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34
약먹는 천재마법사 1334화(1334/1341)
약먹는 천재마법사 1334화
설계된 초월성(12)
세 번째와 네 번째의 경계선에 우리가 서 있다.
다담이 레녹을 보자마자 건넨 그 말은 과연 ‘어디까지’ 알고 전하는 인사말이었을까.
“…….”
휘오오오……!!
시간이 멈춘 듯이 햇살이 내리쬐는 대수림의 중심부.
고목나무 요람에 앉아 초점이 없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연녹색 머리칼의 여성.
잎사귀를 본 딴 문양이 새겨진 화사한 도포. 새하얗다 못해 창백할 정도로 투명한 피부.
머리칼 사이로 튀어나온 뾰족한 귀와, 어떠한 의념이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공허한 기척.
하지만 레녹은 저 거대한 나무의 요람 중심에 앉아 있는 여성을 보자마자 직감할 수 있었다.
승천자 다담(茶淡).
현시점에 단 열 명조차 남지 않은 승천자 중 하나이자, 인간이 아닌 외뢰족의 구도자.
바깥 대륙에서 찾아온 외뢰족의 초월자이자, 제국이 멸망한 이후 오랫동안 은둔하던 존재.
자격을 얻고 다음에 도전할 권리를 갖춘 위대한 초월자. 틀림없는 본인이 저곳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의념이나 심상 자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공허한 다담의 눈동자와 시선을 마주한 레녹이 생각했다.
‘정신이 식물의 영역에 접어들었다 하더니, 이미 절반 정도는 생명체가 아니군. 존재 자체가 자연과 동화되어 있어.’
단순히 감정이나 의념을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기척 자체가 희박한 무기물에 가깝다.
어떻게 보면 레녹이 사천사화마경에서 상대했던 대장군의 유해보다도 더 시체 같은 공허한 기척.
오랫동안 구도를 추구하며 명경지수(明鏡止水)에 이른 수준이 아니라, 호수 그 자체가 되어버린 듯한.
다담(茶淡)이라는 생경한 이명에 걸맞게, 맑은 찻잔처럼 그 마음마저 일체의 잡념을 비워 버린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시점에서, 레녹은 눈앞의 승천자가 어마어마한 수준의 강자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정신이 식물에 가깝다거나, 오랫동안 은거했다는 소문 때문에 전투력이 뛰어난 초월자는 아닐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지만.
상대는 살아 있는 몸으로 9레벨에 도달한 정진정명한 도전자. 위상으로 따지면 천견이나 진둔, 그 편람에 비견될 수 있는 상대임이 틀림없다.
‘마음이라는 것이 없으니 심리전이나 수싸움이 거의 통하지 않겠군. 상대해야 한다면 순수한 술식이나 권능의 우열만으로 승부를 내야 하는 건가?’
다담은 천견과는 달리 인간에게 호의적인 승천자가 아니다.
그녀가 오늘 발칸에 자리한 것 역시 이 도시의 안위나 인간들을 위한 것은 결코 아닐 터.
최악의 경우 이 자리에서 전투가 일어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움직여야 한다.
문제는 다담이 말 그대로 의념이나 감정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초월자라는 것.
궁술로서 초월에 도달해, 화살에 사상전역을 담아 쏘아내는 수준에 이른 괴물.
일체의 잡념을 버린 승천자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면 어떤 수단을 골라야 할까.
“…….”
귀가 멀어버릴 정도로 고요한 적막이 끊임없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나무의 요람에 앉은 다담은 레녹의 존재를 알면서도 말 한마디를 끝으로 침묵하고.
레녹 역시 어떠한 말도 없이 뚫어져라 그런 다담의 존재를 깊게 들여다보고 있을 뿐.
‘다담의 진의를 모르는 이상 먼저 나서고 싶지는 않군. 할 수 있는 건 전장을 선택하기 위한 준비 정도…….’
세 번째와 네 번째를 언급한 시점에서, 외뢰족의 승천자가 레녹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겠지.
하지만 아직까지도 다담이 레녹을 어느 쪽으로 생각해 먼저 말을 걸어왔는지는 파악할 수 없다.
사천사화마경의 일을 끝내고 발칸에서 휴식을 취하며 최소한의 마력과 의념은 회복된 상황.
오래 싸울 수는 없겠지만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교전에 돌입할 수 있다.
고민이 되는 것은 상대가 바로 온전하게 살아 있는 승천자 그 자체라는 것.
