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01)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00화(101/377)
< 100편 >
그날은 얄미울 정도로 날씨가 화창했고 기분 좋게 코끝을 스치는 바람도 선선했다. 이렇게 좋은 날씨는 일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날씨였다.
“비서실장. 저건 뭐야?”
서류로 만들어진 마천루 도심 사이에서 유독 키가 작은 녀석이 있었다. 다른 서류들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수준의 위용을 자랑한다면, 빌라 수준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한 손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인지라, 그 두께가 가히 법전에 비교할 법했다.
“전부 CIA 관련 보고서군요. 몇몇 사항들을 요청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래, 그랬었지.”
국내외 비밀스러운 첩보망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CIA에 맡기지 않으면 어디에 맡긴단 말인가? 부시는 CIA에 많은 요청을 보냈고, CIA는 충실하게 이를 수행했다.
가끔 멋대로 폭주하려는 경향이 있어 다소 고삐가 삐거덕거리는 경우가 꽤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간신히 어떻게 잡아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 CIA에 무슨 일을 시킨다는 것 자체가 부시의 말초신경을 적극적으로 자극했다. CIA 하면 영화에서 무조건 나오는 단골 조직 아닌가?
물론 국민 피땀으로 이상한 작전을 주문한 것은 아니었고 업무에 사소한 행정 명령 몇 개 내린 것에 불과하긴 했다.
어쨌거나 요컨대 이 두텁기 짝이 없는 것들은 부시가 시킨 일들에 대한 정기 보고서 혹은 완료 보고서라는 소리였다. 다만 부시는 그동안 안 보고 산 것도 아닌데, 그 사이에 뭐 저리도 많이 쌓였는지 의아해할 뿐이었다.
“제일 두꺼운 게 국내 동향이고, 이 굵은 게 필리핀 동향이고, 이건 한반도 동향. 이건 뭐야?”
부시가 집어 든 것은 단 한 장짜리 보고서였다. 중간에 끼어있어서 자칫하면 보지도 못하고 넘길 뻔했지만, 혼자서 양식이 좀 달라서 눈에 잘 들어온 덕분에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하긴 만약 넘겼더라도 비서실장이 눈치채고 나중에 줬겠지만. 그런데 보고서 이름이 참으로 이상했다.
“뭐? 국방 증진 감금 보고서?”
감금이면 감금이지, 무슨 국방 증진 씩이나 되는 이름을 붙인단 말인가? 제목 하나는 참으로 거창하다 싶었다.
‘그런데 감금이라고? 내가 그런 명령을 내린 적 있었나? 뭐, 혹시 테러리스트인가?’
내용을 샅샅이 훑어본 부시 입에서 기어코 노성이 튀어나왔다.
“아니, 미친. 잠깐 올림픽 끝날 때까지 붙잡아 두랬더니 왜 무슨 해외까지 가서 밀실 감금을 해놨어!?”
모두가 알고 있듯 정말로 확실한 게 아니라면, 세세한 부분은 웬만하면 전문가들이 하는 말을 듣는 게 좋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는 부시 또한 틀리지 않아 일 처리 방식은 대부분 CIA에게 일임하고 있었다.
왜냐면 부시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CIA가 대통령의 지침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정도뿐이었으니 말이다. 이는 김부시가 아니라 조지 W. 부시라고 해도 그렇게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도리어 이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대통령이 보고 받는 게 더 이상한 거였다.
“아마 수단을 가리지 말라는 부분을 과대해석한 모양이군요.”
‘돌겠군. 무슨 즉결심판도 아니고. 이런 저지 드레드 같은 시키들을 봤나.’
CIA의 잘못이기도 했지만, 이는 명백히 부시의 잘못이기도 했다. 지침을 제대로 내렸어야 했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명령을 내려버리니 진짜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탓이다. CIA가 어떤 성질을 가진 조직인지 확실히 인지하고 명령을 내렸어야 했는데 말이다.
