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18
약먹는 천재마법사 1318화(1318/1341)
약먹는 천재마법사 1318화
대장군의 영묘(16)
쿠구구구!!!!
광성대장군이 깨어나는 것과 동시에 사천사화마경 전역이 흔들리며 조금씩 무너져 내린다.
그의 진혈을 공급받아 힘을 얻고, 죽음을 양분으로 삼아 자라나던 모든 것들이 죽어 나갔다.
한때 아르스노바 제국 황성 국립묘지였던 시설 전체를 자신의 손으로 분쇄하며 무로 되돌리는.
자신이 안장되어 있던 공간 전체를 무너뜨리고 지워 버리려는 듯한 대장군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
레녹에게 영묘의 부장품을 안겨주면서, 아르스노바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겠다는 약속까지.
“…….”
하지만 레녹은 분쇄자를 들고 돌아서는 대장군을 보면서도 섣불리 감상을 말하지 못했다.
한계를 넘어선 초월자가 레녹을 위해 험지 끝으로 직접 향하고 있는 이 순간.
‘그때와는 다르다. 하지만…….’
광성대장군이 레녹에게 호의를 보이는 이유도, 서로의 입장도 쿤다라의 일과는 다르다.
말레온 그노시스가 승천의식에 참가한 레녹을 돕기 위해 구겁에서 끝까지 함께하려 한 것과는 달리.
대장군은 레녹을 제국의 적으로 여기면서도, 레녹에게 과거의 승천자를 겹쳐보기에 그를 돕고 있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그럼에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차이점이 레녹을 망설이게 한다.
만약 광성대장군 본인이 레녹이 아닌 과거의 누군가에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를 위해 지금 이렇게 사천사화마경의 끝까지 레녹을 안내하고 있다면.
“대장군.”
어처구니없게도, 레녹은 이 순간 자신의 정신이 한없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건 레녹의 판단이 거기까지 닿은 시점에서 직감적으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신비로운 빛을 휘감은 냉병기와 유물들이 산처럼 쌓여 거대한 언덕을 이룬 신전의 끝자락.
분쇄자를 들고 돌아서는 대장군의 공허한 기척을 본 레녹이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지만 그 전에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
“지금까지는 당신의 목적을 알지 못해 내버려 두었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굳이 여지를 남겨둘 필요는 없겠지.”
“……귀공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 순간, 대장군의 공허한 눈동자가 신전의 벽면 아래쪽을 관통하듯이 꿰뚫었다.
레녹의 말을 듣는 것과 동시에 그 의미를 이해하고, 시선의 방향 너머에서 진실을 간파한 듯한.
“영묘의 주인 된 자로서 묘소를 더럽히는 잔재를 좌시할 수는 없는 일.”
우둑.
천천히 목을 꺾은 대장군이 무심한 표정으로 발을 내디뎠다.
“소장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나기 전에 모두 처리하고 가겠습니다.”
대답은 없었다.
대장군이 레녹의 발아래서 그대로 한 발을 내리누른 순간.
레녹과 아일렌이 서 있는 지면 전체가 무너지며 수십 미터 지하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아앙!!!!!
“……!!!!”
순수한 각력만으로 신전 아래쪽 지각에 균열을 일으켜 수십 미터에 이르는 크레이터를 만들어내는 힘.
두꺼운 천장과 층계 사이를 박살 내고 떨어진 대장군의 신형이 엄청난 속도로 신전 최하층에 도달한 순간.
지하 층계 아래쪽까지 산처럼 쌓인 부장품을 뚫고 숨겨져 있던 또 다른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콰아아아아앙!!!!
문이 활짝 열린 관이 수십에서 수백 개는 넘게 세워져 있는 낡은 정원.
의미 모를 기록과 자료들이 사방에서 흩날리고, 오래된 고문서들이 먼지를 풀풀 내뿜는 기묘한 공간.
강 아래 이러한 공간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에 레녹이 떨어지면서도 무심코 시선을 돌린 순간.
손을 뻗은 대장군이 정원 한쪽에서 도망치는 무언가를 잡아채 강하게 바닥에 찍어눌렀다.
쿠우우웅!!!
“컥……!!!”
“야차?!”
부패한 대장군의 손에 목이 잡힌 채, 바닥에 찍어 눌려 꼼짝도 하지 못하는 아더 메이슨의 모습.
아더의 몸을 빌려 아직까지 영묘 안에 남아 있던 야차의 존재를 확인한 아일렌이 흠칫 놀랐다.
“귀공에게 당한 이후에도 물러나지 않고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경련하는 야차의 목을 잡아 누른 대장군이 담담하게 말했다.
“외계의 존재답게 신의 힘을 빌려 연명을 시도하고 있었군요. 한발 먼저 이곳에 당도해 있던 듯합니다.”
