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39
약먹는 천재마법사 1339화(1339/1341)
약먹는 천재마법사 1339화
설계된 초월성(17)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도중 카이세와 황성 사이에 있었던 모종의 거래.
발칸에 방문했던 좌승상 유성이 카이세를 위해 발굴해둔 상고시대의 승천유적.
그 목적이 카이세의 승천을 위한 유사의 월식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설마 승천유적의 존재 자체가 세계 10법과 관련이 있는 물건이었을 줄이야.
“…….”
초월계통 고유마법 세계 10법.
카바힘에서 위신권역 만다라를 얻은 순간 그 안에 보관된 개념만을 확인할 수 있던.
마법의 기원과 구조 자체가 노이즈로 뒤덮여 정체와 근원을 알 수 없는 초월의 술식.
어쩌면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10레벨]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르는 유일무이한 개념.
확실히, 그만한 힘이 발칸에 숨겨져 있었다면 다담이 직접 걸음을 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언젠가 이런 식으로 연이 닿을 거란 사실조차 다담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세계 10법과 관련된 유적을 황성이 카이세 측에게 넘겨주려 했다…….’
유성이라는 자는 이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아니, 모를 리가 없었겠지.
제국의 좌승상 정도 존재가 그 진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카이세에게 그것을 넘겨주었을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만큼 제국 황성에서 카이세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했음이 분명하다고 보아야겠지.
발칸의 승천유적을 전해 카이세의 승천을 꾀하면서까지 황성이 프로젝트에 개입하려 했음을.
프로젝트의 실패를 통해 아르스노바의 멸망을 자처했던 시도가 그만큼 황성에게도 중대한 것이었음을.
“반……?”
한참 동안 무너진 복도 바닥을 쓸어보는 레녹의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진 것일까.
머뭇거리며 이름을 불러오는 제니의 목소리에 눈을 뜬 레녹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니. 이곳의 환경은 어떻지? 아직 더 버틸 수 있겠나?”
“……내 몸에 대한 이야기라면, 멀쩡해. 억지로 버티고 있는 느낌은 전혀 아니야.”
제니가 힐끗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우로보로스는 모든 상황에서 상호보완이 가능한 힘이니까. 이런 극한의 환경에서도 거의 마력을 소모하지 않고 유지할 수 있어. 애초에 그걸 위해서 내게 마법을 가르쳐 준 거잖아?”
“다행이군.”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위험한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억지로 제니를 데려 온 것이 아니다.
우로보로스를 운용하는 이상 대부분의 상황에서 제니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
“그럼 이 앞으로 조금 더 깊숙하게 들어가봐야겠다. 아무래도 다담이 언급한 승천유적이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한 힘인 것 같군.”
“…….”
“단순하게 조사만 마치고 나오려고 했지만…… 어쩌면 이 자리에서 바로 회수하거나 파괴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키이이잉-
느릿하게 마력을 끌어올리며 컨디션을 점검한 레녹이 힐끗 시선을 돌렸다.
“제니. 우로보로스를 돌리면서 지금처럼 방향을 잡아줘. 아마 머지 않았을 거다.”
“그래, 나도 어렴풋이 느껴져.”
푸른 빛의 삼각형을 손 안에 띄워 올린 제니가 천천히 그것을 앞으로 뻗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방주 내부에서 입자붕괴가 극도로 심해지다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공백지대가 있어. 아마 그쪽이 반이 원하는 목적지겠지.”
“…….”
“미스트라. 방향을 알려줄 테니까 당신이 길을 잡아. 알고 있지?”
“조금 기억이 헷갈리기는 하는데…… 아까처럼 이상한 괴물들이 달려들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 없어.”
“그 부분에 대해선 걱정하지 마라.”
레녹이 손을 까닥이는 것과 동시에, 미스트라의 앞에 거대한 악마의 팔뚝이 드리워졌다.
“이 근처에 움직이는 건 이미 거의 다 죽였으니까. 원한다면 네 바로 옆에 붙여서 호위해 주지.”
