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846
약먹는 천재마법사 846화
인수인계(14)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못하면 곧바로 연구소에서 쫓아내겠다는 연구원의 선포.
하지만 레녹은 청년의 살벌한 말을 무시하고 곧바로 눈을 가져다 댄 현미경의 렌즈로 시선을 집중했다.
렌즈 너머로 보이는 마력 배열에 여러 가지 자극을 가하자, 마력입자의 순서가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청년이 가하는 자극에 따라 여러 가지 상태와 조건을 거쳐 원래대로 돌아오는 마력배열의 형태.
“어때?”
레녹이 현미경에서 시선을 떼는 것과 동시에 청년이 물었다.
팔짱을 낀 채로 의자에 드러눕듯이 기댄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도 보였으면 설명해 봐. 이걸 이번 분기 네 정성평가로 해줄 수도 있으니까.”
“…….”
“렌즈 안쪽에서 관측되는 마력배열. 이게 무엇을 연구하기 위한 실험인지 알겠나?”
“…….”
“몰라? 모르면 대답을 하라고.”
레녹이 신기한 기색으로 현미경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청년의 표정이 짜증스레 변했다.
긴장된 연구실의 공기 속에서 말없이 레녹을 힐끗 노려보던 청년이 피식 웃었다.
“그래, 뭐 이상한 일은 아니지.”
어딘가 수긍의 기색이 섞인 조소.
“네가 이걸 알면 연구소 일정도 모르고 여기 낙오되어 있을 리가 없으니까. 넌 내가 초빙한 선생에게 이론을 배울 자격도 없는 것 같군.”
“…….”
청년은 레녹이 보고 있던 현미경을 홱 빼앗으며 말했다.
“그만 가봐. 다음 분기 전까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적당히 박혀 있다 알아서 나가-”
“규칙을 찾으려는 것 치곤 지나치게 단편적인 시도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뭐?”
“적외선과 방사선을 비롯한 자극과 반응을 실험해 보고 있다는 사실은 알겠지만, 공용마법의 회귀성에 대해서만 너무 신경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싶군요.”
아무렇지도 않게 턱을 매만진 레녹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마력입자 배열이 자극에 반응한 뒤 원상태로 돌아오는 건 설계자의 의도가 맞겠지만, 그건 공용마법의 범용성을 지키기 위한 조치일 뿐. 핵심이라고는 할 수 없을 텐데요.”
“너, 너…….”
레녹의 태연한 대답에, 멍하니 설명을 듣고 있던 청년의 눈빛이 확 변했다.
양손으로 레녹의 어깨를 덥석 붙잡은 청년이 살짝 흥분한 기색으로 말했다.
“너, 공용마법에 대해 이미 알고 있군. 아니, 그 정도 수준이 아니야.”
“…….”
“이미 자기 나름대로 마법체계를 연구하고 결론을 내린 건가? 그렇겠지. 그러지 않고서야 방금 내가 뭘 보여줬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어!”
청년이 레녹에게 보여준 것은, 공용마법의 마력입자가 다양한 자극에 반응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회귀성 그 자체다.
본디 마법체계란 이론으로 질서를 구축하고 외부의 변수에 휩쓸리지 않는 법칙을 기반으로 하는 지식.
하지만 레녹이 만든 공용마법체계는 외부의 자극에 유연하게 반응하고 변화하면서도, 끝내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청년이 그 회귀성을 발견하고 연구하고 있던 것은 의외였지만, 레녹의 입장에서 그것 자체는 마법체계의 핵심이라곤 할 수 없는 바.
사실 굳이 따지자면 공용마법체계의 여러 가지 특징 중에서 그렇게 발견하기 어려운 특징이나 비밀조차 아니었다.
그렇기에 청년이 어째서 하필 그 회귀성에 집착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을 뿐.
하지만 그런 레녹의 설명을 들은 것만으로, 청년은 레녹이 공용마법에 대해 상당한 기반지식을 갖추었다는 사실을 단번에 이해한 것 같았다.
어딘가 귀찮은 듯 레녹을 바라보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두 눈을 반짝이며 열의에 찬 시선으로 레녹이 입은 가운을 마구 잡아당기기 시작했으니까.
“이리 와라. 좀 더 재미있는 걸 보여주지!!”
“재미라니…….”
레녹은 그렇게 대꾸하면서도 청년의 손에 이끌려 연구실 안쪽 깊숙한 밀실로 향했다.
“자, 저걸 봐라.”
거대한 유리 수조 안에서 빛을 발하는 눈부신 마력의 형상.
