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53)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52화(153/377)
< 152화 >
물론 마음만 같아서야 ‘당장 사겠소!’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 미국이 최신 무기를 판매한다는데 어찌 수락하지 않고 배길 소냐?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입술은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멀쩡해 보이는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야 하는 자리였다.
생각 해보라. 아직 제대로 양산되지도 않은 물건이다. 만약 그 THAAD라는 물건이 결함품이라면? 만약의 이야기지만, 한국의 기후에는 잘 맞지 않는 물건이라면 어찌한다는 말인가? 물론 만약에 진짜로 도입한다고 치면, 한국에 맞게끔 개조를 가하든가 하겠지만 말이다.
“거, 살 거요? 말 거요?”
김지훈 대통령은 고민 끝에 일단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기로 했다. 이런 기회가 어디 인생에 두 번씩이나 오겠는가? 그 미국의 최신 무기란 말이다.
“또 다른 거래가 성사되었군.”
물론 국방 사업이니 뭐니 해서 다른 방공 체계와 경합 따위를 해야겠지만, 결국에 마지막에 승리할 것은 THAAD가 되리라. 원래 나랏일이라는 게 다 이렇게 돌아가는 거다. 미국이 어떻게 부유해졌는가? 그것은 바로 옆 동네 전쟁 났을 때 무기를 대량으로 파는 거다. 초강대국의 비결은 국가 단위 무기상 노릇에 있었다.
지금이야 전쟁보다는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 혹은 정치적인 사유로 꾸역꾸역 미제 무기를 세상이 구매하고 있었지만, 미제 무기를 막을 수 있는 건 미제 무기였다. 역설적으로 미제 무기를 뚫을 수 있는 것도 미제 무기고 말이다.
“오늘은 아주 기쁜 날입니다.”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이 열리는 날이기도 하고, 한국의 국방력이 크게 도약한 날이기도 했다. 미국은 충실한 고객 한 명에게 물건을 판 날이기도 하고 말이다. 미국의 군수 사업 황금기는 가속도를 더했다.
“그건 그렇고 통일이 머잖았군요. 축하드립니다.”
약간 뜬금없이 나온 말이긴 했지만, 김지훈 대통령은 그냥 수긍하기로 했다. 딱히 이상한 말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부시의 축하 중에서는 변변찮은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김지훈 대통령은 ‘저 인간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저러지?’라며 의심을 키웠다. 다만 이번만큼은 손익 계산이 들어 있지 않은 단순한 축하였다.
“종전으로부터 약 50년 분단에 드디어 끝이 보입니다. 하하하!”
부시의 알맹이가 알맹이인 만큼 이는 상당히 기쁜 일이었다. 이 말 이후로도 부시는 몇 번이고 축하를 건넸고, 김지훈 대통령은 축하를 받을 때마다 있지도 않은 말 속에 숨은 의미를 파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김지훈 대통령이 심력을 소모하는 동안 개막식이 시작되었고, 머잖아 연설 시간이 다가왔다. 문제가 있다면 부시가 연설문을 그대로 읊을 생각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
“어디 보자.”
연설문에는 한일 월드컵을 축하한다는 등 공허한 말뿐이었다. 허울 좋은 상투적인 단어의 나열을 그대로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연설문 중간 사이사이에 ‘한-일 관계가 회복되어 본 미국은 몹시 만족한다!’를 추측하게 만드는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
‘실로 끔찍하도다.’
명예로운 동맹국이 축제 날이거늘, 어찌 이런 영혼 없고 뜬구름 잡는 소리만 지껄인다는 말인가? 감히 이런 허접하기 짝이 없는 연설문을 조지 W. 부시라는 인간이 용납할 성싶더냐?
‘아니! 절대로 그렇지 않다!’
부시는 몸소 펜을 들어 마음에 들지 않는 단어에 줄을 찍찍 긋고 새로운 단어를 새기기 시작했다. 정말로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지금 현재 그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브레이크 담당인 비서실장은 다른 외교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저거 말려야 되는 거 아닙니까?”
“말려? 저걸 누가 말리는데? 아니, 그보다 우리가 말릴 수는 있고? 말릴 자격은 있나?”
