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40
약먹는 천재마법사 1340화(1340/1341)
약먹는 천재마법사 1340화
설계된 초월성(18)
“아니, 이건 말이 안 되잖아.”
가가메온의 방주가 회전하듯 갈라지며, 그 안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부유섬.
섬의 중심부에 위치한 유적지를 향해 걷는 레녹의 뒤에서 미스트라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고대종도 아니면서 어떻게 가가메온의 창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건데? 애초에 그거 조작법은 어떻게 알았어?”
“…….”
“원로원이랑 짜고 지금 날 속이는 거 아니야? 손짓 몇 번으로 유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면 누가 그 고생을-”
“쫑알쫑알 시끄럽기 그지없군…….”
페이샤가 짜증스레 미스트라를 노려보았다.
“이렇게 될 거라고 말해줬잖아. 아가리 닥치고 얌전히 움직여.”
“아니, 그러니까 납득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해-”
“저 미친놈이 너 같은 허접 귀쟁이 따위를 속이기 위해 수작을 부릴 것 같냐?”
“하, 뭐래 진짜. 너야말로 아까부터 자꾸 견뢰를 욕하면서 엄청나게 고평가를-”
“아가리 안 다물어?!”
“상고시대의 유적지라는 말은 들었지만 생각보다는 좀 형태가 다르게 생겼네.”
시끄럽게 다투는 페이샤와 미스트라를 뒤로하고 제니가 레녹의 곁에 섰다.
오오오오……!!
방주의 시설 전체가 회전하며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부유섬의 풍경.
수면 위로 떠오른 거대한 섬 위에 세워진, 오래되어 낡은 채 무너진 유적도시의 형상.
마치 오래되어 멸망한 고대의 도시와도 같은 섬 앞에 내려선 제니가 고개를 기울였다.
“신단이나 제단 같은 형태를 생각했는데, 그것보단 오히려 고분이나 모형도시에 가까워 보이는걸. 규모가 너무 큰 거 아니야?”
“가가메온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이 유적지를 통째로 손에 넣으려고 이만한 크기의 방주를 설계했던 것이겠지.”
레녹이 걸음을 옮겼다.
“아마 그는 내전이 시작되기 전에도 이 승천유적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거다. 내전 당시 이미 방주를 운용하고 있었다면 그래야만 시기가 맞기도 하고.”
“고대종의 혼혈이라 상고시대의 유적에 대해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황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유적에 대해 알게 되었다면, 내전 당시 카이세와 갈등이 격화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겠지. 당시 있던 일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린 레녹이 중얼거렸다.
“중요한 건 승천유적의 중심에 위치한 저 [거울]의 존재다.”
쿠오오오오……!!!
황금빛과 보랏빛이 뒤섞여 어우러지는 유적지의 중심에 떠오른 거대한 거울의 형상.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그 거울 너머로는 투명한 유리색 광채만이 가득 담겨 있을 뿐이다.
저것이 바로 상고시대부터 존재했다는 승천유적의 핵심. 이른바 ‘승천의 자격’을 내려받기 위한 의식제단 그 자체겠지.
하지만 레녹은 그 거울을 보면서 어딘가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유적을 발견하는 것과 동시에 거울 자체가 레녹의 마력과 동조를 시작하며, 순간적으로 만화경과 유사한 형태로 변하려던 것을 확인했었으니까.
“…….”
동조가 시작되는 순간 마력을 거둬들였기에 다른 이들은 거울 자체의 이상현상이라 여겼지만, 레녹은 알 수 있었다.
저것은 레녹 자신도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만화경의 일종이거나, 만화경의 복제품 따위가 아니다.
그저 레녹의 마력에 동조하여, 그 마력의 본질에 담겨 있는 ‘무언가’를 비춰 만화경을 투영했을 뿐.
하지만 레녹은 그것만으로도 저 거울이 이루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강대한 힘을 품었음을 직감했다.
아주 오래전, 교단의 극동지부에서 마주한 적 있었던 교주가 남긴 거울.
[기다리며.]라고 써 있었던 메시지.자신을 비추도록 설계되어 있던 그 거울과, 저곳에서 느껴지는 기시감이 유사하다면 착각일까.
