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11)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10화(111/377)
< 110편 >
김정일은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느라 거의 말을 하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이미 부시가 대부분 제시했기 때문에 여기서 무어라 더 요구할 수 있을 만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사업 굴려주고 인프라도 재건시켜주겠다는데 뭘 더 요구한단 말인가?
물론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내정간섭 좆까고 네놈 나라로 꺼져!’라고 하고 싶었지만, 살고 싶으면 그저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인내의 시간이 지나고 부시가 사라지자 김정일은 결국엔 몸져눕게 되었다. 저러다가 화병 걸려서 죽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김정일이 진짜로 몸져누웠다는 소식은 부시에게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그동안 북한을 지배하며 죽어간 이들을 생각하면 딱히 그렇지만도 않았다.
김정일과 헤어진 부시가 왕림한 곳은 바로 남포항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별문제가 없었다. 사실 다른 것도 아니고 항모전단이 주둔지나 다름없는 곳에서 문제가 나는 상황 자체가 이상한 일이긴 했다만, 그래도 ‘위로 차원 방문’이라는 게 있잖은가. 물론 가장 큰 위로는 군 장병들을 귀찮게 만들지 않는 것이었지만, 세간의 눈이라는 것도 있고 궁금하기도 해서 직접 찾아간 것이다.
“딱히 커다란 문제는 없어 보이는군. 언제봐도 훌륭한 평화의 상징이야.”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무기가 전쟁을 억제한다는 이유 하나로 도리어 평화의 상징 취급받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솔직히 세상에 전쟁이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항모전단을 만들 필요도 없었겠지. 이 항모전단을 건조할 돈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을까?
당장 부시가 막연하게만 생각해봐도 벌써 수십, 수백 가지가 튀어나오니 속이 쓰렸다. 지구상에서 유일무이하게 예산이 넉넉한 국가가 미국이다. 그런데 그 미국에서조차 예산이 부족한 곳은 얼마든지 넘쳐났다.
그나마 최근 들어 차이나 머니와 차이나 골드 덕분에 고질적인 예산 부족이 어느 정도 해소되긴 했지만, 인프라 재건축을 위해 대규모로 국가사업을 여기저기 벌이는 바람에 여유가 거의 없어지고 말았다.
인프라 특성상 중간에 투자가 중단되거나 공사가 중단되면 치명적이기 때문에, 부시는 단기간 안에 끝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런지 돈을 더 퍼먹은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여유가 거의 없어진 거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닌지라 복지 부분이 점점 개선되고 있었다. 특히 국가의 공권력이 닿기 힘든 슬럼가나, 사람의 손길이 닿기 힘든 산간오지 같은 곳 말이다.
“그래도 이런 함대로 평화를 이룩할 수 있으면 싸게 먹히는 거지. 아니 그런가?”
“예, 그럼요.”
뒤따라온 비서실장이 대답했다. 사실 비서실장이 없으면 허전했기 때문에, 해외에서도 웬만하면 붙어 다녔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에서도 반드시 붙어 다닌 덕분에 비서실장이 부시 정권의 이인자이며, 부시의 심복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덕분에 의도하진 않았지만, 비서실장도 여기저기서 얻어먹는 콩고물이 상당했다. 본디 정치를 하다 보면 본인이 좋든 싫든 이것저것 얻어가는 게 많기 마련이다. 당장 북한에 와서도 수행원 중에서 비서실장만큼은 부시와 거의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어쨌든 남포항 사찰은 제법 수월하게 지나갔다.
“야, 비서실장. 이게 뭐야.”
문제는 경수로에서 벌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해서 꼼꼼히 하고 싶었던지라 이것저것 제법 시간을 들여 살펴보기로 했다. 부시 덕분에 퇴근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문제없어 보입니다만.”
“그렇지 이 보고서만이라면 문제가 없지. 그런데 말이야.”
