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16)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15화(116/377)
< 115편 >
“시간 참 빠르지 않나?”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신다면 보고서를 보는 속도도 좀 더 늘릴 수도 있겠군요.”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거지? 자네 말대로 요즘은 체면도 챙기고 말도 예쁘게 하고 있잖나.”
부시는 보란 듯이 집무실 한편에 비치된 TV를 손가락질했다. TV에는 부시가 연설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근육질인 몸이 코디로 인해 극대화되어 TV임에도 상당한 위압감을 표출했다.
「테러리스트 놈들을 오체분시하고 세계 평화를 이룩하겠습니다! 여러분!」
중동을 비롯한 테러분자 활동 지역에 군대를 파견시키는 게 아니라, 당장이라도 본인이 쫓아가서 평화와 수호를 위해서 ‘내가 왔다!’라며 모조리 반으로 찢어버릴 것 같은 인간이 주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신뢰가 가긴 했다.
“바르고 고운 말을 하랬더니 뒤틀리고 아니꼬운 말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잖나. 도리어 어떻게 저것보다 바르고 고울 수 있나?”
부시도 비서실장도 딱히 틀린 말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구태여 따지자면 일종의 ‘관점의 차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부시는 테러에 대해서 최대한 강경하고 원색적인 단어 선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고, 비서실장은 어떠한 경우라도 서식이나 규정에 일치하는 행동 양식을 선호했다.
어쨌거나 앤드루 카드가 앉아 있는 비서실장이라는 자리는 무조건 충성과 듣기 좋은 아부나 듣자고 앉혀놓은 것이 아니라 부시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는 부패나 일탈을 잡아주기 위해서 앉혀놓은 자리였으므로 소명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자넨 좀 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해.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격동의 시대야.”
어쩌면 앉혀놓은 본인이 그 이유를 점점 잊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비서실장이 걱정할 때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래도 제법 어엿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니 무어라 크게 나무라진 않았다. 다만 그 선택이 합리적이긴 한데, 조지 W. 부시라는 작은 소우주 안에서나 합리적이라는 게 문제이긴 했다.
비서실장이 그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있으니 ‘이야! 이거 완전 합리적이다!’라고 찬동할 수 있는 거지, 제삼자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합리라는 단어에 대한 재정의와 함께 철학적 고찰을 마쳐야 하리라.
그렇다고 진짜로 부시의 내적 세계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기준이 좀 다를 뿐이었다. 뱁새의 합리와 황새의 합리가 어찌 같겠는가? 참새는 날기 위해서 날개를 바삐 움직여야 하지만, 대붕은 한 번의 날갯짓으로 구만리 창천으로 비상한다.
“격동의 시대든 나발이든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그런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 결국 대통령이란 자리는 가장 높은 곳에 서되 시선은 가장 낮은 곳에 둬야 하는 자리다. 그러니 정론을 무엇인지를 따지자면 비서실장의 말이 정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고루한 방식이 공감받는 시대가 아니야. 시대가 변하고 있어 비서실장.”
그러나 시대의 흐름 자체를 쥐고 있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비서실장이 추구하는 정치가 그 어떠한 타격에도 끄떡없는 강철이라면, 부시가 추구하는 정치는 그 어떠한 타격이라도 흡수할 수 있는 고무였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말에는 동의하는 바입니다만.”
“그럼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말해줄 수 있겠나?”
비서실장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서류로 된 마천루에서 두툼한 보고서 하나를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놨다. 꽤 두꺼웠기 때문에 보고서를 책상 위에 올리면서 큰 소리가 날 법도 했으나 얼마나 세심했는지 조그마한 소음조차 나지 않았다.
“뭐 어차피 조금 있다가 올라갈 보고서였습니다.”
보고서의 가장 첫 장의 첫 줄부터 ‘고립주의의 대두’라는 단어가 부시의 신경을 거슬렸다.
“고립주의? 먼로 독트린을 말하는 건가?”
지금 와서 구세기의 유물이 왜 튀어나온다는 말인가? 먼로 독트린은 거의 한 세기 동안 미국을 지배했던 고립주의였다. 미국도 유럽에 관여하지 않을 터이니, 유럽도 미국에 관여하지 말라는 외교 정책이었다. 실상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미국의 손에 안전하고 온전하게 떨어뜨리기 위한 확장 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었지만, 일단은 고립주의에 속했다.
이 먼로 독트린은 독일 제국의 아르투어 치머만 외교장관이 치머만 전보 사건을 터뜨리면서 잠시 흐릿해졌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진주만 습격이 발발하여 미국이 개입주의로 반전함에 따라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아뇨, 먼로 독트린과는 다릅니다. 바깥의 도움이나 지원 없이도 우리나라, 그러니까 미국 안의 자원만으로도 모든 게 충분히 돌아가는데 왜 구태여 자꾸 바깥으로 ‘영향력을 확장’하려고 하냐는 거죠. 현 패권주의를 비난하는 겁니다. 구태여 이름을 붙이자면 신(新)고립주의가 되겠군요.”
요컨대 구태여 미국의 피를 흘려가며 국제문제에 개입하지 말자 소리였다. 지금이여 자금이 넉넉하여 매사에 여유가 있지만, 과연 그 여유가 없어지고 난 뒤에도 현재 개입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시될 법도 했다. 그러니 차라리 국외에 개입할 예산을 차라리 내수에 돌려서 삶의 질적 향상을 꾀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사상이었다.