현존하는 진짜 승천자들 중 하나. 이 닫힌 세계에서 도전할 자격을 얻은 극소수의 초월자.
지금의 레녹이라면, 과연 9레벨의 살아 있는 승천자를 상대로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까.
위험함이나 경계심보다도 그저, 그렇게 막연한 번민이 마음 속에서 강해지는 것을 느끼며.
무표정한 얼굴로 걸음을 뗀 레녹이 천천히 손가락을 꿈틀거린 그 순간.
“아랫것들이 전해준 이야기가 틀리지 않군.”
다담이, 눈을 반개한 채로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방울처럼 맑고 깨끗한 목소리.
하지만 그 어투는 아주 오래된 원로의 그것처럼 낮고 위압적이었다.
“구도를 쫓고 있으면서도 나와 싸워보고 싶어 고민하는가? 그야말로 피에 젖은 심성을 지녔구나.”
“…….”
“아직 수단과 목적을 혼동할 정도로 망가지지는 않은 듯하나, 머지않았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어.”
천천히 눈을 뜬 다담이, 보석처럼 선명한 녹색의 눈동자로 레녹을 들여다보았다.
“이 시대에 너만한 초월자가 남아 있다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신기한 일이라. 그건 그쪽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말인 것 같은데.”
천천히 손을 거둬들인 레녹이 고개를 기울였다.
다담을 가까이서 마주한 뒤에야, 그녀가 현재 어떠한 존재인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다담이 먼저 말을 걸어오는 이 순간을 이해할 수 없어졌다.
“내면에서 의념이나 감정을 모조리 덜어낸 듯한데, 어떻게 그러고도 나와 멀쩡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거지?”
“…….”
“사실상 의사소통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식물을 상대로 대화가 통한다는 것도 생경한 일이다.”
의념이나 감정을 비워 버린 이상 다담은 애초에 레녹을 인지조차 하지 못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식물이 저기 앉아 있다고 생각하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
그렇기에 레녹은 다담을 보자마자 그녀와 대화를 시도하긴 커녕, 그녀와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설마 다담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먼저 말을 걸어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애초에 지금 이 순간에도 다담의 내면에선 의지나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바.
그런 주제에 어떻게 지금 레녹에게 이렇게 멀쩡하게 대화를 걸어올 수 있는 것인지.
단순히 말을 걸어오는 수준을 넘어, 다담의 말은 오히려 승천자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에 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뒤이어 돌아온 다담의 대답은 그러한 레녹의 상정이나 예측을 어렴풋이 초월해 있었다.
“시간선에 따라 의식을 무한히 쪼개어 분할하고, 오래전 감정이 남아 있던 나 자신의 의식을 불러온 거다.”
“……뭐라고?”
“과거의 시간선에 존재하는 ‘나’를 빌려오면, 지금의 내가 어떤 존재인지와는 별개로 타자와 소통이 가능하지.”
다담이 특유의 아이처럼 맑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
“승천자라는 이름이 어떤 자격을 얻은 존재에게 허락되는 것인지. 너만 한 인간종이라면 알고 있을 텐데?”
“…….”
알고 있다.
자신의 의식을 무한히 쪼개어 나누고 분할하는, 오직 승천자들에게만 허락되는 초월의 기예.
레녹 역시 항하사미궁에서 진둔과 대화한 순간,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이해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설마 다담이 그 기예를 사용해, 지금이 아닌 ‘과거의 자신’을 꺼내어 레녹과 대화를 시도하려 할 줄은.
진짜 자신이라기보단 과거에 존재했던 의식, 기억의 잔재를 이용하는 것에 가깝겠지만,
그것만으로 눈앞의 승천자는 모든 마음과 잡념을 버린 채 레녹과 멀쩡하게 소통하고 있었다.
완전히 텅 비어 있기에 그 안에 자신이었던 무언가를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인지, 애초에 다담의 구도 자체가 그런 방식인 건지.
어느 쪽이든 레녹이 다른 승천자들에게서 보지 못했던 수준에 도달한 자아의 현신임은 틀림없다.
“아직 감정이나 마음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전의 자신이라…….”
레녹이 물었다.
“아직 달라지기 전 과거에 존재했던 자신이, 지금의 자신을 대변하고 있다 해도 괜찮다는 건가.”
“그럼. 물론이다. 수백 년이 지나도 나는 나 자신이며, 수천년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일 테니.”
