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40)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39화(140/377)
< 139편 >
부시가 중국을 방문한 사실은 완벽한 비밀이 되었다. 당시 통역관과 일부 당의 고위 간부들. 그리고 에어포스 원에 탑승한 수행원들과 비서실장을 제외하면 이를 아는 인물은 정말로 단 한 명도 없었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중국에 피바람이 한 번 몰아친 이후 새롭게 잠입한 CIA 요원들조차 모르는 사실이었다. 물론 소문이야 발 없는 말인지라 ‘미 대통령이 중국에 방문했었다.’라는 도시 전설 자체를 틀어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왜냐면 정기적으로 오는 적십자 사람들을 제외하면 국제선의 발길이 거의 끊긴 베이징수도 국제공항에서 미국발 비행기가 들어오는 사실 자체가 드문 일이었는데, 그게 하필 어떻게 봐도 에어포스 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항 사람들은 쉬쉬하지만, 이게 사람이 입에 술이 들어가다 보면 입마개가 술술 풀리지 않는가?
게다가 이 에어포스 원은 관제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였다. 정확히는 영국으로 가는 김에 ‘중국’을 지나가는 길이었고 프로그램상에서는 여전히 중국 영공을 지나가고 있었다.
여느 도시 전설이 다 그렇듯 단 하루 만에 이상한 바리에이션이 다수 생성되었다. 예를 들면 ‘중국에 불평등 조약 혹은 항복을 권하기 위함이었다.’ 따위의 다소 평범한 소문부터. ‘현 주석과 미 대통령이 다소 각별한 밀월 관계다.’ 같은 다소 황당한 소문까지 다종다양했다.
그러나 이는 중국에 다녀간 지 일주일은 족히 지난 후부터 베이징을 중심으로 서서히 넷을 타고 돌기 시작하는 소문이었으므로 현재는 아직 소문조차 돌고 있지 않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다. 다만 소문이 도는 것이 꼭 술 때문만은 아니었고, 돈 좀 벌면 개기고 보는 게 중국 사업가들인지라 점점 정부의 통제가 먹히지 않고 있다는 까닭도 있었다.
어쨌거나 갑작스레 무려 하루나 앞당기게 되어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미 대통령의 멱살을 잡고 춤이라도 추고 싶어지는 영국이었다. 이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소리냐면, 타국 대통령의 사정 때문에 자국 총리의 일정이 앞으로 당겨진다는 소리였다.
고작 타국의 사정 때문에 자국의 행정이 좌지우지되고 있다니! 이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인가? 물론 아예 타국은 아니고 우방국이었지만, 우방국이 우방국이지 자국은 아니잖은가. 우방국이란 자국의 사정에 따라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영국 총리인 토니 블레어가 작정하고 미 대통령에게 완전히 맞추기로 작정했다는 것이었다. 토니 블레어의 일정은 완전히 조정되었다.
“어떻습니까?”
하지만 그 미국조차 바꿔놓을 수 없었던 게 있었는데, 그건 바로 영국인의 티-타임이었다. 찻주전자부터 찻잎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고급인 건 확실했다. 그러나 차 문화에는 별 관심도 소양도 없었던 부시에겐 단순히 향이 좋고 부드러운 물에 불과했다.
그래도 성의를 무시할 순 없었던지라 몇 번 홀짝이긴 했으나, 역시나 그냥 향이 첨가된 물이었다. 차를 아예 안 마시는 건 아니었지만, 티백 형태의 차가 더 익숙했다. 그 차마저도 그냥 습관적으로 마시다 보니까 마시게 된 거지. 딱히 취향이나 취미가 있어서 마시는 건 아니었다.
‘전차에도 차 끓이는 기계를 박아넣는 민족답군.’
어쨌거나 마셔 줄 의향은 있었기에 조용히 차와 같이 나온 과자와 함께 잔을 비웠다. 과자는 맛이 훌륭했다. 은유적이고 풍류를 알아야 하는 차와는 달리 과자는 맛이 직관적이기 때문이었다.
“브렌트유. 이거 증산할 수 있겠습니까?”
부시는 러시아를 한사코 압박하고 싶었다. 머잖아 자연스럽게 미국 국내의 생산량이 늘어나며 싫어도 압박하게 될 터였지만, 아주 사소한 틈도 주고 싶지 않아 했다.