서류나 문서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는 적어도 ‘건설’ 부분에 있어선 비리가 없다는 말도 된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정해진 시간보다 유도리에 입각하여 1, 2분 정도 빠르게 퇴근했을지언정 비용 절감에서 수작질은 안 부렸다는 소리다.
사실 부리지 않았다기보다는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이 지대한 관심을 주고 있으니 감히 부리지 못했다는 말이 맞았다. 그렇지 않아도 폭파사건 덕분에 덤으로 전 세계의 주목까지 실시간으로 받는 마당에 사기 칠 엄두가 나겠는가? 심지어 이걸 경비하는 놈들도 민간 경비도 아니고 아예 미군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보고서가 2개라는 점에 있었다. 미국 기술자들이 미국으로 보내는 보고서와 한국 기술자들이 한국으로 보내는 보고서 말이다. 두 나라가 개입하고 있는 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는데, 부시가 이번에 한국 측 보고서를 보고 싶다고 하자 흔쾌히 내주었다.
“이걸 봐. 이거.”
“제가 한글은 못 읽습니다만. 대통령님께선 언제부터 한글을 읽을 수 있게 되신 겁니까?”
비서실장의 대답에 부시는 잠깐 움찔거렸지만, 이내 침착하게 대응했다.
“아니, 나도 구체적으로는 못 읽어. 그런데 자네도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텐데. 다시 한번 잘 보라고.”
“흠.”
비서실장은 이국적인 글자가 가득한 보고서를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긋지긋하게 올라오는 미국의 보고서와 대조해보고 나서야 뭔가 문제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 몇몇 부분에서 미터법과 미국 단위계 표기가 서로 혼선되었군요.”
본디 한국과 북한이 펼쳐놓은 판에 폭발 사건 이후로 미국 인사가 북한의 인사를 다 쫓아내고 숟가락을 얹어놓는 바람에 생겨난 문제였다. 양측의 보고서에서는 매우 많은 부분에서 단위가 혼선되어 혼란을 주고 있었다.
“야, 이 시발! 당장 3년 전에 우주선 하나 날려 먹고도 정신을 못 차렸어? 이것들이 우주선에 이어서 이번에는 한반도에 멜트다운을 일으키려고 작정했어?”
부시는 듣는 사람이 창백해질 정도로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사무실에 남아 있던 이들은 부랴부랴 그동안 작성되었던 보고서와 설계도를 대조하며 잘못된 부분을 찾기 시작했다.
그동안 경수로 건설의 총책임자는 진노한 부시를 달래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대통령님. 저희가 다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사고와 직면하게 되면 횡설수설할 법도 한데, 총책임자는 나름 논리정연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본인들의 실수를 최대한 포장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소리다.
“아직 발주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니, 치수를 다시 잡으면 됩니다. 이미 지어진 부분도 약간의 설계 변경으로 충분히 기존 예산 내에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총책임자는 어떻게 하면 이 자신들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열심히 떠들었다. 낙하산으로 이 자리에 올라온 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입담 자체는 상당했으나, 사람 입에서 정말로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올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결국엔 무한할 것만 같았던 소재가 고갈되고 입담도 평탄해졌다. 단어 사이사이에 공백이 늘어나고 어휘가 어눌해졌을 무렵 총책임자는 불안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부시의 눈을 쳐다보았다.
“오, 끝났나?”
그 말을 들은 총책임자는 좀 더 이야기할지, 아니면 여기서 마칠지에 대해서 격렬한 내적 갈등을 벌인 끝에 총책임자 본인이 생각한 가장 적절한 대답을 내놓았다.
“예.”
더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기에 선택한 답이었다.
“이제 내 대답이 듣고 싶은가?”
총책임자는 신음을 흘리다가 결국 이번에도 똑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예.”
“그렇다면, 내 대답을 들려주지.”
부시는 진중한 표정으로 숨을 한 번 들이켰다가. 내뱉으면서 감정을 실어 고함을 내질렀다.
“좆까(Fuck Off)!”
“예?”
