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38
공간의 성질을 통채로 뒤바꾸는 이 기시감.
아리스 역시, 자성영역을 깨닫고 다룰 수 있었던 것인가.
위이이이이잉…!!
그동안 보아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흑청색의 마력이 그녀의 손 안에 모여들더니, 이내 주먹만한 검은 구체가 되어 부유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웅….!!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마력의 응집체처럼 보이지만, 레녹은 저것이 영역을 극도로 축소시켜서 구현화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내심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군….’
달리는 열차 위에서 영역을 시전하는 것도 레녹의 상식과는 어긋나 있는데, 자신을 포함하는 형태로 펼치는 것도 아닌데다, 주먹만한 크기로 축소시켜서 들고 있기까지 하다니.
저 간단해보이는 영역의 구체 안에 얼마나 많은 재능과 감각이 필요할까.
자성영역의 기초조차 구현해내지 못해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인공영역을 구축했던 크레이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리스 리첼렌 역시 한 분야의 천재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마법사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역에 스스로의 심상을 구체화시켜 투영할 수 있다면, 단순한 술진을 넘어서 고유한 능력을 빚어낼 수 있어요.”
레녹이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심상의 투영이라….”
“저는 아직 거기까지는 끌어내지는 못했지만ㅡ”
“자성영역의 능력이 그런 식으로 정해진다면, 가진바 적성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겠군요.”
레녹의 말에 아리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맞아요. 역시 이해가 빠르군요. 그것 때문에 고위 마법사들 중에서는 영역을 발동시킬 수 있으면서도 굳이 전투에 사용하지 않는 이들도 있어요.”
“………”
요컨대 전투에 필요한 능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라도 심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것일까.
어려운 이야기다.
‘돌아가면 이것저것 써먹어봐야겠군.’
방금 아리스가 보여준 영역의 응용방식은 레녹으로서도 시도해볼법하다.
특히 영역을 국소방면에 축소시켜서 마법의 증폭력을 집중시키는 방식은 전투중에라도 간간히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레녹이 생각에 잠긴 사이 가볍게 주먹을 쥐어 영역을 취소시킨 아리스가 숨을 내쉬며 등을 의자에 기대었다.
“그 위로 올라가기 위한 영감을 얻기 위해서 발품을 팔았던 거였는데…. 큰 수확은 없었군요.”
아리스가 저렇게 말한다면 답은 확실했다.
대학에서 하는 연구와는 별개로, 그녀는 더 위로 나아가기 위한 계기를 찾고 있는 것이다.
‘자성영역에 심상을 투영하는 경지라….’
이제야 마력의 성질변화를 온전히 다루고, 자성영역의 전개를 깨달은 레녹에게는 막연한 이야기.
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실마리를 잡는 것을 소홀히해서는 안되는 부분이었다.
단순한 생존의 문제를 넘어서, 이 세계의 근본적인 존재이유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결국 레녹 본인의 무력이 우선되어야 할테니.
생각에 잠긴 레녹을 빤히 바라보던 아리스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어쨌든 이번 일에 동행해줘서 고마워요. 설마 이런 부탁을 하게 될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괜찮습니다. 사람 일이라는게 마음대로 되는 법은 아니니까요.”
“마음대로….. 그렇네요.”
아리스는 그렇게 말하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고싶은 것 하나 제대로 해낼 수 없는 형편이에요. 뭐든지 혼자서 해내려고 하면 안되겠죠.”
“……….”
어두워진 창문 너머로 비치는 그녀의 표정은, 어쩐지 씁쓸하게 변해있었다.
젊은 나이에 고위마법사의 지위에 오른 그녀같은 천재에게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겠지.
그 재능과 배경에 걸맞는 이야기가 있다하더라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레녹은 그 자리에서 그녀의 고민을 들어주는 대신, 말없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렸다.
대답이나 위로를 듣고 싶어 레녹을 부른 것이 아니다.
때로는 침묵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레녹은 잘 알고 있었다.
조용해진 공기속에서 열차의 소음만이 나직하게 울려퍼진다.
품안에서 잠들어있던 다비가 말없이 몸을 꿈틀거렸다.
이틀간의 짧은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추적 (1)
48구역. 정오. 행정시설이 몰려있는 큼지막한 사거리.
빠방!
이름모를 거대한 짐승을 조각한 분수가 위치한 거리에는 온갖 차량이 무질서하게 사방으로 운전을 거듭하고 있다.