어쩌면, 그때 봤던 거울은 지금 레녹의 눈앞에 있는 거울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복제품이 아니었을까.
“……페이샤가 했던 말대로네. 유적지 내부의 공간이나 방향감각이 기괴하게 뒤틀려 있어.”
먼지 쌓인 오래된 유적지의 풍경.
거대한 고분과도 같은 거리를 걸으며 우로보로스를 펼친 제니가 말했다.
“눈에 보이는 공간 일부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거나 이격되어 있어서, 아예 감각이 닿지 않는 곳도 많네. 이건 마치…….”
“마치?”
“꼭, 유적 전체가 거울상으로 이뤄져 있는 것 같은…….”
“…….”
제니가 중얼거린 그 말에 반응하듯, 일행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유적지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거울로 향했다.
레녹의 마력에 동조하여 아주 잠깐 만화경으로 변질되는 듯했다, 이내 평범한 거울로 돌아온 투명한 형체.
보랏빛의 광채를 품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특이사항은 느껴지지 않는, 두 사람을 동시에 비추고도 남을 법한 크기.
촤악!!
그 순간, 말없이 두 사람의 뒤를 따라 걷던 페이샤가 창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갑작스러운 페이샤의 행동에 제니와 미스트라가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페이샤?”
“먼저 가라, 제니시아.”
페이샤가 찌푸린 표정으로 힐끗 눈짓했다.
“이 유적지. 네 말대로 공간 사이에 틈이 벌어져 있어서 멀리까지 감각이 닿지 않아. 육안으로만 눈에 보일 뿐, 수백 미터 저편은 실제로는 전혀 다른 공간이겠지.”
“…….”
“정확하게 저 거울이 비추는 유적지의 각도만 현실의 안쪽이다. 나머지는 모두 거울에 비추는 상에 불과하다고 봐야 하겠군.”
앞서가던 미스트라의 자켓 옷깃을 잡아챈 그녀가 창대를 쥐고 망설임 없이 걸음을 돌렸다.
“어차피 내가 거울을 조사해 봤자 도움도 안 되겠지. 난 이 귀쟁이랑 같이 유적 근처에 뭔가 숨겨져 있는지 찾아보고 있겠다.”
“아니, 누구 마음대로 그걸 정하는 건데? 난 너랑 다르게 뭔가 알고 있을 수도 있다고.”
제니가 입을 다물고, 미스트라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애초에 이 유적지, 제니시아의 말대로 공간이 벌어져 있어서 조금만 잘못해도 멀리 떨어질 수도 있는데 너무 위험-”
“아, 진짜!! 입 닥치고 그냥 따라오라고!!”
“아야야야!!!! 야, 머리카락 안 놓으면 진짜 걷어차버린다?!!!”
미스트라의 머리칼을 잡고 질질 끌며 유적지로부터 멀어지는 페이샤의 모습.
허우적대며 반항하면서도 힐끗 제니를 보고, 뭔가 눈치챈 듯 걸음을 옮기는 미스트라.
그 노골적인 태도를 본 제니가 쓴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레녹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반, 그…….”
“속내가 뻔히 보여서 기가 막힐 정도군.”
레녹이 걸음을 옮겼다.
“혹시라도 자기들이 거울을 얻어버릴까 봐 미리 빠져 있겠다는 건가. 아는 게 없으면 몸이 고생하는 법이다.”
“…….”
승천유적의 저 거울이 능력이나 아티팩트의 일종이라면, 주인에게 귀속되는 힘일 가능성이 높다.
페이샤는 그것을 눈치채고 억지로 미스트라를 데리고 유적 탐사를 핑계로 자리를 피해버렸던 것.
물론 그건 레녹을 배려해서라기보단 제니를 위한 판단이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뭐, 근처를 수색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도 아예 핑계는 아니었겠지. 내 기감으로도 당장 인근 거리 바깥은 탐색되지가 않는다. 페이샤의 말대로 사방의 공간 전체가 거울에 비춘 것처럼 허상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어.”
