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63)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62화(163/377)
< 162편 >
단풍이 물드는 가을이 다가왔다.
한 사내가 백악관의 복도를 잔뜩 흥분한 듯 대통령 집무실을 향해 큰 소리가 나도록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이 무례한 행동을 아무도 저지하려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흥분한 사내가 이 백악관의 주인이자, 미국의 대통령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몹시 드문 일이었다. 왜냐면 그는 흥분하더라도 흥분을 겉으로까지 표출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적어도 남들 앞에서는 말이다. 민간에 알려진 이미지와는 영 딴판이지만, 그게 ‘정치인’이라는 거다.
어쨌든 그가 흥분을 겉으로 표출할 때는 다 이유가 있어서 표출하는 것이다. 뒤에서 마치 어미 오리를 쫓는 새끼 오리들처럼 부시의 뒤를 졸졸 따라오며 쉴 틈 없이 입을 놀리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표정이며 어투며 하나 같이 실로 절박해 보였는데, 나이부터 성별. 심지어는 정당까지 전부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정치인’이라는 점이었다.
본래 민주당과 공화당이 의견이 맞으려면, 본토에 공격이라도 당해야 한다. 마치 9.11처럼 말이다. 아득히 먼 고대에 최초로 부족정 문명이 성립되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치란, 행정이란 결국 가진 자들의 이권 다툼이다.
다만 고대에는 대놓고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착취할 수 있을지를 논했다면, 현대에는 ‘덜’ 대놓고 어떻게 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착취할 수 있을지를 논할 뿐이다. 국가라는 먹음직스러운 파이를 나눠 먹는 도중에 나오는 부산물이 ‘법과 질서’다.
너무 극단적인가?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하나 같이 전부 부자일 까닭이 없다. 일반적인 수준의 월급과 의식주만 받을 수 있으면 그만 아닌가?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함인데 왜 매년 정치인들의 월급은 오르고 뒤로 뇌물은 왜 받는다는 말인가?
물론 가난한 정치인이 있을 수는 있다. 왜냐면 여기서 논하는 ‘이권’이란 재물을 뜻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양심적인 정치인 하나가 국민의 삶에 이바지하여 ‘명예’를 드높일 기회를 얻었다면, 그 또한 이권에 속하는 것이다. 인심을 얻었는가? 그렇다면 그 또한 이권이라 부를 수 있는 것에 속한다.
이권이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 이익이란 물질적, 정신적으로 보탬이 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이권 분쟁이 심화하였을 때. 혹은 이권 분쟁에만 눈이 멀었을 때를 ‘부패’라고 한다.
그러나 가끔 손익 계산을 아득히 초월한 이들이 있긴 하다. 사고방식이 손익 계산이 아닌, 인간이 인지하기 힘든 고차원적 사고방식을 가진 존재들 말이다.
그런 사람들을 성인(聖人)이라고 부른다.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고작 A4용지 하나 매울 수 없는 극소수의 돌연변이 같은 존재들 말이다. 그런 이들은 정치인이 될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웬만하면 정치에는 개입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을 따르는 이들 또한 일찌감치 인간의 반열에서 따로 때어 신격화하지 않던가?
그리고 이런 이들이 ‘정치인’이 된 적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런 이들은 애당초 인간으로 분류할 수 없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이권 분쟁 현상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정당이 존재하는 국가에서 가장 도드라진다. 이는 민주정권이라고 해도 별수 없다. 도리어 자본주의 민주정권이기에 이런 성향이 더 강해진다.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수치인 ‘자본’이라는 수치가 국가 행정 전반에 강하게 개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권 분쟁 자체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착한 사람’과 ‘유능한 사람’은 엄연히 구분 지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청렴과 유능 또한 구분 지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적당히 풀어주지 않으면 혁명이 일어나 현 체제를 부수고 새로운 정권을 세우리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위정자들에게 아주 골치 아픈 일이다.
