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49)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48화(149/377)
< 148편 >
“아니, 이 자식들 이거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사우디아라비아 정계에서는 아주 난리가 났다. 아프가니스탄의 규탄 따위는 어찌 되었건 간에 결국 사실상 미국이 압박해온 셈이었기 때문이다.
“호랑이 뒤에서 호랑이 흉내라도 내면 아주 부들부들 떨 거라고 생각이라도 한 건가?”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이번 경우에는 호랑이가 시켜서 마지 못 해하고 있다는 말이 맞았지만 말이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나 아프가니스탄도 똑같이 ‘우린 아직 준비가 안 됐다!’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아프가니스탄의 의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이 충분하게 준비되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왜 아프가니스탄을 통해서 말을 꺼낸 거죠?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론 미국에서도 담합을 막기 위해서 전력으로 움직이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드러내놓고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앞으로 가격 담합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움직일 것이다.’ 정도였지. 아예 사우디에 압박을 주지는 않았다는 말이렷다.
“명실공히 아프가니스탄은 중동의 미국이나 다름없다. 뭐 이런 말이 아니겠습니까?”
중동 밖으로 나가면 사우디가 중동의 수장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중동에는 고대로부터 흔들리지 않는 전통적인 강자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집트’를 말함이다. 물론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었지만, 어쨌든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투사하고 있는 문명이 있다면 그건 바로 이집트였다.
어쨌거나 사우디는 어디까지나 신흥 강자에 불과했다. 신흥 강자 주제에 현대 사회의 필수 자원 중 하나를 거의 반독점하고 있다는 게 좀 웃기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외교에서도 급이라는 게 있다. 미국이 아프간을 전력으로 밀어주고 있다곤 하지만, 아무리 좋게 봐줘도 아프간의 급은 절대로 사우디에 못 미치지 못했다.
잘 봐줘도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중견국 정도에 불과했으며, 좀 심하게 말하면 미국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괴뢰국이었다. 따라서 아군을 만드는 일이면 몰라도 척을 지는 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양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프간의 특수성이 그것을 허용치 않았으니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쳐도 매일매일 지긋지긋할 정도로 사우디-러시아 석유 담합 규탄에 전력으로 들이박고 있었다.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방문했다는데, 그때 주문한 거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여기서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왜 이스라엘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이지?”
이미 이스라엘이라는 굳건한 국방력과 영향력을 가진 국가를 가지고 있으니 그렇지 않아도 이제 막 날개를 펴기 시작한 아프간을 억지로 움직일 이유가 하등 없었던 탓이다.
사실 정작 그 장본인인 이스라엘도 이유를 몰라서 다른 국가들 못지않게 속이 시커멓게 타고 있었다. 얼마나 속이 탔는지 초조함이 포연으로 변해 시커멓게 올라올 정도로 말이다. 중동에서 미국의 제일가는 동맹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아프간에 투자되는 천문학적인 금액과 최신 무기들을 보고 믿음이 간당간당한 시점에 이 일로 그 믿음이 깨어졌다.
그러니 이제는 씁쓸하지만,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중동에서 ‘제일’은 아니라고 말이다. 미국-이스라엘 공공 정책 위원회(AIPAC) 쪽에 문의해도 ‘알 수 없다.’라는 말만 돌아오니 황당할 뿐이었다.
이는 AIPAC뿐만 아니라 모든 로비스트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정권 극초기 때까지만 해도 로비가 아주 잘 먹혀들어 갔었다. 부시 정권은 한때 돈을 삽으로 퍼 날라 넣으면 목에 기름칠이라도 한 듯 막히지 않고 배를 불렸고, 물주의 말대로 움직이는 배였다. 그런데 9.11을 시점으로 이게 전혀 먹혀들어 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가 그렇지 않아도 점점 경색되어 가던 동맹 관계는 미국이 다른 동맹국 이상으로 이스라엘에 부여하던 혜택들로 인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지금 상황을 가장 엿 같아하는 사람은 사우디인도, 아프간인도. 아예 중동인조차 아니었다. 구체적으로 따지자면 전 세계 단위로 ‘특정한 신분’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이런 시발 세상에. 이스라엘 논문 쓰고 있었는데!”