“그게 좀 곤란합니다.”
브렌트유란 북해의 유전에서 나오는 몇몇 유전을 뜻하는 단어다. 정확히는 해를 거듭할수록 브렌트유의 상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점점 편입하는 유전 개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따라서 브렌트유가 북해 유전을 뜻하는 단어는 아니었다.
덕분에 훗날 2010년을 넘어가면 ‘북해 유전에는 브렌트유가 없다.’라는 말도 나오고, 브렌트유가 고갈된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나오지만, 브렌트유가 고갈되더라도 매장되어 있는 천연가스 매장량이 상당하여 개발이 멈추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작년부터 거듭된 미국의 브렌트유 증산 요청으로 인해 몇몇 다른 유전을 브렌트로 통합하고 작업 시간과 시추 속도를 약간 무리하게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브렌트유를 증산하라는 요청은 매우 곤란했다.
그렇지 않아도 무리한 유전을 더 갈구면 결과는 뻔했다. 반드시 어디에선가 어떠한 형태로든 문제가 생기리라.
그리고 미국이 영국에게 브렌트유 추가 생산을 요구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는데, 북해에서 생산된 브렌트유 대부분을 소비하는 고객이 다름 아닌 미국이었기 때문이었다. 후려치겠다는 것도 아니고 제값 주고 사가겠다는데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덕분에 영국은 돈 좀 만졌고 내부에 좀 더 집중할 여력을 챙길 수 있었다. 영국은 EU 내에서도 몇 안 되는 ‘방치 국가’였다. 방치 국가 혹은 방치국이란 중동에 개입하지 않거나 그 영향이 미미한 EU 회원국을 일컫는 신조어였다.
이는 토니 블레어가 영국 내수 살리기에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생각이었으나, 이라크 제압이 끝나자 빠르게 손익 계산을 끝내고 중동에서 철수했다.
영국군의 수치나 다름없는 총기도 마음에 걸렸다. 비교적 최근에 개량된 L85A2의 성능이 실제로 전장에서 어떤 성능을 발휘할지 어떨지 미지수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이라크전에서 이뤄진 시가전에서는 제법 만족할만한 성능이 나왔다는 보고를 듣고 나서도 마음이 여의치 않았다.
어쨌거나 확실한 것은 총기 문제는 영국이 중동에서 철수해야 할 많고 많은 이유 중 하나일 뿐이었고 실제로는 지정학적으로 더 많은 이유가 산재해 있었다.
“그 부분을 어떻게 꼭 안 되겠습니까?”
부시의 말을 들은 블레어 총리는 마시던 찻잔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전쟁 도중에 상공에 포가 날아다니고 폭격기가 폭탄을 떨굴 때도 차를 마시는 영국인이 차를 마시다가 내려놓는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일이었다. 일단 첫 번째로 블레어 총리가 한 생각은 지금 자신이 맞이한 상황이 꽤 초현실적이라는 것이었다.
우선 어마어마한 덩치를 가진 거한이 공손하게 부탁해온다는 사실 자체가 블레어 총리로 하여금 상당한 괴리감을 자아냈다. 분명 1년 전까지만 해도 부시는 그냥 키가 좀 크고 훤칠한 사람이었지, 이런 강한 인상을 주는 거한은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심화한 괴리감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었다.
다음으로 다름 아닌 저 광인이 일단은 ‘부탁’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광인이라고 표현하는 이유야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사실 조만간 미국 제국이나 지구 통합 정부 따위를 선포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남자였다.
그리고 아마 저 광인 세대의 일은 아니겠지만, 이대로라면 미국이 항구적으로 패권을 쥐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영구적은 아니겠지만, 앞으로 못해도 100년. 길게는 500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마음만 먹는다면 지구를 하나로 만들기엔 너무나도 차고 넘치는 시간이었다.
‘그나마 미국이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기뻐해야 하는 건가?’
민주주의라서 적어도 독재 정치는 못 하니 다행이었다. 물론 저 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어쨌거나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돌변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다 보니까 말을 꺼낸다는 행위 자체가 끔찍할 정도로 힘들었다. 민주주의의 치명적인 단점이 이거다. 저런 광인도 대통령으로 뽑아주니까 문제가 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한 블레어 총리가 다시 찻잔을 들어 차를 들이켰다. 심신을 안정시키는 산뜻한 찻내음이 스틱스강 너머로 이 괴로운 현실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멀리 달아나려 하는 블레어의 영혼을 단단히 붙잡아 육신으로 되돌렸다.
