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52)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51화(152/377)
< 151화 >
2002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시간관계상 플린트 수질 오염 연설이 끝나자마자 바로 날아올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정부가 병신 짓을 하고도 정작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른다는 전대미문의 쾌거를 이룬 그는 에어포스 원 안에서 밀린 보고서를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피를 말려가며 처리해야 했다.
어쨌든 주 정부는 자기 구역 개발에 몰두하느라 신경 쓰지 못했지만, 이제는 연방 정부가 자신들을 보다 직접적으로 간섭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치정부고 나발이고 개판 치면 바로 엿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했다.
덕분에 일정도 크게 조정되어 회견이고 나발이고 바로 월드컵 개막식이 열리기 일보 직전인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직행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지금 두 나라의 대통령이 한자리에 앉게 되었다.
김지훈 대통령은 부시의 손에 들린 연설문을 몇 번이고 힐끗거렸다. 몹시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부시가 어떤 소리를 할지 너무나도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 연설문이 두 줄짜리는 아니겠죠?”
“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농담에 부시는 웃어넘겼지만, 정작 김지훈 대통령은 진담이었다. 국회의원이나 국민의 등쌀에 떠밀려 하하호호 웃으며 초대하긴 했는데, 제한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핵폭탄이라도 가져온 느낌이었다. 당장 수 시간 전에 플린트 시에서 단 두 줄만으로 연설을 끝냈다는 정보를 들었을 때는 정말로 당황했었다.
김지훈 대통령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불온한 감정을 읽기라도 한 듯 부시는 보란 듯이 자신의 손에 들린 연설문을 펄럭였다. 연설문에 촘촘하고 꼼꼼하게 주석까지 달린 단어들의 나열이 눈에 들어오자. 김지훈 대통령은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너무나도 당연하겠지만, 이 연설문은 실제 연설에서 읽힐 연설문이 아니었다. 부시는 연설문이 있어도 기존 뼈대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자기감정에 맡겨 즉흥적으로 연설을 이어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곧 월드컵 개막식이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비어있는 자리가 좀 보입니다?”
그런데 부시의 눈에 몇몇 빈자리가 용하게도 눈에 들어왔다. 이는 2002년이 한국 축구 최고 전성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인지할 수 있는 이상 현상이었다. 사실 전성기라는 것을 모른다고 쳐도, 월드컵에. 그것도 개막식에서 좌석이 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하게 이상한 일이었다.
“조금 혼선이 빚어지는 바람에 판매 과정에서 심각한 오류가 있었고 그것 때문에 관객을 채우는데 약간의 차질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 숫자가 3,500석이요?”
“아직 제대로 된 자료가 나오질 않아서 자세한 숫자까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어떻게?”
“대충 세어보니 3,500석이니까, 그냥 3,500석이라고 한 겁니다.”
김지훈 대통령은 치욕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이런 대형사고가 났는데도 한국월드컵조직위는 묵묵부답이었다.
‘이 일이 끝나면 한국 체육계를 모조리 갈아 엎어버리겠다.’
남들에게 들리지 않게 이를 뿌드득 갈아댔다. 그렇지 않아도 2,000억을 들여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신축한 덕분에 시뻘건 적자가 눈에 아른거리는데, 그 와중에 이 지랄병이 났으니 화가 나지 않으려야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제일 황당한 점은 월드컵 조직위 입장권 판매 사업 국장의 말이었다.
분명 ‘나는 지방에서 벌어지는 경기지원을 나와 입장권 공석 사태에서 손을 뗐다.’라고 했던가? 정말로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 죽여도 모자를 탐관오리가 아닐 수 없었다. 아니, 글쎄. 국민 혈세로 뽑아줬더니 국민한테 엿을 먹이다니?
“눈이 굉장히 좋으시군요.”
“하하, 제가 눈이 많이 좋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 전부 알고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심지어 중복표도 200장이나 팔렸던 개막식이었다. 빈자리가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영국의 입장권 대행업체인 바이롬 때문이었는데, 덕분에 한국은 물론 일본도 매번 경기가 열릴 때마다 7~10,000석의 빈자리를 감당해야 했다.
터진 것은 입장권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때도 아니고 월드컵 경기 직전에 이 업체가 예약업무를 맡았던 호텔 객실이 무더기로 예약 취소되기까지 했었다. 이렇게 개판이 된 이유가 원래 바이롬은 원래 일개 숙박업소 대행에 에이전시에 불과했는데,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결정되기 3년 전에 한탕 치기를 목적으로 급하게 기업을 설립했다.
한탕 치기의 비결은 혈연에 있었다. 신생기업이나 다름없는 바이롬이 담당하게 된 이유는 어디까지나 바이롬의 책임자가 당시 FIFA 회장의 사촌이었던 탓이었다. 학연, 혈연, 지연 중 으뜸은 혈연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딱 맞는 말이었다.
‘조만간 FIFA도 갈아 엎어버려야지.’
옛말에 불만이 있으면 본인이 직접 하라고 했던가? 그래서 직접 조지기로 했다. 어디 서러워서 살겠냔 말이다.
어쨌거나 국적과 인종은 달라도 하는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스케일의 차이가 좀 있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까 한국 내에서는 2002년 남북한일 월드컵이라고 부른다던데, 진짜입니까?”
“아, 예. 그렇습니다.”
들은 바가 있었다.
“김정일이 직접 왔으면 더 좋았겠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말한 김지훈 대통령은 입맛을 다셨다. 물론 김정일이 직접 들었다면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그렇기에 차라리 없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그야 월드컵 개막식 도중에 사고로 쓰러진다면 한국도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터이니 말이다.
