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29)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28화(129/377)
< 128편 >
“살아 있는 전설께서 공기관 중에 가장 일 처리 속도가 최악인 기관이 우리 CIA라고 하시더라!”
살아 있는 전설(Living legend). 본인이 들었다간 온몸이 비틀릴지도 모르는 실로 낯부끄러운 칭호였지만, 조지 W. 부시라는 남자에게 이것보다 어울리는 칭호가 또 있을까?
“모스크바의 요원들은 뭘 하는 거야!”
그 모스크바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젠장. 이게 무슨 냉전 시절도 아니고.’
더럽게 어두컴컴한 주제에 천장에 달린 거라곤 구식 백열등 하나밖에 없는 지하실에서 불평불만으로 무장한 CIA 요원이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러시아 항공 설계국인 수호이의 간부였다.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이 꼭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은밀하고 위대한 일만 있는 건 아니다. 가장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뇌물이 있었다. 돈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도 없었다.
방탄 플라스틱제 검은색 서류 가방 안에는 달러 뭉치가 차곡차곡 정렬해 있었다. CIA가 얼마나 대통령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눈깔이 돌아갔는지 알 수 있는 금액이었는데, CIA에선 이에 그치지 않고 이것과 똑같은 금액이 담긴 서류 가방을 몇 개나 더 준비해두었다. 쉽게 말하면 이것과 똑같은 장면이 러시아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소리다.
“훌륭합니다(excellent)! 귀하께서 원하는 정보는 모두 이 디스켓에 담겨 있소. 사실 거래 대상이 귀국이든 귀하든 상관없지만, 철저히 비밀에 부쳐주길 바랍니다. 들키면 나나 당신이나 좋은 꼴은 못 볼 거요.”
현 대통령이 KGB 출신인 푸틴임을 상기하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었다. 다행인 점은 러시아에서 이런 일은 너무나도 일상적인 일이었다는 점이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 이 러시아에서 뇌물을 받아보지 못한 공직자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레드 마피아가 버젓이 장사하고 다닐 수 있는 이유도 다 뇌물을 퍼먹은 고위 관료들이 싸고돌기 때문이었다.
“이번 대통령은 저번과는 달리 좀 급진적인 사람이거든.”
그는 그렇게 말하곤 윙크했다. 말하는 본새만 보면 무슨 월스트리트의 잘나가는 펀드매니저 같았지만, 그는 확실히 러시아 태생의 토종 슬라브인이었다.
수호이 관계자는 서류 가방을, CIA 요원은 디스켓이 들어 있는 상자를 잘 갈무리했다. 디스켓에는 수호이가 개발했던 전투기와 개발 중인 최신 전투기에 대한 정보가 들어 있었다. 이들 개발하는 전투기가 미제보다 성능이 우수하지는 않겠지만, 가상 적국의 전력에 대한 정보 수집은 전술, 전략 수립의 기본이었다.
“결국에는 우리나라도 깨달은 거지. 프롤레타리아보다 프롤레타리아에서 나오는 돈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부패한 수호이 간부는 그렇게 말하곤 기분이 좋은지 흥얼거리며 먼저 지하실을 나갔다. 조만간 그를 미국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저만큼이나 들고 일을 하고 싶지는 않을 것 아닌가? 딱히 미국이 아니더라도 영어가 굉장히 유창한 걸 보아하니, 영미권이 먹히는 나라라면 떵떵거리고 살 수 있을 듯싶었다.
‘내 알 바 아니지. 이 정도면 내 월급은 지켜지겠지?’
사람이 어디 애국심만으로 돌아가던가? 물론 정말로 애국심을 제일의 가치로 두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이는 CIA의 현장 요원들도 마찬가지다. 삶이 가난해지면 눈에는 애국심보다는 돈이 먼저 들어온다. 그렇게 다들 이중간첩이 되어가는 것 아니겠는가?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선 그만한 보수와 수당을 지급해줘야 했다.
현장 요원은 대부분 현지에서 포섭된 인간들이었는데, 그는 조금 특별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직접 미국에서 날아온 귀하신 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거래에서 현지 요원이 쓰이지 않았다는 건 아니었다. 수호이 관계자와 CIA 요원을 서로 이어주고 그들이 만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섭외하는 역할을 맡았으니 말이다.
