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64)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63화(164/377)
< 163편 >
지금 의회는 상당히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언젠가 법원까지 건드리라 생각하긴 했지만, 이렇게 이른 시기일 줄은 상상도 못 해봤다는 점이 첫 번째. 지금까지는 달달한 차이나 머니로 인해서 여야 대부분 좋게 넘어갔지만, 본격적인 대립을 각오하고 있다는 게 두 번째였다.
부시는 연설대에 올라서고 한참을 말없이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무도 어째서 그가 그렇게 행동하는지 알 겨를이 없어 의회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상원의원 100명. 전부 출석했군.’
일부러 짜증 나게 할 목적이었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부시는 그들의 페이스가 완전히 무너지기를 바랐다.
그렇게 10분이 지날 무렵 누군가가 드디어 참지 못하고 입을 열려는 찰나,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대통령의 입이 열리고 가망 없는 의회 연설이 시작되었다.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굉장히 드물게도 고개와 시선을 대놓고 연설대 아래로 내리고 연설문을 읊기 시작했다. 적어도 9.11 테러 이후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필리버스터에 묶여 있는 법안이 참으로 많습니다. 온갖 사회 보장 프로그램, 노인의료보험제도(Medicare), 총기 제한 법률이 다섯 개.”
그렇게 말하고 입이 다시 닫혔다가 연설대에서 보기만 해도 굉장히 두꺼워 보이는 ‘필리버스터 목록’을 들고 흔들었다. 종이가 어찌나 두꺼웠는지 잘 펄럭거리지도 않았다.
“여기 더 나열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입이 아파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연설문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다. 다만 이번에는 연설문이 두꺼운 날클립(nalclip)에 묶여 있었던 탓에 사방팔방으로 흩날리지 않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을 뿐이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상원의원들은 침묵을 유지한 채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그들 스스로 그다지 떳떳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막말로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설명할 수도 없잖은가.
물론 이외에 타당한 이유라면 몇 개라도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주 법원을 개혁할 경우 생기는 문제점 말이다. 이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애당초 주 법원과 연방 법원이 나누어져 있는 이유부터 알아야 하는데, 미국이라는 나라가 성립되기 전부터 꾸준하게 반연방주의자들이 연방 법원 설립을 방해했다.
각 주의 자치권 문제 때문이었는데, 이들 덕분에 미국 정부는 건국할 당시 결국 지방 법원은 지역 주민만 판사가 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이들은 민주공화당이라는 정당을 세웠는데, 이들의 후예가 오늘날 양대 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이다.
그 때문에 주 정부는 전부 하나 같이 자치성이 강하다. 반연방주의자들이 만든 지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연방이라는 건데,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 아닌가? 여하튼 이들이 만들어낸 복잡하고 정교한 미국의 사법 시스템을 전문적인 용어를 최대한 쳐내고 이야기하자면, 주 법원에 지방, 고등, 대법원이 있고. 연방에 지방, 고등, 항소, 대법원이 있다.
연방에서는 연방법에 관련된 법만을 다루고, 그 외에 모든 법은 주 법원에서 다룬다. 법전은 총 20만 페이지이며, 목차는 보건법, 교육법, 전쟁법 등이 포함된 50편에서 1편 더 추가된 국가 및 상업 우주 프로그램까지 51편인데, 훗날 2019년에는 54개까지 늘어났다.
어쨌거나 주 법원을 마냥 주 경찰처럼 개혁할 수는 없다는 거다. 도리어 잘못 건드리면 긁어 부스럼이 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미국 전체가 개판이 날 수도 있다는 거다.
“이에 대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말해보시오.”
그렇기에 이들은 대통령의 계획이 궁금했다. 적어도 개혁을 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였으니, 어떤 방식으로 개혁할 것인지도 일단 전부 다 계획해놓았다는 뜻 아니겠는가? 아니면 그 일부라도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개혁을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개혁? 그 단어선정은 참으로 부적절합니다.”
놀랍게도 결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젠 개혁이 아니란다.