“그런 관점으로 보면, 나도 일단 탐색에 참여하는 게 좋지 않을까? 혹시라도 내가 거울을 얻게 되면-”
“아니. 만에 하나 그런 종류의 물건이라도 상관없으니까 같이 가지.”
레녹이 웃었다.
“그보다 일단 네 의견을 듣고 싶군. 저 거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어떻게 생각하냐니……? 거울에 대한 내 감상을 묻는 거야?”
“이 모형도시 중심에 존재하는 저 거울이 승천유적의 핵심이라는 사실은 분명하겠지.”
서서히 가까워지는 거울을 올려다보며 레녹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거울의 능력이나 기능에 대해서 나도 아직 확신하고 있는 건 아니다. 생각나는 가능성은 몇 가지 있지만, 그 전에 네 의견도 좀 들어두고 싶군.”
“…….”
“간단한 지식이나 인상 같은 거라도 상관없으니까 한번 말해봐라. 오히려 그런 부분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반. 미안한데 그렇게 말하면 오히려 더 부담되거든? 거울이라…… 거울…….”
작게 투덜거린 제니가 이내 고심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집중하고 있던 그녀가 이내 기억을 되살리듯 입을 열었다.
“상징적으로는 자아를 비춘다는 느낌이 강하지. 어딘가로 이어지는 통로처럼 혼용되는 경우도 있고, 있는 그대로의 본질을 드러낸다는 의미도 있어.”
“…….”
“다만 일반적으로는 거울에 비추는 대상…… 자기 자신을 투영하거나 그에 국한되는 면모가 강할 텐데. 자격을 내려받는 일이 그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레녹에게 우로보로스를 배운 뒤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는지, 제니 역시 꽤나 식견이 깊다.
거울이라는 상징을 보자마자 술식분야에서 어떤 식으로 사용되는지 떠올릴 수 있다면 그만큼 공부를 해왔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레녹은 그 와중에도 거울 가까이 다가갈수록 강해지는 노이즈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저 멀리 떠오른 황금빛과 보랏빛의 거울 너머, 상이 맺히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마치 거울에 맺히는 형상 자체를 인식할 수 없도록 뭉개버리는 노이즈.
그것이 거울 너머에서 일렁이며 레녹과 제니의 모습을 가리고 있을 뿐.
“뭔가…… 보일 것 같으면서도 잘 안 보이네.”
거대한 거울 앞에 선 제니가 그 안에서 흐릿하게 일렁이는 거울상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깨끗하고 투명한 유리 그 자체인데, 왜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걸까?”
“글세…….”
레녹이 중얼거렸다.
“어쩌면 이미 이 거울이 다른 무언가를 오랫동안 비추어왔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다른 무언가라면, 역시 이 유적을 갖고 있던 가가메온?”
“어쩌면 카이세일지도 모르고.”
“…….”
“카이세에게 이것을 전해주려 했던 좌승상의 존재일 수도 있다.”
“……이거 혹시 내가 맞춰야 하는 퀴즈 같은 건 아니지?”
“아니,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아니야.”
레녹이 웃었다.
“다만 좌승상이 이것을 카이세에게 전해주려 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서 말이다.”
“…….”
“유사의 월식을 위해 안배되었던 물건. 회귀자였던 카이세의 승천을 위해 준비된 도구. 그렇다면 아마…….”
천천히 손을 뻗은 레녹이 중얼거렸다.
“그 능력마저도 카이세의 재능과 어느 정도 비슷한 부분이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치직, 치지지직……!!!!
노이즈가 뒤덮인 거울의 표면을 향해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레녹의 손가락에 끼인 흑색의 반지가 함께 공명한다.
동시에 거울 표면에 뒤덮인 노이즈가 반지를 중심으로 물러나면서, 순간적으로 거울의 표면이 투명하게 변하고.
그 앞에 서 있던 레녹과 제니의 모습을 동시에 비추었다.
“……이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대상지정저항을 지닌 레녹의 모습은 거울에 비춰도 평상시와 다를 바 없다.
