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85
과연 그 말대로 공무원들은 이곳 주민의 날카로운 시선에 움츠러드는 기색을 보이기는 했지만, 물러나기는 커녕 오히려 걸음을 더욱 빠르게 옮겼다.
그 발걸음이 향하는 방향을 대충 짐작해보자면 44구역 쪽이 틀림없겠지.
“……..”
49구역에서 멋모르고 일을 시작한지도 벌써 일년이 다 되어 간다.
그의 주변을 둘러싼 환경은 아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제 겨우 안정을 찾아가는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언제나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는 법이다.
늘 그렇듯이, 새롭게 적응해 나가는 수밖에.
변화를 막을 수 없다면 적어도 스스로 그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곳까지는 올라가고 싶은 것이 레녹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복잡한 표정의 조든과, 어느새 작업을 멈추고 바깥을 쳐다보는 제니를 눈에 담은 레녹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보니 44구역에서 만난 혈법사 소년은 잘 대피했을까.
레녹의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면, 아마 적절한 시기에 장사를 정리하고 몸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뒤부터는 그가 신경쓸 일이 아니겠지.
레녹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소년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지워버리려 했다.
펼쳐둔 마력의 감각권에서, 방금 전까지 생각하고 있던 소년의 모습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처음 만났을때와 똑같은 불퉁한 표정, 등에 한아름 짊어진 두터운 가방.
사람들 사이로 스며든 소년의 발걸음이, 정확하게 이 술집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레녹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
“왜 그러나?”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레녹은 그렇게 말하면서 제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제니.”
“왜?”
“손님 받을 준비를 하는게 좋겠어.”
“…..뭐?”
누군가가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레녹이 씩 웃었다.
“그래. 아마….. 우유 한잔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일단 내 앞으로 달아두자고.”
더 높이
늦은 밤.
레녹이 새로 마련한 30번대 구역의 아파트 단지.
희미한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서 책을 들여다보는 누군가의 머리가 올라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사를 하면서 새롭게 단장했던 연구실.
그 안에서 마력이 회전하면서 들리는 기이한 진동음이 울려퍼진다.
주변환경을 깔끔하게 정리한 레녹이 본격적으로 토르번 학파의 고유마법을 파고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때 에덴과의 전투로 한껏 끌어올렸던 영감을, 구체적인 이론으로 정립하고 확실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한번 열린 문이 닫히는 일은 없고,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지식과 영감은 여전하다.
레녹의 재능이라면 에덴이 가지고 있던 모든 역량을 남김없이 흡수하고도 남을 터.
필요한 것은 적당한 시간뿐이었다.
‘오늘 잠을 자기는 글렀군.’
밤을 새는 일 따위,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레녹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수면제 통을 찾지 않는 것만으로 내일 아침 햇살을 볼 수 있을테니.
지금은 잠을 자는것보다, 에덴의 연구일지를 탐독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놓치지 않는 일이 훨씬 중요했다.
에덴이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지 좀 되어서 일지를 쓰기 시작한 탓인지, 기초적인 내용은 거의 생략되어 있었지만 오히려 레녹에게는 그것이 더 편했다.
‘확실히….. 가닥이 잡히는 부분이 있어.’
홀로 마력과 마법을 연구해오면서 쌓여만 가던 고민.
에덴의 연구일지에는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이 어느정도는 존재하고 있었다.
[또다시 마탑의 중간수업평가에서 B 랭크를 받았다…. 전격의 흐름을 통제하는 다섯가지 방식 중에서 마지막 역류를 제어하지 못한 탓이다. 마법을 사용하고 남은 마력의 잔여물이 역방향으로 튀어오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그 흐름을 붙잡고 있기가 쉽지 않다. 다음 평가에서 A 랭크를 받지 못한다면 기숙사 지원금이 끊길지도 모른다.]“……….”
물론 그 와중에 이미 죽은 놈의 구구절절한 속사정까지 들춰보아야 한다는 사실은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 지나가듯이 담겨있는 정보만으로 레녹은 많은 것을 배워낸다.
아니, 그것은 새로운 개념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마법을 연구하면서 추측만 하고 확신하지 못했던 실전단계의 개념들을, 이 연구일지를 통해서 확답받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리스와의 대담을 통해서 이론부분의 지식을 보충하는 것과는 또 다른 방식의 성장이었다.
레녹이 내면에서 뻗어나온 거목의 뿌리가 깊어지고, 가지들이 사방으로 쭉쭉 뻗어나간다.
에덴과의 전투를 통해 고유마법 [뇌인]의 원리를 파악하고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일지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토르번 학파에서 추구하는 번개는 무겁고 강렬한 이미지에 가까워.’
