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38
약먹는 천재마법사 1338화(1338/1341)
약먹는 천재마법사 1338화
설계된 초월성(16)
파앗!!
음울하게 기울어진 흑색의 파문이 괴물을 중심으로 퍼져 나와 해안선을 물들였다.
동시에 레녹을 향해 달려들던 괴물의 움직임이 그 자리에 우뚝 멎었다.
피칠갑을 한 채 대검을 들고, 방주 앞을 가로막은 채 포효하던 괴물이 제자리에 굳어버린 모습.
동시에 해안가 사방에서 일행을 향해 달려들던 변이체들이 그대로 힘을 잃고 와르르 고꾸라졌다.
철퍽!!
촤아아악!!
얼굴부터 모래에 처박아 미끄러지고, 달려들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인형처럼 나뒹구는 모습.
방금 전까지 괴성과 함께 무기를 휘두르던 팔다리가 기괴하게 휘적대려 이리저리 흔들린다.
부서진 해안선 전체가 순식간에 서늘한 침묵에 잠기고, 레녹의 앞에 우두커니 멈춰선 괴물만이 남은 그 순간.
“…꺼어…….”
시간이 멈춰 버린 것처럼, 목구멍에서 다 새어 나오지 못한 바람소리만이 끼기긱 새어나온 뒤.
충혈된 눈으로 레녹을 노려보던 괴물의 머리가, 그대로 앞으로 기울어져 모래사장에 처박혔다.
쿠우웅-!!
수십 톤에 달하는 거체가 제 자리에서 고꾸라지며 어마어마한 굉음을 뿜고, 해안선을 흔들었다.
이빨이 빠진 대검을 들어올린 자세 그대로 머리부터 처박혀 넘어진 채로 온몸이 굳어버린 모습.
그 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페이샤와 미스트라의 얼굴조차, 시체처럼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미, 친…….”
“……말도 안 돼. 사람 맞아?”
해안선에 반파된 가가메온의 방주를 지키고 있던 이 괴물은 평범한 변이체가 아니다.
고대종의 피를 마신 채로 육신이 변이되어, 사실상 죽어 있는 채 끊임없이 움직이는 괴물.
육신을 잘게 찢어버리거나 근골을 박살 내는 정도로는 무력화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한.
이미 죽어 있기에 죽지 않는 괴물에게 억지로 ‘죽음’을 부여하는.
죽음의 성질변화에 도달한 흑마법.
본래 정상적인 술식체계로는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즉사술식을, 흑마법을 통해 레녹이 손에 넣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 괴물 새끼가…….”
페이샤가 지금같은 경험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마법사가 자신이 다루는 마법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며 실험하고, 말도 안되는 결과를 종종 뽑아내곤 한다는 것을.
그러한 연구를 통해 데드라이즈 군단 전체를 혼자서 거꾸러뜨렸다는 사실마저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어쩌면 견뢰의 재능이 유사 이래 존재하지 않았던 수준의 것일지도 모르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몇 번이고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 영혼 밑바닥을 잠식하는 섬뜩함은 분명-
“그만한 수준의 낙뢰술식을 갖고도, 만족하지 못해서 다른 방법을 실험하고 있는 건가…….”
미스트라가 굳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욕심이 과해도 정도가 있지…… 그런 식으로 술식을 다루다간 온몸이 터져서 죽을 거야.”
“흑마법은 모든 마법체계를 통틀어 가장 이질적인 개념을 다루는 음의 술식이지.”
천천히 손을 거둔 레녹이 말했다.
“적성이 없다면 다룰 수도 없지만, 그만큼 다른 마법체계로는 간섭할 수 없는 개념이나 영역을 다루는데 특화된 부분이 있다.”
“…….”
“토벌전에서 군단장을 몇 명 죽여 보면서 죽음의 성질변화에 흥미가 생겼거든. 그래서 편법으로라도 즉사술식을 구현할 수단을 찾고 있었는데…….”
우우우웅……!!
레녹이 느릿하게 손을 뻗는 것과 동시에, 그의 뒤에서 튀어나온 악마거인의 팔뚝이 같이 회전했다.
검게 물든 악마같은 손아귀가 레녹의 동작에 맞춰 동조하고 의지를 대행하는 듯한 기괴한 광경.
