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5)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4화(15/377)
< 14편 >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가끔가다 가슴이 답답한 적이 있지 않은가? 그게 점점 심해지더니 옥죄이기 시작하는 거다. 가장 비슷한 느낌은 다 마신 페트병을 찌그러뜨릴 때 나는 그 느낌이다.
너무 추상적이라면 말을 바꾸자. 단도직입적으로 가슴에 손으로 누르는 듯한 압박이다. 점차 호흡은 불균형을 이루고 어지럼증이 뇌를 흔들 정도가 되면, 축하한다! 당신은 아침에 먹은 메뉴를 직접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었다!
어, 이 느낌 너무 익숙한걸? 이라고 생각할 때 즈음에는 이미 쓰러져있었다.
심근경색.
딕이 머리가 빠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같이해온 빌어먹을 고질병의 이름이었다. 젊은 날에는 몸이 자신을 배신하는 일은 없으리라 장담하며 별 기행을 다 저지르고 다녔건만, 돌아온 것은 심장의 거센 항의였다.
“부통령님이 쓰러지셨다!”
안 쓰러졌어, 아니야. 아직 쓰러질 때가 아니야. 이렇게 무너질 내가 아니지. 딕은 몇 번이고 자신의 심장을 부여잡았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권력이란 약자에서 멀어지고 강자에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빨리, 구급차나 불러.”
딕은 큰 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심장이 비웃고 있었다. 심장은 자신을 험하게 다뤄왔으니 이제는 퇴직금을 헌납해야 할 시간이라며, 수축과 이완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있었다.
몇 번은 억지로 놈의 파업을 약과 응급조치로 협상할 수 있겠으나, 심장이라는 직업이 현장복지를 고려할 수 있는 직업도 아니었고 밥만 주는 주제에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24시간씩 돌려야 하는 악덕 기업이다 보니 측은함이 앞서기는 무슨.
어딜 감히 고작 심장 따위가 리처드 브루스 체니의 앞을 가로막는단 말인가?
이 개좆만 한 새끼. 네 뜻대로 둘까 봐?
“심장 수술은 언제나 고난도 수술이죠. 거기다 나이도 제법 있으시니,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의사의 눈 옆에 깊게 새겨진 주름은 그가 정년퇴직에 가까워졌다는 증거이기도 했으나, 실력이 완숙의 경지에 닿았다는 증명이기도 했다. 그러니 그가 하는 말에 거짓됨은 없으리라.
하지만 어림도 없지!
“내 새 심장을 수배하시오. 당장.”
* * *
뭐, 전부 끝났다. 럼즈펠드의 정치 인생에 갑작스레 임종이 다가왔다. 럼즈펠드는 다소 과격하기는 해도 절대 머저리는 아니었다. 도리어 ‘잔머리’라고 불리는 두뇌 회전이 미국에서 손꼽을 정도로 특출나게 빠른 편이었다. 그렇기에 정말로 벼랑 끝이라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빠져나갈 틈이 없다는 사실 또한 확실히 숙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본능과 이성은 혼재하되 일치하지는 않다고 했던가? 마찬가지로 럼즈펠드의 이성과 본능은 합일하지 아니하였다. 특히나 이성은 나날이 젊은 날의 뚜렷했던 윤곽을 잃어만 가는데, 본능은 이성의 빈자리를 게걸스레 메꿔만 갔다.
사실, 갑자기 없던 애국심이 말년에 와서 솟아난 것은 아니었다.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보이 스카우트 제복을 입던 꼬맹이 시절까지 돌이켜봐야 했다.
이글 스카우트(Eagle Scout). 보이 스카우트 오브 아메리카! 아, 그 싸구려 훈장이 얼마나 마음에 들던지! 분명 소년기 어느 시점까지는 자기 전까지는 침대 맡에 두고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아버지는 자랑스러운 미합중국 해군이었고 럼즈펠드는? 당연히 아버지를 따라서 미합중국 해군에 들어갔다. 하지만 결국 모는 건 배가 아니라 강철로 만든 새를 육지 위에서 타는 일이라 결국 럼즈펠드가 하는 짓은 공군이 하는 짓하고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럼 이제 아들만 육군에 보내면 육해공군의 완성이로군! 그 시절에는 아직 우주군 개념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했다.
아마 그 시점이었던 것 같다. 미합중국에 대한 의념이 마구마구 솟아오르기 시작한 건. 사실 이건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싸구려 소설 같은 이야기다. 애국심이 철철 넘쳐흐르던 유망한 청년 하나가 더러운 현실에 절망하는 이야기 따위는 너무나도 쓰기 편한 소재였다.
그랬다면 도널드 헨리 럼즈펠드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이 났겠지. 하지만 럼즈펠드는 군대에서 정립된 상하 관계에서 오는 권력의 카타르시스와 편리함을 맛보았고, 대학에서 비록 학위는 따지 못했어도 법학에 대해서는 충분히 배웠기 때문에 다른 전우에 비해서 정치에 해박했고 결국 그렇게 본격적으로 정치질에 맛을 들리기 시작한 럼즈펠드는….
짜잔! 최연소 국방장관이 되었다!
