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63
“마약왕이 숨겨놓은 금고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으기 위해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느라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쪽이 가지고 있는 정보들을 좀 푸니까 답이 나오기는 하더라.”
제니는 그렇게 말하고 슬쩍 레녹의 얼굴을 올려다본 뒤 기겁을 했다.
“……나도 그렇지만, 반 너도 얼굴이 말이 아닌데. 괜찮은거야?”
“음? 아, 신경쓰지 마. 지금 몸 상태는 아주 좋으니까.”
양쪽 볼이 움푹 들어가 핼쑥해진 안색으로 레녹이 손사래를 쳤다.
“지금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 뒤로 레녹은 무려 세번을 더 란시아의 필라테스 스튜디오에 꾸준히 출석 했고, 근육통은 이틀만에 사라졌다.
평소보다 힘들게 몸을 움직이면서 안색이 안좋아지기는 했지만, 오히려 몸에 돌아오는 기력 자체는 상당했던 것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던가.
레녹은 실로 오랜만에 연초를 피지 않고서도 그럭저럭 괜찮은 정신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옆에서 다가온 조든이 레녹의 안색을 살핀 뒤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거짓말이 아니군. 심박수가 상당히 규칙적으로 변했어. 약선에게 따로 치료를 받기라고 한 건가?”
“그건 아니고, 요즘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뻐근한 목을 한바퀴 돌리자 뚜득 소리가 나면서 관절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생각보다는 효과가 괜찮더군요.”
“…..반 자네에게 효과가 있을 정도라면 분명 용한 선생이겠군. 제니도 슬슬 자기 관리를 해야할텐데….”
“조든, 난 운동 같은거 절대 안할거야. 몸을 움직이느니 그냥 죽어버릴거라고.”
“봤나?”
“……….”
두 사람의 대화에 레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니가 아무리 아무렇게나 생활패턴을 망가뜨려도 레녹보다는 건강하게 살 텐데, 그가 그녀를 걱정해서 무엇하겠는가.
심지어 조든 역시 의사로서의 눈썰미는 상당한 편이니, 알게모르게 그녀의 건강을 관리해주기는 충분하겠지.
레녹이 간섭할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둘 다 그만하고, 일단 사무실로 올라가자.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니야.”
제니가 레녹을 불러서 직접 이런 말을 꺼낼정도라면 틀림없이 유의미한 수확을 거둔 다음일 터.
경매장과 약선, 그리고 탐사단과 후원자들을 지나 이제서야.
마약왕의 금고를 털기 위한 계획이 본격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계획 (2)
세 사람은 일단 술집의 문을 닫고 곧바로 바 위쪽의 사무실로 향했다.
이른 아침이라 밤을 샜던 손님들도 모두 사라지고, 한적한 시간대라 가능한 일이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문을 잠그고, 창문에 암막커튼을 친 뒤 레녹의 마법으로 보안과 방음까지 완벽하게 처리하고 난 뒤에야 제니가 노트북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그녀의 입에서 나올 내용들이 그만큼 중대하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먼저 이걸 봐봐. 가장 최근에 찍힌 주스마스터의 사진이라더군.”
“……….”
레녹과 조든은 고개를 기울여서 노트북에 떠오른 흐릿한 사진 한장을 시선에 담았다.
폐허가 된 도시. 완전히 망가져버린 거대한 도로 한가운데를 지나치는 수십대의 전차 군단.
그중 전차 하나에 올라타 담배연기를 뻑뻑 피워대는 흐릿한 인영 하나가 사진에 찍혀있었다.
“얼굴이고 체격이고 아무것도 안보이는군.”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로 기록이 남는걸 모조리 차단하고 있는거야. 얼굴과 신상이 아예 알려지지 않은 건 아니지만, 지금 어떤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느냐는 의외로 중요한 공략법이 될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신경쓸 문제는 아니군.”
레녹이 해야할 일은 마약왕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놈의 금고를 터는 일이다.
그의 행적을 알아내는 일 역시 어디까지나 그러한 일환에서 접근해야한다는 것을 제니가 모를리가 없었다.
“이 사진이 찍힌건 일단 이주일 전으로 추정되고 있어. 장소는 대륙 극서부 라마 고원에 위치한 파라기니 공화국. 가난한 국가경제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독재정권을 확립한 무법자들의 천국이지.”
“마약왕이 이들과 손을 잡았다는건가.”
“사실 그런 말로 도미닉 카바로가 해낸 일을 설명하기는 부족해. 정권의 낮은 지지율을 무마하기 위해서 마구잡이로 뿌린 마약으로 이미 공화국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흘러갔어. 나라의 혼란을 틈다 정신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이들은 아주 많았지.”
사진이 바뀐다.
전차가 향하고 있는 방향은, 독재정권이 세운 것을 보이는 아주 화려한 궁전.
“그는 사실상 한 나라를 손에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복마전의 일원. 대륙의 마약상권을 손에 넣은 거상. 그리고 이제는 공화국의 암묵적인 지배자인가.