한번의 마법에 최대한도로 담을 수 있는 마력과 심상을 쌓아올리고, 그것을 쓸어내듯이 단번에 배출한다.
그 과정에서 필요한 마법의 묘리는 모두 위력과 속도를 높이기 위한 것.
신묘함이나 기능성보다는 위력이라는 파괴마법의 본질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공용마법이 가지는 파괴력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던 레녹에게 너무나도 정확하게 잘 들어맞았다.
압도적인 전투감각으로 여지껏 모든 고난을 헤쳐나왔지만, 결국 레녹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은 [썬더 콜링]에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것은 [썬더 콜링]을 명중시키지 못한다면 레녹의 모든 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강력한 위력을 가진 대신 착탄지점이 명확하고 시전도중에 전조가 존재한다는 단점 때문에, 밥먹듯이 [그래비티 바인드]와 병행하며 사용해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토르번 학파의 고유마법을 그의 공용마법에 더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에덴을 상대할때 사용했던 [뇌인]만 하더라도 극단적으로 짧은 시전시간과 손에서 뻗어나간다는 압도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썬더 콜링]의 위력에 크게 못하지 않았으니까.
이러한 부분을 유념하고 마법의 개발에 접목시킬수만 있다면…..
‘완전히 새로운 마법을 만들어내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
당장 이해가 불가능한 부분에 집착하지 않고 빠르게 일지를 읽어내려간다.
학습에서 중요한 것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반복이다. 연구자료가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니, 차분하게 여유를 가지고 시간을 들일 생각이었다.
‘마지막 장이군.’
일지에 따르면 에덴은 마탑에서도 제법 우수한 학생인 편이었지만, 가진 바 배경이 없고 잠재력의 한계로 인해서 결국 방출 통보를 받았던 모양이다.
그 전까지 안정되어있던 필체가, 마탑을 나온 뒤 중구난방으로 흐트러지는 것만 보아도 그의 심리상태를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 가능했다.
에덴은 마탑에서 방출당한 다음에도 마법에 대한 연구를 멈추지 않은 모양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에 가로막혔다.
일지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절망과 혼란으로 얼룩진 그의 심정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마탑에서 6레벨 군위마법사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백뢰(魄雷)…. 꾸준한 연구를 통해 5레벨의 끝자락에 올라섰지만, 그 너머로 가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전격의 성질변화에 대해선 마탑에서도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미 한번 마력에 실어낸 의념을 바꾼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스승님이 원망스럽다….] [내가 찾아낸 방법이라고는 결국 마력을 한계까지 들이부어서 억지로 전격의 화력을 한단계 위로 올리는 것 뿐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온도가 전격의 성질을 넘어서면서 반쪽이나마 성질변화가 가능해졌으니.] [일단 마력량을 늘리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돈이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일지를 끝까지 읽은 뒤에야 에덴이 보였던 행동거지에 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리스크를 지고서라도 무기사업에 뛰어든 이유.
발전소에 그렇게나 많은 증폭기를 설치해두고 레녹 일행을 상대했던 이유.
그리고 마지막에 레녹이 보여준 [뇌인]에 그가 왜 그렇게까지 발악을 하며 달려들었는지까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이미 죽어버린 상대의 인생을 탐구해서 남는것은 알 수 없는 음울함 뿐이었으니.
떠오르는 쓸데없는 생각을 억누르고 천천히 마력을 끌어올린다.
파직..!!
양쪽 검지 사이에 맺히는 새파란 전류.
레녹은 고심에 잠겼다.
전격계열 공용마법을 굳이 일일이 불러내지 않고도 이렇게 속성성질을 다룰 수 있게 된지는 꽤 오래되었다.
다른 마법에 비해서 전격계열이 특히 더 수월한 것은 레녹이 그만큼 이쪽 계열 마법을 애용했기 때문이겠지.
강력하고 신속하면서 또 직관적이다.
노력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고, 또 단 한번도 레녹을 실망시킨적이 없는 마법이었다.
여기서 한발 앞으로 더 나아간다.
그렇게 결심한 레녹이 마력을 대폭 끌어올렸다.
파지지지지지직!!!!
마력을 들이붓듯이 흘려보내자 양 손에 맺히는 전격의 양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새파란 광선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방 안에 들여놓은 작은 스탠드가 무색할만큼 찬란한 광량으로 가득 차지만, 정작 레녹의 손가락 사이에서 벗어나는 전류는 단 한줄기도 없다.
스스로가 만들어낸 마법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것은 레녹에게 있어 이제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무심한 표정으로 마력의 집합체를 내려다보던 레녹이 손가락을 살짝 비틀었다.
마력 안에 담기는 심상이란 무엇인가?
레녹은 지금까지 마법을 사용한다는 강한 의지만을 생각해왔고, 또 그것만으로도 어떤 방해도 받지않고 미친듯이 내달려왔다.
