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71)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70화(171/377)
< 170화 >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철 지난 록 음악을 들으며 하품을 내뱉었다. 당장이라도 투아레그의 영토를 향해 정부군이나 중무장한 경찰이 들이닥칠 수도 있었지만, 그건 그때 일이지 지금 벌어진 일은 아니잖은가.
그 순간 하늘이 어두워졌다. 처음에는 비가 오려나 싶었지만, 곧이어 그것이 단순한 구름 따위가 아님을 깨달았다.
“저게 뭐야.”
한동안 사태 파악이 제대로 되질 않아 그저 하늘을 바라보고만 있다가, 그것들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걸 보고 정신이 돌아왔다. 어찌나 당황했던지, 내선 전화를 들곤 1번인지 2번인지 갈팡질팡할 정도였다.
이 사건으로부터 아주 약간 시간을 되돌리자. 10분 정도면 충분하다.
이동에 유리하게끔 가죽과 나무만으로 지어진 가건물이나 다름없는 투아레그족의 전통식 텐트 안에는 인질들이 묶여 있었다. 인질들은 그래도 나름 귀하신 몸이라고 의자에 묶어두긴 했으나, 인질들의 출신성분이 콘크리트 밀림이요. 황무지 정도면 모를까 사막과는 평생 연이 없던 이들인지라 말로라도 썩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말이지.”
카라랑. 카라랑.
금속과 금속이 맞닿으며 연거푸 불똥을 내뱉었다. 그곳에는 한 투아레그족 남자가 전투 조끼에 걸린 작은 금속판으로 대검을 손질하고 있었다. 정말로 손질이 되는지에 대해서 고사하더라도, 저것이 사람 멱 따기에는 무리 없을 정도로 몹시 예리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맞은 편에 인질들과 마찬가지로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면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남자의 억양은 몹시 독특했는데, 구태여 따지자면 아프리카 계열보다는 중동의 억양을 닮아 있었다. 영어를 쓰는 사람이 한 사람뿐인지라, 그가 독특한 것인지 아니면 이 인종의 억양이 독특한 것인지 분간이 되진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독특한 억양의 사내가 지금 인질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점이었다.
“정부와 어떻게 잘 거래해 볼 생각이었는데, 너희들이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협상에 응하질 않더군.”
사내는 투아레그족의 전통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인질들은 투아레그족의 언어를 모르지만, 손짓 하나로 부하 여럿을 부리던 이 남자의 행동이나 태도가 적어도 인질 수용소의 책임자나, 이곳의 대장이라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얼굴을 두른 천은 아센조터라는 것이었는데, 푸른 천으로 만들어졌으며 얼굴을 대부분 가리는 생김새나 사막의 거친 모래바람으로부터 얼굴 피부를 지킨다는 역할은 히잡과 비슷하면서도 한가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모계사회였던 탓에 여자가 아니라 남자가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굉장히 실망했어. 네놈들을 잡기 위해서 우리 투아레그 전사가 일곱이나 죽었단 말이지.”
PMC들이 열심히 고군분투하긴 했지만, 세기말 약탈자들처럼 중기관총과 대전차 무기를 거치한 테크니컬을 타고 물량을 통한 기동전을 펼치니 도저히 의뢰인을 지켜낼 도리가 없었다. 특히 이 남자의 총 다루는 솜씨가 매우 특출나서 지금 남자의 손에 들려 있는 AK에 PMC 넷이 목숨을 잃었다.
“일곱이나!”
그렇다. 일곱이나 죽었다. 무려 일곱이나 말이다. 한창때의 젊은이가 일곱이나 죽었다. 국가 단위로 보면 생채기 수준조차도 되지 않을 아주 적은 피해였지만, 이 작디작은 마을에서는 아주 큰 피해였다.
인연의 상실에서 비롯된 슬픔과 절망 등은 제쳐두더라도 단순 계산만으로도 한 명의 전사로서 온전히 자기 몫을 하기까지 10년이나 걸리는데, 그런 전사가 일곱이나 죽었다는 건 전략적 비극이나 다름없었다.
“너희에게 그 일곱의 가치가 있을까?”
사내의 목소리는 점점 고양되었고, 사내의 언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인질들은 점차 겁에 질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인지 가장 가까이 있던 인질에게 다가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증명할 기회를 주지.”
“무, 무슨 기회 말이오?”
인질은 저도 모르게 사내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입을 열고 말았다. 어쩌면 단순히 얼굴이 위생적으로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투아레그족의 부흥과 영광을 위하여 기부할 기회를 부여해주겠다는 말이야.”
사내는 인질에게 과감하게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했다. 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말이다. 그는 인질의 허벅지 위에 한쪽 발을 올려놓았다. 그냥 올려놓아도 괴로울 것이, 중무장한 사내의 군화인지라 완전 중세시절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인질은 연신 괴로운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게 그렇게 알아듣기 힘드나? 아니면.”
그는 대검을 인질의 목에 들이대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손질하고 있었기에, 두꺼운 피부 너머로 예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덕분에 칼날은 아직 닿지도 않았건만, 그의 착각 속에서 식은땀은 동맥에서 탈주한 혈액이 되어 있었고, 식은땀이 지나간 자리는 혈흔이 되어 있었다.
그가 이렇게 쇠약한 편은 아니었다. 도리어 평균으로 따지면 강단이 있는 편이었다. 다만 고작 수 시간 전에 중기관총에 머리를 맞고 죽은 PMC 대원의 시체 대량 생산 공정을 바로 코앞에서 목격했으며, 눈앞의 사내가 사람의 가치를 인권이 아니라, 재산으로 가늠하는 버릇을 지니고 있으며,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데 그리 거리낌이 없는 테러리스트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누구라도 신경쇠약에 걸리리라.