허공에서 유려한 나선을 그리면서 회전하는 입자 배열이, 쉴 새 없이 번뜩이며 밀실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회귀성 자체가 특별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공용마법체계에 존재하는 회귀성이 어떤 식으로 성립하느냐의 문제지. 이걸 봐라.”
청년은 멀뚱하게 선 레녹을 두고 곧바로 수조 아래쪽에 매달린 컨트롤러를 조작해, 입자 배열을 휙휙 돌려서 움직였다.
그 순간, 허공에 떠오른 마력입자 나선 배열에 아까보다 훨씬 강한 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쩌엉……!!
유리창이 쪼개지는 듯한 거슬리는 소음.
아예 한껏 압축된 마력 자체를 마력배열 위로 뒤덮어, 완전히 바꿔 씌우는 듯한 모습.
하지만 청년은 거칠게 흔들리는 유리수조를 신경도 쓰지 않고 밀실 벽면 스크린을 가리켰다.
“자연에 무작위로 존재하는 선천마력을 144배율로 압축해서 강제로 공용마법의 마력배열에 덮어씌우는 거다. 이렇게 하면 서로 다른 마력입자 간의 충돌 과정을 훨씬 상세하게 관측할 수 있지.”
스크린에 떠오른 마력입자 배열이, 청년이 내리꽂은 자연마력과 충돌하며 그 자리에서 미친 듯이 깜박이고 있었다.
“자극에 변질된 마력배열이 스스로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게 아니야.”
청년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변질되는 그 순간 한번 소멸했다가, 원래 입자 배열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다시 재구성되고 있는거다.”
“…….”
“일개 마법체계가 이렇게 독자적인 의지를 가지고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가나?”
멍하니 재구성되는 공용마법의 마력배열을 바라보며 청년이 중얼거렸다.
“이건, 마치…… 누군가 바로 옆에서 마법체계의 오류를 지켜보고 수정해 주고 있는 것 같아.”
“……수정이라.”
“인간의 인지로는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인 의지. 혹은 그에 버금가는 아주 우수하고 정교한 알고리즘이 이 마법체계 안에 담겨 있는 거지. 어느 쪽이든 정말 경이적인 일이다.”
레녹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그만 피식 웃어버렸다.
방금 청년이 언급했던 그 두 가지 가능성이, 아이러니하게도 공용마법 안에 모두 들어가 있었으니까.
입자 단위로 마력을 조작하고 지배하는 레녹의 조작능력과, 전뇌공간에서 태어난 정령의 알고리즘 작성능력.
그 두 가지 능력을 사용해 범용적으로 사용 가능하도록 마법 자체를 ‘최적화’시키는 설계.
어떻게 보면 그것 역시 공용마법체계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간임은 틀림없다.
“우리가 연구해야 하는 건 바일런 교수가 결과로서 내던진 공용마법이 아니라, 바로 이 회귀성을 구성하는 의지 그 자체에 있지.”
유리수조를 꺼버리며 돌아선 청년이 말했다.
“너도 그만큼 공용마법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면 분명 알고 있을 거다. 아니, 이론으로는 증명하지 못해도 분명 느끼고 있었겠지.”
“…….”
청년이 무엇을 하려는지 조금 알아본 것만으로, 그는 레녹에게 있어 과할 정도로 큰 호의를 품은 것 같았다.
“나는 다음 분기부터 새로운 팀을 구성해서, 내가 발견한 이 알고리즘을 분석하는 일에 집중할 거다.”
아까 전의 홀대는 완전히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양손으로 레녹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쥔 청년이 몸을 들썩였다.
“이것을 제대로 연구할 수만 있다면, 단순히 공용마법의 범용성을 규명하는 수준으로 그치지 않아. 이 마법체계의 비밀을 이해한 순간, 우리는-!!!!”
“새로운 공용마법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지.”
레녹이 심드렁하게 던진 그 말에, 청년의 말이 뚝 멈췄다.
흥분에 겨운 표정이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선다.
양어깨를 쥔 청년의 손을 치울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레녹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왜 이런 연구소를 세워서 연구에 집중하고 있는지는 알겠군. 에반 바일런의 도움 없이 공용마법체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나?”
“그, 그건…… 아니, 맞는 말이지만…….”
“회귀성에 대한 접근과 발상은 좋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말문이 막힌 청년을 내려다보며 레녹이 웃었다.
“그건 보여주기 위해 설계된 게 아니라, 제작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깃든 영감의 편린에 불과하니까. 무엇하나 이런 연구소에서는 재현할 수 없는 것들이지.”
“……너.”
“에반 바일런이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아까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말투와 분위기. 가볍게 말을 전하는 것만으로 주변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 듯하다.
둔감한 연구원이라 해도 그 중압감을 느꼈는지, 청년이 파리해진 안색으로 레녹의 어깨를 쥔 손을 놓았다.