그 모습을 바라보며 힐끗 시선을 돌린 레녹이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결과물이 너무 과하게 뽑힌 것 같군.”
“…….”
철썩……!!!
파도가 밀려오는 해안가를 따라, 숨이 끊어진 물고기들이 줄지어 떠밀려온다.
시들어 축 늘어진 해초와, 혀를 빼물고 죽은 어패류. 변색되어 검게 물든 문어를 비롯한 온갖 해상생물.
밀려오는 파도의 숫자가 늘어날 때마다, 작은 물고기가 아니라 덩치가 큰 생물이나 시체들도 줄지어 떠밀려 온다.
레녹이 방금 터트린 즉사술식의 반동으로 인해, 인근 해역 전체가 영향을 받으며 인근의 생물들이 대규모로 죽어버린 것.
할 말을 잃어버린 듯 해안선을 바라보는 제니를 뒤로하고 느릿하게 손을 쥐었다 편 레녹이 중얼거렸다.
“상정대로라면 이렇게 여파가 클 술식이 아닌데…… 뭔가 계산이 잘못된 것 같다. 아무래도 실패라고 봐야겠지.”
“……이게 실패해서 나올 수 있는 위력이 맞는 거야?”
흑마법은 모든 마법체계를 통틀어 가장 이질적인 음의 마법.
그렇기에 기존 마법체계로는 다루기 힘든 ‘죽음’의 개념조차 흑마법을 통해서라면 어느 정도 간섭하는 것이 가능하다.
물론 그 정도로 강력한 성질변화를 당장 레녹이 지닌 흑마법의 성취만으로 완벽하게 구현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레녹이 명에게서 계승 받은 악마거인의 보조를 받는다면 일시적으로나마 그런 기적을 흉내 낼 수는 있었던 바.
가가메온의 전함 앞에서 만난 죽지 않는 괴물에게, 레녹은 죽음을 강제로 부여하는 술식을 사용해 마무리를 지어버렸던 것이다.
천천히 흑마력을 갈무리한 레녹이 생각에 잠겼다.
‘예상보다 훨씬 더 통제가 안된다. 소질과는 별개로 내 감각에 맞는 조정이 필요한 건가.’
견뢰의 신분으로 흑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악마거인을 계승 받은 것이 견뢰의 신분이었기 때문.
당장 레녹이 지닌 흑마법의 성취로는 악마거인의 보조 없이 고위 흑마법을 뽑아내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관문에서 명에게 전해 받은 흑마법의 분기점. 발칸에서 거둬 들인 악마거인의 술식보조. 레녹 자신이 지닌 마법의 재능.
여러가지 기연과 가능성을 조합해 어떻게든 운용이 가능한 수준까지 흑마법의 성취를 강제로 끌어올리긴 했지만, 이것조차 명이 보여주었던 가비행에 비하면 한없이 미약한 수준에 불과했으니.
몸에 맞지 않는 힘을 레녹의 재능을 이용해 억지로 휘두르고 있는 것에 가까웠지만, 레녹은 실망하지 않았다.
그간 레녹이 손에 넣은 모든 능력이나 술식이 처음부터 레녹 자신과 잘 맞았던 것은 아니니까.
꾸준한 연구와 수련을 통해 노력하다보면 언젠가 명이 바라보던 곳까지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명은 레녹의 바로 그러한 면모를 믿고 자신의 가능성을 넘겨주었던 것이니까.
“저걸 쓰러뜨린 시점에서 더 이상의 장애물은 없는 듯하군.”
악마거인의 팔뚝을 손짓 한번으로 역소환시킨 레녹이 시선을 돌렸다.
“들어가자. 방주 안에서 흔적을 조사하다보면 무언가 발견할 수 있겠지.”
“아니, X발…… 그딴 술식을 갖고 있으면 조사고 나발이고 필요도 없는 것 아니냐?”
“유감이지만 이 술식은 짧은 시간 안에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페이샤의 황망한 듯한 말에 레녹이 태연하게 답했다.
“여러 권능과 이능을 조합해 특정한 형태로 조정한 힘이라서, 한번 사용하고 나면 다방면으로 무리가 가거든.”
“…….”
“지금 같은 위력으로 사용하려면 최소한 반나절 정도는 유예를 두어야겠지.”