“이럴 순 없어! 내 졸업 논문!”
그들은 바로 대학원생이었다.
“이럴 수는 없어! 이건 아니야!”
물론 대학원생이 아니라 그냥 대학생일 수도 있었다. 교육 과정과 졸업 조건은 나라마다 다르니까 말이다. 그래도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타격을 받은 사람들을 꼽자면 그건 바로 한국의 대학원생이었다.
“이, 이건 꿈이야. 그렇지?”
그는 손에 들린 미완성 논문을 차마 던지지는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꿈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손에 들어간 힘이 가증되면 가증될수록 오는 고통은 이건 현실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국제질서 변동의 지정학, 이스라엘-미국」
적고 있던 논문이 한낱 휴지보다 못한 꼴이 되는 건 썩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휴지보다 못하다고 했는데, 정말로 휴지보다 못하게 되었다. 휴지는 무언가를 닦을 때 쓸 수라도 있지만, 이건 이면지로도 못 쓴다. 휴지통을 차지하는 잘 타는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말이렷다.
“저 형 저거 왜 저래요?”
“아, 저 형. 이번에 졸업 논문 망쳤다던데. 답이 없다. 답이.”
“예? 왜요?”
“갑자기 세계정세가 바뀌었데. 한 이틀 쓰면 끝이라던데. 에잉. 쯧쯧.”
술자리에서 재미 삼아서 논문 조지는 거 아니냐고 농지거리를 던지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설마 하루아침에 오랜 시간 걸려서 산출된 데이터를 주석을 달아가며 정리한 논문이 한낱 대학원생 망상을 끼적여 놓은 소설로 변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으, 불쌍해라.”
입으로야 불쌍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눈은 완전히 웃고 있었다. 여자는 이래서 무서운 생물이다. 원래 인생이라는 게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지 않던가? 친하지도 않은 대선배 따위는 완전히 남남이었다.
“언니는 이번 여름 방학에 어디로 가실 거예요?”
여름 방학을 논하기에는 아직 좀 이르지 않나 싶긴 했지만, 뭐 어떤가. 대화라는 게 원래 맥락 없이 이어지는 게 아니겠는가?
“가긴 어딜 가. 알바 뛰어야지.”
“알바요? 어디서 뛰시게요?”
후배의 질문에 그녀는 ‘헤-.’하고 배시시 웃더니, 침묵으로 궁금증을 유발했다. 선배는 이 대학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쨌거나 더는 참지 못한 후배가 옆구리를 콕콕 찌르면서 말해달라고 하자 드디어 입에 걸린 잠금이 풀렸다.
“평양.”
“어, 북한에도 알바 자리가 있어요?”
“이번 달부터 된다고 하신단다. 우리 기업들 한참 진출 중이잖아. 북한 병합에 앞서 경제 통합에 들어간다고 우선 경제부터 어떻게 건드려보려는 모양이더라고.”
물론 그녀는 그딴 건 알 바 아니었고 일당이 한 달 빠듯하게 모으면 한 학기 등록금을 넣고도 적당히 사치를 부릴 수 있을 정도인지라 알아봤을 뿐이었다. 다만 북한에 여행을 가는 느낌에 가깝기는 했다.
북한은 이제 더는 공산국가가 아니었다. 원래부터도 독재였지 정통파 공산권은 아니긴 했지만, 어쨌거나 이산가족 상봉도 이제 완전히 옛말이 되었고 그냥 추석 명절날 친가에 내려가듯 마음만 먹으면 차 타고 가서 찾아갈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철도 공사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 여행을 잡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인프라가 낙후된 국가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 중에서 관광 수익만큼 든든한 효자도 또 없었다.
“어쨌든 돈만 준다면 상관없으니까.”
사실 여행가는 느낌이긴 했지만, 여행이고 나발이고
“넌 어디로 갈 거야?”
“아, 전 인도로 가게요.”
