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46)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45화(146/377)
< 145편 >
‘나, 나는.’
김정일의 입 밖으로 아주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잠시 집 나갔던 생명이 돌아오는 소리였다. 적어도 아직은 김정일이 북조선을 지도할 운명이라는 소리였다.
‘나는 아직 죽을 수 없다.’
적어도 그 백년 원수 양키놈에게 한 방 먹이기 전에는 억울해서라도 저승으로 갈 수는 없었다. 북조선을 말아먹고 아바디의 얼굴을 어찌 뵙는다는 말인가? 물론 그 아바디를 간접적으로 골로 보내고 유언 어겨가며 권력을 강화한 게 김일성이긴 했지만, 김일성이 어디 그것까지 신경 쓸 위인이었던가?
‘반드시 그 오만방자한 골통에 주체사상의 총포탄을 박아 주겠다!’
김일성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서서히 눈을 떴다. 눈을 장시간 감고 있었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곧 시력을 회복했다. 인간의 눈은 하루 이틀 빛을 보지 못했다고 실명할 정도로 나약하게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환각인가?’
아니, 그런데 절대로 보이면 안 될 것이 눈앞에 보이는 게 아닌가? 방금까지 반드시 골통을 까주겠다며 벼른 인물이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더 위압적으로 변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서 있었다.
‘네 이놈 양키야! 이젠 환각이 되어서까지 나를 괴롭히는 거냐!’
김정일은 드디어 자신이 미쳤거나 아직 꿈속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찢어 죽일 원수! 천년 백년 원수! 영원불멸 미래영겁 원수!’라며 씩씩거리고 있었는데, 그 대상이 앞에 보이면 무슨 생각이 들겠는가? 상식적으로 그냥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지.
심지어 큰맘 먹고 대통령 일정까지 확인해서 북조선에 절대로 오지 않는다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미 대통령이 왜 자신의 눈앞에 있겠는가?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도리어 환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미친 게 아니라 제정신이기에 환각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렇다. 혹시 수술의 부작용일지도 모르잖는가? 약 기운이 강하면 종종 이런 일도 벌어진다고 들었다.
“나 조지 W. 부시야.”
그러나 이렇게 생생한 환각이 있을 리가 없었다.
“이봐, 정일이. 내가 왜 왔는지 알겠는가?”
문제는 상대가 좀 상식에서 많이 벗어난 인물이었다는 점이었다. 환상이 말까지 할 리는 없다. 아니, 적어도 김정일 자신이 환청까지 들릴 정도로 미쳤다고 믿고 싶지는 않았다. 귓가에 영 익숙하지 않은 영어까지 들리자 이젠 이것이 환각이나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자각했고, 반쯤 흐릿했던 의식이 완전히 각성했다.
“허억! 대통령! 미, 미국! 아메리카! 대장!”
그러나 아직 정신이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머릿속에서 선정하고 나열된 단어가 마구잡이로 꼬여서 제멋대로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뱃속에서 그 무엇보다도 형언키 힘들 정도로 뜨겁게 들끓고 있는 오만가지 욕설을 제지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강냉이를 수확해서 세끼 밥 지어 먹어도 시원찮고 모자를 개새끼!”
아니면 말고.
“워, 이북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입이 구수한가?”
“조까네! 뭐라고 지껄이는 거니!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을 모르니? 내래 왜 북조선에 와서 영어로 지껄이고 있는 거니? 꼬우면 문화어로 말하란 말이야!”
그래도 이성이 조금은 남아 있었던 모양인지 부시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평소에 그의 옆에 항상 달라붙어 있던 통역관이 없다는 걸 확실하게 인지하고 좋을 대로 지껄이고 있었다.
“그래? 그럼 한국어로 이야기하지. 북한과 남한은 따지자면 한민족이니까 구태여 문화어를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네만, 맞나?”
“허?”