마찬가지로 본인이 아니면 본인을 볼 수 없는 것인지, 레녹은 제니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레녹과는 달리 제니의 눈에는 제니 자신의 ‘다른’ 모습이 비치는 듯했다.
투명해진 거울을 마주한 제니가 제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이 멈춰 서고.
“제니. 미안하지만 여기서는 네 도움을 잠깐 받아야겠다.”
거울을 향해 손을 뻗은 채 레녹이 물었다.
“우로보로스를 지닌 너라면 거울에 무엇이 비치든 정신적으로 영향을 받지는 않을 거다. 뭐가 보이지?”
“내가, 보이는 것 같아. 아마, 나…… 인 것 같은데…….”
제니가 거울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말했다.
“……조금, 많이 어려. 5살도 안 되는 것 같아.”
“…….”
“아이스크림이랑 꽃다발을 들고 있어. 라벨에 적힌 상표는 식물원……? 식물원에 다녀온 것 같은데?”
식물원에 다녀왔던 어린 시절의 제니라.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레녹은 그 당시의 제니가 어떤 일을 겪고 돌아오는 길인지 알고 있었다.
카이세와 에단이 프로젝트의 결말을 두고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을 맺었던 그날.
그때 식물원에서 있었던 기억을, 제니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을 비추고 있다면-
“반……?”
“……그렇군.”
차갑게 굳은 레녹의 얼굴을 보며 제니가 조심스럽게 묻고, 레녹이 시선을 들어 올렸다.
“거울을 통해 승천의 자격을 내려받는다는 건…… 애초에 다른 사람이나 외신에게 받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어.”
“…….”
“자격이라는 것이 애초에 계승이나 양도할 수 없는 개념이라면, 이 거울은 언젠가 존재했었던 ‘과거의 자신’을 비추는 힘이자-”
레녹이 중얼거렸다.
“애초에 인간이 사용해서는 안 되는 유적이었군.”
우우우우웅……!!!
레녹이 마력을 끌어올리는 순간, 그에 동조하듯 거울 역시 황금빛의 광채를 품고 만화경을 비춘다.
멈춰두었던 거울과의 마력동조를 재개한 순간, 거울 역시 기다렸다는 듯 레녹의 마력과 얽혀들어간다.
지금 당장이라도 레녹의 만화경을 현실에 직접 불러내려는 듯, 장엄하면서도 위압적인 빛을 품고.
유적도시를 가득 메운 황금빛의 광채를 마주한 제니의 눈이 순간적으로 크게 뜨였다.
“바, 반?! 이건 대체……!!”
“조금만 기다려라. 몇 가지 실험해 볼 것이 있어.”
레녹의 마력을 거울에 투영하여 나타난 만화경은, 말 그대로 거울에 비춘 마음의 상 자체.
거울의 힘을 빌렸다고는 하나, 오직 레녹의 의지와 마력을 사용해서만 이 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기적이다.
만약 거울의 힘을 빌려 이곳에 나타난 만화경이, 그 능력 자체는 레녹이 본래 지닌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면.
레녹이 근원심상이나 분기점을 관측하지 않고도 만화경을 이 자리에 띄워 올릴 수 있다면.
만화경을 통해 ‘미래’가 아닌 ‘다른 것’을 비추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파아아아아아!!!!!!
‘제니를 비춘 거울은 제니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시간선을 불러냈다.’
흘러넘치는 황금빛의 빛무리 속에서 레녹이 시선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그렇다면, 설령 나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라 할지라도 분명 거울에는-”
대상지정저항을 얻기 전에 존재했던 과거의 레녹이 비추게 될 터.
그리고 레녹은 그것이 교주와 단장이 아니라, ‘다른 과거’를 비추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레녹의 눈앞에 떠오른 이 만화경은 레녹의 근원심상에서 끌어낸 힘이 아니니까.
만화경의 모습과 능력만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면, 레녹의 심상이 엮이지 않은 이 거울이 순수하게 레녹의 과거를 비출 수 있다면.
치직-
레녹의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유적지 중심에서 거세게 회전하는 만화경의 광채.
