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19
약먹는 천재마법사 1319화(1319/1341)
약먹는 천재마법사 1319화
대장군의 영묘(17)
사천사화마경의 강줄기 전체가 갈라지며 뻗어나온 관문의 중심부.
그 앞을 막아선 채, 황금빛의 도끼를 내려놓고 묵묵히 이쪽을 바라보는 광성대장군의 거체.
꿀럭, 꿀럭……!!
부서진 갑주 위로 뒤덮인 검은 혈관이 호흡하는 듯 맥동하며, 발아래로 뻗어나가 벽과 바닥을 뒤덮었다.
저편으로 향하는 길을 여는 것과 동시에 대장군 자신이 마경의 심장이 되어버린 듯한 기괴한 모습.
그렇게, 온몸이 검은 혈관에 뒤덮인 채 느릿하게 맥동하며 검게 물들어가는 초월자를.
레녹은 한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모르겠군.”
침묵하던 레녹이 조용히 물었다.
“내가, 너를 죽이는 것이 내 역할이라고?”
“…….”
“예전의 내가 맡아왔던 일이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는 건가?”
아니, 사실 레녹은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알고 있었다.
대장군에게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직감하고 있었다.
쿤다라에서 말레온을 상대한 순간, 반궁의 근원심상이 무엇이었는지 레녹도 이해하게 되었으니까.
자성영역을 [문]으로 삼아, 내면에 존재하는 근원심상을 펼쳐내기만 했음에도 선종의 사념을 소멸시켜 버린.
이미 멸망이 찾아온 미래의 세계선을 자신의 심상으로 삼은 최악의 승천자.
종언의 운명이라는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레녹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대장군 역시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귀공. 인과가 닫혀 있는 세계에서 우리 모두는 정해진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분쇄자의 손잡이에 양손을 올려둔 대장군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이 세계에서 태어난 누구도 결말을 피할 수 없고, 바다의 물거품이 되어 스러지는 것이 정해진 운명…….”
“…….”
“허나 결말의 때가 정해져 있기에, 반대로 그 누구도 정해진 결말에 먼저 도달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법입니다.”
대장군이 담담하게 말했다.
“귀공께서는 그러한 굴레를 초월해 파멸한 미래선에 먼저 도달한 유일무이한 선각자…… 결말이 찾아온 세계선을 당신의 기원으로 삼은 분이셨습니다.”
“……그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본래 생명이 맞이할 수 있었던 세 가지 결말…… 귀공께선 사라진 결말을 대행하는 존재였으며, 정해진 운명을 강제로 끊어줄 수 있는 분이셨기에…….”
공허한 대장군의 시선이 정처 없이 흔들리며 레녹을 좇았다.
“그만큼 많은 구도자들이 임종의 순간 기꺼이 귀공께 자신을 맡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
결말이 찾아온 미래의 풍경을 기원으로 삼은 반궁의 근원심상.
그 파멸의 정경을 [문]이라는 형태를 통해 실재하는 힘으로 끌어내는 천저술식(天低術式).
구태여 더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아니, 어쩌면 레녹 자신보다도 대장군이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
비록 그것이 존재할 수 있는 최악의 형태라고 해도, 반궁이 타인의 결말을 강제로 지어줄 수 있는 초월자였다는 것을.
저 바다의 신마저 죽여 거꾸러뜨릴 수 있었던 힘을 지닌 종언의 주인이었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을 넘어, 반궁이 자신을 포기하고 대장군이 죽어 시체가 된 지금에 와서야.
대장군은 레녹에게 마지막으로 그의 역할을 이행해 주기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장군. 말했을 텐데.”
레녹이 조용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나는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사람이 아니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같은 존재인지 아직도 확신하지 못하지.”
“…….”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려낸 결과로서 내가 여기 있을 뿐…… 그럼에도 내게 부탁을 하고 싶다는 건가?”
“귀공. 이 영묘의 타락은 우연이나 불운한 사고로 존재하는 결과가 아닙니다.”
대장군이 눈을 감았다.
“황제 폐하와 삼대공이 외해의 힘을 실험하고 타락시킨 처리장…… 소장이 이곳에 남겨진 것 역시, 우연이 아닌 정교한 설계하에 이루어진 일이었을 겁니다.”
