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09)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08화(109/377)
< 108편 >
그동안의 북미회담은 북한 밖에서 이뤄진 것들이었다. 이는 서로 간의 체면이나 정치학적인 복잡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는데, 역시나 가장 큰 이유는 일단 휴전이라곤 하나 서로 적국이었기 때문이다. 휴전과 종전은 엄연히 다른 것 아니겠는가?
요컨대 그런 국가에 상대 적국의 수장이 날아간다는 발상부터가 제정신이 아니다 이 소리다.
미국의 시각으로 봤을 때도 제정신이 아닌데, 하물며 북한이라면 어떻겠는가? 회담 장소도 문제였다. 차라리 경수로나 남포항에서 하면 모르겠는데, 정신 나간 미 대통령이 굳이 다른 곳에서 하시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평양’으로 낙점되었다.
“이거 완전히 미친 거 아니니?”
평양에 그를 맞이할만한 곳이 어디 있단 말인가? 차라리 류경 호텔이라도 완공되었으면 모를까, 그나마 당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류경 호텔은 흉물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미국이라는 거인에게 쉴 틈 없이 두들겨 맞으며 제한적으로 문호를 개방하고 남포항에 항모전단이 주둔하자 국외로부터 자금이 차차 들어오기 시작해서 다시 공사를 재개하긴 했었다. 그러나 10년의 공백은 돈만으로는 메꾸기 힘든 것이었다.
물론 돈으로 할 수 없는 사태를 직면했다면, 본인 지갑이 얇은 게 아닌지 상기해보길 권장하는 바이나. 북한 지갑이 그리 두꺼운 편도 아니고, 특히나 류경 호텔은 적당히 두꺼운 지갑만으로는 살리기 힘들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거 이러다 사고라도 나는 거 아니니?’
반미 감정은 김정일 정권 유지에 있어서 시작과 끝이요. 최후의 보루였다. 물론 주체사상이 있긴 했지만, 아직까진 주체사상보다는 반미 감정이 한참 더 잘 먹혔다.
어쨌거나 김정일 정권이 유지되기 위해선 이 반미 감정을 다른 적절한 무언가로 교체할 시간이 필요했다.
‘한 5년만 나중에 오면 어디가 덧나나? 아니, 적어도 평양만 아니면 되는 거 아니니? 도대체 왜 이런단 말이니! 왜!’
그래도 구태여 꼽아보자면 그나마 가장 나은 게 금수산태양궁전이었다. 적어도 이곳에선 주체사상과 젊은 혈기로 무장한 애국자의 손에 의해 미 대통령의 머리통에 바람구멍이 날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허, 고작 그런 이유로 금수산태양궁전이라니? 조국 촌토를 피로서 사수하자던 아바이 수령 동지가 유리창을 깨고 일어날 노릇이구먼?’
다른 후보지로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나 릉라도 5월 1일 경기장이 있었지만, 우선 전자는 완전히 논외였다. 본부 청사는 당 관계가 아니면 북한 주민들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건물인데, 그런 곳에 미쳤다고 적의 수괴를 초대한다는 말인가?
후자의 경우는 수용인원 세계 1위라는 빛나는 기록과 세계 1위였던 미시간 스타디움을 찍어 눌렀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상징적인 측면만 보면 썩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마찬가지로 주체사상 총포탄이 날아올지 누가 안다는 말인가?
물론 포장이야 할 수 있다. ‘미제 수괴가 드디어 영원한 국방위원장께 굴복했다!’라고 말이다. 1995년 평양 국제축전 당시에 일본을 초대할 때도 비슷하게 했다.
차라리 남포항 점거, 경수로 폭발 사건 등 일련의 사건들이 없었으면 ‘김정일 장군 동지의 평화를 위한 구국의 결단!’ 따위로 아가리라도 털지. 어떻게 이 상황에서 미국을 좋게 포장한다는 말인가? 결단코 무슨 일이 있어도 단 한 뼘조차 내주지 않을 것이라던 국토를 두 번이나 침탈당한 북한 인민들의 반미 감정은 가히 6.25 전쟁 시절을 방불케 했다.