1975년의 일이었다. 43세짜리 국방장관이라니, USA! USA! 갓 블레스 아메리카! 이게 믿겨는 지는가? 국방장관이다. 국방장관!
그 이전에는 망할 하원의원을 일리노이주에서 4선까지 했단 말이다.
원래 사람 인생이란 게 아무리 굴곡이 심해도 결정적인 사건이 없으면 재미가 없지.
사실 국방장관이 되기 전에는 당시 국가안보 보좌관이던 키신저와의 꽤 알력다툼이 있었다. 덕분에 1973년에 럼즈펠드는 NATO 대사관에 영구 대사로 추방당하다시피 강제로 전직해야만 했는데,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굴욕적인 일이었다.
칼을 갈았지. 이국의 땅에서 복수의 칼을 갈았다.
물론 닉슨 정부에서 워터게이트가 터지는 바람에 1년 만에 집어치우긴 했지만!
덕분에 백악관 수석을 넘어 국방장관이 될 수 있었다. 아, 이때가 어떻게 보면 권력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라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키신저는 정치판에서 죽었고 앞날은 탄탄대로로 보였다. 1977년에는 훈장도 새로 하나 받았다. 보이는가? 이 찬란한 ‘대통령 자유 훈장’이! 이글 스카우트 훈장과는 비교도 안 되는 광휘를!
아, 집어치우라지. 이런 훈장으로 애국심이 올라오기에는 중년 럼즈펠드는 너무 세속적으로 변해 있었다.
지루한가? 걱정하지 말아라. 안 그래도 끝났으니까. 정확히는 럼즈펠드의 정치 생활이 끝장났다.
미지 카터. 그 양반 정당인 민주당이 집권한 순간 공화당 인재는 펑! 싹 다 나가리였다.
그 이후로 정치판에서 할 수 있는 건 다종다양하게 다해 본 것 같았다. 백악관 수석, 외교 조약 특사, 자문 위원회, 경제 의원회, 무역 위원회, 조직 평가 의원회. …다시 정리해보니까 의원회만 계속한 것 같지만, 기분 탓이리라.
이 시점에서는 먼 미래의 이야기지만, 1989년에는 예비군 제독으로 전역할 수 있었다. 그것참 이상하기도 하지. 전투기만 주야장천 탔는데 제독이라니.
그리고. 지금이다.
“젠장.”
나이를 처먹으니까 비로소 국가가 뭔지 깨달았지. 법 위의 권력? 그딴 게 전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톨스토이가 말했듯이 마지막에 돌아갈 곳은 6피트짜리 무덤 안일 텐데. 그리고 그 무덤은 미국 땅이었다.
돌고 돌아 훈장을 걸어놓은 전시장을 보니 가장 빛나는 건 이글 스카우트였다. 큰 사건을 겪고나면 사람이 바뀐다고들 하지만, 지랄하고 있네. 사람은 바뀌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권력과 애국은 비례하지 않는다. 둘 다 하면 그만이지!
“젠장!”
그런데 왜 이걸 모르는 머저리가 이리도 많은 건지! 비뚤어진 애국심? 집어치우라지! 그것도 애국이다! 럼즈펠드가 한 일들이 얼마나 나라를 위함이었는지 모르는 머저리들이 너무나 많다!
“럼즈펠드.”
앞으로 미국의 목을 졸라올 고유가 시대! 이제야 드디어 잡게 된 세계 패권! 럼즈펠드의 계획은 적어도 앞으로 백 년간은 미국의 패권을 완벽하게 굳힐 수 있는 전략적 혜안이었다!
“럼즈펠드!”
그걸 모르는 인간들이-.
“나오시오.”
누군가의 고함에 럼즈펠드는 열심히 놀리던 손을 멈추고 수첩을 수습했다. 그곳에는 자신을 열렬히 변호하던 일대기가 적혀 있었다.
“…대통령 각하.”
CIA인 줄 알고 반쯤 고의로 말을 씹고 있었지만, 모습을 나타낸 것은 바로 미합중국의 정당한 대통령인 조지 부시였다. 실상 고장 난 녹음기처럼 반복했던 ‘난 아무것도 모르네!’만 반복했던 럼즈펠드의 입에서 드디어 그것 이외의 소리가 나왔다.
“럼즈펠드. 나는 자네에게 실망이 크다네.”
실망? 퍽이나 실망했겠다! 왜 모르는 거냐! 럼즈펠드는 속으로 비명성을 내질렀다.
“각하. 모든 건 미국을 위해서였습니다.”
“좋아. 설명해보도록 하게나.”
“앞으로는 고유가 시대를 넘어선 초고유가 시대가 찾아올 겁니다. 아포칼립스 영화에서 그렇게 단골 소재로 써먹었던 석유 고갈이 적어도 이 미국에 찾아올 겁니다.”
알래스카의 석유 매장량은 나날이 줄어만 가고 미국 남부의 정유 시설에 나오는 생산량도 미래지향적 시선으로 보면 점점 하락세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인구수는 끝을 모르고 치솟는다. 수요층이자 잠재고객 미국인은 늘어만 가는데 공급량은 한눈에 봐도 미국이 머잖아 파멸에 이르리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미국 땅의 잠재력을 얕보고 있는 것은 아니나 미국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가 왔습니다. 중동을 확보하면 적어도 미국은 대체 에너지를 확보할 때까지 천문학적인 금액을 아낄 수 있습니다.”
