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39)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38화(139/377)
< 138편 >
“당신이나 나나 공통점이 있지. 바로 그건 시간이 없다는 거요.”
부시가 리커창을 만나자마자 내뱉은 말이 이것이었다. 워낙 간단한 영어여서 통역을 거칠 필요도 없었다. 외교적 가식 따위는 다 집어치운 실로 무례한 작태였으나, 리커창도 저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양키 얼굴은 그다지 오랫동안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묵묵히 동의했다.
그것 말고도 여기저기 미국 대통령을 환대할 예산이 심각하게 모자란 것과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왔다는 사실을 은폐해야 한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하긴 미국 대통령 본인도 암살당할지도 모를 나라에 계속 있고 싶지는 않으리라. 다만 이렇게 되면 ‘도대체 왜 미 대통령 본인이 직접 왕림했는가?’에 대한 대답이 영구미제가 되어버리긴 했다.
‘내 생각보다 흥미로운 인물은 아니군. 이게 21세기 미디어의 힘인가? 아니면 주석이라는 자리가 그를 이렇게 만든 건가?’
부시는 리커창이라는 인물을 딱히 폄하하고 싶지는 않았다 도리어 지나칠 정도로 고평가하고 있었다. 김갑환이 기억하고 있던 리커창의 모습과 매우 달랐다. 하긴 그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은 2019년의 모습이었다. 관록이나 세월이 문제인지, 그것조차도 아니면 현 중국을 유지하기 위해서 온 심력을 쏟는 바람에 정기가 빨린 건지는 모르겠으나, 부시가 기억하고 있는 리커창이란 인물은 푸근하고 호감 가는 얼굴을 지니고 의를 중시하는 정치를 펼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지금 부시 앞에 서 있는 사내는 마치 철인과도 같았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철면피였고, 딱히 자세히 관찰하지 않아도 눈에 띌 정도로 상당히 수척해져 있었다.
그러나 눈빛 하나만큼은 부시를 잡아먹을 듯 예기를 머금고 있었다. 눈빛이 날카롭다는 상투적인 말이 형태를 가지고 현세에 나타난다면 바로 이러했다. 기세가 마치 잘 벼려진 한 자루 한검(漢劍)을 보는 듯했는데, 잘못 접근했다가는 베일 것만 같았다.
‘하루 정도는 진득하게 토론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바쁜 와중에도 부시가 중국으로 직접 날아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는 리커창과 만남을 제법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게도 리커창은 어떤 의미로든 부시의 기대를 크게 벗어난 인물이었다.
‘더 볼 것도 없다. 아예 못을 박아버리자.’
부시는 리커창에게 완전히 기대를 접었다. 만약 그와 이야기할 시간이 있다면, 적어도 서로 국가의 지도자라는 완장을 차고 있지 않은 시점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단적으로 8년을 20년으로 늘려주겠습니다.”
부시의 기간 연장 선언을 들은 리커창은 저도 모르게 눈가를 꿈틀거렸다. 정확히는 이젠 1년이 지나서 7년이었지만, 7년이든 8년이든 거기서 거기였다. 무엇보다 2배 이상으로 늘려준다는 조건은 리커창이 보기에도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약간의 문제가 남아 있었다. 중국이라는 국가의 문제라고 해도 좋고, 리커창 개인의 문제라고 해도 좋았다. 왜 기간을 늘려주는지는 알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채무자가 파산할 판이니, 숨통을 늘려 좀 더 효율적으로 착취하겠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쉬이 눈치챌 수 있었다. 사실 아주 약간의 지정학적인 견식을 가지고 있다면, 딱히 리커창이 아니라 누구라도 알아차릴 법했다.
어쨌든 문제가 되는 건 바로 이거다.
‘도대체 이 한마디로 끝낼 거면 왜 왔는데?’
이는 리커창 개인 차원의 호기심이기도 했고, 동시에 저 20년에 숨겨진 뜻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솔직히 막말로 20년으로 늘려주겠다는 건 아무 외교관을 보내도 되었고, 좀 심하면 미국에서 발표하고 외교 공문 하나로 날려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런데 어째서 중화 애국 열사들의 암살 위협을 감수하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시간이라는 귀중한 자원을 소모하면서까지 중국으로 날아왔는지가 전혀 감이 오질 않았다.
“조건 자체는 우리에게 상당히 관대한 조건이군요.”
리커창은 구태여 관대하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단어는 신사적이었으나, 태도는 명백한 비꼼이었다.
“저희 중국은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습니다. 수락하겠습니다.”
두 지도자 사이에서 오간 건 단순한 구두 약속이었으나, 머잖아 협의서나 공문이 쇼의 형태로 오갈 것이었다. 아무리 두 지도자가 승인했다지만, 각국의 국장이 찍힌 문서로 만들어져야 비로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럼 고생했소.”
아직 갓 나온 차가 식지도 않았다. 식지 않았다는 게, 차갑게 식었다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이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식지도 않았다는 말이었다. 그 증거로 투명한 옥색 찻잔 위로 흰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 올라오고 있었다.
“벌써 가십니까?”
일부러 꼽을 주려는 건지, 아니면 미국 본토나 그 영향권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으나, 표정이 상당히 급해 보였다. 리커창의 눈으로 본 조지 W. 부시라는 인물은 인정하기는 싫으나 상당한 호걸상이었다.
