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67)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66화(167/377)
< 166화 >
본디 평소에는 예기치 못한 암살 등에 대비하여 절대로 창문이 열리지 않는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이었지만, 웬일인지 오늘은 창문까지 열어놓고 부시 대통령은 집무실 안에서 낙엽 내음 섞인 나는 중후한 가을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
가을바람을 맞는 사람은 공교롭게도 부시 혼자만이 아니었다. 집무실 내부에 한정하여 항상 그의 옆에 붙어 있는 비서실장 또한 억지로 가을바람을 맞고 있었다. 부시에게 가을바람이란 감성과 우수에 젖을 수 있는 향수였지만, 비서실장에겐 가을바람이란 그냥 많이 쌀쌀한 바람이었다. 나이를 먹고 나면 선선한 바람도 그날의 몸 상태에 따라 뼛속까지 에이는 예리한 칼바람으로 변모하는 법이다.
“반성하는 중이야.”
“뭘 말입니까?”
“과거의 내 거친 행동과 불안한 마음과 그걸 지켜보는 국민. 그리고 연방 의회에 대해서 말이지.”
비서실장은 ‘지랄 말고 서류에 사인이나 하십시오.’라는 말이 목전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뱃속으로 꾸역꾸역 밀어 넣는 것에 성공했다. 이는 이성과 본능 사이에 벌어진 대전투에서 쟁취한 위대한 승리였으며, 동시에 오감이 마비되는 극한상황에서 이성이 본능을 압도할 수 있다는 위업이자, 동시에 비서실장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 기념비적인 쾌거였다.
“···그렇군요.”
비서실장은 뇌까지 치솟으려는 높은 혈압을 간신히 제어하고 나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여 수긍할 수 있었다.
“그래서 조금 명상의 시간을 가지는 거야.”
“정확히 5개월 전에도 똑같이 말씀하셨죠. 그땐 명상은 없었지만.”
“나는 그동안 올바른 육체에 올바른 정신이 깃든다고 생각하고 줄곧 육체의 힘만을 길러왔는데, 틀렸어. 나라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진정한 마음의 힘이 필요한 거야.”
그리고 부시는 입을 다물더니 5분 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비서실장이 드디어 싫증이 난 모양인지 부시에게 말 대신 서류를 쌓는 행동으로 조용하게 시위했다. 서류가 차곡차곡 쌓여 부시의 키가 될 무렵에 드디어 부시가 쪼들리긴 했던 모양인지 한쪽 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거, 알아들었으니 그만 좀 쌓게. 그러다 무너지겠네.”
“그래서 언제까지 하실 작정입니까?”
“석가모니께서도 명상을 통해서 지혜를 얻게 된다고 하셨지. 자네는 지금 내가 지혜를 얻는 과정을 방해하고 있는 거야.”
‘명상에서 지혜가 나온다.’라. 그렇게 해서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지나가던 삼척동자라 할지라도
“뭐 미국을 신정제로 바꾸고 싶기라도 하신 겁니까?”
“참고로 말해두지만, 석가모니는 인간이지 신이 아니라네. 뭐 동양에서도 이 석가모니에 대한 관점에 따라 좀 다르긴 하지만. 불교에서는 깨달음만 얻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하지.”
“아, 기독교와는 사뭇 다르군요. 그것보다 대통령님은 매우 독실하신 기독교 신자로 알고 있었는데요.”
“원래 젊었을 땐 뭐든지 섭렵하고, 나이를 먹고 나면 그동안 얻은 것 중에서 한 가지만 벼려서 끝을 본다고들 하는데, 나이는 누가 정하나? 내가 정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좀 더 섭렵해보기로 했지.”
다른 사람이 말하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긍정적이고 상투적인 말에 불과하겠지만, 이 인간은 독하게 마음만 먹으면 정말로 미국의 나이 셈법을 수정할 수 있고, 심지어는 정년퇴직의 나이까지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끔찍할 정도로 질이 더 나빴다.
물론 정말로 그럴 리는 없지만, 말이 가지는 무게가 다르다는 거다. 무게가.