“물론 공화국이 그렇게 생각할만큼 대단한 나라는 아니네. 알고 있겠지?”
모른다. 거대도시 발칸을 위주로 한 근처의 지형을 공부해두기는 했지만, 대륙 서쪽 끝에 위치한 작은 공화국의 이름까지 기억해두지는 않았으니까.
“아무리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고 하지만, 이 시대에 아직도 그런 국가의 이름을 달고 있다는 것에 짐작할 수 있듯이 흐름에 뒤쳐진 낡은 후진국일 뿐. 발칸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도 되지 못하는 변방지역이지. 하지만 그럼에도 제니가 자네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조든이 노트북을 짚으면서 말했다.
“마약왕과 정면승부를 그만큼 피해야한다는 충고일세.”
“………..”
“자네라면 언젠가 그 괴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아직 자네나 우리에게나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네.”
“설령 자네에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책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모르는 천재적인 마법으로 마약왕을 죽이는데 성공하더라도…. 우리는 그 후폭풍을 감당해낼 수 없어.”
“기억하게나.”
그렇게 말하는 조든의 얼굴을 어느때보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한때 이 도시의 모든 그림자를 발 아래두던 이도, 결국 복마전보다 먼저 으스러져 버렸다는 것을.”
레녹은 팔짱을 끼고 가만히 그 말을 듣고 있다가 툭 내뱉었다.
“그건 아마 카이세라는 남자의 이야기겠지?”
“……….”
“제니와 조든 당신이 그동안 이것저것 흘린 말들을 생각하면,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야.”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고 제니의 맞은편에 앉았다.
제니는 레녹의 시선을 피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충고는 기억해두지.”
“…..조든, 솔직히 말해 괜한 걱정이야.”
입술을 삐죽거린 제니가 노트북의 화면을 아예 사무실 벽에 걸린 스크린에 공유시키고 말했다.
“주스마스터가 공화국을 완전히 손에 넣은 걸로 추정되는건 대략 이주일 전. 그가 그 몰락한 공화국에서 뭘 하려는지는 모르지만, 혼란스러운 시국을 안정시키고 원하는 환경을 구축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두 달은 필요하겠지.”
“거기에 대륙 끝에서 끝까지 오가는 시간까지 생각한다면 사실상 이번일에서 마약왕과 직접 마주칠 가능성은 아주 낮아. 시기적으로는 아주 적절하다고 볼 수 있겠어.”
가만히 제니의 말을 듣고 있던 레녹이 말했다.
“그 말은 어폐가 있군. 이번 일은 마약왕과 우리의 위치를 계산하는게 아니라, 마약왕과 놈의 금고 사이의 거리를 계산하지 않으면……잠깐, 그 말은ㅡ”
레녹은 거기까지 말한 뒤에야 제니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고 말을 멈췄다.
제니가 그 모습을 보며 씩 웃고 말했다.
“맞아. 전 대륙에 무수하게 퍼져있는 마약왕의 금고. 그 중에서 우리가 노려야 하는 약재창고는 바로 발칸 근처에 있어.”
그 말과 함께 노트북에 떠오른 지도를 본 레녹이 입을 살짝 벌렸다.
거대도시 발칸이 자리한 평원에서 크게 북상.
한차례 학회가 열렸던 메마른 고원을 지나 지도상으로도 확인이 가능한 거대한 절단면에 자리에선 무수한 섬의 군락.
거기 써있는 지명은 레녹에게도 결코 낯선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필레놈 자치령.”
제니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말했다.
“이 시국에 여행을 떠나기에는 최악의 장소를 고른 셈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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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령의 독특한 지형과, ‘등대’라는 상징적인 관측소가 위치한 특성상 원래부터 마법적으로 다양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던 곳이네.”
조든이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채로운 약재들이 자라나기에 최적의 환경. 그리고 그렇게 자라난 약재들을 보관하기에도 최고의 입지조건을 갖춘 곳이야.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
“복마전의 손길이 자치령에게까지 뻗어있다고 생각하면 되는건가?”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야.”
제니가 대답했다.
“판데모니엄의 멤버들은 서로에게 큰 관심이 없는걸로 유명하지. 하물며 주스마스터는 최근에서야 그 괴물들의 조직에 들어간 신입…. 이 창고는 마약왕이 스스로의 기반만으로 만들어낸 숨겨진 비처일거야.”
“정보를 입수한 수단이 궁금한데. 마약왕의 행적조차 잘 드러나지 않는 판국에 어떻게 금고의 위치를 찾아낸거지?”
“그 놈이 공화국에 적을 두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오히려 쉽지.”
레녹의 말에 제니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웃었다.
“놈이 아무리 비밀스럽게 움직인다고 해도, 그만한 사업을 유지하려면 온갖곳에 흔적을 남길수밖에 없거든.”
엄지와 검지를 이어붙여서 동전모양을 만든 그녀를 보며 레녹이 픽 웃었다.