“…….”
“의사권능을 쐐기로 삼아 소장의 영성과 의식을 영묘에 묶은 뒤 타락의 매질로 삼고, 진혈과 의념이 마경 전역에 흐르며 공존하기에…… 소장의 존재는 마경을 존속시키는 심장으로 기능할 뿐.”
쿠구구구구……!!!
서서히 흔들리며 무너져 내리는 마경의 중심부에 선 광성이 말했다.
“그렇기에 소장의 존재에 죽음이 아닌 ‘다른 결말’을 지어주지 않고서는 이 너머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사천사화마경을 지배하는 광성대장군은 이미 죽어서 시체가 된 승천자.
허나 그 육신에 새겨진 의사권능과, 마경에 종속된 대장군의 영성이 그를 이곳에 묶어두고 있다.
죽어서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사천사화마경을 존속시키는 심장으로서 존재하며 기능하는.
저 너머 가라앉은 황성에 결코 도달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뒤틀린 인과 그 자체.
그를 끊기 위해서는 대장군에게 죽음이 아닌 다른 결말을 줄 수밖에 없다고.
그것이 가능한 것이 오직 단 한 사람뿐이라고 대장군은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장군이 레녹의 부름에 응해 깨어난 이유가 처음부터 그것을 위해서였다는 듯.
“나는…….”
“통합전쟁으로 쇠한 소장의 육신은 오래전에 숨이 끊어져, 기력과 용력이 다해 썩어가는 시체에 불과합니다.”
대장군이 걸음을 옮겼다.
“평생 동안 소장과 함께했던 광증은 죽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제 영혼에 남아 맴돌고 있습니다.”
“…….”
“소장이 깨어나 이 영묘를 배회하기 시작한 이상, 소장은 계속해서 이 지옥의 심장으로서 기능하며 이곳과 동화되어 가겠지요.”
천천히 눈을 감은 초월자가 말했다.
“이 순간이 지나면 소장은 다시 깨어나지 못한 채 광화된 본능만이 남아, 죽은 채로 살육을 반복하는 미치광이가 될 뿐입니다.”
전신이 검은 혈관에 뒤덮인 채 마경의 심장으로 동화되어 가는 대장군의 존재.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이성이 사라지고 나면, 그 안에는 평생 동안 대장군과 함께하던 광증만이 남을 뿐.
피와 학살에 미쳐 있는 광화(狂化)의 본능이 육신을 잠식하고 나면 그때는 지금처럼 대화조차 불가능하겠지.
그렇기에 대장군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레녹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내게 호의적이었던 건 모두 이 순간을 위해서였군.”
레녹이 천천히 팔짱을 풀었다.
“깨어나자마자 영묘를 부수고, 묘소의 폐쇄장치를 작동시키고, 사천사화마경을 무너뜨려 온 것도.”
“…….”
“나를 대신해 교단과 연맹의 세력을 모두 정리한 것조차…… 이 순간을 안배하기 위해서였나?”
“귀공.”
대장군이 눈을 감았다.
“자신의 결말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건 이 세계에서 축복이나 다름없습니다.”
“…….”
“부디, 이 부덕한 신하에게 그 축복을 누릴 기회를 하사해 주시겠습니까?”
침묵이 흘렀다.
사천사화마경 전체가 죽어가며 정화되어가고 있는 이 순간.
마경의 끝에 도달한 뒤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일이 있음을, 결말을 지어야 하는 인과가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
어쩌면,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제국의 대장군이 레녹이 알던 초월자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죽어서도 황실에 충성을 바치는 승천자가 레녹의 적이 아닐지언정, 반대로 아군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그토록 난잡했던 영묘의 상황이, 대장군이 깨어남과 동시에 모두 정리될 수 있던 것일지도 모르지.
대장군의 존재와 목적이 레녹이 상대해 온 그 어떤 초월자와 비교해도 이질적인 것이었기에.
그가 과거의 레녹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있는 존재였기에.
마지막까지 경고하고, 안배하며, 이렇게 부탁하려 한다면.
“……그렇군.”