“예?”
“나는 개혁을 하겠다는 게 아닙니다. 올바르게 돌려놓겠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어떻게 말입니까?”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은커녕 비슷한 것조차 나오지 않자 한 상원의원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는데, 기병도 따위의 예리함보다는 묵직한 장검이나 철퇴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중저음이었다.
“내가 거론하고자 하는 문제는 이거요. 일부 판사들이 일부 부자들의 불법적인 로비를 받고 무죄 판결을 내놓거나 감형을 했지. 이것을 해결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모르겠습니까?”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그들이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도 한참 더 큰 규모를 가진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본디 상원의원들은 이 일을 꼬투리 삼아 연방 법원에 힘을 실어줄 생각인 줄로만 알았다.
겸사겸사 그렇지 않아도 무소불위로 치닫고 있는 대통령 본인의 권력도 좀 더 강화하고 말이다. 만약 판사들이 싹 해고당한다면, 분명 대부분은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일 터이니 당연히 권력이 공고해진다. 훗날에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법의 수호자’라는 강력한 이미지도 얻을 수 있다.
만약 본인이 대통령이라도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일이었다. 이 일로 반목해야 하는 사람들이 권력의 핵심이자 지지기반이나 다름없는 사람들만 아니라면 말이다. 다른 대통령이라고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한 게 아니었다. 못하는 이유가 다 있었다.
“그러니까. 그 판사들을 어떻게 하겠다는 말씀입니까? 연방 법원과 주 법원에 있는 판사를 전부 다 잘라버리기라도 하시겠다는 말입니까?”
법원 인력의 부제는 단순히 임시 총선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대통령께선 이 나라의 법원을 전부 철거해 버리기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잠재되어 있던 아나키스트가 눈을 뜨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법원 철거는 또 무엇으로 할까? 탱크? 폭격기? 그것도 아니면 ICBM?
상원의원들 사이에서 의문이 또 다른 의문을 낳는 가운데 정작 돌아온 대답을 들은 부시 대통령은 실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럼 우리 미합중국의 모든 판사가 부패하기라도 했다는 말입니까? 부패한 판사 몇 명이 빠지면 법원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상원의원들은 그 지고하신 대통령께서 법원이란 법원은 죄다 부패했다고 모른 척 돌려 까고 있다고 생각했고, 부시 대통령은 이야기가 맞물리고 있지 않음을 직감했다. 부시가 생각하고 있던 스케일이 꽤 단란한 가정집 정원이라면, 상원의원들이 생각하고 있는 스케일은 슈퍼볼이 열리는 미식축구장 백만 개쯤을 합친 것이었다.
상원의원들이 이렇게 생각할 만도 한 것이. 평소 주변 말에는 전부 엿을 날리고 독단적으로 좀 거대하게 진행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주 경찰을 이미 한번 완전히 해체했다가 다시 구성해버렸으니 그렇게 생각할 법했다. 아니, 도리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부시의 생각은 대략 이러했다. 일단 본보기로 부자가 아니더라도 특정한 이들의 뒤를 봐준 부패한 재판장들을 싹 다 잘라내고 다신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복잡하고 강력한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다.
물론 평생을 법이라는 종목 하나 가지고 밥 벌어먹는 인간들이니 아무리 완벽하고 강력해 보이고 강제성 있는 법을 제정해놔도 언젠가는 파훼 되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해결할 일이지, 너무 먼 훗날을 생각해서 지금 당장 손도 못 쓰면 그것이야말로 말짱 도루묵 아닌가?
“그럼 이 꼴이 나도록 의회는 뭐하셨습니까?”
이렇게 말하면서도 부시는 등 뒤로 진땀을 흘렸다. 그렇다고 여기서 발을 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중에 자신이 구상하는 데로 미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이곳을 정리해야 했다.
물론 부시의 본래 구상대로 했더라도 필리버스터가 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주 정부의 자치권과 밀접한 부분. 그리고 상원의원들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게 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이 정도 규모를 원하는 건 아니었다. 법률 제정이 아니더라도 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본인이 벌여 놓은 일이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서 아예 손을 떠나 버리는 것이었다.
