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62)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61화(162/377)
< 161편 >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는 인간을 정의하자면 이렇다.
평소에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 관대함과 자비로움을 연기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행정에서 선택지가 주어지면, 극단적으로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여도 선택의 시기를 미루지 않았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냉혈한으로 보이는 외모를 극복하기 위해서 갖은 노력으로 서민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쌓아 올렸으며, 한편으로는 독재를 위한 반석을 천천히 닦아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대통령보다는 차라리 왕이나 차르에게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를 지지하는 시민들에겐 공공연하게 이미 차르라고 불리고 있지만. 옆에서 직접 그를 보좌하고 있는 이들이 푸틴에게 별칭이 붙는다면, 그건 필시 ‘얼음’이었다. 보기에는 좋지만, 만지면 차갑고 오래 접하고 있으면 동상에 걸리는 그런 얼음 말이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은 원래도 말이 거의 없지만, 사건이 벌어지면 그 적은 말수가 더 적어진다는 것이다. 푸틴에게 분노란 냉철을 유지하는 연료에 불과했다. 연료가 다 그렇듯이 들어간 연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것을 태우는 시간도 늘어난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분노를 가공하고 나면, 푸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총명해져 있다.
감히 이 사실을 의심하는 이가 있을 것이라곤 상상할 수 없지만, 마침 그것을 직접 목격할 기회가 있다.
‘모종의 사건’ 덕분에 마침 푸틴이 크게 분노했고,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가능한 최대한 많은 관료가 회의장에 모여 있었다.
회의를 시작해야 할 가장 윗사람이 입을 닫으니 회의가 진행될 리가 있나. 모든 긴급회의에 참석한 모든 이는 무거운 침묵을 견뎌야만 했다. 회의가 시작되고 1분이 지났을 무렵, 드디어 가뭄에 메마른 대지와도 같이 쩍쩍 갈라지는 중저음이 회의장을 장악했다.
“브리핑.”
푸틴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몇 배나 더 작았지만,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의 고막까지 확실하게 파고드는 불가사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폭파 장소는 모스크바 역이며, 피해 차량은 모스크바 선의 81-717/714형입니다.”
한겨울 시베리아 한복판에 나가본 적이 있나? 나무마다 사내 주먹 크기의 예리한 얼음 결정체가 피어나고, 나뭇가지마저 완전히 얼어서 휘어지지도 않는 영하 70도의 시베리아의 혹독한 겨울 말이다.
지금 회의장에서 그들이 느끼는 추위는 차라리 시베리아가 낫겠다 싶을 정도였다. 몸에서 느껴지는 추위는 난로에 장작을 쑤시고 옷을 껴입으면 그만이지만, 신체 내부로부터 추위를 느끼면 도대체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머릿골에 마치 통풍이라도 온 것처럼 뇌에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자극과 오한이 들었다.
“객차는 다시는 못 쓸 정도로 파괴되었고, 감식 결과 3~4kg 정도 되는 플라스틱 폭탄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약 35개가 쓰였을 것이라고 추측 중입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 중 2개가 불발되었습니다.”
그는 여기까지 말하고 갈라져 가는 입술을 핥았다. 입술에서는 자극적인 피 맛이 났다. 어쩌면 입술이 아니라 혀에서 나는 것일지도 몰랐다. 사실 정보가 입 밖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성명은 아시다시피 체첸 관련입니다.”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붉은 광장 테러 사건’의 그래도 구태여 딱 한 가지 괜찮았던 점을 꼽자면, 아이는 죽지 않았다는 거다. 여기서 말하는 아이는 7세 미만의 어린이를 의미한다. 가장 나이가 어린 희생자는 16세의 꽃다운 소녀였다.