대체 에너지? 대체 뭘 쓸 건데? 태양열 발전?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 조력, 수력, 지열, 재생?
도대체 어떤 에너지가 이 거대한 미국을 지탱할 수 있단 말인가? 원자력을 논하지는 말지어다. 그 말로를 체르노빌에서 보았노라.
핵융합? 실마리는 보이고서 거론하는 것인가?
교토 의정서까지 탈퇴한 마당에 대체 에너지는 무슨. 미국인은 이미 석유가 가져다주는 편리성에 중독되었다!
신에게 축복받은 대륙. 북아메리카. 그러나 이미 미국인은 이미 신이 허락하신 영역 이상을 탐하고 있었다. 신께서 보여주신 자비가 드디어 동이 나고 있었다. 미국인들이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자각하고 검은 축복이 가득하던 드럼통의 바닥을 긁고 있을 무렵이면, 럼즈펠드가 옳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마리라.
그건 눈앞의 조지 W. 부시도 똑같았다. 인정해라. 이 ‘애국’을 인정해라!
“고유가인가?”
인정해!
“석유라.”
그러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럼즈펠드가 희망하는 대답과는 전혀 딴판의 것이었다.
“그렇다면 확실히 알려주도록 하지. 그건 쓸데없는 걱정일세.”
“무슨?”
“나는 셰일층에서 미래를 보았다네.”
“셰일?”
셰일? 셰일이라고? 지금 이 작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셰일층에는 어마어마한 가스와 석유가 매장되어 있지.”
“에너지부에서는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만.”
“지금은 주목받지 못할 뿐이네.”
럼즈펠드는 부시의 표정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은 실로 애석해 보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정심을 일으킬 정도였다. 문제는 지금 그 동정의 대상이 하필 럼즈펠드 자신이었다는 점이었다.
“셰일?”
저 말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미국은 중동을 점령하지 않아도 스스로 나아갈 수 있겠지. 그러나, 그러면. 그렇다면! 럼즈펠드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말은. 지금 애국이. 매국이 되었다고?
아니야! 그럴 리 없다! 거짓말이 분명하다! 심리전에 종종 있는 허풍이다!
장점이라고는 착해빠진 것밖에 없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새끼가 이 나라를 말아먹게 둘 것 같더냐!
“그건 참으로 믿기 힘들군요. 대통령 각하.”
“앞으로 몇 년만 있으면 세계가 우리를 괄목할걸세.”
최단기 세계 패권국으로 몰락한 제국을 주목하겠지! 역사책에는 수치스러운 한때의 영광으로 기록될 것이고, 결국에는 부시의 말이 틀렸고 럼즈펠드의 말이 맞았음을 시인하리라.
그러나 그런 건 추호도 바라지 않는다! 악역이어도 좋다. 희대의 개새끼로 낙인찍혀도 상관없었다! 권력에서 멀어지고 나서 약 23년. 외교 특사 일도 해봤고 대학에서 강의도 해봤지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권력의 공백이 가져오는 공허함이었다. 그러나 집에 있는 시간이 점차 그 공백을 채워나갔다.
명예였다. 유리와 철로 만들어진 훈장 전시장 안에는 자신의 명예가 살아있었다. 부는 충분했다. 권력도 가질 만큼 가졌었다. 그런데 명예는?
역사서에는 제법 괜찮았던 사람으로 기록될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런 건 진정한 명예가 아니었다.
럼즈펠드는 진정한 명예를 원했다.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등과 같은 반열에 자신을 올려놓고 싶었다. 럼즈펠드의 이름이 전 미국인에게 알려지길, 영원히 기억되길. 그것을 넘어 한 세기를 풍미했던 위인으로 남고 싶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대통령 각하.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일보후퇴 이보전진. 이것이 바로 럼즈펠드가 선택한 도주 경로였다.
“사임하게. 조용히.”
“그리하겠습니다.”
미국이 그것을 원한다면, 고작 쓸개 정도는 몇 번이고 몇 년이고 핥아주마.
* * *
“와, 진짜 눈에 다 보이네.”
솔직히 내가 사람을 딱 본다고 해서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눈깔이 반쯤 돌아가서 흰자가 보이고 피부가 홍당무와도 같아 새빨갛게 익어가면 제아무리 눈치가 없는 사람이라도 상대방이 기적적인 인내심으로 화를 참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으리라.
도대체 럼즈펠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권력의 눈 밖에 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썩 많지 않았다. 해봤자 적국에 자신이 알고 있던 정보를 흘리는 정도겠지만, 네오콘의 표상 같은 인간이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
“후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언제나 내 손과 발이 되어 곁을 지키는 비서실장의 말이었다.
“로버트 게이츠. 아마 지금은 텍사스 A&M에서 학과장을 맡고 있을 걸세. 찾아서 내 앞으로 데려오게.”
미국을 본격적으로 바꿀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