화륵-
천천히 손을 옆으로 뻗는 것과 동시에 레녹의 손안에 붉은빛의 홍염이 휘감겼다.
레녹의 손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회전하면서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불길.
맨손으로 불꽃을 쥐어 압축하는 것과 동시에 손목을 타고 뜨거운 화염이 피어올랐다.
쿠화아악……!!
견갑골을 타고 부풀어오른 화염이 날개처럼 펼쳐지며 레녹의 한쪽 팔을 타고 폭발.
무너지는 광대한 밀림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폭염의 날개가 되어 사방을 불사르고 뜨겁게 달구었다.
염열계열 고유마법
성질변화 증폭극의
적색성계(赤色星界) : 태양기정점(太陽氣頂點)
제 8항성 : 겁천
염천권역 구현
불지옥 만다라
콰과과과과과!!!!!
죽어가는 밀림 전체를 장작으로 삼아 순식간에 불이 옮겨붙으며, 엄청난 속도로 확장을 거듭해 불바다를 이룬다.
마경의 지평선 끝까지 이어지는 불길이 지상을 온통 뒤덮고 넘실거리며 퍼져 나가는 장엄하기 그지없는 광경.
그 붉디붉은 지옥도의 중심에서 레녹이 안광을 번뜩이며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감사드립니다, 귀공.”
전신이 검은 핏줄로 뒤덮여가는 대장군이 조용히 말했다.
“마지막까지…… 귀공에게 빚을 남기고 가는군요.”
“그쪽이 원하는 방식대로 잘 되지는 않을 거다.”
치익-
시가를 꺼내 입에 문 레녹이 손을 감싸 쥐고 불을 붙였다.
연기를 깊게 들이마시는 것과 동시에 양손에서 황금빛의 약병이 와르르 떨어진다.
마지막을 앞두고 준비를 마치기 위해 실시간으로 체내에 약을 들이붓는 레녹의 모습.
짙은 연기를 뿜어내며 무릎에 손을 얹은 레녹이 고개를 푹 숙였다.
“역시, 당신이 기억하는 나는 지금의 나와 달라. 이제 와서 내가 그때의 힘을 흉내 내봤자 제대로 된 결말을 지어주기는 어렵겠지.”
“…….”
반궁의 천저술식은 레녹이 자신의 죽음을 직접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사용할 수 없는 힘.
레녹 스스로 파멸하고 실패하는 분기점을 강제로 골라서 선택해야만 겨우 손이 닿는 기적이다.
쿤다라에서 그랬듯, 승천의 비약과 라이프 베슬을 동시에 운용하는 편법이 아니고서는 당장 건드릴 수조차 없는 힘.
이 자리에서 광성대장군의 결말을 지어주기 위해 레녹이 다시 한번 ‘죽어서’ 천저술식을 꺼내 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의 내 방식대로라도 괜찮다면 원하는대로 해 주겠다.”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린 레녹의 눈동자가 붉은빛으로 번뜩였다.
“그렇게라도 당신이 납득할 수 있다면.”
축퇴로의 핵을 손에 넣고 적색성계의 아홉 번째 항성을 일시적으로 구축해낸 이 순간.
염열계의 정점에 도달해 잠깐이나마 손에 넣은 초월성을 휘두르는 지금.
사천사화마경의 주인. 아르스노바 제국 황성 광성대장군.
썩어 문드러진 육신을 움직여 레녹의 앞에 선 죽은 초월자를 화장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란-
“……훌륭, 합니다.”
몰아치는 불바다의 폭풍 속에서 대장군이 눈을 감았다.
동시에 광성대장군 본인에게서 느껴지는 기척이 빠르게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지금껏 간신히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고, 빠르게 추락해 망가져 가는 의념.
대장군을 광성(狂性)이라 불리게 만들었던 광증이 초월자의 정신을 좀먹고 잠식해 나간다.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지옥 밑바닥으로 떨어지며 망가지는 듯한 섬뜩한 기척.
“그, 럼… 이제, 부터는…….”
뚜둑, 뚜둑……!!
대장군의 전신을 뒤덮은 검은 혈관이 툭툭 터지며 검은 피를 줄줄 흘렸다.
