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riter in the Corner of the Room RAW novel - Chapter 106
106. 서바이벌 오디션. (2).
20분은 빠르게 지나갔다.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김시우가 시작을 알려도 사람들 대부분은 선뜻 먼저 나서지 않았다.
처음인 만큼 다른 사람들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고, 나중에 심사를 볼수록 대본을 더 외울 수도 있었다.
시우 필름 소속 배우들의 수도 한계가 있기에 250명은 동시에 심사할 수는 없어 차례대로 봐야만 했다.
그리고 머뭇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한 소녀가 나섰다.
바로 1조를 이끌던 김민지였다.
김민지는 바로 ‘Don‘t forget’을 담당하는 시우 필름 소속 배우와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연기를 시작했다.
“너니? 우리 딸 죽인 년이?”
“뭐야? 아줌마 나 알아? 얻다 대고 년이래!”
“희진이 알지? 나 걔 엄마야.”
엄마라는 캐릭터 자체는 김민지의 외모와 조금 거리가 멀었지만, 연기력으로 그것을 보완했다.
“아…. 그년 엄마셨구나? 그래서 어쩌라고요.”
“그래, 너희에게 사과를 바란 내가 잘못이지….”
“사과?”
“그래…. 조만간 다시 보자. 그때는 최선을 다해야 할 거야. 살고 싶으면.”
둘의 연기를 보는 김시우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저 친구 고등학교 3학년이었나? 확실히 잘하네….”
홍수연을 처음 봤을 때만큼 큰 충격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오디션에서 가장 눈에 띄는 참가자였다.
실력, 자신감, 외모까지 빠지는 부분이 없었다.
‘성격은 뭐…. 조금 더 봐야겠지만…. 성실하긴 하겠네.’
저 정도의 연기력을 보여주려면 재능만으로는 부족했다.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나오는 연기력이었다.
둘의 연기가 끝나자 시우 필름 소속 배우의 입에서 합격이라는 소리가 나왔고,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김민지는 인사를 하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김민지가 화려하게 시작을 알리자 이내 다른 참가자들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단상 위에 올라갔지만, 결과는 생각보다 참담했다.
탈락의 연속.
심사를 본 사람이 100명이 넘어갔는데 합격자는 30명이 고작이었다.
“생각보다 빡빡하게 보네?”
“앞으로 같이 연기를 해야 할 친구들이니까 더욱 까다롭게 보는 거겠죠.”
“흐음…. 너무 실력으로만 뽑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분명 탈락한 사람 중에서도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다.
‘뭐…. 그것도 본인의 운이겠지….’
그렇게 총 3시간에 걸쳐 250명의 심사가 전부 끝이 났다.
합격자는 50명.
탈락자는 200명이었다.
“합격자분들은 축하드립니다. 다음 안내가 있기 전까지 푹 쉬시면 됩니다.”
푹 쉬어도 된다는 말에 합격자들이 소리를 질렀고, 그에 반해 탈락자들은 침울한 얼굴로 건물 밖에 있는 버스에 올라탔다.
“50명…. 생각보다 적게 남았네. 이 정도라면 내일이면 다 끝나겠어.”
“그러게요. 그래도 연기력만 본 건 아닌 것 같아요.”
이유진의 말에 김시우가 합격자들이 있는 곳을 보자 확실히 연기력보다 잠재력이 높다고 생각한 참가자들이 보였다.
잠시 후 점심시간이 끝나고 김시우와 스태프들이 한곳에 모였다.
“50명밖에 남지 않아서 바로 마지막 심사로 가도 될 것 같아. 마지막 심사가 뭔지는 다들 알고 있겠지?”
“네.”
“그럼 오늘 저녁에 다들 강당으로 불러줘.”
“네, 작가님.”
그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강당에 모이자 김시우가 마이크를 잡고 마지막 심사에 관해 설명했다.
“여러분 마지막 심사입니다. 이번 심사는 바로 저희 시우 필름과 호흡을 맞춰 다음 웹드라마를 촬영하는 겁니다. 이후 판단은 저와 시우 필름의 스태프, 배우들의 투표로 합격 여부를 결정하겠습니다. 이유진 감독님. 대본 나눠주세요.”