서양인의 체격답게 딱 벌어진 어깨와 실전인지 보여주기 용인지 알 수는 없으나, 양복 밖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다부진 통나무 같은 근육은 도저히 나이대에 맞는 육체가 아니었다. 마치 노익장이라는 단어가 이 사내를 위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물론 기대수명이 진일보한 이 시대에 노익장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젊다면 젊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젊다고도 할 수 없는 어중간한 나이긴 했다. 보통은 이를 두고 아저씨라고 부르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아저씨 따위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도 업무상 스트레스만큼은 절대로 피할 수 없었던 모양인지 눈만큼은 피로에 절어있었다. 눈 밑에 드리운 다크 서클을 자연스러운 화장으로 숨기려 했던 모양이었으나, 핏발선 눈알만큼은 화장할 수 없었기에 쉬이 알 수 있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더 논의할 사항이 남아 있습니까?”
물론 있을 리가 없었다. 리커창이 침묵하자 수긍의 뜻으로 해석한 모양인지, 미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 대통령이 탄 헬기가 에어포스 원이 있는 공항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그제야 머리가 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지금 빚 변제 기간이 7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난 건가? 2022년까지?’
고작 2분 남짓한 시간 안에 중국의 운명이 좀 더 연장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리커창은 다소 황당하기까지 했다. 이 회담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2분? 2분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사람이 증거라곤 하나도 없는 미지의 사건에 맞닥뜨렸을 땐 누구나 의심과 심증만으로 완전히 추론의 영역에서 사건을 풀어나가게 된다. 나라면 이랬을 거라는 둥, 혹시 이런 조건이 더 있었던 건 아닐까? 라며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오만가지 상상을 펼치게 된다.
그리고 이 추론의 궁극적 도달점은 바로 ‘음모론’이다. 리커창이 우수한 인간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지만, 리커창이 제아무리 우수하다고 할지라도. 아니, 도리어 우수하기에 상상의 폭이 더 넓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이는 추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에는 단서가 심각하게 없다 보니, 설마 미 대통령이 날아온 이유가 리커창 본인 때문일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리커창은 이 짧은 시간 안에 어떤 음모론에 닿았는가?
‘누군가가 저 인간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음이 틀림이 없다.’
리커창이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대통령의 태도였다. 이곳에 온 게 도저히 좋아서 온 거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미 대통령은 거의 항상 비서실장을 옆에 달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무리 심복이라 할지라도 모든 국정을 상의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아무리 작은 소국이라 할지라도 분야마다 보좌관이 괜히 있겠는가?
‘설령 내 가설이 틀렸더라도 상관없다. 적어도 이 중국행이 미 대통령의 의지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물론 이번 중국행은 하나부터 백까지 부시의 의지였다. 그러나 그것을 알 도리가 없는 리커창은 섣불리 이번 중국행이 부시의 의지가 아니라고 단정 지었다. 여기까지 하고 나니 이제 자신이 생각하는 데로 논리를 쌓아 올리는 데에 거침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미 대통령을 조종하는 인간이 누구일까?’
감히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할 수 있는 현대의 천자를 조종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이게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4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도 황제가 항상 강력한 황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미국이라고 해서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항상 강력하리라는 법은 없다.
‘적어도 두 개로 좁힐 수 있다.’
일단은 연방 의회. 그중에서도 공화당의 몇몇 인물이다. 지금은 자금 문제로 정보원 대부분이 철수했거나 변절했기 때문에 더는 정보가 들어오지 않지만, 그전에 들어온 자료들을 읽어보면 공화당에 부통령을 중심으로 한 주전론자들이 있었다.
아니면 단순하게 생각해서 매일같이 붙어 다니는 비서실장일지도 몰랐다. 아니, 도리어 알기 쉬울 정도로 너무 대놓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감시자일지도 몰랐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리커창은 자신이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리저리 꼬인 권력 구조와 ??시 덕분에 몇 번이고 겹겹이 얽혀있는 인맥 탓에 복마전이라고 생각했던 중국 공산당만큼이나 미국 정계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갑자기 뼛속까지 오한이 사무쳤기 때문이다.
어째서 오한이 들었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남은 것은 도대체 누구의 뜻이지?”
그것은 지금 중국이 살아있는 게 누구의 의지인지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연료 보급은 끝났습니다. 저들이 에어포스 원에 가짜 항공유를 넣은 게 아니면 좋겠군요. 그런데 하루는 걸린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비서실장이 붙인 수행원의 말이었다. 부시가 잠시라도 보지 않기를 원했던 보고서를 전부 들고 온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다.
“예정이 바뀌었어. 영국으로 일정이 변경되었으니 지금 간다고 연락을 넣게.”
“알겠습니다.”
그들은 필요 이상으로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수행원으로서 아주 훌륭한 자세였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비서실장은 이러한 태도를 미덕으로 삼았고 부시 또한 동의하는 바였다.
“그건 그렇고 토니 블레어인가.”
토니 블레어는 ‘부시의 푸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어 있는 영국 총리였다. 이 별명에는 당시 영미의 관계에 대해서부터, 미국의 위상까지 지정학적으로 복잡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런데도 무리하게 축약하자면, 토니 블레어는 대세에 순응한 남자였다.
강은 거스르는 자에게 가혹하고, 물살을 타는 자에게는 속도를 주는 법이다. 물론 물살을 타더라도 물길을 알지 못하면 바위에 부딪혀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정치인으로서의 능력 아니겠는가?
“재미는 없을지언정 ‘브렌트유 증산’이라는 내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합당한 인물이군.”
외교의 기준이 재미인 시점에서 뭔가 크게 잘못되어 있었지만, 이것을 지적해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인물인 앤드루 카드 비서실장은 하와이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