“미안한데 그게 내 옆에 붙어 있으면 기억나려던 길도 다 잊어버릴 것 같거든?”
쿠구구구구!!!
반파된 가가메온의 방주 내부를 더듬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사지가 잘린 채로 쓰러져 있거나 피를 쏟아내는 시체들이 격납고와 창고 사이에 널브러져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마다 검흔이 새겨져 있고, 할퀴고 지나간 것처럼 베여나간 파편이 너저분하다.
통로 바닥과 벽면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는 무수한 병장기들과, 그 위에 꿰여 죽어 매달린 군인들의 모습.
발칸 내전 당시 최후 결전에서 사망한 채 이곳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던 전장.
그 전함의 최심부에 펼쳐진, 모든 것이 둥글게 압착되어 짓눌리고 찌그러진 크레이터의 잔상.
“이건…….”
쿠오오오오!!!
직경 수백 미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크레이터가 전함의 최심부를 모조리 짓뭉개고 있다.
크레이터 벽면 사이에 새겨진 균열과 검흔이 흉험한 살기를 내뿜으며 공간을 저릿하게 울린다.
지켜보는 것만으로 이곳에서 있었던 격전을 어렴풋이 실감할 수 있을듯한 무겁고 숨이 막히는 공기.
오래전에 이 전장에 운석에 준하는 힘이 충돌해 떨어졌던 것처럼-
“내전에서 패배한 가가메온이 최후의 결전을 벌였던 장소.”
크레이터 아래쪽을 내려다보던 미스트라가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길레온과 천둔을 상대한 가가메온이 선 채로 사망했다던 그곳이야.”
“…….”
“굉장히…… 오랜만이네. 나도 당시에는 이미 내전에서 빠져 있어서, 전쟁이 끝난 뒤로 이곳에 오는 건 처음이거든.”
느린 걸음으로 크레이터 바깥을 따라 걸으며 미스트라가 중얼거렸다.
“사실, 내전이 끝난 다음에도 가가메온이 죽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어. 그는 당시 내전의 참가자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강한 초월자였으니까. 왜 승천자가 아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
“그래서 그가 에단 바쥬르와 승부를 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그만큼 놀랐던 걸지도 몰라. 귀희. 하지만 너는 당시에도 이미 알고 있었겠지?”
미스트라가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는 페이샤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에단 바쥬르가 어떤 수준에 도달해 있었는지, 알고 있으니까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겠지. 그래서 그때도 우리를 그렇게나 비웃어댈 수 있었을 거야.”
“뭐, 내전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은 년놈들 정도는 기억하고 있긴 하지.”
창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걷던 페이샤가 냉소했다.
“아나테마에게 붙었던 귀쟁이 네놈이나, 양쪽 편에 붙었던 슬레인, 머리통을 터트리고 싶은 올리닉…… 이미 끝난 전쟁이었어. 그 뒤의 일은 이 도시의 모든 것을 그분의 손안에 쥐여드리는 과정이었을 뿐이야.”
“…….”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가가메온 그 괴물 새끼가 승천유적이란 걸 방주 근처에 숨겨두고 있을 줄은 몰랐군…… 길레온은 대체 뭘 했길래 몰랐던 거야?”
“네가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마일로즈는 이때 가가메온을 죽이는 결전에 참가했다 빈사상태가 됐었잖아.”
미스트라가 황당한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듣기론 당시에도 지병 때문에 움직이지 못했다가, 마지막 결전에서 마일로즈의 능력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나섰다고 들었는데.”
“…….”
“얼마 전에 쿤다라의 승천자와 격돌한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한때 같은 동료치곤 너무 무신경한 거 아니야?”
“……아니.”
비웃는 표정을 짓고 있던 페이샤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먼 곳을 바라보듯 변했다.
“길레온이 전장에 나섰다면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의 의지였을거다. 놈은 원하는 전장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으니까.”
