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14
약먹는 천재마법사 1314화(1314/1315)
약먹는 천재마법사 1314화
대장군의 영묘(12)
아아아아아……!!!!!
흘러내리는 검은 손이 음울한 절규를 토해내며 인육의 제단 위로 떨어진다.
범람하는 힘과 의지를 주체하지 못하듯, 묘실에 안치된 대장군의 사체를 게걸스레 탐한다.
직전까지 레녹에게 속삭이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사납고도 흉폭한 신성.
위대한 바다의 신이 한낱 신녀의 수작에 놀아나거나 휘둘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그녀가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을 만큼 외신의 뒤틀림이란 단순하지 않다.
다만-
‘나와…… 교주의 존재 때문이군.’
신녀가 시도한 강신의식은 본래 교주의 재림을 위해 준비된 안배.
그렇기에 외신은 그 의식에서 ‘레녹의 존재’를 느끼고 미친 듯이 그를 탐미하고 있는 것이다.
교주와 레녹이 같으면서도 같지 않은 존재이기에.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은 존재였기에.
현세에 내려온 외신의 의지가 그를 구분할 수 없다면, 혹은 구분하지 않으려 한다면.
세계를 잡아먹고 인과를 탐하는 종말이라는 기원과 본질에 지극히 충실하려 한다면.
파앗!!!
성광의 중심부에서 추기경의 머리가 바닥을 구르고, 온몸이 새하얗게 빛나는 여성이 걸어 나왔다.
묘실에 밀집된 신력을 모아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낸 11대 신녀, 우레카 나이드리의 영체.
쓰러진 잿덩이가 된 흡혈귀의 사체 앞에 멈춰선 신녀가 말했다.
[흉측한 꼬라지가 되었구나, 라리아타.]“…….”
[네 영혼을 더럽히는 광증을 씻겨주었음에도 피에 새겨진 멍청함과 아둔함은 어쩔 수가 없군.]우레카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네년을 재활용하기 위해 본녀가 공양한 목숨이 대체 얼마나 되는 줄 아는 거지? 상대를 봐가면서 덤비는 총명함을 갖추라곤 말하지 않겠으나, 본녀를 번거롭게 하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하였을 텐데.]“…….”
[네 피에 새겨진 혈왕인자를 활성화시켜, 다시 돼지 사료로 만들어 버려야겠다.]라리아타의 사체에 천천히 손을 짚은 우레카가 비릿한 목소리로 고했다.
[짐승들에게 씹어먹히고 난 뒤에도 버릇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폐기처분해야겠군.]파아아앗……!!!
신녀의 손을 통해 흘러나온 창백한 성광이 라리아타를 휘감고 그녀의 뇌 깊이 파고들었다.
흡혈귀의 머리 안쪽으로 파고든 성광이 뉴런처럼 잘게 갈라지며 그녀의 영육을 불태우는 듯한 형상.
그때마다 이미 숨이 끊어진 흡혈귀의 시체가 어마어마한 격통에 발작하듯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하…… 크…… 흐각……!!”
레녹과의 교전에서 사망한 흡혈귀의 육신이 저며지는 고통에 반응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고통.
하지만 레녹은 저것이 바로 11대 신녀가 보유한 새로운 권능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쳐버린 사도를 재활용하여 전장에 쉴 새 없이 내보내는 우레카의 진짜 능력.
[왜, 신기해? 너도 체험하게 해 줄까?]축 늘어진 라리아타의 시체를 밟고 돌아선 신녀가, 레녹을 보며 느릿하게 손을 털었다.
[의식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금술을 대가없이 사용할 수 있거든. 원한다면 어떤 느낌인지 알려줄 수 있는데.]“의식이 유지되는 동안이라…….”
레녹이 차가운 어조로 대답했다.
우레카는 제사장의 권한을 지니지 못한 11대 신녀. 교단의 의식을 주관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반쪽짜리 신녀다.
하지만 대규모 의식을 직접 시작할 수는 없어도, 이미 시작된 의식을 이어받아 존속시키는 것 정도는 가능한 바.
