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Bush's Great America RAW novel - Chapter (173)
조지 부시의 위대한 미국-172화(173/377)
< 172화 >
‘나의 이름은 파격과 미지에 둘러싸여 그중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무엇이 역사이고 무엇이 전설인지 그 누구도 분간하지 못하리라.’
부시는 몽골의 미친 남작이 본인의 운명을 한마디로 함축했던 말을 제 입맛대로 변형하여 읊조렸다. 실로 묘하게도 자신의 운명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부시가 부시가 아닌 것을 알지 못하며, 그가 수립한 계획 중 절반 이상이 정상적인 경로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지식에서 비롯되었다. 심지어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굉장히 막 나가고 있었으니, 따라서 제삼자가 보기에는 광기에 가까울 것이라 쉬이 추측할 수 있었다.
실제로 덕분에 재임 기간 중 음모론이 가장 많은 대통령이기도 했다. 음모론이 생기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나랏일 중대사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생기면 된다. 예를 들어 전투기 방한 사건은 전부 이게 도대체 뭔가 싶었을 거다. 아무런 정보도 공개되어 있지 않으니 여기서 음모론이 생긴다. 심지어 이게 지구촌 단위 음모론이다.
게다가 옆에 붙여놓고 도저히 때놓을 생각을 하질 않는 비서실장은 또 어떻고? 음모론은 결코 제멋대로 생기지 않는다. 원인이 제공되어야만 비로소 생겨나는 게 음모론이다. 물론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어서 마구잡이로 음모론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원인이 있어야 생겨날 수 있다. 그리고 음모론이 생겨나기에 너무나도 좋은 환경이었다.
‘알게 뭐람.’
그렇다. 음모론이고 나발이고 오늘은 마침내 그 법안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었다.
“내가 오늘 필리버스터를 끝내러 왔다.”
아무한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혼잣말을 읊은 부시가 연설대 위에 올랐다. 연설을 즉석에서 짜내느라 뜸을 들이던 여느 때와 달리 오늘은 연설문이 있었다. 부시 측근 최고 엘리트들에게 몇 차례고 검수를 받은 연설문 말이다.
“필리버스터를 제거하는 법안을 필리버스터로 막겠다는 발상을 하는 이가 있으면 지금 나와서 말씀해보십시오.”
물론 그렇다고 딱히 그 연설문이 평범한 연설문이라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것이 타당한 사유라면 들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껏 미국의 진보를 막아온 필리버스터가 그 진보보다 가치가 있을 경우로 한정할 것입니다.”
사실 원안에 이 사이에는 ‘반대하는 자는 직접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리겠다!’라는 협박성 문구가 있었으나. 당연히 심각한 사회적 이슈와 장애인을 차별했다는 파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즉각 삭제되었다. 물론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의회 연설문에 협박성 문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긴 했다.
어쨌든 지금도 상당히 공격적이지만, 원안은 아예 협박문이나 다름없는 연설문이었다. 부시도 이것을 어느 정도 인지했기 때문에 측근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다만 이 연설을 듣고 있는 상원의원들은 하나 같이 대통령의 연설이 ‘정상적인 연설’이라는 점에 더 놀랐다. 모두가 저번과 비슷한 수준의 모욕을 각오하고 있었던 탓이었다. 매우 극소수긴 했지만, 진심으로 필리버스터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낀 정치인도 있었다.
다만 정치인 대부분이 필리버스터를 없애자는 의견에는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필리버스터를 복잡한 정치 단어 다 빼고 설명하자면, 쉽게 말해서 다수당에 의한 ‘날치기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서 사용되던 방법이었다.
이걸 더 쉽게 말하면 소수당이 이 법안이 엿 같다고 생각했을 때 토론-표결의 과정에서 표결까지 가지 못하도록 무한정으로 토론하는 일이다. 사실 토론이 아니라 진행을 방해할 수 있으면 전부 필리버스터로 치지만, 일단은 무제한 토론이 가장 보편적인 필리버스터다.
그중 미국의 필리버스터는 다른 국가들의 필리버스터와 달리 좀 황당한데, 성경책에 동화책까지 읽을 수 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겠지만, 현실이 그러했다. 의제와 전혀 상관이 없는 말이라도 몇 시간이고 지껄일 수만 있다면 24시간 동안 지껄여도 좋았다.