분쇄자의 손잡이에 올려둔 손을 타고 떨어지는 검은 피가, 황금빛의 도끼를 더럽히고.
이윽고 부서진 갑주를 걸친 승천자의 육신을 모조리 뒤덮은 채 피칠갑을 하며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촤아아악!!!
초월자의 육체를 뒤덮은 검은 피가 휘몰아치며 창백한 피부를 새카맣게 물들인다.
두근.
고개를 푹 숙인 대장군을 중심으로 사천사화마경 전역을 울리는 심음이 들렸다.
두근.
대장군의 기척이 기이하게 부풀어 오르는 것과 동시에 그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검은 혈관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느릿하게 반개한 대장군의 눈동자가, 동공조차 보이지 않은 검은 빛으로 완벽하게 물들어 버린 그 순간.
“……아.”
후욱-
전신이 검은 핏물로 뒤덮인 대장군이 희미한 단말마를 내뱉으며, 선 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마치 그 자리에서 모든 의지와 의식을 잃어버리고 실 끊어진 인형이 되어버린 듯한 공허한 자태.
동시에 대장군의 기척이 섬뜩하게 가라앉으며, 기이한 살기가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흩날리는 불바다 속에서 검은 피로 육체를 물들인 채 미친 듯이 부풀어 오르는 살기.
흉포하다 못해 짐승에 가까운, 한 줌의 이성조차 남기지 않는 광화(狂化)의 잔재.
레녹이 실시간으로 추락해 가는 대장군의 기척을 바라보며 마력을 고조시킨 그 순간.
동공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검게 물든 대장군의 안구 너머에서 붉은 안광이 떠올랐다.
팟-
휙 시선을 들어 올린 대장군이, 검붉은 초점을 움직여 레녹을 빤히 바라보고 미소지었다.
레녹을 바라보며 그리는 입가의 호선이 더할 나위 없이 씰룩이며 섬뜩하게 일그러진 순간.
“그렇군.”
검은 핏줄로 뒤덮인 손으로 목을 우두둑 꺾은 대장군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네가 바로 황성에서 기다리던 그놈이었나.”
“…….”
말을, 하고 있다.
대장군의 의식이 꺾인 뒤에도 아직 지성을 유지한 채 레녹에게 말을 걸어오는 누군가의 정체.
검게 물든 눈동자 너머, 핏빛으로 물든 섬뜩한 안광이 레녹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타고난 본성을 평생 동안 억누르고 산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지. 이렇게 되기까지 오래도 걸렸어.”
“……너는.”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버티는 건, 참 덧없다고 생각하지 않나?”
쉬이이이-
철컥!!
검은 핏줄로 뒤덮인 분쇄자를 거침없이 뽑아 든 대장군이 그것을 어깨에 걸쳤다.
저릿한 살기를 오줌처럼 줄줄 흘리면서 불바다 속을 헤치고 성큼성큼 걷는 장대한 체구.
그것만으로 마경의 흔들림이 더욱 가속화되며 불지옥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언젠가 이렇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막상 지성을 얻는다는 건…….”
쿵!!
단 두 걸음 만에 레녹의 앞에 다가선 대장군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또 유쾌하기만 한 기분은 아니군.”
“……그렇군.”
그제서야 눈앞의 대장군이 어떤 존재인지 이해한 레녹이 나직하게 시선을 들어 올렸다.
“대장군의 내면에 남아 있는 광화된 본능…… 그의 욕망이 외해의 법칙에 따라 온전한 지성을 손에 넣은 건가.”
외해의 신들은 영원히 꿈을 꾸며, 욕망에 절어진 채 스스로 지성을 얻고 신이 된 존재.
그렇기에 외해의 힘을 끌어쓰는 마경 안에서는 본능과 욕망이 곧 지성체로서 태어난다.
광성대장군의 의식은 이 자리에서 소멸하였음에도, 그 육신에 남은 본능은 외해의 법칙에 따라 새로운 존재로서 다시 태어난 것.
대장군이 레녹에게 경고하고 염려했던 위험이란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황성에서 안배하고 삼대공이 실험을 벌인 결과였지.”