[야차라는 놈이 상황을 제멋대로 뒤틀어버린 시점에서 본녀의 계획이 다소 어그러지는 건 필연이었지.]신녀가 걸음을 옮겼다.
[가만히 지켜보자니 외신의 진체가 현세에 강림할 것 같고, 멈추자니 그 과정에서 대장군이 깨어날 것 같잖아?]“…….”
[어느 쪽이든 본녀의 통제를 따르지 않으리란 건 분명한데, 둘 다 위험하기 짝이 없어서 내버려 둘 수도 없었거든. 그래서 본녀는 아예 둘을 하나로 합쳐 새로운 사도로 만들기로 한거야.]바닥을 구르는 몰튼 추기경의 머리를 신녀가 한 발로 밟고 활짝 웃었다.
[그분의 힘을 빌려, 그분께서 일전에 행하셨던 기적을 복습하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창의적인 해답이었지. 안 그래?]“…….”
외신의 진체가 직접 강림하는 사태만큼이나, 대장군이 깨어나는 것을 경계하고 있는 건가.
생전의 광성대장군이 얼마나 미쳐 있는 괴물이었기에 외신의 의지를 강신시켜서까지 통제하려 하는 건지.
그 정도로 심대한 불균형을 일으키지 않고서는 대장군이 깨어나 미쳐 날뛰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여긴 것인가.
[그분께서 선례를 남긴 방식대로 하면 1사도에 비견되는 막강한 사도가 태어날 테고, 나는 그런 초월자를 교단의 개로 부릴 수 있게 되는 거지.]자신에게 도취한 것처럼 손을 들어 들여다보던 그녀가 주먹을 꾹 쥐었다.
영체화해 있음에도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뻣뻣한 고통스러운 움직임.
허나 이내 핏줄이 설 정도로 강하게 주먹을 쥔 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그 찢어 죽일 견뢰 놈의 목을 뽑아, 영원토록 본녀의 위상을 칭송케 할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광성대장군을 사도로 만드는 일을 이미 성공시킨 것처럼 단언하는 우레카의 전언.
하지만 레녹은 우레카가 아무런 근거 없이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오래전의 교주가 승천자의 육신에 외신을 깃들게 해 사도로 타락시킨 적이 있다면.
그렇게 태어난 사도가 교단 내에서 아직까지도 봉인되어 있는 1사도의 정체였다면, 신녀가 어째서 자신감을 내보이는지 역시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외신의 위상과 교주의 권능을 빌려 휘두르면서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우레카의 태도.
그것이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인 것마냥 당당하고 권위적이기에, 더욱 위험하고 강력하다.
[생각이 복잡한 모양이네. 결국 너만한 대마법사도 공양의식을 직접 건드리지는 못하기 때문이겠지?]침묵하는 레녹을 보며 신녀가 빈정거렸다.
[외신이 직접 엮여 있는 공양의식에 잘못 손을 댔다 반동이 터지면 그때는 정말로 살아나갈 수 없을 테니까. 너 같은 불신자들이 뭘 생각하는지는 뻔해.]“…….”
[그러게 진작 금술에 손을 대지 그랬어? 같잖은 인륜이나 도덕에 얽매여 어려운 길을 고르니까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거야.]칼칼한 목소리로 웃은 신녀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에반 마르티네스, 웃기지만 난 너를 인정해. 사도살해자 주제에 살아서 내 앞에 선 것도, 견뢰 놈과 싸워 승부를 겨뤄본 것도. 한낱 배교자라기엔 무시하기 어려운 위업이지.]“…….”
[하지만 난 너처럼 고개가 뻣뻣한 천재보다는 말 잘 듣는 개새끼를 더 선호하거든.]신녀가 활짝 웃었다.
[그러니까 여기서 죽어. 혹시라도 마음에 들면 내가 다시 사도로 되살려줄지도 모르잖아?]“……쉬운 길을 고르지 않아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야.”
레녹이 시선을 들어올렸다.
“인간을 도구로 삼아봤자 결국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
[하, 아직도 그런 고리타분한 소리를-]“네가 입버릇처럼 떠들어대는 실패한 구세주야말로 그 증거가 아닌가?”