“……크, 큭……!!!”
“영묘의 타락에 일조했던 외계 문명의 생존자…… 그렇기에 마경의 환경과 지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존재라면.”
대장군이 공허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이는 것과 동시에 아더의 목이 반쯤 으스러졌다.
“소장의 책임을 다하기 전에 이 존재를 보아넘길 이유는 없을 듯하여.”
“에반…… 마르, 티네스…….”
아더의 육체에 깃든 야차가, 침을 질질 흘리며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안으로 검게 물든 야차의 눈동자가 레녹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휘어졌다.
“훌륭, 하군…… 기어, 코…… 대장군을…… 깨운 건가…….”
“…….”
“제국의, 정복자에게…… 예우받는…… 귀인, 이라…….”
야차가 힘겹게 웃었다.
“흥미, 로워…… 네, 가…….”
우둑!!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장군이 한 손으로 야차의 목을 꺾어버렸다.
8레벨의 육체능력자가 전력으로 저항하는 와중 대놓고 목을 부러뜨리는 경이로운 악력.
축 늘어진 야차의 목을 쥐고 들어올린 대장군이, 그대로 손을 놓고 바닥에 떨어뜨렸다.
“유위나스의 아이야. 이 자를 영묘 바깥에 묶어두거라.”
“……대장군.”
망설이던 아일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묶어두라는 것은, 무슨 말씀이신지…….”
“이 육신에 깃든 악령은 이 자의 근원심상에 기대어 하나의 육신에 공존하고 있다.”
대장군이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이 자리에서 인간을 죽이면 악령은 풀려난다. 살아 있는 감옥이 필요할 것이다.”
“…….”
순간, 아일렌은 대장군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아더의 육체에 깃든 야차의 영성은 아더가 죽는 순간 풀려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아더를 살려두고 야차가 육신을 벗어나지 못하게 가둬두라는 뜻이겠지.
하지만, 그보다도 대장군이 아일렌에게 이런 전언을 남긴 의미는-
“……알겠습니다. 대장군께서 원하신다면 자리를 피해드리지요.”
목이 꺾인 아더의 멱살을 들어올린 아일렌이 차분하게 말했다.
“언제 다시 돌아오면 되겠습니까?”
“그건 소장이 결정할 일이 아니군.”
대장군이 걸음을 옮겼다.
공허한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아일렌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때가 되면 귀공께서 직접 일러주실 것이다.”
“……”
고요한 정원을 걸어 멀어지는 대장군을 뒤로하고, 레녹과 아일렌의 시선이 말없이 교차했다.
광성대장군이 직접 예우하는 레녹의 정체. 제국 황성과 엮여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레녹의 신분.
그 모든 것에 대해 어떠한 설명조차 듣지 못하고 홀로 물러나야 하는 이 순간.
여지껏 함께 마경을 탐사해 온 만큼, 그녀에게도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지금 당장이라도 알고 싶어서 아직까지 이곳에 남아 있었을지도.
하지만 아일렌은 더 이상 그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천천히 물러섰다.
사천사화마경을 공략한 것도, 대장군을 깨워 의식을 멈춘 것도 레녹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
그렇다면 그에 대한 대가와 책임 모두 레녹이 직접 가져가는 것이 맞겠지.
“이 용병 자식, 확실하게 감시하고 있을 테니까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하죠.”
아일렌이 짐짓 투덜거리는 척 아더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제가 분에 못 이겨서 이 놈의 팔다리 힘줄을 다 끊어놔도 뭐라 하지 마요.”
“뛰어난 레인저의 판단이라면 언제든 신뢰할 만하지.”
레녹이 웃었다.
“색적기관의 능력에 대해서는 믿음이 간다. 마음대로 해도 좋아.”
“…….”
순간, 아일렌이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것처럼 머뭇거렸다.
입술을 달싹이던 그녀가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시선을 돌렸다.
“중앙에서 당신의 평판이 좋은 이유가 있었군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인 줄 알았더니, 그런 빈말도 할 줄 알아요?”
“살짝 입에 가시가 돋은 것 같긴 하군.”
“……말을 말죠.”
아일렌이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신호 줘요.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죠?”
“그래. 금방 끝내지.”
레녹이 조용히 답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
아일렌은 잠시 레녹의 얼굴을 응시하다, 아더의 멱살을 잡고 몸을 돌렸다.
멀어지는 아일렌의 모습을 바라보던 레녹이 이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사방에 세워져 있는 관이 즐비한 드넓은 정원.
타락한 영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고요하고 적막한 공간.
그 정원의 끝에서 광성대장군이 등을 돌린 채 우뚝 서서 레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러 아일렌과 말을 섞지 않으려 하더군.”
천천히 걸음을 옮겨 대장군의 옆에 선 레녹이 먼저 입을 열었다.
