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26)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25화(126/377)
< 125편 >
모스크바. 약 1천 년 슬라브 민족의 수도. 한때는 세계를 양분하는 거대한 한 축의 중심이었지만, 이제 이것도 전부 옛말이었다. 지금은 그저 붉은 광장 테러의 상처를 딛고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대도시일 뿐이었다.
그 도시에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 암약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이야말로 옛 KGB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세계 굴지의 정보기관 CIA였다. 너무나도 당연하겠지만, 이들의 신분은 화이트가 아니라 블랙이었다. 화이트는 정보관을 뜻함이고, 블랙은 간첩을 뜻함이다.
간첩이라고 하면 보통 적국의 주요 시설을 파괴하는 파괴 공작이나, 국가의 중추인물들을 제거하는 요인암살 임무를 맡는 특작 부대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중요한 정보나 동향 등을 입수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간첩이 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이 블랙 요원들은 평소와는 달리 아주 분주했다. 보통이라면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뒤에서 찔끔찔끔 비밀을 캐고만 있을 인간들이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발에 땀 나도록 뛰어다니게 되었느냐면, 위에서 분노의 철퇴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어떤 조직이든 다를 바 없이 대통령의 명령인 ‘러시아가 수상하다.’라는 명령은 왜곡되고 와전되어 최종적으로는 ‘러시아. 그중에서도 모스크바의 CIA 요원들이 그렇게 나태하다더라. 러시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더라!’라는 불호령이 되어 러시아를 담당하고 있던 CIA 요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덕분에 다소 부주의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이 귀중한 정보가 올리버의 손안으로까지 흘러 들어가게 된 것이다.
‘CIA가 부주의한 덕분에 이런 작은 신문사의 기자까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거지.’
정보를 머릿속에서 다시 읽어보던 올리버는 골목 입구에서 초조하게 담배를 태웠다. 막상 특종이라며 모스크바의 비밀을 취재하러 오긴 했지만,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그저 막막하긴 했다. 다만 올리버가 추측하기로 CIA가 신분 노출을 감수하면서까지 움직인다는 게 진실이라면 둘 중 하나였다.
러시아가 어떤 나라에 대규모 침공을 계획하고 있던가, 아니면 침공에 수준의 음모가 벌어지고 있다던가. 물론 후자일 확률이 더 높긴 했다. 어쨌거나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들키면 제네바 협정을 정면에서 엿 먹이는 수준의 모진 고문을 받아야 하는 간첩 특성상 이렇게까지 경솔하게 움직였다는 건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적어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하찮은 일은 아니리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올리버는 이 상황이 정말로 단순히 명령이 와전된 덕분에 일어난 사달인 걸 알지 못했다. 올림픽 심판 감금 사건으로 한 번 CIA를 고루고루 돌아가면서 조지긴 했으나, 어디 조직의 성향이 그리 쉬이 바뀌는 것이던가?
그렇지 않아도 현 대통령은 일종의 전설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가 일으킨 일들. 몇몇 경솔한 행동은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민폐이기도 했지만, 한 명의 남자로서는 로망이나 다름없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여자 공무원들에겐 그리 이런 부분이 어필되지 않았다는 말도 된다. 어쨌든 부시라는 인간을 아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막말로 말도 안 되는 게 너무 많지 않은가. 전쟁 병기를 타고 한반도에 평화를 불러오고, 모두가 외면하고 있던 중국의 청나라 채권을 추심했으며, 경찰을 비롯한 온갖 공권력을 장악했으며 동시에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인기와 강력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직급이 대통령인데 이렇게 전설인 인간이 까라고 했으니 이렇게 매번 뭔가를 시키면 당연히 과민반응이 나오고 마는 것이다. 미국에서 대통령에게 밉보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그렇지 않아도 올림픽 심판 납치 사건으로 한 번 까인 참인데, 이렇게 러시아 건으로 또 까였으니 CIA 내부는 벌집을 들쑤셔 놓은 것만 같았다. 물론 이번에는 까는 게 아니라 단순히 조사하라는 명령일 뿐이었지만, ‘러시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밥버러지 놈들!’이라며 까는 것으로 들렸을 뿐이었다.