의사권능과 흑마법을 기반으로 삼아 죽음의 성질변화를 다뤄내는 즉사술식.
본래 다룰 수 없는 개념을 다루는만큼, 즉사술식을 성립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제약을 걸어두었다.
한번 사용한 뒤에는 오랫동안 사용할 수 없다든가, 한 번에 하나의 대상을 상대로만 사용할 수 있다든가.
술식 자체를 존재하게 만들기 위해, 레녹이 평소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기아스나 제약을 이것저것 걸어둔 상황.
“아니, 애초에 그만한 수준의 흑마법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미스트라가 황당한 표정으로 무언가 말하려다, 이내 포기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제 와서 뭐가 놀랄 일이겠어. 회담이 그런 식으로 끝났을 때 이미 알고 있었는데.”
“…….”
“보아하니 다른 두 사람은 이런 일에 뭔가 굉장히…… 익숙한 것 같고.”
벌레라도 씹은 듯 표정을 구긴 페이샤와 쓴웃음을 지은 제니를 번갈아 본 미스트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번 일에 끼어들게 된 내가 불청객이었던 거 맞지? 얌전히 방주 안쪽으로 안내나 할게.”
“회담에서도 느꼈지만 꼭 쓸데없는 말을 한마디씩 덧붙이는 버릇이 있군.”
지팡이를 짚고 걸음을 뗀 레녹이 미스트라를 힐끗 돌아보았다.
“오지랖을 부리다가 매를 벌어놓고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뼈아픈 조언 고맙네.”
반박하지 못한 미스트라가 쓰게 웃으며 걸음을 돌렸다.
“올라가자. 갑판 쪽으로 가면 아마 함선 내부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을 거야.”
해안선을 따라 기울어진 초대형 함선의 좌현 갑판 쪽을 향해 나아간다.
뒤에서 페이샤의 호위를 받으며 걷고 있던 제니가 몰래 속삭였다.
“귀희. 반이 너희랑 일할 때는 원래 저렇게 날카로워?”
“뭐?”
제니의 말을 듣고 멈칫한 페이샤가 이내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무난한 것 같은데. 평소보다 살짝 기분이 나빠 보이긴 하는군.”
“……무난하다고?”
“진짜 거슬린다고 느꼈다면 미스트라는 이미 피떡이 되어 있었을 거다. 실제로 회담에서 비슷한 일이 한번 있었을걸?”
할 말을 잃은 제니를 두고 페이샤가 조소했다.
“저 귀쟁이가 한동안 원로원에 질질 끌려다닌 것도 사실상 그 때문이었겠지.”
“…….”
“뭐, 네가 딱히 알 필요는 없는 사실이다. 애초에 저 놈은 자기 발끝에도 못 미치는 얼간이들에게 이상할 정도로 관대한 경향이-”
“페이샤.”
레녹의 목소리가 들리기가 무섭게 페이샤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페이샤를 돌아본 레녹이 고개를 까닥였다.
“갑판 안쪽의 통로가 무너져서 일렬로 통과해야겠군. 네가 후열을 맡아라.”
“마,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 내가 그딴 것까지 명령을 받아야 하는 줄 아는 거냐!”
다행히 두 사람의 대화가 들리지 않은 건가.
자기도 모르게 안심한 페이샤가 외려 역정을 냈지만, 레녹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직 살아남은 변이체 중에서 따라오는 놈이 있을 수도 있어. 알아서 처리해라.”
“알았다니까. X발, 그딴 이야기를 하려고 사람 놀라게-”
“제니에게 내 험담은 적당히 하고.”
“…….”
꿀먹은 벙어리가 된 페이샤가 얌전히 일행의 뒤를 따라 걸었다.
기울어진 갑판을 타고, 잔뜩 파손되어 무너져 내린 방주의 통로 쪽으로 내려섰다.
어둠에 잠긴 통로 앞에 선 레녹이 제니를 향해 힐끗 시선을 돌렸다.
“제니.”
“응. 아무래도 이곳이 맞는 것 같아.”
우우우웅……!!
제니의 손안에 펼쳐진 푸른 빛의 마법진이 조금 더 빠르게 순환하고 있다.
우로보로스 마법진이 제니를 중심으로 순환하며, 강해지는 마력입자 붕괴현상을 무위로 돌리고 있는 결과.