“중앙도시 출신과 엮이는 것을 피하고 싶었나?”
“소장은 이미 육신이 썩어 문드러진 패장에 불과합니다.”
대장군이 감정을 읽을 수 없는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은 시체 따위가 장군 행세를 할 자격은 없고, 제국의 신민이 과거의 영광에 얽매일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레녹이 대장군을 돌아보지 않고 물었다.
“평생 동안 광증에 시달렸다고 들었는데, 내가 보기엔 굉장히 군인다운 성정에 가깝군. 죽은 뒤에야 정신병에서 자유로워진 건가?”
“…….”
대장군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공허한 시선으로 저편에 놓인 어둠을 바라보다, 나직하게 입을 열어 다른 말을 전했을 뿐.
“귀공께서는 정말로 제가 알던 그분이 아니시군요.”
“…….”
“이 세계에 진정한 자유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서로 얽매이고 엉키면서 끌려들어가고, 마지막까지 함께 일그러지기만 할 뿐.”
“…….”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버려야 하니, 그 간단한 덧셈과 뺄셈을 벗어나기 위해 세계를 초월하는 대답이 필요하다고.”
대장군의 눈동자가 레녹을 향했다.
“다름 아닌 귀공께서 소장에게 가르쳐주시지 않았습니까.”
“……나는 모르겠군.”
레녹이 대장군을 돌아보지 않고 묘비가 세워진 낡은 정원을 걸으며 대답했다.
“언젠가의 내가 그것을 추구하며 노력했다는 사실은 안다. 그를 이루기 위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한번 버리기까지 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지.”
“…….”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여기 선 내가, 그때의 나 자신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천천히 대장군을 돌아본 레녹이 물었다.
“정작, 내가 바라는 것은…… 그때와는 이미 달라져 버린 지 오래인데.”
“…….”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같은지,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내가 바라던 결과였는지조차도 알 수 없어. 예전의 내가 그렇게까지 극단적이고 미쳐 있는 존재였기에-”
레녹이 시선을 들어올렸다.
“너도 아직까지 반궁(叛穹)이라는 구도자를 기억하고 있는 것 아니었나?”
“…….”
주문연맹과 귀도교단의 충돌. 광성대장군의 재림. 외신이 강림할 뻔한 의식의 실패.
오늘 이 영묘 안에서 있었던 일은 레녹으로서도 갈피를 잡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레녹은 오래전에 죽은 이 강대한 초월자가 어째서 자신에게 예우를 다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역대 최강의 승천자라 불리던 반궁이 아르스노바 출신의 인물이었다는 것을.
광성대장군이 레녹에게서 이미 반궁의 존재를 겹쳐보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니까.
종언의 운명이었던 반궁. 운명의 종언이 되어버린 레녹.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릇을 자처한 반궁을, 이제와 레녹은 자신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중요한 문제였다.
레녹이 아르스노바 제국 황성을 목표로 움직이기 시작한 지금이라면.
다름아닌 생전의 반궁 본인을 기억하는 초월자를 만난 이 순간에는 더욱.
언젠가는 그 질문에 대답해야 할 거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그 시기가 이르게 찾아왔음은 부정할 수 없다.
허나 그만큼 레녹 역시 이 문답을 놓치고 싶기 않았기에, 가감없이 이 사내에게 자신의 감상을 털어놓았을 뿐.
레녹 자신이 품고 있는 기원과 비밀에 대해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답해본 적이 얼마만의 일이었을까.
상대가 망자임을 알기에, 소생을 포기한 승천자임을 알고 있기에 그럴 수 있던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귀공께서 하신 말씀이 틀리지 않습니다.”
침묵하던 대장군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 세계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고, 우리 모두는 한낱 부품에 불과할 뿐. 마지막까지 장난감처럼 농락당하다 망가지는 것이 결말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
“하지만 이 무너지는 세계에서도 최선을 다해 발버둥친 이들이 있었기에……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것에도 의미가 있음을 귀공께 배웠기에.”
분쇄자를 거꾸로 잡고 들어올린 대장군이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소장 역시 마지막까지 소장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려 합니다.”
콰직!!
분쇄자의 날을 낡은 정원의 한복판에 꽂아넣는 것과 동시에, 열쇠처럼 잡고 천천히 회전시킨다.
동시에 대장군의 육신에서 흘러나온 검은 기름이 분쇄자를 타고 흘러내리며 정원 아래로 퍼져 나갔다.
쩌적……!!
대장군의 육신을 뒤덮은 검은 핏줄이 혈관처럼 맥동하며 정원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듯한 환상.
마치 광성대장군을 심장으로 삼아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정원 전체가 깨어나는 듯이 맥동한다.
