 부패해 썩어가고 있는 이들이다.
의학적으로는 사실상 완벽하게 회생의 여지가 남지 않은 사망자들의 모습.
“이상한 일이군.”
멍하니 침을 흘리는 인간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레녹이 말했다.
“뇌사 판정을 받은 이들은 연명조치가 없다면 이틀 안에 죽는다. 뇌가 죽은 시점부터 온몸의 면역체계가 망가지고 퉁퉁 불어 오르지.”
“…….”
“대뇌가 부패해 썩어갈 정도라면 시간이 조금은 지났다는 건데…… 이들의 육신은 방금 태어난 것처럼 생기가 넘치는군.”
“안쪽에, 더 있어요.”
“……더 있다고?”
“숫자가 이것뿐이었으면 벽을 뜯자마자 나올 리가 없으니까요.”
아일렌이 그렇게 말하며 사화의 꽃잎 더미를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이 안쪽에는 인간밖에 없어요.”
촤아아아악!!!
꽃잎 더미를 쭉 찢고 그 안에 숨겨진 살색의 풍경을 드리웠다.
통로 끝까지 점액질에 뒤덮인 알몸의 인간들이 카펫처럼 깔려 있는 아득하고 기괴한 정경.
바닥과 벽면 사이를 뒤덮고 스스로 통로의 일부가 된 것처럼 멍하니 드러누운 뇌사자들.
“사화의 능력으로 되살려놓은 인간들이군. 마경 탐사자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영묘에 끌려온 건가……?”
“시체꽃에 먹혀 조종당하는 시체들은 일부고, 대부분은 이런 식으로 이용당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아일렌이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의 인간들이 뇌가 죽은 채로 부활을 ‘당했다면’…… 저 앞에 있는 건 평범한 시설 따위가 아닐 테고요.”
“…….”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을 피해 걷는 아일렌을 따라 레녹 역시 걸음을 옮겼다.
인간들이 분홍빛 점액질로 뒤덮인 통로를 걸어 마침내 탁 트인 광장에 도착한 순간.
레녹은 광장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기묘한 흑색의 [엔진]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저건.”
후우우우우웅……!!
수십만 개에 달하는 빛의 고리가 겹쳐진 채, 복잡하게 회전하는 형이상학적인 엔진의 모습.
빛이 빨려 들어가며 왜곡되는 엔진 주변에 수천 개의 혈관이 빼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엔진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모든 혈관들이, 주변에 피어난 수천 송이 사화의 줄기가 되고.
사화의 봉오리 안에서 알몸의 인간이 수백 명씩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철퍽! 철퍽!!
봉오리에서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알몸으로 꿈틀거리며 바닥을 기는 인간들의 모습.
동시에 그들의 뱃가죽 안쪽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 내장을 찢고 튀어나와 발작했다.
키에에엑!!
크르르륵!!!
자신이 태어난 인간을 뜯어먹는 것과 동시에 숨이 끊어지는 인간들.
시체가 된 육신이 경사로 아래로 미끄러져, 아래에 설치된 분쇄기에 떨어졌다.
콰직!! 우드득!! 처버버버법!!!
살점과 근골째로 갈려 나가는 처참한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육편이 되어버린 시체.
그 살덩이를 보자마자 봉오리를 비워 둔 사화가 고개를 기울여 덥석 집어 삼킨다.
마치 방금 막 사망한 인간의 죽음을 꽃잎을 통해 빨아들이는 듯한 기괴한 모습.
그때마다 사화의 줄기를 타고 전달된 ‘동력’이 광장 중심부에 위치한 엔진에 공급된다.
우우우우우웅-!!!!!!
“사천사화마경…….”
데드라이즈의 주술사, 바라간이 레녹에게 했던 말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죽음을 동력으로 삼아, 매일 인간을 태반으로 삼아 죽이고 되살리며 존속하는 타락한 지옥.
이 세계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영원히 영묘 안에서 끊임없이 같은 행위를 반복하고 있을 뿐.
하지만 레녹은 그중에서도 이 공간을 유지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바로 이해했다.
“광장 중심부에 있는 저 엔진…….”
“축퇴로(縮退爐)예요.”
아일렌이 창백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블랙홀 엔진. 그것도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물건이네요. 어떻게 저만한 동력장치가 이 영묘 안에…….”
“반대다. 저 정도 엔진을 가져다 두어야만 이 영묘를 억지로나마 유지할 수 있는 거지.”
죽음을 동력으로 삼아 축퇴로를 움직이고, 이 영묘 전체를 존속하게 만드는 동력장치.
하지만 레녹은 이 광장의 구조를 보자마자 축퇴로의 목적과 원리를 대번에 꿰뚫어 보았다.
중심부에 놓인 엔진을 중심으로 광장 전체가 회전하며 재조립될 수 있도록 요철로 이루어진 벽면.
조립 과정에서 여분 공간을 남겨둘 수 있도록 천장과 바닥이 평면이 아닌 경사로로 이루어진 구조.
“광장 시설구조 자체가 축퇴로의 인력에 기반해 결집되어 있군. 엔진이 멈춘다면 시설이 무너지고 그 너머의 묘실이 나타나겠지.”
“그 너머의 묘실이라는 건, 설마……?”
“우리가 서 있는 광장 반대편에 위치한 장벽.”
레녹이 시선을 돌렸다.
“그 안에서 뭐가 흘러나오고 있는지 보이나?”
“…….”
철퍽……!!
축퇴로가 위치한 장벽 너머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푸른 피.
신비로운 빛을 휘감은 진혈이 장벽 안에서 흘러나와, 축퇴로에 연결된 혈관을 타고 스며들었다.
저 거대한 블랙홀 엔진을 통해 진혈을 공급하고, 그렇게 가공된 진혈을 마경 전역으로 흘려보내는.
사천사화마경을 존속하는 심장이 저곳에 있는 듯한 모습.
“장벽 너머의 묘실에서 진혈을 공급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보이지 않아도 느껴진다. 감각으로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사천사화마경에서 마주한 그 어떤 괴물보다도 섬뜩하고 비대한 기척.
오래전에 죽어 시체가 되었음에도 흐려지지 않는 위상을 두른 초월자.
그 존재 자체만으로 마경을 지배하고 존속시키는 근원이 되어버린-
레녹이 마력을 끌어올리며 천천히 손목을 꺾었다.
“제국 황성의 대장군을 드디어 찾아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