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34)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33화(134/377)
< 133편 >
사회인이 가장 행복함을 느낄 때는 남들 쉴 때 노는 것이다. 반대로 말해서, 사회인이 피폐해질 때는 남들 놀 때 일하는 것이라는 소리다.
러시아 때문에 CIA에 근무하는 거의 모든 요원은 장기간 근속에서 오는 피폐함과 자괴감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 들어오는 정보가 많아지고, 정보를 재가공하는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처음의 완전히 망했다는 긴박한 분위기는 일체 사라지고 ‘알 게 뭐야! 우리도 할 만큼 했어!’라는 분위기로 변해갔다.
CIA는 이 정보로 대통령이 만족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대통령의 요구로 억지로 진행한 중간 브리핑에서는 브리핑하는 사람조차 완벽하게 숙지하질 못할 정도로 정보가 너무 많은 바람에 이렇다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드디어 러시아 보고서가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중복된 부분을 자르고 이어붙인 뒤, 올바르고 정확한 정보만 따로 추려서 만들어낸 정보에 가독성을 부여한 현대식 보고서의 정수라고 해도 좋을 물건이었다.
비유 없이 방 하나를 채울 수 있을 정도의 방대한 정보량이 고작 1000장 이내에 함축되었다. 이는 현대에 재해석된 에메랄드 비문이자 로제타석이나 다름없었다. 동시에 이보다 완벽할 수도 없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요약본에 가까운 것으로 내부로 파고들면 역설적으로 방 한 개 만큼의 추가적인 자료를 요구하게 되겠지만,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도 그 방 하나짜리 자료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 아니겠는가?
“기대 이상이군.”
그렇기에 ‘러시아 총정리 보고서’를 읽은 대통령의 입에서 기어코 ‘기대 이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CIA의 보고자는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짜릿한 전기 신호를 느낄 수 있었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내려가며 오싹오싹해지는 그것 말이다. 이를 두고 전율이라고 부르던가?
“정말로 수고했네.”
CIA의 영혼을 먹고 자란 씨앗이 드디어 화려하게 싹을 틔우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끝났다는 탈력감과 뿌듯함이 카타르시스로 승화되어 뇌 곳곳을 돌아다니며 호르몬을 과다분비 시켜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이 대답을 듣기 위해서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했던가? 이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서 수명이 뭉텅이로 깎여나간 기분이었다. 어쩌면 실제로 깎여나간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CIA는 이 보고서 하나를 위해서 거의 모든 부서가 자발적으로 야근을 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각자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확실히 벗어난 과중한 업무를 매일매일 부여받으며, 위에서 매일매일 모가지 소리 들으며 쪼이고 까이며 닦달을 받으면서, 매일매일 밤을 지새우며 일을 하면 수명이 깎일 만도 하잖은가.
‘상당하군. 이렇게까지 바라진 않았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어.’
부시는 자신의 손에 들린, 아마 현세대에 가장 뛰어난 첩보 기관 중 하나가 필사적으로 자아낸 지식의 보고에 감탄했다. 마치 러시아라는 손오공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관찰하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어떠한 방법으로 이런 정보들을 캐냈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당연하겠지만, 피해 보고도 있군.’
피해 보고는 거의 마지막 장에 있었다. 이 보고서 하나를 위해 현지 요원들을 아예 소모성으로 사용해야 했다. 소모성이라고 해도 무슨 사지에 몰아넣었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이 러시아 종합 보고서를 최종 임무로 CIA와는 영영 연을 끊은 것이다.
보고서의 내용은 이미 한 번 요약한 것에서, 알기 쉽도록 억지로 한 번 더 굵직하게 압축해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대분류는 ‘외교, 정치, 군사’로 구분되고, 외교 부분에선 사소하게는 어떤 관료가 어떤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온갖 상황에 따른 대응 방침 매뉴얼과 프로토콜이 포함되어 있었다.