백지다. 지금 김정일의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새하얀 백지였다. 혹시 살면서 눈앞이 새하얗게 변한 경험이 있던가? 김정일은 살아오면서 적어도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새하얀 전기신호 같은 것이 눈 아랫부분부터 서서히 타고 올라오더니 이내 희미한 빛이 점멸하며 폭죽처럼 눈앞을 뒤덮는다. 그리고 이윽고 완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백색만이 시야를 지배하게 된다.
“뭐, 이번 일은 솔직히 그냥 넘어가 주겠소.”
“어, 어어?”
“혹시 싶었는데, 진짜로 할 줄이야. 이건 나도 놀랍군. 그거 아시오? 500년만 더 전이면 서로를 모욕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전쟁할 수 있었다는데.”
그렇게 말한 부시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침대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괴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기를 바랐던 김정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 저 양키의 입에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심지어 어눌한 것도 아니었고 매우 익숙한 듯 현지인처럼 유창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죽다 살아났는데 다시 죽게 생겼다는 사실이었다.
“하하! 그것도 전부 옛날 일이지. 지금이야 욕 좀 먹었다고 앞날 창창한 청년들을 사지로 밀어 넣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암! 그렇고말고.’라며 대인배 행색을 하며 껄껄댔다. 다만 확실한 것은 모욕당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진짜로 전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긴 했다. 시민들이 대놓고 전쟁하자고 하진 않겠지만, 수를 써서 부추기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자, 다시 한번 묻겠다.”
“무, 뭘 말인가?”
“내가 왜 왔는지 알겠나 정일이?”
그렇다. 그가 왜 왔는가? 아직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머리가 덜 돌아가는 것도 있었지만, 부시가 한국어를 썼다는 충격으로 인해 여전히 머리가 마비되었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러나 뇌에 생긴 총체적 난국이 아니었더라도 도저히 알 수 없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김정일 안에서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생존 본능이 열심히 일하여 간신히 몇 가지 추측에 닿을 수 있었는데, 첫 번째는 이미 몇 번이고 당했던 재산 강탈이었다. 어차피 자국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이니 이걸 재산 강탈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김정일의 입장에서는 훌륭한 재산 갈취였다.
두 번째는 이번에야말로 김정일이 쓰러진 틈을 타서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을 완전히 단죄하러 왔을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몽둥이로 조선의 몰락을 친히 실천하러 온 것이다. 영향력이 크게 흔들렸으니, 이 가설 또한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김정일이 곧이곧대로 대답하면 저 재앙 덩어리가 ‘정말 좋은 아이디어야! 내가 그 생각을 왜 못했을까! 자넨 정말로 끝내주는 친구일세! 하하하!’라며 진짜로 그리할 것만 같아서 김정일은 쉬이 입 밖으로 대답을 내지 못했다.
김정일은 결국엔 몇 번 우물쭈물하다가 얼버무리기로 하곤 입을 열었다.
“모르겠···.”
“하하. 이 사람아. 당연히 자네 병문안을 온 거 아니겠는가?”
부시는 실실 쪼개며 한 손으로 음료수가 담긴 상자를 흔들어 보였다. 북한에는 없을 것 같은데 이게 또 사람을 시켜서 찾아보니 의외로 흔히 있었기 때문에 쉬이 구할 수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분명히 병문안용 음료수 상자는 한국산으로 아마 최근 활발해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예전까지만 해도 장마당에서 암암리에 돌아다녔다면, 이젠 더는 장마당이 아니라 일반 가게에서도 남한 물품을 당당하게 팔고 있었다. 정식으로 수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얌전히 그냥 돌아가겠으니. 푹 쉬라고.”
‘개소리!’
부시에 대한 불신은 김정일에게 있어서 거의 자연 현상에 가까울 정도였다. 사과를 던지면 바닥에 떨어지고 물은 아래로 흐르는 중력의 법칙처럼 부시가 방문하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현상’이었다.