“…….”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나름대로 마무리를 지으려 했다면 그걸로 됐어. 나 역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페이샤가 중얼거렸다.
“살아 있다면 어디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너. 회담에서 봤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네. 이런 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
“X발, 뒤지고 싶은 거냐? 재수없게 견뢰 놈이랑 똑같은 소리를……!!”
“추억 회상은 그쯤하고 슬슬 내려오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창을 들어올리던 페이샤가 레녹의 목소리에 움찔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거대한 크레이터 아래쪽으로 내려간 레녹이 혼자 으스러진 지면 위를 걷고 있었다.
무겁게 짓눌린 공기 사이를 홀로 걸으면서 크레이터의 중심부를 향해 다가서는 레녹의 모습.
그 시선은 크레이터 정 중앙에 비스듬히 꽂혀 있는 거대한 창 한 자루를 향하고 있었다.
쿠웅!!
주인을 알 수 없는 피를 흠뻑 뒤집어 쓴 채, 날이 마모되고 짓뭉개져 땅에 박혀 있는 낡은 창대.
오랫동안 누군가의 손을 탄 것처럼 마모된 창대 위로, 낡은 천과 옷가지가 걸려 깃발처럼 흩날린다.
“이 창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굉장히 독특하군.”
레녹이 말했다.
“초월적인 무구나 아티팩트라기보다는, 애초에 물질계에서 만들어진 물건 같지가 않다. 오히려 따지자면…….”
판데모니엄의 아그네타처럼 묘하게 이물감이나 위화감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이제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종족의 무구. 고대종이 사용하던 병기의 일종인가.
그 연원을 알 수 없는 기시감에 레녹이 고민하는 사이 따라 내려온 미스트라가 말했다.
“가가메온이 사용하던 창이야. 내전에선 아마 추학(錐虐)이라는 이름이었을걸.”
“…….”
“가가메온의 힘을 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신기로 알려져 있는데, 고대종의 피를 이은 존재만 다룰 수 있는 무기라 누구도 손을 대지 못했어. 이곳에 남겨져 있던 것도 그런 이유겠지.”
“듣고 보니 여기에는 가가메온의 시체가 남아 있지 않네.”
미스트라의 말을 듣고 시선을 돌린 제니가 말했다.
“그가 사망한 곳에 무기만 있고 주검이 없어…… 누군가 가가메온의 시체를 가져간 건가?”
이곳에서 가가메온이 선 채로 죽었다면 분명 그 시체나 주검 일부가 남아 있어야 정상일 터.
하지만 이 크레이터 주변에는 가가메온의 주검은 커녕 살점이나 혈흔조차 남아 있지 않다.
“모르겠어. 내전이 끝난 직후 가가메온의 시체는 손댈 수도 없을 만큼 ‘격이 높아져’ 있었다고 들었거든.”
미스트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애초에 누군가가 가져가거나 회수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들었는데, 어느 새부턴가 소실되어 버렸다고 하더라.”
“사투 끝에 죽어서도 격이 높아질 정도의 대전사라.”
레녹이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그만한 초월자의 시체라면 분명 누구든 탐을 냈겠지만…….”
가가메온은 대륙 전역에서 극히 희귀하다는 고대종의 피를 이은 초월자.
많은 곳을 돌아본 레녹조차 고대종 출신은 아그네타를 비롯한 두셋밖에 본 적이 없을 만큼 희귀한 존재다.
그렇기에 그가 남들보다 먼저 상고시대의 승천유적을 힘으로 삼으려 했다면 납득할 수 없는 일은 아니다.
고대종의 혼혈인 만큼, 상고시대의 유적을 다룰 방법이나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만한 초월자가 목숨을 건 사투 끝에 죽었다면 그 주검을 탐내는 이가 존재하는 것도 일견 당연했다.
“군단 측에선 아는 게 없나? 따지자면 가가메온을 죽이는데 일조한 데드라이즈에서 그 소재를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하루 종일 내 말은 무시하더니, 이제와서 나한테 쳐묻는거냐.”