하지만 이미 발동한 마법을 바꾸기 위해서라면 그 안에 담겨있는 의지도 갈아치워야 하는걸까.
‘그 말에는 동의할 수 없군.’
에덴은 그렇게 생각하고 좌절한 모양이지만, 레녹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심상이라는 것이 그렇게 가치가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마법사들과 그는 출발선부터 다르다.
그는 스스로의 재능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수준인지, 또 존재의 한계에 닿아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무수한 페널티를 몸에 주렁주렁 달아가면서까지 손에 넣은 불멸의 자질이다.
그런 그가 만들어낸 심상이, 조립해낸 의념이 고작 더 강력한 마법을 위해서 갈아치워도 될만한 것일리가 없다.
레녹은 당장 하루 앞의 미래조차 확신할 수 없었지만, 마법에 대해서라면 그 누구보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스스로를 관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필요한 것은 더 고결한 심상이나 수준높은 의념이 아니다.
그저, 무지를 깨닫기 위한 작은 계기 정도라면 충분했다.
쩌저저저적!!
그 순간.
레녹의 두 손 사이에서 흐르던 새파란 전격의 파도가 마치 껍질을 벗듯 갈라지면서 그 안애서 새하얀 속살을 내비친다.
물컵에 잉크 한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안에서부터 자라난 백색의 전류가 빠르게 푸른 마력광을 잡아먹고 레녹의 양 손을 눈부신 광채로 뒤덮었다.
에덴이 남은 모든 시간을 써서 고민하고 또 좌절했던 문턱.
더 높은 경지로 향하는 계단을 레녹은 아무렇지도 않게 밟고 올라선다.
그제서야 레녹의 입가에도 희미한 웃음이 비치기 시작했다.
위로, 더 위로.
아직 가야 할 길은 한참 멀리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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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을 죽이고 시거 뱅 갱단을 무너뜨린뒤로 한달이 지났다.
그동안 레녹은 특별한 일이 없이 두문불출하면서 마법을 연구하는 일에 매진했다.
제니와 간간히 안부를 주고받는 연락을 제외하면 밖에 나가는 일은 식료품을 사가거나, 아리스와의 약속뿐.
낮에는 도서관에서 아리스와 만나서 정신나간 사람처럼 혼자서 떠들기를 반복하고, 밤에는 에덴의 연구일지를 때가 탈때까지 넘겨보기를 반복한다.
삼일 연속으로 밤을 샜다가 졸도한 뒤로, 파노아 측의 인맥을 이용해 스테모니아를 하나 더 구매해먹을 정도.
아직 연초의 폐해가 몸에 쌓이지도 않았는데 쓸데없는 지출일수도 있겠지만, 레녹은 지금 이 시기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의 재능과는 상관없이 배움에는 때와 시기가 있는 법이다.
아리스에게 이론을 배우고, 연구일지로 실습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이 기회가 언제 다시 찾아올지 레녹은 알 수 없었다.
자금과 시간, 그리고 상황이 허락할때 전력을 다해야 한다.
사선을 넘나드는 의뢰를 몇번이나 성공시켜가며 얻어낸, 너무나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결과 레녹은 마법에 대한 지식과 능력 양면에서 그야말로 미친듯한 성장을 일궈내고 있었다.
단순히 전격계열 뿐만 아니라 공용마법을 통채로 개조하면서 마법 체계를 점진적으로 발전시킨다.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영감과 상상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온갖 마법에 실험해보고, 또 뛰어넘는다.
그 수준은 이미 감출수 있는 수준을 아득하게 넘어서 돋보이고 있었다.
레녹 스스로의 직관을 아리스에게 숨길수도 없어질 만큼.
“…그래서 원소계열 마법을 조합하는 방식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상 지금의 원소계열 마법은 속성 자체를 깊게 파고들어 발현하기보다는 즉석에서 조립해내는 식에 가깝지 않습니까.”
“……….”
“솔직히 제가 생각하기에 그리 효율적인 방식으로 보이지는 않는군요. 물론 그 과정의 최적화 자체는 무수한 연구를 통해서 거의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겠지만, 공정의 매커니즘을 개선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지껏 명쾌한 해답이 없는 상황 아닙니까.”
아리스가 빤히 그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도 알지 못한 채 레녹이 열변을 토했다.
“사실상 이중으로 조립하는 공정을 버리고, 톱니바퀴처럼 두개의 축이 돌아가면서 마법이 하나씩 맞물리도록 설계한다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예?”
너무 혼자서만 떠들어서 질리기라도 한 걸까.
보기 드물게 무안함을 느낀 레녹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려는 찰나.
아리스가 갑자기 품안에서 명함 한장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