만류귀종이라고 했던가? 명상은 고요 속에서 진리를 찾는 여정이고, 기도는 유일신. 다시 말해 진리를 의인화시켜 대답을 바라고 갈구하는 일이다. 동서고금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김부시 안에 들어 있는 모든 이데아가 진실로 하나 되었을 때, 후두부로부터 은은하게 올라오는 편안한 카타르시스가 말초신경까지 내달렸다.
“대통령님?”
그것은 그야말로 신세계의 지평선을 여는 백화제방이자, 그토록 갈구하고자 했던 진리가 얼마나 덧없는지를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가.
“잔당으로 추정되는 테러리스트들이 주수단미 대사관에 폭탄 테러를 감행했다고 합니다.”
“이 시발 새끼들이?”
부시의 테러리스트들을 향한 커다란 진노 앞에 진리는 덧없이 파괴되었다.
같은 시각 주수단미 대사관에서는 사무원들이 밤낮을 잊어가며 거의 1년 동안 작성해온 글자의 나열이 뭉게뭉게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하늘로 올라간 글자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물로 변하고, 무게를 불려 진혼곡이 되어 다시 세상에 내려앉았다.
“비다. 비가 내리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이 번지던 화마는 자연의 작은 은혜에 의해 손쉽게 제압되었다.
“도대체 왜 소방관들이 오지 않은 거죠?”
사실 테러로 인한 피해는 최초에는 매우 경미한 수준에 불과했다. 대사관의 입구가 약간 손상되고 문짝에 불이 붙은 정도였으니 말이다. 대사관이 이렇게까지 불타오른 이유는 전부 소방관이 오지 않은 탓이었다.
“도로가 막혔다고 합니다. 지금도 도로 한가운데에 ”
“그런데 이제 어쩌죠?”
“시발. 내가 어떻게 알아. 이런 니미럴.”
그래도 신사다운 행동을 보여주려고 했던 크루거였지만, 지금만큼은 후배 면전에 대고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격한 반응을 보여주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동안의 노력이 완전히 헛수고가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백업도 없는 종이 서류들이 전부 소실되었다는 소리다!
보안상의 문제로 대부분이 종이로 작성되었다. 세상에 신과 같은 해커가 있다고 할지라도 티타늄 합금으로 제작된 삼중보안 금고 안에 있는 종이를 해킹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문제가 있다면 하도 치안이 나쁘고 예산도 넉넉지 않으니 내화금고가 아니라 단순 도난방지를 택했는데, 이게 이렇게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이런 시발. 세상에!”
“다행히 피해자는 없군.”
처음에는 불을 끄기 위해서 물을 썼는데,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물이 끼얹어도 불이 사그라지기는커녕 번지기만 해서 전원 뒷문으로 차분하게 대피했다.
불이 도리어 번지는 이유에 대해선 추측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모종의 화학물질을 사용한 것 같았다. 다행이라면 범인은 쉬이 검거되었다는 점이었다. 범인은 불타오르는 대사관에 열광하다가 ‘무관계한 미국 국적의 민간인’들의 몰매를 맞고 기절했다.
“피해자가 없다고요?”
말괄량이라는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이 불가한 성격의 소유자인 후배가 어두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얼굴에는 음울한 절망의 빛이 엿보였다.
“대사관의 식구 한 명이 죽었어요!”
그러나 대사관의 직원은 위에서 말했듯 전원이 질서정연하게 건물 밖으로 대피했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죽었다는 말인가?
“네로가 죽었어요!”
“네로가? 죽어?”
이 무슨 끔찍한 소리란 말인가? 네로는 올해 들어 12살밖에 되지 않은 녀석이었다. 어찌 신께서는 아직 세상을 12년밖에 모르는 이를 이리 거두신다는 말인가? 운명이란 이리도 잔혹한 것이었단 말인가?
“네로가 죽다니!”
네로는 크루거를 쫓아다니던 ‘치타’였다. 자꾸 주인과 사육사는 개 무시하는 주제에 완전 외지인인 크루거에게 친근하게 굴자 곤란해진 네로의 원소유자인 부자가 아예 주수단미 대사관에 잘 키워달라며 네로를 기르던 물품과 함께 기증해버렸다.