사방으로 복잡하게 미로처럼 펼쳐진 통로를 바라보던 제니가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갈수록 붕괴선 강도가 강해지고 있어.”
“그래. 내게도 보인다.”
치직, 치지지지직-
타락한 황금률을 사용해 통로를 들여다보는 매 순간마다, 레녹의 눈앞에 노이즈가 일렁인다.
의사권능을 사용하자마자 시야가 노이즈로 뒤덮여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지는 광경.
마치, 이 거대한 방주 전체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노이즈로 덮여 무너져 내리는 듯한.
“……주변을 조심해.”
앞장서서 어둠에 잠긴 통로를 걷던 미스트라가 속삭였다.
“방주 안에도 가가메온의 피를 마신 변이체가 잔뜩 있을 거야. 이쪽을 눈치챘다면 반응하지 않을 리가 없-”
“크워어어어!!!!”
철퍽!!
미스트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통로 한쪽에서 변이체 무리가 우르르 뛰쳐나왔다.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을 까뒤집은 채, 온몸에서 칼날같은 비늘이 돋아난 기괴하기 그지없는 형상.
“온다!!”
손가락 끝까지 검(劍)처럼 날카롭게 다듬어진 비늘과 이빨을 두르고 통로 사방에서 달려든다.
우로보로스를 사용하는 제니와, 의사권능을 돌리는 레녹을 보호하듯 페이샤와 미스트라가 앞뒤로 마력을 끌어올리고.
어둠에 잠긴 통로 저편에서 달려드는 변이체들과 동시에 충돌하려던 그 순간.
[죽어라.]우당탕탕!!!!
속삭임이 울려 퍼지는 것과 동시에 수십 마리 변이체들이 제 자리에 머리를 처박고 고꾸라졌다.
요란하게 통로 사이를 나뒹굴며 튕기듯이 벽에 처박혀, 그 자리에서 완전히 숨이 끊어진 모습.
후욱-
어둠 속에서 악마거인의 손이 부드럽게 일렁일 때마다, 방주 안에 죽음이 내려앉았다.
천장을 기며 일행을 향해 떨어지려던 괴물들이 힘을 잃고 축 늘어져 매달린다.
툭, 투두둑……!!
통로 격벽 사이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변이체들이 딱딱하게 굳은 채 죽어간다.
쩌적, 쩌적……!!
물밀듯이 밀려오던 칼날이 돋아난 괴물들이 파도처럼 쓰려지며 연달아 진동을 퍼뜨렸다.
쿵!!
뚜두두둑!!!
방주 안에 도사리고 있던 수백에 달하는 변이체들이 손도 쓰지 못하고 인형처럼 쓰러지고.
어둠 속에서 느릿하게 손짓하던 악마 거인의 팔뚝이 마침내 모습을 감춘 뒤에야.
기울어진 방주의 통로 안쪽에 얼어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
직전에 펼쳐졌던 습격이 순간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기묘한 정적.
변이체들과 붙으려는 자세 그대로 멈춰있던 미스트라가, 그제야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주 내부의 움직이는 모든 것을 멈춰버린 마법사가 태연한 안색으로 옷깃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 아까 내가 이상한 헛소리를 들은 게 아니라면 말인데.”
미스트라가 물었다.
“한번 사용하고 나면 당분간은 사용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
“아무래도 이 방주 근처의 시공간 자체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군.”
레녹이 어둠에 잠긴 통로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본래 이런 식으로는 흑마법을 사용할 수 없을 텐데, 어째서인지 내가 걸어둔 제약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계속해서 술식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
“이 방주 안에서만 가능한 기적인지, 상황이 우연히 맞아떨어진 결과인지 잘 모르겠군…….”
타락한 황금률과 흑마법을 조합해 만든 즉사술식은 레녹조차도 극도로 신중하게 사용해야 하는 즉사기.
한번 사용하면 반나절 넘게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한 번에 하나의 대상을 상대로만 사용 가능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아까 해안선에서 처음 사용했을 때 느꼈던 것처럼, 현재 레녹이 사용하는 흑마법의 위력이 비현실적으로 강해져 있는 상황.
당장 레녹이 지닌 흑마법의 성취로는 절대 불가능한, 명 정도 되는 흑마법사여야 가능한 기적의 난사나 다름없다.