다담이 느릿하게 말했다.
“내가 정한 그 모든 선택과 변화를 통틀어 나 자신이다. 설령 그 안에 이미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지.”
“…….”
“적어도 그만한 결의 없이 어떻게 도전할 자격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런가…….”
말없이 다담의 대답을 곱씹던 레녹이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현세에 존재하는 온전한 승천자라는 사실을, 그 말 한마디만으로 알겠군.”
식물에 가깝게 변한 뒤에도, 마음을 모두 비운 뒤에도 그녀는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편법이나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
그저 오롯이 자신의 깨달음과 능력을 사용해 아무렇지도 않게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보완할 뿐.
인신공양이나 배덕의 금술, 뒤틀림과 모순을 악용하는 괴악함이나 기괴함이 그녀에게는 없다.
그 사실이야말로 그녀가 온전한 9레벨의 승천자라는 증거임을 레녹은 실감할 수 있던 것이다.
“이치를 보는 눈을 지녔다면 구태여 말이 필요없지.”
그러한 레녹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담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살짝 늘어졌다.
“나의 말을 어렵지 않게 이해하는 것을 보니, 너는 초월자들 중에서도 머리가 좋은 편이겠구나.”
“꼭 그 사실 자체가 신기하다는 것처럼 말하는군.”
“당연한 것 아닌가? 황성이 건재하던 시절에도 승천자들 중에는 미련한 이들이 많았지.”
다담이 고개를 기울여 한 손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부류밖에 없었다고 해야 할지…… 거기까지 올라온 이들은 이미 다른 가능성이나 대답을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 밖에 없었으니.”
“…….”
“그렇기에 나는 황성에 협력하거나 대장군의 직위를 받아들인 이들과는 가능한 거리를 두려 했다. 황제를 따라 초월을 논한다 해도, 그 끝은 결국 파국에 이르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지.”
“그래서, 모든 일이 다 끝난 뒤에 본인의 예측이 맞았다고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너는 정말 재미있는 인간종이구나.”
레녹의 담담한 반문에 다담이 미소지었다.
모든 감정을 잃어버린 얼굴에, 억지로 입가에 힘을 주어 만들어낸 인위적인 미소.
그것이 그녀가 과거에 지니고 있던 감정을 편린이나마 흉내 내는 습관임을 레녹이 깨달은 순간 다담이 말했다.
“그 말만 들어도 네가 내가 아닌 다른 승천자들과 만나보았다는 사실을 알 것 같다. 어쩌면 오늘과 같은 대화가 이미 네 안에는 몇 번이고 존재했을지도 모르지.”
“…….”
“이 세계의 비밀을 전해듣고, 절망하며, 우리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을 품었겠지.”
아무렇지도 않게 레녹의 생각을 꿰뚫어 보려는 것처럼, 다담이 노래하듯 물었다.
“이 닫힌 세계에서 승천의 자격이란 무의미한 것이 아니냐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
“……그럴지도 모르지.”
숨이 멎을 듯한 정적.
호흡조차 멈춘 듯 얼어붙은 딜런과 이벨린의 기척을 지나 레녹이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이 세계에서 다음을 논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이라는 사실 역시 이해하고 있다.”
“…….”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와는 별개로 출발선에 서지 않고선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겠지.”
레녹이 시선을 들어올렸다.
“끝이 정해져 있다면, 적어도 언제 시작할 것인지는 내가 직접 선택하려 한다.”
구도를 논하는 위대한 도전자답지 않은 다담의 전언.
하지만 레녹은 다담과 잠깐 대화를 나눠보자마자 그녀가 제대로 된 승천자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자격을 얻은 구도자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녀가 스스로 밝힌 구도에 답하기 위해 말한다.
“어처구니가 없군.”
그런 레녹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다담이 고개를 기울였다.
“황금의 시대가 끝나고 모든 것이 저물어가는 황혼에 와서야, 너 같은 인간종이 태어난 건가.”
“…….”
“그렇군. 아직 하지 않은 선택조차 의미를 두려 하는가…… 너와 같은 존재가 예전에도 있었다면…….”
그렇게 중얼거리던 다담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말했다.
“하지만 이제와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회한이겠지.”
“나도 내 대답이 당신의 공감을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한 손으로 목을 주무른 레녹이 물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지. 발칸 어딘가에 존재하는 승천유적 때문에 이 도시를 찾았다고 들었다.”
“…….”