헝클어진 흑발 사이로 일그러진 광성이 차갑게 냉소했다.
“광증을 욕망의 형태로 정제해, 저 바다의 신과 같은 존재로서 만들어낼 수 있는지. 무의식과 본능의 영역에서 태어난 존재가 이 세계의 인과를 벗어나 있는지를 알아내려 했거든.”
“……”
“보기 좋게 실패해 버렸지만 그 결과물은 남았지. 그 덕분에 내가 네놈을 이렇게 대접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공허하면서도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던 대장군의 얼굴로 짓는 표정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기괴하게 뒤틀린 감정.
“뭐, 그렇게 슬퍼할 필요는 없다. 널 대접하려 안달이 나 있던 그놈이나, 지금 널 찢어 죽이려는 나나 결국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존재거든.”
“…….”
“본래의 내가 네놈을 편하게 만들어주려고 마경을 무너뜨리며 이것저것 준비를 하긴 한 것 같은데…….”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밀림을 남김없이 불태우며 그 모든 것을 업화로 삼으려는 듯한 파멸의 정경.
하지만 대장군은 전장 주변에서 타오르는 화염을 보면서도 냉혹하기 그지없는 비웃음을 지었다.
“고작해야 물질세계의 화염. 천저술식(天低術式)을 사용하지 않고도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쿵!!
가볍게 분쇄자를 흔들어 떨치는 것과 동시에, 사방의 지반이 무너지며 암반이 연달아 튀어오른다.
대장군의 의지에 따라 사천사화마경 전체가 반응하며 이곳을 전장으로 새롭게 개편하는 듯한 정경.
흘러넘치는 화염 속에서도 대장군의 육체는 손상되는 일 없이 끝없는 타락에 물들어가고 있을 뿐.
“뭐, 이제 와선 아무래도 좋아. 바로 시작해 보자고.”
철컥!!
검은 혈관으로 뒤덮인 갑주를 걸치고, 느릿하게 몸을 기울인 대장군이 말했다.
검붉은 안광으로 뒤덮인 대장군의 눈빛이 기이할 정도로 기름진 빛을 띤 채 번들거렸다.
“본래의 내가 네놈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알지만, 난 영원토록 이 마경에서 살고 싶거든.”
“…….”
“일단 네놈을 찢어 죽인 다음에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할까.”
“아니.”
레녹은 그런 대장군의 말을 끊으며 시선을 들어 올렸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서 타오르는 화염을 바라보며 레녹이 나직하게 말했다.
“천저술식을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른 결말을 고르지 않아도 상관없어.”
“무슨 소리를-”
“그조차도 결국 내가 그리는 대답 안에 모두 담겨 있을 테니까.”
레녹이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나는 그저 선택할 뿐이지.”
광성대장군이 레녹을 대신해 신녀와 야차를 처리하며 남겨둘 수 있었던 여력.
실시간으로 사천사화마경을 무너뜨리며 미리 안배해 두었던 두 사람만의 전장.
마경 전역을 불바다로 뒤덮어 펼쳐내며, 한계까지 예열을 마친 이 순간.
여기까지 와서 망설이고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필요하다면 한계를 넘어선 불꽃조차 끌어내어 수단으로 삼을 뿐.
이제부터 해야 하는 일은, 다른 모든 상념을 버리고 전력으로-
승천자를 불태울 뿐.
쿠구구구구!!!!!
화염이 거세지며 불지옥의 풍경이 새빨갛게 물들어 표백된다.
한계를 넘어선 열기 끝에서 전장이 새하얗게 타올라 시계를 물들인 순간.
화악-!!!
사천사화마경을 뒤덮은 불꽃이 거짓말처럼 증발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불타 일그러진 잿더미가 펼쳐졌다.
회백색의 재가 쌓여 마경 전역을 뒤덮고 지평선 끝까지 퍼져 나간 섬뜩하면서도 고요한 정경.
그 위화감을 눈치챈 대장군이 섬뜩한 표정으로 시선을 치켜든 그 순간.
“자성영역 전개.”
잿더미의 언덕 위에 선 레녹이 걸음을 내디뎠다.
“흑해요신락(黑解曜辰落) 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