사방에서 돌아보는 시선을 느낀 페이샤가 짜증을 냈다.
“난 몰라. 그때 있던 싸움 이후로 가가메온에 대해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다고. 애초에 그럴만한 여유가 군단에 있었을 것 같냐?”
“…….”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전이 카이세의 승리로 끝나는 것과 동시에, 프로젝트가 실패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는 걸 레녹 역시 이제는 알고 있었으니까.
당시 카이세와 에단 사이에 존재했던 갈등을 생각하면 데드라이즈 내부에서 가가메온의 시체에 대해 거의 신경 쓰지 못했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겠지.
다만, 그럼에도 한 가지 거슬리는 점이 있다고 한다면…….
“가가메온이 내전에서 패배하기 전 승천유적을 통해 상황을 뒤집어보려했음은 분명하다. 이 필요 이상으로 거대한 방주 역시 승천유적을 이용하려는 시도의 일환이었을지도 모르지.”
레녹이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정작 방주와 유적은 근처에 남아 있는데, 가가메온의 시체는 보이지 않는다…… 이게 단순히 우연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것 같군.”
“……”
가가메온의 방주가 버려진 이 해안가는 원로원이 직접 관리하고 있는 도시 바깥의 금구.
그렇다면 누가 가가메온의 시체를 회수하여 손에 넣었는지 정도는 원로원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가가메온이 사후 어떻게 되었는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보다 먼저 할 일이 있군.”
그렇게 말한 레녹이 크레이터의 중심에 꽂힌 거대한 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 해안선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승천유적이 어떻게 생겼는지라도 먼저 확인을 해야겠다.”
“아니, 잠깐만. 견뢰.”
미스트라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애초에 고대종의 후예만이 다룰 수 있는 물건이라니까. 평범한 인간이 허락도 없이 만지면-!!!”
촤아아아악!!!!
대답할 시간은 없었다.
레녹이 낡은 창대를 움켜쥔 순간, 창의 표면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한 눈동자가 떠오르고.
마모된 창날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이 돋아나는 것과 동시에 기괴한 비명을 내질렀다.
[끼야아아아아악!!!!!]가만히 듣고 있는 것만으로 고막을 긁고 찢어버리려는 듯한 섬뜩한 포효.
창대와 창날에서 돋아난 무수한 이빨이 엄청난 속도로 레녹의 몸을 뒤덮고 갉아먹었다.
카가가가가가각!!!!!
“……!!!”
그 자리에서 레녹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듯한 우악스러운 창의 움직임.
냉병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짐승처럼 자신의 몸에 손을 댄 살덩어리를 씹어 삼키려 한다.
지켜보던 제니의 안색이 살짝 굳고, 페이샤가 표정을 찌푸린 사이 미스트라가 움직였다.
“뭐해, 빨리 멈춰야지!! 너희 탑주가 산 채로 잡아먹히는 거 보고 싶어?”
“……아니, 그렇지는 않은데.”
“내버려 둬, 귀쟁이.”
제니가 뺨을 긁적이고, 페이샤가 퉁명스레 말했다.
“회담에서 한번 두들겨 맞아보고도 모르는 거냐? 가만히 있으면 놈이 다 알아서 할 거다.”
“뭐어?”
“내전에서 날고 기던 천재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괴물이다. 네놈처럼 아무 생각 없이 움직였을 리가 없지.”
날카로운 이빨에 온몸이 뒤덮인 레녹을 바라보는 페이샤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이미 진작에 방법을 찾았을 거다.”
“찾았다.”
철컥!!
이빨에 뒤덮인 레녹의 머리 쪽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울리고, 직후 날카로운 충돌음이 겹쳐졌다.
동시에 레녹의 몸을 우악스럽게 집어삼키려던 거대한 창날이 기계처럼 제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미스트라가 기겁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뭐, 뭘 하려는 건데…….”
“위험한 일을 하려던 건 아니다.”