“마약왕의 수하를 매수한거군.”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화국의 부패한 관료들. 마약왕을 아직 그리 무서워하지 않으면서도, 반대로 놈이 가진 정보에 손을 대기 쉬운 놈들을 골랐지. 하물며 파라기니 공화국은 대륙에서도 손꼽힐정도로 낙후된 국가야. 돈으로 구슬리니까 아주 쉽게 넘어오더군.”
제니가 말했다.
“정보를 훔쳐오라는 것도 아니고, 금고 위치를 확인하고 이쪽에게 말해달라는 정도… 거기에 이쪽도 딥웹을 수십차례 우회했으니 저쪽에서 금고 위치가 새어나갔다는 사실을 알리가 만무하지. 마무리를 짓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보안은 완벽할거야.”
시간이 조금 지연된다고 했던 건 모두 이런 공작을 위해서였던가.
그녀의 일처리방식에는 레녹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대단한데.”
아무런 단서도 없는 시점에서 마약왕의 행적을 찾아낸 것도 대단한데, 거기서 그의 주위환경을 역으로 추적해서 관계자들을 매수하고 절묘하게 금고의 위치만을 빼낸 그 노하우가 인상깊다.
심지어 이 모든 일을 딥웹을 우회한 상태로 모니터 너머에서 간접적으로 지휘해야했을테니 난이도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터.
주스마스터의 악명. 그 잔혹한 성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리스크를 각오하고 성공적인 결과물을 뽑아낸 제니의 능력은 실로 걸출했다.
오랜 브로커 생활로 쌓인 경험과 타고난 판단력과 직감. 그리고 필요한 순간에 자금과 모험을 아끼지 않는 그 대담한 성정이 만들어낸 성과겠지.
“빚을 졌군.”
레녹은 솔직하게 그의 심정을 말했다.
이런 거래를 확실하게 해두지 않는다면 언젠가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모를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고.”
제니가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중에 그만큼 또 수수료를 떼먹을거니까. 미리 알고 있으라고.”
마냥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그 말에 레녹이 웃음을 터트렸다.
“일단 성과를 거두자마자 반 너를 불러서 브리핑을 한거야. 얻어낸 정보를 정리하고 자치령으로 가는 루트를 확보하기까지 하루는 필요하니까, 그 전까지 하고 있던 일들을 정리해둬.”
노트북을 덮은 제니가 말했다.
“금고가 필레놈 자치령에 있다는 피상적인 정보만을 취했을 뿐, 결국 구체적인 위치를 잡아내는건 현장에서 직접 반 네가 해내야 할테니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출장인 셈이군.”
코트를 챙겨든 레녹이 일어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됐어. 연락을 기다리고 있지.”
피곤한 기색의 제니를 놔두고 술집을 나서려던 레녹을 조든이 붙잡아세웠다.
“잠깐 이야기좀 할 수 있을까?”
“물론이죠.”
두 사람은 텅 빈 바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연초를 입에 물었다.
레녹이 건네준 더블 스칼렛을 물고 불을 당긴 조든이 살짝 기침을 하곤 멋쩍게 웃었다.
“미안하군. 담배를 끊은지 좀 오래되서 말이야.”
“괜찮습니다.”
조든의 행동이 평소와는 많이 다르다.
그건 아마도 그가 이번 일에 대해서 상당히 걱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그 반응이 그가 가지고 있는 사정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레녹도 대충 짐작하고는 있었다.
오래지 않아 능숙하게 연기를 흘려보낸 조든이 말했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하루만에 끝나지는 않을걸세.”
“……….”
“다른 일을 처리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종일 딥웹을 붙잡고 공화국에 수신을 보내고 있었으니 피로가 엄청날거야.”
“알고 있습니다.”
레녹이 대답했다.
말라베스가 필레놈 자치령에 있다는 것을 알아낸 순간 제니는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낸 셈이다.
이제부터는 엄연히 레녹이 해야 할 몫.
처음부터 그가 해내야 했던 일인만큼, 레녹은 이 이상으로 그녀를 혹사시킬 생각이 없었다.
탐사단과의 전투에서 얻은 대천사의 연민을 완전히 조립하고 조정을 끝마치기까지는 어차피 시간이 조금 필요한 상황.
유물의 능력을 일부나마 해석에서 전력에 추가하는 동안 제니가 데이터를 넘겨주면 될 일이었다.
레녹의 대답을 들은 조든이 힘없이 웃었다.
“그래….. 자네는 항상 그런 점이 더할 나위없이 뛰어나. 고작 말 몇마디를 나누고 그 속에서 진위를 가려낼 줄 아는건, 틀림없이 귀중한 자질이네.”
“그 정도로 거창하지는….”
“그렇기에 제니가 자네에게 기대를 걸고 투자를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지.”
“………”
“자네가 단순한 프리랜서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알려질수록, 그 심상치 않은 재능을 카이세의 이름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이들도 늘어나게 될 걸세. 카이세의 혈육과 함께 일한다는 건 결국 그런 의미를 가지게 될 수밖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