“이미 승천자인 당신이 이제와서 승천의 자격이 필요해 유적을 찾을 것 같지는 않은데. 뭘 원하는 거지?”
다담은 레녹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햇살이 내리쬐는 나무의 요람. 녹색의 눈동자를 깜박인 다담의 시선이 천천히 레녹의 곁으로 향했다.
얼어붙은 듯이 서 있는 이벨린과 시선을 마주한 다담이 나직하게 물었다.
“외뢰족의 피를 이은 혼혈이군. 눈을 보니 어렵지 않게 알겠어.”
“…….”
“나의 동족들은 바람처럼 가벼운 몸을 지녔으나, 그 마음만큼은 잔인하리만치 무겁고 배타적이지.”
느릿하게 고개를 기울인 다담이 말했다.
“인간종의 도시에 섞여 살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겠구나.”
“……그건.”
순간, 이벨린이 대답을 망설였다.
다담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까.
“제 고난 따위…… 진정 약하고 빈곤한 이들에 비하면 이렇다 할 어려움은 아니겠죠.”
말끝을 흐린 이벨린이 물었다.
“제게 무엇이 궁금하신 겁니까?”
“동족의 피를 옅게 타고났음에도 위계를 초월했다는 것은, 네 타고난 재능 자체가 훌륭하다는 증거겠지.”
다담이 요람 사이로 턱을 괸 채 말했다.
“소질이 있구나. 네가 원한다면 나의 궁술을 가르쳐 주마.”
“……예?”
“불사체. 너 역시 마찬가지다.”
얼어붙은 이벨린을 뒤로하고 다담이 딜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타인의 악의에 삼켜져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군. 원한다면 네 존재 역시 나의 권능으로 보살펴줄 수 있다.”
“…….”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 해야 할 부탁의 대가를 미리 치러두려는 것뿐이니.”
“승천자.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건지 모르겠군.”
레녹이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당신이 승천유적을 찾아서 발칸에 온 이유를 묻고 있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지?”
다담이 온전한 승천자인 것과는 별개로, 그녀가 이 시점에 발칸을 찾아온 것에는 틀림없이 명확한 목적이 있을 터.
식물의 영역에 접어든 초월자가 직접 움직였다면 그만큼 강력한 인과나 동기가 존재해야 마땅하다.
그녀가 갑작스럽게 레녹의 일행에게 선뜻 호의를 보인다면 그만한 대가가 있는 것이 당연한 일.
당연하지만 레녹은 지금 이 상황을 자신이 모르는 채 흘러가게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대답하지 않겠다면 이쪽에서 그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겠군.”
파직……!!
손가락을 뻗어 허공에서 전류를 끌어당기고, 당장이라도 그것을 움켜잡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린 순간.
“소원을 먼저 듣고자 하는 이유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다담이 느릿하게 시선을 돌려 레녹과 눈을 마주했다.
“내가 이 도시에 온 것은 승천유적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였으니까. 그 과정에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지.”
“……승천유적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사천사화마경이 붕괴한 직후 다담이 발칸에 찾아온 이유.
그건 발칸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승천유적을 손에 넣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파괴하기 위해서였던건가.
하지만 그보다도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승천유적을 파괴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다담의 대답이었다.
허공에서 벼락을 끌어내려던 손을 멈춘 레녹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해할 수가 없군. 왜 유적을 파괴하는 대가를 이쪽에게 지불한다는 거지?”
어째서 승천유적을 파괴하는 대가를 지금 레녹과 일행에게 지불하려 하는지.
그것도 다담 자신의 권능이나 능력을 직접 전수해 주는 형태로 하려는 것인지.
당연하다는 듯 이쪽에게 대가를 먼저 전해주려는 그 묘한 태도가, 이 상황을 허투루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어쩌면 오르메온이 승천유적을 언급하며 레녹에게 했던 제안조차 지금 이 순간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다담이 발칸을 찾아온 목적. 승천유적을 없애려는 이유. 그 대가를 이쪽에게 제시하는 이 순간.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순식간에 레녹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왜냐니. 그 질문이야말로 아이러니한 말이구나.”
다음 순간 돌아오는 다담의 대답에 모두 씻은 듯이 사라져 텅 비어버렸다.
“승천유적이란 본디 카이세 바쥬르의 승천을 위해 발굴된…… 이른바 유사의 월식을 위해 준비된 안배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유적은 전쟁에서 승리한 네 소유물이 아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