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69)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68화(169/377)
< 168화 >
아프가니스탄은 마치 1950년대의 한국을 보는 것처럼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눈부신 성장은 민족의 단결력과 외신의 가십거리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일으켰다.
국내 경제가 갑자기 불어나면서 심각한 파벌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가 왕이었을 시절에는 왕이었기 때문에 파벌 관리가 그나마 손쉬웠다. 착한 파벌과 나쁜 파벌은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파벌이었으니 구분이 쉬웠다 이 말이다.
하다못해 다시 집권한 이후 자치권이 보장된 작은 정부였을 시절에는 모하마드가 아프가니스탄에 산재한 문제들을 집무실 의자에 앉아서 서류를 읽고 타당해 보이는 사안에 사인하는 것만으로도 천천히 해결할 수 있었지만, 좀 더 효율적인 관리와 마약 근절을 위해 큰 정부를 지향하게 되면서 더는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었다.
모하마드의 살날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심지어는 임기가 끝나면 내려올 운명이었다. 이미 한 번 찬탈당하고 조국이 무너져가는 것을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서 ‘다음 사람이 말아먹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실 파벌이라기보다는 성향이 극명한 정당이 성립된 것이었지만, 모하마드의 입장으로 보면 다 거기서 거기였다. 왜냐면 그 정당들이란 놈들의 전신이 아프가니스탄 내부에서 탈레반 치하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던 부족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또한 대한민국이 광복절 독립 이후 정부의 절반 이상을 친일파가 장악했던 것과 어째 흡사했다. 원래 건국 초기 정치라는 것이 국내에서도 힘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 아니겠는가? 이때가 나라의 방향성을 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가장 중요했다.
점차 내부가 고이기 시작한 아프가니스탄 못지않게 이란은 행정이 돌아갈 때마다 행정을 구성하는 부속품들이 전부 비명을 내질러야 했다.
원래부터도 미국과 대립이 굉장히 심하긴 했지만, 미국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아프가니스탄을 중동 자본 민주주의의 첨병이자 전진기지로 밀어주기 시작하면서 극도의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특히 재작년 절대로 굴복하지 않을 것 같았던 북한이 굴복한 이래로 어둡고 끔찍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특히 21세기로 오면서 이란 육군이 보유한 전차는 전부 구식이 되었다. 대부분이 냉전 시절에 양 진영에서 수입한 2세대 전차를 개조한 것이거나, 북한에서 수입했는지 증여받았는지 모를 천마호 전차 정도였다. 그나마 3세대 전차라고 있는 게 미국의 패튼 계열과 러시아의 T-시리즈를 기반으로 이란에서 자체 개발한 줄피카 전차였는데. 그마저도 생산 배치 대수가 150대에 그쳤다.
반면 이제부터 가상적국으로서 대적해야 하는 아프가니스탄은 수출형이긴 하지만, M1 에이브럼스에 문제가 생기면 인도로 우회하여 제대로 된 정비까지 받고 있었다. 그마저도 곧 아프가니스탄 국내에 전차 조립공장이 생기면서 해결될 문제였다.
공군도 마찬가지였다. 이란의 공군력은 친미 정권 시절 당시에 수입한 F-4, F-5, F-14가 전부였지만, 아프가니스탄은 F-15로 무장하고 있었다. 다만 근 10년 내로는 아프가니스탄이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미 공군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제공권은 이란에 내줄 수밖에 없다. 아프가니스탄은 이제 막 공군이 창설했지만, F-14를 매우 오래 운용해온 만큼 노하우가 쌓여 상당히 우수한 에이스 파일럿이 많이 양성되었기 때문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프가니스탄은 내륙국인지라 해군이 없었지만, 대신 미군의 항모가 바로 옆 동네인 인도에 주둔하고 있으니 이란은 환장할 판이었다. 쉽게 말하면 전망이 보이지 않는 ‘군비경쟁’이 시작되었다는 거다.