[…….]순간, 신녀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무표정한 얼굴로 레녹을 바라보던 신녀가 기괴할 정도로 고개를 푹 기울였다.
흩날리는 빛의 폭풍 속에서 손을 뻗는 것과 동시에, 창백한 성광이 폭발하듯 터져 나와 영묘 전역을 뒤덮었다.
[좋아. 꼭 신벌을 받아야만 정신이 든다 이거지?]콰아아아아아아아!!!!!!
대장군의 사체를 공양하여 진행되는 인신공양의식.
그 의식이 시작되는 장소를 중심으로 창백한 빛이 해일처럼 범람하며 신녀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모습.
외신이 직접 응답하는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신녀는 어떤 대가조차 없이 자유롭게 교단의 금술을 휘두른다.
제사장의 권한을 지니지는 못했으나, 재능만큼은 이어받아 신녀의 자리를 차지한 우레카 나이드리의 금술영창.
[성역선포.]우레카가 씹어뱉듯이 중얼거렸다.
[간이위상현현 : 만신전 소환]우우웅!! 철컥!!
콰르르르륵!!!
새하얀 빛의 기둥이 영묘 전역에 떨어져내리며 눈부신 순백의 신전을 구축하고 현현한다.
타락한 영묘 위에 장엄한 빛의 신전을 강제로 뒤집어 씌우고 교단의 성역으로 선포하는 억지의 극치.
허나 대장군의 사체를 재료 삼아 외신이 강림하는 지금, 그런 억지조차 세계를 바꾸는 규칙이 된다.
파바바바밧!!!!!
오오오오오!!!!!
영묘 사방에서 쓰러진 교단의 사제와 교정기사들이 창백한 성광에 휩싸여 일어선다.
마경 안쪽에서 추락해 부서진 교단의 전함과 전쟁병기들이 수복되어 영묘 안으로 들이닥쳤다.
영묘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바깥에서 대기하던 수천에 달하는 교단의 공략대가 신녀의 의지에 따라 전선을 구축하고 성전을 준비했다.
쿠과과과과과!!!!!
영묘 전역에 교단의 금술을 내려주며, 생자와 망자를 가리지 않고 성전의 주구로 삼아 일으켜 세운 신녀가 섬뜩한 어조로 말했다.
[견뢰 놈과 싸워봤다길래 써먹을 구석이 있나 싶었더니만, 마법사답게 좆같이 지껄이는 꼬라지는 꽤 비슷한걸.]“…….”
[됐어. 기분 나쁘니까 그냥 여기서 죽어라.]흘러넘치는 성광이 우레카의 손안에 휘감기며 강렬하게 번뜩였다.
[대장군을 사도로 만들면 어차피 네놈같은 마법사가 필요하지도 않겠지.]“마르티네스!!”
“뛰어.”
아일렌이 시선을 홱 돌리고, 레녹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대로 정면에서 돌파한다.”
키이이이잉-!!
신녀의 손안에 응축된 성광이 폭발하고, 레녹과 아일렌이 서 있던 자리에 빛의 기둥이 되어 내리찍혔다.
동시에 되살아난 교단의 주구들이 영묘 전역에서 벽과 천장을 때려 부수고 레녹을 향해 달려들었다.
“위대한 성전에 동참하라-”
“신의 이름으로……!!!”
“그분께서 영도하시는 낙원에 함께하리!!!”
쿠과과과과과과!!!!!
신녀가 선포한 성역 안에서 일시적으로 생명을 얻고 힘을 부여받은 사제와 교정기사들.
본래 그 소속이 교단이 아님에도 이 순간만큼은 교리에 잠식당한 연맹 술사와 묘지의 시체들.
무너지는 천장 사이로 교단의 전함이 비행하며 축복과 가호를 소나기처럼 흩뿌리고, 창백한 빛의 포격이 지반을 두들겼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서 마력과 성광이 폭발하며 레녹과 아일렌을 죽이기 위해 쏟아지는 성광의 난무.
쾅!!
묘실 천장이 박살나 떨어지며 순간적으로 폭격을 받아내는 바리케이드가 된다.