‘저녁 식사는 옥류관에서, 숙박은 고려 호텔 아니면 양각도국제호텔.’
사실 평양이 워낙 좁은 곳인지라 선택지도 없었다. 솔직히 김정일이라고 저 빌어먹을 수괴의 모가지를 잡아 족치고 싶지 않겠는가? 그저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으니 그렇지.
‘선택지가 없어 선택지가. 이거 완전히 고 아새끼한테 놀아나는 기분이구먼, 기래?’
“장군 동지! 정원 긴급 소집했습네다! 명령만 내려주시라요!”
김정일이 머릿속으로 미제의 수괴가 북한에 방문함으로써 본인이 먹을 맛깔나는 엿들을 예상하는 동안 평양의 고위 관료들이 김정일의 집무실에 집합했다. 어차피 소집해봤자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수틀리면 삼대가 포탄과 맞선볼 준비나 하라는 말 정도였긴 했지만 할 말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수틀리는 정도에 따라서 그게 양키의 분노가 실린 미제 포탄이냐, 아니면 김정일이 친히 하사하는 북한제 포탄이냐 정도의 차이였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군부나 당원들은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점 정도였다.
북한을 이끌어가는 주축인 고위 장교나 당원들은 항상 주체사상을 부르짖으며 강조하지만,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야말로 주체사상과 가장 먼 인종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앞으로 할 말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주겠지.
“기래. 다들 왔나?”
고작 한 발자국만 삐끗해도 본인의 체제가 무너지리란 사실을 직감한 김정일은 그 어느 순간보다도 차분했다.
“모두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미제 전투기가 내일 당장 우리 공화국에 날아온다고 통보해왔다우.”
거기까지 말한 김정일은 입을 다물었다. 막상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곤란했던 탓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고놈 뒷구녕을 헐 때까지 핥아줘야 한다고 말할 순 없잖은가.
“그 전투기가 몸소 날아온다고 했으니, 우리 공화국도 최고 례우를 갖춰야 한다우.”
그러나 마땅히 돌려 말할 거리가 생각나질 않아 최대한 비굴하고 암울한 단어들을 배제해 직설적으로 말하기로 했다. 그게 먹혀들었는지, 아니면 주제가 하도 충격적이라 그런 건지 평소라면 김정일의 노기 서린 목소리 말곤 침묵만이 있었을 집무실에 타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즉, 백년원쑤 미제 수괴에 대해 경례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십네까?”
참으로 신랄하고 파격적인 단어 선정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김정일도 무어라 화를 낼 수 없었다. 도리어 실소가 튀어나왔다. 이보다 잘 표현해낼 수 있는 문구가 존재할까? 백년원수 미제 수괴에게 경례라니!
“그나마 다행인 건 평양으로 온다는 거 아닙네까?”
하긴 도리어 평양인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평양은 북한의 핵심계층이 살아가는 도시인지라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으니까. 1박 2일 동안 공화국 일주라도 한다고 했다간 그때야말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주체사상을 잘못 해석하는 이들이 있을까 봐 내 이리도 불안한 거 아니겠니?”
“장군 동지께선 걱정 붙들어 매시라요. 평양은 완전히 통제되고 있습네다. 만일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 조선인민군은 언제나 당중앙을 사수하는 방패가 되겠습네다!”
그러나 통제라는 것이 통제했다고 해서 진짜로 통제되는 것이던가. 김정일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장군 동지! 미 대통령이 이륙했다는 소식입네다. 지금부터 준비해도 시간이 빠듯합네다.”
북한의 정치판이라는 곳이 오로지 눈치 하나로 살아가야 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적응 하나는 정말로 빨랐다. 어느새 호칭이 미제에서 미 대통령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젠 더 할 말도 없었다. 김정일은 다시 한번 삶과 죽음의 경계에 발을 들이기로 했다.
“진행하라우.”