괜히 빵과 서커스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공화당과 민주당이 뜻이 맞으려면 공통성 있는 이권에 차질이 생기면 된다. 위에서 말한 9.11이나 완전히 똑같이 이득을 보는 대규모 국가사업 따위 말이다. 그런 것들이 몹시 드물기는 하지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거다. 지금 공화당과 민주당의 ‘이권 나눠 먹기’에 치명적이고 심각한 오류가 생겼다.
그것도 양당 공통성이 있는 분야에서.
“대통령님? 이번만큼은 재고해 주십시오.”
“대통령님. 이건 너무 위험합니다. 앞으로의 일정과 법률 책정에 큰 차질이 올 겁니다.”
부시가 갑자기 우뚝하고 멈추자 그들은 우스꽝스럽게 서로 부딪혔다. 마치 그 모습은 고속도로에서 다중추돌 사고를 보는 듯했다.
“왜?”
그렇다. 중요한 것은 ‘왜?’다. 도대체 이들이 뭐 마려운 개처럼 그렇지 않아도 바빠 죽을 것 같은 사람 뒤를 쫓아다니며 귀찮게 한다는 말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부시가 손에 들고 있는 오늘 자 신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신문의 1면에 실려 있는 헤드라인 뉴스 말이다. 무릇 1면이란 신문의 성격을. 더 나아가 신문사의 성격을 대변하며 신문사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케팅 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신문은 ‘더 타임스’였다. 미국이 아니라 영국의 신문이다. 즉, 해외신문이라는 소리다. 그 내용은 이러하였다.
“‘미국에서 음주운전 사고로 일가족 4명을 숨지게 한 미성년자 무죄’라. 이 국제 망신을. 그리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매일 밤을 가족을 잃은 슬픔과 부패한 정부에 대한 분노로 지새우는 국민을 나더러 눈을 감으라고?”
거기까지 말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심호흡이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흥분해서 주먹이라도 휘두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주먹으로 때리면 원래도 아프지만, 이 경우에는 나이까지 겹쳐서 뇌진탕으로 상대방이 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신 사회적인 생명줄을 끊어버리기로 했다.
“자네 오늘부로 정치 그만하고 싶은가?”
부시가 자신의 목숨줄을 완전히 틀어쥐자 그는 새파랗게 질려서 입만 몇 번 뻐끔거렸다. 다른 대통령이라면 몰라도, 이 대통령은 앞뒤 안 가리고 일단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손익 계산이고 나발이고 일단 부수고 보는 초월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붕어처럼 변해버린 상원의원의 한심한 작태를 보고 있던 또 다른 의원이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와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얼굴도 꽤 호감이 가는 상이었고, 표정도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일단 외모만으로 신뢰도를 주기에 충분했다. 간사하고 못생긴 사람보다 잘생긴 미중년이 하는 말이 더 듣기 좋지 않겠는가?
외모지상주의가 옳은 건 아니지만, 인간의 본능을 구성하는 유전자에 외모로 판단하는 기능이 끼어 있음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형까지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인간 사회에서 외모란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제가 범죄를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우선 대의를 보셔야죠. 작은 그림에 연연해서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면 눈앞에서 심기가 뒤틀린 상태로 팔짱을 끼고 있는 대통령이라는 작자의 뇌는 좀 맛이 가 있어서 외모고 나발이고 일단 마음에 안 들면 패고 보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말하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설득이라는 것은 본디 본인의 절박함을 호소하기보다는 설득하려는 인물의 성향을 파악하고 마음을 움직일 줄 알아야 하는 법인데, 상대방의 성향은 혼돈이었다.
즉,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렷다. 그는 급하게 말을 은유에서 직설로 바꿨다. 당장 어찌할 수 없다면, 차라리 시기를 미루기라도 해야 했다.
“대통령님이 하려는 행동이 가져올 파급력을 한번 고려해보십시오. 그들이 필요악이라고까진 하지는 않겠지만, 지금 법원을 한바탕 뒤집어엎게 되면···.”
“세상이 조금 더 깨끗해지겠지. 미국이 조금 더 법치국가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겠지. 무전유죄 유전무죄 같은 말도 사라질 거고. 이렇게 말하고 보니까 정말로 좋은걸! 당장 추진해야겠어.”