그 사이로 미끄러지듯이 몸을 밀어 넣은 아일렌이 다급하게 레녹을 돌아보았다.
잠깐 사이에 벌써 십수명의 사제들을 죽인 것인지, 그녀의 건블레이드 위에 피가 잔뜩 배어 있었다.
“우리, 여기서 도망치긴 늦었어요. 알고 있죠?”
“처음부터 도망칠 생각도 없었지만…… 신녀가 휘두르는 금술의 수준이 생각 이상으로 굉장히 높군.”
레녹이 잔해물 사이에 기대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영묘 바깥에 남겨진 교단의 전력을 끌어들인 것도 모자라, 성역을 선포해 축복과 가호를 불어넣으며 혼자서 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반쪽짜리라 해도 교단의 신녀가 맞긴 하군.”
대장군의 사체를 공양하는 의식을 통해 외신이 직접 현세에 힘을 내려주고 있는 상황.
신녀는 그렇게 내려받은 힘을 휘두르며 영묘 안에 성역을 선포하고 금술을 난사하고 있다.
그 규모가 얼마나 방대한지, 타락에 잠식당한 마경 일부가 교단의 성역으로 덮어씌워질 정도.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폭주하는 외신의 의지가 대장군의 사체에 깃들어 강신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정말 광성대장군이 사도화되어 부활하게 되겠군.”
콰과과광!!!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흔들리는 잔해물의 벽을 올려다보며 레녹의 시선이 가라앉았다.
“문제는 지금 당장 신녀를 처리해도 강신의식이 멈출지 알 수 없다는거다. 어쩌면 신녀가 직접 나선 것 자체가 대장군의 사도화 시간을 벌기 위해서일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멋대로 의식을 멈춰 버렸다가는, 외신의 힘이 폭주해 마경 전역을 통째로 소멸시켜 버릴지도 모르고요.”
“이쪽에서 의식을 멈출 수도 없고. 신녀를 죽여도 의식이 멈출지는 알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사도가 된 대장군을 직접 상대해야 한다면…….”
“문제의 본질에서 멀리 돌아갈 필요는 없겠죠.”
아일렌과 레녹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짧게 마주쳤다.
철컥!!
건블레이드를 들고 일어난 아일렌이 레녹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시간을 벌게요. 할 수 있겠죠?”
“죽지만 마라.”
레녹이 손가락을 꺾었다.
“그럼 그 다음의 일은 내가 어떻게든 해보지.”
파앗!!!
대답조차 없이 아일렌의 신형이 잔해물 아래쪽으로 튕기듯이 빠져나가 달리기 시작했다.
건블레이드를 어깨에 짊어진 채 자세를 한껏 낮추고, 성광의 포격이 쏟아지는 영묘 아래를 질주하는 모습.
떨어지는 잔해물 사이를 엄청난 속도로 가속하는 아일렌의 모습을 보자마자 사방에서 빛이 떨어져 내렸다.
키이이이잉-
퍼버버버버벙!!!
사방에서 레이저처럼 떨어지는 성광을 피해, 창백한 안색으로 앞을 가로막은 교정기사들을 베어낸다.
너덜너덜한 기사들의 살점과 폐부에 칼날을 들이밀고 마력탄을 발포. 내장과 심폐를 터트리며 돌파.
“큭……!!!”
묘실 바닥이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아일렌의 모습이 사제들의 시야에서 순간적으로 사라진다.
파편 사이를 밟고 뛰쳐올라온 아일렌이,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앞으로 기울인 순간.
아일렌의 신형이 가속해 엄청난 속도로 신녀를 향해 튕기듯이 쏘아졌다.
쐐애애애액!!!!
외신이 마경에 내려오고 영묘 전역이 신녀의 성역으로 선포당한 시점에서 도망칠 곳은 없다.
아일렌이 시간을 벌기위해 해야할 일은 쏟아지는 폭격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성역의 주체인 신녀를 직접 노리는 것.
‘한 번만, 제대로 맞출 수 있다면……!’
철컥!
탄창에 장전해둔 진혈마탄을 신녀의 미간에 겨누며, 아음속의 속도로 미끄러져 방아쇠를 당긴 순간.