사실 20세기까지만 해도 필리버스터는 상당히 희귀한 일이었다. 때는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이 말엽.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인해 루시타니아호가 침몰하고 미국의 참전 여론이 거세지던 무렵, 기어코 치머만 전보 사건이 터지게 된다. 당시 28대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은 임기 내내 최선을 다해 반전 운동을 했지만, 치머만 전보 사건 하나로 어쩔 수 없이 상원에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요청 연설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상원의원 몇 명이 재선한 윌슨 대통령을 아니꼽게 봤던지. 아니면 전쟁만큼은 진짜로 아니다 싶었던 모양인지 필리버스터를 실시했고, 그때를 기점으로 필리버스터가 가진 힘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시간이 흘러 때는 1957년. 스트롬 서몬드 상원의원은 시민 권리법에 장장 24시간 18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실시했다. 그는 요리책과 전화번호부 등을 낭독했으며, 필리버스터가 가진 힘을 확실히 보여준 사례로 남았다.
그리고 이후부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법안에 모조리 필리버스터를 실천하기 시작했으며, 21세기에 들어서 부시 정부에 이르러서는 굵직한 법안은 죄다 필리버스터에 묶여있게 되었다.
필리버스터를 단순히 필요악이라고 하기에는 필리버스터가 너무 비대해지고 말았다. 법안이란 본디 질서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인데, 필리버스터는 당파 싸움이나 하기 위해서 악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부시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더 나아가 국민이 원하는 바는 더더욱 아니고 말이다.
“···따라서 지금은 필리버스터가 사라져야 할 때입니다.”
이윽고 드디어 부시의 연설이 끝났다. 이 법안을 순순히 통과시키라는 무언의 압박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공화당 중에서 부시 측 인사는 어떤 토론이 오가든 무조건 입법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원래 정치란 당파 싸움이니까 말이다.
문제는 그 토론이었다.
애당초 무제한으로 토론이 가능한 이유는 3대 부통령이었던 에런 버가 멀쩡히 정치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결투로 추방당한 그 부통령 말이다. 원래는 투표를 통해서 과반수를 넘기게 되면 토론을 끝내는 규정이 존재했다.
에런 버는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상원에서 더 많은 토론을 하길 원했기에 토론을 끝내는 규정 자체를 제거해버린다. 이게 오늘날 상원에서 무제한 토론을 가장한 시간 끌기가 가능한 이유이며, 토론이 아닌 전혀 주제에 상관없는 개소리를 24시간이 넘어가도록 지껄여도 그 누구도 제재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러나 아예 필리버스터를 삭제할 경우 얼마나 위험천만해지는지 설파했다. 더불어 다수당에 의한 독재 우려를 표했다. ‘소수당이 다수당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제거’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모험이었다.
보수적인 사람들이라면 부시의 연설보다 이 연설을 좀 더 호소력 있게 받아들였다. 유감스럽게도 부시가 소속된 정당은 보수성향이었고, 진보정당인 민주당에서조차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공통적인 한 가지 의견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필리버스터는 없어지지 않았다. 다만 성경책을 읊거나 전화번호부를 읽는 등 기존의 무질서한 필리버스터를 가능하게 했던 몇몇 법적 구멍을 메꾸고법을 최대한 쓸모 있게 토론하는 쪽으로 제한을 할 수 있도록 바꾸었다.
물론 하는 일은 거기서 거기로 비슷하겠지만, 현재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타협이었다.
1975년에 제정된 ‘60표’라고 불리는 규칙을 수정하여 단순 과반 찬성으로 조정했다. 쉽게 말하면 의결정족수를 51석으로 낮춘다는 소리다. 이는 ‘핵 옵션’이라 불리는 것이었으며, 이것이 실질적으로 필리버스터 방지나 해결에 효험을 그리 보지 못했다는 걸 알곤 있었지만, 몇 가지가 바뀌었다.
“어느 정도 노리신 대로 되신 것 같습니까?”
모든 일이 끝나고 난 뒤. 정확히는 국회가 폐회되고 난 직후. 비서실장이 물어왔다.
“솔직히 좀 더 밀어붙이고 싶었는데, 불만족스럽군.”
“···정말로 필리버스터를 없애버리기라도 할 생각이었습니까?”
“그럴 리가.”