현지 요원에게 다 시킬 수도 있겠지만, 그 누가 이런 중요한 거래에 현지 요원에게 이만한 거금을 맡기고 싶겠는가? 거기다 이제 막 1년이 되어가던가? 2001년 당시에 로버트 한센이라는 친구 하나 덕분에 모스크바의 현장 요원을 대부분 갈아치워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골 때리는 점은 로버트 한센의 신분은 CIA가 아니라 FBI였다는 점이었다. 이 인간이 뿌린 정보 중에 하필 CIA 관련 문서도 들어 있었기 때문에 간접적으로 타격을 받았다.
이 인간이 근무하던 곳이 하필 워싱턴 본부 정보처의 소련분석과 소속이었는데, 주 업무가 방첩이었다. 덕분에 1985년 당시 KGB에 있던 미국 측 이중간첩 셋이 감방으로 끌려갔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던가? 15년간 미국의 기밀을 열심히 유출했지만, 러시아에서 역으로 FBI에서 정보를 입수하고 있다는 문서가 미국 측에 입수되어 결국 잡히고 말았다.
이게 2001년 2월에 있었던 일이다. 고작 작년의 이야기란 말이다. 꼴이 이런데, 그 살아 있는 전설, 날아다니는 전투기 대통령이 FBI든 CIA든 건수를 잡으면 털까? 안 털까? 그래 터는 건 그렇다고 치자. 그럼 물갈이가 될까? 안 될까?
적어도 CIA에 근무하고 있는 모든 인간은 압도적으로 전자라고 봤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이 직장에서 잘리는 것만큼 악몽도 없었다.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욱더 그러했다.
모두가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불만은 없겠지?
이렇게 해서 얻은 온갖 정보들이 보고서가 되어 대통령 집무실 책상 위에 올라갔다.
“난 분명 중간보고라고 했던 것 같은데?”
집무실의 한쪽에 쌓여 있던 마천루에 비견되는 숫자의 보고서가.
“그 중간보고라고 합니다.”
‘이런 젠장.’
부시는 머리가 띵해지는 것을 느끼고 미간을 꾹꾹 눌렀다. 이게 중간보고라면, 도대체 최종 보고에 올라올 보고서는 얼마나 많을지 능히 짐작이 갔다. 지금 부시가 2배로 늘어난 보고서를 보고 질겁하고 있는 이 순간조차도 더 많은 정보가 모이고 있지 않겠는가?
이걸 끔찍한 광경을 보고 나니 중간보고가 올라오지 않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많은 정보를 한데 취합하는데 긴 시간을 들인 모양이었다. 사실 보고서라기보단 정보의 나열에 가깝긴 했다. 당장 한 장만 읽어봐도 난잡하고 갈무리되지 않았다는 티가 확 났다.
‘중간보고를 하라고 했더니 보고서로 폭탄을 날려?’
부시는 임기 내내 CIA와는 그다지 친하게 지낼 수 없을 거 같다고 직감했다.
근거는? 당연히 지금 부시의 눈앞에 쌓여 있는 무지막지한 양의 서류 더미 아니겠는가. 부시의 입에서 몇 번이고 욕이 맴돌다가 다시 목구멍으로 삼켜 들어갔다. 삼킨 것은 오로지 추상적인 단어에 불과했지만, 부시는 진짜 못 먹을 거라도 먹은 것처럼 속이 껄끄러웠다.
고작 한 장 읽는데 5분이 넘게 소모되는데, 내용에 영양가는 없으니 읽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덕분에 서류를 처리하는 속도는 점점 늘어났고 결국에 부시는 이 빌어먹을 산더미를 반려하기로 했다.
“내용 정리해서 오라고 해. 아니지, 그냥 아예 브리핑하던가 아니면 적어도 사람이 읽을 수 있을 수준으로 다시 적어서 가져오라고 해. 지금 읽을 보고서랑 사인해야 할 결재 서류가 얼마나 많은데 언제 다 이걸 보고 있어!”