허공에서 석장을 소환해낸 우레카가 엄청난 속도로 아일렌이 쏘아낸 마탄을 쳐내 튕겨냈다.
타아아앙!!!
“……!!!”
[생각하는 게 뻔하다고 했잖아, 알트리마의 성검사. 내가 모를 줄 알았어?]신녀가 석장을 유려하게 한 손으로 돌리며 조소했다.
[의식에 직접 손을 댈 수 없다면 나를 노리러 올 거 아니야. 그쪽이 먼저 나선 이유도 천번이 한번에 날 죽이기 위한 술식을 준비하기 위해서겠지.]쿵!
석장을 바닥에 찍은 신녀가 흩날리는 성광 속에서 느긋하게 손을 까닥였다.
[본녀의 몸에 털끝이라도 손댈 수 있을지 시험해 봐. 죽기 전에 마지막 여흥이라 생각하면 그쪽도 즐길 수 있겠지?]“헛소리를……!!!”
줄지어 떨어지는 성광의 폭발을 따라 아일렌이 순식간에 몸을 감췄다.
묘실 아래로 떨어지는 교정기사들 사이를 넘어, 사방에서 신녀를 노려오는 섬뜩한 기척.
만신전의 기둥 사이로 블레이드가 번뜩이고, 검격과 탄환이 신녀의 급소를 노리고 날아온다.
타타타탕!!!!
[아하하하핫!!!!]석장을 휘둘러 아일렌의 공격을 받아내는 우레카의 광소.
하지만 신녀의 눈동자는 오만한 말과는 달리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염열계는 광역섬멸에 특화된 포화마법. 천번 놈이 전략급 술사라는 걸 감안하면 본단의 사제들을 쓸어버리는 건 어렵지 않겠지.’
묘실 전역에서 창백한 빛의 기둥이 내리찍히고, 교단의 전함과 사제들이 술식을 난사하는 웅장한 광경.
하지만 우레카 나이드리는 교단에게 지극히 우세해 보이는 이 상황이 큰 의미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
‘7사도와 대술주를 동시에 죽일 정도로 강력한 마법사야. 작정하고 나서면 순식간에 전장을 정리하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는 이유는-’
신녀를 단 한방에 무력화시키면서도 강신의식을 무위로 돌릴 수 있는 술식을 준비 중이기 때문일 터.
외신이나 대장군을 직접 노릴 수 없다면 결국 타겟은 우레카 한 사람을 향해 좁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대비하고, 역으로 함정을 걸어 시간을 끄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한 바.
쾅!!
등 뒤에서 엄습하는 블레이드를 쳐낸 신녀가 거침없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 자리에서 사제들이 전멸해도 강신의식이 끝날 시간만 벌면 본녀의 승리……!!! 이미 늦었어!!!’
성역 안에서 영묘에 폭격을 쏟아붓는 교단의 전력은 물론이고, 이곳에 내려온 신녀의 영체조차 버림패로 던져도 좋다.
중요한 것은 그때까지 신녀를 노리는 아일렌과 레녹의 공세를 받아치며 마지막까지 시간을 끌고 늘어지는 것.
[하하하하핫!!!!]동시에 묵직한 석장이 하늘에서 내리찍히며 뒤에서 달려들던 아일렌의 어깨를 정확하게 관통했다.
콰아아아앙!!!!
“큭……!!”
작살에 꽂힌 것처럼 아일렌의 몸이 신녀의 발아래 처박히며 강렬한 굉음을 내뿜고.
이내 신녀의 발아래 푸른 피가 흠뻑 흘러나와 바닥을 뜨겁게 적셨다.
[움직임은 좋은걸, 레인저.]발아래 쓰러져 경련하는 아일렌을 바라보며 신녀가 냉소했다.
[하지만 이곳은 이미 내 성역 안이야. 이곳의 모든 시공간은 내 감각 아래 있다는 걸 알았어야지.]“하아, 하아……!!”