평양은 위성에서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분주하게 준비했고, 머잖아 부시가 타고 있는 에어포스 원이 북한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착륙했고, 비행기 계단부터 레드 카펫이 펼쳐졌다.
부시가 비행기 문이 열리고 나서 첫 번째로 느낀 점은 화려한 인파도, 이국적인 공항의 모습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공기가 상당히 맑다는 것이었다.
물론 진짜로 자연에서나 느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공항’에서는 느낄 수 없는 수준의 맑은 공기였다. 아마 항공편을 거의 운용하지 않는 것이 이 맑은 공기를 유지하는 비결이리라.
“우리 공화국에 잘 오셨습네다. 부시 대통령께서 오신다 해서 많은 준비를 했으니, 여독을 푸시라요.”
그리고 부시는 중복 번역의 늪에 다시 한번 맞닥뜨렸다. 그렇다고 다짜고짜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열심히 통역을 듣는 척했다.
그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외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값비싼 양복을 입은 고위 관료들과 악수가 이어졌고, 악수 행렬이 끝나자 예식용 군도를 든 고위 장교가 최고 의전용 행진곡과 함께 다가왔다.
“미 대통령 각하! 조선인민군 명예위병대는 각하를 영접하기 위하여 분열(分列)하였습니다! 분열 위병대장 육군대좌 김상우!”
인민군 의장대 미 대통령 환영 의장 행사가 펼쳐졌다. 의장대는 체격이 제법 훤칠한 자들로 구성되어있었다. 백금으로 도금된 58식 자동보총과 63식 보총을 들고 있었는데, 총검의 끝이 햇빛에 반사되어 찬란하게 빛이 났다. 본디 귀금속이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원색적인 마력을 가진 광물인지라, 부시는 솔직히 제법 볼만하다고 느꼈다.
“차렷 총!”
다만 그럭저럭 만족한 부시와는 달리 김정일은 그것마저 위태롭게 바라보았다. 본디 찔리는 사람이 가장 힘든 거다. 이것이 북한이 지금 준비할 수 있는 최고 예우였으나,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좀 더 화려하게 준비할 수 있었을 터다.
예를 들면 모르는 사람이 보면 티가 나지 않겠지만, 일단 수를 채우기 위해서 억지로 차출하느라 환영 인파의 배치가 애매했다. 인파의 환영 구호와 외치는 박자가 통일되어 있었지만, 도리어 이것이 부자연스러움을 연출했다. 이는 김정일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내려 총! 좌로 돌아! 어깨총! 앞으로 갓!”
다만 환영 인파가 억지로 환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시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이 환영식이 참으로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가장 흡족한 건 공항을 가득 채운 환영 인파가 공항을 채우고도 한참을 남았다는 점인데, 이만한 규모는 전례가 없을 정도였다.
이는 김갑환이 기억하는 뉴스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규모였다. 그나마 비교할 수 있는 건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열병식 정도인데, 공산 국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열병식과 일개 환영식을 비교하는 상황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이긴 했다.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불구하고 이리도 친절한 대응 감사합니다.”
“아닙네다. 시간을 좀 더 주셨으면 더 화려하게 영접했을 겁네다.”
김정일의 어투에서는 자신감과 존엄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존심 하나로 먹고 살아온 인물인 만큼 김정일이 얼마나 양보하고 있는지, 또 얼마나 몸을 사리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경수로 건으로 오긴 했으나, 일단은 북미정상회담인 만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해 1박 2일간 최대한 오랜 시간 동안 꼭 붙어 있고 싶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는 김정일에게 악몽과도 같은 선고나 다름없었다.
“물론입네다.”
“아, 그렇지.”
부시는 북한으로 오면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다음번 북미정상회담에서는 ‘직접’ 미국으로 오시지요.”
김정일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인 비행기 공포증을 저격한 것이다. 그는 극도의 고소공포증 탓에 어디를 가더라도 반드시 육로로만 이동했다.
그리고 그 고소공포증을 지닌 김정일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물론이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