적어도 제정신이 박혀 있는 인간이라면, 이 말에 무어라 반박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정치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아가리 파이트고 여기 모여 있는 정치가들은 아가리 대회의 역대 챔피언들이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말문이 막히면 금세 다른 샛길을 찾아내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안됩니다. 적어도 말년에 하셔야 합니다. 지금 붙들고 있는 사업. 다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기업가나 재벌들이 등을 돌리면 결과적으로 경제가 망가질 거고 결과적으로 서민들이 더 살기 힘든 세상이 오겠죠. 일주일에 닭 한 마리 간신히 먹는 개척시대 이전 생활로 다시 돌아가는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사업에는 대기업이 필수적이고 그 대기업들이 발을 빼서 국가가 하려는 일에 전부 어깃장을 놓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다. 무적 같아 보이는 미국 정부가 돈 하나에 휘둘리는 이유도 다 돈 때문이었다. 그들의 원활한 협조를 위해서는 다소의 편의를 봐줄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나라를 가더라도 법원이 존재하는 나라였다면, 하나 같이 죄다 똑같았다. 그렇지 않더라도 기득권의 도움 없이 유지된 정권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자본주의 세상에서 힘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겠는가? 바로 자본에서 나온다. 종종 자본주의 세상에서 힘은 곧 돈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도 개인과 개인 사이. 혹은 기업과 기업 사이에서나 먹히는 것이다. 돈이란 돈을 발행하는 국가가 그 가치를 보장하기에 가치를 가지는 것이지, 국가가 보장을 철회하거나 무너져 내리면 한낱 세균 덩어리 섬유질 쪼가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럴 거면 도대체 귀족들이 초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활개 치던 중세시대랑 뭐가 다른데?”
따라서 정부가 더는 봐주지 않겠다는 뚜렷한 의지를 지니고 조금만 위협하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물론 정권이 바뀌면 다시 돌아가겠지만, 적어도 부시라는 인물이 사달이 났는데도 정권을 유지해야겠다는 이유로 부패한 법원을 후려치지 않을 인물이 아니었다.
“내가 이런 꼴이나 보려고 대통령 된 줄 아는가?”
“그런 모순과 자괴감을 참으시면서 하는 게 대통령이라는 자리입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상원의원 하나가 대통령을 말리기 위해서 앞으로 나섰다.
대통령이 딱히 법원을 어떻게 하겠다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경찰처럼 다 갈아엎으려는 게 분명했다. 무려 두 가지씩이나 문제가 있었다. 정확히는 하나는 공적인 문제였고, 또 하나는 사적인 문제였다.
주 경찰을 개혁할 땐 연방 경찰이 공권력의 부재를 감당했지만, 법원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법원도 연방 법원과 주 법원으로 나누어져 있긴 했지만, 연방 법원은 연방법에 저촉되는 문제만을 다루는 곳이었기 때문에 관장하는 부분이나 성격이 전혀 달랐다. 따라서 주 법원을 갈기 위해서는 아예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갈아엎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는 실로 복잡한 문제였다.
그리고 사적인 이유는 로비였다. 미국 사회든 뭐든 일단 로비란 게 존재하는 이유가 뭐겠는가? 전부 다 본인 뒤 좀 적절하게 봐달라고 그런 거 아니겠는가? 동네 갱들한테 자릿세 내는 것과 별로 다를 것도 없었다. 역설적으로 로비를 받는 사람에게 힘이 없다면, 로비스트들이 로비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거 아는가?”
“예?”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는 상식이 없는 사람만이 대통령을 할 수 있지.”
이는 일종의 선전포고였고, 부시가 아예 대통령 집무실 안으로 들어감으로 인해 대화 자체가 종결되었다.
“대규모 필리버스터가 일어날 겁니다.”
비서실장이 다소 불편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지금껏 겪어왔던 일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알고 있네.”
물론 대통령의 표정은 비서실장이 그동안 본 것 중에 가장 상쾌한 듯한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