“너, 너. 이 연구소 직원이 아니군.”
청년이 더듬거리며 대꾸하다 의자에 걸려 벌렁 넘어졌다.
쿵!!
“크악!! 어,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거지?”
“걸어서.”
레녹의 태연한 대답에 청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말도 안 돼. 연구소를 둘러싼 보안장비는 방위군 지휘부에 공급되는 장물이다! 위조가 불가능한 샬로테의 피부 인식기술을 직접 가져다 썼을 텐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하지?”
레녹의 반문했다.
“중요한 건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이 아닌가?”
“…….”
“오히려 네게는 좋은 일일지도 모르지. 네가 궁금해하던 회귀성에 대해 대답을 들었잖나. 하소연을 들어줬으니 외려 감사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하, 하소연이라니…….”
“공용마법에 대한 네 지론은 잘 들었다. 생각보다는 좀 더 흥미롭더군.”
발끈한 기색의 청년을 두고 레녹이 웃었다.
“다만 네가 했던 말이 사실이라 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천천히 물러서는 청년을 뒤로하고 레녹이 가운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고개를 들어 올렸다.
“네 추론은 꽤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을 텐데, 왜 연구동 중앙이 아니라 이런 외곽에서 연구되고 있는 거지?”
“…….”
“연구소에 여러 시설이나 장비들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는 것치곤, 그걸 사용해서 연구를 한 것도 아닌 것 같고…….”
물끄러미 청년을 바라보는 레녹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혹시 이 연구소, 공용마법이 아니라 다른 것을 연구하기 위해 세워진 건가?”
“……내, 내가 그 말에 왜 대답을 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청년이 동요를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손을 더듬었다.
연구실 책상을 보지도 않고 마구 헤집어서 단말기를 움켜쥔 청년이 말했다.
콰직!
“너야말로 지금 이 연구동을 감시하는 카메라와 시스템이 얼마나 많은지 알긴 하는 거냐? 이미 네 얼굴과 침입까지 전부 찍혀서 모두 증거로 남아 있다고!!”
“그래서?”
“그래서라니!! 이 연구소에 설치된 건 바리츠 사에서 개발 중인 차세대 초인감시시스템이다!”
시큰둥한 레녹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청년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양손으로 단말기를 힘껏 움켜쥔 청년이 그것을 마구 조작하자, 연구실 천장에서 투명한 스크린이 내려와 청년과 레녹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 자리에서 로딩되기 시작하는 스크린을 바라보며 청년이 소리쳤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마력패턴을 기록하고, 술식의 발동과 계통까지 정리해 증거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법적인 조치까지 끝난 물건이라고!!”
“…….”
스크린 너머로 떠오르는 CCTV의 감시화면.
그중에는 지금 이 연구실을 비추는 영상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로 레녹과 청년의 대치를 비춰주는 영상의 모습.
“견뢰처럼 얼굴을 가리는데 미친 마법사가 아니고서는, 대부분의 위장과 노이즈를 해체하고 복구해서 들여다볼 수 있지……!!”
청년이 곧바로 그것을 잡아당겨 레녹의 앞에 보란 듯이 확대하며 소리쳤다.
“이 영상으로 네놈의 침입을 증거로 제출해서, 남은 평생 동안 격리병동에서 썩게 해줄-!!!”
그 말과 동시에 스크린에 시선을 맞춘 청년의 말이 뚝 끊겼다.
덥수룩한 백발 사이로 찌푸려진 두 눈이 스크린 위로 송출되는 영상을 멍하니 보다가, 이내 찢어질 것처럼 크게 뜨였다.
“아, 아…… 안…….”
연구실을 비추는 CCTV의 영상 너머로, 레녹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노이즈로 지워져 칠해진 것처럼, 목 위로 아예 그 형상조차 비춰지지 않는 기이한 모습.
바리츠 사의 초인 감시 시스템을 사용해서도 그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강렬한 위화감.
이상할 정도로 공용마법과 에반 바일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한 그 태도까지.
눈앞에 서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을 방금 자신의 입으로 내뱉었음을 깨달은 청년이 멍하니 레녹을 올려다본 그 순간.
레녹이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며 씩 웃었다.
“들켰나?”
“겨, 견……!!!”
“공용마법에 대해서는 들을 만큼 들었으니, 더 기다릴 필요는 없겠군.”
제대로 말하지도 못하고 입에 거품을 무는 연구원을 보며 레녹이 손을 들어올렸다.
“일단 한 번 뒤집어놓고 생각해 볼까.”
후욱!!
레녹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긴 순간, 연구동 사방을 밝히던 조명이 완전히 꺼지며 주변이 어둠 속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