레녹이 어렵지 않게 이빨을 드러낸 창 밖으로 빠져나오며 말했다.
“다만 가가메온이 이 기괴할 정도로 거대한 방주를 어떻게 통솔했을까 생각해 봤을 뿐이지.”
“뭐?”
“전장 수천 미터 섬에 비견되는 크기의 기함이다. 이 정도 크기라면 하나의 조종실이나 통제실에서 기함을 온전히 컨트롤한다는 건 불가능해.”
레녹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제대로 통제할 수 없더라도, 이 전함의 모든 권한에 우선하는 마스터키는 반드시 가가메온 본인의 손에 쥐어져 있어야 했겠지. 그렇다면 자신 말고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무기를 열쇠로 삼지 않았겠나?”
“그건…….”
“내전의 마지막 결전에서 가가메온이 승천유적을 사용하려 했고, 그것을 지키면서 싸웠다는 건 분명하겠지.”
쿠구구구구……!!!
느릿하게 요동치는 전함의 잔해물 위에 선 레녹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곳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오직 가가메온 본인이 마지막까지 쥐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을 거다.”
콰과과과과과!!!!
무너지고 반파된 전함의 파편과 시설이 요동치며 뒤집히고 이동한다.
짓뭉개진 크레이터의 지면이 위로 솟구치면서 천장이 열리고 격벽을 개방했다.
용골이 양쪽으로 갈라지고, 거대한 선체가 쪼개지듯 분해되어 회전하기 시작한 순간.
방주 안쪽에 숨겨져 있던 부유섬의 풍경이 수면 위로 부상하듯 레녹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방주를 구성하는 부품과 시설의 정체는 외피. 그 진가는 방주 내부에 숨겨진 섬을 감추기 위한 물건이었나.
가가메온의 방주가 이상할 정도로 거대했던 것은, 말 그대로 그 안에 또 다른 진짜 섬을 숨기기 위해서였던 것.
오오오오!!!!!
분해된 방주의 잔해물 위로 떠오른 거대한 섬이 해수면 위를 따라 느릿하게 부유하기 시작한다.
소용돌이치는 해류의 중심. 작은 섬이 무리를 모여 군락을 갖춘 어느 이름 모를 유적지의 형상.
그 위로 마치 한낮의 하늘 아래 서 있는 것처럼 환한 빛이 내려오며 유적지를 밝히고 있었다.
파아아아앗……!!!
한때는 이곳에 거대한 신전이 존재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오래된 돌과 석재들이 널브러진 모습.
종족을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형상의 거대한 조각상이 사방에서 인간들을 내려다보는 풍경.
그 중심부에 위치한, 깊은 보랏빛의 광채를 품고 있는 투명한 [거울]의 존재.
바라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추측이 틀리지 않았던 것 같군.”
천천히 목을 주무른 레녹이 말했다.
“승천유적을 찾아낸 것 같다.”
“……거울이라.”
우로보로스를 펼친 채 유심히 섬을 바라보던 제니가 중얼거렸다.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아. 거울 자체는 유적이 아니라 매개체나 촉매일수도 있겠어.”
“거울이 아니라 저 섬 전체가 승천유적인 거 아니야? 그러니까 가가메온도 방주에 섬 전체를 뜯어다 보관해 뒀겠지.”
“섬 전체의 공간이 이계에 가깝게 뒤틀려 있다. 견뢰 놈의 말대로 탐사를 하려면-”
“아니.”
하지만 레녹의 시선은 거대한 섬 중심부에 위치한 거울에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느낄 수 있다. 저건 애초에 평범한 거울 따위가 아니야. 저건…….”
아무것도 품지 않았기에 반대로 모든 것을 투명하게 비춘다.
유적을 찾기 위해 대폭 끌어올렸던 레녹의 마력이, 저편의 거울과 동조하고 있다.
동시에 거울의 형상에 황금빛의 광채가 뒤섞이며 왜곡되고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레녹이 마력을 움직이는 순간마다 그것은 마치-
만화경과 같은 형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