이란은 나름 모든 면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었지만, 이 군비경쟁이 시작되면서 끝없는 수렁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성장 동력을 위해서 행정이나 복지에 쓰여야 할 예산이 전부 군비에 들어가고 있었으니 이란 정부는 완전히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아프가니스탄은 먹이고, 이란은 맥이고 있었다.’라고 표현이 가능하리라.
그리고 아랍이 문제가 생기면서, ‘리비아’ 쪽도 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지구본을 좀 유심하게 본 적 있는 사람이거나, 리비아에 여행을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갑자기 여기서 왜 리비아가 튀어나오지?’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왜냐면 리비아는 아프리카 대륙에 붙어 있는 나라였으니까 말이다.
실로 공교롭게도 리비아는 아프리카 대륙이기도 했지만, 하필 이집트 옆에 붙어 있기도 했으며, 동시에 지중해에 붙어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역사적으로 유럽과 가장 밀접한 나라 중 하나였다는 말도 된다. 그러나 이 나라에 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역사도 역사지만 현재 리비아의 통치자가 그 악명 높은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라는 사실도 알 것이다.
어쩌면 조금 더 관심이 있다면, 카다피가 아프리카의 여타 독재자와는 달리, 단순한 독재자가 아니라는 사실도 알지도 모르겠다. 2003년 말인 현재까지는 굉장히 성공적인 독재자였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은, ‘국력’을 뜻한다. 1969년 카다피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이후로 리비아의 국력은 가난의 대륙이라 불리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되었다. 단순히 국가 예산이나 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GDP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물론 그저 ‘독재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데다가 본인이 이룩한 업적을 본인이 스스로 말아먹었으니 무능이라고 해도 별문제는 없으리라, 독재도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반면교사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20세기 말엽 당시에 그가 이룩한 경제적 위업은 카다피라는 인간을 재평가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물론 미국의 시점에서는 더도 덜도 말고 ‘개새끼’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리비아 내의 정유 회사들을 전부 제거하고 석유에 대한 국유화를 진행했으며, 외국인은 대부분 내쫓았다. 그러나 ‘범아랍주의’를 신봉했기 때문에 외교는 그렇게 잘하는 편도 아니었고, 점점 뒤로 가면 갈수록 여타 독재자처럼 현실감각을 완전히 상실했다.
범이슬람주의와도 쉬이 혼동되곤 하는 범아랍주의는 중동-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범국민주의 운동으로서,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아랍 민족을 국경을 넘어 하나의 연합 체계로 묶으려는 운동이다.
아일랜드를 제외한 영국을 비롯한 서방세계 전반으로 테러 조직 성향을 지니는 ‘아일랜드 공화국 임시 정부군’에 적극적으로 지원을 했으니, 영국의 시점으로는 아주 불구대천의 원수나 다름없다.
그러나 미국과 본격적이며, 원색적으로 적대하게 된 개기는 단언컨대 팬암 103편 폭파사건이다. 미국은 이때 충분한 법적 보안 절차를 구축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이것만으로는 너무나도 부족하여 기어코 9.11 테러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도요타 전쟁에서는 제3세계식 기동전 혹은 아프리카식 기동전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석유 팔아서 번 돈으로 하라는 군사 훈련은 안 하고 소련에서 수입한 첨단 무기를 통해 양과 질로 압도하려다가 철저하게 무너졌다. ‘정보전’에서 완전히 패배했기 때문이다.
리비아에는 소련 측으로부터 수입한 미그기, 수백 대의 전차, 장갑차 야포, 전투 헬기 등이 있었지만, ‘정보’가 부족하여 고작 400대의 도요타 테크니컬을 사용한 기동전술에 철저하게 무너졌다. 공항에 주둔하고 있던 전투기는 파괴되었고 대부분의 기갑전력이 노획되었다.
본디 리비아는 도요타 전쟁의 발단이 된 우마르 파벌의 반군에게서 정보를 얻을 생각이었지만,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이들은 철저하게 무너져내렸다. 거기다가 외부 세력인 프랑스를 비롯하여 소련의 지원이라는 의심을 산 미국의 개입을 허락하고 말았고 리비아는 결국 패배했다.