정치에선 내부 사정이 낱낱이 밝혀졌으며, 각 정치인의 속사정이나 비밀들이 적힌 목록이 있었다. 심지어는 현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도 이 목록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정치인들의 관계도라던가 어떤 도시가 어떻게 해서 혜택을 받거나 핍박을 받았는지, 레드 마피아가 나라 정치에 얼마나 관여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군사 부분에서는 각 병기의 설계와 개발이념, 심지어는 종이 계획으로 끝난 병기까지 빼돌렸다. 당연하겠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단순한 군사 배치도부터 어떤 업자와 계약하고 있는지. 혹은 외부로부터 침략 대응 방침부터 침공 계획까지 전부 낱낱이 적혀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단순 계획을 벗어나 실제 전시상황이 되었을 때 지휘관의 각 성향에 따라 각 군이 어떻게 움직일지까지 나름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분석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아직 공개하지 않은 천연자원의 분포도나 매장량,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온갖 나라의 이중간첩. 온갖 미제 사건의 배후부터 핵미사일 개수까지 낱낱이 밝혀졌다. 물론 CIA에서 대규모로 움직이는 것을 눈치채고 역으로 정보를 흘렸을 수도 있기에 이 자료를 완전히 신뢰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이러한 정보를 이미 한 번 거른 상태였다.
“CIA는 내 생각보다 잘 해줬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냉전 종료 후 CIA 역사상 가장 큰 프로젝트 하나가 끝났다는 점이었고, 책임자가 만족했다는 것이었다.
“이제 이거랑 똑같은 게 중국판으로 나오면 되겠군.”
“예?”
그리고 CIA 보고자는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었다. 온몸을 뜨겁게 달구던 전율이 일순간 손바닥 뒤집듯 기를 앗아가는 차가운 전율로 변모했다. ‘지금 대통령이 뭐라고 한 거지? 아, 그래. 잘못 들었을지도 모르겠어. 그렇고말고.’라고 자기 세뇌를 반복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은 매우 흡족하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중국 말이야. 중국. 이놈들 심상치가 않아. 조만간 모라토리엄이나 디폴트를 때릴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이러면 우리도 상당한 충격을 입는단 말이야.”
인프라가 가장 취약할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국가가 무정부 상태가 되었을 때? 전쟁이 나서 적군이 침략해 왔을 때? 아니다. 인프라가 가장 취약할 때는 바로 한참 ‘공사’하고 있을 때였다.
무정부 상태가 되더라도 일부 집단이 미약하게나마 인프라를 돌리게 만든다. 전쟁이 나더라도 국가가 아예 무너지기 전까지는 꾸역꾸역 돌아갈 수 있다. 그런데 자금이 끊겨 공사 진행이 더는 불가능해지면, 그냥 그건 철근과 콘크리트 더미로 이루어진 거대한 쓰레기 산이나 진배없다.
그뿐인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신병기도 대부분 조져질 것 아닌가. 물론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도 터져서 경제가 폭락하지 않는 이상 김갑환이 기억하고 있던 꼴은 안 나겠지만, 그 순간 군축은 피할 수 없는 길이 되리라.
‘군축만큼은 안된다. 군축만큼은. 지금 미국이 큰소리를 치고 다닐 수 있는 이유는 경제도 경제지만, 전 세계와 혼자 싸울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군 규모와 뛰어난 차세대 무기에 있다.’
물론 그렇다고 군국주의 국가처럼 주객전도를 당하면 북한 꼴이 나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한 차이나 머니였다. 이게 끊기면 미국도 상당히 곤란해졌다.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도와주거나 풀어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고.’
도움 자체야 이미 가고 있었다. 의료품 지원이나 구호품 지원이라는 형식으로 말이다. 중국에서는 그걸 다시 언박싱해서 배급품 패키지로 만드는 모양이었다. 물론 중국은 병 주고 약 주는 기분이겠지만, 그렇다고 세계 평화 유지가 목적인 UN에서 중국을 안 도와줄 수는 없잖은가.