황금빛으로 물든 거울의 저편에서, 아주 어둡게 물든 그림자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레녹이 거울을 마주 보고 서 있음에도 ‘그’는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레녹이 거울을 향해 손을 뻗고 있음에도 ‘그’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이미 끊어진 과거와 현재와의 연결을 거부하듯.
오래 전에 완결되어 단절되어 버린 그 순간에 머무르려는 듯.
거울 너머에서 일렁이는 ‘그’를 마주하는 순간 레녹 역시 그 사실을 깨닫고.
천천히, 몸을 돌려세운 그가 거울 너머에서 말없이 레녹을 바라보았다.
[■-]이 세계에서 이미 지워진 목소리. 그를 대신하는 노이즈.
거울 속에서 음울하게 흔들리는 음영의 시선이, 레녹의 손가락에 낀 흑색의 반지를 향한다.
위신권역 만다라. ‘그’의 권능을 조형하여 물질로서 빚어낸 반지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고.
황금빛 거울의 경계선을 중심으로 레녹과 그의 손이 희미하게 맞닿은 그 순간.
[한 번.]거짓말처럼 노이즈가 벗겨지며, 레녹의 뇌리에 차가운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그 이상은 불가하다.]“……한 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거울상 너머에 존재하는 ‘그’의 일부가 레녹의 반지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위신권역 만다라. 무한한 본질을 품는 그릇. 외신의 죽음조차 이 세계에 보존하는 힘.
그 권능을 형상화한 반지 안에, ‘그’라는 과거의 잔상이 담겼음을 레녹이 직감한다.
“이건…….”
거울상 너머에서 마주한 과거의 자신.
그가 만다라라는 기적에 자신의 잔상을 일부 ‘보존’하여, 단 한 번에 한해 강림을 허락한 이 순간.
승천유적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예상조차 하지 못한 결과에 레녹이 폭발적인 영감을 느낀 찰나.
후욱!!
거짓말처럼, 레녹은 눈앞에 존재하는 만화경을 뒤로하고 시선을 휙 돌렸다.
“하지만 여기서부터는 굳이 다른 이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겠군.”
“반? 그게 무슨-”
철컥!!
제니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만화경을 한 손으로 잡고 그대로 회전시켜 돌려세운다.
동시에 거울이 비추는 유적지의 각도가 이 장소가 아닌 또 다른 각도의 유적지를 비추고-
파아아아앗!!!
눈이 아릴 만큼 청명한 푸른 빛이 유적지 한복판에 내리꽂히며, 곤란한 표정을 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벌써부터 모습을 드러낼 생각은 없었는데.”
“…….”
“생각했던 대로는 잘 안 되지? 그럴 수밖에 없을 걸세. 그 유적에 담긴 힘이란 가가메온조차 어떻게 하지 못했을 만큼 보통 물건이 아니거든.”
거울상의 뒤편에 숨어있던 인자한 인상을 지닌 노인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다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찌나 강하던지 거울을 손에 넣는 건 물론이고, 옮기는 것조차 불가능하지 않지 뭔가. 그렇기에 자네가 직접 나섰다고 들었을 때는 혹시나 했는데…… 역시 동대륙 최고의 대마법사라는 위인답군.”
노인이 레녹을 올려다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거울과 마력동조를 시작하자마자 그 안에서 무언가를 얻어낸 건가. 이거 참, 사람 여럿 무안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
“대체 어떤 재주를 품었기에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확인하려 했건만 사람이 이렇게 눈치가 빨라서 쓰나.”
천천히 걸음을 옮긴 노인이 말했다.
“하지만 자네가 마력동조를 시작한 이상, 이 자리에서 승천유적의 작동을 멈추기는 불가능하겠지.”
“……러치먼.”
금구 안으로 들어가는 격벽 앞에서 마주했던 원로원의 관리자.
그 얼굴을 확인한 레녹의 표정이 한없이 싸늘하게 변했다.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무얼, 자네에게 나쁜 일은 아닐걸세. 그저, 토벌전이 끝난 뒤로 많은 이들이 염원했던 일을 하려는 것뿐이지.”
노인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이 자리에서 자네가 새로운 승천자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도와주겠네. 자네가 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