구역을 주름잡고 있던 시거 뱅이라는 거대한 갱단이 사라진 뒤에도 구역의 활기가 사라지는 일은 없다.
중앙구역에서 흘러넘치는 막대한 재화와 물류. 그 찌꺼기를 받아먹고 사는 것만으로 능히 수십개의 구역이 원활하게 돌아가기에 충분하다.
발칸의 지하세계가 이렇게까지 활성화될 수 있는 이유 역시 빛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수십가지 문제를 떠안고 있음에도 여전히 시민들이 시정부를 신뢰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상원의원 레이센과 같이 자멸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 절대적인 권력구조가 바뀌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겠지.
부아아아아앙!!!
엔진이 미친듯이 돌아가는 소음.
운전대를 급하게 꺾어내리는 둔탁한 소리와, 사방에서 울려퍼지는 경적이 고막을 두드린다.
서로 다른 두 대의 자동차가 복잡한 거리를 휘저으며 대로 한복판에서 때아닌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앞서가는 자동차를 주시하던 레녹이 미간을 확 찌푸렸다.
“이거 생각보다 좀 어려운데.”
[중앙차선을 선택지에서 배제하고 2차선 침범을 추천합니다. 교통혼잡도를 고려하면 상대는 대로변의 차들을 끌어들여 추적을 뿌리치려는 듯 하군요.]“알고 있어.”
레녹은 조수석에 앉아 귀를 쫑긋거리는 다비의 말에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자동운전패턴은 언제 완성되지?”
[4륜 승용차에 탑승한 시간이 지금까지 대략 560초. 이것만으로는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강인공지능의 계산능력을 고려하더라도 패턴을 학습하는데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해요.]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레녹은 입을 다물고 얌전히 엑셀을 밟았다.
아직 제대로 된 기동성을 갖추지 못한 레녹으로서는, 상대가 저항을 포기하고 이렇게 추격전으로 돌입할 경우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이렇게 민간인들이 잔뜩 섞인 인파속에서 주변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도주자를 따라잡는다?
숙련된 운전스킬을 가지고 있는 프리랜서라도 공을 들여야 할텐데, 레녹은 어떻겠는가.
“…..처음에 얼굴을 노출하고 다가간 게 실수였어. 설마 날 한번에 알아볼 줄이야.”
[마스터는 이 근방에서 유명한 프리랜서가 아닙니까? 어설픈 실수를 했군요.]“………”
다비에게도 지적받을만큼 멍청한 실수지만, 레녹에게도 변명할 거리는 있었다.
다이크와의 협업과, 에이전트와의 작전.
연달아 큰 건수를 도맡아 처리한 레녹의 명성이 크게 뛰어오르면서 이 주변에서 그의 얼굴을 아는 범죄자들이 대폭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레녹의 얼굴을 보자마자 어떤 저항도 하지 않고 도망친 상대.
심지어 그가 뛰어난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아서인지, 어떻게든 사람이 많은 곳을 골라서만 운전하며 최대한 민간인이 휩쓸리도록 유도하고 있다.
아무리 레녹이라고 하더라도 운전대에 온 신경을 분산시키고 있는 시점에서, 족히 수십미터는 멀리 떨어진 자동차가 폭발하지 않도록 정확하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
‘노리고 만든 도주극이라면 아주 그럴듯해. 심지어 우연이라고 해도 이건 재능의 영역이다.’
레녹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자치령에 방문할만한 핑계를 만드는 시간동안 할만한 의뢰라고 생각하고 받았는데, 레녹이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을 정확하게 노리고 있지 않은가.
‘붙잡아서 직접 사유를 들어야겠군.’
생각에 잠긴 사이 추격전은 더욱 수렁으로 빠져든다.
일부러 좌우로 진행방향을 흐트러트리면서 다른 차들의 운전을 흐트러트리고, 차선을 어지럽혀 추격을 저지한다.
빠아아앙!!
쾅! 우지지직!!
“꺄아아아악!!”
“뭐하는 짓거리야!!”
급기야 혼란에 빠진 차들이 인도를 침범하면서 가로등이 부러지고 소화전이 박살나며 허공에 물줄기가 튀어오른다.
차창 앞유리에 튀는 물방울을 와이퍼로 닦아내면서 레녹이 운전대를 휙 돌렸다.