물론 이 사실을 올리버는 모르고 있다.
“염병.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올리버는 반이나 남은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잘근잘근 짓밟았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3박 4일이라는 단기간 만에 특종을 취재할 수 있을 리 없었다. 특종이란 자고로 오랜 시간 동안 잠복해서 공들인 조사 아래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열이 받아서 겉으로 모른 척하긴 했지만, 사실은 편집장이자 친구인 헝크가 러시아에 보낸 의도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말 그대로 머리나 식히고 오라는 것이리라. 그렇다고 헝크의 성격상 이게 단순히 착한 거짓말은 아닐 테고 진짜로 이 모스크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긴 한 모양인데, 도시는 그 여느 때보다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특이한 점이라고 할만한 건 도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붉은 광장 테러 사건 추모 현장이었다. 벽에는 희생자들의 사진을 붙여놓고 그 아래에 촛불과 꽃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점점 바쁜 일상에 테러 같은 끔찍한 일은 모두가 잊어가는 듯했다. 아니, 잊고 싶어 하는 듯했다.
올리버는 이왕 모스크바까지 날아온 김에 이 추모 현장의 사진으로 기사나 하나 만들 요령으로 카메라를 만지다가 괜히 뻘쭘해져서 묵념하게 되었다. 죽은 사람들로 돈을 번다는 사실이 께름칙했기 때문이다. 물론 귀신 같은 미신은 믿지 않지만, 가슴 한구석이 껄끄러운 것 또한 사실이었다.
눈을 감으니 자연스레 귀가 민감해져서 행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보통이라면 주의를 기울이지 않겠지만, 기자로서 얻은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이렇게 가만히 들어보면 참으로 재미있는 말들이 많았다.
“저번에 시골에 내려갔는데, 우리 할아버지 집 뒷마당에서 모신나강이 일곱 정이나 나왔어.”
“모신나강이야 흔하지. 그거 알아? 저번에 헛간 공사하다가 지하에서 독일 소총 무더기로 나온 거?”
‘이건 쓸모없는 말이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주전장이 되어서 그런지 당시 쓰던 무기가 땅을 파다가 나오는 일 정도는 러시아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내가 듣기로는 체첸에서 반군이 아직도 있다던데? 그 자식들이 모스크바에 테러하는 거 아냐?”
“체첸? 그딴 것보다 이반 점심으로 뭐 먹을지나 결정하라고. 먹자마자 바로 현장으로 돌아가야 해.”
세상 어딜 가던 테러고 나발이고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자기 앞날이 더 바쁘기 때문이었다. 빈부격차가 없는 나라가 어디에 있겠느냐만. 그중 러시아의 빈부격차가 세계 제일이었다. 고작 100명이 나라 전체의 부를 3분의 1이나 차지하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이는 인도나 중국. 혹은 브라질보다 더 높은 수치였다.
‘하지만 좋은 기삿거리는 아니군.’
독자들이야 역시 러시아는 답이 없다면서 비웃을지도 몰랐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헤이트 스피치를 통한 불쏘시개 가십거리였다. 올리버는 이런 기사를 내고 싶지 않았다. 무릇 기사라고 함은 진정성을 가지고 도덕적이며, 독자의 흥미를 끌을 수 있는 기사여야 한다. 더불어 기사의 작성에 있어서 외압이 있으면 아니 된다.
“이런 빌어먹을! 기름값이 또 올랐어! 도대체 왜 오르는 거야!”
“기름 매장량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하잖나. 서이라크가 없었으면 지금보다 더 높았을걸?”
‘기름? 기름이라고?’
세계 굴지의 산유국이자 천연자원의 제국에서 기름값이 왜 오른다는 말인가? 러시아는 소련 시절부터 유전을 끊임없이 확장 중이었다. 거기다 서이라크의 풍부한 유전지대까지 손에 넣은 러시아에서 다른 것도 아니고 기름값이 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이는 분명히 이상했다.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가격을 올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왜냐면 석유로 한정했을 때 러시아를 압박할 수 있는 나라는 하나도 없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미국이라고 해도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외적인 요인이 있으면 모를까. 미국의 석유는 점점 고갈되어 가는 중이었다. 심지어는 알래스카조차도 말이다. 더 조사하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조사 결과로는 반세기를 넘기기 힘들었다.