“동아시아 전체를 날려 먹을 뻔한 일을 고작 아가리 좀 털었다고 만회할 수 있을 것 같냐? 네가 지금 살아 있는 건 온전히 미국의 형법 시스템 덕분이야. 알간?”
“대통령님. 진정하십시오. 다소 격정적이고 원색적인 단어 선정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비서실장이 열심히 말린 덕분에 부시의 사적제재를 통해 총책임자의 강냉이가 추수되진 않았지만, 즉각 총책임자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다음번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모조리 원자로 안에 던져버릴 줄 알아!”
비서실장이 말릴 때도 헬스를 하도 해서 그런가, 워낙 힘이 강해 말리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비서실장도 부시가 이렇게 분노한 건 처음 본지라 상당히 당황했다. 9.11 당시에도 이렇게까지 노하진 않았었다. 그래도 부시가 비서실장의 나이를 생각한 모양인지 그리 강하게 저항하지는 않아서 억지로 끌고 가면 끌리는 데로 움직이긴 했다.
문제는 그리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다곤 해도 어디까지나 이는 부시의 기준이었고 비서실장은 부시를 끌고 가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야 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경호원들까지 합세해서 현직 대통령을 자동차 안으로 연행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아니, 좀 원색적으로 말하지 말라니까요. 각하께선 미국의 대통령이십니다. 체통을 시키셔야죠.”
“야 이 시발, 비서실장. 내가 미국인이지 북한인이야? 머리에 얹은 감투가 좀 무겁기로서니 인류를 위태롭게 만들 대형사고를 저지를 뻔한 놈에게 욕도 못 하는 나라가 자유의 나라는 얼어 죽을!”
비서실장에게 유일한 위안은 차 안이 방음이 된다는 점이었고, 심란한 점은 부시를 따라다니던 기자들이 그 꼴을 전부 봤다는 것이었다. 부시야 그냥 저지르면 그만이지만, 뒷감당을 맡는 사람이 바로 비서실장이었다.
일 늘리는 사람이 어디 고맙게 보이겠는가, 고깝게 보이지.
“대통령이라는 자리라는 건 원래 그런 겁니다. 무슨 동네 갱스터도 아니고 욕설을 그렇게 해댄답니까?”
“세상에 원래라는 건 없어. 전통이라는 것들은 들춰보면 필요 이상으로 꽉 막혀 있을 뿐이야.”
“원래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겁니다. 경망스럽고 경솔한 언행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합니다. 자고로 위에 서는 자는 진중하고 묵직해야 합니다.”
“그건 그 사람이 손에 총을 들지 않았기 때문이지. 원래 총으로 겨누고 말하면 없던 신뢰도 생겨나는 게 사람이야.”
“그건 궤변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렇잖나? 외교에서는 이보다 잘 먹히는 게 없지. 당장 북한만 해도 이런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비서실장은 부시의 감정이 아직은 뜨겁긴 했지만, 그래도 정상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을 만큼 제법 식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참으로 투철한 직업정신이었다.
“물론 국민을 상대로 이렇게 할 수는 없지만, 그땐 그때고.”
“일단 저희 선에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 마. 그거 언론조작이야.”
“그럼 정말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언행들이 전 세계에 널리 퍼지길 원하십니까?”
“세상 별의별 기행은 다 하시는 분이 도대체 왜 양심에 관련되기만 하면 이리도 앞뒤가 꽉 막히신답니까?”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뉴스며 신문이며 부시의 모습이 전부 대서특필되었다. 북한에서 사용이 가능했던 기기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뿐인지라 라디오를 제외한 어떤 매체든 간에 사진을 첨부하고 설명한 게 전부였지만, 해외의 몇몇 반미 언론을 제외하곤 내용은 대부분이 다음과 같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허술한 원자로 건설에 인류애 담긴 정의로운 분노.」
「또 한 번 대형사고 부를 뻔한 미국 단위계. 이대로 괜찮은가?」
물론 이것들을 본 비서실장의 표정이 미묘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아니, 이걸 이렇게 포장을?”
“원래 잘될 사람은 다 잘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