부시가 기존에 알고 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이후에 대두되는 신고립주의와 닮았지만, 이념이 확실히 달랐다. 부시가 알고 있는 신고립주의가 냉전 시절부터 이어진 염전 사상과 그동안 제1세계 수호로 인해 등한시되었던 미국 우선주의가 복합적으로 결합한 형태였다면, 이건 완전히 풍요와 여유에서 피어난 미래를 대비하자는 사상이다.’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군. 다만 민주당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야.”
“그렇죠. 공화당은 싫어할 법한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아직 소수니까요. 다만 공화당이 좋아할 법한 사상도 있죠. 기존의 사상에 따른 무분별한 개입을 중단하고 이익에 따라서 개입해야 한다는 시각입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베트남전 같은 사상의 수호가 아니라 돈 되는 전쟁을 하자는 이야기죠.”
비서실장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 두 개를 비비며 달러를 세는 듯한 제스쳐를 보였다. 미국식 금권정치의 극한이 저러할까 싶었다. 이러한 이들은 2019년에도 꽤 많이 있었다. 사실 많다기보다는 이런 시각을 가진 이들이 미국의 삼분지 일 이상을 차지했다.
“딱히 건들만한 것들은 아니군.”
“그렇죠. 구태여 실용적으로 활용하려면 선거철에서나 이용할 법한 정보죠. 일반적인 통계인지라 가치가 그다지 없습니다.”
애당초 이러한 사상은 전부 미국이라는 커다란 배가 순항 중이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부시는 비서실장이 이 보고서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지금이야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니 모든 발언에 문제가 되질 않지만, 조금만이라도 잘못하면 트집을 잡을 터이니 말이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 부시의 자극적인 처신은 도리어 치명상으로 변할 터였다.
제아무리 탄성이 높다 한들 고무인 이상 칼에 찔리면 잘리는 법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칼에 찔려도 멀쩡한 강철이 낫지 않겠느냐는 비서실장의 무언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으리라.
“직설적으로 말해서, 솔직히 나중에 몰락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정치를 하고 싶지는 않군.”
“바로 그런 발언들이 문제라는 겁니다!”
비서실장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팍을 쳐댔다.
“괜찮아 무너지더라도 내가 혼자 안고 무너질 거야. 걱정하지 말게.”
“아니, 저도 사람인데 제가 모시는 분이 몰락한다고 하면 기분이 좋겠습니까?”
부시는 그 말을 듣고 살짝 당황했다. 그건 단 한 번도 고려해본 적도 없었던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건 생각 못 해봤는데, 좀 더 주의하도록 하지.”
“좋습니다. 앞으로 좀 더 유의해주십시오.”
이 무슨 학생들도 아니고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아저씨들이 유치하게 뭐하나 싶겠지만, 이는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필요할 땐 딱히 안 할 건 아니고.’
‘분명 이렇게 말해놓고도 계속하겠지? 앞으로 애먼 짓 못 하도록 임기 내내 책상 위에 앉아서 보고서만 보게 해주마.’
그런 것치곤 말짱 도루묵인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부시는 책상 위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보고서들을 눈으로 한 번 쓱 훑더니 유럽에서 소규모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는 보고서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걸 보고 있으니 확신이 드는군. 나에겐 좀 더 확실한 호신이 필요해.”
“대통령님. 여기서 경호 인력이나 예산을 더 증설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백악관의 경호 수준은 이미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9.11 사건 이후로 백악관에는 대공미사일까지 배치되었다. 다만 백악관에 자체에 배치되었다는 소리는 아니었고, 워싱턴 DC와 백악관의 대공 영역에 아주 많은 대공미사일이 할당되었다는 말이 맞았다.
“내가 말하는 호신이란 말이야. 위협이 발생할 가능성. 그 자체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야.”
“뭐 그럼 국내에서 중동계를 다 쫓아내기라도 하실 생각입니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그건 편견이야! 인종 차별이라고!”
“방금까지만 해도 주체가 중동 출신 테러리스트였으니 그렇죠.”
비서실장은 저거 또 시작이라면서 혀를 찼다. 초기 부시 행정부였다면 절대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다소 건방진 모습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말했잖나. 화근을 제거하는 게 진정한 호신술이라고 말이야. 중동에 손을 좀 대야겠는데.”
“중동에 말입니까? 이미 유럽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저희까지 개입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신고립주의에 찬동하는 건 아니지만, 차라리 내수나 더 살리면 어떻습니까?”
“걱정하지 말게. 손을 댄다고 해도 우리 행정력은 거의 소모하지 않을 거니까.”
도대체 무슨 아이디어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는 몹시 희소식이었다. 적어도 미국이 직접 수고해야 할 상황이 오지 않는다면 이를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 다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부시가 예산이 들어가지 않는 방법이라고 하니 설득력이 떨어져서 그렇지.
“중상모략이라도 하실 생각입니까?”
“하하! 그랬다간 테러리스트들이 당장 내일 백악관에 폭탄 테러를 감행할지도 모르잖나!”
“그럼 도대체 뭘 어떻게 하시겠다는 소리입니까? 연설할 때는 그렇게 직설적이면서 왜 저랑 이야기하실 때만 빙빙 돌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그만 놀리고 말씀해주십시오. 아직 대통령님이 읽으시지 못한 보고서가 제 뒤에 이렇게나 많이 쌓여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부시는 눈썹을 찌푸렸다. 참으로 장황하게 말했지만, 결국은 보고서나 더 보라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야기를 돌린 것도 잠깐 좀 쉬자고 그런 거지만, 친애하는 비서실장께선 허용하지 않을 모양이었다.
“별 건 아니고 아프가니스탄을 좀 키워볼까 하는데.”
“아프가니스탄을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