“네, 작가님.”
이유진이 직접 시우 필름에서 다음에 촬영하려고 했던 대본을 나누어주었다.
“이 대본은 너튜브에 올릴 웹드라마의 대본입니다. 촬영은 일주일 뒤입니다. 여자분들은 여자주인공으로 남자분들은 남자주인공으로 준비하시면 됩니다.”
이유진의 설명에 사람들은 서둘러 대본을 살펴보았다.
10분짜리 짧은 웹드라마.
50명.
하지만 여자주인공 한 명과 남자주인공 한 명으로 맞추기엔 여자 합격자가 5명 더 많은 30명이었다.
“흠…. 혹시 이 중에서 남자주인공 역할을 해보고 싶은 여자 참가자 있으십니까?”
김시우의 질문에 사람들은 망설이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없나요? 흐음…. 이러면 촬영을 더 많이 해야 하는데….”
“제가 할게요!”
모두가 나서지 않을 때 한 여자 참가자가 손을 들었다.
“이나현 참가자. 맞으시죠?”
“네!”
“그럼 이나현 참가자 말고 또 있으신가요?”
“저도 하겠습니다.”
이나현이 남자주인공 역을 한다고 하자 뒤이어 김민지가 손을 들었다.
“좋습니다. 더는 없으시죠? 그럼 나머지 세 분은 공평하게 무작위로 뽑겠습니다.”
그렇게 이나현, 김민지를 제외한 3명이 더 남자주인공 역을 맡게 되었다.
“남은 기간 1주일. 그동안 열심히 연습하신 후 촬영에 임해 주시면 됩니다. 물론 그전에 준비가 끝나면 바로 말씀해 주시고 촬영하셔도 무방합니다. 아! 그리고 파트너는 서로 합의하에 구하시면 됩니다.”
일주일 동안 참가자들은 각자 파트너를 고른 뒤 연기를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역시나 다툼은 빼놓을 수 없었다.
“아니! 여기서는 조금 더 힘을 주고 말해야죠!”
“오히려 힘을 빼야지. 혹시 연애 안 해보셨어요?”
“지금 연애 얘기가 왜 나와요!”
서로의 연기를 지적하며 싸우는 일이 허다했다.
그리고 유독 잔소리를 듣는 배우가 있었으니 바로 이나현이었다.
“언니, 조금 더 박력 있게 부탁드릴게요.”
“어? 어…. 알겠어.”
이나현.
김시우가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특이한 참가자였다.
연기 실력을 따지자면 오디션 참가자 중 하위권이었다.
다만 그녀의 특이한 점이라면 특유의 분위기였다.
아마 이 중에 한 명만 뽑으라고 한다면 김시우는 그녀를 뽑았을 것이었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해맑은 여자주인공이 절로 생각났다.
연기를 좋아하고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도 잘 챙겼고, 카메라맨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김민지랑은 정반대의 느낌이네….’
이나현과 반대로 김민지는 연기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정직했다.
다만 그래서인지 그녀를 보고 있으면 되레 평범하다고 느껴졌다.
김민지의 수준으로 연기하는 배우는 이 업계에서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었다.
‘둘이 합치면 딱 좋은데 말이야. 뭐…. 2주 뒤에는 조금 바뀌어 있겠지.’
그렇게 총 2주에 걸친 마지막 심사가 끝이 났다.
촬영이 끝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 합격자 발표만을 기다렸다.
반대로 스태프들은 편집으로 인해 더욱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이 지나 합격자들의 영상을 너튜브에 올리는 것으로 합격자를 발표했다.
최종 합격자는 김민지와 그의 친구 3명, 이나현, 40대의 백종수 외 4명. 총 10명이었다.
“확실히 실제 친구 케미는 무시 못 하지. 연륜도 무시 못 하고.”
김민지와 그녀의 친구들은 서로 호흡을 맞추며 그들만의 케미를 뽐냈고, 나이가 있는 중년 배우들은 그들만의 연륜을 보여주었다.
오디션이 끝나고 합격한 사람들은 시우 필름 사무실에서 계약서를 작성했다.