부시는 자신답지 않은 짓을 했다며, 집무실 의자에 털썩 소리가 나도록 앉더니, 이내 진이 빠진 모양인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헤쳤다. 정치란 정말로 피곤한 것이다. 그것도 복마전이나 다름없는 정치판이라면 더더욱.
“연설 자체를 그렇게 짜지 않았나. 심지어 내 초안을 통째로 뜯어서 자네가 짠 거고.”
“대통령님의 연설문은 솔직히 연설보다는 협박문에 가까웠습니다. 애당초 그렇게 쓰면 안 된다는 걸 알고 계시는 분이 왜 그렇게 쓰셨답니까?”
거기까지 듣고 나서 다시 넥타이를 정리했다.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을 뿐이야. 세상이 이상대로만 돌아간다면 참으로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니 말이야.”
가장 이상적인 건 정말로 필리버스터가 없어지고 모두가 항상 올바른 정치를 하는 것이겠지만, 모두가 올바르게만 살아간다면 정치 자체가 필요 없을 터이니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부시는 유도를 하기로 했다. 대통령은 무분별한 필리버스터를 원치 않는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말이다.
물론 말로만 해도 되겠지만.
“무엇보다 말로만 해서 들을 종자들이 아니란 말이지.”
압박을 심어주는 게 가장 뛰어났다.
“역사가 두렵지는 않으십니까? 향후 100년 정도는 경제는 살렸지만, 정치는 개판으로 한 대통령으로 남을 겁니다.”
“자네는 그 대통령을 쥐고 흔든 비서실장이 되겠지.”
“대통령님?”
그렇게 말해놓고선 어이가 없었는지 부시는 웃었지만, 비서실장은 여전히 심각한 표정이었다. 왜냐면 본인 이미지가 정말로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그랬으니 더더욱 그러하였다.
“별로. 나는 내 이름이 역사에 어떻게 남을지보다는, 내가 집권할 수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게 더 중요해.”
역사서에 어떻게 적힐지 알게 뭔가. 더 나아가 커리어 따위조차 알 바 아니었다.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권력을 논할 때 반드시 ‘돈, 여자, 명예’를 꼽곤 하는데, 이게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람의 성별에 따라 여자가 남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중요한 것은 이 셋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사람이니 필히 주목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이 셋을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야말로 조지 W. 부시. 미국의 현 대통령이자, 파괴자였다.
그에겐 미국 정계를 움직일 수 있는 모든 키가 모여있었다. 군통수권자로서 세계 최강의 군대인 미군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 연방 경찰과 지방 경찰을 장악하면서 생긴 강력한 권한, 대외적 활동으로 인해 만들어진 무너지기 어려우며 두텁기까지 한 지지층, 경제가 우선시 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계를 완벽히는 아니나 적어도 소소한 부분에서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해외로부터 끌어온 막대한 자본까지.
“그래도 오늘 그 편린을 엿보았지.”
마음만 먹으면 독재는 아니어도 비슷한 짓을 할 수 있다.
“이건 내가 생각해도 위험하군. 다음 대통령에게 물려주기 전에 어떻게든 해결해놔야겠어.”
지지율이야 부시의 임기가 끝나면 사람이 바뀌었으니 다시 정상적으로 내려가겠지만, 경찰은 아니었다. 게다가 삼권분립 체제도 세계대전을 겪어가며 상당히 망가져 있었다. 부시는 거기에 좀 더 개조를 가해서 권력을 좀 더 얻어냈을 뿐이었고 말이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말 안할 겁니다.”
여기서 말해버리면 진짜로 ‘대통령을 뒤에서 조종한 비서실장’ 따위의 음모론처럼 되고 말 것 같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된 발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모시는 분께서 정상과는 완전히 정반대인 정치를 하는 사람인지라 배후에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음모론이 민간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정치계에조차 여기저기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물론 고래로부터 이런 일을 꿈꾸는 이인자야 많았지만, 비서실장은 역사서에 자신의 이름이 그렇게 적히질 원치 않았다. ‘대통령을 완벽하게 보좌한 충실한 비서실장’ 그것이 비서실장이 꿈꾸는 자신의 이름이었다.
“자네 그거 상당히 늦은 거 알지?”
그날 비서실장은 대통령 앞에서 처음으로 욕설을 내뱉었다.