단순히 이 방주 안에서만 우연찮게 일어난 일인지, 무언가 다른 변인이 존재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했다.
“그걸 알기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가 진입한 방주 내부의 상태에 대해 알아야 할 것 같은데.”
기울어진 통로 아래쪽에 고여 있는 피웅덩이를 밟은 레녹이 말했다.
“미스트라. 내전이 끝난 당시 방주가 어떤 식으로 방치되어 있었는지 설명해 줄 수 있겠나?”
“그걸 설명하려면 이 방주가 어떤 식으로 이곳에 추락했는지를 알아야 해.”
미스트라가 피웅덩이를 건너 걸으면서 말했다.
“가가메온의 방주는 내전 당시에도 독보적인 규모라서 어떤 전략병기도 상대가 되지 못했거든. 그래서 카이세 측에서도 전쟁 내내 방주의 움직임을 극도로 신경 써 왔지.”
“…….”
“가가메온이 직접 지휘하는 방주를 상대하는 것도 문제지만, 만에 하나 승리한다 해도 문제였고. 이만한 중량의 전쟁병기가 도시 한복판에 기능을 잃고 추락한다고 생각해 봐. 지상에 세워진 문명이 남아나겠어?”
“그래서?”
“내전의 끝까지 방주와 정면승부를 피하고 도시 바깥으로 끌어낸 다음에, 카이세의 가장 강력한 검을 방주에 투입했지.”
미스트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최전성기의 에단 바쥬르 본인을 말이야.”
“…….”
“방주 내에 존재하는 혈맹의 전력을 혼자 학살하고, 가가메온과 일대일 결전을 벌인 끝에 이 해안선에 방주를 처박았지. 그 결과가 바로…….”
통로 너머로 펼쳐진 방주의 내부를 바라보며 미스트라가 말했다.
“지금 이 풍경이라는 거야.”
휘오오오오!!!!
해안선을 따라 바람이 불어오고 무너진 방주의 틈새로 해풍이 밀려들어온다.
그 바람을 따라 통로 천장과 벽면 사이에 ‘떠 있는’ 잔해물과 파편이 도미노처럼 흔들렸다.
전장 수천미터에 이르는 비현실적인 규모의 방주. 그 통로 내부에 펼쳐진 으스러지고 무너진 복도 층계.
그 사이로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부서진 잔해물이 허공에 떠올라 그대로 멈춰 있었다.
“이건…….”
“에단 바쥬르가 가가메온과 일대일로 싸우면서 [시해검]을 선체에 흩뿌린 결과라는 거지.”
허공에 멈춰 선 파이프 파편을 건드린 미스트라가 말했다.
“부활자가 가가메온과 전함 위에서 충돌했고, 그 잔향이 아직까지 남아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는 거야.”
“…….”
“다담께서 말씀하신 승천유적이 정말 이 방주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현상 자체가 분명-”
“아니.”
“뭐?”
“이 방주 근처에 상고시대의 승천유적이 존재하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레녹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기적에 기반해 만들어진 유적인지도 이제 알 것 같군.”
입자붕괴현상으로 인해 무너지고 왜곡되어가는 통로의 풍경.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의사권능을 통해서만 방주 전체를 뒤덮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노이즈].
하지만 레녹은 통로 너머 일렁이는 노이즈가 입자붕괴나 에단의 능력으로 인한 현상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만약, 지금 레녹이 사용하는 흑마법의 출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려주는 현상이 노이즈에 기반한 결과라면.
방주 전체를 뒤덮은 이 노이즈의 존재에 대해, 제국 황성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금제를 걸어두었다면.
유사의 월식을 위해 준비되었다는 승천유적이, 레녹이 알고 있는 어떤 법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세계를 ‘초월’한 기적이라면.
치직, 치지직……!!
그것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검은 반지가 어둠게 맥동한다.
쿤다라에서 손에 넣은 반궁의 만다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어느 초월적인 기적의 공명.
“이미 9레벨에 오른 다담이 어째서 이 유적을 찾고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허공에 넘실거리는 노이즈를 어루만진 레녹이 중얼거렸다.
“황성이 감춰놓은 승천유적이란…… 세계 10법과 관련되어 있는 물건이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