그런데 이번 테러는 모스크바 노선 지하철에서 발생했으며, 총 228명의 피해자가 나왔다. 그중 182명이 사망했고, 40명이 중상이고 나머지는 경상으로 그쳤으나 대부분 영구적인 심적 장애를 앓게 되었다.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한 건데, 이 테러 사건 때문에 18명의 유치원생이 사망했고, ‘쌍둥이 아기’ 또한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세상의 빛을 본 지 이제 막 10개월 되어 간신히 옹알이를 떼고 엄마(мама) 아빠(папа)를 말할 수 있게 된 아이들이었다. 실로 비극적이게도 일가족 중에서 테러 사실도 알지 못하고 직장에서 밤새 야근까지 뛰던 아버지만이 홀로 남게 되었다.
범인들은 전기 수리 기사 복장을 해서 일반 시민의 눈을 속였고 칸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다. 차량은 창문이 깨지고 문짝이 날아가는 선에서 그치긴 했지만, 지옥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4, 5년 전에 제작된 유명한 서방 영화에서 ‘지옥은 그저 단어’라고 했던가? 그 말이 맞았다. 지옥은 그저 단어에 불과했다. 담력 높기로 소문난 숙련된 시체 처리반 전문가 중에서 구토하지 않은 이가 단 한 명도 없었고 일이 끝나고 대부분이 장기간 심리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당연히 이 참사에 러시아 국민은 극도로 분노했다. 그들의 분노는 그저 속으로 분개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고, 지인들 사이에서 성토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으며, 체첸 테러 근절 시위에서 끝나지도 않았다.
아예 ‘체첸이라는 인종을 러시아에서 추방하자!’라는 극단적인 요구에 이르렀다.
이는 이 사상 초유의 비극에서 기회를 엿본 파렴치한 이들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러시아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극우적인 이들은 비극을 자신들의 선전을 위해 제멋대로 주물러 가공했고, 어딘가로 분출하길 원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완전히 체첸으로 돌려놨다. 정확히는 체첸이라는 분광기에서 테러리스트, 체첸 민족, 체첸 문화 등 스펙트럼처럼 퍼지려고 하는 분노의 벡터를 완전히 ‘체첸 민족’ 하나로 고정했다는 말이 맞았다.
조금 더 과격한 이들은 체첸이라는 족속의 핏줄 안에 아예 테러리스트의 피가 흐른다며, 아예 체첸 민족을 말살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푸틴. 모든 권한을 가진 푸틴은 이렇게 생각했다.
“씨발(сука блять).”
이젠 테러라면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고. 지금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테러를 잘 아는 사내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게 출신이 KGB가 아닌가. 조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배울 건 다 배웠다. 그렇기에 방지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미국의 테러 방지? 그쪽은 애당초 테러범들의 주의를 완전히 돌려 버리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거기도 EU가 없었으면 지금쯤 난장판이 따로 없었을 거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로 빠르게 발을 빼고 암묵적으로 이슬람 정권에 동의하고 지원해주고 있는 탓에 중동 테러가 없는 거지, 그거 아니었으면 테러로 잔치를 벌일 뻔했다.
‘아무리 그래도 체첸 인종 자체를 어떻게 할 수는 없어.’
푸틴이 지금 머뭇거리는 것이 인륜 때문인 줄 아는가? 인륜 따위는 KGB에 들어갈 때 다 버리고 왔다. 푸틴이 신경 쓰고 있는 건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이었다. 단순히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 것과 소수 민족을 국외로 추방하거나 다소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은 러시아의 국제적 입지를 크게 약화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이 밑도 끝도 모를 정도로 날뛰면서 어떻게 발언 한 번 해보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이걸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일단 내 의지에 반한 자들을 모조리 치워버려야겠군.”
체첸 테러리스트도 테러리스트지만, 일단 일을 복잡하게 몇 번이나 꼬아버린 극우 조직 처리가 우선이었다. 그들의 뼛속에서부터 깊게 뿌리내린 민족주의는 푸틴의 치세에 몹시 도움이 되었지만,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수족은 현 정권을 유지하는데 부담만 더할 뿐이었다. 말을 듣지 않는 팔은 잘라내야 하지 않겠는가?