어쨌거나 자신의 말을 확실하게 알아듣는다는 것을 깨달아 태어나서 노인이 될 때까지 처음으로 말을 가리게 된 김정일이었다. 대신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잔뜩 얼굴을 최대한 찡그리곤 눈동자를 부들거렸다. 이게 김정일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분노의 상한선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생존 본능을 넘어서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저 사내가 지구상 제일로 가는 분노 조절 치료사였다는 점뿐이었다.
“자네가 그렇게 생각해도 상관은 없네만. 그렇게 내 신경을 거슬러도 되겠나?”
그 말을 들은 김정일은 얼굴이 싹 달라졌다. 다만 아까와 다른 점은 인간의 증오를 전부 모아놓은 듯한 표정에서 핏기가 싹 내려갔다는 점뿐이었다.
“하하! 걱정하지 말래도.”
거기까지 말한 부시는 병실에서 정말로 나갔다. 그러나 그것조차 제대로 믿지 못해 입 밖으로 절대 꺼내지 않았다. 다만 속으로 얼마나 저 인간이 악마 같은지 생각할 뿐이었다. 아니, 하마터면 악마한테 큰 결례를 범할 뻔했다. 죽으면 분명 지옥에 갈 터인데, 악마한테 잘 보여야 할 것 아닌가? 어찌 감히 악마와 저런 단어로는 형언할 수 없는 인간을 비교한다는 말인가?
‘어휴. 내래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다는 말이니! 자본주의 제국주의자 놈들한테 꼼짝없이 당하게 생겼구나!’
부시야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설마 부시라는 인간이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겠는가? 당연하게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아니, 본인이야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어디 본인 생각하고 세상이 받아들이는 게 똑같겠는가?
“한 말씀 해주십시오!”
일찍이 지금껏 북한에 이렇게 많은 기자가 몰린 적이 없었다. 전 세계의 기자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평양에 몰린 적은 더욱 없었고 말이다. 타국의 대통령을 위해서 단상이 준비된 적은 더더욱 없었다.
솔직히 연설할 것도 없었지만, 부시는 단지 재미있을 것만 같다는 이유로 이 자리를 만들었다. 구태여 건실한 이유를 가져다 붙이자면 못 붙일 것도 없었다. 자국으로 돌아가던 비행기의 기수를 돌려서 북한으로 기습적으로 온 이유를 해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런 이유를 가져다 붙이는 것은 보통 부하들의 일이었다. 저지르는 건 부시의 일이고.
연설이 시작되기도 전에 온갖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사실 준비된 연설을 그다지 읊을 생각도 없었던 부시인지라 단상 아래에 밀어둔 지 오래였다. 인파가 인파인지라, 들려오는 영어의 억양도 피부색도 실로 가지각색이었다. 그야말로 인종을 초월한 진정한 화합의 장이 따로 없었다.
“자네.”
일단 저 질문 공세를 어떻게든 제압하지 않으면 자신의 귀가 찢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사실을 깨달은 부시가 가장 앞에 있던 기자 한 사람을 지목했다. 하는 짓과는 맞지 않게 시끄러운 것은 딱 질색이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말해보게.”
“도대체 김정일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이것 참 묘하게도 마침 부시가 바라고 있던 질문이었다. 부시의 입이 열리자 카메라로부터 플래시가 터졌다. 구식부터 신식까지 아주 다종다양했다.
“일단은 ‘친구’라고 할 수 있겠군요.”
말 한마디에 평생 모은 재산까지 탈탈 털 정도로 아주 절친한.
“우리는 평화를 위해서 서로 한 발자국씩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심한 짓을 해도 서로의 기분을 맞춰주는.
“거의 완공되어 가는 경수로와 나날이 발전해가는 북한과 나랏일에 열중하다가 과로로 쓰러진 게 바로 그 증거입니다.”
서로 죽고 죽이고 싶을 정도로, 다시는 꼴도 보기 싫은 ‘악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