이 과정에서 소련은 리비아의 패배로 미국으로 유출된 자국산 첨단 무기에 대해서 격하게 분노하게 되었으며, 이것을 개기로 카다피가 집권하는 리비아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완전히 왕따 국가가 되고 말았다.
총정리하자면, 카다피는 제1세계에서는 악독한 독재자. 제2세계에서는 주의해야 할 독재자. 제3세계에서는 복잡하긴 하지만, 투자하고 도와줬기 때문에 그래도 제법 유능한 독재자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2003년 현재까지는.
“나는 무력으로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무력으로는 절대로 내 권력을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숙지해야 합니다.”
옛날에도 비슷한 연설을 한 적이 있긴 하지만, 옛날에 했던 연설과 지금 하는 연설은 내용은 비슷할지언정 가지는 의미가 전혀 달랐다. 예전에 했던 연설이 ‘나는 설령 쿠데타가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의 발로였다면, 지금은 차마 숨기지 못하는 절박함이 표출되고 있었다.
정말이지 끔찍하게도 바로 리비아 옆에 붙어 있는 나라가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수단이었다.’가 맞는 말이다. 이제는 그냥 수단이 아니라 서수단이기 때문이다.
친미 정권이며, 서방세계로부터 지원까지 받는 서수단 말이다. 어째 어딘가의 구도와 묘하게 흡사하지 않은가? 세계 정국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면, 마치 리비아와 서수단의 구도가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이 겹쳐 보이지 않나?
물론 세세한 부분에서야 차이가 있겠지만, 서수단의 영토인 다르푸르는 한 국가의 영토로서 상당한 잠재력을 가진 지역이었다.
게다가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는 달리, 하필 바로 위가 지중해다. 다시 말해서 유럽과 맞붙어 있다는 뜻이다. 이미 도요타 전쟁에서 프랑스 공군에게 두들겨 맞은 전력도 있고, 미군의 차드 지원에 밀려본 적도 있다.
서수단과 남수단 독립을 듣고 카다피가 그날 너무 놀란 나머지 아예 기절까지 했으니, 그 기절에서 일어난 이후 그의 심정은 심리학에 문외한이라고 할지라도 대충 상상이 갈 것이다. 차라리 이 정도라면 낫다. 알게 모르게 수도인 트리폴리 지하에서 결성된 반정부 조직을 중심으로 독재 타도, 민주화 정권을 부르짖고 있었으니 환장할 지경이었다.
이렇듯 내외부로 압박을 받기 시작한 카다피는 결국 한가지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리비아의 모든 부를 군사력으로!”
그렇지 않아도 영토의 99%가 사막인 리비아가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민생이고 나발이고 자신의 독재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리라는 선전포고였으며, 동시에 그가 내전을 각오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미 자신이 권력을 이양하느니, 차라리 리비아를 소말리아로 만들어버리겠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할 정도로 권력욕이 강했기 때문에 리비아의 국민은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점차 요동치는 물가와 사라져가는 복지. 그리고 수입 중단으로 인한 생필품 부족은 불만을 가져왔고, 결국 드디어 2003년 10월 11일 오전 4시. 시위대에 군대가 실탄을 발포함으로 인해 리비아 내전이 발발했다.
리비아 내전은 주변 독재국이나, 삶이 팍팍한 국민에게도 충분한 영향을 주었고, 그것이 민주주의든 아니면 부족의 패권을 위한 것이든. 혹은 종교를 위한 것이든 간에 많은 새로운 반군이 조직되기에 이르렀다.
그렇지 않아도 각종 분쟁으로 전쟁이 끊일 일이 없던 아프리카 대륙에 아프리카인들의 피로 인해 드디어 21세기로 가는 ‘새로운 서막’이 열렸다.
각자 자신에게 더 나은 아프리카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