그런데도 블레어의 정신은 혼미 그 자체였지만, 차의 힘을 빌려 가까스로 제어해 내는 데 성공했다. 몇몇 문화에서 고대의 제사장들은 의식에 향이 강한 허브를 자주 썼다던데,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그래, 부탁을 거절하는 게 어차피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저 인간이 원하는 걸 주고 그만큼 이득을 받아와야겠다.’
블레어 총리는 저 인간을 눈앞에 두고 잘도 여기까지 결론이 낼 수 있었다는 게 스스로 기특해질 정도였다.
“그래도 꼭 증산을 원하신다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만. 아주 작은 부탁이 있습니다.”
‘아주 작다’라는 대목에서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지만, 지금 아쉬운 것은 부시였기에 일단은 들어나 보기로 했다.
“뭡니까?”
“별건 아닙니다. 나중에 저를 한 번 도와주십시오.”
이미 5개의 눈과 NATO. 그리고 온갖 지정학적, 외교, 경제적 굳건하게 묶여있었지만, 블레어 총리는 앞으로 올 시대에서는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밸런스가 완벽히 한쪽으로 기운 게임에서 안전한 곳에 배팅하는 것은 상식 아닌가?
물론 이는 영국이 안배해놓은 수많은 분산투자 중 하나였다. 그 분산투자 중에서도 가장 안전한 투자이기도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내수가 활성화되면서 EU에서 분리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었다.
단순히 영국이 EU에 묶여서 손해를 보고 있다는 말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EU를 탈퇴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등에 대해서 설파하며 그들이 주장하는 ‘EU 탈퇴’는 점점 구체화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EU가 흔들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탈퇴를 외치는 목소리들도 아직 제대로 된 구심점을 잡지 못하고 산발적으로 나오고 있을 뿐이지만.’
블레어 총리는 자신의 임기 중에 이 EU 탈퇴론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지만, 아마도 올 것 같았다. 영국인들은 상상 이상으로 대영제국 시절의 향수에 젖어있었다. 게다가 국민성 자체가 유럽과 뭔가 해보기에는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경제적이면 모를까, 정치적으로까지 끌려다니는 것을 결코 원치 아니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영국의 경제는 성장세를 보고 있는 반면에 작년 EU가 제창한 유로존 자체가 벌써 삐걱거리고 있었다. 미국을 신경 쓰느라 급하게 도입했다는 문제도 있었고, 서이라크를 영향권 안에 넣은 이후로 중동에서 얻는 이익보다 나가는 지출이 더 많아서 그렇기도 했다.
최근 들어 수확이 없어 점점 시들해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자르카위 수색이 한참 진행 중이었고 개판이 난 서이라크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쓰고 있었다. 여기에 들어가는 돈이 농담 아니게 많았다. 그나마 위안이라고 한다면, 밑 빠진 장독처럼 줄줄 새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이러한 상황에서 중동에 별로 손댈 생각도 없는 영국이 손해 보고 있다고 생각해도 그다지 틀린 생각은 아니라는 것이다.
‘참으로 불행히도 내 임기 중에 반드시 일어날 태지. 브렉시트가.’
‘브렉시트’가 성공할지 실패할지. 그것조차 아니면 정치인들이 전력을 다해서 막을 수 있을지 아니면 반대로 그들이 브렉시트를 실천할지 모르겠으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블레어 총리에게 뒷배가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EU에서 입장이 곤란하게 되었을 때 영국의 든든한 배경이 되어줄 나라가 말이다.
물론 브렉시트가 터지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 전에 저 광인이 도대체 뭐라고 답변할까? 항상 제안을 넣고 대답을 기다리는 순간이 가장 가슴을 졸이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저 인간하고 거래하려니 가슴이 졸이다 못해 푸석푸석하게 비틀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너무 맥이 빠지는 대답이었다.
“그거면 충분합니까?”
“작은 부탁이라곤 했지만, 생각보다 가벼운 문제는 아닙니다. 내가 하는 말은 그러니까···.”
블레어 총리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게 실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면서까지 되묻기로 했다.
“항모전단이라도 움직여드릴까?”
“···그거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