스카이박스에 있는 한국 측 인원들이 이걸 지켜보고 있긴 했지만, 감히 그 누가 미 대통령이 하는 일을 말릴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 말리기 이전에 말을 붙일 수나 있기나 하겠는가?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천재 관료들에 의해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진 5분짜리 연설문이 부시의 손에 의해서 그의 입맛대로 철저히 개조되었다.
“끝내주는군(Awesome).”
방에 있던 모든 인원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음에도 일부러 들리지 않는척했다. 이곳에 있을 정도면 적어도 어떻게 처신하는 편이 본인의 신상이 멀쩡한지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모르는 척하는 게 가장 이로웠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정도였지만, 보고한다고 해서 어떻게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통령님? 이제 단상으로 올라가셔야 합니다.”
게다가 연설까지 1분조차도 남지 않았고 말이다. 그러나 부시는 여유를 가지고 유유히 연설대 위로 걸어갔다. 그가 연설대 위에 오르자 아까까지만 해도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제법 엄숙하게 바뀌었고, 화려한 공연으로 분산되었던 이목이 전부 연설대 하나로 집중되었다.
부시는 다짜고짜 우선 자신의 손에 들린 연설문을 펄럭였다. 부시 행정부에서 내놓은 집단 지성의 결과물이었다.
“본 대통령의 손에는 지금 내 행정부가 써준 연설문이 있습니다.”
부시의 말은 실시간으로 통역되어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적당히 좋은 말만 해주고 갈 줄 알았던 미 대통령이 본론은 제치고 상당히 독특한 서론부터 시작하자 모두가 당황한 눈치였다.
“흠, 대충 요약하자면 월드컵 축하하고, 한국과 일본이 최근 들어 제법 사이좋게 지내줘서 고맙다는 말이 굉장히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막말로 이게 도대체 무슨 개소리인가?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인생의 절반 이상을 유교 사상에 철저히 입각하여 살아온 인물들에게는 참으로 문화 충격 그 자체였다.
그가 연설하는 방식은 한 나라의 대통령보다는 거의 스탠드업 코미디에 종사하는 코미디언에 가까웠다. 굉장히 파격적인 언행 덕분에 청중들로부터는 흥미를, 관계자들로부터는 뒤로부터 엄습해오는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그중에서 가장 안달이 난 것은 비서실장이었다. 본인이 밤새도록 열심히 검수하고 수정한 연설문이 첫마디를 듣자마자 완전히 조져졌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서실장이 아무리 ‘옆에 반드시 붙어있어야 했는데, 왜 또 이것을 잊어먹었을꼬.’라며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어 연설은 완전히 부시의 의지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이 부분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연설문을 냅다 뒤로 집어 던졌다. 정해진 대로 읽지 않겠다는 명백한 의사였다. 물론 그 모습을 보고 비서실장의 뒷머리를 부여잡았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한국과 일본 사이는 어떤 식으로든 메꾸기 힘든 사이입니다. 양국의 국민 정서나 정부 정책을 보면 명확합니다.”
그 소리를 들은 김지훈 대통령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세상에 기껏 평화 노선을 만들어놓았는데, 불화를 조장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이란 말인가? 김지훈 대통령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부시 대통령이 이 연설을 제발 평화적으로 끝내기를 비는 일이었다.
아니, 그보다 분명 식사 전까지만 해도 연설문을 그대로 읊을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런 희대의 거짓말쟁이를 보았나! 도대체 그 짧은 틈 사이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어서 이리한다는 말인가?
“‘과거를 잊고 화해하자.’ 이거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입니다. 나는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 역사 교육에 더 많은 예산을 배정시켰고, 원주민 지원 자금을 대폭 늘렸습니다. 그들을 진짜로 존중하기 위해선 사회의 인식 개선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업률 문제 그리고 카지노 문제와 각종 뒤떨어진 인프라 등 보호구역 내의 몇몇 문제가 산재해 있긴 했지만, 부시는 사회가 진정으로 문제점을 깨닫기 시작한다면, 머잖아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와는 좀 많이 다르긴 했지만, 어쨌거나 연방 의회와는 정반대의 의견이었다. 막말로 연방 의회의 의견은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네놈들 사정 따위는 내 조또 알 바 아니고 사이좋게 지내란 말이야!’가 기본 골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미국이 윽박질러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시원스럽게 인정하는 게 나았다. 한국과 일본은 어떻게 간섭하거나 위협해서 해결될 사이가 아니니, 그들 스스로 해결하게 자리나 만들어주는 게 훨씬 나았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겁니다. 적어도 내 정부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를 중재하기 위해 간섭하지 않을 겁니다. 쉽게 말하면 강제로 화해시키기 위해 압력을 행사하지 않을 거라는 말입니다.”