지금 와서 제임스 휴이시를 그냥 풀어주자니 그것도 좀 그랬다. 일단 정체는 들키지 않았으니 남미 카르텔에게 잡혀 있는 상황을 연출 중이라고 적혀 있긴 한데. 일단 잡아두는 게 주요 목적이니 심리적 압박은 가했어도 고문은 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지.”
하긴 생각해보면 이 인간이 몇몇 선수들의 인생을 조져놓지 않았던가? 올림픽에서 선수들이 어떤 심정으로 나가는지 아는가? 평생 개고생해서 따낸 출전권으로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전성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출전하는 곳이 올림픽이 아니던가?
이렇게 절박하기에 수많은 선수가 들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약물을 해대는 것이다. 설마 선수들이 약을 먹으면 들키지 않을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해서 했겠는가? 정말로 일생에 한 번. 많아도 두 번뿐일지도 기회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아서 하는 거지.
그런 선수들의 인생을 짓밟았으니 이 정도는 당해도 싸긴 했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CIA가 이렇게 과격하게 일 처리를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개선의 여지가 있었다. 일단 과격하긴 하지만, 제 기능은 한 셈이니 통째로 갈아엎을 정도는 아니었고, 지침을 좀 유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부시는 생각했다.
“이 건은 나중에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지. 그런데 이건 뭐지?”
한반도 첩보 보고서 사이에 이상한 게 있었다. 첩보는 첩보인데, 10일 뒤에 올 편지를 지금 받았다고 해야 하나?
“북한에서 교환학생을 원하고 있다고?”
아직 북한에서 미국에 직접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중앙정보국이(CIA)라는 이름이 겉멋이 아니라는 듯 북한의 사정을 위에서 아래까지 탈곡기 안에 넣고 탈탈 털어내고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가끔 브레이크 고장 난 폭주 기관차처럼 막 나가는 것만 아니면 참으로 유능한 조직이었다.
“일종의 반면교사 체험이라고 합니다. 계획 입안자는 김정일입니다.”
심지어는 아주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란다. 명분이야 적혀 있는 데로 ‘하층민 고혈을 빨아 드높은 빌딩 세우는 미 제국주의자들의 실상을 보고 오라!’라곤 하지만, 무슨 자기소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까 이게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김정일은 자유 세계와의 교류를 가장 막아야 할 사람 아닌가? 공포정치 철회와 쇄국 철폐는 곧 김씨 정권의 종말을 의미했다. 그러니까 미국에 있어서 좋은 거긴 한데, 도대체 김정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분간이 가질 않으니 그렇다.
“저승길 저승사자와 함께하는 신나는 임종체험 같은 건가?”
“예?”
“아니, 뭐 그래. 계속 말해봐.”
“그래서 결론은 북한에서 약 서른 정도 되는 교환학생을 미국의 대학으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거기 적혀 있듯 대부분이 해외 문물에 선망을 가진 고위층 자녀입니다.”
‘뭐지? 드디어 김정일이 치매가 온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뭐 못자리에서 미리 삼도천 티켓이라도 예약해둔 건가?’
“자꾸 왜 그런 표정을 지으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원한다면 보내줘야지. 우리나라에 자진해서 갈 학생이 있는지는 고사하더라도.”
도대체 그 누가 북한에 가고 싶어 하겠는가? 혹시 모르지, 북한의 프로파간다에 눈이 멀고 김정일의 주체사상에 감화되어 가고 싶어 하는 이가 이 드넓은 미국 땅 전체를 뒤져보면 한둘쯤은 찾아보면 있을지도. 과연 그 사람이 학생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찾아보면 꽤 있을 것 같습니다만.”
“뭐? 왜?”
“좋든 싫든 대통령님께서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유명해졌고, 덕분에 남한보다 북한이 더 유명해질 지경입니다. 이건 원래도 그랬습니다만, 더 심해졌다는 이야기죠.”
이는 전혀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었다. 올림픽에서 그 난리를 쳤으니 이제 한반도를 모르는 곳이 없었다. 그리고 한반도가 남한과 북한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까지 말이다.
“그리고 이 시국에 가면 대접 받을 걸 아니까요.”