[아르스노바의 귀족을 산 채로 잡다니, 이건 이것대로 즐거운 소득이군. 진혈종을 인신공양하면 얼마나 효율이 좋을지 궁금했거든.]콰직!!
아일렌의 어깨를 밟고 석장을 비틀어 더욱 크게 상처를 낸다.
[일부러 시간을 벌려고 그랬다는 거 다 알아. 하지만 소용없어. 나도 마찬가지거든.]신녀가 속삭였다.
“……의식의 반동이 무서워서……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에요…….”
아일렌이 파리한 안색으로 목소리를 떨며 대답했다.
“이 상황을 망쳐야 한다면…… 어디를 손대야 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뭐?]“당신이야말로 천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흐릿해진 아일렌의 시선이 신녀의 뒤쪽을 향했다.
“천번은…… 처음부터…….”
[……!!!]그 순간, 우레카는 아일렌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깨닫고 섬전처럼 고개를 돌렸다.
외신의 사념이 폭포수처럼 떨어져내리며 대장군의 사체에 깃드는 공양의식의 한복판.
제단 위에 잠든 대장군의 사체 위에 올라탄 레녹이, 무표정한 얼굴로 주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르티네스!! 이 씹어먹을 배교자 새끼가……!!!!]“대장군의 육체는 죽었지만, 그 의념은 여전히 남아 영묘 전역에 감돌고 있지.”
레녹이 말했다.
“그건 광성대장군의 의식이 아직 소멸하지 않고 이곳에 남아 있다는 뜻이니…… 특정한 수단을 사용하면 깨울 수도 있다는 뜻일 거다.”
[당장 기어 내려오지 못해?!!! 거기서 뭘 하는 거냐!!!]화르르륵!!!
그의 손 안에 들려 있는 타오르는 거대한 화염깃발의 형상.
천천히 깃발을 들어 올린 레녹이 불타는 깃대의 끝을 대장군의 미간에 놓고 조정했다.
“만약 대상의 의식을 강제로 ‘확장’시킬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죽어 잠들어 있는 초월자의 의식조차 강제로 각성시킬 수 있겠지.”
[설마, 안 돼!!! 이 미친 새끼가 무슨 짓을-!!!!!]처음부터 레녹은 신녀를 노리거나, 반동을 무시하고 직접 공양의식을 멈출 생각이 아니었다.
외신과 대장군이 연결된 이 거대한 의식에, 두 존재를 제외한 그 누구도 의식에 개입할 수 없다면.
교주의 힘을 빌리는 신녀가 아니고서야 어떤 초월자도 강신의식의 불순물로 취급받을 뿐이라면.
다름아닌 의식에 바쳐지고 있는 광성대장군 본인을 깨워, 직접 의식을 멈추게 할 생각이었던 것.
의식에 참가하고 있는 당사자가, 스스로의 의지로 의식을 중단하면 공양이나 강신은 이뤄지지 않는다.
그를 위해 지금껏 단 한순간도 깨어나지 않았던 미쳐 버린 도살자를 여기서 깨워야 한다면-
콰직!!
신녀가 섬뜩한 전성을 터트리며 성광을 터트리기도 전에, 화염 깃발을 든 레녹이 거침없이 대장군의 미간에 그것을 꽂아 넣었다.
대상의 의식을 강제로 확장시켜 자극하고 각성시키는 의식병기 형혹성의 힘.
야차의 영성을 터트렸던 불꽃이 이번에는 정반대로 대장군의 내면에 빨려 들어가듯 스며들고.
회오리치며 흡수된 형혹성의 불꽃이 사라진 순간, 육중한 심장박동이 파문처럼 터져 나왔다.
두근……!!!
“일어나라, 광성대장군.”
레녹이 속삭였다.
“네 손으로 교단과 연맹의 계획을 모조리 부숴 버릴 수 있게 도와주지.”
뚜둑.
창백하게 탈색된 대장군의 팔뚝 위로, 검은 핏줄이 우두둑 솟구치며 맥동한다.
거대한 영혼의 울림이 퍼져나오며 영묘 전역을 통째로 뒤덮는 압도적인 감각.
산발이 된 흑발의 시체가 느릿하게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섬뜩한 살기가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