이는 태평양 전략을 일부 포기하겠다는 폭탄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대통령 독단으로 처리되는 일이 많았는데, 이번만큼은 도가 지나쳤다. 다만 부시가 이렇게 판단한 이유가 있긴 있었다.
이미 인도와 동남아 일대가 완전히 미국의 영향권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국과 일본은 이미 미국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두 국가의 사이가 좀 악화한다고 한들 미국이 받을 타격은 실상 없다시피 했다.
만약 실제 전시상황이 벌어졌다고 쳤을 때, 한국이나 일본이 서로의 감정만을 가지고 반목할 수 있을까? 만약 반목했다고 쳐도 미국의 앞에서 당당하게 반목할 수는 있을까?
무엇보다 물을 칼로 벤다고 그게 베어지겠는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만약 미국이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서 총력을 다한다고 쳐도 이 사이를 메꿀 수는 없었다. 한국과 일본은 그런 사이였다. 한 100년 뒤라면 모를까. 적어도 지금은 절대 아니었다.
부시가 노리는 것은 예산 절감과 바른 이미지였다. 독 빠진 항아리에 물 붓느라 고생하지 말고 그 힘으로 다른 건설적이고 효율적인 일을 하자는 거다.
그리고 부시가 이 연설로 노리는 바를 자력으로 깨달은 이가 몇 명 있었다. 그 무리에는 김지훈 대통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더는 힘쓰지 않고 정의로운 이미지나 가져가겠다는 건가. 이거 하나 포기해서 나머지 대부분의 개입에서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소리군.’
세상에는 ‘맞을만해서 맞았다.’라는 말이 있다. 앞으로 한두 번 정도는 미국이 어떤 나라를 무력이든 무역이든 어떤 방식으로 치더라도 입만 잘 털어주면 면죄부 비슷한 게 주어지리라. 이미지라는 것은 이렇게나 중요하다. 그러니까 부시는 여론과 국방 중에서 여론에 좀 더 무게를 실어준 셈이다.
‘그래도 적어도 정상적인 사고방식은 아니군.’
누군가 말하길 광인과 천재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던가? 그 종이란 게 어찌 이리도 참으로 두껍단 말인가. 김지훈 대통령이 생각하기에 일반인은 상상하기 힘든 광기 그 자체였다.
“아, 그런데 이거 참 월드컵에서 할만한 말은 아니군요. 제가 여기 초대된 이유는 미국의 전략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월드컵 축하니까요.”
부시는 물건을 고르는 사람처럼 턱을 쓰다듬다가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막상 기세에 맡겨서 말을 이어가긴 했는데, 끝낼 말이 마땅찮았기 때문이었다. 들뜬 축제 분위기를 초상집 수준으로 조져놨으니 다시 흥을 올려놔야 했다.
“그럼 간단한 예언 하나 하겠습니다.”
예언이라는 소리를 들은 청중들은 살짝 긴장이 풀렸다. 청중 대부분이 구체적으로 ‘하다 하다 이제는 예언까지 하시겠단다.’라는 분위기였는데,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꽤 유해진 것 같았다.
“한국은 최소 4강까지는 갈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몇 분 뒤 갑자기 스포츠 도박 사이트가 불법 합법을 가리지 않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으리라.
더불어 부시의 생활에 변화가 있다면, 지인부터 별 생판 남까지 만나기만 하면 별의별 종목에서 예언 청탁이 들어왔다는 거다. 심지어는 방송국에서까지 부탁이 들어오자 더는 이쪽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못 박기까지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