“인도? 왜?”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인도는 한국인이 여행하기에 절대로 좋은 나라는 아니었다. 교통도 교통이었지만,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인 ‘위생 관념’을 정면에서 위배하는 나라였다. 특히나 도드라지는 건 음식점이었는데, 모두가 알다시피 인도에서는 뒷일을 처리하는 손과 그렇지 않은 손이 있다. 그것까지는 어떻게 봐준다고 하더라도. 요리할 때는 ‘양손’을 쓴단 말이다.
대충 이제 감이 오지 않나? 커리를 만들면 그게 진짜 그냥 순수한 커리가 아니라는 소리다. 한국에서는 위생이 나빠 봤자 머리카락이나 어쩌다가 들어간 날파리 정도임을 상기했을 때 이는 정말이지 문화 충격 그 자체였다.
“카레 먹으러 갈 건데요.”
너무나도 당당한 이유에 선배는 말을 금치 못했다.
“나는 사양하겠어.”
인도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이지 않은가. 물론 선배가 가진 인도에 대한 편견이. 그러니까 이걸 편견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지도 모르겠지만, 알게 뭔가. 그냥 벌금 물고 말겠다. 선배는 곧 죽어도 인도에는 가고 싶지는 않았다.
선배의 ‘윽, 이게 인도?’라며 인상을 잔뜩 찌푸린 모습을 본 후배가 반박 아닌 반박을 했다.
“북한도 만만찮은데요. 소말리아 빼면 가장 치안이 개판인 동네잖아요.”
“요즘 북한이 북한이냐. 북한이었던 것이지.”
미군의 존재로 인해 북한 군대는 절반 이상이 해체되었고 한국군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이제 한반도 최악의 극지방인 ‘개마고원’으로 발령받는 군번이 존재한다는 소리였다. 이 개마고원이야말로 대한민국 군인들이 혹한기 훈련을 받는 이유이기도 했다.
덕분에 50년 동안 한국군에서 가장 최악의 자대라고 소문난 철원이 드디어 이인자로 밀려났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치안이 CCTV 골목 사이사이마다 여기저기 달아놓은 한국만큼은 못 되어도 사람들이 여행을 다닐 정도는 되었다.
게다가 땅이 워낙 좁아서 그런가, 아니면 원래부터 너무 낙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진짜로 자고 일어나면 강산이 바뀌어있을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다. 경제 말고 과학계도 그랬다. 북한의 기초 과학은 상당히 탄탄하여 제법 우수한 인재들을 배출했다. 북한이 이래저래 고립된 상황에서 핵미사일 개발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다 이런 뛰어난 과학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 또한 있는 법. 정치계가 점점 부패하고 있었다. 북한의 돈을 먹은 정치가들이 과할 정도로 북한 땅에 예산을 퍼주고 있었다. 아무리 곧 통합될 것이라 하지만, 이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지출되고 있어서 국민 복지에 소홀함이 생기고 있었다.
지금이야 ‘곧 통합될 못사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 우리가 잠깐만 고생하자.’라는 긍정적인 분위기가 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하루가 다르게 복지 증진 시위가 물밀 듯이 나왔을 게 틀림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한국에서 원래부터 소외되던 사람들이 거의 외면당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달동네’ 같은 것들 말이다.
“근데 저번에는 중국 간다고 하지 않았었어?”
“중국 이제 여행 금지 국가인데요?”
“언제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리고 원래 여행 금지가 아니라 자제였겠지. 이젠 거기 괜찮다잖아. 서양인이나 위험하지. 동양인은 괜찮아.”
실제로도 그러했다. 물론 동서양 구분하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었지만, 적어도 인종으로 인해서 ‘묻지 마 폭력’을 당하는 일은 거의 사라졌다.
“저는 길 가다가 장애인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어쨌거나 아직은 중국은 치안이 불안정했다.
“뭐 여름 방학은 방학이고. 이제 내일이 월드컵이지?”
“아, 그래서 이렇게 소란이었어요?”
“뭐야 몰랐어?”
“저는 뉴스나 축구에 별 관심이 없어서···.”
‘음, 그래도.’
「대-한민국!」
‘아무리 축구에 관심이 없다지만. 저 구호에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드디어 준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