‘음, 아닐 건데.’
대접도 해줄 수 있는 게 있어야 해주는 것 아닌가. 풍족한 삶을 살아온 미국인들에게 북한이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다고? 정말로 또 어디 슬럼가에서 쫄쫄 굶어가면서 살아가는 이들이면 모를까.
하긴 생각해보면 고위층은 하루에 2000달러가 넘는 돈을 식사비용으로 소모한다고 한다. 이를 참고하여 생각할 경우 김정일이 직접 개입하면 꽤 호화로운 유학이 될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유학의 근본이자 가장 중요한 정서적이고 지적인 대화는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하고 몸만 호강하다가 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것조차도 아니면 북한의 기초과학력을 보라며 연구실과 북한 대학만 뭐 빠지도록 돌리거나 말이다.
‘아니면 도리어 이쪽이 목적인가?’
김정일이 생각하고 있는 게 ‘북한은 이렇게나 잘살고 있으니 주체사상의 우월함을 미국에 전파해주시오!’ 같은 시도일지도 모르지. 이는 6, 70년대 북한에서 남한에 자주 써먹던 수법이다. 요컨대 ‘느그들은 이런 거 없지!’였다.
그때 사용했던 건 주로 손목시계 따위였지만, 북한에서 나오는 물건 중에 미국인들이 딱히 탐낼만한 물건은 없으리라. 북한제 총이라면 또 모를까. 도리어 그쪽이면 수집품으로서 제법 짭짤한 가격에 팔아치울 수 있으니 말이다.
“이 부분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지시하게. 그리고 비합법적이고 비인륜적인 수단은 앞으로 좀 자제하도록 하고. 준법 시민들이 납치가 뭐야 납치가.”
부시는 그렇게 CIA 보고서를 쭉 읽더니 빠르게 마무리 지었다. 나머지 보고는 변동 사항 없이 거기서 거기였던 탓이다. 다만 필리핀 보고서의 경우는 다른 보고서와 대조하기 위해서 다른 곳으로 빼두었다.
“다음.”
빌라를 먹었으니, 이번에는 빌딩을 먹어 치울 시간이다. 느낌만이라면 건물 따먹기 게임이 따로 없었지만, 훑어본다곤 하나 한 장 한 장 모조리 읽을 생각을 하니 너무 기뻐 엔도르핀이 온몸을 뛰노는 기분이었다.
혹자는 엔도르핀은 큰 스트레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뇌가 최후의 수단으로 내놓는 일종의 방어 기제니 혹여 부시의 몸에 돌고 있는 게 행복을 느낄 때 나오는 도파민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었지만, 아무리 도파민이 나올 정도로 좋아하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직장이 되어버리고 책임감이 부여되기 시작하면 도파민이 있을 자리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엔도르핀이 대체하게 된다.
물론 진짜로 엔도르핀이 흐르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부시가 업무를 볼 때 큰 기쁨과 동시에 큰 스트레스를 동시에 받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아, 제기랄. 차라리 이게 다 돈이었으면.’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그럴 마음만 든다면 아예 100달러로 이것보다 더 높은 탑을 쌓고 수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원래 대통령직에 있는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는 게 원체 많으니 이것저것 많이 비벼 먹지 않은가? 부시도 일단 사람인지라 유혹이 들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긴, 이것보다 더 쌓아서 뭐해.’
당장 지금만 해도 부시 가문이 가진 권리를 이것저것 처분하기만 하면 지폐 묶음으로 탑을 쌓고자 하면 얼마든지 할 수도 있었다. 다른 재벌도 아니고 석유 재벌이니 말이다. 부에 관심이 없다는 건 아니었지만, 딱히 이것보다 더 많은 부를 탐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만약 이만큼 돈이 있었다고 해도 부시라면 기꺼이 국방에 투자하여 항모나 하나 더 뽑고 말지, 부정한 부를 축적하고 싶어 하진 않았다.
“아니, 이건 또 뭐야.”
“중국의 은 매입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씨발 뭐야?(W, What the Fuck!?) 이거부터 알려줬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