물론 이건 중국이 상임이사국이기도 했던 탓에 내려진 조치이기도 했다. 아주 작고 볼품없는 소국이었다면, 모두가 대만처럼 나 몰라라 했을지도 몰랐다.
“할 수 있겠지? 이건 짧게는 앞으로의 10년. 길게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존망이 걸린 일이네.”
부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다. 막말로 여기서 무너지면, 모든 행정이 꼬이기 시작할 거고. 결국에는 김갑환이 기억하고 있던 ‘다시 위대해져야 하는 미국’으로 삽시간에 추락할 터였다.
대통령께서 이렇게 나오는데 뭐라고 대답해야겠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예스맨이 되는 것뿐이었다.
“예.”
보고자는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 끝났다고 이제 좀 넉넉해진 일정과 밀린 휴가를 기대하고 있던 동료들의 부하들과 동료들의 표정을 떠올리면 속이 쓰리긴 했지만, 어디 본인이라고 휴가를 기대하지 않았겠는가? 어차피 이 러시아 종합 보고서가 퇴짜 맞을지도 몰랐기 때문에 다들 상시 대기하고 있었다. 봐야 하는 업무가 좀 바뀔 뿐이었다.
다만 이번에 현지 요원들을 소모하고 다시 충당하느라 예산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소모했기에 예산에 대해서는 걱정이 많았다. 다만 이 부분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준다고 했으니 이 말을 굳게 믿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지금부터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였다. 중국에서 한 번 CIA 요원이 솎아내진 게 문제였다. 냉전 시절부터 꾸준하고 은밀하게 간첩 농사를 해온 러시아와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움직일 수 있는 인력이 그리 많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점은 이번처럼 군사 정보같이 비교적 위험한 부분이 섞여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물론 다른 정보들은 그렇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 쪽은 간접적으로라도 캐다가 변명이라도 할 수 있지. 군사 관련 정보는 빼도 박도하지 못하고 바로 간첩 취급이었다. 전직 KGB 고문관과 심층 상담 시간을 가진다는 소리였다.
“아, 참 그렇지.”
물론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대통령의 말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그 자리에 그대로 멈췄다. 문제가 있다면 단순히 행동만 멈춘 게 아니라 심장까지 멎을 지경이었다. 도대체 이번에는 무슨 말을 하려고 멈추게 시켰는지 상상만으로 제멋대로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이번에는 시간을 좀 넉넉히 주도록 하지. 이번에 내가 재촉해서 많이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올해 안에만 해오면 그걸로 족해.”
그래서 이 말을 들었을 때 다리가 풀어지도록 안심할 수밖에 없었다. 예산 그리고 시간이 있다면 충분히 여유 있게 해낼 수 있다. CIA는 그럴 능력이 되는 정보기관이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을 해낼 뿐이다.
‘올해 안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아니,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해내 보이고 말겠다!’
평소라면 담담하게 받아들였을 게, 되지도 않는 생고생을 해서 그런지 감정이 격해졌다.
“알겠습니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대답으로 끝으로 위풍당당하게 집무실을 걸어 나갔다. CIA가 해냈다는 성취감과 이젠 여유가 있다는 희망을 지니고서.
“저 친구 참 나이대에 맞지 않게 활기차구먼?”
“이상하군요. 원래 저런 친구가 아닌데.”
비서실장은 행동에 잠시 의문을 가졌지만, 그런 날도 있겠거니 하고 산더미처럼 쌓인 러시아 종합 보고서 참고자료로 눈을 돌렸다. 지금은 러시아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 러시아 전략을 수립하려면 결국에는 저걸 다 읽어봐야겠군.”
어마 무시하게 쌓여 있는 참고자료들을 보고 있노라면 갑자기 편두통이 찾아왔다. 부시는 머리카락을 가볍게 쥐어짰다.
고양이인지 의심스러운 흰색 메인쿤 한 마리만이 그 광경을 바라보며 의자 위에서 느긋하게 하품하고 있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