김민지와 친구들은 얼른 촬영하고 싶다며 10대 특유의 발랄함을 보여주었다.
백종수를 비롯한 40~50대 배우 3명은 눈물을 흘리며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고 연신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이나현과 나머지 2명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사인을 마쳤다.
“나현 씨?”
“아! 네….”
“앞으로 부지런히 노력해야 할 거예요. 이유는 말 안 해도 아시죠?”
“네! 정말….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나현은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연기를 시작한 케이스로 연기 실력만 놓고 보면 시우 필름에서 가장 낮은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김시우는 개인적으로 제일 기대되는 배우였다.
“그래도 제 1픽은 이나현 배우였으니까요. 제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주세요.”
“네, 작가님.”
“그럼 궁금한 건 저쪽의 이유진 감독님이나 스태프들한테 물어보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나현이 집무실에서 나가자 김시우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지금 바쁘신가요?”
-아니에요, 작가님. 뭐 부탁하실 일 있으세요? 아니면 계약서에 무슨 문제라도….
김시우가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푸른 법무법인의 이해수 변호사였다.
“다른 게 아니고 이번 겨울에 같이 일본 가실래요?”
-네? 일본이요?
“네. 제가 일본에서 작품 낸 건 변호사님밖에 모르거든요. 그리고 변호사님이 저번에 여행을 한 번도 안 가보셨다고 하시길래…. 너무 바쁘시면 저 혼자 가구요.”
-일단 정확한 날짜 나오면 알려주세요. 일단 회사에 언질은 해놓겠습니다. 아마 웬만하면 연차 낼 수 있을 거예요. 입사한 이후로 한 번도 쉰 적이 없으니까요.
“어…. 요즘은 좀 어떠세요?”
-그냥 늘 피곤하긴 하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열심히 일해야 가족들이 편하니까요.
언제 들어도 이해수의 가족사랑은 엄청났다.
그런데 과연 그녀의 가족도 그녀의 희생을 알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보살핌을 받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매번 자신이라도 챙겨주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럼 날짜 나오면 알려드릴게요. 그리고 조만간 같이 식사해요. 매번 부탁만 드렸는데 제가 사겠습니다.”
-네! 이번 주 주말 어떠세요?
“알겠습니다. 이번 주 주말 점심에 만나는 걸로 하죠. 제가 집 앞으로 데리러 가겠습니다.”
-아뇨! 식당에서 만나요.
“아…. 네. 알겠습니다.”
어째서인지 집 앞으로 데리러 간다고 하자 단호하게 거절하는 이해수의 태도에 김시우는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통화가 끝나고 김시우는 식당을 예약한 뒤 이해수에게 식당의 위치와 약속 시간을 문자로 보냈다.
한편, 문자를 받은 이해수는 서둘러 헤어샵을 예약했다.
김시우가 데리러 온다는 것을 거절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해수는 김시우와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옷과 신발을 미리 사 두었었다….
‘이번엔 꼭 자연스럽게 데이트하겠어.’
이해수와 약속한 주말 점심.
약속 장소에 평소와는 다른 모습의 이해수가 나타났다.
깔끔한 단화에 하늘하늘한 원피스.
머리는 파마를 했는지 귀여운 얼굴과 어울리는 헤어스타일이었다.
“변호사님 여기요!”
“아!”
손을 흔드는 김시우를 발견한 이해수가 달려왔다.
“자…. 작가님. 안녕하…으익….”
달려오던 이해수가 김시우의 코앞에서 자기 다리에 걸려 넘어지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하지만 넘어지리라 생각했던 이해수의 몸은 중간에 멈춰 있었고, 눈을 질끈 감은 이해수의 귀에 김시우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죄…. 죄송해요.”
“그러니까 평소에 다리 운동도 좀 해주세요. 오랜만에 뛰니까 다리가 엉키죠.”
“할 말이 없습니다.”
“아니면 다음부터는 걸어오세요. 걸어와도 저 도망 안 갑니다.”
“네….”
이해수는 창피한지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답을 이어갔다.
‘마…. 망했어. 처음부터 추한 모습을 보여줬어.’
그녀의 다짐은 만난 지 10초 만에 산산이 부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