그와 함께 지축이 덜덜 떨리면서 신전이 위치한 강줄기 전체가 쪼개지듯 갈라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
검게 오염된 지반과 흙더미가 일어서며 지축이 통째로 뒤집힌다.
지각이 열리면서 그 안쪽으로 새로운 내용물이 솟구치고, 지하에 파묻혀 있던 모든 것을 위로 밀어낸다.
오감을 통해 쏟아지는 모든 자극과 정보가 한계까지 변화하며 격동하고 뒤집히는 충격.
사천사화마경을 관통하는 거대한 강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갈라지고 으스러진다.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신전을 중심으로 사천사화마경 전역의 지형과 환경이 격변하며-
마경의 저편으로 향하는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었다.
“이건…….”
콰과과과과과과과과!!!!!
강줄기가 갈라지며 튀어나온 지각 위에서 새롭게 형태를 바꿔, 장대한 관문이 펼쳐진다.
지하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어 지평선 끝까지 뻗어나가는 거대한 경사로의 형상.
사기에 새카맣게 물들어 절여진 경사로의 양 옆에 세워진 끝없이 펼쳐진 장벽.
“이것으로 소장이 영묘 안에서 해야 할 역할은 모두 끝났습니다.”
레녹이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이 대장군이 거꾸로 잡고 있던 분쇄자를 내려놓았다.
“이제부터는 귀공께서 하기 나름입니다.”
“……그렇군.”
대장군의 의지와 분쇄자의 존재를 열쇠로 삼아, 마경의 끝에서부터 시작된 지각변동.
그를 통해 사천사화마경 전체의 지형을 뒤짚어 엎은 뒤에야 모습을 드러낸 저편의 관문.
끝없이 펼쳐진 문 너머, 지평선 끝으로 사천사화마경과는 다른 지옥이 눈에 들어온다.
쿠우우웅!!!
세계 전체가 새하얗게 얼어붙은 듯 일그러진 거대한 은빛성채.
수평선 끝까지 뒤덮을 정도로 기괴하게 부풀어오른 포자 버섯.
충혈된 눈알이 뒤덮인 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게 솟구친 탑.
중앙전선 전역에 뒤엉켜 일그러진 지옥도. 황성의 각 중추기관이 망가지며 만들어진 영원한 타락의 정취.
이 길을 따라 황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몇번의 지옥을 더 넘어서야할까.
세계의 중심에 도착하기 위해 대장군과 같은 괴물을 얼마나 더 만나게 될까.
하지만 레녹은 그런 복잡한 심경을 억누르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감사를…… 표해야겠군.”
적어도 광성대장군이 마지막까지 레녹을 도와주려 했음은 틀림없을 테니까.
“분명…… 이것이 사천사화마경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겠지. 영묘에 종속된 당신이 다른 마경에 간섭할 수는 없을 테니.”
“…….”
“당신의 말대로 여기서부터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을 거다.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할지도 모르지.”
레녹이 가라앉은 시선으로 길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내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지금 말해야 할 거다. 광성대장군.”
“…….”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에 이 마경의 끝까지 나를 안내할 수 있었다면, 내게 바라는 것이 있을 텐데.”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대장군이 헝클어진 흑발 너머 시선을 내렸다.
“소장은 오래전에 인과가 끊어져 무엇과도 연이 닿을 수 없는 사체. 애초에 누군가를 돕거나 의미가 되어서는 안 되는 몸입니다.”
“…….”
“허나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소장의 힘이나 기원 따위가 아닌, 귀공께서 여기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었으니.”
천천히 걸음을 옮긴 대장군이 중얼거렸다.
“그렇기에 소장 역시 마지막으로 귀공께 부탁을 드릴 수 있을 듯 합니다.”
쿵……!!
온몸이 검은 핏줄에 뒤덮인 대장군이 천천히 걸음을 내디뎠다.
사천사화마경의 강줄기를 통째로 갈라 만들어낸 길 앞에 선 그가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금이 간 분쇄자를 거꾸로 잡고, 초점을 잃은 공허한 시선으로 레녹을 응시하는 모습.
레녹이 그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며 희미하게 표정을 굳힌 순간.
“보이는 것과 달리 이 문은 완전히 열린 것이 아니기에, 황성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사천사화마경을 완전히 소멸시켜야 합니다.”
대장군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를 위해 귀공께서는 이 마경을 지배하고 있는 소장을 직접 죽여주셔야 하겠습니다.”
“……뭐?”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귀공.”
철컥!!
분쇄자를 제 자리에 내려놓은 대장군이 공허한 눈으로 레녹을 내려다보았다.
“그저, 귀공만이 가능하신 그 종언으로…… 소장에게 결말을 지어주신다면 충분합니다.”
“…….”
“언젠가의 당신께서 늘 그렇게, 그 역할을 맡아오신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