그건 그거고 부시가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지금이 딱 제2연평해전이 벌어질 시기였다. 이젠 대놓고 내분이라도 벌어지지 않는 이상 절대로 일어날 일이 없겠지만 말이다. 남포항에 떡하니 미 항모가 상주하고 있으니 내분이 벌어질 일도 요원했다.
차라리 핵을 개발하고 난 다음이라면 ‘다 같이 죽는 거야! 함께 폭사하자!’라고 협박해볼 만도 하겠지만, 핵은커녕 우라늄을 정제할 원자로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는데 무슨 핵이란 말인가.
“비록 이번에는 북한은 참여할 수 없었지만, 다음에는 하나가 된 대한민국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겁니다.”
다음 월드컵이 2006년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그의 말은 절대로 듣기 좋은 감언이설이나 헛바람 든 허언이 아니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과 남북한 양국 국민의 통일하려는 의지. 그리고 4년이라는 시간은 두 나라가 하나가 되기엔 너무나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개막식은 19시 25분부터 시작이었는데, 지금이 딱 16시였다. 시간이 시간대인지라 개막식이 시작되기 전 VIP룸. 다시 말해 일명 ‘스카이박스’로 불리는 곳에서 식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곳은 정부에서 대미 외교를 위해 전세를 냈다.
“만찬 메뉴가 나왔군요. 어디 드셔보시죠.”
‘새우?’
“이거 설마 독도 새우입니까?”
“···어떻게 아셨습니까?”
“아, 제가 새우에 관심이 좀 있어서 말입니다.”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어디선가 정보가 새어 나간 게 분명하다고 말이다. 물론 단순히 본능에 기댄 것만은 아니었다. 만약 미 대통령의 말이 사실이었다고 치더라도 독도 새우가 아니라 도화새우라고 불러야 정상이었다. 독도 새우는 어디까지나 독도에서 나오는 도화새우를 일컫는 단어였다. 다른 새우와 차별화시켜 고가치 상품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본능과 합리가 적절하게 섞인 의심이었고 확신이었다.
‘아무래도 국정원을 갈궈야겠어.’
아니, ‘갈구는 게 도대체 왜 국정원인가?’라고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국정원이 아무리 발에 땀 나도록 뛰어다닌다고 하지만, 상품 구매 하나하나 관여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나 이번만큼은 국정원이 갈궈지는 게 맞았다. 왜냐면 김지훈 대통령이 직접 국정원을 시켜 비밀리에 소량 구매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부시가 독도를 대한민국 영토로 확정 짓는데 크나큰 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에서 독도 새우를 대접하기로 했는데, 이는 단순 물품 구매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직할 명령이었기에 1급 기밀로 분류되는 것이었다.
“음, 맛이 아주 좋군요.”
물론 어디까지나 부시가 미국 대통령에게 독도 새우를 접대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김지훈 대통령이 그 사실을 알 리 만무했다. 몹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부시와는 달리, 개판이 난 보안 덕분에 김지훈 대통령은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지도 못할 정도로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잡담에 나랏일이 섞여 구두 약속이 오갔다. 통일 이후 남포항에 대해서 혹은 무역 완화 정책 같은 이야기 말이다. 그 외에도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머잖아 중국과 국경을 접하게 될 터인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중국이 아무리 개판이 나더라도 중국은 중국이었다. 재래식 병력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특성상 일단 전쟁이 나면 인해전술로 인해 끝까지 밀려버릴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지 않으면 핵미사일 수십 발을 맞고 소수민족에 유적밖에 남지 않은 비운의 국가가 될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핵무장은 완전히 무리수였다. 무엇보다 김지훈 대통령이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차후에 미국과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그렇게 되고 나면 그때는 정말로 한국이 알아서 해야만 했다.
“지대공 미사일 방공 체계를 도입할 생각입니다.”
핵을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무슨 수를 써서라도 ICBM을 막겠다는 발상이었다. 하늘에 일종의 레이더로 장막을 생성하여 지대공 미사일을 통해 ICBM을 요격할 수만 있다면 적어도 전쟁이 시작하자마자 끝나는 일은 없을 터였다.
“흠, 우리나라에서 개발 중인 물건이 있는데, 혹시 도입해보시겠습니까?”
“예?”
김지훈 대통령에게 있어서 이는 실로 의외인 말이었다.
“THAAD라는 물건입니다. 이미 양산 준비 단계에 들어가 있습니다. 아마 통일하고 나서는 원활하게 양산될 겁니다.”
미국은 원래부터 태생이 뼛속까지 무기 상인인지라 군용 장비 구매 제안은 그리 놀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개발 중인 물건 판매를 약속하는 것은 그야말로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본래라면 차차 주한미군에 보급해서 배치할 생각이었지만, 어차피 방공장비라면 차라리 파는 게 나을지도 몰라.’
경제적인 측면에서 봐도 이게 이득이었다. 그리고 주한미군을 필요한 만큼만 두고 서서히 철수시킬 생각이었다. 주한미군은 그야말로 돈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저희야 구두 약속이라도 감사합니다만, 의회가 허락하겠습니까?”
사실 연방 의회야 언제나 예산 확보를 위해서 무기 팔라고 난리다. F-22도 팔릴뻔한 마당에 고작 THAAD를 팔지 말라고 하겠는가? 이것을 반대하는 건 언제나 가상 적군의 전력 증가를 염려한 펜타곤이었다.
“복잡한 건 다 때려치우고 그냥 한마디만 해주시오.”
부시는 턱을 괴고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사겠소? 말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