어머니 러시아의 등골에서 골수를 파먹는 밥버러지 레드 마피아처럼 전부 쓸어버려야 할 것 같았다. 다만 FSB와 알파 그룹 대신 민중의 지팡이가 움직일 뿐이었다. 인간이란 성인이 되도록 나이 먹으면서 죄 한 번 저지르지 않는 이가 없고, 방망이로 두들기면 없는 죄도 뚝딱하고 즉석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신비로운 생물인지라 도리어 일이 더 쉬웠다.
‘그래도 이 건으로 체첸 일이 좀 쉬워지긴 했군.’
원래도 체첸 테러리스트 제압에 군을 동원할 만큼 막장으로 나가긴 했지만, 이젠 정말로 눈치 하나 보지 않고 제압해도 된다는 말이렷다. ABC 무기만 빼면 다 써도 무관하다는 소리다.
이것은 푸틴에게 아주 좋은 기회였다. 사람들은 이성이 마비되고 모든 사회 문제가 체첸으로 귀결되어 있었다. 지금 아이들이 죽었는데 당장 내일 본인이 고작 밥 한 끼 못 먹는 게 중요하단 말인가? 두 달 동안 밀린 임금은 또 어떻고? 점점 거세되어 가는 정치적 선택지? 그런 게 중요한가?
이는 푸틴이 설계하는 독재 정권 수립에 너무나도 이상적인 환경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제정신이 박혀 있는 사람이라면,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국민이 대량 학살을 당하고도 완벽하게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나? 이번 사건은 감정 조절의 달인인 푸틴에게도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조금만 틀어져도 감정적으로 행동할 것만 같았다.
“일단 특별한 지시사항이 있을 때까지 매뉴얼대로만 하게.”
대응 매뉴얼은 영화 같은 곳에서는 높으신 분들이 사건을 덮기 위한 부조리극에 사용되는 소품에 불과하지만, 실제 대응 매뉴얼은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심해서 만들어낸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약속해둔 지표’다.
“그리고 군에 예산을 더 편성해야겠어. 체첸 테러리스트들을 완전히 근절할 때까지.”
반대 의견은커녕 이의조차 없었다. 회의장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은 여전히 침묵을 고수했으며, 열심히 펜을 놀려서 무언가 적는 척할 뿐이었다. 이래서야 회의가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였다.
당연하겠지만, 모든 이가 이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곤란해하지도 않았다. 실로비키란 원래 이런 거다.
다만 단 한 사람. 브리핑을 진행하던 사람만이 굉장히 곤혹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님. 곧 성명 발표가 있습니다만, 내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알아서 하지.”
그것으로 그날 회의는 끝이 났다. 푸틴은 기자들이 몰려 있는 단상으로 움직였고 숨을 크게 한번 들이키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테러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입을 여는 순간 푸틴은 평소라면 잘 다스렸을 감정선이 불안정함을 느꼈다. ‘원형 탈모’가 올 정도로 연일 과다한 스트레스를 받은 덕분에 호르몬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체 기능이 심각할 정도로 불균형하게 변한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한 푸틴은 자신이 써놓았던 연설문을 구겨버렸다.
감정적으로 행동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반사적으로 계산되었지만, 이딴 계산도 더는 못 해 먹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니 경고하겠습니다.”
딱 여기까지 말하고 푸틴은 마치 급발진하는 자동차처럼 온몸에서 피가 끓는 것을 느꼈다.
“야 이 반동분자 새끼들아!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지금 전차를 몰고 가서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
그렇게 자신의 감정에 맡긴 채로 날뛴 푸틴은 그날 정말로 T-90을 타고 그로즈니로 향하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단순히 퍼포먼스였는지, 아니면 진짜로 머리를 날리러 가려고 했는지는 푸틴과 신만이 알 일이다.
「다음 보도입니다. 모스크바 선이 재가동-.」
“지도자 동무. 어쩌죠?”
당연히 체첸 잔당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저희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다는데요?”
이에 반군 지도자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어떻게 하긴.”
그는 필터까지 태운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꼬락서니가 고뇌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했다.
“짐 싸. 다른 나라로 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