마음만 같아서는 모조리 날려버리고 싶지만, 이것들을 손에 넣기 위해서 현장에서 열심히 뛰었을 요원들을 생각해서 노기를 꾹꾹 눌러 수그러지게 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괜히 예민한 것을 보아하니, 다시 한번 스트레스 주기가 돌아왔음을 직감했다.
“일단 긴급한 것만 먼저 취합해서 올리라고 하겠습니다. 솔직히 훌륭하군요. 이 정보들을 토대로 이중간첩을 잡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러시아군의 군사 장비에 대한 정보도 많습니다. 전부 진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조사해보면 다 나오니까요.”
“아니, 그걸 언제 다 파악한 거야?”
“저도 다 본 게 아닙니다. 그저 무작위로 몇 개 읽었을 뿐입니다.”
확실히 귀중한 정보들이긴 했다. 문제는 그 정보가 하루 사이에 전부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난잡해서 그렇지. 부시가 원했던 건 깔끔하게 정리된 보고서였다.
레스토랑에 가서 햄버거를 시켰는데, 조립하지 않고 죄다 분해해서 준다고 생각해보라. 그것도 조리하지 않은 상태로 트레이 위에 올려서 주는 거다. 감자튀김은 양질의 토양이 그대로 묻어있는 상태고 패티는 당장이라도 들판 위에서 뛰놀 수 있을 정도로 싱싱한 주제에 치즈는 직접 짜서 만들라고 아예 젖소를 데려온 상태라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쉽게 말해서. 이 정보들은 값비싼 원석이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가공이 전혀 되어 있질 않았다. 금반지랍시고 금광석을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도 일단 건진 건 있군.”
그런데도 쭉쭉 읽어가면서 이 정보들이 생각보다 더 가치 있는 정보들이라는 건 파악할 수 있었다. 비서실장이 말한 배신자, 군사 관련 정보를 제외하고도 러시아 내부의 정치 사정사정, 정치인의 약점 같은 정보 말이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가 점점 틀어지고 있다는 정황 같은 것들은 아주 유용해.”
정확히는 러시아가 중국을 버린다기보다는, 중국이 알아서 떨어져 나간다는 느낌이 강하긴 했다. 러시아가 중국을 지원하기 위해 배분한 행정력이 날을 거듭할수록 점점 줄어 들어가고 있다는 정보였다.
“이 상황이 불편하신 건 알겠지만, 일단 참으시죠. 이 정도나 모았으면 중간보고가 늦어질 법도 합니다. 그리고 가려서 잘 안 보이지만, 형식상이나마 정리해서 보고서로 만들려고 한 노력이 엿보이니 말입니다.”
본래 국가 행정에 유도리가 개입하면 안 되는 법이지만, 이 경우는 좀 특수한 경우였다.
부시의 복잡한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모양인지, 화이트가 다가와 꼬리로 연신 다리를 쳐댔다. 고양이 꼬리임에도 불구하고 옷 너머로 제법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사람 마음도 알고 아주 영물이야 영물.”
“영물(mystical creature)이요?”
“그런데 왜 자꾸 이런 걸 사냥해오는 거야.”
오늘 밤에도 무언가를 사냥해왔는데, 이번에는 쥐새끼를 사냥해왔다. 아, 너무 평범하다고? 그럴 리가 있나. 그냥 쥐새끼도 아니고 길이가 60cm나 되는 뉴트리아 한 마리를 사냥해왔다. 이 워싱턴 D.C에 뉴트리아가 있다는 사실도 놀랄 일이었는데, 크기도 웬만한 뉴트리아보다 컸다.
“이 녀석이 호랑이였으면 산에 있는 생물의 씨를 말렸을 거야.”
“지금도 충분히 그러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건 그렇지.”
그렇게 화이트가 사냥해서 가져오는 것들은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일단 전부 박제로 만들고 있었던 탓에 조만간 전시전을 열 수 있을 정도로 박제가 모여있었다.
“뭐 그건 그거고. 아프리카는 잘 돌아가고 있나?”
“조만간 UN의 감시 아래에 투표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AU는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만.”
“그야 그렇겠지.”
그도 그럴 것이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모든 국가는 분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열강들이 각자 특색과 전통을 가진 부족들을 강제로 묶어놓은 탓이었다.
“그래서 그 AU가 뭐라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