크루거에게 하루에 한 번씩 달려들어서 전신을 핥아대는 사고만 빼면 별 색다른 문제 없이 마스코트처럼 반년을 동고동락해 온 애완동물이었다. 아무리 날 때부터 사람과 부대끼면서 지냈다곤 하나, 야성이 사라질 수 없기에 가끔 사람을 보고 입맛을 다시긴 하지만, 애완동물이 맞다.
당장 북쪽으로 올라가면 핀란드나 러시아에서는 곰도 애완동물로 기르지 않던가? 설탕에 절인 땅콩을 안주 삼아 보드카에 벌꿀 타서 원샷하고 것을 보고 있노라면 저게 동물인지 사람인지 분간이 되지 않지만 어쨌거나 그 네로가 죽다니!
“그래도 편히 갔군.”
사태가 벌어졌을 때 자신의 침대 위에서 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마도 연기에 질식해 죽은 모양인데, 자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고 가버렸다.
“이런 시발! 그냥 치타 한 마리잖아! 사람 놀라게 하고 있어!”
그렇다고 크루거와 네로라는 녀석이 딱히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다. 일방적인 짝사랑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아예 정이 들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었지만, 그것 이상으로 문서의 소실이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안돼! 저걸 쓴다고 휴가까지 반납했단 말이야!”
“선배 회사에서 다리 묶여서 월차 쓰고 커피 빨면서 밤새 일만 하는 타입이에요?”
“미쳤니?”
일단 반사적으로 반응하긴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리가 묶이지 않았다는 점만 빼면 다 맞는 말이었다. 사실 다리도 물리적 묶이지만 않았지, 정신적으로 묶여 있긴 했다. 월차도 쓴 주제에 중간에 일이 터지는 바람에 사무실에서 일만 했고 커피도 빨았고 밤도 샜으니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내가 미친 건가?”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네로를 낑낑거리며 옮기고 있었다. 대사관의 뒷마당을 파내고 그 위에 임시로 비석 대신 십자가를 꽂았다. 아프리카 출신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십자가가 아니라 다른 것을 올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것까지 생각하기에는 크루거의 머릿속이 너무나도 복잡했다.
“힝. 우리 네로 불쌍해서 어떻게 해.”
후배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결코 여자 같진 않았지만, 일단은 동양계 여자였다. 정확히 어디 출신인지 딱히 궁금해한 적은 없었지만, 태생이 미국임은 확실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불타버린 서류였다. 수단은 미국 새롭게 구축한 북아프리카 전역의 정보 수집 허브였기 때문에, 북아프리카에 관련된 정보 중 극비로 분류되는 문건은 전부 저 안전 금고 안에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북아프리카 민주주의 지원 계획은 물 건너갔군.’
이건 일종의 승진 기회였다. 다시 연방 의회가 예산의 허리띠를 졸라매려는 걸 보면 지원 계획이 전부 통과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야만의 땅에 민주주의를 가져다줄 수 있었다.
아, 뭘 숨기랴. 크루거의 사고관은 편협하고 비틀려 있었다. 가장 비슷한 것을 따지자면 네오콘이었다. 모든 이들이 오늘날에는 ‘정치적 올바름’을 강요하지만, 하루에 한 번씩 테러당하면 편견이 생기지 않으래야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찌 보면 수단이 스스로 불러온 재앙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대가리에 어느 정도는 남아 있어서 다행이군.”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불행이라면 불행이었다. 그건 바로 잊어버리기 전에 자발적으로 야근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난 고양잇과 전반에 심각한 알레르기성 질환이 있는 사람이라고.”
“선배. 연락 들어왔어요.”
“무슨 연락? 바빠 죽겠는데.”
후배가 건네준 것은 이런 상정 외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된 긴급 회선용 위성 전화였다.
‘본토인가?’
“주수단미 대사관 지부 중앙정보국 사무실···.”
「자네가 책임자인가?」
CIA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목소리를 알고 있다. 사실 CIA가 아니라도 미국 국민이라면 누구든지 잘 알고 있는 목소리였지만, CIA에겐 이보다 특별한 목소리는 하나도 없었다.
살아 있는 전설, 텍사스 버펄로, 역사상 가장 악마 같은 상사.
“대, 대통령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