자동차가 우회전 도로를 따라 쭉 미끄러지면서 벽에 닿을 듯 말듯 스쳐지나갔다.
악셀을 밟아 속도를 높이는 레녹의 모습은 이제 어느정도 모양새가 잡히고 있었다.
연구를 거듭해 만들어낸 탑승보조마법.
원래는 바이크를 다루기 위해 만들었던 마법이, 자동차에도 성공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끼이이익!!
“데이터 수집이 아직이라면, 다른 쪽을 생각해봐야겠군.”
[무슨 뜻이죠?]“주변 신호등을 조작해서 놈이 운전대를 돌리는 방향을 특정하는 거야. 할 수 있겠어?”
레녹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파트너가 어느 정도의 포텐셜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그건 다비 본인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엄연히 팔머스의 인공지능 모듈을 기반으로 강력한 계산능력을 보유했다고는 하지만,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나 여러가지를 배워가는 상황.
어떤 것이 가능하고, 어떤 것이 불가능한지는 레녹이 직접 지시하고 일러주면서 감을 잡아갈 필요가 있었다.
잠깐의 침묵. 다비가 대답했다.
[가능합니다.]파지지지직!!
그 순간, 다비의 몸에서 전격이 번뜩이고 찰나의 순간 진동을 거듭하며 만들어진 전자파가 자동차를 넘어 거리 일대에 퍼져나간다.
삑! 삑!
녹색과 적색을 오가던 신호등의 불빛이 어느순간 무작위로 변해가면서 빠르게 도로 상황을 통제했다.
상대가 아무리 운전의 달인이라도 하더라도 차들이 멈춰선 거리를 억지로 뚫고 지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노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운행중인 도로에 시시각각으로 발생하는 빈 틈 뿐.
일대를 전부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추적하는 차량의 운전경로를 유도하는 건 가능한 일이다.
“다비. 운전대를 잡아.”
[아직 데이터 수집이….]“방향은 상관없으니 자동차가 어디 부딫히지 않게만 통제해. 그 정도는 가능하겠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레녹은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댔다.
손안에 쥐여쥔 것은 손가락만한 크기의 작은 라이플 모형.
하지만 마력을 불어넣어 부여된 축소마법을 해제하고 나면, 레녹의 손에 들린 것은 거대한 스나이퍼 라이플로 변한다.
철컥!
탄알을 집어넣고 빠르게 장전을 마친 레녹이 라이플을 들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다비가 원격으로 운전대를 제어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총구를 내밀고 스코프에 얼굴을 들이민다.
“…..으윽.”
경량화 마법 덕분에 라이플을 들어올리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창문 밖으로 총구를 내밀고 있는 이 자세가 레녹에게는 무리한 움직임이었다.
한발에 끝내야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레녹이 곧바로 사격보조마법을 라이플 위에 쌓아올렸다.
[조준보정] [궤적유도] [관통제어] [집중사격]제대로 다루는 것은 처음이지만, 잡는 순간 권총과는 태생적으로 용량이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리볼버 사격 한발에 쌓아올릴 수 있는 보조마법이, 여기서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질 정도.
하지만 레녹은 이 이상 보조마법의 한계를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빠르게 총구를 조준했다.
필요한 것은 위력이 아니라 정확도. 그것을 위해서라면 역으로 탄알의 위력은 줄여내도 상관없다.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흔들리는 자동차 위에서 조준한 총구의 방향이, 사격 직전 기이한 마력의 움직임으로 고정되며 최적의 발사각을 이끌어낸다.
그 직후 총알의 궤적이 미미하게 휘어지면서 레녹이 노리는 방향을 향해 정확하게 굴절되고.
마침내 도망치던 차의 뒤쪽 타이어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퍼엉!!
차축에 가깝게. 그것도 관통력을 최대한으로 높인 결과물이다.
단순히 타이어 하나가 터진 정도가 아니라 세 발로 남은 거리를 내달리는 듯한 심정이겠지.
명중을 확신한 순간 다시 운전대를 쥐고 추적을 계속한다.
한쪽 발이 없어진 자동차를 상대로 거리를 좁히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래비티 체인]허공에서 튀어나온 자줏빛의 사슬이 순식간에 자동차의 몸체를 휘어잡고 기울이자, 속절없이 균형을 잃고 허공에서 바퀴가 헛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