물론 그 조사 결과조차 신뢰할 수 없는 정보들이 너무나도 많았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올리버가 천수를 누린다고 가정했을 때, 임종의 순간 그가 쓰고 있는 전기는 미국산 석유로 된 전기가 아닐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건 좀 흥미롭군.’
이 사실은 올리버의 흥미를 끌기엔 너무나도 충분했다.
‘그래, 실마리도 없는 CIA보다는 석유에 대해서 더 알아보는 게 한참 더 낫겠어.’
애당초 복잡한 기분으로 모스크바에 왔던 올리버는 취재 노선을 완전히 변경했다.
“아, 그렇지.”
색이 점점 바래 가는 희생자들의 사진에 애도와 조의를 담아 사진 한 장을 찍고 나서 말이다.
이게 참으로 우연인지 아니면 필연인지 알 수는 없으나, 올리버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소기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했다. 왜냐면 모스크바의 CIA가 물은 정보 또한 석유에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왜지? 왜 석유 가격이 올라가는 거지!」
여성 CIA 요원은 휴대전화에서 계속 들려오는 고함에 완전히 질린 모양인지 자신의 귀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그런데도 그 목소리는 똑똑히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제발 목소리 좀 낮춰. 통화 내용은 기록에 남지 않아도 네 큰 목소리는 들킨단 말이야.”
어쩔 수 없었다. 실제로 그렇게 잡혀간 CIA 요원이 하나 있었으니 말이다. 값진 희생이라면 또 모를까. 실로 허망하게 잡혀갔다. 일반적인 정보원과는 달리, 이들은 잡히더라도 CIA가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애당초 비공식 작전이란 게 다 그런 성질이긴 했지만, 전직 KGB의 짬에서 우러러나오는 고문 맛을 보고 싶은 CIA 요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전혀 알 수 없어. 추측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사실 너무나도 명확해. 석유 가격으로 장난질을 쳐서 이득을 보려는 심산이겠지. 하지만 이건 심증이야. 확실한 물증이 필요해!」
“지금 그걸 누가 몰라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다른 때였다면 당연히 심증을 우선 올리고 증거를 차차 수집해갔을 터지만.
‘하필 대통령 직할 명령이라니!’
CIA는 전번의 실수를 만회해야 했다. 이렇게 보면 미국이 무슨 민주국가가 아니라 전제정치 황제국이라도 되는 것 같았지만, 이게 실은 썩 틀린 말도 아니었다. CIA는 미국의 기치가 만들어낸 그림자 아래에서 양지에는 밝힐 수 없는 더러운 일들을 수도 없이 처리해왔다.
차세대 고문 프로젝트부터 터스키기 매독 생체실험, 세뇌 프로젝트인 MK 울트라에 이르기까지. 이걸 과연 민주(民主)국가라고 볼 수 있는가?
CIA 요원들의 입장에서 지금의 민주정치가 과거 전제정치에서 좀 나아진 것이라곤, 나랏일을 처리하는데 귀찮은 절차가 좀 더 늘어났다는 것뿐이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CIA 요원’들의 극단적인 시선일 뿐. 실제로는 민주정치와 전제정치는 전혀 달랐다.
“어쨌거나 대통령님을 실망하게 해드리지 않으려면 심증이 아닌, 실물로 된 증거가 필요해. 어떻게 좀 더 깊게 들어갈 수 없어?”
「그거 알아? 지금도 더럽게 아슬아슬해 의심이 점점 짙어지고 있어. 조만간 모스크바에서 보낸 12년 생활을 마무리하게 될 수도 있단 말이야.」
그러나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온다고 했을 때 대통령이 CIA를 어떻게 건드릴지 몰랐다. 막말로 해체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땐 그럴 리는 절대 없다고 하지만, 어디 전설로 불리는 사나이가 왜 전설이겠는가? 하는 짓마다 사람의 인식을 아득히 벗어나서 전설 아니겠는가?
그렇게 CIA는 들킬지도 모른다는 부담감과 위험함을 안고 구르고 또 구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