“아, 그리고 이번에 필리버스터는 없소. 왜냐면 내가 먼저 나갈 것이기 때문이지. 잘들 있으시오.”
오로지 이 짧은 연설만을 끝내고 바로 퇴장하겠다는 사상 초유의 선언에 얼어붙은 분위기가 삽시간에 끓어올랐다. 사실 원래도 들어줄 사람이 없는 연설은 공허한 말에 불과했다.
“뭐요?”
“뭐라고?”
부시는 굉장히 급한 발걸음으로 의회에서 퇴장하기 시작했다. 선언했을 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했던 것이. 진짜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서 가지 말라고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다들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부시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바로 걸음을 돌려서 연설대로 돌아왔다. 그들은 그럼 그렇지라고 안심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끝내는 건 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부시는 마이크에 고개를 가까이 들이밀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 그리고 나갈 때 물 좀 드시고 가시오.”
좋든 싫든 대통령이 다시 돌아와 입을 열었으니 정숙을 유지해야만 했다. 한 1000명씩 있으면 모를까, 고작 100명이 밖에 없던 탓에 통제가 수월했다. 그리고 모두가 입으로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물’이라는 말에 의아해할 뿐이었다.
솔직히 대통령이 진짜 물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비유하고 있는 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다만 저 인간이 하는 일이니, 평범한 일은 아닐 것이라 예상할 뿐이었다.
“그렇게 걱정들 하지 마시오. 그냥 수돗물이오. 서민들이 마시는 물이지.”
수돗물이라고 하니 더 의아해졌다. 갑자기 수돗물은 왜 마시라는 건가? 그래도 수돗물로 한정시키니 짐작이 가는 바가 없잖아 있긴 했다. 대충 서민들의 삶을 느끼라는 취지로 이런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니 썩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상상을 한참 초월한 말을 내뱉었다.
“그대들은 식물이오.”
“저기, 뭐라고요?”
하도 어처구니가 없는 말의 연속인지라, 드디어 누군가가 더는 가슴속에 담아두지 못하고 입 밖으로 의문을 꺼냈다.
“그대들이 하는 일이 법 제정인데, 그 법이 필리버스터 덕분에 제정되어야 할 법이 제정되질 않으니 저기 밖에 있는 식물이랑 뭐가 다릅니까? 그러니 물이나 잔뜩 드십시오.”
상원의원 전체를 은유적으로나 직접적으로나 물 먹이는 폭언이었다. 이 말을 위해서 진짜로 수돗물 100잔을 나가는 길에 미리 전부 준비해두었다. 정작 부시 대통령 본인이 당황하는 바람에 이 말 자체를 빼먹을 뻔했지만, 무사히 오로지 말과 작은 행동만으로 상원의원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수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다시 얌전해지자 부시 대통령이 말을 이어나갔다.
“만약 당신네가 필리버스터에 관심이 있는 작자들이라면, 저 두꺼운 리스트를 한번 읽어보면 흥미가 좀 동할 거요. 그땐 좀 식물이 아니라 사람 같겠지.”
부시 대통령이 거기까지 말하고 쓱 한 번 훑어봤는데, 반응이 가지각색이었는데, 더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사람. 진심으로 부끄러워하는 사람. 제 발에 저려 공포로 겁에 질린 사람. 이 황당한 대통령 의회 연설에 분개하는 자. 그리고 대통령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자.
마지막의 경우에는 평소에도 필리버스터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던 인물들이었다.
“예상했겠지만, 다음에는 이것과는 별개로 필리버스터를 없앨 법안을 들고 올 겁니다.”
본디 부시 대통령은 법원을 정리하고 필리버스터를 없앨 생각이었으나, 서순이 바뀌었다. 그는 의회에 정치적 혼돈만을 남겨두고 다시 백악관으로 사라졌다.
이번에는 잊은 게 있다면서 다시 연설대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