“이렇게 하면 좀 알아듣겠나?”
그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평등한 언어였다. 말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통하면 그만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폭력이란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언어였고, 무기는 언어학적으로 가장 위대한 발명이었다. 지나가던 삼척동자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이것의 의미를 모르는 이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런 제기랄! 알아듣겠소! 알아듣겠으니 제발 그 칼 좀 치우시오!”
그 대답을 들은 사내는 크게 만족하여 대검을 검집으로 되돌렸다. 인질은 흐르던 피가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얼마면 되겠소?”
“드디어! 이제야 좀 말이 통하는군!”
그는 손뼉까지 쳐대며 몹시 기뻐했다.
사실 지금 오가는 대화는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수 시간 전에도 비슷한 대화가 오갔다. 그리고 그가 만족할만한 숫자를 부르지 못한 결과물들은 천막 밖에 있었다. 약간의 휴식기를 거치기 위해 땅 아래에서 머리만 내놓고 식히고 있었다.
···어쩌면 뜨거워지는 것일 수도 있고.
“대장!”
“아, 지금 한참 중요할 무렵인데.”
그는 그제야 군홧발을 허벅지에서 내려놓았다. 인질은 그제야 자신의 허벅지에 피가 통하는 것을 느꼈다.
“무슨 일인데!”
“1급 사안입니다.”
1급이라면 단순히 이 마을을 넘어 부족의 존망이 걸린 일이었다. 이는 장난으로라도 할 말이 아니었다. 일이 단단히 꼬였다는 생각에 머리를 벅벅 긁어대며 텐트 밖으로 나왔다.
“그래 무슨 일이야?”
“방송 좀 보세요. 진짜 큰일 났어요.”
채널을 어디로 돌려도 오로지 이 이야기뿐이었는데, 실시간으로 말리 공용어인 프랑스어 자막이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어보다는 영어 쪽이 더 익숙하긴 했지만, 어쨌든 두 개 전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덕분에 방송을 보고 듣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한마디로 12시간 안에 인질을 죄다 미국으로 돌려놓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소리였다. 당연하겠지만 말리 정부는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최대 골칫거리 중 하나를 친히 미국이 손봐주겠다는데, 그야말로 손대지 않고 코 푸는 격 아닌가?
물론 겉으로야 외국 군대가 영토에 주둔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장황하게 자기변호를 하고 난 다음에는 테러리스트 검거에는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말로 마무리 지었다.
“우리가 잡은 인질들이 혹시 미국 정치가라도 됩니까?”
그것을 보자마자 대장은 뒤통수가 찡해지는 기분이었다.
“이 빌어먹을 것들이. 위장 신분인가?”
너무나도 당연하겠지만, 인질들의 직업이나 하는 일 따위는 전부 파악한 지 오래였다. 여권과 인터넷. 이것만으로도 이들의 신원을 파악하는데 1시간이면 충분했다. 유명인이라면, 그들이 허용한 선에서 개인정보를 제삼자가 마음껏 열람할 수 있다. 이는 정보화시대가 낳은 부작용이었다.
구태여 고생하면서까지 알아보는 이유는 그들도 상대는 알아보고 건드리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면, 도리어 곤란해지는 것은 투아레그족이었다.
“대장!”
“우리 마을 상공에서 저고도로 폭격기가 날아다니는데요?”
“뭐야?”
이 멍청이들이 정찰기를 잘못 보고 단단히 착각한 것이겠거니 생각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니 글쎄 정말로 폭격기가 아예 편대를 지어서 날아다니고 있지 뭔가?
‘큰일이다. 생각보다 훨씬 미친놈이야.’
말리 정부군이나 경찰 정도는 각오했지만, 미군이라니? 상정은커녕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이곳에 인질이 있으니, 정말로 저 폭격기에서 폭탄이 떨어질 확률은 0에 수렴했으나 폭격기도 보낸 미친놈이 정말로 폭탄을 떨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일단은 말리는 내륙국인지라, 어떤 쪽으로 진입을 하던 외국 영공이었던 탓에 폭격기 편대가 지나가는 경로마다 개별적인 영공권이 필요하긴 했는데, 알제리나 리비아나 모로코나 오래오래 정권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요청이 들어오자마자 완전히 오픈한 지 오래였다.
언론에다가는 절대로 열지 않겠다고 말은 했지만, 그거야 그거고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각지에서 준동하는 반군도 못 막고 있는 판에 무슨 수로 세계 최강의 군대를 상대로 버틴다는 말인가?
다만 주의해야 할 것이, 결코 아프리카 정부가 무능하고 한심한 게 아니었다. 유럽놈들이 개판 치고 간 덕분에 일반적인 행정 능력으로는 어떻게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막장이 된 탓이지. 절대로 아프리카 정부의 잘못은 아니었다.
아프리카에 무지하여 21세기임에도 아프리카를 그저 낙후된 미개한 대륙으로 보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미개함을 꼽을 때 독재 정부의 존재를 꼽곤 하는데, 사실 그것조차도 유럽 열강들이 완전히 조져놓고 도망친 탓이었다.
여하튼 영공권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 아프리카 정부가 아니라 유럽 정부라고 해도 다를 바 없긴 했지만,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전례가 있는지라 대응이 좀 심각할 정도로 신속했다는 것도 일단은 사실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찔리는 반미 국가들이었다.
어쨌든 몹시 당황한 대장은 천막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천막 안으로 들어가다가 한 번 넘어지는 바람에 턱 피부가 까질 정도였다. 피를 뚝뚝 흘리며 인질 중 무작위로 한 명 삿대질하며 지목했다.
“이보쇼! 당신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저요?”
우연인지, 아니면 운명인지 마침 그가 지목한 사람은 미국 대통령이 큰 지출을 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MP3 만드는 사람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